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총서《불멸의 력사》 2 장편소설
천 세 봉
( 제 17 회 )
제 8 장
인터나쇼날의 노래
1
각 학교에서는 반제청년동맹이 조직되기 시작하였다. 기관구로동자들의 조직이 나온 뒤 이어 육문중학교, 문광중학교, 법정학교들에서 조직이 나왔다. 반제청년동맹은 조직시초부터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김성주동지께서는 밤이면 권태일이들과 함께 그의 집 뒤방에서 지하조직들에 내려보낼 선전문을 등사판에 밀어내시였다. 선전문은 다양하게 만드시였는데 기관구조직에 보내는것은 풀어서 여러장으로 만드시였다. 그것은 등사판에 찍지 않고 대부분 김성주동지께서 직접 쓰시였다. 이무렵 어느날 화성의숙에 다니는 《ㅌ.ㄷ》의 핵심 셋이 김성주동지의 편지를 받고 길림으로 올라왔다. 리효, 강병선, 조학봉이들이였다. 김성주동지께서는 학우회의 웅변대회를 지도하려고 리선엽목사네 례배당으로 가시다가 우마항거리에서 그들을 만나시였다. 그이께서는 일일이 인사를 하시고나서 조학봉의 낮은 어깨를 한참이나 잡아흔드시였다. 그리고는 화전소식을 내처 물으시였다. 《그런데 김복남동무와 대용동무는 오지 않소?》 《그 동무들은 그곳 조직때문에 오지 못하고 병선동무가 같이 왔소.》 조학봉의 대답이였다. 그의 눈에서는 물기가 번쩍거리고있었다. 리효도 강병선이도 좋아서 어쩔줄 몰라했다. 《모두들 길림으로 오구싶어한다면서?》 《그거야 더 말할게 있소. 너남없이 길림으로 간다고 우겨서 싱갱이가 이만저만이 아니였소. 그러는걸 리효동무가 겨우 제지시켰소. 다들 진정된 다음 활동지역들을 분담했더랬소. 화성의숙에 오기전에 생활하던 지역으로 가는것을 기본으로 하여 준비되는 차제로 흥경현, 류하현, 장춘현, 이통현, 화전현, 안도현, 통화현, 반석현 같은데 가서 각각 활동하기로 하였소.》 《잘했소. 그렇게 해야만 우리는 <ㅌ.ㄷ>를 결성할 때 내세운 당면과업을 수행할수가 있소. 길림의 <ㅌ.ㄷ>조직도 부근의 농촌지역으로 자꾸 뻗어나가고있소.》 김성주동지께서는 길림에서의 청년운동을 두고 한참동안 이야기를 벌리시였다. 그러다가 그들을 례배당으로 데리고 가시였다. 아예 웅변대회구경까지 시키시려는것이였다. 이날밤 웅변대회는 성황을 이루었다. 학생들만 모여온것이 아니라 리선엽을 비롯한 민족주의자들도 여럿이 구경을 왔다. 제목은 각가지였다. 그러나 어느 제목이고 결론은 다 일제를 타도하자는 곬으로 몰고나갔다. 웅변을 하는 학생마다 박수갈채를 받았다. 리선엽목사가 박수를 제일 많이 쳤다. 《어쨌든 우리 회장이 영웅은 영웅이다. 학우회 회원들을 훈련시켜내는걸 보니…》 리선엽목사는 김성주동지의 활동에 반한 사람이였다. 그는 그이를 절대 사회주의자로는 믿으려 하지 않았다. 사회주의자라니? 어림도 없는 소리지. 사회주의자가 어데 저렇게 인품이 유하고 포옹력이 크게 만사람을 들어일구는가? 사회주의자란 김찬이나 월파 같은 사람들이 사회주의자야. 그는 김성주동지를 사회주의자라고 하는 사람을 보면 사회주의가 어떤것인지도 모르는 무식한 사람이라고 욕설을 했다. 그는 김성주동지께서 웅변에 대한 총평을 하려고 연탁앞으로 나서시자 자세를 고치며 박수를 쳤다. 《여보, 저 령감이 어떤 령감이요?》 리효가 곁에 앉아있는 박두학에게 물었다. 《예수교 목사령감이라오.》 《아니, 목사령감인데 저렇게 박수를 열광적으로 친단말이요?》 《예수교령감이라도 열광적으로 칠만하기에 치는거요.》 《허허, 저런 령감쟁이들까지도 공산주의자로 만들어내는것 같구만.》 《그래서 나쁠게 있소.》 박두학은 씩 웃으며 대꾸했다. 