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서《불멸의 력사》 2

        장편소설

 

 

                                     천  세  봉  

 

( 제 18 회 )

 

3

 

공청이 조직된후 김성주동지께서는 리효를 비롯한 여러명의 청년들을 농촌지역으로 파견하시였다.

원대한 계획밑에 리효는 장춘 가까운 카륜으로, 조학봉은 고유수로, 강병선은 다시 화전으로 가게 하시였다.

모두들 희망이 부풀어 파견지역들로 떠났다. 강병선은 김성주동지로부터 《ㅌ.ㄷ》확대문제에 대한 더욱 구체적인 지시를 받았다. 그는 《ㅌ.ㄷ》를 반제청년동맹으로 개칭하며 동맹내의 핵심들을 골라 공청지부를 조직하라는 과업도 받았다. 돈화나 카륜, 고유수로 가는 사람들은 반제청년동맹을 조직하고 맑스ㅡ레닌주의선전에 전력을 다하며 농촌계몽운동에 힘을 기울이라는 과업을 받았다.

혁명은 먼곳으로부터 시작할수 없으며 또한 단숨에 법령으로 강압하듯 광범한 지역을 일시에 자기 발밑에 넣을수도 없다. 가장 가까운 자기 발밑에서부터 시작하되 사람들이 자기 머리, 자기 사고로 깨닫게 만들며 한사람이 열사람을, 열사람이 백사람을, 백사람이 천사람을 교양하는 방법으로 전 가정, 전 부락, 전 사회를 오직 하나의 혁명사상으로 튼튼히 묶어야 한다.

그이께서는 각 지방으로 나가는 사람들에게 사업방법도 상세히 가르쳐주시였다. 나가는 사람들은 갑옷을 떨쳐입고 장검을 품은듯 든든한 마음으로 목적지를 향해 떠났다. 차광수도 힘이 나서 다시 신안툰으로 떠났다. 최봉은 책을 넣은 트렁크들을 마차에 싣고 떠나면서 《혁명의 바다우에 폭풍이 일어난다》라는 가슴벅찬 즉흥시를 읊고는 껄껄 웃었다. 그는 웃을만치 기쁘기도 하였지만 한편 걱정스러운 생각도 없지 않았다. 바야흐로 깃을 치고 날아오른 수리개는 비바람에 부딪치기도 해야 하며 캄캄한 야음을 뚫고 날기도 해야 한다. 그러나 그 모든것이 아무리 고난에 찬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이겨내야 하는것이다.

최봉은 불쑥 김성주동지의 말씀이 떠올랐다.

《주먹이 타는 한이 있어도 홰불은 높이 들어야 한다.》

그는 바로 그렇게 살리라 굳게 결심하였다.

김성주동지께서는 채경이와 함께 성밖까지 나가 최봉이 탄 마차가 사라져가는것을 오래도록 바래주시였다.

《얼마나 기운차고 좋은 동무들이요. 저 동무들이 이제 가는곳마다에 씨앗을 뿌릴것이요. 그러면 가는곳마다에서 혁명의 새싹이 돋아날것이 아니겠소. 생각해보시오. 우리의 앞날이 얼마나 랑만적인가! 하지만…》

다음은 그 싹을 키우기 위한 간고한 투쟁에 대해서 말씀하시려다가 그만두시였다. 그러나 채경은 오히려 그 말씀을 피하시는데서 더 강한 뜻을 느끼였다.

한편 카륜과 고유수로 가는 리효와 조학봉은 장춘행렬차를 타려고 정거장으로 나왔다.

고유수로 이사를 가는 강보배네 가족도 차를 타려고 나와있었다. 역구내에는 보배를 리별하는 녀학생들이 가뜩 늘어서있다. 경주와 오순희가 보배를 붙잡고 놓지 않았다.

《보배야, 우지 말어. 우리가 혁명을 하는데야 길림이면 어떻구 고유수면 어떠냐? 그저 우리가 이렇게 자주 만나서 얼굴을 볼수 없달뿐이지 무엇이 다르냐? 아무쪼록 어제밤 김성주동지께서 하신 말씀을 명심하고 고유수에 가서두 조학봉동무랑 함께 투쟁을 잘해…》

경주가 타일렀다. 보배는 꼭 그러겠노라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보배의 아버지는 농토를 얻기 위해서 여러 지방으로 돌아다니다가 고유수에 가서 농토를 얻었다. 아니, 농토가 아니라 논을 풀 버들판을 얻었다. 그래서 금년가을부터 이어 개간에 착수하려고 부랴부랴 길림으로 돌아와 가족을 데리고 떠나는것이였다.

