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서《불멸의 력사》 2

        장편소설

 

 

                                     천  세  봉  

 

( 제 14 회 )

 

제  6  장

 

선 창 가 에 서

 

1

 

김성주동지께서는 차득만을 만나기 위해 장두촌에 들리셨다가 길림으로 가는 배편을 리용하려고 마을앞을 흐르는 송화강가로 나가시였다.

강가에 나오니 배 한척이 와서 짐을 싣고있었다. 무거운것을 멘 사람들이 연방 발판을 건너서 배우로 올라갔다. 배우에는 키가 작달막한 사람이 서서 짐을 빨리 메올리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짐을 메는 사람들은 거의다 농민인것 같다. 길림선창의 가대기군들처럼 발판을 건너는것이 익숙하지 못했다. 강기슭에서는 달구지를 끌고 온 황소들이 영각을 하고있다. 어떤 황소는 빈 달구지를 뿔로 받으며 대갈놀음을 했다. 말도 몇필 매여있는것으로 보아 마차로도 짐을 날라온 모양이였다.

김성주동지께서 잠간동안 소란한 광경에 시선을 보내고계시는데 웬 청년 하나가 앞에 나타나며 허리를 굽석했다.

《누구십니까?》

《저를 모르겠습니까? 길림선창의 권성근아저씨네 집에서 한번 만난 일이 있는…》

《아, 춘택동무로군. 동무네 배가 여기 와서 짐을 싣습니까?》

《그렇습니다. 아침에 닿았습니다. 아까 장두촌 청년이 이 배에 와서 회장동무가 돌아갈 때에 타게 해야겠다고 하기에 여기 와계신줄 알았습니다.》

춘택이는 모자를 벗어서 한참 얼굴을 닦았다. 그러더니 이어 그이의 손목을 붙잡고 배우로 올라가자고 이끌었다.

《아니 짐을 한창 싣는 배에 올라가서 무엇하겠습니까? 이따가 떠날 때에 올라가겠습니다.》

《아닙니다. 짐은 거의다 실었습니다. 저희들 배구경도 하실겸 올라가십시다.》

춘택이는 큰 손으로 그이의 팔목을 잡고 발판쪽으로 이끌었다.

김성주동지께서는 춘택이를 따라 배에 오르시였다. 춘택이는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짐칸을 지나 고물쪽으로 그이를 안내하였다.

군데군데 뼁끼칠이 벗겨진 선체에 썩은 나무쪼박이 비죽이 드러나고 갑판널짬에도 피치가 게발린것으로 보아 헌 배라는것이 알리였다. 그래도 출항준비를 갖추어놓은 갑판우는 퍽 정갈하고 알뜰하였다. 사려놓은 바줄이며 손잡이가 알른거리는 비상뽐프며 고물전에 달아놓은 목통드레박까지 모두 세심한 살림군의 손길이 느껴졌다.

《그래 춘택동무는 이 배에서 무슨 일을 합니까?》

《나는 보승(갑판장)이지요. 선장하고 나하고 번갈아 키를 잡습니다.》

브리찌 타륜앞에 서시니 돛대와 이물끝이 일직선상에 바라보이였다. 켕긴채로 드리워있는 이물의 닻줄이 배가 흔들리는데 따라 해빛을 반사하였다.

지금 짐칸에서는 거의 짐을 다 실은 모양 한쪽으로는 방수포를 씌우고있다. 춘택이는 브리찌의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김성주동지를 선장실로 안내했다.

《춘택동무가 거처하는델 좀 가봅시다.》

《우리 거처하는데말입니까? 거긴 못가십니다. 루추합니다.》

춘택은 펄쩍 뛰였다.

《루추하면 어떻습니까? 좀 구경을 합시다.》

《들어갈만한데가 못되는데요.》

춘택은 또 한마디 이러며 뒤통수를 긁었다.

《어쨌든 가봅시다. 아무리 좋지 못해도 나는 동무들 사는데 가보고싶습니다.》

《그럼 이리로 오십시오.》

춘택이는 하는수없이 고물쪽으로 걸어갔다.

《여깁니다. 이리로 내려가셔야 할텐데…》

춘택이는 고물 한끝에 펑 뚫린 담브리칸의 승강구를 가리키며 몹시 쭈밋거렸다.

《내려가봅시다.》

그이께서 말씀하시자 춘택이가 먼저 승강구사닥다리로 내려갔다. 그이께서도 따라 내려가시였다. 어둡고 침침했다. 신선한 공기는 가신듯 없어지고 시큼하고 퀴퀴한 냄새가 풍겨왔다.

고물쪽은 취사장인듯 물때가 퍼렇게 앉은 나무드무와 장작단이 가려져있다. 칼도마며 밥그릇들이 포개져있는 컴컴한 구석에 새까맣게 그을은 양은남비가 놓였는데 그 나무뚜껑우에는 파리떼가 붙었다가 날아 일어난다. 배밑창의 광경은 새삼스럽게 그이의 가슴을 무겁게 하였다.

춘택이는 담브리칸의 쪽문을 열어제꼈다. 마침 옆방인 기관실에서 발동을 걸었다. 선체가 갑자기 몸부림치듯 떨었다.

