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서《불멸의 력사》 2

        장편소설

 

 

                                     천  세  봉  

 

( 제 12 회 )

 

4

 

그날 학우회총회에서는 김성주동지께서 회장으로 선거되시였다. 만장이 떠나갈듯한 박수를 보냈다. 새 씨앗을 뿌리고 그 핵심을 길러내고 온 조직을 진리의 길로 이끌어서 혁명의 길우에 들여세울수 있는 그 예비진지가 또 하나 그이의 손에 장악되였다. 말하자면 이러한 진지는 비합법적공산주의조직의 주위를 둘러싸고 그의 영향을 받으면서 자기 주위에 군중을 묶는 역할을 놀아야 할것이다. 이것이 군중을 한덩어리로 묶는 방법으로, 원칙으로 되여야 할것이다.

그이께서는 학우회명칭도 려길학우회를 조선인류길학우회로 고치고 학우회가 새롭게 개척해나갈 대책도 세우시였다.

총회가 있은 이튿날 저녁때였다.

김성주동지께서는 집으로 와달라는 오순희의 기별을 받고 하숙을 나서시였다.

잠간 만나 의논할 일이 있어 아버지가 그이를 찾는다는것이였다. 하숙집에 찾아온 오동진을 만나본것이 열흘전이다. 그날 오동진은 학비에 보태쓰라고 하면서 돈을 얼마간 남기고 돌아갔다. 거듭 사양하시였으나 사령은 막무가내였다. 그는 돈과 함께 학우회일을 잘 돌봐달라는 부탁도 남기였다.

(지난밤 학우회총회가 있었으니 그 경위를 알고싶어 나를 찾는게 아닐가?)

김성주동지께서는 이런 생각에 잠겨 묵묵히 오동진의 집을 향하여 걸어가시였다.

오동진은 책상앞에 앉아서 무엇인가를 쓰다가 김성주동지를 맞이했다.

《요새 공부는 잘하나?》

그이께서 들어서시자 오동진은 붓을 놓고 돌아앉으며 물었다.

《네, 잘하고있습니다.》

《하숙에 불편한것은 없나?》

《아무 불편도 없습니다.》

《불편한것이 있으면 이야길 하게. 내가 힘자라는데까지야 도와주지 못하겠나.》

《고맙습니다.》

오동진은 상아물부리에 권연 한대를 꽂아물었다. 요새 3부의 우두머리를 설복시켜서 통합회의를 연후여서 얼굴에 화색이 좀 도는것 같았다.

《내 어제밤 자네가 학우회책임을 맡았다는 말을 들었네. 그래서 아주 적임자가 들어섰다고 기뻐하는바일세. 그런데 내 자네한테 한가지 물어볼것이 있네.》

《무슨 말씀입니까?》

오동진은 담배연기를 듬뿍 뿜어내치고나서 좀 엄해보이는 낯색을 지었다.

《자네도 저 김찬이들과 섭쓸려다니며 사회주의운동을 한다면서?》

《선생님, 그래서 저와 무슨 의논할 일이 있다고 했습니까?》

김성주동지께서는 오동진의 물음에 물음으로 대답하시였다. 엄청난 오해나 피해의식에서 나온듯한 그의 질문에 선뜻 대답하실수 있는 말이 떠오르지 않았던것이다. 분명 오사령은 누구한테서인가 무슨 암시를 받은것이 틀림없었다. 그 암시란 월파 조청산이나 김찬이들의 물이 학우회에까지 미칠것을 념려하는데서부터 오는 막연한 억측일수도 있고 김성주동지께서 그네들과 한자리에 앉아계시는것을 목격하고서 대뜸 섭쓸려다닌다고 가늠한 어느 누구의 단순한 판단의 반사라고도 볼수 있다.

오동진은 걱정 절반 불안 절반의 갈린 목소리로 훈계를 계속하였다.