리효와 조학봉은 보배네 이사짐을 기차에 들어올리였다. 보배의 어린 남동생들도 닁큼닁큼 안아올려서 차에 태웠다. 매점으로 가서 사탕도 사다가 아이들에게 한봉지씩 안겨주었다.

《너희는 먹어라, 울고불고하는 누나는 어서 울라고 내버려두고… 너희는 먹는게 땅이다.》

리효는 아이들의 입에 알사탕을 한알씩 밀어넣어주며 말했다.

보배네 식구들도 기차에 올랐다.

녀학생들이 승강대밑에 진을 치고 섰다. 그런데 이때 박두학이 주먹을 쥐고 긴 다리로 역구내에 뛰여나왔다. 그는 녀학생들이 서있지 않는 다른 승강대로 가서 손잡이를 잡더니 껑충 뛰여올랐다. 이 찰나에 기차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기차가 떠나감에 따라 보배를 배웅하는 녀학생들이 박두학이 서있는 승강대밑으로 지나갔다. 눈물을 씻던 오순희가 박두학을 올려다보며 눈이 둥그래졌다.

박두학은 오순희의 시선을 받자 벙긋 웃으며 땀을 씻던 손수건을 흔들었다.

《이애, 두학동무가 기차에 탔어.》

오순희가 경주에게 소곤거렸다.

《그 동무는 어데로 간대?》

경주는 눈물을 씻으며 대꾸했다.

《아이참, 어데로 가긴 어데로 가? 보배가 떠나니까 따라나와서 탔겠지.》

《뭐, 설마 그렇겠니…》

경주는 그저 대범하게 말했다. 그들도 박두학이 보배를 련모하고있다는것을 알고있었다.

어느날 저녁 오순희는 연구소조에서 돌아오다가 먼저 나온 보배가 골목길에서 박두학이와 마주서서 뭐라고 이야기하고있는것을 띠여보았다. 박두학은 주먹을 들먹거리며 무엇을 한참 이야기하더니 오순희를 보고는 달아나버렸다. 오순희는 얼른 걸어가 그게 박두학이 아니냐고 물었다. 보배는 박두학이라고 대답했다.

《무슨 이야길 하더냐?》

강보배는 고개를 떨구며 부끄러워했다. 그러더니 몇걸음 걸어가다가 대꾸했다.

《나를 고유수로 가지 말구 저의 집에 와있으면서 공부하라지 않아.》

《그야 좋은 이야기구나. 그렇지만 네가 길림에 남아서 공부할바에야 큰아버지네 집에 있지 박동무네 집엘 왜 가겠니?》

《글쎄말이야. 난 정말 박동무주먹이 무서워. 열정은 좋지만…》

보배는 낯을 붉히며 말했다. 오순희는 보배의 말이 우스워 바스라지게 웃었다. 이래서 둘의 관계가 심상치 않다는것을 알게 된것이였다.

기차는 흰 연기를 뿜어올리며 저물어가는 들판을 달리였다. 해빛이 떨어진 들판의 한끝에서 누런 기운이 그물그물 움직이더니 그것이 차츰 들판전체를 덮으며 모든것을 아늑하고 가깝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무언가 서글픈 향수같은 감정을 느끼며 차창에 덮이는 대륙의 황혼을 내다보고있었다.

박두학이와 보배는 달리는 기차의 승강대우에서 만났다. 박두학은 정말 큰 주먹안에 닭알만한 보배의 작은 손을 거머쥐였다.

《보배동무, 나를 절대로 나쁘게 생각하지 마오. 난 보배동무를 혁명동지로 생각하고있소. 그야말로 가장 가까운 혁명동지로말이요. 세상에 혁명동지이상의 가까운 사이가 또 어데 있겠소.》

박두학은 주먹을 떨면서 말했다. 기차가 왈칵 진동하는바람에 보배가 박두학의 편으로 쏠리였다. 그러자 박두학은 얼른 보배를 저쯤 밀어세우며 어깨를 잡아주었다.

《고유수에 가면 인차 편지를 해주오. 만약 고유수에 있을수 없다면 나한테 솔직한 사연을 적어서 보내주오. 내 그러면 보배동무를 데리러 가겠소. 정말 데리러 가겠소. 난 조학봉동무에겐 아무 이야기도 안했소. 아무리 동지간이지만 보배동무와의 관계를 이야기한다는것이 좀 거북하기도 해서… 난 정말 내곁에 보배동무만 있다면… 보배동무, 난 이 말을 하자고 기차에 올랐소. 난 이 역에서 내려야 하겠소.》

그는 정말 기차가 정거하는 조그만 역에서 허둥지둥 승강대를 내렸다. 어둠속에서 보배의 손을 또 한번 바스라지게 쥐였다놓는다. 보배가 따라내려서려 하자 그는 기차가 떠난다고 하면서 떠밀어올렸다. 기차는 이어 기적을 울리며 떠나갔다.