선실에 들어서니 동그란 채광유리를 통해 비쳐드는 누런 빛발속에 마치 잡동사니를 널어놓은 투박한 궤짝속같은 세계가 펼쳐졌다. 벽도 천정도 연기에 끄슬은듯 컴컴했다. 겨울에 난로를 놓았던 자리인듯 한가운데가 까맣게 탄 삿 한잎이 깔렸다. 그것마저도 쥐가 썰어놓기라도 한듯 가위손이 다 바스러졌다. 방바닥에도 벽에도 기름투성이 옷가지며 괴나리보짐들이 널리고 매달렸다. 도처에 빈대, 벼룩의 흔적이였다. 기관실에서 울려오는 진동때문에 그 참담한 형상들이 그냥 몸부림치듯 떨었다. 바깥에서는 차츰 물결이 높아지는 모양 선체가 휘우뚱거리며 흔들렸다. 취사장쪽에서 무엇이 나딩구는 소리가 젱강하더니 뒤미처 와지끈 하고 마사지는 소리가 났다.

《이건 뭣을 어떻게 건사했기에 저모양이야.》

춘택이가 혀를 차며 달려나갔다.

김성주동지께서는 한참동안 이구석 저구석을 살펴보시였다. 당반같이 맨 널장우에 뚤뚤 말린 누데기이불이 가려져있고 때묻은 목침이 대여섯개 이리저리 딩굴었다. 그우에도 보따리가 여러개 쌓여있었다. 맨밑의 보따리에는 무엇이 들어있는지 중뿔나게 크고 검은 띠로 든든히 묶기까지 했다. 꼭두가 빠진 밀짚모자도 하나 당반우에 걸려있다. 배군들이 목침의 수효만큼 많을테니 이 좁은 방안에 어떻게 누워서 잘수 있을가 하는 생각이 드시였다. 다리를 서로 걸터놓고 땀에 절은 큰 몸을 뒤채며 고달픈 숨소리를 내뿜는 로동자들의 모양이 눈앞에 선하시였다. 목침들곁에는 가위가 떨어진 몇권의 책이 있었다. 한 책은 《장화홍련전》이고 다른 한 책은 《사씨남정기》였다. 그밖의것은 무슨 책인지 알아볼수도 없었다. 나무로 판 큰 재털이는 아예 바닥이 새까맣게 탔다.

그이께서는 배군들이 어떤것을 입고 사는가싶어 벽에 걸려있는 옷들을 일일이 벗겨보시였다. 모두 땀이 밴 옷들이다. 어떤것은 등판이 삭고 어떤것은 목깃이 삭았다. 손으로 당겨보시니 바르륵 소리를 내며 미여진다. 도저히 입을나위가 없이 된것들이다. 솜저고리 하나는 열곳도 더 기웠다. 안팎을 다 기웠는데 그래도 겉은 흰천으로 깁고 안은 아무런 색천이나 마구 대고 기웠다. 그 저고리 안섶에 큰 주머니가 달려있는데 그 주머니속에서 누런 목책이 하나 떨어져내렸다. 목책에는 지우개가 달린 연필이 꽂혀있었다.

김성주동지께서는 얼른 집어서 도로 주머니속에 넣어주시려다가 펼쳐진채로 있는 목책장에 눈길이 미치시였다. 거기에는 월급탄 돈이 얼마라는것이 적혀있었다. 그리고 그 돈을 어떻게 썼다는것을 상세히 적었다. 밥값이 얼마, 담배값이 얼마, 양말값이 얼마, 김성득의 부채가 얼마, 이렇게 써내려가다가 고향 어머니에게라고 쓴 끝에는 돈액수를 적어넣지 못하고 연필끝으로 두어번 점을 찍다가 말았다.

그이께서는 쿡 치미시는 생각이 있어 얼른 소비한 돈액수를 계산해보시였다. 결국 소비한 돈액수가 월급액수보다 더 많았다. 그러니 어머니에게는 부칠 돈이 없어서 돈액수를 써넣지 못하고 점을 찍다가 만 모양이였다. 이러고보면 이것은 월급을 타가지고 돈을 쓴 뒤에 써넣은것이 아니라 월급을 타기전에 써넣고 계산을 해본 모양이였다.

김성주동지께서는 얼른 수첩을 도로 접으며 겉가위에 적혀있는 목책주인의 이름을 보셨다. 장춘택이였다.

《음ㅡ 춘택동무것이로군.》

김성주동지께서는 혼자 외우며 생각에 잠기시였다. 허우대가 큰 춘택이 데면데면하고 거칠은줄로만 알았더니 이렇게 찬찬하고 사람의 가슴을 치는 정을 간직하고있다.

이윽고 춘택이가 돌아왔다. 김성주동지께서는 그의 안내를 받으며 한창 출항준비에 바쁜 기관실을 한번 들여다보시고 다시 갑판으로 나오셨다.

그이께서는 저녁바람이 설레이는 배전에 나와 서서 굽이치는 물결을 바라보시였다.

할 일은 여기에도 있다. 이 송화강 물결우에도 혁명을 기다리는 짓밟힌 생활이 벌어져있다. 여기로도 해빛이 뚫고 들어와야 한다.

춘택은 지금 조타실에서 떠날 준비를 하고있었다. 그는 들먹이는 심정으로 배고동을 길게 울렸다. 이 배고동소리는 언제나 구슬픔을 자아내는 소리였다. 어느 선창에나 배를 대였다가 떠날 때이면 가슴속에 안개같은 설음이 잦아듣고 그 설음을 붕 하는 배고동소리가 더욱 부채질하군했다. 그러나 오늘밤의 고동소리는 그런 고동소리가 아니다. 춘택의 벅찬 심장속에서 울려나오는 소리와도 같았다.

