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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서《불멸의 력사》 2 장편소설
천 세 봉
( 제 10 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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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창호의 석방을 위한 투쟁은 날이 갈수록 본격적으로 진척되여갔다. 그 투쟁의 중심에는 김성주동지께서 서계시였다. 그이께서는 매일 학교도서실에서 성토문을 쓰고 호소문을 쓰시였다. 도서실은 외부의 감시를 피하고 활동의 비밀을 보장하기에 아주 적합한 장소였다. 또한 조직성원들과의 련계를 가지는데서도 대단히 편리하였다. 그이께서 도서실주임으로 선거되신것은 어느모로 보나 유리하였다. 오늘도 김성주동지께서는 수업이 끝나기 바쁘게 도서실로 달려가시였다. 길림의 주요기관에 보낼 호소문을 쓰시려는것이였다. 그이께서 백지에 초고를 한참 기안하시는데 빙하가 들어왔다. 거의 매일과 같이 여가를 타서 이 방에 찾아와 김성주동지와 곧잘 여담도 펼치고 론쟁도 하군하는 빙하선생이였다. 초고의 활달하고 박력있는 문장들을 단숨에 훑어본 그는 걱정부터 앞세웠다. 《너무 과격하지 않나? 난 찬성이지만 이게 무서워.》 그는 손가락으로 가슴을 가로 그으며 그것이 무섭다는것이였다. 그것은 경무청이나 청향국 혹은 감옥을 의미하는것이였다. 《선생님, 과격한것이 아니라 정의를 위해서 단호히 행동하는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옳은것을 위해서 싸우는 이상 무엇이 무서울게 있겠습니까. 선생님도 승리는 정의의 편에 있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래 그래…》 빙하는 아주 기분이 좋아서 웃었다. 그런데 어째 빙하는 갈라 붙인 수염이 몹시 성글어뵈였다. 《선생님, 몸이 불편하십니까?》 《아니, 난 건강해. 자네가 온 뒤부터는 더욱 그렇지.》 《얼굴이 매우 축가보입니다.》 《음, 론문집필에 파묻혀서…》 빙하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웃었다. 김성주동지께서는 그동안 빙하선생과 매우 친숙해지셨다. 집에도 몇번 찾아가 책도 여러권 빌려오시였다. 빙하는 자식도 없이 두 내외가 사는데 집안이 절간같이 조용했다. 력사속에서 잠을 잔다고 할만큼 그런 고정함과 조용한 성품이 이런 가정생활에도 관계가 있는것 같았다. 김성주동지께서 가시면 언제나 두 늙은 내외는 기뻐했다. 묵묵하고 침침하게 지내던 그들은 생기가 나서 애정을 퍼부어주지 못해 애썼다. 두 내외는 음식과 과실을 권하기도 하고 집안의 가장집물들을 구경시키기도 했다. 김성주동지께서는 곰팡냄새가 절은듯한 큰 서고도 구경하셨고 황하류역과 두만강류역에서 발굴해왔다는 구석기시대의 유물같은것도 구경하셨다. 두 내외는 김성주동지께 하숙을 옮겨오라고도 하였다. 《여보게, 저 왕가를 조심하는것이 좋겠네.》 빙하는 호소문 쓰시는것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체육선생말입니까?》 《그러이, 저 왕가는 경무청에서 박아넣은 특무가 틀림없네. 내가 전날 미국에서 일어난 <원숭이 소송사건>에 대해서 분개했더니 왕가가 뭐라고 하는고 하니, 선생도 다윈의 진화론을 믿고있소? 난 선생의 사관에 대해서도 적잖게 의심을 가지고있소. 이런단말이네. 이게 무슨 수작인지 알바가 없네. 아니, 한 생물학교원의 사건에 대해서 내가 분개를 했는데 내 사관이 어떻단말인가? 