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서《불멸의 력사》 1

        장편소설

 

 

                                     김   정

 

( 제 22 회 )

 

20

 

9월하순 어느 일요일의 한낮이였다.

김성주동지께서는 성남촌을 향해 걸음을 다그치고계시였다. 거기서는 벌써 여러날째 정학처분을 받은 리효가 학교운영자금모연에 참가하고있었다. 그는 가듯마듯 짤막한 기별을 보내더니 어제는 무려 열페지도 넘는 장문의 편지를 보내여왔다.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해보면 화성의숙에서 퇴학당할지언정 제 목의 피를 빨아먹는것 같은 이따위 너절한 모연노릇은 못하겠노라는것이였다. 가난한 농사군들의 주머니를 터는 일은 세상의 못할짓중에서도 제일 못할짓이라고 하였다. 헐벗은 아이들이 오골거리는 농가의 뜨락에 들어서서 주인을 찾을 때면 정학 3개월의 처벌선고를 받던 그 시각보다 더 짜릿짜릿한 고통이 마음을 옥죄인다는것이다.

그는 학우들, 특히는 비밀독서회성원들에 대한 그리움도 절절하게 썼다.

김성주동지께서 성남촌을 방문하기로 결심하시게 된 리유는 바로 이런 그리움을 풀어주시려는데 있었다. 그이께서는 리효를 찾는 기회를 통하여 이국땅에서 모진 고생을 겪고있는 동포들의 생활에도 더 깊이 침투해보려고 하시였다.

때마침 《개벽》사에서 리효의 원고에 대한 회신이 내려왔다.

그 회신과 동료들이 보내는 여러통의 편지들을 합치니 제법 큼직한 하나의 꾸레미가 되였다.

김성주동지께서는 성남촌에 당도하자 모연공작본부라고 하는 초가부터 찾으시였다.

리효는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고 공작조 조장이 평상앞에 앉아서 무슨 회계를 맞추고있었다. 그는 리효가 한시간전에 웃골로 모연을 떠났노라고 알려주었다.

김성주동지께서는 누워서 로독이나 좀 풀라며 부등부등 목침까지 내려놓는 조장의 권고를 마다하고 곧장 웃골로 향하시였다. 리효한테는 웃골 열다섯집이 이틀동안의 모연대상으로 차례졌다고 한다.

리효는 오늘 돌아보기로 계획한 다섯집중 두번째 순서로 예정되여있는 돌막집으로 향하다가 김성주동지를 만났다.

마을의 굽이길에 나타나신 그이의 모습을 알아보자 그는 어린애처럼 환성을 지르며 뜨거운 포옹을 하였다. 며칠동안 동지를 그리던 정이 거밋한 음영이 자리잡은 눈굽에 그들먹이 괴여올랐다.

김성주동지께서는 그의 꺼칠한 모습을 보시자 측은한 생각이 드시였다.

《왜 그렇게 얼굴이 상했소? 지나간 일을 두고두고 생각하는게 아니요?》

그이께서는 리효의 손을 굳게 부여잡은채 나무라듯 말씀하시였다.

《지나간 일을 자꾸 생각해선 뭣하겠소, 짜증만 나는데…》

리효는 서글프게 말했다. 열정도, 기백도 느껴지지 않는 랭담한 어조였다.

《허참, 그렇게 맥을 놓지 말고 정신을 버쩍 차리오!》

김성주동지께서는 리효의 잔등을 손바닥으로 철썩 갈기며 정자나무밑으로 그를 이끌고 가시였다.

리효는 그때에야 세상물정에 게걸든 사람처럼 화전소식을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숙장선생은 요즈음 발편잠을 자겠지?》

그는 불평조로 숙장이며 교관의 《안부》를 묻는것이였다.

《학교가 뒤숭숭해졌는데 발편잠을 잘수 있겠소. 온 의숙이 흔들레판처럼 흔들흔들하는데…》

《망할 징조지.》

《그런 흔들레판우에서도 비밀독서회는 기운차게 움직이고있소. 요즈음은 조선혁명의 임무와 관련된 문제들을 내걸고 매일같이 토론회를 벌리고있지. 열성들이 보통이 아니요.》

김성주동지께서는 황학이며 유대용이들이며 진상락이를 비롯한 여러명의 청년들이 새로 비밀독서회에 망라되여 공산주의사상에 대한 연구에 심혈을 기울이고있는데 대하여 알려주시였다.

리효의 눈가에서는 불꽃이 반짝거리였다.

《거 정말 일이 멋지게 돼가는구만. 정말 친구들이 그리운데!》

그때에야 김성주동지께서는 동무들이 보내는 편지를 꺼내시였다.

《자, 친구들이 그리우면 이 편지들을 보라구.》

편지는 일곱장이나 되였다.

화전의 소식을 한줄한줄 밟아가는 리효의 입에서는 연방 탄성이 터져나왔다.

《개벽》사의 회답편지까지 읽고나서야 리효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성주, 그럼 본부에 가서 푹 쉬오. 내 세집만 돌고 인차 들어갈테니.》

《아니, 나두 같이 다니고싶소.》

리효는 더 만류하지 못하고 돌막집으로 향하였다. 담장도, 바람벽도 돌로 쌓은 집이였다. 초가이영우에도 듬성듬성 돌을 올려놓았다.

김성주동지께서는 문지방가에 키가 작달막하고 허리 구부정한 로파가 서있는것을 보시였다.

로파는 탄력없이 우그러뜨린 한손을 이마우에 올리고 째듯째듯 들이비치는 한나절의 해를 막고있었다. 앙상한 손가락짬으로 해빛이 새여들어오자 그는 미간을 잔뜩 찌그리고 옆으로 고개를 돌리였다. 그러자 이마우에 여러가닥의 주름이 잡히였다. 낭자를 튼 머리에서 광택이라고는 전혀 없는 구리비녀가 쨍그랑 하고 퇴돌우에 떨어졌다. 로파는 쉬이 접혀지지 않는 허리를 가까스로 구부려 눈으로가 아니라 손더듬으로 퇴돌우에 널려있는 허접쓰레기들을 더듬었다. 한참을 찾아도 비녀는 손에 잡히지 않았다.

김성주동지께서는 성큼성큼 퇴돌앞에 다가가 수수대들과 벼짚토막들의 찌꺼분한 검부레기속에서 비녀를 찾아드시였다.