리효와 조학봉은 지금 보배의 남동생들을 무릎우에 하나씩 올려놓고 앉아 노래를 가르쳤다. 둘이 합창하고 애들이 받아서 불렀다. 노래는 《참새야 참새야》 하는 동요인데 젊은 사람 둘이 비린 목청을 내서 합창을 하는것도 가관이지만 리효의 무릎에 앉은 애는 조학봉의 귀밀눈을 쳐다보고 조학봉의 무릎에 앉은 애는 리효의 늘씬한 거위목을 쳐다보며 합창하는것이 더욱 가관이였다. 보배네 가족은 물론이지만 차안 사람들이 모두 여기에 이목을 집중했다.

 

내 어머니 내 아버지 기다리고있어요

내 어머니 내 아버지 기다리고있어요

잘 가시오, 여러 동무 짹짹짹

갈 가시오, 여러 동무 짹짹짹

 

애들은 입을 오그리고 부르는것이 정말 참새들같다. 그런데 조학봉의 무릎에 앉은 동생애는 혀가 잘 붙었다 떨어지지 않아서 그러는지 짹짹짹 하는것이 책책책 하고 불렀다. 사람들은 그게 더 우스워서 무릎을 쳤다.

차안에서는 계속 웃음소리가 터져올랐다. 사람들은 아예 자리를 차고 일어나 리효네 좌석 주위로 몰려와 빙 둘러섰다. 그런속에서 어른들의 노래소리, 애들의 노래소리가 울려나왔다. 마지막에는 리효가 애들에게 손목을 깐닥깐닥하며 춤을 가르쳤다. 그러자 애 둘이 무릎에서 얼른 내려서더니 바지괴춤을 춰올리고나서 두손목들을 깐닥깐닥하며 춤을 췄다. 주위에선 또 웃음이 터졌다. 손벽을 치는 손님들도 있었다.

기차는 쿵당쿵당 장단을 치며 달리고있다. 대륙의 어둠이 뒤로뒤로 흘러가고있다. 가끔 기적소리가 들려온다. 애들도 잠이 들고 리효며 조학봉이도 자리에 기대 잠이 들었다. 벌써 조학봉은 무슨 꿈나라를 헤매고있는지 그 색시입같이 조그만 입이 새물새물 웃고있다. 보배는 무언지 모르게 눈물이 핑그르르해졌다.

(저 어린아이들 같이 소박한 사람들이 바로 사회를 개혁하려는 맑스주의자들이 아닌가! 어떻게 그처럼 소꿉장난하는 시절같이 천진할수가 있을가!)

그는 잠들지 못하고 다시 승강대로 나왔다. 어둠이 둘러싸며 찬 바람이 휙휙 지나갔다. 아직 갈리인 차가 없으니 박두학이 그 조그만 정거장의 어둠속에서 기차를 기다리고있을것이다. 그는 뭉클한 정을 이겨낼수가 없어서 승강대의 손잡이를 쥐고 나직이 한숨을 쉬였다.

 

4

 

청년들을 각 지역들로 파견하고나신 김성주동지께서는 자신께서도 직접 길림주변의 한 농촌을 맡아가지고 나가시였다. 그이께서 나가신 동네는 룡담산앞에 있는 장두촌이란 동네였다. 장두촌은 《정의부》계통의 독립군들이 들락날락했으나 학교도 하나 없었다. 상투를 튼 한 학자가 어린애들을 댓명 데리고 앉아서 《천자》와 《무제시》를 가르친다고 했다. 조직이란것은 독립군들이 와서 만들어놓은 청년단체가 하나 있는데 하는 일이란 없고 공동경작을 해서 축적해놓은 기금이 얼마간 있어서 청년들이 그것때문에 조직에 붙어있는 형편이라고 했다.

언젠가 그이께서는 차득보네 집에 가시였다가 그의 사촌동생인 차득만을 만나신적이 있었다. 차득보같이 몸이 튼튼하게 생긴 청년인데 장두촌에서 농사를 짓는다고 했다. 차득보는 그를 이름 석자도 쓸줄 모르는 무식쟁이라고 하면서 장두촌에는 맑스ㅡ레닌주의연구소조나 반제청년동맹을 내올수 없는가고 물었다.

