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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서《불멸의 력사》 2 장편소설
천 세 봉
( 제 20 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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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밤 장두촌에서는 여러날동안 중단되였던 농민야학과 녀성야학이 다시 열리였다. 동네사람들은 웅성거리며 야학방으로들 모여들었다. 김성주동지께서 마름네 집에서 홍가를 단죄하고 농민들을 데리고 나오신 이야기는 삽시에 퍼져서 온 동네사람들의 화제에 올랐다. 《아무렴, 선생님이 나오셨는데 그까짓 홍가라는게 무어요. 상대할 건덕지나 되오?》 《그러기에 선생님이 앞에 쑥 나서시자 홍가와 마름이 낯빛이 달라지더랍니다. 마름은 귀속말로 홍가를 참으라고 달래면서, 하하하.》 《홍가가 달래는 소리를 못들으니까 마름이 홍가의 엉덩판을 주먹으로 쥐여박드라오. 하하하.》 야학방으로 모여오는 사람들은 이렇게들 떠들며 웃었다. 이 소문때문에 야학방에 나오지 않던 사람들도 모두 웅성거리며 떨쳐나섰다. 두 야학방에는 사람들이 툭 터지게 모였다. 녀성야학에서는 활기에 찬 글소리가 일어났다. 키가 큰 한경식이 칠판앞에 나서서 《가갸거겨》 하고 외우면 녀성들이 모두 한목소리로 힘차게 받아서 외웠다. 오늘밤엔 새로 나온 아낙네들이 많아서 국문을 다시한번 처음부터 가르치는것이였다. 세상에 지주라는것도 무서울것이 없다, 홍가따위가 아무리 땅을 가지고 세도를 써도 김성주선생님께서 마을에 오시자 움쩍을 못하지 않느냐! 누구나 이렇게 속대가 뻗쳐서 글읽는것도 더욱 목소리를 높여서 읽었다. 《나냐 너녀》 《나냐 너녀》 처녀들은 새별같은 눈에 글자를 익히며 따라읽는다. 야학에 다니지 않던 아낙네들도 오늘밤에야 이 야학이라는것이 지주를 눌러놓는 힘이라는것을 깨닫고 열심히 받아서 읽었다. 《성님, <가>자라는게 낫가락곁에 작대기를 세워놓은것 같군요.》 《참, 그렇수다레, 그러고보면 <갸>자는 옹이 둘 붙은 나무를 세워놓은것 같구…》 글을 받아서 읽고난 아낙네들은 이런 소리들을 주고받으며 웃었다. 농민야학에서도 국문공부가 시작되였다. 여기에서는 김성주동지께서 직접 칠판앞에 나서서 글자들을 또박또박 짚어내려가며 가르치시였다. 모두들 기운찬 소리로 받아서 읽었다. 바로 이런 때 마름네 집에서는 홍가가 떠날 차비를 하고있었다. 마름네 온 식구가 나와서 마차에 호랑보료를 깐다, 짐을 싣는다 하였다. 마름은 홍가가 가면서 마실 배갈병을 특별히 마차속에 간수해넣으며 《가다가 따르십쇼.》 하고 속삭였다. 울기가 오른 홍가는 대꾸가 없이 마차에 올랐다. 《래일부터는 틀림없이 길림역으로 내실리겠습니다.》 마름은 또 마차우에 앉은 홍가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래도 홍가는 대꾸가 없었다. 아주 심사가 비틀어졌다. 소작료야 자기가 장두촌에 나타나지 않아도 의례 받아낼것이였다. 자기가 온 목적은 소작료에 있는것이 아니라 사람을 뽑아가는데 있었다. 그런데 그것이 실패로 끝나고말았다. 마름은 검정콩알이 무섭다고 했으나 홍가가 무서운것은 사람을 움쩍 못하게 사로잡는 청년의 추상같은 기품이였다. 거기에 기가 꺾여 떠나는 홍가였다. 마차는 달이 삐죽이 떠오르는 벌판을 향해서 달리였다. 흔들리는 마차우에 앉은 홍가는 새빨갛게 단 눈알로 주위를 살펴보았다. 온 대지가 모두 자기 땅이라는 생각보다도 농민들이 이구석 저구석에서 칼을 들고 일어나 피눈물의 보복을 해오는것 같아 가슴이 써늘해졌다. 이날밤 김성주동지께서는 야학이 필한 뒤 녀성야학생과 농민야학생을 한곳에 모여앉히고 밤이 깊을 때까지 이야기를 하시였다. 우리가 단결을 하고 글을 배우는것은 무엇때문인가? 바로 장두촌사람들이 오늘과 같이 살지 않기 위해서이다. 지금 장두촌사람들은 잔인무도한 홍가의 손에 목숨이 쥐여져있는 형편이다. 그래서 1년내내 땀을 뿌리며 지은 농사를 그놈에게 다 빼앗겨야 하고 그것도 모자라서 사람까지 덧짐으로 제공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였다. 낮에 정령감이 홍가를 능갈치는 방법으로 사람을 빼가자고 한다고 말했는데 그 말은 백번 옳은 말이다. 홍가는 땅이라는 자연물을 놓고 자기 세도를 부리는데 온갖 기만과 강압, 회유를 다 써서 사람들의 뼈와 살을 갉아가고 피를 뽑아다가 자기 생활을 살찌우고있다. 우리가 언제까지 이런자의 착취밑에서 살아야 하는가! 언제까지 이런 강도놈의 호령에 머리를 숙이고 자기의 아픈 살을 떼주고 뼈를 갉아주겠는가! 오늘밤의 좌담회는 여느때 좌담회같지 않았다. 누구나 다 핍박한 생활이 눈섭우에 떨어져있는 때라 한마디한마디의 말씀이 심장을 울리며 스며들었다. 우리는 하루바삐 이 기막힌 생활을 청산해야 한다. 이 고통받는 생활은 절대로 영구불변한것이 아니다. 이런 강도적인 사회는 어느때든 끝장이 나고야만다. 그러나 그런 끝장이 거저 오지는 않는다. 우리가 단결해서 하루빨리 왜놈을 쳐야 그 끝장이 빨리 올수 있다. 지금 지주가 등에 업고있는 권력은 일제이다. 그렇기때문에 지주를 치려면 하루빨리 왜놈을 쳐야 한다. 그이의 말씀을 들으며 청년들은 주먹을 틀어쥐였다. 득만이며 한경식이들은 동네사람들이 이 사건을 통해서 눈들이 확 틔여지는것 같아 은근히 신바람났다. 그들은 김성주동지께서 당장 지주를 치고 마름의 집에 불이라도 지르라고 지시를 내렸으면 좋을상싶었다. 늘 주먹이 찡찡 우는것은 득만이였다. 그러나 그는 무슨 일이든지 그이의 지시가 아니면 못할줄 알기때문에 근지러운 주먹을 혼자 달래군하였다. 이튿날 그이께서는 장두촌의 집집을 돌아보시였다. 홍가에게 소작료를 바치고 농사소출이 얼마나 남는가? 엄동설한을 넘길 량곡이나 있는가? 어린애들과 늙은이들의 옷이라도 한벌씩 해입힐 여유가 있는가? 이런 근심에 싸이여 집집을 찾으시였다. 어느 집이고 각박한 사정은 매한가지였다. 6할의 소작료와 땅구실, 그밖의 채무를 갚고나면 남는것이 없다. 들어가셨던 집에서 나오려면 발길이 떨어지지 않으시였다. 