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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서《불멸의 력사》 2 장편소설
천 세 봉
( 제 16 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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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주동지께서 하숙집으로 돌아오시니 거기서는 또 뜻밖의 일이 벌어져있었다. 신동호네 고향일가가 양조업이 망해서 숱한 식구가 예고도 없이 벼락치듯 길림으로 이사를 해 들어온것이였다. 신동호의 늙은 부모와 아이 셋을 데리고 사는 홀로 된 형수까지 덮씌워 집안이 그야말로 객주집처럼 번잡해졌다. 게다가 이웃까지 모여들어 사람사태가 났다. 벌써 신동호의 아버지는 딸이 사온 술을 량껏 마시고 방안에서 코를 드렁드렁 골고있었다. 신동호는 경황없이 마당 한가운데 서있었다. 오늘 하루동안에 그는 얼굴빛이 새까맣게 탔다. 《자네가 고생을 하게 됐네.》 퇴마루우에 앉아있던 이웃집 주인이 신동호를 쳐다보며 말했다. 《고생이 무슨 고생이겠습니까. 살게 되겠지요.》 《허허허, 살기야 살지. 그러나 이 백사지에서 숱한 식구가 사느라니 여북하겠나?》 신동호는 말없이 슬금슬금 부엌문앞으로 갔다. 그는 거기 가서 또 잠간 섰다가 대문밖으로 다시 나간다. 얼마후 김성주동지께서도 대문밖으로 나오시였다. 신동호는 장작단우에 앉아서 울고있었다. 《울긴 왜 울고있소?》 김성주동지께서 곁으로 다가가 그를 위로해주시였다. 《난 길림을 떠나야겠소.》 얼마후 신동호가 말했다. 《아니, 그건 무슨 소리요?》 《그럼 내 포부를 어떻게 이 고통속에다 매장해버린단말이요.》 《신동무, 저기 좀 조용한데로 갑시다.》 김성주동지께서는 신동호의 팔을 잡아이끄시였다. 정미소 창고옆을 지나 체육장으로 나오시였다. 《여기 좀 앉기요.》 김성주동지께서 먼저 장의자에 앉으시였다. 신동호도 곁에 앉았다. 《그래 신동무, 가면 어디로 갈 작정이요?》 《어디든 가야지. 우리 아버지나 어머니도 이 아들이 성공하는걸 좋아하겠지 여기서 썩고마는걸 좋아하겠소?》 《신동무, 성공이라는건 무엇을 말하는거요? 시를 쓰는것말이요?》 신동호는 말이 없었다. 《무슨 딴 희망이라도 있소? 동무는 전날밤 인제부터는 혁명에 나서겠노라고 굳은 결심을 다지지 않았소. 그런데 벌써 자기가 한 말은 잊어버리구있단말이요? 동무는 지금 자기앞에 부닥친 현실을 놓고 생각을 잘못하고있소. 동무자신이 지금 동무네 가정을 통해서 나라와 민족이 수난을 겪고있다는것을 통절히 느끼고있지 않소. 동무네 가족이 무엇때문에 저런 파산의 운명에 몰려서 이 땅으로 찾아왔겠소? 일제의 침략이 아니였다면 이런 비극이 왜 있겠소. 그런데 동무는 이 비극앞에서 기운이 꺾이여 피해 달아날 작정이요?》 신동호는 머리를 깊이 떨구었다. 《신동무, 내 동무한테 한가지만 묻겠소. 동무자신이 난 조선청년이다, 악독한 일제의 통치밑에 짓밟히고있는 2천만겨레중의 한사람이다, 이렇게 생각해본적이 있소? 이것을 심각히, 정말 심각히 생각해본적이 있느냐말이요?》 신동호는 손수건을 꺼내서 눈물을 씻었다. 《난 진심으로 이야기를 하오. 