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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서《불멸의 력사》 2 장편소설
천 세 봉
( 제 13 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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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총독부》의 모략과 음모를 대담한 조직적투쟁으로써 짓부셔버린 김성주동지께서는 유유한 심정으로 차광수를 데리고 신안툰을 향해 떠나시였다. 그이께서는 얼마전 신안툰 형편에 대한 딱한 소식을 들으시였다. 마을은 본시 화목하고 학교도 잘 운영해나가던 동네였는데 조청산이나 김찬이들이 드나들면서 불시에 동네가 소란해지고 학교가 페교되였다는것이다. 학교에는 교원 두명이 있었는데 그들이 다 월파나 김찬이들의 영향밑에 들어가 들떠다니다가 한사람은 일제의 손에 잡혀가고 한사람은 민족주의자인 교장한테 쫓겨났다고 했다. 그래서 그이께서는 차광수를 신안툰에 보내시여 우선 페교된 학교를 일으켜세우고 종파들의 발밑에 짓밟힌 동네를 바로잡아 이끌어나가려고 계획하시였다. 김성주동지께서는 차광수와 함께 무연한 벌판을 걸어가시였다. 차광수는 권심이가 론문을 쓰는 이야기를 장황히 하였다. 김성주동지께서 론문의 결함을 지적해주고 돌아오신 뒤 달포동안이나 원고를 서류궤속에 넣어두고 책만 읽던 권심이 요새에야 다시 원고를 고쳐쓰기 시작하였다는것이였다. 그는 김성주동지의 지적이 옳다고 몇번이고 말하더라는것이다. 권심은 끼니도 설치고 잠도 안자기때문에 몸을 돌보라고 타이르면 분주하다고 소리를 지르고는 방안을 빙빙 돈다는것이였다. 어떤 때는 온밤을 뜰에 나가서 거닌다고도 했다. 차광수는 권심의 생활이 눈물겨운데는 있지만 고리타분하고 이끼가 끼였다고 말했다. 조선혁명이 지금 큰 앙양을 불러오기 위해서 몸부림을 치고있는데 창백한 얼굴로 서재속에 앉아 펜과 씨름이나 해서야 그것이 무슨 소용이냐는것이였다. 어쨌든 그는 이야기를 아주 잘했다. 일본에서 대학을 다니다가 왔다고는 하지만 대학생티라고는 하나 없고 어딘가 일에 다지운 로동자같은 느낌을 주었다. 관지뼈도 그렇게 두드러지고 손도 로동자들 손처럼 크고 험했다. 아마도 일본에서 로동절반으로 공부를 했기때문에 그렇게 된것인지도 몰랐다. 김성주동지께서는 그가 처음으로 찾아왔던 날 밤 그와 몇마디 말씀을 건늬여보시고는 이어 좋은 동무를 만났다는 생각을 하셨다. 그날밤 차광수는 그이의 앞에 앉아서 눈물을 글썽거리며 말했다. 《그저 지도만 잘해주오. 나는 한생을 혁명에 바칠 각오를 했소. 나는 일본에 건너가서 방황할 때는 직업이 없어서 울었소. 그러나 지금은 직업이 아니라 나에게 혁명이 없다면 그때처럼 울것 같소.》 차광수의 솔직한 말이 그이를 몹시 감동하시게 했다. 차광수는 매일밤 그이의 하숙으로 찾아왔다. 그리고는 쉴새없이 책을 읽었다. 그이께서는 차광수와 리론문제를 가지고도 여러번 이야기해보시였다. 그는 리론도 적잖게 깊이가 있었다. (좋은 동무야, 세계관도 바로섰어.) 혼자 이런 생각을 하며 기뻐하시였다. 그래서 농촌개척의 첫 일을 펼쳐놓으시려는 신안툰에 보낼 사람으로 차광수를 고르신것이였다. 《내가 어제두 이야기를 했지만 우리가 조선혁명을 잘해나가려면 지금 저 종파쟁이들의 피해와 여독을 우리의 조직적인 힘을 가지고 철저히 극복해내야 하오. 지금 신안툰에서 벌어진 사태를 보면 얼마나 엄중하오. 동네를 소란스럽게 만들고 학교를 페교시키구… 이런짓을 하면서도 저들은 밤낮 사회주의혁명을 한다고 기염을 올리고있소. 우리는 이것을 짓부셔버리면서 힘을 길러야 하겠소. 지금 우리에게 제일 중요한것이 대중속에 들어가 대중을 묶어세워 힘을 만드는 일이요.》 화창한 날씨였다. 하늘에선 노고지리가 우짖었다. 무슨 꽃인지 노란꽃들이 길가에 수없이 피여있는데 가는 바람에 향기를 풍겨왔다. 《독불장군이란 말도 있지만 몇몇 사람의 힘만으로야 어떻게 혁명을 하겠소. 인민이 주인이 되여 들고일어나야 혁명이 승리할수 있지 않겠소. 그러니 우리는 힘들더라도 인민이라는 대지에 든든히 발을 붙이고 서서 그들이 주인구실을 잘할수 있도록 힘을 키워주어야 하는거요. 우리 나라 실정을 놓고보면 농민들을 묶어세우는 문제가 아주 중요한것 같소.》 차광수는 발끝을 내려다보며 김성주동지의 말씀을 긍정하였다. 《그건 옳은 말이요. 인구의 8할을 농민들이 차지하고있으니까 그 8할만 묶어세워도 대단한 힘이지. 그러나 소농경리의 멍에에 얽매여있는 그들을 각성시키고 분발시킨다는게 간단한 일은 아닐거요.》 《물론이지. 그렇지만 우리는 힘들더라도 그 일을 해내야 하오. 저것보오. 저게 바로 농민이요.》 김성주동지께서는 말씀을 하시다말고 손을 들어 가리키시였다. 