어두운 그늘이 덮인 사람들에게 무슨 말이든 좀더 위로가 될 말, 힘이 될 이야기를 해주시고싶었다. 집집들에서는 그래도 마가을에 오셨으니 점심이라도 한끼 잡수시고 가라고 팔소매를 붙들기도 하였다. 그이께서는 그 마음씨들이 고마와 더욱 가슴이 저리시였다. 득만이네 집으로 오시니 득만이어머니가 마당가운데 혼자 앉아서 키질을 하고있었다. 토방우에 쌓아두었던 벼마대들은 마름의 독촉이 심해서 벌써 길림으로 들어가는 이웃 달구지들편에 한두마대씩 갈라 실어서 띄웠다는것이였다. 어머니는 어제 도리깨를 친 북데기를 키에 담아서는 자꾸 까불었다. 반백이 된 머리로 낭자를 틀었는데 그 머리에 수건도 못쓰고 앉아서 키질을 했다. 키앞에 떨어지는것은 없고 검불과 쭉정이만 활활 날아나갔다. 머리우에도 어깨우에도 쭉정이가 한벌 덮였다. 《어머니, 알도 없는걸 뭘 그렇게 수고를 하십니까?》 《그래도 뭣이 좀 있을것 같아 이러지를 않습니까.》 어머니는 얼른 눈물을 감추며 키의것을 함지박에 털어넣는다. 함지박속에는 키질을 해서 얻어낸 벼알들이 반이나 채워있다. 그이께서는 함지박속의 벼알을 한줌 쥐여 손으로 비벼보시였다. 옹근 벼알이라군 별로 없고 모두다 알이 생기다가 말라붙은 쭉정이들이였다. 《벼가 남은건 모두 얼마나 됩니까?》 《누가 돼보기나 했겠소. 그저 퍼담아 독속에 들여다 부었지요.》 어머니는 또 한키 북데기를 퍼담아 활활 날리며 키질을 했다. 부엌으로 들어서신 김성주동지께서는 두렁우에 놓여있는 네눈박이 큰독부터 열어보시였다. 독이 크긴 해도 한섬 벼는 들어가지 못할 독이였다. 그런데 벼가 그 독에도 가득 차질 못했다. 그이께서는 큰독곁에 놓여있는 항아리만한 작은 독도 열어보시였다. 그 작은 독에는 낟알이 아니고 수수겨가 한독 차있었다. 아무리 둘러보아야 그밖에는 낟알이라고 있을곳이 없다. 석유궤짝같은 찬장속에는 밥바리가 두개, 이가 빠진 사발이 몇개 겹쳐져 놓여있고 까맣게 그슬은 남비와 그옆에 수저가 널려있었다. 밥바리안에는 밥이 두어숟갈씩 밑창에 남아있었다. 득만이와 그의 아버지가 단끼에 게눈감추듯할 밥인데 채 먹질 않았다. 아마도 점심끼니를 위해서 남겨둔것 같았다. 김성주동지께서는 코허리가 시큰 울리며 눈앞이 흐려지셨다. (인제 장정 두사람이 무엇을 먹고 그 큰 육신들을 지탱해낼것인가? 이 장정들의 섶풀에서 어머니는 또 무엇을 얻어자시며 연명할것인가? 치마끈이 량식이라더니 치마끈을 죄여매며 살것인가.) 불현듯 무송 어머님 생각이 가슴을 찌르시였다. 어머님의 얼굴, 어머님의 체취가 이 부엌에서 느껴지시였다. 밖으로 나오시니 득만이어머니는 키질을 하다말고 북데기우에 퍼더버리고 앉아서 울고있다. 《어머니, 우지 마십시오. 어떻게 살아갈길이 있겠지요.》 《난 살 일이 걱정돼서 안웁니다. 선생님의 심정이 하도 고마와서 그저…》 어머니는 말끝을 채 끝맺지 못하고 치마자락을 들어서 눈물을 씻었다. 그러나 눈물은 씻을수록 자꾸 흘러내렸다. 얼마후에야 갈퀴같은 손이 와들거리며 다시금 키를 잡고 북데기를 쓸어담았다. 김성주동지께서는 찢기는것 같은 심정을 붙안고 득만네 집을 나서시였다. 이어 길림으로 떠나자고 하던 생각도 무너져버렸다. 언제 이 피눈물과 고통을 밀어내고 이 대지가 활짝 개이게 할수 있을가! 그이께서는 어디를 걷는지도 모르고 마을변두리로 자꾸 걸어나가시였다. 지붕이 호박넌출로 덮인 씰그러져가는 오두막 한채가 그이의 걸음을 멈춰세웠다. 그 오두막의 왼쪽 기둥들에는 굵직굵직한 장대기들이 뻗치여있었다. 부엌문도, 장지문도 바깥쪽으로 활짝 열려져있었으나 웬일인지 인기척은 없었다. 한쪽옆구리의 털이 좀 빠진 황토색 중개 한마리가 토방돌밑에서 느침을 흘리며 낮잠을 자고있다. 어디서 쉬파리가 날아와 짐승의 비루먹은 옆구리에 달려들었다. 개는 눈을 반쯤 뜨고 입을 다시며 선하품을 하다가 쉬파리의 성화를 이겨내지 못하고 토방돌밑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사립문쪽으로 어정어정 걸어갔다. 인적도 없는 뜨락의 한적한 공기가 사뭇 답답하게 느껴지는 모양이였다. 사립문을 나서자 짐승은 불시에 꼬리를 저으며 흥분하였다. 잠기가 그대로 남아있던 눈은 생기를 띠고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더펄아, 왜 나왔니?》 오두막앞의 언덕밑에서 돌연 방울을 굴리는것 같은 처녀애의 목소리가 날아왔다. 그러자 개는 기다리고나 있었던듯이 모두뜀으로 소리나는쪽을 향해 달려갔다. 달려가서는 애어린 주인의 몸에 껑충껑충 뛰며 휘감기였다. 《그러지 말어, 그러지 말래두!》 짐승의 열광적인 애무때문에 걸음을 옮기지 못하고있던 어린 주인이 팔을 저으며 부드러운 소리로 개를 달래였다. 개가 어리광질을 그치고 앞으로 뛰여가자 처녀애는 비로소 언덕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아홉살이나 열살쯤 되였을가. 소녀라고 부르기에는 아직 너무나도 애되고 설익은 체구의 녀자애다. 무송시절 샘골에서 이따금씩 만나군하던 박도삼의 딸 예쁜이도 저 애보다 훨씬 다부지고 옹골찼었다. 그런데 이 애의 모습에서는 예쁜이나 신동호의 조카들에게서 볼수 없는 이상한 내적조숙이 느껴지셨다. 그때문에 그의 표정이며 몸가짐도 별로 어른스러워보이시였다. 멀리서 자기를 지켜보시는 김성주동지의 시선도 감촉하지 못하고 처녀애는 옆구리에 나물바구니를 낀채 타박타박 언덕길을 추어오르고있었다. 아래자락이 너슬너슬한 몽당치마밑에서 신발도 없이 재게 옮겨가는 발과 연약한 종다리가 그이의 눈길을 아프게도 끌어당기시였다. 사립문가에 서계시는 김성주동지를 보자 처녀애는 걸음을 멈추었다. 어머니없이 아버지를 모시고 구차하게 사는 애가 있다더니 아마 그 애인 모양이였다. 《이게 너희 집이니?》 김성주동지께서는 버들가지로 엮은 사립문짝에 한손을 얹고 다른손으로 오두막을 가리키시였다. 《우리 집이예요.》 처녀애의 대답은 역시 챙챙하면서도 친근하였다. 《집이 빈것 같구나. 어른들은 어디 갔니?》 《어른들은 없어요.》 《없다니? 그럼 너 혼자 산단말이냐?》 《네, 어머닌 죽고 아버진 한달전에 장춘으로 갔는데 아직 안돌아왔어요.》 《장춘엔 왜?》 《일자리를 얻으려구요.》 《음, 그러니까 너 혼자서 나무도 패고 불도 때고 밥도 짓고 빨래도 한단말이지? 용타. 너 이름이 뭐냐?