《설사 학우회를 없애치우는 한이 있어두 그런자들의 운동장으로, 타작마당으로 내맡길수는 없네. 자네가 정말로 그들과 손을 잡았다면 인제 그 학우회가 무슨 판이 되겠나? 응? 민족을 부정하고 파괴를 선동하는 그런 판이 안되리란말인가? 그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사회주의는 국경도 없고 네것내것도 없이 마구 두드려부신다는거네. 반만년력사국을 왜놈들이 들어와서 마구 탕을 쳐 짓밟아대고있는것만도 분한데 또 그 미치광이짓을 해?》

《선생님, 월파나 김찬이 말하는것은 진정한 사회주의가 아닙니다.》

《그래도 그 사람들은 맑스주의에 정통했다고 뽐을 내더군. 내가 알고있는 사회주의는 그런 사회주의가 아니야. 자네 아버님은 모든 백성들이 빈부의 차이가 없이 잘살수 있는 사회, 착취가 없고 압박이 없는 사회가 사회주의사회라고 하셨네. 그런 사회주의야 누가 싫다고 하겠나. 그랬기때문에 관전회의에서도 다들 무산혁명에로 점차 방향을 전환시킬데 대한 아버님의 방침을 지지한게거든. 내가 그 방략을 제일 지지했더랬네. 그런데 <조선공산당 만주총국>패들이 떠들고 다니는 소리를 듣고는 그만 기가 움츠러들었댔네.》

김성주동지께서는 큰 목소리로 웃으시였다.

《선생님, 선생님께서 김찬이들의 말을 듣고 사회주의를 잘못 생각하시는것 같습니다. 사회주의를 옳게 인식하셔야 합니다. 사회주의가 무엇때문에 민족을 부정하겠습니까? 제 나라 인민을 위해서 사회주의를 하는데 민족을 부정하고 어떻게 사회주의를 합니까? 오늘 로씨야민족이 사회주의사회를 건설하고있는데 그들이 지금 민족을 부정하고있는게 아닙니다. 네것내것이 없다고 하는것은 온 나라의 재부가 어떤 개인의 손에 들어가지 않고 전체 인민의 소유로 되는것을 말하는것입니다. 그렇게 되여야 우리 아버님 말씀대로 빈부의 차이가 없는 사회, 착취와 압박이 없이 모두가 평등하고 자유롭게 사는 사회를 만들수 있습니다. 그런 사회를 만들려는데 무엇때문에 파괴해버리겠습니까? 더 많이 만들어내고 더 많이 창조해내야 우리 2천만 동포가 다같이 유족하게 잘살수 있지 않겠습니까?》

《글쎄 그런 사회주의야 내가 왜 반대하겠나. 그래서 나도 재작년 여름 무송에서 자네한테 우리 나라엔 아직 레닌의 목소리같은 그런 주의가 없다, 그렇지만 조선사람들도 조만간에 그런 주의를 가지게 되리라고 믿는다, 이렇게 말하지 않았댔나. 그런데 월파나 김찬이 같은 사람들은 도무지 민족을 안중에 두지 않으니 어떻게 민족이 잘살수 있는 사회를 만들겠냐말일세.》

《선생님 말씀이 옳습니다. 김찬이들이 말하는것처럼 무엇이나 두들겨없애기만 하자는것은 사회주의가 아니고 무정부주의거나 아무것도 모르는 란동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진정으로 민족과 인민의 운명을 생각하며 나라와 후손만대의 번영을 위하여 싸우는것은 사회주의자들입니다.》

오동진은 기가 좀 수그러들어 불그레한 얼굴로 담배연기를 내뿜었다.

《그래 정말 자네는 그 사람들과 련계가 없나?》

《없습니다.》

《그렇다면 마음을 놓겠네. 아무튼 학우회를 잘 이끌어나가주기를 바라네.》

그제야 오동진의 얼굴에는 화색이 돌았다. 마음이 놓이는 모양으로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올방자를 고쳐틀었다.

얼마후 김성주동지께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오시였다. 사랑퇴마루를 내려서시는데 안방토방앞에 오순희가 기다리고 서있다가 얼른 달려와 사랑방의 아버지가 못듣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뒤뜰로 좀 가세요. 말씀드릴게 있어요.》

《이사람, 이따가 저녁을 하구 가게!》

그의 어머니가 부엌문을 열며 말했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김성주동지께서는 오순희를 따라서 뒤뜰로 가시였다. 뒤뜰에는 지금 석양이 비쳐있는데 화분의 숱한 꽃들이 그 해빛속에서 요란스럽게 빛을 다투고있었다.

오순희는 김성주동지께 걸상을 권했다. 그는 어머니와 함께 저녁을 짓다가 나온 모양이였다. 검은 치마우에 행주치마를 두르고 적삼소매도 걷어올렸다.