언덕너머 밭들에서 농민들이 김을 매고있다. 곡식이 자라지 않아서 김매는 밭이 조밭인지, 수수밭인지 알수 없다. 농민들은 먼지가 일어나는 밭고랑을 타고앉아서 툭탁툭탁 흙덩이를 깨며 호미질을 하고있다. 삿갓을 쓰고 김을 매는 농민도 있었다. 《저렇게 고생하지만 가을에 가서 다 털어바치고마오. 다 털어바치고는 빈손으로 나앉고마오. 그러면서도 아직 그 까닭을 잘 깨닫지 못하니 안타까운 일이요. 그런데 종파분자들은 그들을 깨우칠 생각은 안하고 허황한 소리를 쥐여치며 대중을 혼란속에 빠뜨리고있단말이요. 그러니 우리는 한시바삐 농민들속에 들어가야 하오.》 《내 힘껏 일해보겠소.》 차광수는 여전히 발밑을 굽어보며 걸음을 옮기였다. 쑥대가 자란 풀밭에서 메추라기가 날아올랐다. 차광수는 쑥대밑에서 기는 메추라기를 띠여보고는 그것을 때리겠다고 분주히 돌을 찾아 집어던지군했다. 그는 투박해보이면서도 아이들같은 천진한 측면이 있었다. 신안툰에 당도하자 김성주동지께서는 우선 학교로 찾아가시였다. 학교는 댓간짜리 길다란 외채집이였다. 넓은 마당에서 아이들이 모여들어 공을 차고있었다. 《가만있자. 저게 무슨 공인가?》 김성주동지께서는 아이들의 발끝에서 굴고있는 공을 바라보며 우뚝 서시였다. 얼른 걸어가 그 공을 들어보시였다. 가죽공이 아니라 새끼로 그물을 떠서 만든 벼짚공이였다. 어떻게 잘 만들었는지 얼핏 보기에는 가죽공같기도 했다. 《이 돌같이 무거운걸 가죽공처럼 차고있소. 이 애들한테 가죽공을 안겨주면 얼마나 잘 차겠소?》 그이께서는 공의 무게를 추썩추썩 가늠해보시다가 아이들에게 물으시였다. 《그런데 너희들은 아직 공부를 못하느냐?》 《선생이 없는데 공부를 어떻게 해요.》 《그래 교장선생님은 어데 계시냐?》 《집에 계셔요. 어서 공 주세요.》 《자, 누가 먼저 차나 보자.》 김성주동지께서는 공을 힘껏 공중으로 올려뜨리시였다. 아이들은 아찔하게 솟아오른 공을 서로 먼저 차겠다고 어깨로 밀치며 모여들었다. 조그만 머리가 불쑥 올려솟더니 떨어지는 공을 이마로 툭 받아서 저만치 나가 떨어지게 하였다. 마당에서는 웃음소리가 터졌다. 김성주동지께서도 웃으시고 차광수도 턱을 제끼고 껄껄 웃었다. 아이들은 거의 다 무명 중의적삼 아니면 바지저고리를 입었다. 양복을 입은 아이란 하나도 없다. 어떤 아이는 걷어올렸던 바지가 도로 풀려내려와 짚신 신은 발끝에 짓밟히는데 그래도 그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공만 차댄다. 아이들은 온통 땀에 떴다. 김성주동지께서는 차광수와 함께 빈 학교를 돌아보시였다. 학교주변이 어수선했다. 마당에 비자루를 대본지도 오랜것 같았다. 아이들이 벼짚공을 만드느라고 그랬는지 마당 한쪽엔 벼짚이 어지럽게 널려있고 나무단도 되는대로 가려져있었다. 아마 수직실에 때는 나무인것 같았다. 사무실출입문엔 큰 자물쇠가 잠겨져있었다. 유리문을 해단 창문으로 들여다보시니 사무실안은 알뜰히 꾸려져있었다. 교장의 책상인듯한 큰 책상외에 작은 책상이 두개 더 놓여있는데 그건 아마 교원들의 책상인것 같았다. 천장과 벽은 모두 도배를 하고 한쪽 벽에는 커다란 조선지도를 걸어놓았다. 그리고 다른 한쪽 벽앞에는 새로 짜서 노랗게 대우를 낸 책궤들이 주런이 놓여있었다. 무엇이 들어있는지 책궤마다 자물쇠를 잠가놓았다. 《조선민족은 어디 가서나 이렇게 산단말입니다. 자식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알뜰하게 학교를 꾸리거든요.》 김성주동지께서는 곁에서 발돋움을 하며 들여다보는 차광수에게 말씀하시였다. 학교를 돌아보시고난 그이께서는 아이 하나를 앞세우고 교장네 집으로 찾아가시였다. 《교장선생님, 안녕하십니까?》 《네, 어데서 오시는분들인가요?》 김성주동지께서 인사를 하시자 머리를 동이고 자리에 누워있던 교장이 일어나앉으면서 이렇게 물었다. 표표한 얼굴에 흰수염을 갈라붙인 로인인데 차광수에겐 대뜸 호랑이같은 무서운 인상을 느끼게 했다. 《저희들은 길림에서 왔습니다. 며칠전 선생님께 편지를 보낸 사람입니다.》 《온 이런 변이 어데 있나? 나는 그 고마운 편지를 받고 내가 먼저 젊은이를 찾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댔는데 이렇게 먼저 오셨구려. 고맙소. 어서들 들어오시오.》 교장은 불시에 화색이 돌며 머리에 동였던 수건을 풀고 자리를 거두었다. 김성주동지께서는 차광수와 함께 방으로 들어가시였다. 그이께서는 병색이 푹 배인 교장의 얼굴을 측은한 심정으로 바라보며 걱정스럽게 물으시였다. 《몸이 매우 불편하신것 같습니다.》 《아니요. 누워서 앓을만한 병이 아니요. 아, 고맙소. 어데 이렇게 조선민족의 불행을 쫓아다니며 구원해주는 사람이 있겠소? 이렇게 떨어져있는 촌학교의 곤난한 문제에 대해서까지 그렇게 살펴주니 무어라고 할말이 없소.》 《선생님, 이곳 학교의 불행도 조선사람의 불행인데 우리 젊은 사람들이 돌보지 않으면 누가 돌보겠습니까? 