… 청숙이?》 처녀애는 고개를 갸웃이 한 다음 눈을 좁히고 그이를 말끄러미 쳐다보았다. 그 천진스런 모습이 김성주동지의 가슴을 더 아프게 해주었다. 그이께서는 나물바구니를 안고있는 청숙이의 한쪽손을 끌어당기여 손등과 손바닥을 번갈아 쓸어보시였다. 개천에서 묻혀온 물기가 아직 채 마르지 않은 작은 손은 아이의 손같지 않게 거칠었다. 그 손에서는 능쟁이냄새가 풍기고있었다. 개울물에 정히 다듬고 손질한 능쟁이줴기가 바구니안에 그득하다. 문득 창덕학교시절에 이처럼 아픈 심정을 붙안고 만나보시였던 토성랑소녀의 모습이 추억속에 되살아올랐다. … 장마철이여서 키낮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앉은 토성랑굽이는 몹시 질쩍거렸다. 길이자 마당이고 마당이자 길인곳을 걸어가느라면 강냉이 튀기는 냄새, 고구마 굽는 냄새, 매캐한 연기냄새가 풍겨왔다. 토성랑변두리에는 집을 잃고 쫓겨났다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막을 치고 들었다. 거적을 둘러막고 풀을 베서 지붕을 이였다. 그런속에서 로인들이 쿨럭쿨럭 기침을 깇었다. 발가벗은 아이들, 얼굴빛이 누런 아낙네들, 장정들은 그래도 어데 가서 무엇을 자꾸 날라오고있다. 뚝딱거리며 나무를 깎기도 하고 말뚝을 박기도 한다. 토성랑 본바닥 사람들보다도 사는 형편이 더 딱하다. 아니, 사는 형편이라기보다 살자고 애쓰는 형편이 눈뜨고 볼수가 없다. 어데서 무엇때문에 집을 잃고 이리도 수태 밀려왔는가! 물창을 피해서 풀막앞을 걷느라니 어린애들의 찢어지는것 같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엄마 엄마 하고 부르는 그 애절한 울음소리, 그속에는 불행의 커다란 그림자앞에서 발발 떨고있는 어린것들의 모습이 보이는것 같다. 진창을 건너뛰려던 발길은 그대로 굳어져버렸다. 얼른 다가가 움속같은 풀막안을 들여다보시니 어린 오누이가 엄마의 시체옆에 앉아서 목을 놓아 울고있다. 《엄마, 미음을 다 쑤었어. 왜 가만히 있나? 엄마, 나 좀 봐, 눈 뜨고 나 좀 봐.》 소녀애는 양초빛같은 엄마의 얼굴에 자기 볼을 문대며 부르짖었다. 《엄마, 죽지 마. 죽으면 안돼, 안돼.》 동생인듯한 사내아이는 엄마의 어깨를 안타깝게 잡아흔들며 눈물자국이 얼룩진 얼굴을 엄마의 가슴에 묻고 몸부림쳤다. 삿자리한장을 깔아놓은 우에 만사를 내동댕이친 불행한 아낙네는 어린 자식들이 흔들면 흔드는대로 움직이며 말이 없다. 문도 없는 풀막, 풀잎이 드리운 천장, 천장에서는 장마때 비방울이 아직도 떨어져내리고있다. 풀밭 그대로인 작은 마당, 검은 강아지 한마리, 그것도 낑낑 울며 돌아간다. 그래도 마당에는 붉은 진흙으로 구운 풍로가 하나 놓여있다. 그우에 조꼬만 남비가 놓여있는데 뚜껑새로 실김이 피여오르는걸 보니 그속에 아마도 엄마가 못먹고 간 미음이 있는것 같다. 어떻게 그대로 돌아설수 있는가! 풀막안으로 들어가 아낙네의 손을 만져보시니 손은 이미 고드름같이 차다. 몸부림치는 아이들을 겨우 떼내고 헌 누데기천을 펼쳐 아낙네의 얼굴을 가리워주시였다. 그 한장의 누데기로 이 세상에 너무나 많이 맺혀있을 녀인의 한을 어떻게 가리워줄수 있으랴. 아무리 눈을 가리운들 몸부림치며 울어대는 오누이의 애처로운 정상을 녀인의 망막에서 지워낼수 있으랴. 이 세상의 온갖 불행이 한꺼번에 그 반간 되나마나한 풀막속에 꽉 들어찬듯 답답하고 숨이 막히시였다. 아이들은 그 엄청난 불행의 무게에 지지눌린듯 갑자기 울음도 잊어버리고 서로 어깨를 기대고 나란히 앉아 빤히 올려다본다. 살이 쪽 빠진 까칠한 얼굴의 소녀와 어지러운 눈물자국으로 매닥질이 된 사내아이의 얼굴을 보니 가슴이 죄여들고 숨이 가쁘시였다. 《얘, 너의 아버지는 없니?》 풀막안에 사람 사는 흔적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아 물어보시였다. 소녀는 미심쩍은 얼굴로 한참이나 빤히 올려다보더니 대답했다. 《아버진 일 나갔어요.》 《그러면 빨리 가서 알려야 하지 않겠니?》 《십장들이 무서워서 못가겠어요.》 《십장들이?》 《공사판에 십장들이 많아요. 우리도 왜놈들이 집을 헐어버려서 쫓겨났어요.》 《아니, 왜놈들이 집을 헐어버렸어?》 《네, 그리구 우리 엄마두 그놈들이 때렸어요.》 《그럼, 매맞아서 돌아가셨단말이냐?》 《배고파 앓는걸 때리니까 돌아갔죠뭐…》 소녀는 약삭바른 눈으로 치떠본다. 그 말을 들으니 치가 떨려 견디실수 없었다. 짐승이 아니고야 그럴수가 있는가! 《얘, 그럼 나하구 같이 아버지 있는데 가자!》 《오빠는 어디 사시나요?》 《난 만경대에서 산다. 나하고 같이 빨리 아버지한테 가자.》 마침 동네아낙네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모두들 분노로 이를 갈면서 울음을 터뜨렸다. 아낙네들의 말에 의하면 공장을 세우는 왜놈재벌이 오던 날 소녀의 어머니는 집을 못헐겠다고 대들다가 왜놈십장들한테서 뭇매를 맞았다는것이였다. 《그러지 않아도 장 앓아누웠댔시요. 그런걸 구두발로 차고 때리고 했으니 이렇게 될수밖에 더 있소. 우리 조선사람들이 어떻게 해야 이 원쑤를 갚갔소. 어이구 성님! 원통해도 눈을 감수다레. 만사를 다 잊구 고이 잠드소…》 한 아낙네는 가리워놓은 천을 벗기고 녀인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설분했다. 《빨리 가자.》 김성주동지께서는 소녀의 손을 단단히 잡고 언덕을 걸어가시였다. 공장을 짓는다는곳에 이르시니 사처에 철길이 놓이고 큰 건물들이 우뚝우뚝 일어서있다. 사람들이 널렸다. 하삐를 입은 왜놈 십장들이 여기저기서 소리를 지른다. 철길로는 밀차가 흙을 싣고 굴러가고 목도군들이 쩍쩍 뻐개진 돌들을 바줄에 달아매고 비칠거리며 발걸음을 옮긴다. 땅우에서도 세멘트를 이기고 높이 발판을 맨 공중에서도 콩크리트군들이 철판을 왈가당거리고 돌아가며 세멘트를 비빈다. 목도소리, 쇠 두드리는 소리, 악악 고함치는 소리, 공사판은 숨가쁜 혼잡속에서 허덕이고있었다. 한편에서는 집들을 마구 헐어냈다. 무슨 공장을 세우는지 왜놈들이 한동네, 두동네 밀어낸다. 먼지가 뽀얀속에서 지붕을 헐어내리고 벽을 치고 한다. 이쪽에서도 저쪽에서도 토벽이 와륵와륵 무너져내린다. 