그래 다윈의 진화론을 강의한 죄로 5년의 금고형을 받은 사건에 대해서 분개를 안할 일인가? 쿠릿지정부의 처사가 옳단말인가? 오라질놈 같으니라구… 아니, 저기 오네. 원고를 넣게.》 빙하는 이러며 얼른 김성주동지 옆에서 한걸음 물러섰다. 정말 유리문너머 복도로 천장에 닿을듯한 높은 키의 왕희동이 걸어온다. 회색양복을 입고 오늘은 푸른빛 색안경까지 걸었다. 왕희동은 빙하선생과 김성주동지를 보더니 그냥 지나쳐버리지 않고 도서실로 쑥 들어선다. 빙하는 김성주동지께서 원고를 계속 쓰시는것을 보더니 얼른 원고를 빼앗아 이미 써놓으신것까지 합쳐들고 저편쪽에 있는 걸상으로 간다. 아무래도 그이께서 호소문을 쓰고계신다는것을 왕희동이 눈치채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한것이다. 그래서 왕희동이 범접해오지 못하도록 독한 기상을 하고 앉아서 원고를 한장한장 넘기며 보았다. 김성주동지께서는 부득이 책을 보는척하시였다. 사실 이 호소문같은것은 왕희동이 보아도 김성주동지를 공산주의자라고 여길것은 없는것이였다. 거기에는 오직 민족적인 의분을 가지고 사리를 밝히며 일제를 단죄하고 장작림정권의 죄책을 친 내용이 있을뿐이였다. 《요새 소년회를 책임지게 됐다지?》 왕희동이 김성주동지의 곁에 와 서며 물었다. 《네, 그렇게 됐습니다.》 《그런데 소년회라는것이 추켜든 기발은 어떤것인가?》 《기발말입니까? 소년조직에 무슨 기발이 있겠습니까.》 《그래도 기발이 있어야지, 사상조류가 복잡한 시기에 아무리 소년조직이라 하더라도 무엇인가 자기 주장의 표상이 있어야 할게 아닌가.》 왕희동은 음흉한 눈으로 그이의 옆얼굴을 훔쳐보고는 또 얼른 저편에 앉아있는 빙하의 표정도 살펴보았다. 《선생님은 소년조직이 기발을 올린다면 어떤 기발을 올려야 좋을것 같습니까?》 《그야 나보고 물을것이 있나? 회원들의 총의에 의해서 어떤 기발이고 올려야지.》 《정 기발을 올릴 필요가 있다면 붉은 기발을 올려서 나붓기게 하지요. 선생님은 붉은 기발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흐흐흐, 좋지 좋아.》 왕희동이도 그이의 말씀이 롱으로 넘어가는줄 알고는 온 이발이 드러나게 웃었다. 《난 붉은 기발을 좋아하는 리유가 있습니다. 우선 빛갈이 좋으니까요. 빛갈을 보느라고 올리는데야 경무청 같은데서 시비가 없겠지요.》 《으흐흐…》 왕가가 또 웃었다. 빙하도 원고를 보며 시무룩이 웃는다. 왕희동은 그다음에는 회파람을 불며 서가들을 돌아보았다. 그는 이책저책 뽑아보다가 나가버렸다. 《괘씸한놈 같으니라구… 저놈이 색안경을 왜 쓰는지 아나? 눈동자 돌아가는걸 못보게 하느라고 저런걸 쓰고 다니네, 조심하게.》 빙하가 원고를 가져다놓으며 말했다. 《선생님께서 조심하십시오.》 《음, 나야 뭐 사회주의자인가?》 빙하는 이어 도서실에서 나갔다. 김성주동지께서는 또 원고를 쓰기 시작하시였다. 그 원고를 거의 마무리할무렵에 최기준이 도서실로 찾아왔다. 그는 며칠전에 빌려간 책을 대출구앞에 앉아있는 권태일에게 바치고나서 김성주동지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이께서 도서실을 맡아보신 다음부터 뻔질나게 여기에 드나드는 최기준이다. 이 도서실에서는 육문중학교 학생들뿐아니라 시내 다른 학교 학생들과 청년들에게도 책을 대출해주었다. 그런것만큼 기준이도 별다른 구속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출입할수 있었다. 《그래 어떻습디까? 책이 재미있습디까?》 김성주동지께서는 마지막문장끝에 종지부까지 찍고나서 기준에게 의자를 권하시였다. 기준은 의자에 앉아 무릎우에 놓인 자기의 투박한 손을 말없이 굽어보았다. 