《거 이상한데…》 리효는 리선엽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걀쭉한 얼굴에 밭은 인중을 덮은 수염을 가쯘하게 잘라서 풍모도 그럴듯했다. 어쨌든 화전에서 새로 올라온 사람들의 눈에는 모든것이 놀라와보였다. 그들은 연단에 나가 서신 그이의 얼굴을 우러러보고는 가슴들이 뻐근해졌다. 웅변대회가 필하자 리효들은 김성주동지를 따라서 덕승문 가까운곳에 있는 려관에 가서 들었다. 김성주동지께서는 그들로부터 밤새 화전이야기를 들으시였다. 《ㅌ.ㄷ》는 그동안 리효, 유대용이들의 활동에 의하여 급속히 확대되여갔다. 화성의숙 학생들속에 있는 조직도 커졌고 화전일대의 농촌들에도 여러곳 조직이 들어가박혔다. 모든 공작원들이 지금 물불을 모르고 뛴다는것이였다. 화전일대의 소식을 들으시고난 김성주동지께서는 하나의 큰 문제를 놓고 심각한 사색에 잠기시였다. 지금 광범한 지역에 뿌리를 박기 시작하는 매개 조직들의 실태를 보면 투쟁이 점점 더 적극화되고 어느 조직을 물론하고 앞으로 내달리고있다. 이런 사태에서 무엇이 필요한가? 모든 조직을 이 상태에서 답보시키고있어야 하겠는가. 아니다.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 조직들의 적극화되는 투쟁을 전일적으로 조직화하며 한계단 더 높이 이끌어올려야 한다. 개개로 흩어져 빛을 뿜기 시작하는 보석을 한낌에 끼고 그 보석낌을 이끌어나가는 중추적인 핵이 있어야 한다. 그이께서는 깊이 생각하시던 끝에 전위조직을 내와야 하겠다는 결심을 내리시였다. 강력한 전위조직이 나와서 모든 조직을 통일적으로 지도해야 한다. 통일적인 지도가 보장된다면 모든 조직들이 민활성을 가지고 싸울데서는 싸울줄 알며 피할데서는 피할줄 아는 탄력성을 가진 조직으로 되여 한 목표를 향해 전진할수 있을것이다. 더구나 이러한 전위조직은 일제의 가혹한 탄압과 종파분자들의 분렬책동으로 말미암아 여러 갈래로 뿔뿔이 갈라진 청년운동을 바로잡는데 절실히 필요하다. 지금 《령도권》쟁탈에 눈이 뒤집힌 종파분자들은 청년운동의 통일단결을 파괴하며 처처에서 진정한 공산주의운동의 전진을 저해하고있다. 바로 이러한 참을수 없는 일은 길림과 이 주변에서도 집중적으로 드러나고있다. 바로 이것을 극복하는 길은 우리 혁명에 맞는 전략전술로 무장하고 어떤 역경속에서도 굴할줄 모르는 불사조의 넋을 지닌 새형의 공산주의세대가 이 진부하고 타락한 인간쓰레기들을 밀어제끼고 자기의 전위조직으로서 전체 청년운동을 장악하고 힘있게 밀고나가는 길이다. 그이께서는 이런 전위조직으로서 조선공산주의청년동맹을 구상하시면서 여러날밤 잠을 이루지 못하시였다. 어느날 김성주동지의 하숙에는 권심이 찾아왔다. 권심은 원고를 한보자기 싸들고 들어오면서 몹시 기뻐하였다. 《지적해준대로 론문을 다시 썼소. 이걸 보오. 300매나 되는 론문이요.》 권심은 원고보자기를 두드리며 말했다. 《축하합니다.》 《아니요. 축하는 성주동무가 받아야 하오. 성주동무의 정당한 지적이 아니였다면 이런 론문을 쓸수가 없었을거요. 성주동무의 의견은 정말 옳았소. 이 론문은 내가 쓴 론문중에서 가장 가치있고 무게가 있는 론문으로 되였다고 생각하오. 한번 보아주오. 보고 의견이 있으면 또 손을 대겠소.》 권심은 흥분해서 원고보자기를 자꾸 어루만졌다. 그는 몸이 더 수척해졌다. 흰 얼굴에 눈가장자리는 푸른 기운을 띠였다. 김성주동지께서는 론문원고를 책상우에 받아놓으시며 인차 읽어보겠다고 말씀하시였다. 《구체적으로 봐주오. 그런데 이 론문을 서울의 어느 신문이나 잡지에는 발표하지 못할것 같구만. 이런걸 발표할수도 없거니와 발표했다간 례외없이 페간이나 정간처분을 받을테니까. 아니 페간이나 정간 정도가 아니라 묶여갈수도 있을거요. 