《왜 내올수 없겠습니까. 로동계급도 맑스ㅡ레닌주의를 배우고 농민도 맑스ㅡ레닌주의를 배워야 합니다. 그래서 로동자, 농민이 서로 손을 맞잡구 혁명을 해야 합니다.》

그이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차득만은 빙그레 웃었다.

이날 김성주동지께서 차득보네 집을 나오실 때 차득만은 절을 굽석하며 그이께 장두촌으로 나와주시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나가구말구요. 내 꼭 나가겠소. 다음주 토요일날 저녁에 나가도록 하겠소.》

김성주동지께서는 득만의 청을 시원하게 받아주시였다.

그이께서는 바로 약속하신 그날 저녁때 길림을 떠나시였다. 30여리 되는 길이였지만 어찌나 걸음을 다우치셨는지 장두촌에 들어서신것은 아직 밤이 들기전이였다.

득만네 집은 버드나무 대여섯그루 서있는 늪앞에 있었다. 방안에서는 청년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려나왔다.

그이께서 주인을 찾으시자 득만이가 맨발로 달려나와 자기 형네 집에서 하던것처럼 절을 굽석했다. 방안에 있던 청년들도 모두 마당으로 나와서 인사들을 하며 웅성거렸다.

그들속에는 신안툰에서 온 정금석이도 섞여있었다. 그는 벌씬벌씬 웃으며 김성주동지의 앞으로 다가와서 인사를 했다.

《저를 아시겠습니까? 신안툰 정금석입니다.》

《아 알다뿐이요. 정동무가 어떻게 되여 여기를 왔소?》

그이께서는 정금석의 손을 굳게 잡으며 물으시였다.

《제 외조부의 상고가 있어서 왔댔습니다.》

《아, 불상사가 있었구만.》

그이께서는 키가 크고 눈이 검실검실한 정금석의 얼굴을 바라보시였다. 월파들의 영향밑에서 들떠돌아가던 그가 반제청년동맹원이 되여 열성적으로 투쟁한다니 몹시 흐뭇한 생각이 드시였다.

《차광수동무는 잘 있소?》

《예, 요즘은 기운이 우쩍 돋아서 잠은 통 잊고 뛰여다닙니다.》

《그렇게 무리하다가 앓지나 않겠는지 모르겠소. 자, 그럼 어서 들어갑시다.》

김성주동지께서는 청년들과 함께 방안으로 들어가시였다.

10여명의 청년들이 무르팍들을 오그리고 들어앉았다. 사이문설주에 등반을 달고 접시를 놓았는데 접시가장자리에 일어선 불꽃이 꼭 바늘귀만했다. 그런것이 누가 앉았다 일어만서도 희촌거리며 떨었다. 사람들의 얼굴이 모두 수수떡빛처럼 뵈였다.

득만이가 새 권연갑을 테서 김성주동지앞에 내놓았다.

《나는 담배를 피울줄 모릅니다. 필줄 아는 동무들이 피십시오.》

그이께서는 담배갑을 청년들앞으로 밀어내놓으시였다.

득만이는 김성주동지께서 나오겠다고 약속하신 날이기에 청년들을 자기 집으로 모이게 하는 한편 어머니, 아버지에게는 길림에서 혁명가가 나오시니까 청년들이 모여서 하는 이야기에 참견을 들지 말라고 미리 단속도 해두었었다.

지금 정지방에서는 그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앉아서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고있다.

《령감, 혁명가란건 독립군과 다른거요?》

《다르다우. 독립군보다 좀 높은가봅디다.》

《그래 인제 온 젊은 사람이 독립군보다 높단말이요? 아주 젊은분인데…》

《모르는 소리 하지두 마오. 저 사람이 길림에 오자 길림바닥이 술렁술렁 끓어번지는데 대단하다우. 우리 조선도 이제 곧 독립이 된다나봅디다.》

득만의 아버지는 신중한 낯빛으로 이렇게 말하며 담배를 뻐끔뻐끔 빨았다.

《하기는 인품이 여간 의젓하지 않구려.》

마누라는 문짬으로 웃방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김성주동지께서는 청년들을 돌아보며 왜 등불을 켜놓고 귀중한 시간을 그냥 보내느냐고 물으시였다. 청년들은 아무 대답이 없었다. 그저 그이의 얼굴만 열심히 쳐다보았다. 정금석은 벙긋벙긋 웃으며 청년들을 돌아보았다. 그는 아직 이 마을 청년들에게 신안툰에서 벌어진 혁명운동이야기를 하지 않았는데 김성주동지께서 오시고보니 그 이야기를 하고싶어서 가슴이 널뛰듯하였다.

《여긴 야학두 없습니까?》

《없답니다.》

정금석이 불쑥 대답했다.