이때까지 내가 신동무를 충고해오기는 했으나 동무가 단 한번도 이 문제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보지 않는것 같아서 그러오. 말하자면 전날밤 혁명을 하겠다고 맹세한 그것도 바로 이런 심각한 생각을 거쳐 말한것 같지가 않아서 하는말이요.》 신동호는 점점 더 고개를 떨구며 눈물을 씻었다. 《조선청년들은 혁명에서 물러설 권리가 없소. 우리들은 혁명을 하기 위해서 태여난 사람들이라는것을 똑똑히 알아야 하오. 난 동무가 시를 쓰는것을 탓하지 않소. 생활에 발을 든든히 붙이고 혁명적인 사상을 가지고 시를 쓴다면 얼마나 좋겠소. 압박받는 계급을 들어일구고 대오를 더 힘차게 전진시키는 그런 시가 필요하오. 피를 흘리면서도 쓰러지면서도 부를 노래, 다시 일어나 원쑤를 향해 돌진하면서 부를 노래, 그것은 만인을 격동시키고 총칼과 같이 적을 무찌르는 힘으로 될수 있소. 생각해보오. 적들은 우리를 향해 총을 쏘고 짓밟아뭉개구 굶어죽게 하고 살림과 재부를 탕치고 우리의 모든것을 깡그리 빼앗고있는데 그래 신동무는 제몸이 부서져도 이 철천지원쑤들과 싸우겠다는 생각은 못하고 그것을 피해 물러서겠단말이요? 동호동무, 어디 말해보오. 왜 말이 없소?》 신동호는 터져오르는 울음을 참아내지 못하고 소리내여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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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김성주동지께서는 하숙집을 옮기시였다. 봉숙이어머니가 나서서 집을 얻는다, 짐을 옮겨간다 하였다. 그는 김성주동지께서 딴집으로 옮겨가시는것이 안됐다고 몇번이고 이야기를 했다. 그이께서는 저녁 늦게 학교에서 돌아오시여 새 하숙집으로 가시였다. 《어이구, 인제 돌아오나? 어서 들어오게. 내가 낮에 방을 좀 거둬놓는다는것이 그만 이렇게 됐네.》 주인할머니가 걸레로 장판방을 닦으며 말했다. 《할머니, 인제는 할머니 신세를 지게 되였습니다.》 《아니 신세가 무슨 신세인가? 그런데 이사람.》 할머니는 방바닥을 문대다가 얼른 김성주동지를 쳐다보았다. 《무슨 말씀입니까!》 《이 방에서 자네 아버지가 이틀밤 주무셨다네. 이 방이 그런 방이야. 그래서 자네를 이 방에 와있게 했네. 자네 아버지를 보고싶을 때 자네 얼굴을 쳐다보자구. 알겠나?》 할머니는 구리가락지 낀 손으로 방바닥을 다독이며 말했다. 《그게 언제 일입니까?》 《무송으로 이사해오시기전에 길림에 오셨다가 이 방에서 주무셨지. 우리 집 큰사람이 모시고 와서 이틀밤을 쉬셨어. 우리 큰사람은 지금 휘남쪽에 있는데 독립군에서 총을 쏘는덴 이거라네.》 할머니는 엄지손가락을 일궈세워뵈였다. 김성주동지께서는 껄껄 웃으시였다. 아버님께서 주무셨다는 방에 드신 일도 어쩐지 마음에 훈훈하셨고 이 소박한 할머니도 마음에 드시였다. 《자네 아버지는 말씀두 잘하셨어. 그저 나를 앉혀놓구는 밤새 이야길 하셨지. 우리 집이 이렇게 어렵게 살아간다구 걱정하시면서 나라를 찾은 뒤엔 우리같은 집이 먼저 땅두 가지구 잘살게 돼야 한다구 하시질 않겠나? 무슨 말씀인지 조선이 독립되면 땅두 두부모 베듯해서 노나가지는 세상이 돼야 한다구 하데나. 그러니까 우리 집 사람은 그저 좋아서 그런 세상만 되면 농사를 기껏 지어보겠다구 별렀지. 