이런 일은 우리 젊은 사람들이 떠메야 할줄 압니다.》 《옳은 말이요. 선대의 불행을 넘겨받았으니 그 불행을 누가 감당하겠소?》 교장은 두눈을 슴벅거리며 말을 계속했다. 《사실 나는 독립군풍상을 겪다가 늙마에 이 학교라도 하나 붙들고 독립에 보탬을 주려는 생각으로 살아왔는데 학교가 이 지경이 되고보니 힘이 진했소. 도저히 이 난관을 늙은 몸으로는 헤쳐나갈수가 없어서 그저 한숨을 짓고 앉아있었소.》 《선생님, 그렇게 힘이 꺾여서야 되겠습니까? 지금 학교를 잃어버린 아이들이 마당에 모여들어서 교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있습니다. 저 아이들에게 학교문을 빨리 열어주지 않는다면 우리가 그 무슨 조선의 넋을 가지고 잃어버린 나라를 찾기 위해서 일한다고 하겠습니까?》 김성주동지의 말씀은 초약냄새에 절은 방안의 텁지근한 공기를 대번에 정화시켜주는것 같았다. 《옳은 말이요. 나두 그런 생각으로 여태 일해왔소. 그런데 이번 사건은 어떻게 할수가 없었소. 그 사회주의자라는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이렇게 만들어놓지 않았겠소? 사실 우리 학교에 선생으로 있던 사람들이 모두 똑똑한 사람들이였소. 그런데 사회주의물을 먹기 시작하더니 학교일에 열성이 없고 사람들이 방정치 못하게 되더군.》 교장은 먼저 교원들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히 하였다. 교원 한사람은 의주사람인데 자기 고향에 가서 주먹을 휘두르며 사회주의연설을 하다가 붙잡히우고 다른 한사람은 간도사람인데 아무래도 사회주의자를 그냥 두었다간 학교에 루가 미칠것 같아 내보냈노라고 하였다. 김성주동지께서는 사람이 있으면 교원을 아예 두어명 데리고 오겠는데 사람이 없어서 차선생 한사람만 데리고 왔노라고 말씀하시였다. 《한분이면 어디요. 지금 동네사람 몇이 교원을 구하자고 각지로 돌아다니며 수소문을 하고있는 형편인데 이렇게 선생을 데리고까지 와주니 무어라고 말할수가 없소. 동네사람들이 알게 되면 모두 춤을 추며 기뻐할거요.》 《이 차광수선생은 일본에 건너가서 공부를 하고 온분입니다. 평북 룡천이 고향인데 학교를 중퇴하고 나와서는 서울에 있다가 길림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이곳에 와서 수고해달라고 했습니다.》 《고맙소. 참 차광수선생이 우리 학교에 오신건 꿈같은 일이요. 앞으로 수고를 해주시오.》 《수고가 무슨 수고이겠습니까?》 차광수는 대꾸를 하며 공연히 허리까지 굽석해보였다. 그는 이 호랑이같은 령감쟁이가 앞으로 자기를 또 사회주의자라고 내몰지나 않을가 하는 위구심도 들었다. 김성주동지께서는 한참 더 앉아서 학교가 운영되여온 래력까지 물으시였다. 교장의 말에 의하면 학교는 독립군들이 세웠는데 교원은 교장의 감독밑에서 거의 민족주의계렬 사람들이 들어와서 교편을 잡군하였다는것이다. 교장을 만나고 나오신 김성주동지께서는 차광수를 데리고 마을을 돌아보시였다. 마을을 돌아보시니 마당에 조짚낟가리가 있는 집이란 하나도 없다. 나무낟가리를 가려놓은 집도 한집 없었다. 길가에서 뛰노는 조무래기들은 거의 헐벗다싶이하였다. 그이께서는 농민들을 만나기만 하면 이야기를 꺼내시였다. 여기 사람들은 누구의 땅을 부치는가? 작년에 농사는 어떠했으며 소작료는 몇할씩이나 바쳤는가? 지금 량식걱정이 없이 살아가는가? 식구는 몇이고 아이들은 학교에 보내는가? 안물으시는 말씀이 없다. 농민들은 어떤 젊은이이기에 자기네 형편을 이렇게도 각근히 물어주는가싶어 모두들 눈이 화등잔같이 커져서 그이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뒤마을 맨 끝집에 가니 파뿌리같은 머리에 손가락만한 상투를 튼 로인이 터밭에 앉아서 김을 맸다. 김성주동지께서는 로인의 곁에 들어앉으시며 로인께서 이렇게 터밭에 나앉아 김을 매시니 집에 누가 일할만한 사람이 없느냐고 물으시였다. 《있습지요. 김을 맬놈이 없기야 하겠습니까. 그러나 맬놈이 매줘야지 이렇게 터밭에 범이 새끼치도록 풀이 무성해도 안매주는걸 어떻게 합니까. 그놈이 지금 허파에 바람이 들어서 이렇게 늙은 사람까지 고역을 치르게 합니다.》 《그건 누구에 대한 말씀입니까?》 《나두 젊은이들 같은 아들이 있답니다. 그런데 저놈이 당장 사회주의를 하고 땅을 노나가진다고 하면서 이 부지깽이까지 뛰는 바쁜 세월에 매일 들떠 돌아다니고있습니다. 글쎄 어느 시럽의 아들놈이 그런 충동질을 하는지 괘씸해서 견딜수 없습니다.》 로인은 가죽만 남은것 같은 목에 피대를 세우며 떠들었다. 그는 말을 계속했다. 《지금 이 동네가 어떻게 되였는지 압니까? 온통 오금을 못펴고 살아갑니다. 그 화목하던 동네에 금이 가고 편이 갈라지고 쩍하면 젊은놈들이 타도를 먹인다 친다 하고 떠들고있습니다. 