이런 론문을 마음대로 찍어서 로동대중속에 뿌리면 얼마나 좋겠소.》 권심은 담배를 피워물며 개탄했다. 이날 김성주동지께서는 권심이와 함께 북산공원으로 산보를 가시였다. 권심은 길림에 와서 처음 북산에 올라간다고 했다. 그는 그만치 원고를 완성한 기쁨에 떠밀린것이였다. 그는 양복저고리를 벗어서 메고 희고 연약한 손에는 단장을 거머쥐고 걸었다. 얼굴에서는 안경이 번쩍거려 생기를 뿜었다. 덕승문을 나서니 북산허리가 바라보였다. 다시 얼마쯤 걸어가니 산기슭에 성안을 무색케 하는 거리가 펼쳐져있다. 그이께서는 권심이와 함께 림천이라 불리우는 조그마한 돌샘옆을 지나 북산으로 오르시였다. 북산에는 묘와 다락, 정자, 무슨 전각 같은것이 여기저기 앉아있다. 무슨 탑같은것도 서있다. 《아, 생이란 고마운것이군. 이 해빛과 맑은 바람이 얼마나 좋소.》 권심은 올라가다가는 우뚝 서서 이런 소리를 했다. 김성주동지께서는 명랑해진 권심을 보니 마음이 기쁘시였다. 이 수척한 사람이 그래도 그 장문의 론문을 완성해냈다. 그것이 조선혁명에 무엇을 어느만치 주겠는가는 젖혀놓고라도 그 정열이야 얼마나 값비싼것인가! 그런데 그의 정열이 움속의 정열이라는데 안타까움이 있다. 그이께서는 권심의 땀기가 도는 옆얼굴을 살펴보며 은근히 한마디 말씀을 건네시였다. 《바깥과 차단된 어두운 방안에서는 도저히 느낄수 없는 정서입니다. 그러기에 인젠 서재에만 앉아있지 말고 적극적으로 실천투쟁에 나서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만 되면 지금 우리가 보는 이 자연의 대지보다도 더 광활한 혁명의 대지를 바라볼수 있을것입니다.》 《옳소. 그러나 그런 행복은 누구에게나 차례지는것이 아니요.》 《왜 그렇게 소극적입니까? 나는 권선생의 정열을 매우 아낍니다. 아끼기때문에 더욱 실천무대를 권고합니다. 리론이 물론 실천을 추동하지요. 리론이 없이 실천이 있을수 없다는것은 압니다. 그러나 실천이 또한 리론을 낳는다는 사실을 몰라서는 안될것입니다.》 《다 중요하지. 그러나 어느 하나를 가지고 활동의 쟁기로 삼을수도 있지 않겠소?》 권심은 손수건으로 이마의 땀기를 씻으며 비탈에서 단장에 힘을 주었다. 김성주동지께서 얼른 손을 내밀며 부축하시였다. 맑은 바람이 떡갈나무잎을 흔들며 불어왔다. 권심은 떡갈나무를 한손으로 짚고 서서 잠간 가쁜숨을 돌리였다. 얼마후 그이께서는 또 권심이와 함께 걸으시였다. 《난 성주동무에게 한가지 묻고싶은게 있소.》 《무슨 말입니까?》 《지금 성주동무는 소년회요, 학우회요, 연구소조요, 반제청년동맹이요 하는 조직들을 광범히 내오고있는데 그 조직들을 앞으로 어떻게 할 작정이요? 어떤 방법으로 어떻게 이끌어나갈 계획이요?》 《난 인제 그 조직들을 통일적으로 지도할수 있는 전위조직을 내오렵니다.》 《어떤 전위조직말이요?》 《공청을 내오려고 합니다.》 《공청?》 《그렇습니다. 혁명의 현실이 그것을 요구하고있습니다.》 김성주동지께서는 확신에 찬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차츰차츰 쌓아올라가는셈이군. 말하자면 전 운동의 형태가 피라미트형으로 된다 그 말이군.》 권심은 이렇게 부르짖었다. 그는 김성주동지의 혁명운동을 다른 모든 운동자들이 하는것과 다르다고는 생각하면서도 대중계몽운동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려니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인제 공청을 조직하고 모든 조직을 령도한다고 하니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공산주의운동이라는것이 명백해진다. (달라! 