사실 춘택은 그동안 권태일이네 집에 출입을 하면서 김성주동지께서 어떤분이시라는것을 자세히 알게 되였다. 그이께서 길림에 와서 소년회를 조직하시였다는것, 기관구 로동자들속에 혁명의 불길을 지피시였다는것, 안창호가 길림에 나타났다가 그이의 서면질문을 받고 망신을 당했다는것, 온 길림시내 청년학생들이 그이의 주위에 집결되기 시작한다는것 이 모든 사실은 춘택이로 하여금 그이를 황홀한 심정으로 생각하지 않을수 없게 하였다.

배는 강복판에 들어섰다. 량 배전에서는 물바퀴가 세차게 돌아간다. 물결이 부글부글 끓으며 배전을 핥고 흘러간다. 춘택이는 조금도 자기 배가 강으로 떠가는것 같은 생각은 없었다. 그 어떤 힘있는것이 사나운 세상을 갈라제끼며 돌진하는것 같았다.

《춘택동무, 배를 운전하는지 몇해나 됩니까?》

어느새 김성주동지께서 조타실로 들어서며 물으시였다.

《한 5년 됩니다. 그러나 배군이 된지는 10년도 넘습니다. 열두살때부터 배간심부름을 했으니깐요.》

《고향에 누가 계십니까?》

《어머니와 누이동생이 있습니다.》

《어머니가 몹시 고생하시겠군요?》

그이께서는 어머니에게 다달이 돈이나 좀 보내드리느냐고 물으려다가 그만두시였다. 고향 어머니라고 쓴 밑에 돈을 적지 못하고 점을 찍어놓은것이 눈에서 사라지지 않아 그 말씀을 입밖에 내기가 괴로우시였다.

떼목이 흘러내려왔다. 수없는 떼목이 배가까이로 지나갔다. 떼목우의 움막에서는 반디불같은 불빛들이 반짝거린다. 어떤 떼목은 배가 일으키는 물결때문에 흥떵거리며 춤을 추기도 했다. 시꺼멓게 일어선 돛폭이 배옆을 씽 지나군했다. 돛대우에서는 밤새가 소리를 지르며 날아가고 날아온다. 쉬임없는 생활이 강을 덮었다. 그런 속으로 춘택의 배가 룡마처럼 날아가고있다.

《춘택동무, 동무도 인젠 공부를 좀 해야 하겠습니다.》

그이께서는 춘택의 잔등에 손을 얹으며 말씀하시였다.

《무슨 공부말입니까? 혁명에 대한 공부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이 시대 로동계급으로서 자기가 무엇을 해야 하겠다는것을 똑똑히 알고 공부를 해야 합니다.》

《저도 그런 생각이 있어서 회장동무에게 한번 물으려고 했습니다.》

춘택이는 가슴이 울렁울렁 뛰였다. 그는 부쩍 긴장해졌다. 퉁퉁거리는 배소리, 물결소리, 모든 소음이 흔적을 감춘것 같고 그저 그이의 말씀만이 귀에 똑똑히 들어와 배겼다.

김성주동지께서는 우선 춘택이들이 무엇부터 시작하겠는가 하는 문제를 놓고 구체적으로 말씀하시였다. 우선 맑스-레닌주의공부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 진리를 파악하지 않고는 이 사회가 어떤 모순을 가지고있는지도 모르고 또 그 모순을 어떻게 두드려부셔야 하겠는가 하는것도 모르고 앞으로 지향하는 사회주의, 공산주의 사회가 오늘의 사회와 어떻게 다르다는것을 모른다. 혁명에서는 로동계급이 선봉에 서야 하기때문에 다른 누구보다도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알아야 한다…

《내 말이 무슨 말인지 리해됩니까?》

《리해되구말구요. 여부가 있습니까? 저는 회장동무곁에서 늘 이런 말을 듣고 시키는 일을 했으면 원이 없겠습니다.》

《우리가 손을 잡으면 늘 함께 있는것이나 마찬가집니다. 혁명을 하는 사람들이 꼭 한곳에서 살아야 한다는 법은 없습니다. 재삼 말하지만 춘택동무는 글도 잘 아는것 같은데 우선 동무자신이 열심히 맑스주의공부를 해야 합니다. 내가 앞으로 동무들이 공부해야 할 책들을 보내겠습니다. 동무자신이 먼저 공부를 잘하고 배에 있는 동무들은 물론 선창에 있는 동무들도 공부를 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춘택이의 심장은 점점 더 들먹거려왔다. 눈앞이 뿌옇게 흐려지는것 같기도 하고 노을이 환히 비끼는것 같기도 하다.

《특히 동무는 길림선창에만 정착해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짐을 싣고 각지의 선창으로 돌아다니는만큼 여러 선창에 있는 동무들도 공부를 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어느 선창이고 동무의 발길이 닿는 선창이면 다 우선 좋은 로동자들이 짜고들어 맑스주의를 공부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 송화강기슭의 온 로동자들이 한덩어리가 되여 일어나 혁명을 할수 있습니다. 혁명이란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것입니다. 나는 권성근아버님으로부터 동무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히 들었습니다. 동무는 인제부터 하나의 배군이라는 생각보다도 혁명가라는 자랑을 가지고 선창로동자와 배사람들속에서 핵심이 되여 투쟁해야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인제부터 새롭게 살겠습니다.》

춘택이는 기운차게 대답했다.