그러면서 나를 오래오래 살다가 조선독립하는것두 보라구 말씀하셨지. 그랬는데 이런 늙은것은 놔두구 그 귀중한 어른이 먼저 가셨어. 세상일이 이렇게 고르지 못할 법이 있나?》 《할머니, 이리 주십시오. 제가 닦겠습니다.》 《어서 닦게.》 할머니는 얼른 걸레를 내밀어놓고는 치마자락을 들어 눈굽을 닦았다. 《할머니, 지금 년세가 얼마나 되십니까?》 《벌써 남의 나일 먹는지 오래지…》 《정말 오래오래 사시다가 조선독립을 보셔야 합니다.》 《암, 보구말구.》 할머니는 얼른 일어서더니 책이 가뜩 들어있는 짐을 힝힝 들어서 방구석에 옮겨놓았다. 기운이 장사였다. 조선독립을 본다는것이 헛말이 아닐것도 같았다. 김성주동지께서 하숙을 옮기셨다는 말을 듣고 채경이오누이가 달려왔다. 조금 있더니 권태일이와 기준이도 왔다. 기준이는 오늘밤에 모임을 가질 준비가 다 되였다고 말했다. 김성주동지께서는 이 모임에서 반제청년동맹을 결성하실 계획이였다. 청년들은 방안이 좁다느니 천장이 낮다느니 하며 웅성거렸다. 채경은 김성주동지께 자기 집에 옮겨가는것이 어떠냐고 물었다. 《원 별소릴 다 하오. 이 방이 어째서 그리로 가겠소.》 그래도 채경은 안정하지 못하고 서성거렸다. 경주도 방안팎을 여기저기 돌아보았다. 그는 자기 오빠의 귀에 대고 무어라고 속삭였다. 채경이 고개를 끄덕거리자 경주는 이어 밖으로 나갔다. 이윽해서 경주는 큰 책궤 하나를 이고 왔다. 《아니, 이건 뭐요?》 《책들을 여기다 넣어야겠어요.》 《허허, 벌써 하숙을 옮겨야 하는걸 그랬군.》 김성주동지께서는 이러면서 웃으시였다. 권태일이며 기준이는 토방과 뜰을 쓸었다. 김성주동지께서는 밖으로 나와 주인집방으로 건너가셨다. 그이께서 들어가시자 할머니가 손목을 끌어당기며 자리를 권했다. 이 집에는 부인들이 3대가 내려앉아있었다. 할머니와 며느리, 또 손자며느리가 있는데 며느리는 머리가 반백이나 된 아낙네였다. 그리고 남정들 3대가 다 독립군에 들어서 싸웠는데 할아버지는 류린석의 휘하에서 싸우다가 전사했고 아들과 손자는 지금 휘남쪽 어느 독립군 중대에 가있다고 했다. 아이들도 조롱조롱한것이 여럿이였다. 그이께서는 아이들을 하나씩 끌어당겨 나이도 물어보시고 이름도 물어보시였다. 애들은 서로 밀치며 그이의 무르팍에 올라앉았다. 채경이오누이는 책궤를 들어다놓고 책을 그속에 옮겨넣기 시작하였다. 《오빠, 이것 보세요. 책장마다 표식을 하셨어요.》 경주는 밖에 나가신 김성주동지께서 들어오시지 않는가 해서 흘끔흘끔 문밖을 내다보며 말했다. 《공부를 여간 열심히 하는줄 아니?》 《맑스나 레닌두 이렇게 공부했겠죠?》 《그럼, 그분들두 다 이렇게 공부를 했겠지. 진리의 탐구과정을 쉽게 걸은 사람이 어데 있겠니?》 오누이는 책을 다 정리하고나서는 방을 쓸고 구석쪽에 책상도 정리해놓았다. 이날밤 김성주동지께서는 송화강가에서 기관구청년들속에 반제청년동맹을 결성해주시고 밤이 늦어서야 하숙집에 돌아오시였다. 주인집할머니가 그때까지 자지 않고있다가 문을 열고 나오며 편지 한장을 전했다. 《아까 오동진선생이 이 편지를 가지고 와서 전해달라고 했네. 무송어머니께서 보내온 편지라고 하면서…》 《할머니, 고맙습니다.》 방안으로 들어오신 김성주동지께서는 책상앞에 앉으셔서 편지를 뜯으시였다. 어머님의 필적을 보시니 무언지 모르게 가슴이 설레며 뭉클한 정을 금하실수 없었다.
