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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서《불멸의 력사》 1 장편소설
김 정
( 제 18 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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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강에서 화전쪽으로 뻗은 행길로 마차 한대가 달리고있었다. 나이와 거쿨진 생김새에는 그닥 어울리지 않는 베잠뱅이를 입고 역시 굵은 베천으로 지은 등거리 앞자락을 활짝 열어제낀 청년이 마부대에 앉아있다. 북대가 막바지에 살면서 농사도 짓고 삯마차도 모는 방을룡이다. 몸통이 삐쭉 마른 가라말이 끄는 그 마차에는 청년 하나가 가마니짝을 베고 보리북데기속에 반듯이 누워있었다. 쏟아져내리는 한낮의 광선때문에 눈이 시그러워서 그러는지 그는 호박잎으로 얼굴을 가리웠다. 청년은 내내 같은 모양으로 누워있었는데 그 모양만 보고서는 그가 졸고있는것인지 명상에 잠겨있는것인지 도무지 알수 없었다. 청년의 옷은 황갈색의 대마직으로 맵시있게 지은것이였으나 덞어질대로 덞어져 때국이 꾀죄죄하였다. 게다가 먼지투성이 바지에는 보기만 해도 섬찍한 감을 주는 검붉은 피얼룩들이 여기저기 찍혀있었다. 정갱이에 무엇을 감았는지 한쪽바지가랭이는 다른쪽 가랭이보다 보기 흉하게 부풀어올랐다. 그 가랭이우에서는 인가도 없는 이 계곡에서 어떻게 되여 날아왔는지 알수 없는 두마리의 파리가 지꿎게 잉잉거리고있었다. 사람의 몸무게에 눌리여 보리북데기의 등에 닿은쪽은 갈노전처럼 납작해졌는데 그 나머지는 부풀대로 부풀어올라서 어깨를 파묻을 지경이였다. 첫눈에도 부상자라는것이 인차 알리였다. 마차가 들출 때마다 청년의 입에서는 창자를 긁어내리는것 같은 신음소리가 새여나왔다. 그럴 때면 그만 못지않게 덞은 옷을 입고 후줄근한 몰골을 한 두명의 청년이 마차 량옆에서 동시에 련민의 정이 어린 눈길로 그를 돌아보군하였다. 그들의 눈만 보고서도 부상자의 상처가 어느 정도인가를 쉽사리 알수 있었다. 실상은 그들의 행색도 이만저만 초라하지 않았다. 두명중 허우대가 크고 볼에 여드름이 삐죽삐죽 돋은 청년은 다리를 몹시 절었다. 그는 걸음을 옮길 때마다 제손으로 얼추 만든것 같은 지팽이를 간신히 들어 땅을 짚어나갔는데 그 모양이 어찌나도 늘크레하고 나른해보였던지 손으로 한번 다쳐만놔도 쓰러질것 같았다. 몸집이 작은 두번째 청년도 심하게 다리를 절었다. 그들은 보름전에 화전땅에서 감쪽같이 자취를 감추었던 화성의숙 학생들이다. 마차우에 호박잎을 쓰고 누운 부상자는 리효였고 여드름이 삐죽삐죽 돋은 청년은 김리갑이였으며 그다음 청년은 일행의 길량식을 책임진 《군량도감》 조학봉이였다. 함께 원정에 참가했던 조기영은 일행속에 없었다. 채호국의 무훈을 찜쪄먹는 군공을 세우리라고 장담했던 그들의 국내습격전투는 리효의 부상과 조기영의 행방불명이라는 비참한 결과로써 끝났다. 그처럼 호탕하던 모험청년들의 기세는 먼지길우에 철떡철떡 맥없이 끌리는 피로와 눈확속에 깊숙이 자리잡은 음침한 절망으로 변하여 사람들이 어쩌면 반달사이에 저렇게도 달라질수 있을가 하는 애처로움까지 자아내게 한다. 실전의 쓴맛을 보고 압록강을 건는 다음부터 일행은 전투 못지 않은 어려운 행군으로 칠백리도 넘는 길을 걸어왔다. 애국자들의 시발을 좋아하는 백성들의 후더운 마음씨가 없었더라면 그들은 아직도 무송이나 몽강의 어느 신작로우에서 어정거리고있을것이다. 그 마음씨는 로자가 다 떨어져 알거지나 다름없이 된 그들에게 밥도 먹여주고 잠자리도 마련해주었으며 총상자리를 소독할수 있는 소금물도 풀어주고 부상자의 원기를 돋구어주라면서 꿀도 얻어다주었다. 때로는 리효를 위해 달구지도 내여주었다. 그리하여 리효는 림강에서부터 화전까지의 절반길을 마차나 달구지의 도움으로 헐하게 지나올수 있었다. 사람들은 바지에 묻은 피자국만 보고서도 그를 영웅처럼 환대하였다. 조국에 나가서 총 몇방을 쏘고 돌아온다는 그것만으로도 그는 경이의 대상이 되고 격찬의 대상이 되였다. 그러나 그렇게 할수록 부상자자신과 그의 동료들이 미안해하고 창피해한다는것을 사람들은 알지 못하였다. 이러나저러나 이 귀환의 길은 고통스러운 길이였다. 버들골에 갔다오던 방을룡의 마차가 리효를 싣고 달리기 시작한것은 화전에서 이십리쯤 떨어진 어느 다리목에서였다. 방을룡은 리무성이를 따라서 몇번 자기 집에 놀러 왔던 그가 다리를 절뚝거리며 동료들에게 부축되여오는것을 보자 대뜸 마차를 멈춰세웠던것이다. 그때부터 그는 김리갑이한테서 줄창 원정경위를 듣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래, 그 다음은 어떻게 됐나?》 