불야성을 이룬 길림시가가 눈앞에 떠올랐다. 춘택이는 고동을 길게 울리였다. 한번만 울리지 않고 꺾어서 여러번 울리였다. 짐배를 몰고 선창으로 들어가는 심정이 아니였다. 바로 인제 들은 말씀들이 부풀어 혁명의 큰 산마루가 떠들어가는것 같았다. 물이 쫙쫙 갈라졌다. 북을 치는것 같은 배소리가 더욱 신명을 내여 퉁퉁거렸다.

 

2

 

《여보게- 이리로 배머리를 돌리게. 이물을 이쪽 잔교에 대란말이여-》

권성근은 손나팔을 해대고 어둠속에서 소리쳤다.

《무엇이 어쨌다고?》

푸른 현등이 켜져있는 선교 한옆에 비옷을 걸치고 서있던 검은 그림자가 손바닥을 귀에 갖다대고 허리를 구부리더니 소리친다.

《넨장, 이리로 오란말이야!》

권성근은 널쪽이 군데군데 떨어져나간 잔교우를 껑충껑충 뛰며 다시 소리쳤다.

《여울-목-아-아-아-》

배우의 검은 그림자가 이번에는 길다란 삿대를 찾아들고 강바닥을 가리키며 소리친다. 어둠속이 돼서 그런지 말소리조차 똑똑히 들리지 않는다.

《구들목사공이로군. 여기가 어디게 여울이 있단말이야? 마음 푹 놓고 꽁무니를 바싹 들이밀게.》

짐칸이 산더미처럼 부풀어오른 커다란 륜선의 발동소리가 높아졌다. 이윽고 량배전에 달린 물바퀴가 세차게 물장구를 치며 돌아갔다. 검은 선체가 천천히 가로놓이더니 이물쪽이 잔교옆에 비스듬히 다가온다.

《여-이-》

배전에 나선 검은 그림자가 바줄끝을 쥐고 소리친다.

《념려 말고 집어던지게.》

권성근은 잔교끝에 나서서 마주 소리쳤다. 휘유- 굵다란 바줄이 안개낀 밤하늘에 우불구불 곡선을 그리다가 철썩하고 잔교우에 한끝이 떨어진다. 권성근은 날쌔게 그 한끝을 잡아쥐고 옆으로 끌었다. 그가 바줄을 끌어다 말뚝에 비끄러매자 키를 잡고있던 춘택이 발동을 끄고 후닥닥 잔교로 뛰여내렸다. 그뒤로 김성주동지께서 따라내리시였다.

《아저씨, 나와있었습니까?》

《음, 이게 자네네 배였나?》

《네.》

이때 그이께서 권성근의 곁으로 다가오며 인사를 하시였다.

《아니, 이게 누군가? 자네는 어데 갔다 오기에 이렇게 배를 타고 왔나?》

《신안툰에 갔다가 오는길에 장두촌에 들렸는데 마침 춘택동무를 만나서 배로 왔습니다. 그런데 밤늦도록 그 불편하신 다리를 가지고 일을 하십니까?》

《선창일이란게 밤낮이 있나? 아까두 선주가 나와서 춘택의 배가 도착하면 오늘밤으로 짐을 다 부리워야 되겠다고 걱정을 하다가 들어갔다네.》

《수수가 200여t이나 되는걸 밤으로 다 부린단말입니까?》

춘택이가 끼여들며 기가 돋아 물었다.

《다 부려야 한다구 야단을 치데. 래일은 당장 일본 광목을 싣고 눈강쪽으로 떠나야 한다구…》

《흥, 녹았군.》

춘택이는 수운사무소쪽을 흘겨보며 침을 텍 뱉었다.

《아버님, 다리는 어떻습니까?》

김성주동지께서 물으시였다.

《어떨게 있나. 그저 그 모양이지. 인제 이 병신다리를 면해볼 방법이야 있겠나?》

《그 다리를 가지고야 짐짝을 어떻게 메겠습니까?》

《메야지, 무슨 딴 수가 있나? 어데 가서 하다못해 토공일이라도 해볼가 했는데 그런 일인들 있나?》

권성근은 한숨을 지었다.

그이께서도 200여t이나 짐을 실은 시꺼먼 화물선을 쳐다보며 은근히 긴숨을 쉬시였다. 혼자 하는건 아니겠지만 저 짐을 그 뻗장다리로 다 메여올려야 한다고 생각하니 기찬 생각을 금하실수 없었다. 멀리 하류쪽에서 화륜선의 고동소리가 뚜- 하고 긴 여운을 끌며 울려온다. 선창어물전쪽에서 풍겨오는 비린내가 축축한 밤공기속에 배여 언제나 맑지 못한 이 재빛부두에 더한층 무거운 색갈을 보태준다. 선창가에서 저만치 떨어져앉은 전등창, 목공창이며 선박수리소에서는 아직도 밤일을 하는 모양 고달픈 숨결같은 연기가 뿌옇게 흐린 불빛속에 천천히 피여오르고있다. 화물선우에서는 배사람들이 짐칸의 방수포를 벗기고있다.