단마디명창으로 독후감을 이야기해버리기에는 인상이 너무나도 강한 모양이였다. 《내 그런 책은 난생처음 봅니다.》 한참후에야 그는 입을 열었다. 그렇게 운을 떼놓고는 아까처럼 또 무릎우의 손등을 내려다보았다. 느리게 껌뻑거리는 그 순박하고 꾸밈없는 눈의 움직임은 그가 말하고싶어하는 감상이상의것을 토로하고있는상싶었다. 《그 간고한 행군대렬에 막 뛰여들고싶은 생각까지 나더란말입니다.》 그는 힘들게 이 말을 보태였는데 그것이 어찌나도 진실하고 격정적으로 울렸던지 책을 알선해주신 김성주동지자신도 감동되실지경이였다. 《그럴겁니다. 나도 그 <철의 흐름>을 읽으면서 똑같은걸 느꼈습니다. 혁명이란 간고한것이지만 그렇게 보람차고 장쾌하기도 한것입니다. 그 소설은 참된 투사, 혁명적랑만가들을 키워내는 교과서라고도 볼수 있습니다.》 김성주동지께서도 허심하게 독후감을 피력하시였다. 최기준은 머리를 쳐들고 미소를 그리였다. 《교과서… 옳습니다. 누구나 다 보는게 교과서가 아닙니까. 혁명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사람이라면 너남없이 이 소설을 봐야 할것 같습니다. 그래서 내 성남이한테도 읽혔습니다.》 《잘했습니다. 앞으로는 기관구로동자들이 그 책을 다 읽게 해야겠습니다. 혁명의 길에 나선 우리는 <철의 흐름>이 겪는 간난신고보다 몇십배 더 엄혹한 시련을 각오해야 합니다. 우리가 본 책들은 이제 단단히 은을 내게 될것입니다. 그래 오늘은 무슨 책을 빌렸습니까?》 《고리끼의 <어머니>를 빌렸습니다.》 《<어머니>! 그것역시 아주 훌륭한 소설입니다.》 김성주동지께서는 고리끼의 생애와 《어머니》의 중요내용을 추려서 이야기해주시였다. 기준은 그이의 진지하고 구수한 말씀과 해박한 지식에 깡그리 넋을 빼앗기고말았다. 그이께서는 대출을 마감짓고 서가앞에서 왔다갔다하는 권태일을 불러 그에게 호소문발송과 관련된 몇가지 조언을 주신 다음 기준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시였다. 오늘 펼치려고 계획했던 기본화제를 이제부터 꺼내시려는것이였다. 교정에는 아늑하고 부드러운 봄석양이 가득차있었다. 그 석양속을 걷는 기분이란 이루 형언할수 없이 상쾌하였다. 대기는 조는듯마는듯 흐르는데 미풍에 간지럼을 탄 나무잎들이 어리광치며 살랑거리였다. 그 평범한 자연의 흔드적거림마저 삶의 위대함, 생활의 거룩함을 찬미하는것 같아서 몸도 마음도 대뜸 그 어떤 비상한 의욕에 불타오르는것이였다. 최기준이도 같은 기분상태인지 봄의 훈향이 서린 대기를 들이키느라고 코를 벌름거리였다. 생명을 가진 모든것이 활기에 넘쳐 우줄우줄 자라고있다. 대지의 즙으로 살을 찌우며 아득한 태고로부터 시작된 그 줄기찬 진화의 길을 서서히 걸어간다. 이 봄에 길림에서는 소조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인제는 연구소조가 나오지 않은 학교가 거의 없었다. 성안에 있는 육문중학교, 법정학교, 녀자중학교, 녀자사범학교는 물론 성밖에 있는 문광중학교, 제5중학교, 제1중학교, 직업학교, 천주교학교에도 다 연구소조가 나왔다. 김성주동지께서는 이 수많은 연구소조들중에서도 기준이네가 조직한 철도기관구 로동자들의 연구소조에 더욱 힘을 집중하고 지도해나가시였다. 로동자들에게 글을 가르치기도 하시고 무산대중이 어째서 혁명을 해야 되는가, 자본주의사회가 무산계급을 어떻게 착취하는가 하는 문제들을 내놓고 해설도 하고 토론도 시키시였다. 기관구청년들은 놀라울만치 각성이 빨랐다. 모든 문제가 자기들의 뼈저린 생활과 관련되여있기때문에 그이께서 한마디 말씀만 하시면 그것은 마치 그 무슨 금선을 다쳐주는것처럼 쓰디쓴 생활의 과거가 심장이 저리도록 웅심깊이 울리는것이였다. 