이 복잡한 시대의 운동무대우에서 어떻게 이처럼 뛰여난 독창적인 길을 걸을수가 있을가?) 권심은 오늘따라 자기의 곁에 큰 산이 그늘을 비끼고있는것 같은 느낌을 이겨낼수가 없었다. 북산우에 오르니 바람은 더욱 시원했다. 성시가 무릎아래 펼쳐지고 푸른 기운이 덮여있는데 어디에선가 단조로운 징소리가 울려왔다. 김성주동지께서는 권심이와 함께 약왕묘라는 전각을 구경하시였다. 집이 웅장하고 현판을 단 정문은 열려있지 않았다. 한옆에 있는 작은 문으로 들어서시니 사면 벽이 텅 빈 루각이 있고 약왕의 사당이 있는 정각은 저쯤 뒤에 솟아있었다. 어느 시대에 지은것인지 추녀의 단청은 빛이 날았으나 조각은 섬세하고 웅장했다. 권심은 단장을 짚고 서서 조각을 하나하나 눈여겨보았다. 몸이 뚱뚱한 묘지기가 나와서 손을 합장하며 인사를 했다. 묘지기를 따라 전각안으로 들어가시니 캄캄하고 적막한 속에 약왕의 초상이 있고 가냘픈 향내가 떠돌았다. 묘지기는 약왕의 력사를 한참 설명했다. 약왕묘 뒤길에는 쑥대머리를 한 점쟁이들이 앉아서 점을 쳤다. 사람들이 발들이밀 틈이 없게 모여 서있다. 《음, 약왕께 빌고나선 점을 치는 모양이군. 모두들 제힘을 믿을 생각은 없는 모양이지…》 권심이 개탄하면서 단장을 옮겨짚었다. 《인간의 불행이 소멸되기전에는 이런 일이 없어지기가 어렵지요.》 《하긴 심각한 문제지.》 《우리 공산주의자들이 인간의 근본문제를 푸는 사명이 없다면 무슨 긍지가 있겠습니까?》 《옳은 말이요.》 바람결에 록음의 향기가 날아와 안겼다. 그것은 어딘가 먼 미래의 기쁜 소식을 싣고 오는것 같은 그런 그윽함을 자아내는것이였다. 권심과의 이야기는 한동안 계속되였다. …권심이 돌아간 다음 청년들의 한떼가 북산마루를 향하여 비탈을 오르고있었다. 낯익은 모습들이였다. 맨앞에 며칠전에 길림으로 올라온 차광수와 김리갑이 서고 그뒤에는 간밤 류하일대에서의 활동정형을 보고하려고 김성주동지를 찾아온 최창걸이와 화전의 리효가 섰다. 김성주동지께서는 그들을 반갑게 맞이하시였다.
2
며칠후 북산에서는 조선공산주의청년동맹을 조직하는 회의가 열리였다. 이 회의에는 길림지구에서 활동하는 반제청년동맹의 책임자들과 김성주동지의 부름을 받고 동남만 각지에서 달려온 청년조직의 책임자들이 참가하였다. 차득보는 한시간전부터 로동자 몇사람을 데리고 북산에 달려와 회의장 주변에다가 빈틈없는 경비감시조직을 하였다. 《여간 중요한 회의가 아닌것만큼 우리 로동계급이 이 회의를 잘 보장해야 하겠소. 망을 보다가 수상한자가 오기만하면 회의장에 약속된 신호를 보내야 하오.》 그는 로동자들을 모아놓고 한참동안 감시요령을 설명하였다. 키가 큰 청년은 아예 직장에서 쓰던 조그만 쇠망치 하나를 꽁무니에 찌르고 왔다. 망을 보다가 경찰이나 정탐군같은것들이 기여들면 그 망치로 제잡담 요정을 낼 잡도리인것 같았다. 맨 처음으로 회의장에 나타난것은 경주와 순희였다. 그들은 오자바람으로 굵은 나무기둥에 등을 대고앉아 책들을 읽기 시작했다. 언뜻 보면 회의에 참가하러 온 처녀들이 아니라 번거로운 시가지의 소란을 피하여 산책온 녀성들같기도 하였다. 그들다음에는 권태일이 리효, 강병선, 조학봉이들을 데리고 나타났다. 그는 차득보에게 화전청년들을 소개하였다. 얼마 안있어 박두학이와 김리갑이 와닿았다. 박두학은 오자바람으로 경주에게 말을 걸었다. 《경주동무는 여전히 열성이구만, 무슨 책이요?》 《<자본론>이예요.》 경주는 얼굴을 붉히며 웃었다. 녀학생의 격에 맞지 않는 책, 너무 어마어마한 책을 읽는다는 느낌이 든듯한 표정이였다. 《음, 좋은 오빠를 가지고있으니까.》 그는 의미있게 고개를 끄덕이고나서 화성의숙시절의 동창생들인 리효, 강병선, 조학봉이들을 경주에게 소개하였다. 