《여- 춘택이- 배 좀더 붙이게-》

배전에서 선원 한사람이 소리쳤다. 춘택은 배에 뛰여올랐다. 윈찌 돌아가는 소리가 와르릉거린다. 수운사무소 널쪽문이 부산스레 여닫긴다. 어물전에 잇대여 지은 배군들의 숙소앞에서 수운사무소 감독의 멱따는것 같은 악청이 울리였다.

무덤속같이 숨을 죽이고있던 배군들의 숙소에 불이 켜졌다.

부춘루란 료리점에서 돈있는놈들이 처먹고 우르르 밀려나오며 혀꼬부라진 소리를 질러댔다.

길다란 물부리에 권연을 꽂아문 선주도 부춘루앞에서 나타났다.

《여보게 춘택이, 거 배를 조심해서 갖다대게.》

선주는 술냄새를 풍기며 소리쳤다.

춘택은 들은체 않고 키를 내돌리였다.

바줄이 팽팽히 켕기면서 물기 머금은 잔교기둥이 뿌직뿌직 소리를 지른다. 륜선의 물레바퀴는 세차게 물탕을 튕겼다.

《이사람아, 조심하라는데…》

선주는 물부리 쥔 손을 부들부들 떨며 아우성을 쳤다. 그러거나말거나 춘택은 기우뚱하고 돌아가는 배머리만 지켜본다. 발동을 끄자 배는 다시 천천히 돌아서더니 손으로 갖다붙이는것처럼 잔교에 나란히 서서 딱 들어붙었다.

《귀신은 귀신이로군.》

권성근은 선주놈이 춘택이의 솜씨를 알아들으라고 일부러 큰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제꺽 발판을 건너지르고 땅땅 꺽쇠를 두들겨박았다.

곤한 잠에 떨어졌던 가대기군들이 감독에게 내몰리여 선창에 나섰을 때는 밤도 퍼그나 깊었을 때였다.

권성근은 무거운 수수포대를 어깨우에 메고 줄끔줄끔 발판을 내려왔다. 눈길이 자꾸만 아래로 쏠리는것을 어찌할수가 없다. 그는 꺽쇠대가리를 밟지 않으려고 일부러 밭은 목을 돌아 잔교바닥에 내려섰다. 그러나 거기도 널판이 한장 빠져서 역시 발을 옮겨디디기가 불편했다. 벌써 등뒤에서 가쁜 숨소리가 따라온다. 얼핏 눈길을 돌리니 발판우에 두사람이나 무거운것을 메고 서서 앞사람의 걸음을 재촉하며 씩씩거린다.

권성근은 마음이 초조해서 얼른 이빠진 널판자를 건너뛰였다. 뻗장다리가 시큰하며 모로 태를 칠번하였다. 인제 대여섯포대 메였는데 오늘저녁에는 일이 더욱 힘들다.

《저건 무슨 가대기군이 저모양이야. 밥을 안먹고 죽을 먹었나?》

선주가 잔교끝에 박힌 말뚝에 한쪽 다리를 올려놓고 서서 담배를 피우며 소리쳤다. 쇠갈구리를 한손에 쥐고 도적고양이처럼 눈을 밝히고있던 감독이 권성근을 쏘아보았다. 권성근은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는것을 느꼈다.

(빌어먹을, 내몰리는 날이면 또 강목을 치게 됐군.)

그러나 아무리 이를 악물어야 다리는 그냥 비칠거렸다.

《권령감은 그만두라는데 왜 밤에까지 나와서 야단이요?》

감독의 소리였다.

권성근은 화김에 말마디나 좀 할 생각이였으나 숨이 가빠 말이 되지를 않았다. 그는 언덕을 톺아올랐다. 량곡적치장까지 가자면 아직도 멀었다. 그는 뻗장다리를 이끌며 땅에 떠서 간신히 발을 옮겼다.

《아버님, 이리 주십시오.》

《응?》

권성근은 눌린 목을 비틀며 다가서는 키 큰 사람을 치떠보았다. 뜻밖에 김성주동지이시다.

《아니, 자네 왜 아직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나?》

《글쎄 이리 주십시오.》

그이께서는 힘들지 않게 수수포대를 어깨우에 옮겨메시였다.

《이거, 이러지 말게. 이런 일은 학생들이 하는 일이 아닐세. 내가 자네들한테 이런 일을 시킬바에야 우리 태일이를 왜 학교에 보냈겠나?》

권성근은 그이의 어깨우에 수수포대를 메운 일이 안되여서 따라가며 말렸다.

그러나 그이께서는 말씀이 없이 무거운것을 메신채 량곡적치장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가시였다.

《불편하신 몸으로 좀 고되겠습니까? 이게 다 나라가 없고 불공평한 세상탓입니다. 저희 젊은 사람들의 책임이 큽니다.》

《이사람, 그런 소리 말게. 난 그러지 않아도 학생들을 보면 마음이 든든해지네. 나는 아무리 고되여도 요즘은 일이 힘드는줄 모른다네.》

김성주동지께서는 묵묵히 량곡포대를 아찔한 꼭대기에 올려쌓고 발길을 돌리셨다. 걸으시면서 권성근의 어깨에 걸친채로 있는 마대쪽을 가져다가 자신의 어깨에 올려놓으시였다. 권성근이도 그이의 말씀에 어린 깊은 뜻에 머리가 숙어져 더는 말릴념을 못했다.

갑판우로 솟아올랐던 짐은 푹 줄어서 짐칸바닥으로 발판을 고쳐 내리질렀다.

발판은 나락속으로 들어가는듯 까마득하게 내려다보였다.