방을룡은 파르스름한 마라초연기사이로 길가에 펼쳐지는 농사작황을 살펴보며 이야기를 재촉했다. 지금까지는 화성의숙을 떠나 일사천리로 국경까지 가닿던 경위가 화제에 올랐다. 그 경위속에는 만두 이백개를 사흘동안에 다 먹어버리고 옹근 하루를 굶었다는 우스운 일화도 있었다. 그러나 조국에 들어선 다음부터는 문제가 달랐다. 그 대목에서 김리갑은 오래도록 말을 잇지 못하고 망설이였다. 하긴 그 누가 실패담을 입에 올리기 좋아하겠는가. 그래도 자청하여 호의를 베푸는 사람이 요구하는것이니 들려주지 않을수가 없었다. 《밤중에 압록강을 건너 우리가 치려고 계획한 주재소로 향했소. 그믐께여서 밤이 몹시 캄캄하였소. 거사를 하기에는 그저 그만이였지. 거리도 조용했소. 이따금씩 야경들이 두드리는 딱딱이소리가… 틀림없는 야경들이였소…》 김리갑은 잠시 이야기를 그치고 부르튼 입술에 침을 묻히였다. 《원참, 별놈의 고장도 다 있군. 상기 야경을 두고있다니.》 방을룡이 중얼대는 말이다. 《그러게말이요. 우리 고향에서는 야경이 없어진지 오랜데… 그놈의 주재소엔 외등도 없었소. 차라리 잘됐다고 우리는 좋아들했소. 가만보니 외등뿐아니라 보초막도 보이질 않더란말이요. 이런 허수아비 주재소가 어디 있담. 내 생각이였소. 주재소의 방비가 허술하다는게 확연히 알리더구만. 그런데 건물안에만은 불빛이 환하지 않겠소. 제가끔 총을 빼들고 그 불빛을 향해 걸어갔소. 총이 없는 조기영이만은 화전서부터 가지고 떠난 조막도끼를 들었구만. 뜨락을 절반쯤 걸어들어가는데 맨 앞장에 섰던 리효가 갑자기 <어이쿠!>소리를 지르면서 넘어지는게 아니겠소. 그 다음은 나도 넘어지고 조기영이도 넘어질듯이 디뚝거리였소. 놈들이 그렇게 걸려서 자빠지라고 노끈을 미리 늘여놓은걸 우리는 몰랐단말이요. 일은 그 순간부터 벌어졌소. 사방에서 우리쪽을 향해 포승줄이 휙휙 날아오는게 아니겠소. 가만보니 놈들이 이런 습격이 있으리라는것을 지레짐작하고 매복을 하고있은것 같았소. 정말 귀신같이 꾸며놓은 매복이였소. 하여튼 쪽바리들이라는게 교활하기는… 전투는 마당에서 붙었소. 우리는 닥치는대로 총을 쏘았소. 너무 어두워서 앞이 잘 보이지 않더구만. 그래도 어방대고 마구 쏘았소. 놈들도 우리를 사로잡으려던 계획이 파탄되자 맞불질을 하더구만. 나는 총알이 다 떨어진것을 알자 <뛰여라!> 하고 소리쳤소. 그래 모두들 뛰였소. 뛰면서 뒤를 돌아보니 조기영이란 친구가 <이 모자!>하면서 무얼 줏는게 아니겠소. 순사놈의 경찰모인것 같았소. 우리는 학교를 떠날 때 누구든지 왜놈을 쏴갈기기만 하면 그 증거품을 꼭 가지고 돌아오자고 서로 약속했었으니까. 돌아온 다음 한바탕 뽐내보자는거였지. 지금 생각해보면 참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일이였소. 압록강까지 단숨에 철수하였소. 숨돌릴 사이도 없이 강을 헤여넘었지, 놈들이 등뒤에까지 쫓아왔으니까. 총알이 강물에 비발처럼 떨어졌소. 그속에서 목숨을 건졌다는게 그저 기적같이만 생각되오. 리효도 강을 건늘 때 부상당했소. 그 강기슭에서 우리는 조기영이도 잃어버리였소. 아마 잃어버렸다고 말하는게 옳을거요. 강을 건느기전에 그가 행방불명이 되였으니까.》 김리갑은 여기서 말을 끊고 한숨을 쉬였다. 조기영의 종적이 묘연해진 때로부터 그에게는 한숨을 쉬는 버릇이 생기였다. 그는 리효가 상처를 입은것도 자기탓이라고 생각하였으며, 조기영이 락오한것도 자기 불찰이라고 여기였다. 이번 모험의 첫째가는 발기자가 다름아닌 자기자신이였기때문이였다. 전투계획도 그가 주동이 되여 꾸몄으니만치 실전에서 받은 교훈과 후회도 남달리 강했다. 방을룡은 담배를 뻐금뻐금 빨며 머리를 흔들었다. 《허, 요사스런놈들, 그 여우같은 놈들이 어떻게 기미를 채고 노끈까지 다 늘여놓았을가.》 《우리도 그것때문에 무척 신경을 썼더랬소. 놈들의 속임수에 걸려든게 복통이 터질 지경으로 분했으니까. 그렇지만 놈들이 무슨 기미를 채고 그런 깜짝수를 쓴건 아니였소. 후에 림강사람들이 그러는데 그 주재소는 우리가 습격하러 가기 얼마전에 벌써 어느 독립군들의 선불질을 당했다는거요. 한번 두드려맞고는 또 랑패를 당할가봐 대책을 세운거지. 놈들로서는 아주 잘한 노릇이였소. 그저 손해를 본건 그놈들의 속임수에 걸려든 우리였지…》 김리갑은 더 말을 이을수가 없었다. 마차우에서 리효의 짜증내는듯한 목소리가 들려왔기때문이다. 《리갑이, 이젠 그만하오! 그게 무슨 그렇게 자랑스러운 일이라구…》 그 목소리에는 김리갑의 이야기에 대한 반발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도 격렬한 흥분이 깔려있었다. 마치도 잠자고있는듯하던 분화구가 오래도록 끓어오르던 용암을 한차례 내토한듯 그 절규는 그렇게도 화끈 달아있었다. 김리갑이도 조학봉이도 방을룡이도 일제히 리효를 돌아보았다. 