제 부모들도 그녀석들을 어떻게 못하고있습니다. 이때문에 학교두 문을 닫았습니다. 글쎄 그렇게 참하던 선생들까지 섭쓸려 돌아가더니 학교를 저꼴로 만들어놓고는 다 없어져버렸습니다.》 로인이 한창 떠드는데 키가 크고 목이 쑥 뽑힌 청년이 손에 책을 말아쥐고 마당으로 들어섰다. 《아버지, 무얼 그렇게 밭에 나가앉아서 김을 매시며 야단입니까? 어서 일어서십시오.》 로인은 못들은척하며 호미질을 했다. 아들에게 무어라고 호통을 칠 잡도리같기도 했다. 아들은 징겅징겅 터밭으로 걸어들어왔다. 그는 김성주동지와 차광수를 보더니 벌찍 웃으며 허리를 굽석해보인다. 《길림에서들 오셨다지요? 인제 앞마을에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네, 앞마을을 돌아 지금 여기까지 왔는데 댁 아버님이 로인이신데 김을 매는군요. 그래서 우리도 지나가다가 걱정을 하는참입니다.》 김성주동지께서 이렇게 대답하시자 아들은 또 버덩이가 뵈도록 웃었다. 《우리 아버진 본시 고집이 세답니다. 제가 늘 일을 하지 말라고야 하지요. 그러나 어디 제 말을 듣습니까? 아버지, 어서 일어서십시오.》 그는 아버지곁으로 다가갔다. 그러더니 로인의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들어일궜다. 《이걸 놓지 못하겠니? 그래 범이 새끼치게 된 밭을 버리고 돌아다니는데가 어데냐? 저… 저 까마귀골 수수밭은 언제 맬테냐? 아직 아시를 쳐주지 못했으니 그놈의 밭에서 곡식을 먹을테냐?》 《글쎄 인제 다 매요.》 《매긴 언제 맨단말이냐? 이놈, 네가 그러고다니다가 집안이 안망하겠니?》 《원 아버지두, 집안이 어디 망할데가 있어요? 다 망한 집안인데 뭘 또 더 망해요?》 《글쎄, 이걸 놔라!》 로인은 끌려들어가지 않겠다고 한참 밀치락닥치락 했다. 그바람에 아들의 손에 들려있던 《사회주의 대의》가 땅에 떨어졌다. 김성주동지께서 그 책을 집어들며 로인더러 어서 들어가시라고 하며 아들의 훈수를 들어주시였다. 그제야 로인은 겨우 아들에게 이끌려 마당을 거쳐 방안으로 들어갔다. 《엥이, 땀이 다 나는군.》 방안에서 나온 아들은 저고리소매로 이마를 훔치며 두덜거렸다. 얼굴이 물오이같이 길쭉하고 두눈이 검실검실했다. 그 검실검실한 눈때문에 키는 장대같애도 흉한 인상은 주지 않았다. 《<사회주의 대의>를 읽습니까?》 《네, 읽습니다. 이 시대 청년으로서 그런것 한줄 못읽어서야 되겠습니까? 프로레타리아혁명이 박두했는데…》 김성주동지의 물음에 아들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김성주동지께서는 허허하고 웃으시였다. 차광수도 낯을 붉히며 웃었다. 확실히 허파에 바람이 들어 돌아치고있는 청년이 분명했다. 《이름이 정금석입니까?》 그이께서는 책가위에 적혀있는 이름을 들여다보며 물으시였다. 《네, 정금석입니다.》 《이런 책을 읽는 동무들이 이 동네에 몇명이나 있습니까?》 《한 열댓명 있습니다. 이게 정수분자들입니다.》 《정수분자들이라니요?》 《프로레타리아혁명의 선봉에 설 사람들이란말입니다.》 《프로레타리아혁명은 언제 일어납니까?》 《우리는 곧 일어나는줄로 알고있습니다. 참, 길림에서 오셨다니까 월파선생이나 김찬선생을 알고계시지 않습니까?》 정금석은 주위를 빙빙 돌아보며 그것만은 매우 조심스러운 태도로 물었다. 《그래 그 선생들이 혁명을 일군답디까?》 《그렇지요. 프로레타리아트가 헤게모니를 잡고 명령만 내리면 부르죠아지는 일시에 타도되고만답니다. 그러면 로동자는 공장을 가지게 되고 농민은 땅을 가지게 된답니다. 이게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우리 아버지가 지금은 나를 꾸짖고계시지만 그때에 가선 땅을 타가지고 나앉아 야, 과연 혁명이 좋기는 좋구나 하고 무르팍을 칠것입니다.》 그 소리에 김성주동지께서는 또 껄껄 웃으시였다. 정금석은 김은 종시 매지 않고 저녁에 땔 나무가 없다고 웃통을 벗어붙이더니 장작을 팼다. 키도 크지만 어깨도 쩍 벌어졌다. 도끼질을 할 때마다 둥근 어깨팍이 구핏구핏 움직였다. 김성주동지께서는 정금석의 말이며 행동거지를 두고 깊은 생각에 잠기시였다. 《조청산이나 김찬이들의 죄악이 크오.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청년들을 저렇게 들뜨게 만들어놓았으니 얼마나 황당한 소리를 하고있소? 저런 청년들을 다 옳은 길로 이끌어 들여세워야 하오. 절대로 조청산이나 김찬이들의 영향밑에 있었다고 딱지를 붙여선 안되오.》 김성주동지께서는 정금석이네 집에서 나와 걸으며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옳은 말이요. 아마 가난한 살림살이에 땅을 나누어준다니까 그 소리에 귀가 떠서 들떠있는것 같소.》 《그렇소. 