《학교두 없구요?》

《네!》

《그럼 모두 글을 배우지 못하겠군요. 가르칠만한 사람이 없습니까?》

그래도 청년들은 대답을 못했다.

《사실은 그렇지도 않습니다. 글 아는 청년들이 몇명 있는데도 야학을 열지 않습니다.》

정금석이 또 큰 키를 으쓱하며 말하였다.

《글 아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요?》

《저기 저 친구도 소학교를 나왔습니다.》

정금석은 사이문옆에 앉아있는 청년을 가리켰다. 그러자 그 청년은 머리를 숙이며 공연히 양말목을 잡아당겼다.

《그럼 불씨는 있는셈이군요.》

《그렇습니다. 불씨는 있습니다. 이 동네에서도 불길을 일굴수 있습니다.》

《좋습니다. 우리 한번 일들을 해봅시다. 그래 어디 소학교를 다녔소?》

그이께서는 여전히 양말목을 잡아당기고있는 청년에게 물으시였다.

《길림 가서 소학교를 다녔습니다.》

《지금 농사를 짓소?》

《네.》

그이께서는 청년들에게서 동네사정을 좀더 알아보려고 화제를 돌리시였다.

그제야 청년들도 주눅이 풀려서 이야기를 꺼내였다. 소학교를 나왔다는 한경식이란 청년은 처음에는 수집음을 타는것 같더니 조학봉이 비슷한 연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아주 잘했다. 조학봉이와 다른것은 킁킁 코그루 박는 버릇이였다. 그러나 그것은 말에도 방해를 주지 않고 남이 느끼지 못할 정도로 아주 자연스러웠다. 한경식의 말을 들어보면 장두촌도 득만이가 말한것 같은 그런 무풍지대는 아니였다. 독립군만 들고날고한게 아니라 《고려공청》패거리들도 들고날고하였다. 지금 독립군들이 조직한 청년단체가 있는외에 《고려공청》계렬의 영향을 받고있는 청년들도 몇명 있다고 했다. 그래서 두 계렬의 청년들이 이따금 싸움질도 한다는것이였다.

오늘밤 여기 모인 청년들은 이 계렬도 저 계렬도 아닌 청년들이였다. 득만이는 벌써 한경식과 토의를 하고 이런 청년들만 모이게 한것이였다.

《그래 그 청년들은 지식수준이 어떻습니까?》

《그들도 우리와 같습니다. <고려공청>계렬의 청년 한명이 문광중학을 졸업했고 그외 독립군계렬의 청년들속에 소학졸업생이 두어명 있을뿐입니다. 그리군 다 까막눈입니다.》

《그 사람들은 어떤 일을 합니까?》

《농사말입니까?》

《아니, 어떤 혁명활동을 하는가말입니다.》

《혁명활동이 다 뭡니까? 먹군 놉니다.》

《허허허, 논다?》

그이께서 웃으시는바람에 청년들도 모두 웃었다.

그 이튿날이였다. 그이께서는 군중강연회를 열 계획을 세우시였다.

《오늘밤 군중강연회엔 남녀로소 할것없이 다 모이게 하십시오. 그래도 조선사람이 모여사는 마을인데 동네에 혁명조직도 있고 학교도 있고 학교가 없으면 하다못해 야학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청년들이 있으면서 동네를 이런 몰골로 만들어두어서야 되겠습니까.》

김성주동지께서는 가볍게 청년들을 나무라시면서 군중동원에 신안툰의 정금석이도 껴들라고 지시를 주시였다.

그이께서는 집회장소로 정한 집으로 가셔서 주인과 함께 방안에 있는 멍석 치는 틀이며 고드래돌도 들어내시였다. 다른 방으로 옮겨도 좋을 세간들은 다 옮겨가게 하시였다. 무언가 시렁에도 너저분한것이 많았다. 복신그릇도 두개나 놓여있었다. 시렁의것은 그냥 두라고 하면서 웃으시자 주인도 복신그릇을 보고 웃으시는줄 알고 낯을 붉히였다.

온 동네가 초저녁부터 떠들썩했다. 초학훈장을 하는 박태순령감은 선전을 간 득만이를 붙잡고 앉아서 별별 소리를 다 물었다.

《그래 그 사람이 나이 몇살이나 되던가?》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우리 같은 청년이니까요.》

《말을 잘하던가?》

《말을 잘하시게 안창호도 삼십륙계줄행랑을 놓았지요.》

《이놈, 안창호선생이 감옥에서 고생하시구 나와서 떠나가셨는데 삼십륙계줄행랑이 뭐냐?》

《글쎄 와서 연설을 들어보십시오. 들어보시면 판단이 설게 아닙니까.》

《응, 그 말은 옳다.》

박태순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수염을 내리쓸었다.