그 물매 급한 발판으로 로동자들이 수수포대를 메고 발끝을 박으며 올라온다. 한발 비척하면 아찔한곳으로 내리굴기가 십상이다. 욕지거리소리, 한숨소리, 엇갈리는 고달픈 숨결소리, 땀에 젖어 번들거리는 얼굴들, 그 로동군중속에 그이께서도 섞이시였다. 무거운 수수포대를 메고 한발한발 조심히 디디시며, 그러시면서도 앞뒤 사람들에게 조심하라고 이르며 올라오신다. 불에 비친 그이의 얼굴이 땀에 젖어 번쩍거린다. 권성근이 달려가 또 만류했다. 그러나 그이께서는 듣지 않으시고 량곡포대를 적치장에 내려놓으시고는 또 로동자들과 함께 발판을 밟고 짐칸으로 내려가신다.

《누구신가요?》

《김형직선생님의 아드님이라오.》

《아니, 그 선생님의 아드님이 어째서 여기 와서 가대기를 메우? 보매 학생같은데…》

로동자들이 수군거렸다.

김성주동지께서 짐을 메시는바람에 춘택이도 그이와 함께 짐칸으로 내려가 짐을 메고 올라오군했다.

《조심하십시오.》

《나는 괜찮습니다. 춘택동무가 조심하십시오.》

《우리는 늘 하는 일이라 이런데서도 펄펄 난답니다.》

정말 춘택이는 김성주동지를 돌보느라고 곁눈을 팔면서도 날쌔게 걸었다. 휘청거리는 발판우에서 가분가분 춤을 추는것 같기도 했다.

작업은 새벽녘이 되여서야 끝났다. 김성주동지께서는 권성근을 부축하며 선창언덕으로 올라오시였다.

《난 할말이 없네.》

《원 아버님도 별말씀을 다하십니다. 어서 들어가 오늘은 푹 쉬십시오.》

그이께서는 이런 말씀을 남기시고 희붐하게 희여가는 거리를 향해 힘있게 걸어가시였다.

권성근은 가슴이 찌르르했다. 제 자식이나 제 식구는 만사를 다 잊고 편안히 자고있는데 무슨 인정이기에 그렇게 밤을 새워가며 남의 고역을 대신해주는가? 그 가파로운 발판으로 짐을 메고 오르내리며 누가 그렇게 이 뻗장다리 권성근을 생각해줄가? 권성근은 눈을 슴벅슴벅하며 담배를 빨았다.

 

3

 

며칠후 시내 자혜병원에 간호부로 다니는 옆집 처녀가 권성근을 찾아왔다. 키가 작고 눈이 예쁘게 생긴 처녀는 병원의 의사선생이 청하니 그더러 병원으로 가자는것이였다.

《아니, 내가 병원엘 무엇때문에 가겠니?》

《그래도 선생님이 꼭 모셔오라고 했어요. 아마 아버님 다리를 보려고 그러시는것 같아요.》

《내 다리?! 다린 봐서 무엇한단말이냐? 치료비를 따먹으려면 돈있는놈을 고쳐주어야지 나같은놈의 다리는 아무리 고쳐놓아도 치료비가 안나와. 그리고 이 다린 고칠수도 없고. 이것 봐라. 이렇게 뻣뻣하게 된것도 고치니?》

《호호호, 글쎄 고치고 못고치는건 모르겠어요. 한번 보시겠다는거예요.》

《글쎄 봐선 뭘하느냐?》

《아버님, 그러지 말고 가세요. 꼭 모셔오라고 말씀했어요.》

권성근은 할수없이 처녀에게 이끌려 자혜병원으로 갔다.

진찰실로 들어서니 몸집이 뚱뚱한 대머리의사가 얼른 의자에서 일어서며 권성근을 맞이했다.

《권성근씨지요?》

《네, 그렇소이다.》

《수고했습니다. 어서 앉으십시오.》

대머리의사 박승훈은 자리를 권하고나서 자기도 의자에 앉았다. 그는 손수건으로 훌렁 벗어져 넘어간 이마를 주근주근 누르면서 권성근의 아래우를 주의깊게 살펴보았다.

《그래 다리는 언제 상했습니까?》

《작년에 부러졌지요.》

권성근은 박승훈의 벌어질사한 위생복주머니에 비죽이 내민 상아청진기를 살펴보면서 대꾸했다.

《절골이 된걸 고치다가 무릎이 굳어졌습니까?》

《그렇습지요.》

《그럼 한번 일어서 걸어보십시오.》

권성근은 의자에서 일어나 뻗장다리를 끌며 진찰실안을 한바퀴 돌았다. 박승훈은 그가 걷는 모양을 주의깊게 바라보았다. 그는 다시 권성근을 의자에 앉게 하고 다리를 걷어올렸다. 그리고는 다리를 쳐들고 내려놓고 하면서 짚어보더니 한참 고무마치로 무릎을 두드려보았다.