연목의 대못을 뽑느라고 땅땅 메로 치기도 한다. 개울가에는 숱한 돌가마들이 걸리고 이사짐들이 여기저기 더미로 쌓였다. 농짝, 질그릇들, 이불보퉁이들, 헌 궤짝과 독들… 갈 길을 잃은 가난, 가난이 그저 툭 터져나온것만 같다. 어느 얼굴에나 모두 울분의 빛이 덮여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아직 림시 거처할곳도 마련하지 못한 사람들이다. 불볕은 왜 이리도 지글지글 태우는가? 머리가 파뿌리같은 한 할머니가 돌가마에 남비를 올려놓고 앉아서 무얼 끓이는지 자꾸 부채질을 한다. 머리와 잔등우에 재티가 하얗게 덮인다. 파란빛 남비, 그 남비속에는 또 무엇이 담겨있는가. 떠나가는 사람들도 많다. 달구지에 이사짐을 싣고 떠나는 사람, 지게에 지고 떠나는 사람, 머리에 이고 가는 아낙네, 긴 사람사태가 길이 메여 뽑혀나간다. 누구 하나 웃지도 않고 울지도 않는다. 어데를 찾아보아도 소녀의 아버지는 없었다. 밀차를 미는데도 없고 남포질을 하는데도 없다. 소녀는 십장놈들이 왝왝소리를 지르는바람에 공포에 질려 곁에 붙어서서 걸으며 손을 놓지 않는다. 《얘 무서워하지 말아, 넌 어느 나라 사람이지?》 갑자기 왜 그런것을 묻느냐는듯이 소녀는 빤히 올려다본다. 할금할금 쳐다보는 약삭바른 눈치- 그 눈길에는 벌써 너무나 일찌기 너무나 큰 슬픔과 너무나 큰 의문을 담았다. 《네가 어느 나라 사람인가 대답해봐.》 《조선사람이지뭐…》 《그렇지, 조선사람이지. 조선사람이구말구… 그러니 겁낼것 없다. 이것은 우리 땅이다.》 무엇때문에 그런것을 묻고 그런 말을 했던가? 아마도 자신에게 스스로 묻고 스스로 다짐하는 말이였던지 모른다. 한곳에 이르시니 깊이 파올린 웅뎅이가 길게 뻗어나갔다. 아찔하게 내려다보이는 웅뎅이에 지하수가 차서 모터가 두대나 놓여 통탕거리며 물을 푸고있다. 웅뎅이속에는 웃통 벗은 로동자들이 수없이 늘어서있다. 꼭 어느 그림에서 본 지옥속같은 정경이였다. 물은 아무리 퍼내여도 줄지 않는 모양인지 로동자들은 그냥 물속에 들어서서 흙을 파올렸다. 흙이 땅우로 올라오려면 세번 당반진곳을 거쳐야 하는데 그 당반진 비탈에도 웃통 벗은 로동자들이 가뜩 붙어있었다. 파올리는 흙은 자꾸 팥죽처럼 미끄러져내렸다. 로동자들은 그 미끄러지는것을 다시 퍼서 우로 철썩철썩 올려던지였다. 소녀는 여기서 아버지를 찾았다. 《아버지.》 소녀가 아버지를 부르자 웅뎅이 물창에서 일하던 로동자들이 일제히 얼굴을 들었다. 더부룩한 머리들, 옻칠을 한것 같은 시꺼먼 얼굴들, 얼굴에서도 벗은 등어리에서도 땀이 주룩주룩 쏟아져내리며 해빛에 번들거린다. 한 로동자가 절벅절벅 물소리를 내며 이편으로 걸어온다. 두어깨가 쩍 벌어지고 동가슴이 솟아나온, 나이를 대중할수 없는 사람이였다. 그는 걸어오다가 우뚝 멈춰섰다. 《엄마가 죽었어요, 아버지-》 소녀는 울며 부르짖었다. 아버지는 대꾸가 없이 얼굴이 까맣게 되여 쳐다보기만 했다. 그러더니 이어 물가로 나와서 미끄러운 비탈로 올라왔다. 비탈에 붙어선 로동자들이 서로 손을 내밀어 미끄러져내려가는 그를 붙잡아올렸다. 비탈을 올라온 소녀의 아버지는 충혈이 된 눈으로 딸을 잠간 보더니 이어 흙덩이우에 앉았다. 얼굴에서도 잔등에서도 땀이 미끄러져내렸다. 《우지 말아, 운다고 죽은 엄마 살아나겠니?》 소녀의 아버지는 땅이 꺼지는 한숨과 함께 한마디 중얼거렸다. 그래도 소녀는 발을 굴러치며 흐느껴울었다. 《아버진 엄마가 불쌍하지 않아?》 《불쌍하지, 그렇게 아득바득 살아보겠다던것이…》 소녀의 아버지는 두눈을 슴벅슴벅했다.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것이 부르르한 수염사이로 굴러내렸다. 맞은편 언덕에서 콩잎같은 모자를 쓴 왜놈십장이 반벙어리 조선말로 일은 안하고 무얼하느냐고 고함을 쳤다. 소녀의 아버지는 십장놈의 소리는 들은체도 않고 딸을 달래였다. 《들어가라, 내 이따가 땡땡이종을 치면 들어가마.》 얼마후에야 소녀의 아버지는 흙덩이우에서 일어섰다. 그는 술에 취한것 같이 비척이며 비탈로 한걸음한걸음 미끄러져내려갔다. 소녀는 뜨거운 해빛이 내리지지는 언덕우에 앉아 종을 칠 때까지 기다릴 차비를 했다. 《오빠는 가세요. 참 고마와요.》 《응, 난 가겠다. 그런데 네가 여기서 어떻게 기다리겠니?》 《괜찮아요.》 이 약삭바른 소녀에게 무슨 말을 더 남기고 헤여져야 할지 알수가 없었다. 다만 그 괴롭던 순간에 책을 사려던 은전 두잎이 그대로 남아있다는 생각이 떠오른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이였던가. 할아버지의 땀이 배인 그 은전 두잎을 손에 쥐여주시니 소녀는 품에 와락 달려들며 울었다. 소녀와 함께 울고싶었다. 내 주머니에는 왜 이것밖에 없는가? 소녀를 위하여, 그의 아버지를 위하여 좀더 큰것을, 보다 근본적인 큰것을 안겨줄수는 없는가? 소녀와 갈라지니 집으로 돌아가실 생각도 없었다. 그래서 발길 가는대로 성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던가! 그날 하루 평양성안을 돌고돌며 아픈 마음을 달래노라 얼마나 애썼던가! 왜색이 짙은 거리에서, 버들 푸른 대동강가에서 울분을 눌러가며 그 불쌍한 사람들을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아, 정녕 잊혀지지 않는다. 은전 두잎을 손에 쥐고 울던 소녀, 조그마한 머리태, 깡뚱한 치마… 그 가련하고 처량한 육체가 지금 나물바구니를 붙안고 맨발바람으로 서있는 장두촌의 이 불쌍한 청숙이로 변신한것은 아닌지… 김성주동지께서는 다섯해전 그날 토성랑에서처럼 또 본능적으로 주머니에 손을 가져가시였다. 하지만 소녀의 눈물을 자아내던 그날의 그런 은전이 그이의 수중에는 없었다. 어머님께서 보내주신 10원은 월사금을 내고 신동호네 조카애들에게 신발을 사주시고나니 다 소비되였다. 다문 일원이라도 있다면 청숙이의 손에 쥐여줄수 있으련만. 어떻게 할가? 어떻게 하면 이 아픈 마음을 조금이라도 가라앉힐수 있을가? 그이의 발길은 사립문앞에서 좀처럼 떨어질줄 몰랐다. 정말 이대로는 길림으로 돌아갈것 같지 못하시였다. 《청숙아, 랭수 한바가지를 좀 떠다주겠니?》 그이께서는 이런 청을 하시며 뜨락으로 들어가 토방우에 걸터앉으시였다.