소개를 끝내고나서는 깊은 감회에 잠겨 리효에게 화성의숙시절을 상기시켰다. 《리효, 생각나겠지? 국내원정을 갔다가 부상을 당하고 눈물을 흘리며 돌아오던 일이…》 리효는 이전날의 버릇대로 눈을 쪼프리였다. 《그럼, 생각나지 않구.》 《그때 동무는 원정의 실패를 두고 가슴을 치며 통탄했지. 외국류학의 꿈을 꾸며 동요도 하구… 그러다가 그걸 단념하고 <ㅌ.ㄷ>에 가입했댔지. 그날 동무가 읊던 즉흥시가 아직도 귀에 쟁쟁해. 그런데 한해도 못되는 사이에 우리 혁명은 얼마나 멀리 달려왔나. 이제는 그 대오속에 저런 아가씨들까지 뛰여들었으니 혁명의 품이라는게 얼마나 넓은가말이야.》 《그래 정말 감개가 무량해.》 《동문 오늘 화전에서처럼 또 즉흥시를 읊어야 할거야.》 《시를 읊을 사람은 따로 있어. 길림에 진짜 시인이 나타나지 않았나. 나야 엉터리시인인걸.》 《아, 김혁이말인가. 정말 그렇군. 그러면 둘이서 합창시를 하라구. 노래도 둘이서 부르는데 시라고 둘이 못한다는 법이야 없지 않아. 젠장, 에젠 뽀찌에가 둘이면 <인터나쇼날의 노래>도 두개 나올게 아닌가.》 박두학의 우스개에 모두들 웃음을 터뜨렸다. 《동문 그저 여전하구만. 이제는 좀 화전으로 오라구. 동무의 익살이 그리워서 죽을 지경이야.》 리효의 말이였다. 한해전보다 얼굴표정도 진지해지고 몸가짐도 더 세련된 《하이네》였다. 그는 경주의 맞은켠 풀밭에 올방자를 틀고앉아서 박두학이 나누어주는 등사물을 읽었다. 그것은 김성주동지께서 작성하신 공청의 강령과 규약이였다. 미구에 김성주동지께서 최창걸, 차광수, 채경, 김혁이들과 함께 회의장에 도착하시였다. 북산에서는 곧 조선공산주의청년동맹을 창립하는 력사적인 회의가 시작되였다. 김성주동지께서는 낮고 힘있는 음성으로 말씀을 시작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캄캄한 밤에 홰불을 높이 쳐든 시대의 선구자들이 출발을 앞두고 서약을 다지는것과 같은것이 오늘밤의 회의라고 하시면서 회의의 중요성에 대해서 선참 강조하시였다. 누구나 다 첫마디 말씀에서부터 가슴들이 징 울리였다. 《우리는 화전에서 <ㅌ.ㄷ>를 조직하고 우리 혁명이 나갈 길을 규정한 강령을 높이 추켜들었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이 강령을 가슴깊이 아로새기고 혁명을 위해 줄기차게 달려왔습니다. 화전에서, 무송에서, 류하에서, 길림과 길림주변에서 <ㅌ.ㄷ>의 리념을 받아안은 조직들이 수많이 꾸려지고 <ㅌ.ㄷ>의 기발을 들고 전진하는 청년공산주의자들의 대오가 백배해졌습니다. 청년조직들의 급진적장성은 우리의 혁명운동을 전반적으로 확대발전시켰으며 이 운동의 새로운 앙양을 위해 오늘의 정세에 부합되는 새로운 대책, 이 정세에 상응하는 혁신적인 운동방법을 가지지 않을수 없게 하고있습니다. 바로 이 요구를 풀기 위하여 우리는 오늘 조선공산주의청년동맹을 내오려고 하는것입니다.》 그이께서는 잠간 말씀을 끊고 청년들을 돌아보시였다. 누구나 다 머리를 수그리고앉아서 그이의 말씀을 신중히 듣고있었다. 《그럼 새 요구란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의 혁명운동의 중심에 핵을 세우고 그 핵의 확고부동하고 능숙한 지도에 의하여 모든 조직들의 투쟁을 한계단 더 높이 이끌어올려야 되겠다는 그것입니다. 바로 이렇게 해야만 우리는 당면한 혁명운동의 합법칙적요구를 푸는것으로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문제를 해결하는것은 딴 측면으로는 우리의 진정한 공산주의운동의 발전을 저애하는, 걸음마다 부닥치게 되는 종파분자들의 책동을 짓부시고 조선청년운동을 구원하는 길을 열어주게도 되는것입니다. 