동네사람들은 안창호와 리론투쟁을 해서 그를 움쩍 못하게 만든 청년이 왔다는 소리로 들끓었다.

《웅변을 잘하더랍니다. 안창호선생의 연설을 중단시켜놓고는 강남공원에 나가 연설을 하는데 그저 말이 폭포처럼 쏟아지더랍니다.》

《무슨 말인지 연설을 할 때엔 한 10분씩 숨을 안쉰다고들 합디다.》

《숨을 안쉬고야 말을 어떻게 하우?》

《말을 다 하고나서 숨을 쉰다는거지요. 좌우간 대단하더랍니다. 웅변을 냅다 할 때엔 듣는 사람도 가슴이 뛴답니다.》

어쨌든 장두촌에서는 큰 사변이였다. 동네사람들은 해가 떨어지기전부터 집회장소로 모여들었다. 아낙네들, 늙은이들 할것없이 모두 떨어났다. 정금석은 금방 초상을 치른 자기 외삼촌은 물론 초상에 왔던 친척들까지도 다 몰고왔다.

득만이와 한경식은 토방앞에 서서 오는 사람들을 맞아들였다. 여기 정금석이도 끼여서서 어서 들어가라고 손짓을 했다.

《자넨 신안툰사람인데 여기 와서 수고를 하네.》

찾아오는 사람들이 이러면 정금석은 씽긋 웃으며 외켠마을이 장가보내줄지 아느냐고 했다.

어두울무렵에는 삼간방이 툭 터져나갈 지경이였다. 벌써 사이방에서는 김성주동지의 웃음소리가 우렁우렁 울리였다. 그이께서는 로인들과 말씀을 하고계시였다. 어찌 좌담을 잘하시는지 벌써 방안공기를 다 휘여잡으시였다. 박태순령감은 처음에는 젊은 사람이라고 흘금흘금 곁눈질로 보다가 저도 모르는 사이에 그 품속에 풍 빠져들어갔다.

그이께서 《대학》의 격물치지를 말씀하시면서 사물을 통해서 진리를 찾는것은 지식의 련마과정이지만 어디까지나 실천이 포함된 지행합일이 되여야 한다고 하시자 박태순로인은 눈이 둥그래서 쳐다보았다.

(한서도 많이 읽었군. 보통인물이 아니로군.)

아래웃방사람들은 무릎들을 오그리고 앉아서 김성주동지의 얼굴에 시선을 집중했다.

그들은 지금 자기들이 강연회장에 앉아있다는것도 까맣게 잊고있었다. 안창호를 꼼짝 못하게 한 청년이 바로 이분이란 생각도 잊어버렸다. 그러다가도 피뜩 자기로 돌아와서는 역시 비범한분이 앉아계신다는 생각에 놀라군하였다. 어쨌든 나이는 젊으시지만 그 말씀과 음성과 표정 모든것에서 빚어지고있는것은 큰 륜곽의 원숙성이였다.

정지방에는 아낙네들도 웃방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상수건을 쓴 정금석의 외숙모는 새문앞으로 얼굴을 내밀고 웃방을 올려다보고는 입을 쩍 벌리며 놀래였다.

《아이구, 세상에… 글쎄 새파랗게 젊은 사람이 앉아서 이야길 그렇게도 잘하는군요.》

《몇살이나 됐을것 같수?》

《스무살전일것 같애.》

정금석의 외숙모는 또 한번 상수건을 쓴 머리를 내밀며 올려다보았다. 한참 보다가 그는 삐죽하게 뻗친 상수건꼬리가 남포등갓을 건드리는바람에 찔끔 놀라며 머리를 움츠렸다.

《신안툰 금섹이 말이 옳군. 사람이 범상한 사람이 아니요.》

《아버님께서 조선독립운동을 총섭해서 지도하시던 어른이였다우.》

《글쎄 그럴테지. 아무렴 그런 큰 어른의 자제분이 어련하겠소.》

정지방에서는 마음대로 웃방을 올려다보지도 못하고 이렇게들 수군거렸다.

그러나 이날밤 독립군계렬의 청년들이나 《고려공청》계렬의 청년들은 벌써부터 그이께 제기할 질문들을 생각하면서 구석구석에 웅크리고 앉아있었다.

김성주동지께서는 강연을 시작하시였다. 오늘밤 강연은 군중앞에서 웅변을 하시는것과 같은 격식의 강연은 아니였다.