이제는 소조활동을 통하여 팽배해진 로동자들의 계급의식을 하나로 결속시키고 그 결속된 자각과 의지의 힘을 투쟁에 동원할수 있는 조직이 요구되였다. 말하자면 기관구로동계급속에 혁명조직을 내올 주객관적정세가 성숙된것이다. 오늘 기준이하고도 의논하시려던 문제가 바로 그 조직에 관한것이였다. 김성주동지께서는 교정을 나서자 말씀을 꺼내시였다. 《기준동무, 내 생각에는 기관구로동계급이 그동안 정신적으로 비약적인 성장을 하였다고 봅니다. 인제는 로동자들속에 조직을 내와야 하겠습니다.》 기준은 그 충격적인 말씀에 걸음을 멈추기까지 했다. 《어떤 조직말입니까?》 《거야 물론 혁명조직이지요. 기준동무가 지금 속해있는 그런 조직을 말입니다.》 《아, <ㅌ.ㄷ>말이죠.》 《그렇습니다. 길림의 선각자들인 기준동무와 권태일동무는 개별적인 가입절차에 따라 이미 <ㅌ.ㄷ>에 들었습니다. 얼마전에는 또 채경동무와 차광수동무가 <ㅌ.ㄷ>성원이 되였습니다. 인제는 이 조직이 학생층뿐만아니라 로동계급속에 뿌리를 박을 때가 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조선인로동자들이 많이 일하고있는 기관구에서부터 <ㅌ.ㄷ>를 내오자는것입니다.》 《아, 정말 그렇게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기준은 흥분에 겨워 또 걸음을 멈추었다. 그의 입가에서는 시종 미소가 사라질줄 몰랐다. 김성주동지께서도 미소를 금치 못하시였다. 기관구로동자들을 대할 때마다 느끼게 되는 그 순결한 우애의 감정, 반석같은 신뢰의 감정이 이 시각도 하냥 걷잡을수 없게 솟구쳐오르는것이였다. 그이께서는 《ㅌ.ㄷ》조직을 내오는것과 관련된 실무적문제에 대하여 한참동안 설명해주시였다. 그리고 맨나중에 이런 다짐을 두시였다. 《이건 비밀조직입니다. 그렇기때문에 비밀리에 한사람씩 조직에 받아들이되 사람을 잘 골라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럼 우리 연구소조청년들도 이 조직에 받아야 하겠지요?》 《받구말구요. 연구소조원들이야 핵심청년들인데 여부가 있습니까.》 《조직하겠습니다. 조직하다뿐입니까. 전 김성주동무가 주는 일이라면 어떤 일이든지 실천할 각오를 가지고있습니다.》 《동무들이 이 학대받는 생활을 요정내기 위해서는 하루빨리 조직을 뭇고 투쟁해야 합니다. 조직이란 혁명승리를 담보하는 무기입니다. 내 언제나 이야기하지만 동무들은 혁명투쟁에서 가장 선두에 서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렇기때문에 누구보다도 혁명에 대한 긍지를 튼튼히 가지고 조직을 뭇고 싸워야 합니다.》 그이께서는 화전에서 조직하신 《ㅌ.ㄷ》의 조직망을 길림과 길림주변의 농촌들에 확대해나가시려는 방대한 구상을 세우시였고 《ㅌ.ㄷ》를 대중적인 조직으로 전환시키려고 계획하시였다. 그이앞에 펼쳐진 새로운 환경이 그것을 요구하는것이였다. 혁명의 활동무대가 갑자기 넓어졌고 혁명을 지향하는 수많은 청년군중이 그이의 지도를 갈망하여 모여들고있었다. 바로 이러한 청년군중을 조직된 력량으로 결속하기 위해서는 《ㅌ.ㄷ》의 조직을 군중적조직으로 개편할 필요를 느끼시게 하였다. 또한 그것은 화전에서부터 키워오신 《ㅌ.ㄷ》의 성원들이 이런 객관적요구를 구현할만한 핵심으로 자라난 조건에서 가능한 문제이기도 하였다. 그래서 그이께서는 《ㅌ.ㄷ》의 명칭도 반제청년동맹으로 바꾸려고 생각하시였다. 그리고 이 구상을 앞두고 화전에 있는 황학에게 편지도 띄우시였다. 그곳 조직을 계속 농촌으로 확대해나가라는것과 조직의 핵심 몇명을 시급히 길림으로 올려보내달라는 편지였다. 그이께서는 이 핵심들로써 이 지역에다 조직을 확장하는데 힘을 집중하시려는것이였다.