지금 조선의 청년운동은 정치적야욕에 미쳐날뛰는 종파분자들에 의하여 단결이 파괴되고 사분오렬을 면치 못하고있습니다. 가까운 실례로 우리는 조청산이나 김찬이들이 저들의 <령도권>야욕을 위하여 허황한 리론으로써 청년들의 머리를 어지럽히며 청년운동을 얼마나 짓밟고있는가를 똑똑히 보고있습니다. 우리는 바로 이러한 썩고 부패한 시대의 오물들을 깨끗이 쓸어버리고 새세대의 공산주의핵심으로 이루어지는 전위조직을 가지고 조선청년운동을 구원해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전위조직을 통하여 로동계급의 선진리론과 불굴의 혁명정신을 지니고 전반적조선혁명을 틀어잡고나갈 공산주의새세대들을 더 많이 육성해내야 하겠습니다. 바로 오늘밤 조직하려는 조신공산주의청년동맹은 이와 같이 우리 혁명발전의 객관적요구와 운동자체가 요구하는 필연적산물로 나오게 되는것입니다. 그렇기때문에 나는 오늘밤 조직하는 이 전위조직을 흔히 세상에 있는 다른 그 어떤 맑스주의운동단체들과 혼동해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합니다.》 박두학이와 조학봉이 열심히 기록했다. 박두학이보다 조학봉이 더 속필이다. 그는 김성주동지의 말씀을 거의다 받아적었다. 김혁은 누구보다도 심각한 얼굴빛으로 김성주동지의 말씀을 듣고있었다. 그 말씀의 매 마디마디는 그의 페부를 찌르는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옳습니다. 우리는 조선청년운동을 구원해야 합니다.》 그의 내적흥분은 이런 말로 폭발되였다. 이 말은 그가 걸어온 다난하고 구슬픈 방랑생활의 총화이기도 하였다. 청년들은 일제히 머리를 쳐들고 김혁을 바라보았다. 김혁은 놀라움에 찬 그 시선들을 느끼자 입을 다물고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좌중을 돌아보았다. 그러나 이야기를 계속하라고 눈짓하시는 김성주동지의 기대어린 표정에 눈길이 닿자 용기를 내여 다시 흥분을 터쳤다. 《그럼 제 좀 언권을 빕시다. 청년운동을 구원해야 한다는 말이 났기때문에 제 이야기를 합시다. 저는 일본에 있을 때 조선학생들속에 파벌의 줄이 뻗어들어와 서로 반목질시하며 단합을 이루지 못하는 뼈아픈 일을 수없이 목격했습니다. 그러다가 서울에 와서는 더욱 가슴을 치며 통탄할 일을 목격하지 않으면 안되였습니다.》 김혁은 서울에서 맑스주의를 신봉하는 어느 청년회에 들어가볼가 하다가 그 단체에 들기도전에 바로 엠엘파와 화요파의 줄에 걸려들었다. 그의 집으로 찾아가기만 하면 어떤 때는 도수경을 건 작자가 앉아서 김혁이와 수군수군 이야기를 했고 또 어떤 땐 얼굴이 창백하고 칼날같은 작자가 앉아서 그의 무르팍을 흔들며 무언가를 력설했다. 도수경을 건자는 엠엘파이고 얼굴이 창백한자는 화요파인데 김혁이 대학물까지 먹었다고 서로 자기 파에 이끌어들이지 못해 등이 달아서 뛰여다녔다. 이 두 작자는 다 청년회의 지도부에 앉아서 동상이몽을 하며 서로 타세력을 굽혀넘기려고 오그랑수를 썼다. 그런데 일은 이것으로 끝이 나지 않았다. 두 작자는 청년회에 들지도 않겠다는 김혁이문제를 놓고 대낮에 종로뒤골목에서 차고받는 싸움까지 벌리였다. 그러다가 둘이 다 경찰에 잡혀들어갔다. 그런데 이자들은 류치장에 들어가서도 서로 물고뜯고 하는 싸움을 벌리다가 청년회를 로출시키기까지 했다. 그래서 청년회원들이 거의 다 잡히고 청년회원도 아무것도 아닌 김혁이까지도 잡혀들어갔다. 결국 이 작자들때문에 그래도 일껏 맑스주의기치를 들고 청년운동을 해보겠다고 조직되였던 청년회가 하루아침사이에 쑥밭이 되고말았다. 