《동네 여러분들께 드리고싶은 말씀이 있어서 이렇게 모임을 가지게 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일어서서 말씀을 드리는것보다 이렇게 앉아서 격식 없이 여러분들의 의견도 들어가며 말씀을 드리는것이…》

모두들 그러는게 좋겠다고 대답했다. 그이께서는 강연을 하려던 계획을 바꾸고 좌담으로 말씀을 시작하시였다.

3.l운동이후 왜놈들이 소위 《문치주의》를 표방하면서 지금 조선을 어떻게 생지옥으로 만들고있는가 하는것을 구체적으로 말씀하시였다. 그리고 최근 2, 3년간에 그놈들이 발포한 《치안유지법》, 《산미증식15개년계획》, 《조선농회령》, 《산업조합령》, 《토지개량령》 등의 본질이 무엇이라는것을 죽 설명하시였다. 이것이 다 일제가 조선을 도마우에 올려놓고 저희 마음대로 가죽을 발가가고 살을 뜯어가고 피줄을 끊어가려는 흉악한짓이라고 말씀하셨다.

《토지개량령》의 본질은 좀더 자세하게 설명하시였다.

《자, 담배들 피십시오. 오늘밤 이야기를 좀 길게 하려는데 그렇게들 오그리고 앉아서야 견디겠습니까?》

그제야 모두들 옥여세웠던 무릎들을 이짬저짬 굽혀놓으며 담배들을 붙여물었다. 삽시간에 연기가 뽀얗게 찼다.

박태순령감은 담배대가 너무 길어서 앞사람의 머리우로 뻗쳐올렸다.

《그러니 우리 조선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왜놈들이 묶어놓은대로 가만히 앉아서 땅속의 금은보화도 다 파가시오, 농사지은 쌀도 다 가져가시오, 소도 끌어가고 나무도 마음대로 찍어가시오 하겠습니까? 물론 우리 조선사람들이 그렇게 멍청히 앉아있지는 않았습니다. 의병투쟁도 했고 3.l운동도 있었고 독립군투쟁도 있었습니다. 최익현선생 같은분은 늙은 몸으로 의병을 일으켜 싸우다가 대마도에 가서 돌아갔고 류린석선생도 그렇게 싸우다가 만주에 들어와서 돌아갔습니다. 3.l운동때에는 조선민족이 한사람같이 들고일어나 만세를 불렀습니다. 왜놈의 칼에 한손이 떨어지면 다른 한손에 기발을 옮겨쥐고 만세를 불렀고 그 손이 또 떨어지면 기발을 입에 물고 만세를 불렀습니다. 독립군들은 또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습니까? 조선과 만주들판이 붉은 피로 젖어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우리는 독립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싸우긴 싸웠으나 아직 나라는 못찾았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해야 되겠는가, 우린 바로 이런 대목에 서있습니다. 참으로 엄숙한 대목에 서있습니다. 이 대목에서 우리가 새 갑옷과 새 무기, 새 방법을 준비하지 않고 낡은 갑옷과 낡은 무기, 낡은 방법으로 독립운동을 추진시키려고 한다면 우리의 독립운동은 불피코 피는 흘렸으나 독립은 성취하지 못하는 그런 력사를 되풀이할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은 물을 뿌린듯 조용히 앉아서 들었다. 맏웃방구석에 앉아있는 민족주의계렬의 청년들도 최익현, 류린석의 이야기가 나오고 독립군투쟁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바람에 모두들 숙이고 앉았던 얼굴들을 들고 김성주동지를 마주 바라보았다. 사실 그들은 김성주동지께서 강연을 하신다니 김찬이처럼 두드려패는 그런 연설을 하실줄 알았고 또 독립군을 비방할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연설을 듣고보니 인식을 고쳐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이께서는 조선독립을 위한 새 갑옷, 새 무기, 새 방법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제기해놓으시고는 조선사람들이 한사람같이 단결해야 한다는 문제를 꺼내시였다. 단결도 그저 단결이 아니라 가장 어려운 역경일수록 더욱 굳어지는 단결, 철통같은 단결이여야 한다, 로동자는 로동자들로 뭉치고 농민은 농민들로 뭉치고 청년은 청년들로 뭉치고 녀성들은 녀성들로 뭉치고 그래서 그 뭉친 힘들이 다시 큰 덩어리로 뭉쳐서 한마디 구령소리에 이 큰 덩어리가 움씰움씰 밀고나가야 한다.

(연설을 잘하는군. 그렇게 뭉쳐나가기만 하면야 못할 일이 없지.)

방안사람들은 저마다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그이께서 손을 움직이시는것을 바라보았다.