그 순간 그들은 다같이 호박잎에 가리워져있던 리효의 얼굴이 볕에 드러난것을 보았다. 두눈의 열광만이 살아서 번뜩거리는 파리하고 창백한 얼굴이였다. 광대뼈는 더 도드라져나오고 살이 빠진 턱은 더 갱핏해졌다. 그처럼 섬세하고 풍부하던 본래의 얼굴표정은 모두 어디로 잦아들었는지 보이지 않고 잔뜩 이그러진 미간에는 그 무엇인가를 못마땅해하는듯한 병적인 심리상태가 내천자로 그려지고있다. 《상처가 아픈데다가 패전담까지 되풀이되니 마음마저 아파서 저러는게라오.》 김리갑은 미안해서 어쩔줄 몰라하는 방을룡에게 변명조로 말했다. 리효의 역증을 고깝게 여기지 말아달라는 부탁같기도 하였다. 《이거 정말 미안하게 됐소. 내가 너무 주책없이 굴어서 그만 저 사람이…》 방을룡은 방을룡이대로 리효를 향해서 김리갑이를 두둔한다. 리효는 아무 응대도 하지 않고 손더듬으로 호박잎을 찾아 아까처럼 다시 얼굴을 가리였다. 그리고는 조용히 부탁했다. 《리갑이, 그런 이야기는 그만두고 시나 좀 읊어주오.》 김리갑은 그 청을 듣자 방을룡을 돌아보며 또다시 변명조로 말하였다. 《밥보다도 시를 더 좋아하는 친구라오.》 방을룡은 입을 열지 않고 손시늉으로 부상자의 청을 들어주라고 권고하였다. 《리갑이, 제발!…》 리효가 재차 부탁하는 말이다. 김리갑은 마차테우에 팔굽을 얹고 리효가까이로 상반신을 수그렸다. 《그래 무얼 읊으라나? 에젠 뽀찌에? 아니면 루이즈 미셀?》 《아무거나 읊으라구.》 김리갑은 마차를 따라가며 잠시 시를 골랐다. 련애소설이나 탐정소설이라면 빡해도 시는 그닥 좋아하지 않던 그였다. 그런데 이 반달사이에 시에 대한 그의 태도가 180°로 급전되였다. 리효가 그의 그릇된 시문학관을 바로잡아놓았던것이다. 게다가 《시수업》을 받는 김리갑자신이 모험심리때문에 내내 들뜬 기분에 빠져있었다. 이것은 그로 하여금 리효가 사탕을 바른 알약처럼 얼려먹이는 《시강의》를 흥취를 가지고 받아들이게 하였다. 그런 덕으로 그사이 김리갑은 적지 않은 시인들을 알게 되였고 리효가 뜬금으로 소개해준 몇몇 시편들은 죄다 외우기까지 하였다. 그는 루이즈 미셀이 쓴 《빠리콤뮨》의 한대목을 조용조용 랑송하기 시작했다.
죽음도 기발을 들리라 붉은 피로 검은 기발을 물들게 하라 대지우에 붉은 꽃 활짝 피여나리니 맑게 개인 하늘아래서 우리는 자유를 맞이하리라
《한번 더 읊으라구!》 김리갑이 《빠리콤뮨》랑송을 끝내자 리효가 간청했다. 《넨장, 따분하지도 않은게로군. 듣기 좋은 륙자배기도 한번두번이라는데… 벌써 몇번째인가.》 《아니요. 에젠 뽀찌에나 루이즈 미셀의 시들은 들을수록 좋소. 리갑이, 고맙소. 리갑이가 만일 시를 읊어 내 마음을 위로해주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내자신의 마음속에서 시가 울리지 않았더라면 나는 육체의 아픔과 마음의 아픔을 동시에 이겨내지 못하고 중도에 주저앉았을것이요.》 《마음이 아프다는 소리는 제발 하지 마오.》 김리갑은 불시에 얼굴을 이지러뜨리며 애원조로 말했다. 《지금 와서 자꾸 후회한들 뭘하오. 기분만 상했지.》 《후회하는게 아니요. 조국에 다녀오는거야 우리자신들이 하고싶어서 한 일인데 무엇때문에 후회하겠소.》 리효는 호박잎을 와락 치워버리고 푸른 하늘 한점을 뚫어지게 응시하였다. 《그럼 다 잊어버리라구. 싸움을 하느라면 실패도 있을수 있지 않는가. 리효는 너무 감상적이여서 탈이야. 에이, 무사가 되기는 틀렸지. 감상만 가지구서는 싸움을 못해. 그건 탄알도 아니고 검도 아니야.》 《실패때문에 그러는것두 아니요.》 《그럼 뭔가? 어머니가 만들어준 생생한 육체에 탄알자국을 냈다는 그 구슬픔때문인가?》 《그것두 아니요. 나는 지금 기영이를 생각하고있소. 함께 떠났다가 함께 돌아오지 못하는 기영이말이요. 마음이 아파서 못견디겠소. 그한테… 어쩐지 꼭 불상사가 생겼을것만 같단말이요.》 《그따위 방정맞은 소리는 하지도 말라구. 불상사라니… 기영이는 그렇게 쉽게 죽을 사람이 아니야. 살아서 꼭 돌아온단말이요! 에이, 망할놈의 감상주의… 까마귀나 콱 물어가라지.》 김리갑은 열을 내여 입심을 부렸다. 리효는 코방귀를 뀌였다. 《흥, 대단한 랑만주의자도 있군. 그 랑만주의에다가 넥타이를 매면 어떨가.》 그러자 십리를 잠자코 걸어온 조학봉이 쯧쯧 혀를 찼다. 《그만들하오. 감상주의니 랑만주의니 다 귀찮소. 호떡 한개만 있으면 제깍 바꿔먹겠소.》 언쟁은 더 일지 않았다. 김리갑은 보리북데기속에 떨어진 호박잎을 주어 리효의 얼굴에 덮어주었다. 감상주의는 마음에 싸지 않게 여겨졌지만 총상을 《벌어가지고》 가는 그의 처지가 가엾게 생각되였던것이다. 사실은 리효 못지않게 그도 속이 편안치가 않았다. 수많은 스승들과 학우들 앞에서 자기들의 참혹한 실패를 그대로 펼쳐보이고 우박같은 비난과 추궁을 당할 일이 벌써부터 난감하였다. (이런 꼬락서니를 해가지고 어떻게 의숙에 나타날가?) 