바로 이런 썩어빠진 더러운 오물들을 혁명운동의 무대우에서 깨끗이 쓸어버리고 새로운 전위조직이 나와서 조선청년운동을 구원해야 되겠다는것은 얼마나 정당한 말씀인가! 이때까지 김성주동지께서 이끄시는 혁명조직들과 그 운동은 종파들의 해독행위와 그로부터 받는 피해를 과감히 조직적으로 극복하며 새롭고 발랄한 길을 개척해왔는데 오늘은 더욱 그 중추를 확고히 세움으로써 저 더러운 종파의 덤불을 완전히 쓸어버릴수 있게 되였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뿌듯해진다. 그는 이 위대한 순간에 자기도 조선공산주의자로서 최고의 행복을 지니고 새롭게 태여난다는 생각이 들며 두눈에 눈물이 괴여올랐다. 김혁은 얼른 차광수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차광수도 그런 감동을 받는지 눈굽에 맑은 이슬이 번쩍거렸다. 김혁의 체험담은 청년운동을 구원해야겠다고 하신 김성주동지의 말씀이 정당하며 절박하다는것을 생활적으로 확증해주었다. 《동무들, 보십시오. 얼마나 쓰라린 체험입니까. 수많은 김혁이들이 지금 그런 곡절을 겪으며 피눈물을 흘리고있습니다. 청년운동을 한계단 비약시켜 혁명전반을 앙양시키려는 우리의 의지는 바로 이런 현실로부터 출발하는것입니다.》 김성주동지께서는 차광수도 류사한 운명의 길을 걸어왔다고 부언하신 다음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공청이 결성됨으로써 우리 운동의 새 기치의 성격과 목적은 더욱 뚜렷해질것이며 우리의 전 운동이 팽팽한 탄력을 가지고 돌진할수 있는 태세를 갖추게 될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명백한 방향과 명백한 전술, 명백한 방법이 필요하며 명백한 혁명의 구호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정열과 지혜, 노력과 땀을 그리고 우리가 혁명을 위하여 바치는 모든것을 혁명의 명백한 리익과 바꾸지 못하는 그러한 방법은 우리의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새로운 로선과 전술, 정확한 방법을 가진 확고부동한 대렬이며 앞서간 그 어느 대렬과도 구별되는 참신하고 순결하고 힘에 넘치는 대렬입니다.》 그이께서는 또 잠간 말씀을 끊으시고 참가자들의 얼굴을 일일이 살펴보시였다. 《동무들! 오늘 세계혁명에 있어서 가장 절박하고 큰 문제의 하나는 식민지민족해방문제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맑스-레닌주의적으로 풀어야 할 시대적요구는 바로 우리의 어깨우에 지워져있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자각한 이상 남이 해줄 때까지 팔짱을 끼고 앉아서 기다려야 하겠습니까? 지금 동방 여러 나라의 착취받고 압박받는 모든 피압박민족들도 이 문제해결을 절실히 요구하고있습니다. 이것은 우리들의 사활적인 문제인 동시에 모든 피압박인민들의 사활적인 문제이기도 합니다. 이런 조건하에서 우리는 무거운 책임감을 가지고 이미 이 문제를 푸는 선구자의 길을 걸을것을 결심하고 화전에서 타도제국주의동맹을 조직하였습니다. <ㅌ.ㄷ>의 강령, 그것은 우리 청년공산주의자들이 승리의 그날까지 들고나가야 할 유일한 투쟁기치이며 목표입니다. 우리가 오늘 조직하는 공산주의청년동맹은 <ㅌ.ㄷ>에 자기의 뿌리를 두고있으며 <ㅌ.ㄷ>의 강령을 자기의 투쟁기치, 투쟁목표로 하는 청년공산주의자들의 전위조직입니다. 우리가 이 조직을 가지고 우리 나라 혁명을 촉진시키며 승리한다는것은 식민지민족해방운동에 기여하는 길이며 나아가서는 세계 혁명승리에 기여하는 길입니다. 