《독립군들이 피를 흘리며 싸우긴 했으나 광범한 조선인민의 힘에 의거하지 못하다보니 아무런 결말도 보지 못했습니다. 몇몇 사람이 닭의 다리같은 권총이나 차고 다니며 원쑤 몇놈 쏴죽이고 들고뛰여서야 어떻게 일본놈을 이기겠습니까?》

그이께서는 화성의숙의 조기영이가 국내에 들어갔다가 비참하게 죽은 이야기를 한참 하시였다.

그때 맏웃방 문앞에 앉아있던, 이런 농촌에서는 어울리지 않게 도수경을 쓴 얼굴 흰 청년이 자리에서 비비적이며 소란을 피웠다. 《고려공청》청년이였다. 방안의 분위기에 눌려 질문을 제기할수가 없는 모양이였다. 득만이는 눈에 독을 올리고 쏘아보았다.

(저따위것들을 언제 가서야 꺾어놓나?)

그는 사촌형네 집에서 철도로동자들의 회의하던 광경을 생각했다. 하나의 시뻘건 불무지같은 인상이였다. 장두촌에도 하루빨리 그런 불무지같은 힘이 나타나 저따위 《고려공청》 멋쟁이들을 없애버렸으면 얼마나 좋으랴싶었다. 그는 몸이 근질거리고 손이 찡찡 울었다.

김성주동지께서는 말씀을 이어나가시였다.

군중이 한덩어리로 뭉치는데는 맹목적으로 뭉쳐서는 안되며 무엇때문에 무엇을 하기 위해 어떻게 뭉쳐야 하는가를 똑똑히 알고 뭉쳐야 하며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우리 나라 글을 배워야 한다.

그이께서는 옛날에 한사람이 글을 몰라서 동생한테서 온 편지를 들고 백리밖 선비를 찾아갔다 온 이야기를 하시였다.

《편지에 쓴 글이 꼭 다섯줄밖엔 안되는데 그것을 몰라서 안팎 2백리를 걸었습니다. 객주집에서 밥 사먹구 자면서… 허허허.》

방안에서는 웃음이 터졌다.

《그래 이런 사람들로써야 무슨 일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꾹 찔러도 모르는 사람들을 가지고 조선독립을 하겠습니까. 우리가 빼앗긴 나라를 찾으려면 열심히 배우고 뭉치구… 그래서 우리의 력사가 어떠니까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된다, 지금 세계형편이 어떠니까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된다, 이런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가지고있는 모든 힘을 떨어내여 큰 힘을 마련할수 있습니다. 그저 아무 리치도 모르고 남이 시키는대로 이걸 저 토방우에 갖다놓소 하면 토방우에 갖다놓고 이걸 저 마루우에 갖다놓소 하면 마루우에 갖다놓고 하는식으로 되여서는 아무 일도 해나갈수 없습니다. 그런데 장두촌어른들이 모두 그럴것 같습니다. 와서 가만히 형편을 보니까, 하하하.》

《그 말은 옳으이…》

박태순로인이 한마디 껴들었다.

《그 말이 옳은데 선생님은 왜 가르치질 않습니까?》

《그 선생이야 가르치지요. 하늘천 따지를…》

《하하하…》

방안사람들은 또 한바탕 웃었다. 인제는 아예 마실방같은 공기로 변했다. 정금석의 외숙모와 한경식의 어머니는 인제는 터놓고 새문앞에 나앉아 김성주동지를 올려다보았다.

《쯧쯧, 어쩜 저렇게 나기두 잘났을가!》

두 녀인은 얼굴을 마주대고 앉아서 혀를 차며 감탄했다. 모두들 마음이 흡족해서 웅성거렸다. 그들은 이렇게 사리를 따져가며 하나하나 알기 쉽게 깨우쳐주는 이야기는 처음 듣는다.

김성주동지께서는 마지막으로 장두촌사람들은 누구나 다 글을 배우고 나라를 찾기 위해 힘써야 한다고 하면서 말씀을 끝내시였다.

강연회를 끝내고 득만이네 집으로 돌아온 청년들은 《고려공청》패거리를 그냥 두어서는 안되겠다고 하면서 웅성거렸다. 여기에 정금석이까지 끼여들어 부축을 했다. 유순한것 같던 득만이가 벼르는것이 만만칠 않았다.

《그래선 못씁니다. 다 포섭하고 깨우쳐줘야 합니다. 배격하는 방법은 힘을 잃는 방법이고 포섭하는 방법은 힘을 얻는 방법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들을 어떻게 옳은 길로 이끄는가 하는데 있습니다.》

김성주동지의 말씀을 듣고나서야 그들은 굽이 숙여졌다.

김성주동지께서는 랭수 한그릇을 청해 마시고나서는 장두촌을 떠나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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