《저… 우리 아버질 좀 교양해주실수 없어요?》

김성주동지께서 걸상에 앉으시자 오순희가 말했다. 그는 무슨 큰 변고나 생긴것 같이 두눈에 긴장한 빛을 띠였다.

《교양이라니? 그건 무슨 소리요?》

《아이참, 글쎄 어제밤 내가 소조모임에 나갔다오니까 아버지가 너 사회주의를 배우러 다니느냐고 묻지 않아요.》

《그래서 뭐라고 대답했소?》

《대답할 말이 있어야죠. 생각하다가 얼른 난 사회주의가 아니라 새로운 사조를 배우러 다닌다고 그랬죠.》

《그러니까 아버지가 뭐랬소?》

《오늘밤부터는 나가지 말라는거죠. 나갔다간 종아리를 분질러놓겠다고 으르지 않아요. 어떻게 무슨 방법이 없을가요?》

《인제는 그런걸 걱정 안해도 되오. 내가 아버지를 설복하였소. 아버지가 순희동무를 단속하는건 김찬이나 월파같은 사람들의 나쁜 물을 먹을가봐 그러는거요.》

김성주동지께서는 방금전에 있은 오동진과의 담화내용에 대해서 간단히 말씀해주시였다.

그제야 오순희는 얼굴에 화색을 띄웠다. 그는 땀이 돋은 이마를 행주치마자락으로 얼른 훔치고 앞이마에 드리운 머리칼을 쓸어넘긴 다음 푹 가라앉은 목소리로 그동안의 소조운영정형을 보고하였다.

《소조원들의 열성이 대단해요. 전번날 지시받은대로 우린 래일저녁부터 녀중과 녀자사범이 한곳에 모여앉기로 했어요. 장소는 분이네 집으로 결정했어요.》

《좋소. 그렇게 모여앉아서 공부하도록 하오.》

석양빛이 약간 설핏해지고 담장그림자가 화분들을 반이나 덮었다.

오순희는 신명이 나서 화분들을 설명했다.

 

5

 

안창호들을 석방하기 위한 운동은 고조에 올랐다. 길림에서 지펴올린 한점의 불꽃이 멀리까지 활활 타번져갔다. 각 신문들이 떠들고 각 사회단체, 학생계가 조선독립운동자들을 강검하고 지어는 그들을 일제에게 넘겨주자고 획책한다는것은 큰 죄악이라고 떠들어댔다. 길림독군서에는 물론 장작림중앙정부에까지 각지에서 항의문들이 날아들어갔다.

《일본제국주의의 간계에 넘어가지 말라!》

《조선독립운동자들을 체포해서 일제에게 넘겨주려고 하는것은 일제와 야합한 악독한 행위이다. 그 야합의 흑막을 밝히라! 비법행위를 당장 그만두라! 조선독립운동자들을 석방하라!》

사태가 이렇게 전변되여가는것을 보고 길림에 있는 민족주의자들은 물론 모든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끓었다.

《좌우간 놀라운 사람이요. 하루아침에 이런 힘을 들어일궈 일제를 치게 만드는 방법이 놀랍지 않소.》

《그것도 그것이지만 사상은 비판하면서도 사람은 구하자고 하니 통이 얼마나 큰 사람이요.》

사람들은 이렇게 떠들며 김성주동지를 칭송했다. 3부통합회의를 하는 민족주의자들은 매일 신문들을 펼쳐놓고 앉아서는 잘돼간다, 잘돼간다 하면서 무르팍들을 쳤다. 리선엽목사는 말끝마다 《회장이 난 사람이다, 난 사람이야.》 하며 좋아했다.

길림에 들어와있는 구니하라는 그동안 체포된 사람들을 넘겨받으려고 여러가지 방법으로 애썼다. 길림독군서는 학생들의 항의투쟁이 일어나고 그 투쟁이 광범한 사회계로 파급되자 정신이 펄쩍 들어 구니하라와의 태도를 표변시켰다. 더구나 독군 장작상은 잡힌 사람들이 구니하라나 헌병대사령관이 말한것처럼 사회주의자들이 아닌것 같아서 은근히 분개하고있었다. 그래서 그는 경무청에 속히 심문을 진척시켜서 잡힌 사람들의 정체를 알아내라고 지시를 내렸다.