마침 길림으로 가는 인편이 있기에 이 편지를 보낸다. 그새 몸성히 지내느냐? 뜻대로 일이 잘되고있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구나. 늘 길림쪽 하늘이 쳐다보이군한다. 나도 건강하고 철주도 건강하다. 철주는 새날소년동맹일을 하느라고 밤낮 동무들과 함께 밀려다니고있다. 어떤 때엔 동무들을 집에 데리고와서 회의도 하고 선전문도 쓰고 그러다간 밤에 또 동무들과 함께 어디로 나가기도 한다. 철주는 네가 떠나간뒤 퍼그나 크고 튼튼해졌다. 늘 형이 보고싶다고 하면서 마당가에 나서서는 길림쪽을 바라보군하지. 만경대의 할아버지, 할머니도 무사하시다고 요즈음 소식이 들어왔다. 그런데 작년에 농사가 흉년이 지고 그런 가위에 지주가 더욱 악착스럽게 굴어서 금년에는 식량고생이 더 막심한가부다. 올여름엔 할아버지와 둘째삼촌이 늘 점심을 건느시고 얼굴빛이 컴컴해서 김을 매고계신단다. 내 마음도 찢어지는것 같이 아프구나. 그저 한시라도 빨리 만경대로 돌아가 할머니, 할아버지를 모시고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내가 가서 모시고있으면 할머니나 할아버지의 짐이 얼마간 가벼워지실수는 있겠지. 그렇지만 나는 나대로 먹은 마음이 있다. 너희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야 하지 않겠니? 네가 화성의숙을 다니다가 돌아와서 소년동맹을 조직하면서 나더러는 부녀회를 조직하여 녀성운동을 시작하라고 했지. 그때 내가 얼마나 기쁜 마음을 가지고 네 말을 가슴속에 새겼는지 아느냐.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혁명의 길에 들어선 아들이 어머니의 손을 잡아이끌며 그 길로 인도한다는것은 얼마나 장하고 자랑스러운 일이냐. 세상에 아무리 자랑이 많다한들 이런 자랑이야 어디 있겠니. 난 그래서 네 말을 좇기로 굳게 마음다졌다. 네가 떠난뒤 이어 일을 시작했는데 어제저녁에는 스물다섯명으로 되는 부녀회를 내왔다. 사실은 내가 오늘 너에게 편지를 쓰는것은 이 부녀회문제때문이다. 회를 내오기는 했으나 무엇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구나. 너의 삼촌은 조직을 자꾸 확장해나가야 한다 하고 철주는 그것도 좋지만 우선 회원들이 녀성해방의 선전사업에 나서야 한다 하고… 내 생각에는 조직을 이끌어나갈 힘도 약한데 자꾸 회원을 늘이는것도 문제이고 또 수준이 낮은 회원들을 선전사업에 나서게 한다는것도 문제라고 생각되는구나. 그래서 부랴부랴 너에게 편지를 쓰게 되였다. 나는 어떻게 하든지 내가 조직한 이 부녀회를 내 어깨우에 떠메고나가며 네 혁명사업에 도움을 주는것으로써 돌아가신 너의 아버지의 뜻을 이으려고 한다. 하루에도 몇번씩 양지촌산등을 올려다보며 내가 무슨 마음을 다지는지 너는 아느냐?
김성주동지께서는 손수건을 꺼내여 눈앞을 닦으시였다. 그러고는 잠간 편지장우에 손을 덮고앉아 생각에 잠기시였다. 얼마후에야 그이께서는 다시 편지를 읽어내려가시였다.