그의 입에서는 부지중 또 한숨소리가 새여나왔다. 김리갑은 컴컴한 얼굴빛으로 방을룡의 곁에 다가갔다. 《담배 한줌 좀 주오.》 방을룡은 쌈지속에서 써레기담배 한웅큼을 집어 그의 손에 쥐여주었다. 김리갑은 그것을 절반 갈라 조학봉에게 한몫 주고 자기도 한몫을 차지하였다. 화성의숙에 와서 거의 자취를 감추었던 독립군시절의 기호가 되살아난것이다. 울화가 부글거리는 페부를 연기로라도 가셔내지 않으면 속이 답답해서 견딜것 같지 않았다. 한모금 깊숙이 빨았다가 코로 삼키자 목구멍안에서 기침이 터져나오고 쯥쯜한 물기가 눈가에 핑 고이였다. 실전의 수치와 동무를 잃고 오는 쓰라림이 연기속에 한데 뒤섞여 잠자고있던 울분을 건드려놓은것이다. (빌어먹을것. 이건 또 뭐야!) 김리갑은 조학봉이 보지 않게 슬며시 손등으로 눈지방을 훔치였다. 그러는 사이에 마차는 굽이를 몇개 돌았다. 《가만, 여기가 어디요?》 북데기속에 죽은듯이 누워있던 리효가 몸을 움지럭거리며 물었다. 《화전문앞이요.》 조학봉의 대답이였다. 리효는 끙-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황급히 소리쳤다. 《마차를 좀 세워주오.》 《왜 그러나? 아직 오리쯤은 더 가야 하는데.》 방을룡이 고삐를 앞으로 끌어당기면서 묻는다. 《시퍼런 대낮에 이 주제를 해가지고 어떻게 시내로 들어간단말이요. 나는 창피해서 못들어가겠소. 여기 어디서 어물어물 시간을 보내다가 날이 어두워지면 움직여야지.》 《원 별소리도 다 하는군. 크게 군공을 세운건 없다지만 싸움에서 피를 흘리고 돌아오는게 얼마나 장하고 떳떳한 일인가. 나같으면 백주에 버젓이 머리를 쳐들고 학교로 돌아가겠소.》 《아니요. 피를 흘리는건 누구나 다 할수 있는 일이요. 그렇지만 이기고 돌아온다는건 쉽지 않은 일이요. 승리자가 되지 못했으니 마차를 타고 개선장군처럼 거리에 들어설 자격이 없지. 친절히 보살펴주어서 고맙소.》 리효는 부등부등 마차를 내리였다. 《원참, 무슨 성미가 그렇게도 꼬장꼬장하오? 기숙사에 있기가 불편할것 같으면 날이 어슬어슬해질 때 우리 집에 찾아오오. 뭐 대접할것은 별로 없지만 편히 누워있을수는 있소.》 방을룡은 하는수없이 일행과 헤여졌다. 김리갑이 리효에게 등을 들이대였다. 《자, 업히라구!》 조학봉이 그에게 리효를 업혀주었다. 김리갑은 리효를 둘쳐업자 방을룡에게 작별인사를 한 다음 행길에서 초간히 떨어진 수수밭으로 걸어갔다. 사람이 아니라 큰 바위돌이라도 짊어지고 가는것 같은 엄청난 중압이 등덜미를 마구 내리눌렀다. 텅빈 배는 자꾸만 앞으로 꼬부라들었다. 가까이에 물도랑이 있고 또 껑충한 수수대들이 그늘을 드리우고있는 그 밭머리는 앉아 쉬기에 알맞춤하였다. 긴긴 여름해를 무료히 보낼 일이 막연하였지만 울며 겨자먹기로 거기에 자리를 잡고 셋이 다 맨봉당에 드러누웠다. 그때에야 그들은 자기들이 두끼나 아무것도 입에 대지 못하였으며 더우기 리효는 그저께 범골에서 조밥 한덩이에 오이랭국으로 끼니를 설때린후로는 내내 빈속으로 강짜행군을 해왔다는 사실에 생각이 돌아갔다. 뭐니뭐니 해도 그들에게는 이 시각 배고픈것보다도 더 절박한 사정이 없었다. 먹을것을 구하기 위하여 김리갑이 곧 총관의 집으로 떠나갔다. 김시우와의 거래에서는 그가 첫째가는 적임자였던것이다. 주머니가 비였으니 총관의 방조라도 받을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김리갑은 한시간이 지날 때까지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 조학봉이까지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여 시내로 떠났다. 밭머리에는 호젓한 시각이 닥쳐왔다. 리효는 자기에게 그런 한때가 차례진것이 사뭇 다행스러웠다. 계속되는 아픔과 염열에 노그라진 그에게는 그 누구의 참여나 간섭도 받지 않는 고요한 휴식이 필요했던것이다. 그는 혼자 조용히 누워 눈을 꼭 감고 생각을 정돈하였다. 지금까지는 종잡을수 없는 착잡한 상념이 머리속에 삼거웃처럼 헝클어져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모든 상념들이 하나의 줄기를 타고 흘렀다. 그것은 화성의숙에 남아있는 학우들에 대한 그리움이였다. 그 누구보다도 그리워지는 학우는 김성주동지였다. (지금쯤 성주는 무엇을 하고있을가? 책을 읽고있을가? 산책을 하고있을가? 한마디의 귀띔도 없이 훌쩍 곁을 떠난 내 일이 얼마나 섭섭하겠는가. 게다가 신까지 바꿔신구. 에이, 난 인정머리가 없는놈이야.) 리효는 팔베개를 하고 누운채 발끝으로 눈길을 가져갔다. 탈출의 그 새벽에 어림짐작으로 신고나온 그 운동화가 김성주동지의 신발이라는것을 알았을 때 그는 얼마나 놀랐던가. 그 신발이 지금은 흙먼지가 뿌옇게 오르고 뒤축이 떨어져서 볼품없이 되였다. 