4
다음날 김혁은 자전거를 타고 신안툰으로 향하였다. 며칠전까지 도보로 뻔질나게 왕래하던 길이여서 이번 걸음은 사뭇 흥그러웠다. 마을에 들어서자 그는 차광수가 있는 학교로 직발 자전거를 몰고갔다. 일요일이지만 《덜렁광창》이 꼭 학교에 나와있을것이라는 타산을 했기때문이였다. 텅빈 운동장을 대각으로 꿰질러 교원실 창문앞에까지 바싹 다가갔다. 그리고는 자전거종을 연거퍼 세번 울리였다. 차광수가 문을 열고 내다볼 때까지 안장우에 그냥 앉아 다리를 흔들거리며 기다리는 재미도 여간아닌것이다. 미닫이식으로 된 교원실 창문이 정말 벌컥 열리였다. 예상했던 차광수가 아니라 산수와 주산을 가르친다는 리선생이 관지뼈가 류달리 두드러진 얼굴을 문밖으로 불쑥 내밀었다. 《아, 김혁선생이요! 어서 들어오우.》 리선생은 반색을 하며 창턱에 팔굽을 얹었다. 김혁은 자전거에서 내려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는 그의 어깨너머로 교원실안을 들여다보았다. 차광수가 없는 사무실은 여느때보다 별스럽게 휑뎅그레해보였다. 리선생의 책상우에 놓여있는 그리다만 괘도들과 필묵도구들이 김혁의 눈을 잠시 끌어당기였다. 《일요일인데도 쉬지 않고 수고를 하십니다.》 김혁의 인사 한마디에 리선생은 점직한듯 머리를 긁적거리였다. 《길림선생들의 수고에 비하면야 수고랄게 없지요. 김혁선생만해도 일요일날 이렇게 쉬지 못하고 우리 동네로 오지 않았소.》 《나야 리선생보다 아홉살이나 더 젊었으니까요. 차광수는 어디 갔습니까?》 《아까 이돌이네 집에 간다고 하면서 나갔는데… 오늘은 종일 동네돌이를 할 모양이더군.》 《아, 그래요? 그럼 내 그 친구 만나러 가겠습니다.》 김혁은 뻗침쇠를 발로 툭 차올리고 두손으로 자전거의 조종간을 잡아쥐였다. 리선생은 아수한 표정을 지었다. 《좀 들어와서 이야기나 나누다 가지 않겠소?》 《차광수를 만나보고 또 들리지요. 급히 의논할 일이 있어서…》 《그럼 기다리겠수다.》 리선생의 눈가엔 안도의 빛이 비끼였다. 길림사람만 보면 곧잘 팔소매를 붙잡고 늘어지는 리선생이였다. 어떤 때는 식사대접을 시키면서까지 시국이야기를 뽑아냈다. 그런 방법으로 그는 촌훈장의 협소한 안목을 넓혀나갔다. 잠시후 김혁은 자전거를 끌고 학교운동장을 나섰다. 마을의 졸망구니들 서넛이 그의 뒤를 줄레줄레 따라왔다. 《음악가선생이다!》하고 소리치면서 뛰여오는 아이도 있었다. 김혁이 길흥학교 교실에서 《조선의 노래》를 배워준후부터 신안툰사람들은 그를 《음악가선생》이라고 불렀다. 시인이라고 부르는 청년들도 있었다. 신안툰은 애정과 존경을 가지고 김혁을 대하였다. 혁명의 보습날이 깊숙이 들이박힌 이 타향의 《개간지》에서 그는 난생처음으로 사람다운 대접을 받기 시작한것이다. 통털어 신안툰은 벽계수같이 깨끗하고 청신한 인상을 준다. 사람도, 풍속도, 례의범절도 김성주동무의 심혈로 이루어진 천지개벽이라고 해야 할것이다. 이돌이네 집은 마을의 동쪽끝에 있었다. 수수짚으로 울바자를 두른 함경도식의 초가집이였다. 뜨락에는 마당질을 하다만 콩가지들이 가득 널려있었다. 콩알들이 밖으로 튀여나가지 못하게 이삭을 자른 조짚단들이 또아리모양으로 그 둘레를 빙 둘러막았다. 그우에 두틀의 도리깨가 가지런히 놓여있다. 아마 쉴참인가보다. 차광수는 지금 그 마당 한쪽구석에서 누구인가의 리발을 해주고있었다. 리발보대신 검정보자기를 잔등에 쓴 중년사나이가 수직으로 세운 통나무우에 곰처럼 웅크리고 앉아있었다. 이돌이 아버지였다. 늘 머리가 텁수룩해서 다니더니 오늘은 낡은것, 어지러운것, 케케 묵은것이라면 따라다니면서 갈아번지는 그 천지개벽의 보습이 그 머리에도 날을 박은것이다. 김혁은 사립문밖에 자전거를 세워놓고 소리없이 뜨락으로 들어갔다. 면도질에 열중하고있는 차광수의 일에 지장이 될가봐 일부러 기척을 내지 않고 토방우에 걸터앉았다. 그러나 차광수가 먼저 그를 발견하고 환성을 질렀다. 《어, 김혁이! 자네가 왔군.》 차광수가 일손을 거두려고 하는걸 김혁이 말렸다. 《급한일이 아니니 일을 마저 하게.》 《그럼 거기 앉아서 감상이나 하라구. 또 무슨 멋드러진 시상이 떠오를지 알겠나.》 《면도질 하는 꼴을 보니 과연 시상이 떠오르게도 됐다. 그렇게 칼날을 수직으로 대면 위험하지 않아? 날을 좀 눕히라구.》 《저 친구 제법 아는체하는군.》 차광수는 이렇게 두덜거리면서도 김혁의 말대로 면도날을 비스듬히 눕히였다. 《음악가선생 오셨소?》 등걸처럼 꼿꼿이 앉아 차광수의 서투른 솜씨앞에 덜미를 내대고있던 이돌이 아버지가 목을 약간 오른쪽으로 돌리면서 인사를 했다. 목을 돌려봤대야 김혁의 얼굴이 보일리는 만무하다. 김혁은 정중하게 인사를 받았다. 《네, 그새 편안하셨습니까. 이돌이도 공부를 잘하겠지요?》 《잘하지요. 차선생 손탁에 든 다음부터는 녀석이 건달기가 다 없어졌소.》 《아, 그래요. 이돌이가 참 좋은 선생을 만났구만요.》 《암 좋다뿐이겠소.》 차광수는 물에 적신 수건으로 비누거품이 게발린 면도자리를 씻어주고나서 리발을 끝내였다. 참지로 거죽을 씌운 마분지곽속에 리발도구들을 건사한 다음 그 곽을 토방 한옆에 밀어놓고 김혁을 따라 사립문밖으로 나갔다. 《그동안 더 깊숙이 스며들었구만.》 김혁이 뜨락을 나서자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군중속에 더 깊이 침투되였다는 소리였다. 차광수는 히죽이 웃었다. 《자넨 완전히 이 마을 토배기처럼 보여. 이런 여염집 지붕밑에 세워놔두 튀여나지 않는단말이야.》 《말하자면 토착화과정이 완성돼가는셈이지. 이건 다 성주동무의 덕이야.》 《옳아, 우리가 공산당본부요, 프랑스조계지요, 무슨 로총사무실이요 하는데를 찾아다니고있을 때 성주동문 벌써 자기 식의 방략을 가지고 군중속에 들어갔으니까. 그런데 여보게, 그 리발은 언제 배웠나?》 《요 며칠사이에…》 《누구한테서?》 《스스로 터득했지. 이 마을에서 리발을 하던 사람이 갑자기 북간도로 갔단말일세. 