구니하라는 일이 실패로 돌아갈것 같게 되자 길림령사를 내세워 잡힌 사람들을 빼앗아내려고 하였다.

《이 사건은 아무래도 국가와 국가간의 문제니까 령사인 당신이 나서야 하겠소. 중국측에서 문제를 비틀고있는것은 아마도 조선총독부 특사가 전면에 나서서 뛰니까 상대방을 얕보고 그러는것 같소. 내가 우선 잘못 생각했댔소. 처음부터 당신이 나서서 국가의 권위를 가지고 그들과 맞서게 해야 하는걸 그랬단말이요.》

그러자 길림령사는 첫마디로 구니하라의 청을 일축해버렸다. 그는 이 문제에 대한 《조선총독부》의 간섭을 아니꼽게 보고있었다.

《당신은 령사관이 어떤 행정체계에 의해서 움직이고있다는걸 모르고있소? 난 외무성 지시를 받는 령사요. 더구나 조선인 취체문제는 엄연히 조선총독부와 외무성의 협정에 의하여 그 권한이 어느쪽에 있다는것이 밝혀져있소. 조선총독부가 꿰지르고 달려들 문제는 아니요.》

길림령사도 구니하라처럼 키가 작고 목이 밭았다. 그는 불룩 처진 볼을 떨면서 구니하라를 아니꼽게 쏘아보았다.

《이건 무슨 소리요. 조선독립운동자들을 체포하는 문제에 협정을 따져서 유익한게 뭐요? 협정이 있으면 어떻단말이요? 그래 조선총독부가 이 문제에 팔을 펴고 나서는것이 부당하단말이요? 왜 그럼 협정을 따지는 당신들이 이 길림바닥에 조선독립운동자들을 저렇게 내버려두고있소? 왜 3부통합이 벌어지도록 맥을 못쓰고있었는가말이요? 협정만 가로타고 앉아서 남도 손을 못대게 하구… 이건 누구의 립장에 서있는것이요?》

구니하라는 주먹으로 책상을 두드렸다. 그바람에 책상우에 놓여있던 꽃병모양의 도자기가 굽을 디뚝거렸다. 령사는 두눈이 번쩍 빛나며 도자기를 걷잡았다. 이것은 골동품을 좋아하는 령사가 요새 길림주변의 땅속에서 나온것을 입수한것인데 하마트면 책상밖으로 딩굴려 깨뜨릴번했다. 령사는 그바람에 더욱 심사가 꼬이고 피줄이 일어섰다.

《이건 무슨 조폭한짓이요? 당신이 어데 와서 책상을 치고있소? 여긴 당신네 안방이거나 서재가 아니요. 어느 립장에 서있는지 모르겠다고 운운하는것은 무슨 수작이요?》

《왜 조선독립운동자들을 샅에 끼고 앉아서 기르는가말이요? 어째서 사건을 구경하고만 있소? 당신들에겐 제국의 법률이 적용되지 않는줄 아우? 이건 직무태만이라고만 볼수가 없소. 적을 길러내고있으니까 반국가적립장이지 다른게 아니라고 보오.》
《말을 삼가지 못하겠소? 내가 반국가적립장인가? 당신이 반국가적립장이요. 국가기관에 함부로 뛰여들어 폭언을 쥐여치는 그런 행동이 바로 반국가적립장이란말이요.》

길림령사는 마주 책상을 두드렸다. 그는 도자기를 깨뜨릴가봐 아예 한손에 도자기목을 쥐고 앉아있다.

둘이는 격렬하게 다투었다. 서로 주먹으로 코허리를 쥐여박을것 같은 기세였다.

구니하라는 길림령사를 끝내 설복시켜내지 못하고말았다. 려관으로 돌아온 그는 울기를 털어버리지 못한채 책상우에 놓인 신문들을 펼치였다. 사회 각계의 항의는 점점 더 격렬해가고있었다. 오늘은 할빈과 천진에서까지 학생들의 집회가 열렸다는 소식이 실렸다. 집회의 내용들이 상세히 보도되고 할빈 어느 학생집회에서 채택한 항의문은 전문이 발표되였다. 항의문은 장작림정권을 규탄하고있었으나 문장뒤에 번뜩이는것은 배일의 창끝이였다. 어떤 문구는 일본에 로골적인 저주를 퍼붓고있다.