인제는 학교에 돌아간다 하여도 도저히 바꿔신을수 없게 해지였다. 그는 입술을 깨물며 허공을 쏘아보았다. 불의의 탈출을 하기 전날 자기에게 《사회주의대의》를 빌려주며 조선이 나갈 새길을 함께 모색해보자고 열렬히 말씀하시던 김성주동지의 모습이 하늘가에 우렷이 떠올랐다. 그날 그이의 눈가에 어리던 그 우정과 믿음의 빛을 그는 지금도 잊을수 없었다. (그런데 나는 그 책을 받자마자 행방을 감추었으니…) 돌이켜보면 그때는 무슨 벼락바람이 불어 그렇게 선뜻 학교를 떠났는지 알수 없었다. 박인석군사교관한테서 남아로 인정받지 못하는 그 울분의 폭발이였던것 같기도 하고 텁지근한 의숙생활에서 매일매시로 느끼는 권태감을 그 어떤 아슬아슬한 모험에서 풀어보려는 렵기적인 심리의 충동이였던것 같기도 하였다. 앞뒤를 가릴 사이도 없었다. 그저 하루라도 새로운 생활에 파묻혀보고싶은 갈망이 아무 준비도 없는 그를 무턱대고 모험에로 떠민것이였다. 돌이켜보면 다 어처구니가 없는짓이였다. (무슨 낯으로 성주를 볼가? 창걸이며, 무성이며, 두학이들은 또 무슨 낯으로 볼가?) 그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솔곳이 잠이 들었다. 입을 반쯤 벌리고 숨을 힘들게 톺아올리는 고달픈 잠이였다. 그러나 주위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들이 들리자 리효는 인차 잠에서 깨여났다. 앞에는 조학봉이와 함께 그에게서 소식을 듣고 선참으로 달려온 리무성이 서있었다. 《그래 평안도 장맛이 어떻습데?》 리무성이 리효에게 악수를 청하며 느물거리였다. 리효는 그 텁텁한 롱말을 듣자 왜서인지 눈물이 쑥 나왔다. 《무성이, 정말 면목이 없게 됐소. 성주랑 창걸이랑 다 잘 있소?》 《잘 있소. 가만 목마를 태울가?》 《이러지 마오. 에이 시큼털털한 친구, 그 말버릇은 여전하군.》 《자, 었소. 전병이요.》 리무성은 리효에게 전병꾸레미를 안겨주고나서 그의 바지가랭이를 걷어올리고 정갱이의 붕대를 풀었다. 구멍이 펑 뚫린 총상자리는 가생이가 곪아오르고 그 주변에 불깃하게 화기까지 올라 보기에도 끔찍스러웠다. 《아니, 이 다리를 가지고 륙백리를 걸어왔단말이요? 이거 야단났군. 당장 칼을 대지 않으면 큰일나겠소. 누구에게 여벌바지가 없소?》 그는 뒤따라온 학우들을 향해 물었다. 《여기엔 맨 프로레타리아들뿐이요.》 박두학이 롱조로 대답하였다. 《야단났는데!》 리무성은 《야단났다》는 소리를 련발하며 리효를 둘쳐업었다. 그리고는 총총히 시가쪽으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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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새밭으로 둘러싸인 북대가막바지에는 토담속에 묻힌 자그마한 삼간초가 한채가 있다. 방을룡이네 집이다. 외진 섬마냥 인가에서 떨어진 집이여서 종일 가야 랭수를 청하는 길손 하나 찾아들지 않는다. 다만 일년에 한두차례씩 두꺼운 도수경을 낀 근시안의 우편배달부가 초산 어느 골짜기에서 화전농사를 짓는다는 방을룡이네 누이의 편지를 전하러 오거나 버들골에서 사는 이모사촌벌되는 사람이 화전장을 핑게로 건성드문하게 나들이를 올뿐이였다. 그런데 그처럼 한적하던 막바지의 외딴집에 근래에는 리무성이가 자주 드나들더니 요즘에 와서는 매일 손님들로 북적거리였다. 그것은 국내원정에서 돌아온 리효가 왕진치료를 받기 위하여 이 집 아래방에 거접하기 시작한 때부터였다. 맨 첫날은 최동오숙장이 군사교관과 함께 찾아왔고 다음날부터는 학우들이 겨끔내기로 주룽주룽 문병을 왔다. 그리하여 리효는 하루종일 방문객들속에 파묻혀 상처의 아픔보다 몇배나 더 괴로운 마음의 고통을 겪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렇게 한참씩 시달리고나면 온몸에 땀이 쭉 퍼지고 피로와 함께 무서운 허무가 재가루처럼 가슴에 내려앉군하였다. 밤이면 불면증이 그를 괴롭히였고 어쩌다 방문객이 곁에 없는 시간에는 어정쩡한 잠이 그의 정신을 내내 혼몽하게 만들었다. 오늘 오전에는 안도선중대에서 지기들이 두사람 찾아왔다. 그들이 돌아간후 리효는 내처 잠을 잤다. 잠에서 깨여나니 방문객들이 왔을 때까지만 해도 해빛으로 환하던 장지문이 어느새 그늘속에 반나마 파묻혀버리였다. 집안은 절간처럼 조용하였다. 주인인 방을룡은 정오경에 마차를 끌고 류수촌으로 떠나갔고 그의 안해도 리효의 점심을 끓여주고는 인차 송화강 빨래터로 나갔다. 리효는 가느다란 신음소리를 내면서 몸을 뒤치였다. 그 순간 그는 손등을 건드리는 이상한 감각에 팔을 가드라뜨리고 그것이 무엇일것인가를 잠시 가늠해보다가 침상우에서 상반신을 일으켰다. 