전문리발사는 아니고 농사를 하면서 이따금씩 여가에 마을 남정들과 아이들의 머리를 깎아주던 사람이였지. 마음이 비단같은 어른이더군. 푼전을 모아 마련했다는 그 리발기를 기념으로 동네에 남겨두고 가지 않겠나. 차득만이한테 그걸 인계했더구만. 그런데 득만이란 사람이 농사는 잘 지어두 손재간은 령이더란말이야. 리발을 하는 사람마다 머리칼을 뜯어먹는다고 아부재기를 치네. 그래서 내가 리발기를 넘겨받은거라네. 그러니 나는 두가지 직업을 가진셈일세.》 《초학훈장, 리발사… 그럴듯해.》 《하하하》 《하하하》 김혁은 껄껄거리면서 자전거앞으로 차광수를 데리고 갔다. 차광수는 그 자전거를 보자 김혁의 어깨를 탁 쳤다. 《오늘은 호사를 하면서 왔군.》 《호사는 김혁이 아니라 차광수가 하게 됐네.》 《그건 또 무슨 소린가?》 《차광수가 호사를 하라고 성주동무가 이 자전거를 보내줬단말일세.》 김혁은 자전거뒤꽁무니에서 보자기에 싸가지고온 판플레트들을 꺼내여 차광수에게 넘겨주었다. 그러나 차광수는 그 책들은 보는둥마는둥 눈을 슴뻑거리며 자전거만 쓸어만지였다. 《이보라구, 김혁이. 그게 정말인가?》 그는 안경알너머로 정색해서 김혁을 쳐다보았다. 김혁이도 롱조를 가시고 정색해서 말했다. 《정말일세. 그래서 내가 일부러 여기에 온거야. 자전거를 전달하려구. 왜? 잘 믿어지지 않나?》 《아니, 너무 지나친 대접이 돼서 그러네.》 《성주동무가 자네때문에 걱정이 여간 아니더군. 위탈이 심한 사람이 찬밥을 먹는 때가 많고 또 걸음도 많이 걷는다고 하면서 이 자전거라도 보내야 좀 마음이 가벼워지겠다고 하지 않겠나.》 《한주일에 한두번씩 길림으로 오르내리는게 무슨 고생이라구. 사실 큰 고생이야 성주동무가 하고있지.》 차광수는 감정이 격해지는듯 씩ㅡ 하고 숨을 다부지게 몰아쉬였다. 그러다가 잠잠해졌다. 자전거안장에 손을 얹고 킁킁 코그루를 박으면서 무슨 상념에 잠겨 허공을 쳐다보았다. 이런 순간이 지나간 뒤면 때때로 그의 격정이 분출되군한다는것을 김혁은 잘 알고있었다. 《무엇때문에 이걸 받아가지고 왔나?》 오랜 침묵끝에 차광수는 마치 트집이라도 걸듯 불쑥 이런 말을 내던졌다. 《노클아배의 노여움》이라고 일찌기 김혁이 이름지어붙인 차광수의 흥분이 마침내 발동을 건것이다. 그런 노여움이 발작될 때면 아무도 그에게 부접을 못하였다. 《자네 도대체 지각이 있나?》하고 차광수는 재차 트집을 걸었다. 김혁은 이런 때일수록 엇서지 말고 곰상곰상해야 한다는 묘리를 잘 알고있었다. 《그럼 어쩌겠나. 자네한테 바치는 성주동무의 그 두터운 우정을 마다할수가 있나말이야. 자네가 이렇게 나올줄도 짐작했네만 차마 거절할수가 있어야지.》 《그래도 그렇지, 자넨 성주동무가 매주일 걷는 거리가 얼마인지 셈해본적이 있나?》 《있지, 이번주일만해도 400리를 걸었더군. 하루 평균 60리를 걸으면서 공부도 하고 혁명도 하고…》 김혁은 가슴속에서 뜨거운것이 북받쳐올라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였다. 그자신도 자기가 산출해낸 그 엄청난 수자에 격동과 놀라움을 금할수 없었던것이다. 《안돼, 도루 가져가라구!》 차광수는 손바닥으로 자전거의 안장을 탁 치면서 단호하게 부르짖었다. 상대방이 항변할 틈도 주지 않고 성급히 말을 이었다. 《이 자전거는 내가 아니라 성주동무가 타야 해. 나는 성주동무가 해진 운동화를 신고 넓으나 넓은 이 대륙을 하루도 쉬지 않고 돌아다니는게 마음에 걸려. 얼마나 많은 걸음을 걷는 성주동무인가. 배움을 위해 고향으로 나가던 천리길과 다시 돌아서서 조국을 떠나던 그 천리길은 그만두고라도… 이 만주땅에 와서 걸은 걸음은 또 얼마일텐가. 과연 그 나이때 어느 누가 이처럼 많은 걸음을 걸었는가? 안창호인가? 김찬인가?》 김혁은 묵묵히 그의 말을 듣고있었다. 차광수의 거치른 웨침속에서 꿈틀거리는 진실이 시인의 눈굽을 뜨겁게 하였다. 그는 정말 자기가 너무 무심히 자전거를 받아가지고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차광수는 도로 가져가라고 소리친다. 덜렁이같은 성미인데도 성주동무에 대한 관심만은 극진하다. 우리들중 그 누구와도 비교할수 없으리만큼 높은 차원에서 그는 자기의 지도자를 떠받들고있다. 아 아, 차광수! 나와 한처마밑에서 무정한 이국의 비를 맞으며 기한에 떨던 사나이, 너는 벌써 언제 그런 의리를 배웠느냐, 그런 도덕을 배웠느냐? 차광수는 음성을 낮추었다. 《이것보라구, 김혁이. 우리는 모든 사고의 출발점을 항상 김성주동무한테 두어야 하네. 감자 한알이 생겨도 먼저 김성주동무를 생각하는게 우리의 본분이네. 어떻게 찾아내고 맞이한 김성주인가! 저기 강남공원에서 성주동무를 처음 봤을 때 내가 얼마나 기뻤던지 자네도 아마 상상할수 있을테지. 난 막 노래라도 지어부르고싶은 심정이였네.》 《광수, 그만하라구. 그 감정이야 내가 몰라서? 자네 말대로 도루 가져가겠네.》 《그렇게 해야지. 참 성주동문 장두촌에 가있다지?… 그러니 길림으로 끌고갈 생각 말고 돌아갈 때 타고갈수 있게 곧장 그리로 가져가는게 좋겠네.》 《알겠네.》 김혁은 길흥학교 교실에서 차광수와 함께 김성주동지께서 구상하신 연극의 형상방도를 토의한 다음 더 지체하지 않고 장두촌을 향해 떠났다. 짧은 가을해는 어느덧 서산너머로 저물어가고있었다. 그가 장두촌에 당도한것은 밤중이였다. 자전거를 타고 통과할수 없는 길을 더러 헤매오다나니 시간이 퍼그나 걸렸다. 구름 한점 보이지 않는 하늘중천에는 둥근달이 걸려있었다. 차득만의 안내로 김성주동지의 거처는 어렵지 않게 찾아낼수 있었다. 김성주동지께서는 청숙이네 집 뜨락에 멍석을 펴놓고 거기서 짚신을 삼고계시였다. 사륵사륵하고 짚을 비비는 소리가 사립문밖에서도 들리였다. 이따금씩 신날을 다지는 툭툭소리도 들려왔다. 그이의 길다란 그림자가 뜨락을 반나마 채우고 싸리나무가리를 지나 허청간 지붕에까지 올라갔다. 소슬바람에 울바자의 수수이파리들이 바르르 떨었다. 