그가 땅을 가지겠다는 욕심이야 나무랄수 없지 않소. 바로 저런 청년이 자각만 하면 훌륭히 싸울수 있소.》 김성주동지께서는 이날밤 차광수와 함께 교장선생네 집에서 류숙하시였다. 교장선생은 밤새 자기가 독립운동에 나서서 만주들판을 무른메주 밟듯하고 돌아다니며 고생하던 이야기를 하였다. 그는 처음에는 홍범도의 《포수단》을 따라다니다가 그것이 해산되자 그다음에는 이리저러한 독립단체들에 관계를 가지면서 주로 대중계몽사업과 교육사업에 힘써왔다고 했다. 인제 자기의 일생이라는것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죽는날까지 학교나 튼튼히 붙잡고 나갈터이니 젊은이들이 잘 도와달라고 했다. 이튿날 새벽이였다. 차광수는 일본에서 신문배달을 하던 습관이 있어서 문살이 푸름푸름해지기전에 눈을 떴다. 곁잠자리를 돌아보니 김성주동지께서 안계시였다. 차광수는 얼른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밖은 아직 어둑어둑하였다. 바깥마당을 한참동안 왔다갔다하며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셨다. 농촌으로 나오니 무엇인가 깨끗이 미역을 감고난것 같은 기분이 들고 몸이 거뜬해서 신문배달을 할 때처럼 한바탕 달리고싶기도 했다. 김성주동지께서는 벌써 어데 갔다 오시는지 방아간 저쪽 길목으로 걸어들어오셨다. 《광수동무, 벌써 일어났소?》 《아니 나보다 성주동무가 먼저 일어나지 않았소?》 《난 저 앞벌이 이 동네사람들의 농토라고 하기에 땅이 어떤가고 잠간 나가서 살펴보고 오는길이요.》 《벌써 앞벌에 갔댔단말이요?》 《앞벌이 다리만 하나 건너서면 있으니까. 자, 우리 학교에 나가서 운동장을 거두고 그 주변에 꽃밭이나 하나 만들기요. 사나운 바람이 지나간 쓸쓸한 마당에 꽃밭을 꾸려놓으면 아이들이 얼마나 기뻐하겠소? 그리고 꽃밭이란 아이들의 정서교양에도 아주 좋은것이 아니겠소.》 《참 그렇게 하는것이 좋겠소. 나는 무엇이 척척 생각나지 않아서 탈이요.》 《허허, 뭐 특별히 생각이라고 할것이 있소? 그러나 일을 하는데는 자기가 무엇을 위해서 어떻게 움직이겠는가 연구는 늘 하고있어야 하오. 그게 무엇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겠소?》 《옳은 말이요.》 차광수는 안마당으로 들어갔다. 그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연장을 찾았다. 어둑시근한 외양간안으로 쑥 들어가더니 괭이와 쇠스랑을 메고 나왔다. 《가만있자. 비자루와 호미도 있어야 할텐데…》 그는 중얼대며 괭이와 쇠스랑을 토방앞에 세워놓고는 또 여기저기 다니며 찾아보았다. 그러더니 굴뚝 개자리 있는데 가서 호미 두가락과 비자루를 얻어들고 나왔다. 《이거면 되겠소?》 《그 연장이면 충분하겠소.》 김성주동지께서는 연장들을 노나메고 앞서서 걸어나가시였다. 동쪽하늘에 아침노을이 붉게 타올랐다. 지구너머에서 불길이 타오르는것 같이 요란했다. 《좋은 려명이요. 새벽이라는건 언제나 좋거던.》 차광수의 말이였다. 하늘은 점점 더 장엄하게 불타올랐다. 지금이라도 곧 태양의 입술이 새빨갛게 올리밀것 같았다. 학교마당으로 나오신 김성주동지께서는 양복저고리를 벗으시였다. 차광수도 웃통을 벗고 와이샤쯔바람으로 나섰다. 그이께서는 어수선한 학교주위를 거두기 시작하시였다. 나무단들도 멀찍이 들어내다가 쌓아놓고 짚검불들도 그러모아서 한아름씩 안아서는 저편 밭머리로 가져가셨다. 차광수는 학교토방우에 있는 굵은 통나무를 메고 뒤울안쪽으로 씽씽 달렸다. 아마 널을 켜서 쓰자고 한 나무들인것 같다. 학교주변을 다 거두고나신 김성주동지께서는 차광수와 함께 토방과 운동장을 깨끗이 쓸어내시였다. 그러고나서야 운동장주변에 꽃밭을 꾸리기 시작하시였다. 김성주동지께서는 괭이로 땅을 파시고 차광수는 쇠스랑으로 흙을 팠다. 다지운 땅이 되여서 쇠스랑이 잘 들지 않았다. 차광수는 한참 땅을 파다가 말고 운동장기슭에 있는 큰 말뚝을 뽑기 시작하였다. 《이건 무슨 말뚝을 이렇게 깊이 박아넣었을가? 여길 소마당으로 쓰진 않았을텐데.》 《둘이 뽑아봅시다.》 김성주동지께서도 와이샤쯔소매를 걷어올리고 말뚝을 잡으시였다. 《영차. 영차.》 차광수가 소리를 질렀다. 그이께서도 구령을 치시였다. 코가 좀 작은 차광수는 숨이 차서 쐑쐑소리를 뿜었다. 《좀 쉬자구.》 뜻밖의 힘내기에서 차광수가 먼저 항복을 했다. 《혁명을 하자면 이런 일도 하게 되는거요.》 김성주동지께서도 땀을 닦으며 웃으시였다. 그이께서는 또 말뚝을 거머쥐시였다. 차광수도 달려들었다. 《영차, 어영차! 버쩍 더 버쩍. 이야아!》 말뚝은 긴 무우 뽑혀나오듯 스르르 뽑혀나왔다. 땅에 군드러진것을 보니 땅속에 들어갔던 부분이 한발은 되는것 같았다. 물에 팅팅 불어서 혼자힘으로는 들어옮기기도 어려웠다. 말뚝을 뽑고는 또 땅을 파기 시작하였다. 