《에구, 아슴채이쿠마.》

그 꺼칠꺼칠한 사투리의 억양과 로파의 눈빛을 통하여 김성주동지께서는 지금 늙은이가 자신에게 감사의 뜻을 표시하고있다는것을 알아차리시였다.

로파는 후들거리는 손으로 비녀를 꽂았다. 그런데 비녀는 제자리에 꽂혀지지 않아 껄껄한 토색무명저고리의 깃고대우에 백발을 쏟아놓았다.

《어디메서 오는 생원들이요?》

로파가 다시 입을 열었다.

《할머니, 우린 화성의숙에서 온 학생들입니다.》

리효의 대답이였다.

늙은이는 그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한듯 귀박죽에 손을 오그려붙이고 상반신을 리효앞으로 쑥 내보냈다.

《어디메서 오신답메?》

《화전에서 옵니다.》

《에그, 화전이면 우리 올찌시에미(올케)가 있는데구마.》

로파는 화전이라는 리효의 말에 손벽을 치며 반가와하였다. 늙은이의 강마른 얼굴에는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창일이 에미가 무슨 부탁을 합데?》

잠시후 로파는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는 아마도 자기 집에 소문도 없이 불쑥 나타난 이 훤칠한 청년들이 자기네 친척의 부탁같은것을 받아가지고 온줄로 넘겨짚는것만 같았다.

놀라고 당황한것으로 말하면 리효보다 화전에서 방금전에 당도하신 김성주동지께서 몇갑절 더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창일이 에미》라는 그런 녀인을 진작부터 알고있었더면, 그래서 이리로 오기전에 단 몇분이라도 그를 만날수 있는 기회를 가졌더라면 지금 이 로파에게 얼마나 큰 기쁨을 줄수 있겠는가 하는것을 생각하면서 안타깝게 리효를 건너다보시였다.

《할머니, 우린 사실 그래서 온게 아닙니다.》

리효는 《올찌시에미》라는 그 사투리가 무엇을 뜻하는지도 모르면서 로파의 억측을 미안스레 부정하였다.

《우린 할머니한테 좀 볼일이 있어서 왔습니다.》

로파는 얼마쯤 실망한듯하였으나 얼굴에 드러난 자기의 감정을 인차 손님들에 대한 호기심으로 바꾸어버리는것이였다.

《나를? 기차기두, 이 빌기먹은 늘그대기한테두 나그네 찾아오는 때가 다 있구…》

그는 휘줄거리며 부억문을 열어제끼였다.

《이거 집이 루추하지만 날래…》

리효는 로파의 손에 떠밀리여 퇴돌우에 발을 올려놓았다.

김성주동지께서 그뒤를 따르시였다.

어둑어둑한 집안에서는 찬바람같은 랭기가 썰렁하니 풍겨나온다.

(리효가 모연금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면 로파는 우리를 어떻게 대할가?)

김성주동지께서는 돈을 내놓으라고 손을 내밀기에는 로파의 나이가 너무도 많으며 로파의 집이 너무도 가난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송구스럽게 방안을 둘러보시였다.

리효는 그이를 향해 《이것 참, 못올데를 왔는데.》 하는듯이 고개를 찌붓해보이였다. 오늘 계획한 자금모연계획을 미달하는 한이 있더라도 이 로파앞에서만은 절대로 돈이야기를 꺼내지 않을것이라는 약속의 표시이기도 하였다. 그는 아무런 타산도 없이 이런 집에 성큼 뛰여든것을 못내 후회하는것 같았다.

로파는 써래기담배가 담긴 나무통을 손님들의 앞에 가져다놓았다.

《집안에 남정들이 없으니 담배두 쉬이 축이 가지 않는구마.》

늙은이의 한숨섞인 말이였다.

《할머니, 한대 피우시지 않겠습니까?》

김성주동지께서는 주머니에서 종이장을 꺼내여 담배를 말 차비를 하시였다.

로파는 황급히 그이의 손을 밀막았다.

《피울줄을 모르오.》

《이건 누가 피우는 담배입니까?》

《손자녀석이 피우던게지비.》

《손자는 어디 갔습니까?》

《옘병에 걸려서 잘못되지 않았겠습메.》

《장가간 손자입니까?》

《장가를 들었더무 어쩔번했겠소. 생과부 하나가 생길번했지비. 잔치를 한달 앞두구 글쎄 덜컥 눈을 감았당이.》

《참, 억울하셨겠습니다.》

《억울하다마다, 키두 학생만 하구 생기기두 학생처럼 생긴게 새애기들이 잉간 탐을 내지 않았당이. 제 애비 원쑤를 갚는다구 그양 이를 갈면서 돌아댕기더이 이턱게 제 할미 애간장을 썩일줄이사 뉘기 알았겠소.》

로파는 발치에 흩어져있는 조이삭 하나를 집어들어 뭉그러뜨리며 후유- 하고 단숨을 몰아쉬였다.

《아드님은 어떻게 되셨습니까?》

김성주동지께서는 자칫하면 늙은이의 아픈데를 건드릴수가 있다는것을 알면서도 화제를 같은 방향으로 끌고가시였다.

늙은이는 아까보다 한층 더 다감해진듯싶었다.

《홍범도선생을 따라댕기다가 봉오골에서 잘못되였소. 나라를 독립한다구 스무살때부터 늘 객지에 떠있었는데 나이 서른일곱이 될 때꺼정 독립은 고사하구 동전 한잎 생긴게 없이 저세상으로 가구말았소. 저기 장백에 있을적에 한번 피뜩 집에 들려 <오련발 탄환에는 군물이 돌고…> 하는 창가를 배워주었는데 내게는 그 창가 하나밖에 남은게 없재이오. 그래 아들생각이 문득문득 날 때문 그 창가를 부른답메.》

로파는 머리를 들어 눈물이 그렁그렁 괴인 눈으로 거미줄이 흔들거리는 천정 한구석을 하염없이 쳐다보더니 궁글은 목소리로 《의병가》를 조용조용 부르는것이였다.