그러자 머리맡에 놓인 낯익은 글씨의 편지가 눈에 확 안겨들었다. 아버지의 편지였다. (누가 가져다놓았을가?) 리효는 속지에 적힌 사연들을 단숨에 내리읽었다. 짐작했던바 그대로 아버지는 미국류학에 대한 권고를 되풀이하고있었다. 다만 다른것은 어조가 먼저번보다 더 강경하고 집요할뿐이였다. 아들의 회답을 기다리다 못해 두번째 침질을 하기로 결심했던 모양이다. 리효는 답답한 가슴을 식히려고 장지문을 열어제끼고나서 편지를 쥔채 침상우에 맥없이 드러누웠다. 아버지의 권고는 원정의 실패로 하여 더욱 어수선해지고 착잡해진 그의 넋을 또다시 걷잡을수 없는 혼란속으로 몰아갔다. 생사를 가리지 않는 모험에서 울분을 풀어보려던 시도는 그에게 새로운 울분만을 보태여주었을뿐이다. 이제는 아버지의 의향을 따르는 길만이 남아있는것일가? 리효는 두손을 깍지껴 가슴에 붙이고 물끄러미 천정을 쳐다보았다. 입에서는 저도모르게 꺼져내리는듯한 한숨소리가 터져나왔다. 그는 다시 편지를 집어들었다. 그러나 읽으면 읽을수록 마음은 무거워지기만 하였다. 주리고 병든 이 시대와 헐벗고 신음하는 겨레를 등지고서는 그 어떤 《애국》에 대해서도 론할수가 없고 그 어떤 《구국》에 대해서도 꿈꿀수 없다는것이 요즈음 리효의 생각이였다. 그 생각은 우정국에서 김성주동지를 만나고 난후부터 더욱 짙어지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한차례의 타격을 받고나자 리효의 종작없는 정신상태는 또다시 바람앞에 내놓인 초불처럼 걷잡을수없이 뒤흔들리였다. 뜨락에서 문득 우렁우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리효는 생각에서 깨여나 포단밑에 얼른 편지를 밀어넣었다. 《잠든게 아니요?》 김성주동지의 목소리였다. 《이 친구 또 시를 생각할지 모르지… 시가 떠오르면 언제 봐야 저렇게 눈을 감고있더군.》 리무성의 대답이였다. 그는 시상을 잡기 위한 리효의 모대김을 늘 주의깊이 지켜보다간 한마디씩 하군하였다. 《그럴가? 기분상태가 괜찮은 모양인데… 입맛은 당기기 시작했는지…》 김성주동지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며 장지문앞에 다가가 리효의 머리맡에 놓인 밥그릇을 열어보시였다. 《어이구, 누워서도 체면없이 먹었군. 바닥이 나게 파먹었는걸…》 리무성의 익살이였다. 《깨우지 말고 문을 닫아주라구.》 김성주동지의 말씀에 이어 장지문이 조용히 닫기는 소리가 들리였다. 울적한 심사를 안고 모지름을 쓰던 리효의 가슴속에는 어느덧 따스한 정이 포근히 스며들었다. 그것은 적적한 이 집 토방앞에 학우들이 나타날 때마다 어쩔수없이 마음속에 비집고들어서는 독특한 희열이였다. 한나절동안 암담한 생각에 파묻혔다가도 친구들의 목소리만 들려오면 미적지근하던 심장의 맥박이 후둑후둑 숨가쁜 박동으로 바뀌여지군하는것이였다. 밖에서 리무성의 흥얼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리효는 팔굽으로 방바닥을 짚고 일어나 장지문을 조심스레 밀어젖혔다. 끝간데없이 아스라하게 펼쳐진 청청한 하늘이 시야에 확 비쳐들었다. 남새밭에서 아직도 우줄렁거리는 강냉이의 개꼬리들은 푸른 바다속에 풍청 빠져들기라도 한것만 같다. 리효의 눈길은 재빨리 뜨락으로 옮겨졌다. 토방밑에 있는 나무모태우에 걸터앉아 사발에 담긴 소금물을 열심히 휘젓고있는 리무성, 어제도 그는 저런 모습으로 이 뜨락에 앉아있었지. 마당 한옆에서는 웃동을 벗어내친 조학봉이 풍로를 내다놓고 숯불을 피운다. 리무성이 풀어놓은 식염수를 끓이려나보다. 그는 일손을 놀리면서도 무슨 흥그러운 타령을 쉴새없이 부른다. 말수더구가 적고 수더분하지만 명창으로 소문난 조학봉이였다. 김성주동지께서는 그 두 학우사이의 어중간쯤 되는곳에 서서 수건으로 땀난 이마를 문지르고계시였다. 《친구들, 수고하오.》 리효는 가슴 뭉클해지는 뜨거운 감정에 휩싸여 문밖을 향해 소리쳤다. 그러자 김성주동지께서 토방앞으로 성큼성큼 다가오시였다. 《리효, 몹시 적적했겠구만.》 그이께서는 양복저고리를 벗어 팔에 걸치고 퇴돌우에 한발을 올려놓으시였다. 《적적했소. 막 속이 답답해서 못견디겠소.》 《병자의 곁에는 항상 말동무가 있어야 하는데…》 《아니, 내가 자꾸만 지나친 욕심을 부리는것 같소. 성주, 어서 방에 들어오오. 오늘은 무슨 소식을 가져왔소?》 리효는 상한 다리를 맥없이 드리우고 벽에 기대여앉았다. 열흘남짓하게 바깥출입을 못하는 그는 어떤 방문객이 오나 세상물정부터 먼저 물었다. 학우들은 먹을것을 못들고오는 한이 있어도 새소식만은 꼭꼭 안고왔다. 소식이 궁하면 신문 한장이라도 얻어가지고야 찾아왔다. 《오늘은 아주 기분나쁜 소식을 가지고왔소.》 김성주동지께서는 방에 들어오자 리효의 머리맡에 있는 부들부채를 집어드시였다. 리효는 활기를 띠였다. 《무슨 소식이요?》 