한창 땅을 파고있는데 손님들을 잃어버린 교장선생이 허겁지겁 학교운동장으로 찾아나왔다. 《하, 이런 변고가 있소? 학교주변을 거울같이 만들었구만. 그런데 이 땅은 어째서 뚜지오?》 《학교운동장이 너무 허전해서 꽃밭을 만들자고 합니다.》 김성주동지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로인은 젊은이들의 생각이 다르다고 하면서 기뻐했다. 《인제야 이 동네에 해발이 퍼지는것 같소! 자, 그만들 하구 어서 들어가 아침들이나 들자구.》 《선생님께서 먼저 들어가십시오. 저희들은 이걸 좀더 뚜져놓고 들어가겠습니다.》 《아니, 아침을 하고 나와서 뚜져도 될것 아니요?》 《아침밥은 천천히 먹어도 됩니다. 손을 붙인김에 꽃밭을 만들어놓고 들어가야지요.》 《허허, 온 이렇게 고마울데가 어데 있겠소? 그럼 내 얼른 들어갔다가 나오리다. 난 오늘아침 그야말로 무릎을 꿇고 절을 하고싶은 심정이요.》 로인은 이런 말을 하면서 돌아서 휘적휘적 걸어갔다. 교장선생이 들어가서 얼마 안되여 여러명의 아이들이 달려왔다. 《흙은 왜 이렇게 파나요?》 《응, 꽃을 심으려고 그런다.》 김성주동지께서 대답하시였다. 《교장선생님과 물어봤어요?》 《응, 물어보구말구. 우리가 너의 학교 선생이 됐단다.》 《정말이예요? 그럼 학교가 다시 열리나요?》 《열리구말구. 새 선생이 왔는데 학교가 안열리겠니?》 《거짓말 아니예요?》 《거짓말이라니? 아무렴 커다란 사람들이 너희들보구 거짓말하겠니.》 《저 목도군같은 아저씨두 선생이나요?》 아이들은 지금 저편에서 굽석굽석 흙을 파고있는 차광수를 가리키며 물었다. 《그래 그래. 그 목도군이 정말 너희들 선생이란다.》 김성주동지께서는 땀을 씻으면서 웃으시였다. 아이들이 환성을 지르며 껑충껑충 뛰여올랐다. 너무 좋아서 서로 붙안고 돌아가기도 했다. 한 아이는 마을쪽에서 뛰여나오는 아이들을 보고 소리쳤다. 《얘들아, 학교가 다시 열린대.》 《그게 정말이냐? 선생이 어데 왔다던?》 《이분들이 우리 학교 선생이래.》 《그래? 너 어떻게 아니?》 키가 큰 아이가 소리친 아이의 옆구리를 찌르면서 눈을 껌벅껌벅하였다. 《내가 물어봤지뭐.》 그러자 아이들이 까르르 웃음을 터치였다. 김성주동지께서는 아이들에게 꽃모도 떠오고 물도 길어오라고 시키시였다. 아이들은 와ㅡ 함성을 지르며 마을로 흩어져갔다. 애 하나는 차광수의 호미를 뺏어쥐더니 뻑뻑 흙을 파제꼈다. 키가 작은것이 어떻게 다부지게 파는지 차광수보다 더 잘 파는것 같았다. 학교가 다시 열린다는 소리가 퍼지게 되자 숱한 아이들이 꽃모를 떠서 학교마당으로 날라왔다. 어떤 아이는 조그만 알동이에 물을 퍼담아들고 달려왔다. 물을 드레박으로 나르는 아이도 있었다. 우물과 운동장사이가 적잖게 먼데 그사이에 아이들이 개미진처럼 늘어서서 고아댔다. 물은 길어오는대로 뚜져놓은 땅에다 활활 부어던졌다. 차광수는 발을 벗고 들어서서 뚝을 지었다. 김성주동지께서도 발을 벗고 들어서시였다. 어떤데는 물을 너무 쳐서 발가락짬으로 진창이 고불거리며 삐여져 올라왔다. 《얘, 거긴 그만 쳐라. 저런 저런…》 그이께서는 아예 동심세계로 돌아가 맨발로 걸으면서 물그릇을 받아서는 부으시였다. 《자, 이 귀퉁이만 적시면 다 된다. 빨리…》 그이의 재촉을 받고 물초롱을 든 아이들이 왱강댕강 소리를 내면서 우물 있는쪽으로 달려갔다. 그저 넘어지며 웃으며 야단들이였다. 《자, 인젠 심어보자. 첫줄엔 채송화를 심고 그담엔 키가 낮은 봉선화, 그담엔 백일홍, 그담엔 접중화 이런 순서로 심는게 어때?》 김성주동지께서는 아이들에게 물으시였다. 《우리들이 렬지어 서는것 같네. 꼬마는 앞에 서고 키다린 뒤에 서고… 해해해.》 아이들은 모두 짝자꿍을 하며 웃었다. 그이께서는 꽃을 한고랑씩 심어나가시였다. 차광수도 꽃을 심기 시작하였다. 한창 꽃을 심고있는데 운동장옆 큰길로 마차 한대가 달려왔다. 《아니, 이게 누구요, 회장동무 아니요?》 이런 소리가 나더니 마차가 꽃밭옆에 와서 멎어섰다. 마차안에서는 뜻밖에 월파와 김찬이가 내렸다. 《이거 어떻게 된겁니까?》 《우린 동만에서 오는길이요.》 김찬의 대답이였다. 《아니, 길림에 있는줄 알았는데 동만엔 언제 갔댔습니까?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십니다.》 《허허허, 사회주의운동이 아니요. 한곳에만 정착해있어서야 일이 되오? 그런데 회장동무는 여기서 뭘하오?》 월파 조청산이 꽃밭으로 다가오며 물었다. 《꽃을 심습니다.》 《아, 꽃을… 과연 랑만이 있는 젊은이들이군. … 그러나 그런 목가적인 취미로 살 시대는 아닌것 같은데.》 《옳습니다. 우리는 바로 그렇게 목가적으로 살 시대가 아니기때문에 꽃을 심습니다. 하늘에서 꽃을 피울수는 없지 않습니까? 땅에 뿌리를 박아야지요.》 월파는 말귀를 알아듣지 못해서 대답을 못했다. 《그래 그동안 길림에는 별일이 없었소?》 김찬이 물었다. 