 

오련발 탄환에는 군물이 돌고

화승대 키심에는 내굴이 돈다

에헤야 에헤야 에헹 에헹 에헤요

왜적군대가 다 쓰러진다

 

늙은이의 노래는 부슬비 내리는 마가을 찬날 비바람에 흔들리는 호수가의 수면처럼 처량하고 음울하였다. 곡조를 늘궈뜨리여 노래하는것인지 사설을 토하는것인지 알수 없게 길고도 가늘게 가락을 뽑는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소리없이 흘러내리고있었다.

로파를 따라 리효도 노래를 불렀다. 그의 삼촌 역시 이 노래 비슷한 《병정가》를 부르면서 찬바람부는 연해주땅에서 화승대를 메고 왜구들을 치다가 전사하였다. 지금은 시베창의 잡초 설렁이는 이름모를 언덕우에 무주고혼이 되여 잠들고있다.

얼마나 많은 령혼들이 나라를 찾지 못한 유한을 품은채 무덤속에서 고달픈 잠을 자고있으랴.

《할머니, 그러면 집에는 누구누구가 있습니까?》

노래를 그친 리효가 늙은이에게 묻는 말이였다.

《식구말이오? 나하구, 고얘하구(고양이) 닭이 세마리 있지비.》

로파는 말 못하는 집짐승들까지 식구속에 흔연히 포함시키는것이였다.

너무도 태연자약한 표정인지라 리효는 웃지도 못하였다.

로파는 변명이나 하듯 말을 이었다.

《사람이 이바븐(그리운) 우리 집에서야 그것들이 여간 찹찹한 식구가 아니지비. 닭들은 알을 잘 낳는다우. 그런데 그 닭알을 먹어줄 남정이 하나두 없으니, 어이구 무슨놈의 팔자가 이렇게두 기박한지…》

늙은이는 손에 마주쥐고 비비던 조이삭을 구들에 내려놓고 불쑥 일어서서 질그릇들이 주런이 놓여있는 덕대앞으로 다가갔다. 그 덕대의 맨끝에 자리잡은 단지속에서 닭알 세알을 꺼내가지고 돌아섰다.

《먹어줄 사람두 없는 이 집에 귀한 손이 왔으니 마침 잘됐소. 이걸 들면서 시국이야기나 좀 해줍세. 내 나라가 언제면 독립이 되겠는지…》

김성주동지께서는 늙은이의 온 일생이 비낀듯한 그 닭알을 차마 깨칠수가 없어 사양하시였다.

《할머니, 그만두십시오. 두었다가 할머님께서 잡수셔야지요.》

《이르워째, 내가 먹는다구 그게 제대로 넘어가겠소? 그건 안깐(녀인)들이 먹는 음식이 아니랑이. 에구 정말 이 노데기가 그런걸 먹으면 헤살이 가서 조선독립이 되다가두 아니되겠소. 사양 말구 날래 깨라이. 눈 떡 감구 날래!》

《할머니, 정말 이러지 마십시오.》

《정말 페러브양 하네. 날래 먹구 기운을 내서 나라를 찾아야지비.》

김성주동지께서는 끝내 로파의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을수 없으시였다. 그이께서는 숨이 막혀 질식해버릴듯한 중압감에 가까운 어떤 격렬하고도 숭고한 감정을 체험하면서 닭알을 집어드시였다. 리효에게도 한알 권하시였다. 만경대에 계시는 할머님의 모습이 불현듯 그이의 눈앞에 떠오르시였다. 할머님께서도 집에 찾아오는 젊은이들에게 저렇게 닭알을 권하시였다. 때로는 추리도 따주고, 풋강냉이도 삶아주고, 화로불에 감자도 구워주시였다. 어떤 때는 무릎에 가는 삼오리들을 비벼서 해진 신총도 새로 엮어주고 비에 젖은 누비옷을 밤새워 말리워주시기도 하였다. 할머님의 가슴속에는 그처럼 수난에 터갈라진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이 쓰다듬어주고 감싸주는 크낙한 인정이 있었다.

(조선의 할머니들이란 얼마나 좋은가!)

그때까지도 로파는 손님이 찾아온 용건을 묻지 않았다.

김성주동지께서도 자신들이 그 용건을 주인에게 한마디도 내비치지 않았다는것을 전혀 느끼시지 못하였다.

주인도, 손님들도 그것만은 까맣게 잊어버리고있었다. 로파의 눈에는 손님들이 마실을 왔다가 돌아가는 동네집 청년들처럼 보이였고, 손님들의 눈에는 로파가 오래간만에 찾아와 만난 이모나 왕고모쯤 되는 친척처럼 여겨졌다.

손님들이 퇴지아래에 내려서서 작별인사를 할 때에야 주인은 비로소 찾아온 사유를 물었다.

리효는 사실대로 자금모연을 왔노라고 솔직히 고백하였다. 용건은 그렇지만 할머니와 같이 무의무탁한 집에서는 돈을 요구하지 않노라고 부언하였다.

로파는 리효의 저저한 설명을 다 들으려 하지 않고 조이삭 하나를 부스러뜨려 마당 가득 뿌리였다. 《구구구…》 하고 닭들을 불렀다.

검정닭 한마리가 선참 마당에 뛰여들어 맹렬히 모이를 쫏기 시작했다.

늙은이는 닭의 볏가에 손을 바투 가져다대고 모이를 또 한돌개 뿌리더니 잽싸게 짐승의 날개를 거머쥐였다.

닭은 꼬꼬댁 소리를 지르며 주인의 손에서 벗어져나갔다.

로파는 허둥지둥 닭을 뒤쫓아갔다. 그러다가 나무모태에 발을 걸채여 허궁 넘어졌다. 늙은이의 고달픈 한생이 압축된것 같은 눈물겨운 장면이였다.

(일생을 저 할머니는 저렇게 보내셨을것이다. 기나긴 한평생을 살아오시느라니 얼마나 걸거치는것이 많았겠는가. 한뉘 배불리 잡숫지도 못하고 뜨뜻이 입어보시지도 못하고 색다른것이 생기면 남정들과 자손들에게 넘겨주면서 허우적이며 살아왔을테지. 귀중한 모든것을 다 잃어버린 저 할머니는 지금 무슨 락을 가지고 무슨 목적을 위해 여생을 보내시는것일가?)

김성주동지께서는 이런 생각을 하며 로파의 곁에 바삐 다가가 그의 팔을 부축해 일으켜드리시였다.