제 5 장
해발이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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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중학교마당에서는 축구시합이 벌어졌다. 학급과 학급간의 대항시합이였다. 학생들이 운동장주위에 성쌓듯 둘러서서 응원을 했다. 공은 저쪽문으로 가는가 하면 어느새 이쪽문으로 왔다. 체육복을 입은 선수들이 이리 달리고 저리 달리고 하면서 쏴라 쏴라 소리를 질렀다. 체육선생이 입에 호각을 물고 선수들과 함께 뛰였다. 그는 공이 문앞가까이 가면 급하게 달려가 선수들의 다리샅에서 구을고있는 공을 보느라고 허리를 굽히고 돌아갔다. 그러다가 공이 그물에라도 걸리면 량손을 쭉 펴들고 신이 나서 호각을 불었다. 신동호가 누구보다도 공을 제일 잘 찼다. 그는 자기 학급의 공격수로 출전했는데 자기 발에 공이 걸리기만 하면 비호같이 몰고 나갔다. 그는 공을 길게 몰지 않고 발끝에 달아가지고 나갔다. 그러기때문에 신동호가 공을 잡기만 하면 상대방에서는 공을 뺏기 위해서 두세명 선수가 덮어치며 달려들었다. 그러나 신동호는 그런 방어진도 자기 혼자힘으로 뚫으려고 제편 선수들의 넘겨라 넘겨라 하는 소리는 듣지 않았다. 그러다가는 공을 빼앗겼다. 이러기때문에 공을 잘 차긴 하지만 늘 제편 선수들로부터 나무람을 들었다. 오늘의 대항시합도 신동호의 이런 개인영웅주의적고집으로 해서 그의 학급이 패배를 당하였다. 해가 진 뒤 학생들은 흩어지기 시작했다. 신동호는 교복을 벗어놓은 운동장옆 풀밭에 가서 벌렁 누웠다. 그리고는 한참동안 땀을 들이며 손가락으로 가슴팍을 두드렸다. 《신군, 또 공을 찼나?》 곁에서 이런 소리가 나기에 신동호는 벌떡 일어났다. 단장을 짚은 문학교원이 퇴근을 하다가 그의 곁으로 와서 묻는것이였다. 《네.》 《공과 시라? 아니야, 신군은 시를 써야 해. 공이란 우리의 고민하는 정신과는 관계가 없어.》 《시도 씁니다.》 《써야지. 그래 그 <자화상>은 아직 탈고가 안됐나?》 《네, 아직…》 《빨리 완성을 시키게. 완성되는대로 내가 추천을 하지.》 문학교원은 단장을 옮겨짚으며 정문밖으로 걸어나갔다. 신동호는 문학교원의 뒤모습을 잠간 지켜보았다. 어째 그런지 문학교원이 가엾은 생각이 들었다. 그가 고민하는 정신이라고 뱉어놓고 간 말이 이상하게 마음을 흔들기도 했다. 문학교원은 시를 쓰다가 이 학교에 와서 교편을 잡은 사람이였다. 그의 시는 꿈과 애상과 영탄으로 학생들의 눈물을 쥐여짰다. 어느날 문학시간에 그는 자기의 시 《한월》을 교단우에서 읊었다. 먼 옛날에 대한 회억을 읊는 그는 몸도 떨고 목소리도 떨었다.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것은 하나의 불타는 초불이였다. 학생들은 뼈가 녹은듯 움직일줄 모르며 그와 함께 눈물을 흘렸다. 이런 문학교원의 영향이 신동호가 소라껍질속의 시세계로 떨어지는데 적지 않은 작용을 했다. 문학교원은 늘 신동호의 재능을 칭찬했다. 어떤 때는 그의 시를 학생들앞에서 읊어주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신동호의 시가 자기의 시세계와는 다르게 자아찬미의 색채로 기울어진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그의 리론은 어디까지나 시는 불행한 민족의 그 어떤 희구정신과 애상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고 했다. 