《어린 청숙이가 가엾어서 길림으로 못돌아가겠다더니 초저녁부터 저렇게 짚신을 삼고있지 않겠나요.》 차득만이 김혁의 귀에 대고 나직이 속삭였다. 김혁은 움직일념을 않고 조각처럼 굳어진 자세로 한참동안 김성주동지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찾아내고 맞이한 김성주인가!》고 부르짖던 차광수의 목소리가 불현듯 귀전에 다시금 살아올랐다. 그 말속에 담긴 깊은 의미가 이 밤 이 오두막앞에서 더 뚜렷이 리해되는것 같았다. 그는 어째서인지 서울 번화가의 어느 한 료정을 문득 회상하였다. 옳바른 스승을 찾아 헤매던 그무렵 김혁은 그 료정앞을 자주 지나다니였다. 불빛이 환한 그 양옥집에서는 밤마다 무슨 주의자들과 운동자들이 모여서 술상을 펼쳐놓고 기염을 뽑아올리였다. 술상앞에서 그들은 독립을 론하고, 혁명을 론하고 동서고금의 세상사를 론하였다. 어떤 때는 서로 술상을 두드리며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기도 하였다. 김혁은 무슨 눈앞이 트이는 소리라도 들리나 하여 창문밑에 파수병처럼 서서 몇십분씩 그들의 횡설수설에 귀를 기울이군하였다. 그러나 그의 정신적주림을 덜어줄만한 가치있는 말은 한마디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 료정에서는 절량농민의 의사가 론의되지 않았고 소년로동의 고통이 론의되지 않았으며 수백만 무산자의 눈과 귀를 멀게 하는 문맹이 론의되지 않았다. 료정에 떠도는 열띤 웨침소리와 공허한 말마디들은 결국 김혁에게 허무만 안겨주었을뿐이였다. 그무렵의 그는 얼마나 큰 절망에 빠져있었던가. 김혁은 고국땅에서 발견하지 못한 진리의 서광을 찾아 상해로 가는 련락선에 몸을 실었다. 돌이켜보면 그 즈음에 벌써 김성주동무는 화전에서 일본제국주의 타도와 조국의 해방을 강령으로 하는 《ㅌ.ㄷ》를 조직한것이다. 그리고 수수한 학생복을 입고 해진 운동화를 기워신으며 인민대중속으로 깊이 스며들어갔다. 김성주, 그에게 있어서 인민은 한낱 혁명의 동력만이 아니였다. 그것은 동력이기전에 이 나라의 젊은이들이 지성과 효성을 다하여 돌봐주고 품어주고 부축해주고 떠밀면서 의를 나눌 살붙이들이였고 목숨까지도 바쳐 지켜주어야 할 사랑하는 부모형제자매들이였다. 인민에 대한 애정은 김성주동무의 천품이다. 김성주동무만큼 인민에게 살틀하고 인민을 리해하는 공산주의자는 이 세상에 없다. 만일 서울의 료정에서 목에 피대를 세우고 무산혁명을 부르짖던 그 사나이들이 이 오두막앞에 와서 짚신을 삼고있는 김성주동무의 모습을 본다면 무어라고 할가. 값눅은 소시민적자선이라고 할가? 그런 자선으로 수백만 인민대중을 언제 구원하겠는가고 할가? 아, 그들에게 소리쳐 웨치고싶고나. 이것이 바로 혁명이라고, 혁명은 이런 식으로 해야 한다고, 공산주의자는 인민이 겪는 고통을 가슴아파하고 그 고통을 가셔주려고 애쓰는데로부터 혁명을 시작한다고, 그러므로 인민을 돌아보지 않는 사람은 진정한 혁명가가 될수 없다고… 김혁은 차득만을 돌려보낸 다음 자전거를 끌고 마당으로 들어갔다. 인기척을 들으신 김성주동지께서 일손을 멈추고 고개를 쳐드시였다. 달빛밑에 우렷이 드러난 김혁의 낯익은 모습을 보자 그이께서는 자리에서 일어나시였다. 《아니, 이 밤중에 김혁이가 웬일이요! 지금쯤은 길림에 돌아갔으리라고 짐작했는데…》 《일이 좀 별나게 됐소.》 김혁은 김성주동지의 손을 잡은채 멍석우에 펄썩 주저앉았다. 김성주동지께서는 삼다만 짚신을 한옆에 밀어놓으시였다. 《저녁식사는 했소?》 《오다가 주막거리에서 국수 한그릇을 사먹었소. 그런데 래일 길림에 돌아가서 학교에 나가야 할 사람이 밤늦도록 이러면 피곤해서 어떻게 공부를 하오?》 《이제는 습관이 돼서 피곤한줄을 모르겠더구만.》 《하루이틀에 하고말 혁명도 아닌데 건강을 좀 돌봐야겠소. 모두들 걱정하는데 동무들의 심정도 알아줘야지 않소!》 《고맙소. 그래, 차광수동무는 어떻게 지내고있소?》 김혁은 차광수의 활동정형과 신안툰의 최근형편을 간단히 이야기하였다. 덧달아 연극의 형상방도를 두고 나눈 토의결과에 대해서도 보고하였다. 그 모든 이야기들은 김성주동지의 기분을 무척 즐겁게 해주었다. 제일 흥미를 가지고 들으신것은 리발이야기인것 같았다. 《차동무가 그새 리발기술을 배웠더란말이지…》 그이께서는 먼 허공으로 시선을 보내며 유쾌하게 뇌이시였다. 그러다가 불시에 눈길을 자전거에로 옮기시였다. 《그런데 자전거는 왜 도루 끌고왔소?》 김혁은 가장 난처한 대목에 이르렀다는것을 깨닫자 한숨을 푹 내쉬였다. 차광수가 력설할 때까지만 해도 그의 주장에 쉽고 공명했었는데 정작 질문을 받고보니 쉽사리 대답이 나가지 않았다. 《도루 돌려보내라고 한 모양이구만? 어떻소, 그렇지 않소?》 김성주동지께서는 대답을 재촉하시였다. 그이께서는 김혁의 침묵뒤에 숨어있는 사태의 진상을 벌써 가늠해보고계시는것 같았다. 《그렇소. 돌려보내라고 했소.》 김혁은 힘들게 입을 열었다. 《자기보다 성주동무한테 더 필요한 자전거라고 하면서 나더러 도대체 지각이 있느냐구 막 윽박지르는게 아니겠소. 가만 생각해보니 그 친구가 날 닦아세울만도 하더란말이요.》 김성주동지께서는 그 소리까지 듣자 못내 서운해하시였다. 《참, 사람두… 남의 성의를 그렇게도 몰라주다니.》 입속말로 이렇게 뇌이시다가 김혁이를 가볍게 나무라시였다. 《차광수도 차광수지만 거기까지 갔다가 자전거를 도루 끌고온단말이요.》 《어쩌겠소. 이가 들지 않는걸.》 김혁은 변명조로 중얼거리였으나 그 어조에는 변명보다 더 강한 자책이 어려있었다. 《아무래도 내가 다시 갔다와야 할가보구만. 발도 발이지만 그 동문 속병때문에 여간 애먹지 않는데… 됐소. 그 이야기는 그만하고 이제는 좀 눈을 붙여야겠소.》 김성주동지께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주섬주섬 일감을 거두시였다. 그리고는 김혁이를 청숙이네 웃방으로 데리고 들어가시였다. 