《할머니, 다치지 않았습니까?》

《일없습메.》

《우리보고 붙들어달라고 하시지 그 불편하신 몸으로…》

《에이구, 망할놈의 닭, 날래기두 하다. 이 늙은것앞에서는 그저 모든게 다 번개구실을 한다니까. 저걸 제깍 불잡아주우!》

닭은 한참만에야 김성주동지의 손에 걸려들었다.

손을 툭툭 털고 일어난 로파는 다리를 절름거리며 뒤웅박이 걸려있는 벽가로 다가갔다. 노끈을 꺼내여 두다리를 칭칭 묶동였다.

《옜소. 이게 내 모연금이요. 돈으로 생각해달라이.》

늙은이는 김성주동지의 가슴에 그 닭을 떠넘겨주었다.

《할머니, 이게 무슨 일입니까? 이러시면 안됩니다. 이런 법이 없습니다.》

김성주동지께서는 펄쩍 놀라 그 닭을 로파한테 도로 넘겨주시였다.

《이르워째, 법은 무슨 법이겠소. 법이야 만들문 되는게지비. 옜소. 내가 내구싶어 내는겐데…》

《안됩니다. 할머니, 이러시면…》

《원 별소리, 여러 말 말구 날래 가져가라이!》

《할머니, 할머니와 같이 의지가지할데 없는 사람들한테서는 돈을 요구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의지할데 없으니까 독립을 더 생각하는게지비. 나라가 있어야 이 몸두 의지할 언덕을 찾지 않겠습메.》

《할머니, 그렇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이 닭을 받을수 없습니다.》

김성주동지께서는 로파가 더 범접을 못하게 두손을 내드시였다.

그이께만은 더 어쩔수 없다는것을 깨달은 로파는 늙은이답지 않게 잉그르르 달려가 리효의 품에 팽개치듯 닭을 떠안기였다.

그리고는 벌컥 성을 내였다.

《나라에 끌대같은 아들까지 바친 이 몸이 닭 한마리가 다 무스게요. 독립을 위한 일이라면 나는 뭐이든 아깝지 않소. 살도 베내라면 베내겠습메!》

로파의 목소리는 격정으로 하여 꺽 막히였다.

리효는 품에 들어온 닭을 엉거주춤 안고 어쩔바를 몰라서 김성주동지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이의 눈빛에서 로인의 지극한 정성을 그이상 더 거절하기 어렵겠다는 뜻을 읽게 되자 고개를 푹 숙이고 치렬한 싸움을 한바탕 겪고난 사람처럼 숨을 씨근거리였다.

로파는 그제야 안심이 되는듯 비뚤어진 머리보를 매만지며 입가에 웃음을 그리였다. 늙은이는 삽짝문밖에까지 따라나와 손님들을 바래주었다.

《젊은이들, 어서 빨리 나라를 찾아주우. 내 나라가 그립소. 제 나라로 돌아가는 길이 왜 이다지두 먼지? 내같은 노데기가 이제 살면 몇년을 더 살겠소. 그렇지만 단 하루를 살아두 제나라 땅에서 살고싶습메.》

김성주동지의 손과 리효의 손을 번갈아 쓸며 로파가 하는 말이였다.

어떻게도 가슴을 파내리는 말이였던지 김성주동지께서는 늙은이의 얼굴을 도저히 마주 쳐다보실수가 없었다. 그이의 눈앞에는 일생을 두고 잊을수 없는 친근한 모습들이 또다시 떠오르시였다.

만경대에서부터 화전에로 이르는 허구많은 날 이르시는곳마다에서 자신께 숭늉을 권하고 따뜻한 아래목을 내여드리고 몸으로 찬바람을 막아드리던 수더분한 그 인민의 장하고도 억센 군상이 그이의 눈앞에 우렷이 솟아오르는것이였다. 그 어떤 외진 박토에 삶의 뿌리를 내리여도 조국을 그리는 그 마음에 한점의 때도 묻히지 않고 마지막 동전 한잎까지도 내 나라를 위해 바치는 성실하고 훌륭한 인민이였다. 그 인민의 인정은 비단같았고 말은 노래처럼 아름다왔으며 의지는 창날처림 강하였고 기상은 소나무처럼 푸르렀다. 동네에 상가집이 생겨도 그 인민이 제일 먼저 조문을 했고 나라의 변방에 적들이 끓어도 그 인민이 제일 선참 검을 들고 수자리로 달려갔다.

그 인민의 지혜가 있어 이 땅에는 거북선이 생기였고 국방을 위한 철벽의 산성들이 일어섰다. 전란에 빠진 국토와 백성을 돌보지 않고 의주로 피난가던 선조왕의 으리으리한 행차앞에 엎드려 조국방위를 탄원한것도 우리 인민이였다. 나라를 위해서라면 백골이 되여서까지 군포를 물던 인민이였다. 그 인민은 조국을 위해 목숨바친 선렬들의 묘지에 대리석을 다듬어 비석을 세웠으며 붓과 입을 한데 모아 후대들에게 전해줄 《임진록》을 만들었다.

김성주동지께서는 불현듯 인민에 대한 믿음이 백배로 두터워지는것을 느끼시였다. 그 인민의 근면한 힘과 비단같은 마음을 한데 묶어세워 불길로써 지펴보고싶은 열망이 가슴뿌듯하게 차오르시였다.

(이 세상 모든것이 다 구질구질하게 더럽혀져도 오직 우리 인민만은 순결하고 지혜로운 그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얼마나 좋은 인민인가!)

《내가 살던 마을처럼 그렇게 좋은데야 이 세상에 없지비. 물맛이 소문나서 서울량반들까지 찾아오던 고장이였당이. 언제면 그 물을 다시 마셔보겠는지…》

로파는 치마자락을 들어 눈지방으로 가져갔다. 늙은이의 주름진 볼로 강렬한 향수가 방울방울 흘러내리였다.

김성주동지의 눈굽에서도 그런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리였다. 조국이라는 크나큰 존재를 수탈당한 인민의 북받치는 설음이 그이의 가슴에서도 소용돌이쳤다.

《할머니, 조선의 손자들이 약속합니다. 그날을 꼭 기다려주십시오!》

그이께서는 늙은이의 두손을 잡고 오래오래 흔들다가 돌막집의 사립문가를 떠나시였다.

로파는 아까처럼 또 이마우에 손채양을 올리고 젊은이들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담장밖에 서있었다.