난 너의 아버지한테서 사람이 사람값을 하고 사는 높은 정신과 사상을 배운 사람이다. 생존해계실 때는 그게 무엇을 뜻하는 말씀인지 채 몰랐던 말씀도 인젠 다 리해가 되고 깊이 깨달아진다. 사람이 높은데 올라서면 올라설수록 정신도 맑아지고 눈앞도 넓어지는가보다. 내가 깨달은 리치는 사람이란 누구나 다 높은데 올라서서 큰일을 위해 살아야만 사람으로 산 값을 한다는것이다. 너의 아버지의 일생이 나로 하여금 그런것을 깨닫게 했다. 혁명이란 얼마나 높은것이냐. 거기 사는 정신이나 사상이 어찌 맑고 깨끗하지 않겠느냐. 난 이런걸 깨달았기에 스스로 장한 생각이 들고 행복한 생각도 든다. 난 아직 모르는것이 너무도 많다. 요새 철주가 갖다주는 《공산독본》이나 그밖에 여러 책을 자꾸 읽긴 하지만 그것만 읽어가지고야 어떻게 내가 할바를 다 리해해낼수 있겠느냐. 난 그저 너의 아버지가 알기 쉽게 들려주시던 그 쉽고 소박한 말들이 자꾸 떠오른다. 아무쪼록 열심히 배워 아버지의 뜻이 헛되지 않도록 하여라. 조선의 아들이라는걸 명심하고 어려워도 주저앉지 말고 힘들어도 휘여들지 말고 꿋꿋이 앞으로 나가야 한다. 가난이 원쑤여서 너를 더 도와주지 못하는것이 안타깝다. 보고싶은 책인들 얼마나 많겠니. 월사금도 여러달치 밀렸겠지. 돈 10원을 마련해서 편지속에 넣으니 월사금을 물고 얼마간 남으면 운동화라도 한컬레 사서 신어라. 절대로 이 어미 생각, 동생생각은 말고 일에 전심하여라. 오동진선생한테는 따로 편지를 써서 보낸다. 봉숙이어머니에게 문안을 전해다오. 너까지 그 집에 있다니 얼마나 덧짐이 되겠니. 부디 몸조심하고 이악하게 살아나가라고 일러라. 하고싶은 말은 많으나 이만 끊는다.
김성주동지께서는 이날밤으로 어머님에게 답장을 쓰시였다.
어머님! 인편으로 보내주신 편지는 받아읽었습니다. 반갑습니다. 제가 떠나올 때 아예 집생각을 말고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혁명을 잘하라고 하시던 어머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저는 그때 떠나오면서 몇번이고 뒤를 돌아다보았습니다. 그러나 어머님은 말파리가 떠나던곳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저는 여기서도 또 한번 알았습니다. 어머님께서는 늘 감정이 좋지 않으신 장소에선 피하신다는것을… 그러기에 저는 어머님의 눈에서 눈물을 본 일은 없으나 눈물이 가장 많은 사람이 어머님이시라고 생각합니다. 이 편지에서도 어머님의 뜨거운 눈물을 느끼고있습니다. 그 절절한 말씀속에 이 아들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뜨거운 눈물이 얼마나 많은가 하는것을 깊이깊이 느끼고있습니다. 어머님! 제가 어머님의 편지를 받고 느끼는 감정은 이 세상에 저같이 행복한 아들은 없다고 하는 그것입니다. 어느 청년이 이런 어머님을 모시고있을가요? 어머님,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것을 깨닫는다는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가장 고귀한것이기때문에 가장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어렵지 않고 쉬운 일이라고 한다면 세상에 진리라는것이 그렇게 보석과 같을수가 있겠습니까. 어머님의 그 고매한 혁명정신을 누가 그저 가져다드렸겠습니까. 어려운 생활속에서 어머님께서 손수 찾으신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머님, 얼마나 고생스러우십니까. 가난은 여전히 어머님을 괴롭히고있는데 이 아들은 어머님의 짐을 가볍게 해드리지 못하고있습니다. 저는 아픈 심정으로 어머님께서 편지의 마지막장에 붙이신 돈 10원을 받습니다. 