신동호는 문학교원이 《자화상》을 완성하라고 한 소리에 자극을 받고 시를 생각하면서 걸었다. 그는 자기의 시가 신문이나 잡지에 활자로 나타날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울렁거리였다. 저녁의 성안은 부산했다. 사람들이 물밀듯 오고가고 차도에서는 련속 마차의 채찍소리가 울리였다. 신동호는 사람들의 소요속을 걸으면서도 시상을 붙잡기 위해 모대기였다. 그가 집에 돌아오니 누이는 저녁상을 차려놓고 기다리고있었다. 《왜 그렇게 늦게 돌아오나?》 《학교에 일이 있었어요.》 《자네두 어서 저녁을 먹구 청년회관으로 나가게. 성주가 이때까지 기다리다가 나갔네. 자네가 돌아오면 학우회 회의에 함께 나가자고…》 신동호는 아무말없이 밥상에 마주앉았다. 그는 웬일인지 자기도 회의장으로 나가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그것이 그 어떤 자기자신을 결별해야 하는것 같은 고통스러운 생각도 들었다. 지금 길림은 변하고있다. 청년학생들이 급격히 뒤설레며 하나의 흐름으로 휩쓸려들어가고있다. 명백하게 여기에는 조선청년들이 그렇게 되고야말 진리가 있다. 그럼 내가 이 진리와 등을 지고 살아야 하는가? 내가 이때까지 부정해온것이 이런 진리를 볼수 없는 현실에 대한 타매였다면 이런 진리가 빛을 뿌리고있는 이 현실을 보고야 외면할 까닭이 어디 있는가? 신동호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얼른 밥상을 물리였다. 그는 책상앞으로 가서 목책 하나를 교복주머니에 지르고는 밖으로 나섰다. 그는 청년회관쪽을 향해 바삐 걸었다. 청년회관앞에 이르니 벌써 회의가 시작되였다. 회관안에서 높은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신동호는 걸음을 멈추고 우뚝 섰다. 공연히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는 들어갈가말가하면서 잠간 망설였다. 아무리 생각해야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유리문안으로 가뜩 배겨앉아있는 학생들이 보였다. 자기가 들어가면 그 학생들의 시선이 일시에 자기에게로 쏠릴터인데 어떻게 그 소낙비같은 시선을 받아낼수 있겠는가? 그는 잠간 서서 회관안에서 울려나오는 연설을 들었다. 채경의 목소리였다. 《이때까지는 학우회 역원들이 너나없이 자기의 책임을 통감하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학우회를 조직한 목적이 무엇이였습니까? 나라를 잃어버린 청년들로서 주의주장엔 관계가 없이 한마음한뜻으로 뭉쳐서 학업에 정진하며 나라를 찾을 힘을 기르자고 하는것이였는데 이 목적을 망각해버리고 학우회를 발전시켜나가지 못했습니다. 우선 나는 내가 학우회 역원으로서 자기 책임을 리행하지 못한데 대해서 깊은 뉘우침을 가지고 자기를 반성하는바입니다.》 《거, 내가 말 좀 하겠소.》 채경의 말을 가로채며 장내에서 한 학생이 일어서는것 같다. 《글쎄 지금 채경동무가 자기 반성을 하고있으니 말이지만 이때까지 학우회 역원들이 조금이라도 학우회를 위해서 일하겠다는 정신이 있었는가 보십시오. 요새 송춘보동무가 좀 달라진것 같긴 하지만 이 동무를 두고봅시다. 이 동무는 학우회의 선전사업을 책임진 역원인데 그래 무슨 선전사업을 했는가? 들떠서 돌아다니며 웨친게 무언가? 사회주의를 비방하며 주먹을 흔들어댄것밖에 더 있는가? 인제 채경동무가 주의주장에 관계없이 단합해서 사업하는것이 학우회의 목적이라고 했는데 그래 그렇게 사업했는가?》 