《나는 요즈음 어데 가나 저런 사람들을 만나군하오.》

리효는 젖은 눈을 훔칠념도 없이 울먹거리는 소리로 말하였다.

《리효, 나는 이 화전땅에 와서 많은 사람들과 접촉하였소. 박인석이같은 민족주의자도 만나보고, 김찬이와 같은 사람도 만나보고 상해 <림시정부>의 <각료>들도 만나보았소. 그렇지만 나는 그들모두에게서 환멸밖에 얻은것이 없소. 그러면 우리는 누구를 믿어야 하겠소? 누구를 믿고 혁명을 밀고나가야 하겠소?》

김성주동지께서는 이런 질문을 던지고나서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묵묵히 앞으로 걸어가시였다.

리효는 그이의 다음 말씀을 들으려고 귀를 강구었다.

그러나 그이께서는 아무 말씀도 없이 리효가 안고가는 닭의 날개밑에 한손을 밀어넣고 무궁한 하늘가 한끝을 다감하게 바라보시는것이였다.

 

21

 

중낮이 되면서부터 갑자기 날씨가 물크러지기 시작했다. 해빛은 더 쨍쨍해지고 대기는 가을날답지 않게 무더워졌다. 온 누리가 하나의 거대한 화독으로 변한것 같았다. 폭우가 쏟아질 징조였다.

리효와 헤여지신 김성주동지께서는 서둘러 성남촌을 떠나시였다. 비가 내리기전에 무련이가 살고있는 새초덕에 가보시려는것이였다.

여기까지 왔다가 그 불쌍한것을 만나지 않고 그냥 돌아가면 그이자신이 가슴이 아파서 한뉘 후회하시게 될것 같았다. 무련이자신은 인심좋은 주인밑에서 아무런 마음고생도 없이 살아가는것처럼 말을 한다지만 그것을 어떻게 정말이라고 믿을수 있겠는가. 세상이 야박하면 인심도 이지러지는 법인데.

새초덕에 가서 무련이를 만나고 해전으로 화전까지 가자면 시간이 어방없이 모자랄것 같았다. 다행히도 어떤 나그네가 지름길을 대주었다. 생소한 초행길이였지만 김성주동지께서는 그길로 선뜻 발길을 돌리시였다. 가느다란 오솔길이 송림으로 뒤덮인 산정을 향해 우불구불 뻗어있었다.

산고개 하나를 넘으시니 등판우에 인가가 대여섯호 되는 작은 마을이 나타났다. 나무판자로 울타리를 두른 맨 첫번째 초가는 주막집이였다. 토방우에는 엿이며, 강정이며, 지짐떡들을 담은 광주리들이 자그만치 세개나 놓여있다. 희한하다는 생각보다도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우선 김성주동지를 기쁘게 해드리였다. 이 주막집만 만나지 못했더면 빈손으로 무련이한테 가실번했다. 그이께서는 얼른 주머니를 뒤지시였다. 며칠전에 어머님께서 학비로 쓰라고 보내주신 돈가운데서 문방구들을 사고 남은 돈 몇십전이 손에 잡히시였다. 그 돈으로 지짐 여섯장과 엿 한근을 사시였다. 주인아낙네는 종이가 모자란다면서 호박잎으로 그 물건들을 싸드리였다.

하늘에서 비방울이 쫄금쫄금 떨어져내리기 시작했다. 주막거리를 떠나 굽이를 두개 돌자 비는 더 재게 내리였다.

김성주동지보다 조금 앞서서 주막집을 떠난 령너머 마을 농민 셋은 꺼멓게 몰려오는 구름장을 겨끔내기로 쳐다보더니 길가의 산전막으로 쑥 들어가버린다. 비를 그으며 굿이나 보다가 길을 이어대려나보다.

《학생, 어디까지 가오?》

억새풀로 이영을 이은 산전막의 채양밑에서 방정맞은 가을날의 천기를 두고 두덜거리던 농부 하나가 행길쪽을 내다보며 소리쳤다.

《새초덕으로 갑니다.》

김성주동지의 대답이였다.

《어이구, 새초덕이면 아직 십리두 더 되는데 여기 와서 비나 긋다가 가구려.》

막걸리독이 올라 코도, 볼도, 이마도 온통 주홍빛으로 물든 그 사나이는 취흥이 도도하여 인정이 출출 흐르게 어서 들어오라고 손짓까지 하였다. 그리고는 이렇게 덧붙인다.

《저기 저 산턱이 뽀얘진게 안보이나? 십분만 지나면 여기에두 줄비가 쏟아질걸세.》

《고맙습니다. 그런데 길이 바빠서 먼저 가봐야겠습니다.》

김성주동지께서는 모자채양에 손을 올려 말없는 고마움을 표시하신 다음 그냥 한대중으로 걸음을 이어가시였다.

《허참, 우리고장 비라는게 얼마나 고약한지 모르나베.》

산전막쪽에서 이런 말소리가 들려왔다.

과연 농부들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굵은 비방울들이 수림의 억만잎새들에 부딪쳐 쏴-소리를 지르며 호되게 대지를 후려갈기기 시작했다. 오솔길은 삽시간에 걸쭉한 황토물로 벌창을 이루었다. 찐득찐득한 진흙이 찰떡처럼 신발에 달라붙었다. 차디찬 비물은 잠간사이에 모자와 옷을 쥐여짜게 적시고 등골에까지 사정없이 스며들었다. 호박잎에 싼 지짐떡도 다 젖었다. 옷이 젖고 몸이 젖는것보다 그게 젖는것이 더 가슴이 아프시였다.

(무련이도 지금 방목지에서 이 비를 맞고있지 않을가?)

새길령마루를 넘어서자 경사가 약한 밋밋한 등판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 등판우에 삼사십호쯤 되는 꽤 큼직한 밀집부락이 보이였다.

김성주동지께서는 주막집 안주인이 대주던 표적들로 미루어 이 부락이 다름아닌 새초덕이라는것을 확신하시였다. 과연 이름처럼 등판에는 새초풀이 많았다. 마을 변두리에서 새초를 뜯는 말들이 물보라속으로 보이였다.