어머님, 그동안 부녀회를 조직하셨다니 참으로 기쁩니다. 제가 떠나올 때에도 말씀을 드렸지만 조선혁명에 녀성의 힘을 끌어들인다는것은 중요한 문제입니다. 녀성의 힘을 보지 않는다면 혁명은 그만치 손해를 볼것이며 또 그렇게 해서는 안됩니다. 이 문제는 혁명의 력량을 묶는데도 중요하지만 또한 조선녀성자체의 해방문제를 놓고보더라도 중요합니다. 조선녀성같이 불행한 녀성이 어데 있습니까. 조선녀성은 앞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밤을 걸어왔습니다. 봉건의 질곡속에서 인간이하의 천대를 받으며 수천년을 살아온것이 조선녀성입니다. 그렇기때문에 인제 우리의 혁명은 그들에게 해방과 자유를 주는 동시에 가장 고귀한 인권을 주어야 할것입니다. 저는 이런 의미에서도 녀성운동에 더욱 큰 의의를 부여하고있습니다. 부녀회가 나갈 방향은 조직을 확대하며 계몽선전사업을 시작하는 일입니다. 삼촌께서 내놓으신 의견도 철주가 내놓은 의견도 다 일리가 있는 의견들입니다. 그러나 어느 한사람의 의견을 좇아서 한쪽으로만 기울어져서는 안됩니다. 조직사업과 선전계몽사업을 함께 밀고나가야 합니다. 제가 그곳에서 새날소년동맹을 조직하고 일을 하던 때 어머님께서도 그 일을 도우셨으니 생각이 나실줄 압니다. 새날소년동맹도 조직사업을 하면서 선전계몽사업을 함께 밀고나갔습니다. 부녀회사업도 매한가지입니다. 바로 이렇게 두가지 일을 함께 하셔야 합니다. 다만 부녀회와 새날소년동맹이 다른것은 부녀희는 합법적조직이고 새날소년동맹은 비합법적조직인것뿐입니다. 부녀회는 합법적조직이기때문에 합법적조건과 가능성들을 잘 리용하시면 사업을 더 빨리 발전시킬수 있습니다. 선전계몽사업은 야학을 열고 가르치기도 하고 연설을 해서 가르치기도 하고 회의를 해서 눈을 뜨게도 만들고 각가지 방법을 다 하셔야 합니다. 우선 야학을 열고 우리 나라 글을 가르치는 일부터 시작하십시오. 우리 나라 글을 가르쳐서 책을 읽게 해야 합니다. 책을 읽어야 자기들의 처지를 알게 되고 혁명이 무엇인가를 알게 됩니다. 더구나 야학을 하신다면 합법적인 조건을 더욱 마음대로 리용할수 있습니다. 야학에 많은 녀성들을 참가시키고 가르쳐나가며 그것을 통해서 부녀회를 더욱 굳건히 꾸릴수 있습니다. 조직을 확장하는 문제는 핵심을 기르는 문제와 결부해서 추진시켜야 합니다. 핵심이 없이는 조직을 확장할수가 없습니다. 핵심이 없는 조직은 힘을 못쓰는 조직입니다. 그렇기때문에 우선 핵심을 많이 길러내야 합니다. 핵심들과는 더 자주 만나시고 더 많은 과업을 주시고 더 많이 도와주셔야 하며 더 귀중히 이끌고나가셔야 합니다. 나는 어머님께서 능히 그러한 일들을 하실수가 있으리라고 믿기때문에 이런 말을 적습니다. 어머님께서도 말씀을 하셨지만 방금 조직해놓은 부녀회란 인제 겨우 일의 시작에 불과합니다. 이 조직이 잘 발전하는가 못발전하는가 하는것은 앞으로 어머님께서 일을 어떻게 옳바르게 지도해나가시는가에 달려있습니다. 이것은 어머님께 지워진 무거운 짐입니다. 고생속을 걸어오신 어머님께 저는 혁명의 리익이 아니라면 이런 말을 할수가 없을것입니다. 이 아들의 말에 힘을 얻으실 어머님이시라고 믿기때문에 이런 말씀을 드리는것입니다. 어머님, 혁명의 승리를 위해서 힘차게 나아가주십시오. 저는 여기 와서 많은것을 보고있습니다. 제가 짐작하고 온대로 여기에서는 복잡하고 큰 문제들이 엉켜돌아가고있습니다. 어느 장소에 가나 조선의 독립문제, 조선의 운명문제가 화제에 오르고 론쟁의 중심으로 되군합니다. 이것이야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모든 사람들이 빼앗긴 나라를 도로 찾기 위해서 가슴을 치고 불타는 정열로 문제를 론하고… 그것이 비록 자기나름으로, 자기 빛갈로, 자기 음성으로 이야기된다 해도 그 열정들이야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그러나 어머님, 제가 여기 와서 느끼는 감정은 너무도 큰 정열의 랑비가 벌어지고있는 사실입니다. 