이 길은 전인미답의 길이며 난관이 중첩한 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맑스ㅡ레닌주의를 자주적으로 풀어나가며 창조직인 립장을 견지하는 한 반드시 승리의 언덕에 오를수 있다는 긍지와 자부심과 확신을 가질수 있습니다. 그렇기때문에 오늘밤 우리 매개인은 자기자신이 조선혁명의 초병으로서, 세계혁명의 종국적승리를 지향하는 공산주의자로서 어떤 새롭고 중요한 위치에 선다는것을 력사앞에 깊이 자각하고 자기의 붉은 피와 생명을 어데다 어떻게 바쳐야 하겠다는 결심을 새롭게 다져야 하겠습니다.》 회의장의 긴장은 고조에 이르렀다. 높은 숨소리만이 울리는 회의장에서는 젊은이들의 시선이 불꽃을 날리였다. 김성주동지께서는 한참 더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그이의 말씀이 끝나자 차광수가 일어서서 강령과 규약 초안을 랑독했다. 모두들 조용히 들었다. 그들의 심장에는 혁명을 위해서는 생명도 재산도 서슴없이 바친다는 말이 끝없는 자랑과 긍지를 가지고 울려왔다. 자기들이야말로 가장 값있는 인간이라는것을 세계에 선포하는것 같은 새로운 의식에 코허리가 시큰해졌다. 규약까지 다 읽고나자 그제야 모두들 조금씩 자세를 허뜨리였다. 강령과 규약을 거수가결하고나서는 역원들을 선출했다. 역원선거가 끝난 다음에는 간단한 과업들이 분공되였다. 조선공산주의청년동맹의 첫 조직성원들은 무엇인가 숭엄한 감정에 휩싸여 흥분하고있었다. 회의는 인터나쇼날의 노래로 끝났다. 채경이가 굵은 목소리로 노래를 시작하자 모두들 우렁우렁하는 저음으로 따라불렀다.
일어나라 저주로 인맞은 주리고 종된자 세계 우리의 피가 끓어넘쳐 결사전을 하게 하네 …
박두학은 뼈마디가 삐여진 주먹을 지휘봉처럼 휘저으며 노래를 불렀다. 최봉은 시꺼먼 눈섭을 꿈틀꿈틀 움직였다. 그는 마주앉아있는 리효의 둥근 얼굴에 시선을 박고 노래소리를 맞추었다. 리효도 최봉의 얼굴을 마주보며 노래를 불렀다. 다만 노래를 부르지 않는것은 경주뿐이였다. 그는 모로 돌아앉아 옷고름으로 자꾸 눈구석을 찍으며 울었다. 하긴 그가 노래를 안부른다고 어찌 탓하랴. 이 순간 그의 가슴속에는 노래보다도 더 뜨거운 고동이 높뛰며 더운 눈물을 뿌리게 하는데야… 김성주동지께서는 희열이 넘친 감정으로 불타는 눈들을 돌아보시였다. 비록 적은 인원이긴 하였으나 서로서로 손을 잡고 한심장, 한목소리, 한덩어리로 된 혁명의 전위부대! 불로 지져도 타지 않고 깨여지지 않을 강철의 집단, 감옥도 단두대도 두려워하지 않을 강철의 집단, 그런 집단이 바로 이 순간에 태여났다. 가장 참되고 가장 진실하고 가장 위대하고 가강 장엄한것이 이 순간에 고고의 소리를 지르며 탄생하였다. 이리하여 혁명은 하나의 큰 령마루우에 올라섰다. 길림, 그앞서의 화전, 무송에서의 자취들이 아득히 보인다. 《ㅌ.ㄷ》를 내오신 때로부터, 아니 그보다 더 거슬러 압록강을 건느시던 때로부터 자욱자욱 헤쳐오신 험난한 길, 그 길이 오늘의 이 령마루와 잇닿아있다. 그러나 어찌 돌아볼만치 걸어왔다고 하랴! 아직도 가야 할 로정을 두고 볼 때 이것이야말로 첫 걸음이 아닌가! 그이께서는 심장속에서 솟아오르는 뜨거운 목소리로 노래를 따라부르시였다. 망을 보는 기관구청년들도 혀아래소리로 노래를 맞추었다. 그들은 이 노래가 석탄가루같이 시꺼먼 자기들의 생활우에 밝은 빛을 뿌려주고 기쁨과 희망을 가져다줄 노래라는것을 알고있었다. 그러기에 그들은 저마다 목이 메여 이 캄캄한 산마루를 어린애같이 쾅쾅 굴러치며 돌아가고싶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