그이께서는 부락유축에 외따로 떨어져있는 제일 큰 집을 향해 무작정 발길을 돌리시였다. 어쩐지 유표하게 생긴 그 집이 무련이가 사는 면양업자의 집일것 같은 예감이 드시였던것이다. 이 부락에서는 하나뿐인 양철로 지붕을 올리고 울타리 널장에 타르칠까지 한 그 집은 당당한 외양만 보고서도 가난과 담을 쌓고 사는 사람들이 거기에 거접하리라는것을 짐작할수 있게 하였다. 널직한 뜨락에는 채광창까지 달린 꽤 큰 양사가 있고 그 맞은켠에는 잇달아 지은 두개의 돼지우리가 있다. 양사에는 양들이 있는데 돼지우리들은 텅 비여있다. 지붕에서 떨어진 대여섯개의 고추가 락수에 패여진 홈타구니의 물탕에 나딩굴고있다. 철없는 중닭 한마리가 비물에 젖은 날개를 털며 어기정어기정 그 홈타구니앞으로 다가와 길죽한 부리로 고추를 쫏는다.

《계십니까?》

김성주동지께서는 퇴돌앞에 다가서서 주인을 찾으시였다.

분명 귀가 몹시 밝은 녀자임에 틀림없는 안주인이 조용히 문을 열고 밖을 내다본다. 가을이라는 절기에 어울리지 않게 양털로 뜬 누르끼레한 마고자를 입고 트레머리를 해올린 30대의 녀인이다. 젊고 끼끗하게 생겼으나 얼굴은 약간 병색을 띠고있다.

《누구를 찾습니까?》

그 녀자는 크고 사납게 생긴 눈으로 비발속에 서계시는 김성주동지를 놀라운듯이 바라보았다.

《저- 이 집이 조백구라는분의 댁입니까?》

《그래요. 어디서 오는 손님인지?》

《화성의숙에서 옵니다. 무련이 오빠의 친구입니다. 볼일이 있어서 성남촌에 왔다가 무련이를 만나려고…》

《무련이를 만나려거든 저기 가닥골에 가봐요.》

푸접없이 이렇게 말을 내뱉은 녀인은 들어오라는 소리도 하지 않고 쾅 하고 문을 닫아버렸다.

김성주동지께서는 치미는 분기를 가까스로 누르며 조백구의 집 뜨락을 나서시였다.

오래뜰로 뛰여가던 마을농민이 그이께 손짐작으로 가닥골이 어디인가를 대여드리였다.

비바람은 더한층 우우- 소리를 지르며 모든것을 들부실듯 기세를 올리였다.

새초덕에서 동쪽으로 5리쯤 가시니 풀이 무성한 길다란 계곡이 나타났다. 가닥골이였다. 비내리는 계곡의 고적은 으스산도 하였다. 그 고적속으로 뚤뚤거리는 돼지들의 투덜거림소리가 날아왔다. 채찍처럼 아프게 내려지는 애된 푸념소리도 들려왔다.

(무련이다. 무련이가 틀림없다!)

눈보다도 심장이 먼저 이렇게 웨치였다.

김성주동지께서는 급해지는 마음을 달래일 사이도 없이 물보라속을 바삐 걸어가시였다. 옷은 다시 물에 헹군 빨래감처럼 젖어들고 신발은 흙탕물로 매닥질을 하였다.

《성주오빠!》

뿌연 비발속에서 갑작스레 이런 목소리가 날아왔다.

김성주동지께서는 걸음을 멈추시였다.

어깨우에 우장은커녕 지푸래기 한대도 걸치지 않은 무련이가 자기 키만큼이나 긴 회초리를 들고 그이앞으로 뛰여왔다. 뛰여와서는 총알같이 김성주동지의 품을 떠박지른다. 비에 함뿍 젖은 자그마한 몸뚱이가 아니라 커다란 불덩어리가 그대로 가슴을 비집고 들어서는것 같다. 새새끼처럼 파들파들 떠는 심장의 급한 박동이 뜨거운 온기와 함께 잦은 가락으로 툭툭 그이의 가슴을 두드린다.

《무련아!》

김성주동지께서는 물기가 즐벅한 소녀의 어깨를 꽉 붙안은채 한동안 움직이지 않고 허공을 쳐다보시였다. 이역의 차거운 언덕받이에서 이루어진 눈물겨운 이 상봉에는 아랑곳도 하지 않고 줄창 억수로 비를 퍼부어대는 하늘이 너무도 무정스러우시였다.

《무련아!》

불쌍한 그 이름을 다시 부르시자니 목이 꽉 메여오르고 눈물이 앞을 가린다. 이국의 하늘밑에서 당하는 참상이여서 그런지 그의 모습은 더 눈물을 자아낸다. 제나라 제땅에서 겪는 불행이라면 이다지도 가슴이 저리지는 않을것이다.

(이렇게 폭우와 진창속에 마구 내굴리고 마구 내던져도 하소할곳 없는 불쌍한 무련이…)

김성주동지의 마음속에서는 새삼스럽게 설음이 사무쳐올랐다.

《비가 오면 산전막으로 들어가든가 집으로 돌아갈것이지… 이렇게 한지에서 떨다니!》

그이께서는 비에 젖어 한뽐은 더 작아진것 같은 무련이의 옹송그린 모습을 비로소 눈여겨보며 나무라듯 말씀하시였다.

《이까짓 비.》

무련이는 뒤덜미와 귀밑에 엉켜붙은 머리카락들을 한줌에 몽켜쥐고 물을 짜서 떨어뜨리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구질구질한 고생살이속에서 그의 성미는 더 억세여지고 영악스러워진듯싶었다. 그렇게라도 강해지지 않으면 인정사정없는 세상이 그를 더 참혹하게 짓밟을것이다. 연약한 무련이보다는 그런 모습이 훨씬 더 보는 사람의 마음속에 안정을 주는상싶다.

《무련아, 가자!》

김성주동지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무련이는 무리에서 제일 큰 엄지돼지의 등때기를 회초리로 내려쳤다.

짐승은 꽥 소리를 지르며 앞으로 주자를 놓았다. 나머지 돼지들은 모두 그 엄지의 뒤를 순순히 따라갔다. 그런데 한마리의 새끼돼지만은 무리를 따르지 않고 허튼곳에 줄곧 눈을 팔며 어린 목동의 애를 말리웠다. 천성이 장난꾸러기로 생겨먹은 그놈은 수십마리가 넘는 돼지들가운데서 제일 먹새가 좋고 부잡스런 망나니라고 한다.