그때 뜨락에 있던 리무성이 끓인 소금물그릇을 들고 들어와 말참견을 하였다. 《마인택이 <군자금>으로 토지를 사고 며칠후에는 약혼식까지 차린다오. 김시우총관한테두 그 초청장이 왔는데 보지두 않고 쫙쫙 찢어버리더란말이요. 과연 상상이나 할 일이요. 마인택이 <상해림시정부>파견원과 결탁하여 낡은 독립공채를 팔러 돌아다닌다는 소문도 돌고있소.》 김성주동지께서는 아무 말씀도 없이 마인택에 대한 추문이 불러일으킨 아름답지 못한 인상을 가셔버리려는듯 걸싸게 부채를 흔드시였다. 리효는 두손으로 귀를 틀어막는 시늉을 하였다. 《아, 악몽같군. 듣기도 끔찍해. 사람들이 왜 점점 그렇게 타락해갈가? 마치 구데기가 우글거리는 썩어가는 종처나 구지렁물처럼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그렇게 썩고있단말이야. 에익, 더러운 놈의 세상! 피만 헐값인줄 알았더니 조선사람의 돈도 그렇게 헐값이로군.》 《사람들이 변해두 너무 더럽게 변한단말이야. 그 사람이 무송에 있을적엔 그래도 고구려의 무쇠같은 혼백을 운운하기까지 하였는데.》 리효는 무성의 그 말을 듣자 코웃음을 쳤다. 《그런건 리완용이나 손병준이따위도 뇌까릴수 있는거요.》 리무성은 고개를 끄덕여 그 말을 수긍하였다. 《하긴 그때두 그 사람은 술에 취해있었으니까.》 그는 소금물그릇을 자리 한옆에 놓고나서 리효의 상한 다리를 앞으로 잡아당기였다. 처치를 시작하자는 신호였다. 그러자 김성주동지께서 그 다리의 붕대를 풀기 시작하시였다. 소금물로 상처를 소독하고 약물에 적신 새 심지를 갈아넣으시였다. 처치를 막 끝내고 방안을 거두려는데 누구인가 땅을 쾅쾅 구르며 토방앞으로 달음질쳐왔다. 헐떡거리는 숨소리가 방안에서도 들리였다. 소금이 허옇게 돋은 독립군시절의 군복자락을 활짝 열어제끼고 무르팍까지 바지가랭이를 걷어올린 최창걸이 땀을 철철 흘리며 문가에 나타났다. 그는 리효에게 의미심장한 눈길을 힐끗 던지였다가 한숨을 내쉬며 누구에게라없이 말했다. 《장백에서 기영이의 어머니가 오셨소!》 리효는 그 소리를 듣자 가슴이 덜컥 무너져내려앉는것 같았다. 《뭐라구? 기영이의 어머니가?… 아, 이 일을 어쩌면 좋담!》 그는 마음을 질정하지 못하고 침상모서리를 잡아뜯다가 무릎우에 고개를 파묻었다. 그리고는 기여들어가는 목소리로 물었다. 《어디서 그 어머니를 만났소?》 《방금 우정국앞에서 만났소. 지금 막 화전에 들어서는 참이라는구만. 화성의숙에 기영이라는 학생이 한명밖에 없느냐구 묻지 않겠나. 한명밖에 없다구 대답했더니 눈물을 쭈르르 흘리더란말이야. 여기까지 내내 흐느끼면서 왔소. 기영이하구 같이 조선에 갔다 온 학생들을 만나게 해달라구 하길래 직방 이리로 모시고왔소.》 《지금 어디 계시오?》 《사립문밖에 계시오. 가만, 내가 모셔들이겠소.》 최창걸은 그 다부진 몸집에 어울리지 않게 날파람있는 동작으로 사립문쪽을 향해 걸어갔다. 김성주동지께서도 토방에 나서시였다. 그 어떤 소란스러운 경종이 스치고 지난뒤처럼 방안은 가슴을 조이는 긴장과 무거운 정적속에 휩싸여버리였다. 리효는 숨막힐듯한 중압감에 짓눌려 흉벽에 툭툭 마쳐오는 심장의 박동을 재고있었다. 그렇게 급하게 뛰다가는 심장이 그대로 파렬되기라도 할것 같았다. (어떻게 할가? 내가 무슨 낯으로 기영이 어머니를 만난단말인가.) 그는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당장 숨어버리고싶은 심정이였다. 《어머니, 들어가십시다.》 문가에서 김성주동지의 이런 목소리가 울리였을 때에야 리효는 고개를 쳐들었다. 아들처럼 눈이 둥그스름하고 선하게 생긴 중키의 녀인이 침상쪽을 유심히 살펴보며 문턱을 넘어서고있었다. 마흔이 지났을가. 귀밑에는 어느덧 몇오리의 서리발이 비꼈는데 주름진 볼에도, 이마에도 그리고 눈귀에도 비내리는 마가을 석양과도 같은 비애가 어려있다. 허리에 띠처럼 두르고온 짐보퉁이가 유난스럽다. 땀에 시누렇게 절고 소금까지 내배인 녀인의 무명저고리가 눈을 끌어잡고 놓지 않는다. 녀인은 리효옆에 자리를 잡으면서 한쪽 입귀를 약간 씰룩거리였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도 애처로와보였던지 리효는 잠시 그를 외면하였다. 《바로 이 학생입니다.》 뒤늦게 방으로 들어온 최창걸이 조기영의 어머니에게 리효를 소개했다. 리효는 무슨 초상을 치르고난 사람이라도 맞이하듯 엄숙하고 례절바르게 고개를 숙이였다. 《리효라고 부릅니다. 정말, 기영이 어머니를 볼 면목이 없습니다.》 《그러니 임자가 우리 기영이하구 같이…》 녀인은 말을 잇지 못하고 정맥이 퍼렇게 두드러진 손으로 리효의 손을 자꾸 쓸기만 했다. 거무죽죽한 녀인의 볼로는 문득 걷잡을길 없는 애수가 방울져 흐르기 시작했다. 《임자, 기영인… 우리 기영인 죽었네.》 