《저리 좀 가십시다.》

박승훈은 이렇게 말하면서 앞서서 진찰실을 나갔다. 권성근은 따라가지 않을수 없었다. 그는 점점 더 판이 이상하게 되여간다고 생각하였다. 첩경 먼저 떠오른것은 치료비 생각이였다. 이 번대머리가 자기에게 무엇을 노리고 이러는지 알수가 없었다. 의사에게 끌려간곳은 처치실이였다. 처치실에 들어가듯마듯 박승훈이와 동년배나 될 힘꼴이나 씀직한 의사가 또 한명 들어왔다. 그는 입에 큰 마스크를 걸었다. 뒤에 간호부가 따라섰는데 그도 몸집이 다부지게 생긴 녀자였다. 이번엔 그 의사가 또 한참 고무마치로 무릎을 두드려보았다. 그러더니 박승훈이와 무슨 말인지를 주고받았다. 박승훈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자 마스크를 건 의사가 무슨 손잡이 달린 나무틀에다 권성근의 다리를 올려놓고 넙적하게 누빈 바줄을 칭칭 돌려감았다. 팔까지 움쩍 못하게 동여맨다.

《아니, 이건 어쩌자고 이러오?》

권성근은 두눈이 커져서 박승훈과 딴 의사를 번갈아 쳐다보며 물었다.

《가만 계십시오.》

박승훈이 뒤짐을 짚고 서서 하는 말이였다.

그러는 사이 벌써 마스크를 건 의사가 무릎마디에 주사바늘을 쑥 들이찔렀다.

《아이쿠-》

권성근은 동여맨 다리를 우뜰하며 소리를 질렀다.

《이건 마취제입니다.》

마스크를 건 의사는 이런 말을 하면서 주사바늘을 뽑아 또 딴곳에 들이찔렀다.

권성근은 또 소리를 질렀다. 눈을 흡뜨고 보니 주사도 이만저만한것이 아니다. 거의 석유병만한데다 약물을 가득 넣고 찔러댄다.

《그래 아직도 아프시오?》

박승훈이가 낯을 찡그린 권성근을 여겨보며 물었다. 정말 한 댓대 맞고났더니 인젠 아프지 않았다.

《그런데 이걸 어쩌자고 이러십니까?》

《다리를 고치자는거지요. 인제 좀 견디여내야 합니다.》

박승훈은 이렇게 말하면서 딴 의사에게 눈짓을 하고는 처치실에서 나가버렸다. 그가 나가듯마듯 권성근은 온몸이 산산쪼각이 나서 흩어지는것 같은 아픔을 느끼며 《악》소리를 질렀다. 그는 온몸을 화닥닥 뒤채였다. 그러나 의사의 우악스러운 팔이 두다리를 움쩍 못하게 눌렀다. 그런데 간호부까지 달려들어 가슴을 단단히 잡아누르고있어서 옴짝할수가 없었다.

의사는 나무틀의 손잡이를 천천히 돌리는데 마치 자전거 발디디개처럼 오르내리게 되여있어서 거기에 붙들어매인 뻗장다리가 생나무 꺾이듯이 마구 굽혀졌다펴졌다하는것이다. 굽혀질 때마다 무릎마디가 산산이 으깨여지는듯하고 뼈 바스러지는 소리가 뿌직뿌직했다. 그때마다 눈앞에서는 칠색불꽃이 탁탁 튀였다.

《아이구- 사람 죽인다. 이거 놔라!》

권성근은 눈물을 찔끔 쏟으며 아우성을 쳤다. 그러나 의사도 간호부도 큼직한 마스크에 쌔운 얼굴을 돌리지도 않고 그냥 손잡이를 돌려댄다. 마스크우에서 눈만이 번쩍거리는데 어느 눈을 봐야 인정이라고는 꼬물만치도 느껴지지 않는다.

《놓아라! 사람 죽는다. 아이쿠, 못놓겠느냐?》

《거 장힌 고아대는군. 나살이나 건사한 어른이 뭘 그렇게 애들처럼 떠드시오?》

의사가 지청구를 했다.

《여보, 당신이 한번 겪어보우, 어떤가? 아이쿠, 이것 놓지 못해? 아이쿠…》

권성근은 약도 오르고 분도 터져서 온 병원이 떠나가게 소리를 질렀다.

《내가 무엇때문에 성한 다리를 거기다 끼우겠소? 이 령감 버릇을 좀 떼놔야겠군.》

의사가 또 핀잔을 주었다.

권성근은 아픔에 혼이 빠져서 의사의 소리는 한마디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박승훈은 지금 진찰실의자에 앉아서 어제저녁 찾아왔던 그 범상치 않은 청년을 생각했다. 육문중학교에 다니는 학생이라는데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나서는 박승훈을 감동케 하는 청탁을 했다.

《저도 선생님이 왜놈에 대한 증오때문에 이 길림에 와서 병원을 차려놓고 그것으로 독립운동에 기여하고계신다는것을 잘 알고있습니다. 이 길림에 있는 독립운동자들이 선생님의 신세를 많이 지고있다는것도 잘 압니다. 그러나 제가 선생님께 말씀드리고싶은것은 조선독립운동에 무엇인가를 기여하려고 하신다면 착취받고 억압받는 불쌍한 로동군중에게 먼저 눈을 돌려주셔야 하겠다는 그것입니다. 사실 나라를 빼앗기고 불행하게 되지 않은 사람이 어데 있겠습니까만 그래도 제발로 병을 봐달라고 찾아오는 사람들은 이국에서나마 밥술이라도 먹는 사람들입니다. 망국의 비운을 가장 참혹하게 겪고있는 사람들은 로동자와 농민들입니다. 그들은 나라를 빼앗겼을뿐아니라 일자리와 농토를 빼앗기고 길가의 돌멩이처럼 뭇발길에 걷어채이며 헐벗고 굶주리고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돌아보는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가 무엇때문에 피를 흘리고 목숨을 바치면서까지 기어코 나라를 찾아야 하겠습니까? 그것은 우리 겨레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이와 같은 로동자, 농민들을 구원하기 위한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들의 모든 불행의 원인이 바로 나라를 빼앗긴데서 오는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기때문에 나라를 찾기 위해 모든 조선사람들이 떨쳐나섰지만 누구보다 용맹하게 싸우고있는것이 이런 로동자, 농민들이고 또 우리 조국은 반드시 그 사람들의 힘에 의해서만 광복될것입니다. 그러니 선생님, 선생님이 진실로 나라를 생각하시고 망국을 슬퍼하시며 국권을 수복할 생각이 간절하시다면 그들을 돌봐주시고 그들을 살펴주십시오. 그 사람들은 숨져가는 자식을 안고도 돈이 없어 눈물을 흘릴수밖에 없고 제 수족이 썩어가도 고약 하나를 살 돈이 없습니다.…》