그래도 무련이는 야들야들한 그 살에 채찍을 대는것이 끔찍스러워 매를 들지 않고 애꿎은 발을 구르며

《요, 막냉이야! 두-두-》 하고 에우기만 한다.

《무련아, 너 그놈한테 버릇을 잘못 붙였구나. 그렇게 응석을 받아주니까 자꾸 말썽을 피우지.》

김성주동지께서는 무련이의 반대켠에서 돼지들을 에우며 넌지시 그를 돌아보시였다.

《그럼 어떻게 하나요?》

《꾀를 써야지.》

《꾀요?》

《그럼, 그놈이 꾀를 부리는데 너도 꾀를 써야지.》

《어떻게요?》

《저 막냉이가 아무리 배짱이 실한체해도 제 무리에서 멀리 떨어지는건 달가와 안한다. 그러니 막냉이가 뒤에서 제볼장을 볼 땐 엄지돼지를 냅다 앞으로 몰아야 한다. 허 참, 저놈이 또 능쟁이무데기를 찾았구나. 어디 한번 내가 시키는대로 해봐라.》

무련이는 재미나는 시험이라도 치르러 나가는것처럼 생글생글 웃으며 엄지돼지를 뒤쫓아가 채찍으로 그놈의 궁둥이를 맵짜게 후려쳤다. 과연 일은 김성주동지께서 말씀하신대로 되였다. 까맣게 뒤떨어졌던 막냉이돼지는 제 엄지가 먼 앞쪽에 있는것을 보자 황급히 무리를 다쫓아갔다. 무련이는 그 모양이 너무도 신기하여 까르르 웃음을 터치였다.

비는 내리던 때처럼 급작스레 멎었다.

《성주오빠, 어떻게 여기까지 왔나요?》

무련이는 아까처럼 또 머리카락을 쥐여짜며 김성주동지를 할끔 쳐다보았다.

《저- 성남촌에 왔다가 네가 보고싶어 새초덕을 찾았다.》

《그럼 길에서 홀딱 비를 맞았겠네요.》

《비야 너도 밖에서 맞은걸.》

《그래도 몸이 쯔겁겠네.》

《일없다.》

무련이는 그래도 안심이 되지 않는지 김성주동지의 팔소매를 슬쩍 만져본다. 그러다가 느닷없이 왕청같은 말을 또 꺼낸다.

《우리 오빤 나한테루 오겠다는 말 안할거예요.》

이 걸음에 오빠가 동행하지 않은것이 서운한 모양이였다.

《건 왜? 그래도 나보다는 너의 오빠가 너를 더 보고싶어하는데.》

《만나러 올 때는 좋은데 만나고 갈 때에는 눈물이 나서 오고싶어도 못오겠다나요.》

《그거야 그럴수 있지.》

《오빤 남자지만 나보다두 맘이 더 약해요. 누군 뭐 눈물이 안나나…》

김성주동지께서는 아무 말씀도 못하시였다. 무련이의 그 말이 아픈데를 또다시 긁어내리였던것이다. 동생을 끔찍이 사랑하는 리무성이 무련이한테 가기를 그토록 두려워한 까닭이 비로소 헤아려지시였다.

무련이는 그런 말을 해놓고는 제사 속이 상하는지 인차 다른 말을 꺼내였다.

《성주오빠, 빨리 가자요. 가서 옷을 말리자요.》

제옷이 젖었다는 감각보다도 성주오빠의 젖은 옷을 말려야겠다는 도의심이 더 치밀어오르는 모양이였다.

《그래, 말리자. 그렇지만 그 집으로는…》

김성주동지께서는 조백구의 집으로 다시 들어가지 않겠다는 말씀을 하려다가 그만두시였다. 무련이가 발을 붙이고사는 그 집에 가시지 않겠다고 하면 그가 섭섭해할것 같아서였다. 그이께서는 무련이를 길가에 세워두고 산기슭의 외딴집에 찾아들어가 마른 솔가리나무와 강냉이짚과 성냥을 얻어내오시였다. 그것으로 비에 덜 젖은 길가의 아카시아숲속에 모닥불을 지피시였다. 자신께서 손수 피운 그 불에 무련이의 옷을 말리시려는것이였다.

백사지같은 이 새초덕에 와서 다른것은 못해줄지언정 그것만이라도 해주면 마음이 편할것 같으시였다.

그이께서는 모닥불이 일자 무련이앞에 지짐떡과 엿을 내놓고 그가 먹는양을 지켜보시였다.

무련이는 눈깜짝할 사이에 지짐떡 한개를 다 먹어버리였다. 몹시 배가 고팠던 모양이였다.

《맛있니?》

《맛있어요.》

《하나 더 먹어라. 나도 한개 먹어볼가.》

김성주동지께서는 새 지짐떡을 무련에게 쥐여주고 자신께서도 한개 집어드시였다. 무슨 수를 써서든지 이 모닥불곁에서 사가지고 오신 지짐떡을 다 먹이시려는것이였다.

퍼렇게 얼어들었던 무련이의 얼굴은 불기운을 받자 홍조를 띠였다. 푸리끼레하던 입술도 대번에 앵두껍질처럼 윤기가 즈르르해졌다. 량볼에 매달렸던 비방울들은 가느다란 실김으로 피여오르고 귀밑에 남은 몇방울마저 솜털속에 잦아들어 보이는듯마는듯하였다. 다만 오른쪽 눈섭우에 유난히 큰 비방울 하나가 남아있어 좀전에 어린 목동이 겪은 고초를 상기시켜주고있을뿐이였다.

무련이는 모닥불에 손을 내들고 거기서 물기가 녹아 김이 되여 날려가는 모양을 잠자코 지켜보다가 문득 방긋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성주오빠, 작년여름 내가 샘골외가집에 있을 때 오빠가 가져다준 저고리가 생각나겠지요?》

《응, 생각나구말구.》

《그 저고리를 화전으로 올 때 이쁜이에게 줬어요.》

《이쁜이한테?》

《네, 그 앤 나보다도 더 못입었거던요. 그리구… 헤여지자니 어찌나 섭섭한지… 그런데 성주오빠를 보니 그 저고리를 준게 막 미안해!》

무련이는 수집고 송구스러워서 어깨속에 목을 움츠러뜨리는 시늉을 하였다. 그렇게 태를 내는 소녀의 모습이 더없이 미덥고 사랑스러워보이였다. 그는 지난해 겨울 고향을 떠날 때 입었던 그 옷을 그냥 입고있었다.