구니하라가 한창 신문을 보고 앉아있는데 수하 검사가 한명 문을 똑똑 두드리고 들어왔다.

이자는 김성주동지께서 철도기관구에 나가신 일이 있다는 정보를 보고했다.

《철도기관구에?》

구니하라는 신문장들을 밀어놓으며 검사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기관구에 나타나서 로동자들을 만나보았답니다. 이건 확실히 학생운동만이 아니라는 단서입니다.》

《알만하이.》

검사가 나가자 구니하라는 안락의자에 등을 기대고 앉아 《시끼시마》 한대를 붙여물었다. 량미간이 험하게 우그러들었다. 그는 이미 길림에 와서 김성주동지의 활동에 대해서 신중한 주목을 돌리게 되였다. 바로 그이께서 화전의 공산주의단체인 《ㅌ.ㄷ》의 조직자라는것도 알게 되였고 안창호가 잡히던 날 강남공원에서 대연설회를 열었다는것과 뒤이어 사회계를 뒤흔드는 불씨를 뿌렸다는것도 알게 되였다. 그래서 그는 요새 각 방면에 걸쳐 새 정탐망을 늘여놓고 그이에 대한 자료를 모아들이고있는중이였다.

(기관구에 나가서 로동자들도 만났다? 음, 이건 단순히 학생들에 대한 적색화만이 아니로군.)

구니하라는 담배연기를 뿜으며 이런 생각을 했다.

얼마후 그는 안락의자에서 불쑥 일어섰다. 그리고는 한참동안 방안을 왔다갔다하며 뒤짐진 짧은 손가락들을 그러쥐였다폈다하였다. 책략이 교묘한 구니하라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의 눈자위안에서 비수같은 빛이 번뜩이였다.

이튿날 그는 또 길림령사를 찾아갔다. 집요하고 무서운자였다. 일단 마음만 먹으면 못해내는 일이 없다는자였다.

이튿날에는 령사를 어떻게 다루어냈는지 당장 령사가 마늘쪽같은 작은 귀에 수화기를 붙이고 독군서에 전화를 건다, 경무청에 전화를 건다 하며 떠들어댔다.

이날밤 구니하라는 령사의 사택에서 밤새 바둑까지 놀았다.

그러나 령사를 내세워도 독군서에서는 안창호들을 넘겨주지 않았다. 넘겨주겠다거나 안넘겨주겠다거나 대답도 똑똑히 주질 않았다.

《늙은 소힘줄같은놈들! 어디 우리의 요구를 안듣고 견디나보자.》

구니하라는 화가 동했다. 그는 북경으로 달려가서 일본공사를 내세워 이 문제를 직접 장작림에게 제기해보자고 생각하였다. 그는 부랴부랴 북경으로 가기 위해서 봉천으로 올라왔다. 그런데 봉천으로 올라오는 바로 그날 《조선총독부》경무국장의 전보가 날아왔다. 구니하라는 떨리는 손으로 전보지를 들고 읽었다. 아닌게아니라 돌아오라는 전보였다. 결국 광범한 사회계의 소동이 《총독부》경무국으로 하여금 풀어놓았던 사냥개들을 불러들이지 않으면 안되도록 만들었던것이다.

일은 실패로 끝나고말았다. 구니하라는 씩씩거리며 한참동안 방안을 돌아쳤다. 일을 이렇게 실패해보기는 처음이다. 이것보다 더 크고 중요한 사건도 손아귀에 쥐기만 하면 성공해냈다.

그런데 이 사건을 맡아가지고 중국땅에까지 달려왔다가 실패하고 쫓겨간다.

구니하라는 결국 김성주동지때문에 《조선총독부》가 뺨을 맞았다고 혼자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는 수하 검사들에게 마차를 부르라고 지시를 내리고나서는 《아마데라스오미가미》가 얹혀져있는 《가미다나》(귀신그릇)앞으로 가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는 눈을 감고 합장했다.

《저의 지성이 부족하와 황은에 보답하지 못하옵니다.》

바투 깎아올린 머리칼을 혼돌혼돌 떨었다. 그는 이런 때면 사이고다까모리휘하에서 《왕정복고》에 공훈을 세운 자기의 증조부를 생각하는 버릇이 있었다. 그래서 혼신의 지성으로 몸을 떨며 눈물을 머금는것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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