김혁은 인차 잠에 들수 없었다. 하루동안 쌓이고 쌓인 피곤이 그를 내처 새벽까지 자게 할듯하였으나 정작 자리에 누우니 차광수와 김성주동지사이에 맺어진 우정에 대한 생각으로 인차 잠들수 없었다. 그러다가 날이 샐녘에야 깜빡 잠들었던 그는 선뜩한 랭기에 몸을 옹송그리며 눈을 떴다. 맨 처음으로 그의 시야에 비쳐든것은 벽에 걸려있는 세컬레의 짚신이였다. 그중에는 간밤 멍석우에서 삼던것도 있었는데 어느새 그랬는지 깨끗이 마무리되여있었다. 새벽 일찍 일어나 또 일손을 놀리신 모양이였다. 김성주동지께서는 방안에 계시지 않았다. 김혁은 후닥닥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해뜨기전에 자전거를 가지고 다시 차광수한테로 가야겠다는 돌발적인 의식이 그로 하여금 달콤한 새벽잠도 밀어던지고 일어서게 하였다. 뜨락에는 마가을서리가 하얗게 덮여있었다. 《아, 일어났구만. 깨우려던 참인데 마침 잘 됐소.》 어깨에 수건을 걸친 김성주동지께서 사립문을 열고 마당에 들어서고계시였다. 아마 개천에서 세수를 하고 돌아오시는 모양이였다. 그이의 일거일동은 새날을 맞은 지상만물처럼 활력에 넘쳐있었다. 미명의 푸르끼레한 어스름속에서도 그이의 입가에 비낀 미소가 잘 보이였다. 그이께서는 빠른 걸음으로 김혁의 곁에 다가와 그의 눈을 찬찬히 들여다보시였다. 그러더니 안색을 흐리며 잠시 무엇인가를 생각하시였다. 《눈에 피가 졌구만. 잠이 모자라니 할수가 없지.》 김성주동지께서는 김혁이 들릴락말락하게 조용히 말씀하시며 수건을 왼쪽어깨에서 오른쪽어깨에로 천천히 옮기시였다. 김혁은 그이의 충혈된 눈을 마주보며 침울하게 중얼거리였다. 《피가 진건 내 눈만 그런것 같지 않소. 내가 다시 신안툰에 갔다오겠소.》 김성주동지께서는 그 말을 듣자 놀라는 표정을 지으시였다. 《신안툰에?》 《그렇소. 아무래도 내가 일을 잘못 처리한것 같소.》 김혁은 자전거있는데로 성큼성큼 다가가 조종간의 손잡이를 틀어쥐고 안장우에 닁큼 날아올랐다. 그리고는 김성주동지를 돌아보았다. 《그럼 난 떠나겠소.》 김성주동지께서는 손을 들어 그를 제지시키시였다. 《잠간만, 같이 갑시다. 나도 곧 떠나야겠소.》 잠시후 김혁은 김성주동지와 함께 청숙이네 집을 떠났다. 마을은 아직도 정적속에 깊이 잠겨있었다. 그 정적을 깨지 않으려고 그는 자전거를 조심스레 끌었다. 동구밖을 나서 5리가량 지나자 길은 두갈래로 갈라졌다. 한가닥은 길림으로 뻗은것이고 다른 한가닥은 신안툰방향으로 잇닿은것이였다. 김혁은 그 갈림목에 이르자 자전거를 멈춰세우고 김성주동지의 손을 억세게 틀어잡았다. 《나는 자전거를 타고 가니 일없지만 밤을 밝힌 성주동무가 길림까지 걸어가야 하니… 난 마음이 놓이지 않소.》 김성주동지께서는 동트는 새벽하늘을 바라보며 소리없이 웃으시였다. 《어떻게 하겠소, 혁명인데, 우리가 좀 수고를 하고 밤잠을 안자고 뛰여다니면 그만큼 조선혁명이 앞당겨질게 아니요. 혁명이 승리한 다음 실컷 잠도 자고 휴식도 해야지… 정말 나라 잃은 우리 인민들을 생각하면 잠이 오지 않소. 그들을 구원해줄 사람은 이제는 우리들밖에 없소. 김혁동무, 수고하오!》 김혁은 그 말씀에 목이 꽉 메는것을 느끼며 갈린 음성으로 말하였다. 《몸조심하오!》 몇걸음 걷던 김성주동지께서는 걸음을 멈추시고 이쪽을 향해 손을 흔들어보이시였다. 새벽하늘아래 그이의 모습이 거인처럼 우렷이 드러나보이였다. 《성주동무!…》 김혁은 속으로 되뇌이며 마주 손을 흔들었다. 우정과 믿음이 서로 붙안고 한덩어리가 되여 얼크러져 돌아가는 열화같은 순간이 지나자 김혁은 자전거를 타고 쾌속으로 달리였다. 온몸에서 넘쳐나는 힘과 열정이 그에게 놀라운 가속을 주었다. 그는 한참 달리다가 얼핏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곧 갈림길에 서계시는 김성주동지와 눈길이 부딪쳤다. 김성주동지께서는 작별의 악수를 나누던 그 길목에 그냥 서서 김혁을 향해 손을 흔들어주고계셨다. 려명이전의 검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하여 서계시는 그이의 모습은 이 아침따라 유난히도 숭고하고 거룩해보이였다. 그이의 머리우에서는 새별이 보석처럼 빛을 뿌리고있었다. 시간과 더불어 짙어가는 우주의 광명은 그 별에서부터 시작되는것 같았다. (그렇다, 김성주! 그대는 별이다!) 오래전부터 무르익어오던 격정이 마침내 김혁의 마음속에서 우뢰처럼 터져올랐다. 그 격정때문에 그의 심장은 금시 고동을 멈추는듯하였다. 그러나 한번 폭발된 우뢰는 멈추지 않고 더 큰 폭발을 불러왔다. (그대는 무수한 공간과 시간을 뛰여넘으며 우리모두가 찾아낸 혁명의 별, 조선의 별이다!) 김혁은 길굽이를 돌아서자 자전거에서 내리였다. 온 넋을 휘여잡고 파동치는 창조적령감때문에 도무지 걸음을 옮길수가 없었던것이다. 심장은 그 령감을 붙안고 계속 절절하게 속삭이였다. (세계는 조만간에 그 별을 쳐다보게 될것이다. 그 별빛아래서 수난의 조선에 동은 틀것이다.) 한줄기의 예리한 빛발이 번개처럼 김혁의 뇌리를 스치고지나갔다. 김혁은 온몸이 가루가 되여 흩어지는것 같은 창조의 진통을 느끼며 숨을 죽이였다.
조선의 밤하늘에 새별이 솟아 삼천리 강산을 밝게도 비치네
희열과 고통이 동반되는 그 처절한 진통끝에 그의 심장이 뿜어내친 시줄이였다. 김혁은 자기의 피와 넋을 받고 태여난 그 시줄을 입속으로 뇌이며 눈물을 흘리였다. 그다음은 시행과 선률이 한꺼번에 떠올라 엉키여 돌아가는 기적이 일어났다.
짓밟힌 조선에 동은 트리라 이천만 우리 동포 새별을 보네
시줄은 련달이 터져나오고 감정은 계속 승화되였다. 김혁은 점점 커지고 모질어지는 진통속에 심신을 고스란히 내맡기면서 여전히 하늘가의 새별을 우러러보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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