영채가 빛나는 눈으로 자기를 바라보며 절절한 목소리로 호소하던 그 청년은 길림시내와 주변에 널려있는 조선 로동자들과 농민들의 참상을 눈물겨웁게 이야기했다. 병신이 된 다리로 무거운 짐을 메고 선창잔교를 위태롭게 오르내리는 권성근에 대한 이야기도 여기서 나왔다. 같은 동포로서 그러한 사람들을 도와줄 힘과 방도가 과연 없겠습니까 하는 말이 나왔을 때 박승훈의 가슴은 뜨끔하였다. 그는 어제밤 밤새도록 잠을 못잤다. 무엇인가 생활태도가 명백치 않은 자기에게 채찍질을 하는 말 같기도 하였고 네가 진정으로 나라를 사랑하느냐 하는 엄숙한 질문 같기도 하였다. 그는 스스로 물었다.

(너는 무엇때문에 나라의 독립을 그렇게도 바라느냐? 그런 로동자, 농민을 구원하는것이야말로 독립의 첫째 목적이 아니냐? 그런데 너는 의술이 있으면서도 그들을 도와줄 생각을 못했으니 네가 진정으로 나라를 사랑하는것이냐?)

새벽녘에는 그 청년이 다시 나타나면 두손을 잡아흔들것 같은 흥분에 휩싸이였다. 그래서 간호부에게 권성근을 데려오도록 일렀던것이다.

얼마후 진찰실로는 땀이 후줄근해진 의사가 들어왔다.

《어떻게 되였소?》

《방금 입원실에 업어다 눕혔습니다.》

《잘했소. 각별히 치료를 잘해서 다리를 꼭 고쳐야겠소.》

박승훈은 흡족한 표정으로 담배를 붙여물었다.

죽을 곤욕을 치른 권성근은 입원실 침대에 쭉 늘어져있었다. 인제는 치료비를 걱정할 경황도 없었고 의사나 간호부에게 욕설을 퍼부을 맥도 없었다.

밤에 마취제를 한대 맞고 푹 잤더니 좀 살것 같았는데 이튿날 낮에 또 그 놀음을 벌리였다. 이번에도 죽을 고생을 했으나 어제와 같지는 않았다.

이틀이나 시달리고나니 무릎이 개구리를 삼킨 구렁이 배때기처럼 팅팅 부어올랐다. 그래도 의사와 간호부는 날마다 그 틀에 붙들어매고 돌려대는것이였다.

일주일이 지나니 다리는 나무틀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굽적거릴수 있게 되였다. 그러자 부위가 차츰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제야 권성근은 자기 다리가 나아간다는, 병신을 면했다는 꿈같은 사실에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열흘째 되던 날 박승훈이 그를 찾아들어왔다.

《이제는 마음대로 걸을수가 있을것 같습니까?》

박승훈은 무릎을 만져보며 물었다.

《선생님, 마음대로 걸을수 있구말구요. 이 은혜는 죽어도 잊지 못하겠습니다.》

《은혜가 무슨 은혜입니까? 나는 다만 학우회 회장의 청탁을 받고 권성근씨의 다리를 고쳤을뿐입니다.》

《학우희 회장이라니요?》

《김형직선생님의 자제분을 모르십니까?》

박승훈이도 그동안 녀자사범에 다니는 딸을 통해 자기를 찾아왔던 그 청년이 바로 자기가 존경해마지 않던 김형직선생님의 자제분이라는것을 알게 되였다.

《아니, 그, 그 사람이 나를 병원에?》

권성근은 용수철에서 튕겨나듯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리고는 한참동안 의사를 쳐다보았다.

그는 설핀 수염사이로 눈물을 떨구며 고개를 깊이 수그렸다. 왜 아무것도 짐작을 못했던가. 늙으면 이렇게 목석같이 되여버리는가? 도대체 무어라고 말해야 좋을지 알수가 없었다. 그저 한달음으로 달려나가 온 천지에 메아리가 일게 높은 목소리로 김형직선생님을 부르고만싶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김형직선생님, 고맙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살아생전에 우리 고달픈 겨레들을 건지기 위하여 그처럼 애를 쓰시더니 돌아가신 오늘에도 아드님을 우리에게 보내여 이렇게 우리같은 가난한 로동자를 돌보게 해주시니 참말로 고맙습니다!》

권성근은 심장속으로 이런 말을 몇번이고 외우며 눈물을 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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