그다음 제가 여기 와서 느끼는것은 어느 운동이나 다같이 쇠퇴과정을 걷고있는 그것입니다. 아니 쇠퇴과정이 아니라 거의 파국에 직면하고있는 사실입니다. 민족주의운동도, 공산주의운동도 인제는 다시 일어설수 없는 파국의 내리막길을 걷고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되는 원인을 분석해보고싶지도 않습니다. 어느 운동에서나 범하고있는 그 파쟁의 누데기를 들춰서 무얼하겠습니까. 일제의 탄압이 파국의 첫째 원인이 되는건 사실이지만 이 더러운 파쟁의 력사를 그 원인으로 들지 않을수 없는데 비극이 있는것입니다. 로선도 방법도 없이 파쟁을 일삼는 운동이 어데로 가겠습니까. 어머님! 가슴이 아파서 편지에 적을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무엇때문에 파쟁을 해야 하겠습니까? 우리야말로 한마음한뜻으로 단결해야 할 민족이 아닙니까. 어머님, 저는 절대로 그런 길로는 가지 않겠습니다! 화성의숙에서 돌아와 구체적으로 말씀도 드렸지만 저는 제가 찾은 그 진리의 길로, 제가 배우고 깨달은 그 공산주의길로 나아가겠습니다! 저는 오직 제 머리로 생각하고 제가 찾은 혁명의 길을 따라 제가 찾은 방법으로 나아가겠습니다! 이 시대, 이 현실은 저에게 그렇게 할것을 요구하고있습니다. 어머님, 절대로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는 조국을 찾고 민족을 건지기 위하여 줄기차게 걸어가며 조국과 민족 대번영의 상상봉에 오르고야말것입니다! 아버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아버님은 저에게 몇번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는 너를 알기 위해서는 너를 가장 혹평할 사람의 립장에서 너를 생각해보아라. 그리고 네가 숨을 쉬고사는걸 너에게 호흡기가 있기때문에 숨을 쉬고산다고만 생각하지 말고 네 주위에 맑은 공기가 무진장으로 있기때문에 숨을 쉬고산다고도 생각해보아라.》 어머님, 저는 이 말씀의 뜻을 잘 압니다. 자기를 스스로 낮추고 자기보다 높은 대중과 인민이 있다는걸 명심하라는 말씀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바로 그렇게 살렵니다. 소박하고 겸허한 태도로 무산대중의 아들, 인민의 아들로 살며 그들에게서 배우며 그들의 설음에 함께 울고 그들의 기쁨에 함께 웃으렵니다. 저는 이것을 혁명에서 첫째가는것으로 삼으렵니다. 어머님의 학습을 위해서 《공산당선언》과 고리끼의 소설 《어머니》를 소포로 부치겠습니다. 어머님께서 먼저 읽으시고 부녀회원들도 읽을만한 수준이 되는 회원들에게는 돌려가며 읽도록 하는것이 좋겠습니다. 어머님, 아무쪼록 건강하시여 많은 일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철주에게도 건강해서 새날소년동맹사업을 잘하라고 일러주십시오. 삼촌과 만경대할아버님께는 제가 따로 편지를 내겠습니다. 이곳 사업때문에 여름방학엔 갈수 없으니 그리 알아주십시오. 그럼 어머님의 건강을 다시한번 빌면서 부녀회사업을 부탁합니다. 아들 삼가 올림
편지를 다 쓰시고 문을 여시니 동이 훤히 터왔다. 시원한 새벽바람이 그윽한 오동나무향기를 싣고 방안으로 날아들었다. 그이께서는 무언지 모를 커다란 행복감이 가슴속에 육박해오는것을 느끼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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