말아쥔 책을 손바닥에 두드리는지 딱딱 소리도 들린다. 신동호는 이런 틈새에 얼른 들어가볼가 해서 몇걸음 걸어들어갔다. 다리가 떨렸다. 그는 또 멈칫 서고말았다. 내가 무슨 면목으로 회의가 한창 벌어진 때에 회의장으로 들어간단말인가? 나자신이 이때까지 이 현실과 등지고있었는데 이 사람들속에 얼굴을 내미는것을 이렇게 수치스럽게 내밀어야 하겠는가. 신동호는 두어깨가 처져서 돌아섰다. 그는 한걸음한걸음 청년회관앞 언덕길을 내려갔다. 신동호는 집에 돌아가고싶은 생각이 없었다. 송화강가에라도 나가서 바람을 쏘이며 생각에 잠기고싶었다. 그는 하남가거리를 걸어나갔다. 여전히 사람들이 들끓었다. 쉴새없이 자전거가 지나가고 마차가 지나갔다. 인력거며 삼륜차도 계속 달린다. 그 조그만 바퀴들이, 어떤것은 고무풀로 몇군데씩 땜질한 그런 바퀴들이 낮에도 달리고 밤에도 달린다. 그는 이 끈덕진 기구들이 아니면 사람들이 못살지나 않을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신동호는 하남가거리를 지나서 서문쪽으로 통한 큰거리에 나섰다. 거리에는 군장을 갖춘 헌병들이 길 량쪽에 늘어서서 사람들의 래왕을 차단시켰다. 그들은 달빛에 번들거리는 총창을 뻗쳐들고 거리를 등지고 늘어서있다. 그래서 거리쪽으로 접근해오는 사람을 보기만 하면 오지 말라고 꽥꽥 소리를 질렀다. 아마 독군서의 독군이 어데 갔다 오는 모양이다. 꼭 장작상이 어데 갔다올 때면 이런짓을 했다. 거리 량쪽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가지를 못하고 웅성거리며 끓었다. 가로등이 매달려있는곳에는 다부산자를 입은 중국사람들이 가득 모여서서 뭐라고 이야기를 주고받고하였다. 그옆에는 조선사람들이 또 한무리 모여서있다. 그들은 모두들 신개문쪽 대통로에 무엇이 나타나는가 해서 목을 빼들고 큰거리를 내다보다간 《빌어먹을놈들…》 하고는 두덜거렸다. 싹 쓸어버린것 같이 말끔해진 거리우에는 다만 권총을 찬 헌병들이 어슬렁거리며 걸어다닐뿐이였다. 신동호는 길을 건너가려고 가로등밑으로 갔다. 그러나 그는 군중속에 섞이지 않고 가로수밑에 잠간 호젓이 서있었다. 《신동무 아니세요?》 별안간 곁에서 녀자의 목소리가 들리였다. 오순희가 방긋이 웃으며 곁에 와 선다. 《순희동무, 오래간만입니다.》 《오래간만이예요… 어데로 가세요?》 《네, 전 뭐…》 신동호는 말을 얼버무렸다. 어데로 간다는 이야기도 하고싶지 않았다. 《요새도 시를 쓰세요?》 《더러 써봅니다. 되지도 않는걸…》 《왜 되지 않겠어요. 다들 그러는데 신동무는 시에 대한 재능이 있다고 해요.》 신동호는 대답을 못하고 얼굴을 붉혔다. 가뜩이나 시문제가 자기의 생활에 곡절로 되고있는 이때에 시이야기를 물으니 얼굴이 붉어지지 않을수 없었다. 숫제 오순희만은 자기의 시문제에 대하여 아무것도 몰라주었으면싶었다. 《순희동무는 오늘밤 왜 학우회 회의에 나가지 않았나요?》 《전 성밖에 급한 볼일이 있어서 못나갔어요.》 사실 오순희는 김성주동지의 지시를 받고 성밖 기준의 집으로 련락을 가던길이였다. 《신동문 시를 쓰느라고 회의에 못다니셔요? 호호호…》
신동호는 또 얼굴이 붉어졌다. 그는 오순희 역시 자기를 저쯤 멀리 세우고 비양하는것 같아 얼른 이 거북한 자리를 떠나고싶었다. 그러는데 마침 거리로 노란빛 자동차 한대가 스르르 미끄러져와서 독군서쪽으로
돌아들어갔다. 그러자 이어 차단이 해제되고 막혔던 물목이 터지듯 사람들이 들끓으며 거리를 덮었다. 자전거, 마차, 인력거들도 부리나케 달렸다. 신동호는 얼른 오순희와 갈라져 군중의 물결속으로 들어갔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