《별일이 없었습니다.》 《참, 안창호씨가 아직 석방되지 못했소?》 《석방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회장동무는 어떻게 여길 왔소?》 또 월파가 묻는 말이였다. 《오늘은 일요일이고 해서 농촌구경을 나왔습니다.》 《거참 좋은 일이요. 젊었을 때 많이 보아두는것이 나쁘지 않소. 회장동무, 인제 조선혁명은 자기 궤도에 들어선것 같소. 국제당에 갔던 우리 동무가 지금 길림에 와서 간도에 가있는 우리들에게 전보를 쳤소. 좋은 소식을 가지고 온가보오. 난 인제 서울로 가야 하겠소.》 《수고를 하겠습니다. 서울로 간다, 간도로 간다, 원동으로 간다, 참 날개라도 있으면 좋겠군요.》 그이께서는 한바탕 소리내여 웃으시였다. 월파며 김찬이들도 웃었다. 그러나 그들은 말씀속에 섞인 은근한 비판을 감촉했는지 얼굴들이 붉어졌다. 그들은 김성주동지와 헤여졌다. 아마도 밤새 마차를 타고 달려온것 같았다. 둘이 다 얼굴에 수척한 기색이 나타나있었다. 조청산의 얼굴이 더욱 그러했다. 그는 때가 오른 낡은 춘추복에 캡을 썼는데 그이께서 처음 만났을 때보다 눈에 띄게 축이 들어보이였다. 월파와 김찬이 마차에 오르자 두필의 말은 코김을 뿜으며 달리기 시작하였다. 그래도 윌파는 마차부에게 더욱 채찍을 후리라고 보채였다. 그는 정말 날개가 있으면 날아가고싶기라도 한듯 모서리가 닳아진 가방을 옆에 끼고 앉아서 온몸을 조마조마하게 움직였다. 그는 서울에서 엠엘파와 자기 파인 화요파사이에 권력쟁탈의 싸움이 벌어져있는 이때에 국제당이 자기네 파를 정통파라는 승인만 했다면 당장 서울로 달려올라가 엠엘파세력을 란도질해서 집어던질 생각을 했다. 그래서 전보를 받는 즉시로 해란강버들밭에 펼쳐놓았던 지방 《야체이까》책임자들의 강습회도 대충 끝내고 부랴부랴 길림으로 달려오는것이였다.
오래동안 닫겨있던 학교문은 오늘 다시 열리였다. 김성주동지께서도 교편을 잡으시고 차광수도 교편을 잡았다. 교장선생은 그저 사무실에 앉아서 주름살이 펴진 얼굴로 담배만 피웠다. 그는 이 자랑스러운 일을 빨리 동네사람들에게 알리고싶었다. 그러나 교장선생이 알리기전에 벌써 소문은 온 동네에 쫙 퍼졌다. 청년들, 아낙네들, 로인들이 학교가 터지게 모여들었다. 그들은 웅성웅성하며 새로 온 선생들이 글 가르치는 구경을 했다. 김성주동지께서 가르치시는 교실문밖에도 사람들이 가득 모여서서 들여다보고 차광수가 가르치는 교실문밖에도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서 들여다보았다. 서로들 발돋움을 하며 구경을 했다. 《이게 무슨 지도입니까?》 김성주동지께서 칠판에 지도를 그려놓고 물으시였다. 《조선지도입니다.》 아이들이 일제히 대답하였다. 《백두산은 어데 있습니까?》 《함경도에 있습니다.》 《한나산은 어데 있습니까?》 그러자 학생들은 경상도에 있다고도 하고 전라도에 있다고도 하며 법석 끓었다. 창구로 들여다보는 사람들이 얘, 제주도다 제주도다 해도 아이들은 저희들 끓는 소리에 알아듣지 못했다. 《모르겠습니까? 한나산은 조선의 남쪽끝에 있는 섬 제주도에 있습니다. 제주도… 알겠습니까?》 《네.》 《선생님, 제 한가지 묻겠습니다.》 창밖에서 들여다보던 사람들속에서 수염이 시꺼먼 농민이 얼굴을 들이밀며 말했다. 아이들이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데 우리 아들놈은 한글이 리조시대에 생겨났다고 했고 나는 고려때에 생겼다고 했는데 어느게 맞습니까?》 《그건 아들의 말이 옳습니다.》 아이들이 손벽을 치며 또 웃어댔다. 교실밖에서 웅성거리는 사람들도 무르팍을 치며 웃었다. 그들은 선생이 인끔도 잘나고 말씀도 잘한다고 감탄했다. 어쨌든 오늘은 마을이 하나의 대경사를 맞이한듯 하였다. 안팎에서 마을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아이들은 하늘로 날아오를듯 기뻐하였다. 글을 가르치고난 김성주동지께서는 교장과 하직인사를 하려고 사무실로 들어가시였다. 교장은 동네사람들이 들끓는 마당을 내다보며 안절부절 못해했다. 《어서 들어와 앉소. 차선생은 마당에서 동네사람들과 사귀며 노는것이 꼭 어린아이들 같은데가 있구만. 내가 지금 창문으로 내다보며 혼자 자꾸 웃고있소. 아, 참 즐겁소. 나는 한평생 이렇게 즐거워본 날이 없소. 아마 지금 마당에 모여든 동네사람들의 심정도 모두 그럴줄 아오.》 《선생님, 해가 지는데 저는 길림으로 떠나야 하겠습니다.》 《아니, 떠나다니? 그럴 법이 있소? 난 그래도 두 젊은이가 다같이 이 학교에서 교편을 잡아주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는 생각까지 했소. 물론 이것이야 내 주책없는 욕심이긴 하지만… 그런데 오늘저녁엔 떠나지 못하오. 떠나더라도 하루밤 더 쉬고 래일 떠나시든지 해야 하오.》 