김성주동지께서는 그 기특한 소녀의 모습앞에서 가슴이 훈훈해지시였다.

《뭐 미안할게 있니. 불쌍한 애를 위해 벗어줬으니 그거야 썩 잘한 일이지.》

그러는 사이에 시간도 퍼그나 흘렀다.

모닥불에 몸을 녹이고 요기까지 한 무련이는 기분이 사뭇 훈훈해져서 《해야 해야 물떠먹고 장고치고 나와 놀자》 하는 노래까지 불렀다.

그러나 리별의 시각이 다가올수록 김성주동지의 마음은 또다시 허우룩해지셨다. 그이께서는 불길에 가리워 빨갛게 익어보이는 무련이의 얼굴을 모닥불너머로 지켜보며 생각에 잠기시였다.

(이 모닥불이 스러지고 내가 가면 울적한 생활이 다시금 무련이를 폭우속으로 떠밀것이다. 오늘밤은 꿈을 꿔도 비에 젖는 꿈을 꿀지 모른다. 꿈속에서조차 비를 맞는다면 불행한 무련이는 또 얼마나 춥고 고달플가. 한순간이 아니라 무련이를 위해서 영영 없어지지 않는 기쁨을 마련할수는 없을가?)

무련이는 문득 허리춤에서 돼지염통만한 보꾸레미를 풀어내여 모닥불앞에 내들었다. 해져서 너설너설해진 보자기에 싼것이여서 무엇인지 알수 없었다. 그는 꼭 옹쳐맨 보자기를 이발로 끄르고 거기서 참대바늘이 그대로 꽂혀있는 뜨개질감을 꺼냈다. 거기에는 아이들의 조마구만한 양털실토리가 매달려있었다.

《그건 뭐냐?》

《양말이야요. 울 오빠에게 떠보내려구…》

무련이는 부끄럼때문에 얼굴을 살짝 붉히며 눈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그리고는 모닥불에 뜨개질감을 쪼이기 시작했다.

미구에 거기서는 실날같은 김이 피여올랐다.

《무련아, 그걸 이리 다구. 내가 말리워줄게.》

김성주동지께서는 무련이의 손에서 뜨개질감을 받아들고 조용히 물으시였다.

《그래, 그 조백구란 사람이 너에게 양털을 주더냐?》

《아니, 내가 주은거야요. 산에 가면 나무가지에랑, 덩굴에랑 양털이 걸려있는게 더러 있거던요. 그걸 주었지요뭐. 한짝은 떠서 집에 두구 지금 다른 짝을 뜨는중이야요. 우리 오빤 후창에 있을적에도 내내 양말이라는게 없이 살았어요.

이제 군대가 되여 싸움을 하느라면 발이 시릴 때가 더 많겠지요?》

나무꼬챙이로 모닥불을 헤집으며 불티들을 한데 몰아가는 무련이의 얼굴에서는 그냥 홍조가 사라질줄 몰랐다. 그닥 곱게도 생기지 않은 소녀의 둥글넙적한 얼굴은 그 홍조때문에 유난히도 의젓하고 아름다와보이였다.

가슴뭉클해지는 감동과 더불어 눈물겨운 련민의 정이 김성주동지의 마음속에 한가득 스며들었다. 그이께서는 장차 온몸과 넋을 나라의 광복위업에 바칠 또 한명의 성실하고 인정깊은 미래의 인민을 보는것 같으시였다. 그 인정은 저주로운 세월의 진흙탕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고있는 구슬과도 같이 고귀한것이였다.

《무련아, 네가 정말 용쿠나.》

김성주동지께서는 모닥불너머로 손을 내들어 무련이의 다박머리를 쓸어주시였다. 그러고는 또 말씀하시였다.

《그 한짝을 다 뜨거든 화전으로 가지고 오너라. 아니 네가 못오면 새초덕으로 오빠가 오든지 내가 오든지 하지.》

《아니, 내가 인제 가요. 주인집에서도 날 화전에 놀러 보내겠다구 했어요.》

돼지들은 그사이 사방에 뿔뿔이 흩어져 제멋대로 뛰여다니고있었다.

풀을 뜯는놈, 밭고랑을 뚜지는놈, 진창에 나딩굴며 짝패끼리 마주붙어 장난을 하는놈…

김성주동지께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길섶에 떨어진 젖은 역삼대 하나를 집어드시였다. 그것을 회초리삼아 흔들며 돼지들을 한데 불러오시였다.

뜀박질을 하며 먹이를 뜯느라고 뚤뚤거리던 돼지들이 하나 둘씩 그이의 앞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무련이는 리별의 시각이 다가왔음을 알자 김성주동지의 손을 잡고 놓지 않았다. 말은 없이 그이께서 한걸음 걸으시면 자기도 한걸음 걷고 그이께서 두걸음 옮기시면 자기도 두걸음 옮기였다. 그러다가 한숨을 푹 내쉬며 마지못해 그이의 손을 놓아드리였다.

《성주오빠, 또 오지요?》

그는 입귀로 새여드는 눈물을 감빨며 울듯울듯한 소리로 물었다.

《그래, 또 오지 않고. 다음번에는 너의 오빠랑 같이 오마.》

김성주동지께서는 약속의 표식으로 무련이의 어깨를 잡았다놓고나서 조백구네 집 뒤덕으로 향하시였다.

헤여지기 싫어하는 어린것의 눈물어린 눈길을 등뒤에 받으며 고개마루를 오르자니 어쩐지 더 숨이 차오르는것 같으시였다. 그이께서는 마루턱에 오르자 뒤를 돌아보시였다. 거기서는 무련이의 모습이 더 작게 보이였다.

《무련아, 잘 있거라!》

새초덕을 흔드는 작별의 인사와 함께 눈물이 그이의 두볼로 소리없이 흘러내리였다. 만나러 올 때는 좋은데 만나고 갈 때에는 눈물이 나서 오고싶어도 못오겠노라고 했다는 리무성의 말이 정말 옳은것 같았다. 그 눈물때문에 그이께서는 다시 오고싶어도 새초덕에 못오실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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