《선생님, 저두 학교에 다니는 몸인데 어떻게 그렇게 하겠습니까. 그리고 또 오늘밤으로 장두촌에 들려야 할 일이 있습니다.》 《온, 이런 섭섭할데가 어디 있을고? 사정이 그렇다는데야 내가 젊은이들 대사를 어기도록 어떻게 만류하겠소?》 《선생님, 앞으로 자주 오겠습니다.》 《꼭 와주시오. 자주 와서 우리 학교의 사업을 돌보아주시오. 난 솔직히 이야기를 하지만 처음에 편지를 받을 때도 그랬고 어제 만났을 때도 반갑긴 하면서도 혹시 젊은이들이 사회주의자나 아닌가 해서 적잖게 의심도 가지고있었소. 그러나 어제 오늘 젊은이들이 하는 일을 두고보니 내 의심이 부질없는것이였다는것을 느끼게 되오. 난 인제 젊은이들을 크게 믿고 이 학교의 무거운 짐을 맡기고싶소.》 《선생님, 고맙습니다. 차선생은 물론 학교에 있게 되는것이니까 말할것이 없지만 저도 이 학교의 일에 대해서는 앞으로 힘자라는껏 노력하겠습니다. 그런데 선생님…》 김성주동지께서 잠간 말씀을 끊으시며 교장의 얼굴을 바라보시였다. 《무슨 말이요?》 《저는 차선생을 학교에 남기고 가면서 한가지 중요한 말씀을 드리고 가자는 생각을 했었는데 말이 난김에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어서 말하오.》 교장은 책상우에 있는 담배갑을 끌어가며 말했다. 《선생님, 우리들은 공산주의자들입니다. 놀래실줄 알지만 이것을 밝히고 가는것이 옳겠기에 말씀을 드립니다.》 《그게 무슨 말이요? 젊은이들이 공산주의자라니?》 《그렇습니다. 저희들은 지금 조선독립을 위해서 싸우는 공산주의자들입니다.》 《그럼 저… 저 월파와 같은…》 《그 사람들은 우리와 관계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선생님은 지금 공산주의를 잘못 리해하고계십니다. 차츰 아시게 되겠지만 공산주의야말로 불행한 조선인민을 행복의 길로 이끌어갈 가장 옳은 주의입니다.》 《으음…》 그이께서 그처럼 진지하게 말씀하시였으나 교장은 얼굴빛이 변해서 턱을 흔들었다. 《선생님이 당장 우리를 리해하지 못하리라는것은 짐작합니다. 지금 공산주의자라고 하는 사람들가운데는 저들의 정치적야욕을 위하여 공산주의의 진리를 외곡하여 떠들며 청년들을 현혹시켜서 혁명에 해독을 주는 사람들도 있다는것을 아셔야 합니다. 그러기때문에 이 모든것을 갈라보지 않고는 진정한 공산주의를 리해하기 어려울것입니다.》 교장은 말이 없었다.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해보는것 같은 표정이였다. 《사실 차선생이 이 학교의 교단에 서게 되는것은 솔직히 말씀드려서 아이들을 가르치는데도 목적이 있지만 이 동네사람들을 하나의 화목한 집단으로 꾸리고 일제를 내모는 투쟁에 불러일으키자는데도 목적이 있습니다. 제가 바라는것은 교장선생님께서도 앞으로 차선생의 일을 적극적으로 도와달라는것입니다. 전 선생님께서 꼭 우리의 일을 긍정해주고 도와주실줄 믿습니다.》 교장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그러더니 얼마후에야 무겁게 한마디 했다. 《나는 젊은이의 말이 꼭 꿈만 같은 생각이 들뿐이요.》 《물론 그러실수 있습니다. 저도 선생님의 그 말씀에 리해가 갑니다. 그러나 우리는 옳은 일을 하자는 생각을 가지고왔기때문에 조금도 주저없이 우리가 공산주의자라는것에 대해서도 말씀드리고 선생님께 부탁도 드리는것입니다.》 교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어찌할바를 모르고 서성거렸다. 김성주동지께서는 교장에게 다시한번 차광수의 사업을 잘 도와달라고 말씀을 하신 뒤에 밖으로 나오시였다. 교장은 후들거리며 방안을 왔다갔다하다가 얼마후에야 자기 자리로 돌아가 큰 몸집을 집어던지듯 들어앉았다. 어쩐지 된방망이에 맞은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저렇게 훌륭한 젊은이가 공산주의자라니? 아무래도 모를 일이였다. 그 언행과 인품의 너그러움은 말할것이 없고 틀림없이 큰 경륜을 가지고 무슨 일을 시작하는것 같은 사람인데 과연 이런 사람이 공산주의자란말인가? 교장은 또 자리에서 불쑥 일어서 다리를 떨며 창문가로 다가갔다. 젊은이의 모습을 다시한번 보고싶어서였다. 마당에서는 마을사람들이 들끓었다. 젊은이를 둘러싸고 서서 벙글거리며 무어라고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모두들 인제야 오금을 펴고 일어나 하고싶은 말들을 다 하는것 같다. 청년들이 더 신명이 나서 떠든다. 얼마후 동네사람들은 젊은이를 옹위해가지고 꽃밭머리를 지나 큰길로 걸어나갔다. 《음… 내가 주의와 사람을 갈라보지 못하는것 같군…》
교장은 혼자 중얼거리며 큰숨을 후유 내쉬였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