녀인은 눈물이 질벅한 눈으로 리효를 구슬피 바라보다가 그의 팔소매며 손등이며 옷섶이며를 닥치는대로 쓸어만지며 흐느껴울기 시작하였다. 《기영이가 죽다니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리효는 펄쩍 놀라서 녀인의 두팔을 잡아흔들었다. 어느때든지 기영이가 살아서 꼭 돌아올것만 같은 기대를 품고 은근히 그날을 기다려온 리효였다. 녀인은 아무 말도 못하고 입술을 피루기만 하다가 허리에 두른 짐보퉁이속에서 신문 한장을 꺼내여 리효에게 주었다. 《동아일보》 최근호였다. 리효는 접은 자리를 성급히 펴고 떨리는 마음으로 지면들을 번져보았다. 그의 시선은 김성주동지께서 가리키시는 2면 하단의 어느 한 점에 머물렀다. 최창걸이도, 리무성이도, 조학봉이도 모두 김성주동지와 함께 리효의 량옆에 어깨성을 쌓고 침울한 표정으로 기사를 묵독하였다. 《…대정 15년(1926년)8월 ×일 약 5∼6으로 추정되는 정체불명의 폭도들이 야밤중에 쌍바위주재소를 급습했음은 이미 본지 지상을 통하여 널리 소개되였거니와 그 래습의 동기와 내막을 해명코저 현지경찰이 전전긍긍한다는것은 독자들도 잘 아는바이더라. 마침내 그 내막을 밝혀냈다는 주재소측의 통보가 서울에도 알려졌는데 그 통보에 의하면 접전후 현장을 조사중이던 경찰이 압록강기슭에서 부상당한 청년 하나를 발견했다는것이다. 조사결과 청년은 <정의부>소속의 군관학교인 화성의숙학생으로서 이름은 조기영이고 나이는 열여덟인데 학교당국도 모르게 몇몇 학우들끼리 짜고서 국내원정을 단행하였다는 사실이 판명되였다. 조기영청년은 자기들이 강행한 원정을 애국적장거라는 말로 표현하였지만 깊이 투시해보건대 거기에는 치렬한 혈투속에서 자신들의 과감성을 시험해보고싶은 일종의 모험심리가 더 많이 발동되지 않았는가 짐작된다. 복부에 심한 총상을 입은 조청년은 신의주형무소로 송치될 처분을 받고 치료를 받던중 16일 하오 두시경 병원에서 절명하였다. 조청년의 시체는 즉시 안장되였다. 그리하여 잡초가 무성한 압록강기슭의 갈밭속에는 잔디도 입히지 않은 벌거숭이무덤 하나가 새로 생겨났다. 뜻있는 유지들이 청년의 고향에 부고를 했으나 부모나 친척들은 아직 오지를 않고 무주고혼이 된 그의 분묘우에서 무정한 바람만이 속절없이 오간다 하더라.》 리효는 침상우에 맥없이 신문을 내려놓고 어깨를 떨며 흐느껴울기 시작하였다. 조국으로 향하던 원정의 나날 이름모를 야산의 새초밭과 건초더미와 초막에서 함께 뒹굴며 서로 붙안고 숙영의 밤을 보내던 조기영의 모습이 추억속에 사무쳐왔다. 나라가 독립된후에는 고향에 돌아가 삼간기와집에 홀어머니를 모시고 증조할아버지대부터 세습으로 내려오는 야장간에서 농쟁기나 벼리며 오붓하게 살아보겠다던 조기영이였다. 별빛이 쏟아져내리는 어느날밤 그는 로령의 어느 한 산정에서 이 꿈을 말했다. 그 밤 그의 눈가에는 얼마나 황홀한 랑만이 아롱져있었던가. 《<동아일보>지국장이 이 신문을 가지고 찾아왔을 때 나는 믿지 않았네, 우리 기영이가 죽었으리라고는… 얼마전에 잘 있노라는 편지가 왔는데 그걸 내가 어떻게 믿겠나. 그래 그건 우리 기영이가 아니구 딴 기영일거라구 막 우기였네. 정말 이런 변고가… 지금도 믿어지지 않네.》 녀인은 아무 변고도 당하지 않은 멀쩡한 사람처럼 놀랍게 어성을 가다듬고 또박또박 말했다. 그러나 말을 끝내자 치마폭으로 얼굴을 감싸쥐고 다시금 어깨를 들먹거리기 시작했다. 《어머니, 우리를 실컷 나무래주십시오. 함께 갔다가 기영이만 떨궈두고온 우리가 죄송스럽습니다. 모든게 우리탓입니다.》 리효는 두손을 무릎우에 얹고 벌을 받는 사람처럼 어깨속에 머리를 깊숙이 파묻었다. 《임자네한테야… 무슨 잘못이… 모든게 왜놈의 씨종자들탓이지. 그 왜놈들을 내쫓겠다구 그 애 아버지두 싸우다가 원통하게 눈을 감았네. 유복자 기영이를 남겨놓고… 한을 품은채… 세상에 남편없는 청상과부의 설음을 알아주는 사람은 많지 않더군. 과부의 아들이라구 기영이 받은 천대도 막심하였네. 어렸을적엔 이 부실한 에미때문에 동냥젖을 먹구, 자라서는 먼 친척집더부살이에 눈치밥을 먹구… 그래두 자라서는 제 아버지 원쑤갚을 소리를 자주 하지 않겠나. 속일수 없는건 아마도 피줄인가봐. 그게 너무 고마와서 열여섯에 그 애를 둥지에서 놓아주었지. 제 애비의 유물인 은장도를 채워서 독립군에… 꼬장꼬장 마른 조개떡 열다섯잎을 허리춤에 달아보낸게 이 에미의 마지막 성의였네. 어이구, 하늘도 무심하지. 그 애가 그렇게 일찍 제 아버지곁으로 갈줄 알았더면 차조밥 한그릇이라도 따뜻이 먹여보내는건데… 어허이구 기영아, 나는 어찌라느냐!》 소리를 죽여가며 조용조용 설음을 토하는 녀인의 넉두리는 듣는 사람들의 가슴을 더 아프게 긁어내리였다. 한점한점의 살을 칼로 저며내는것 같은 그런 호곡소리였다. 최창걸이와 리무성은 그 넉두리를 듣다못해 눈굽을 훔치며 슬그머니 뜨락으로 나갔다. 리효는 방안 가득 차고넘치는 거대한 비애가 자기의 가슴에 더 무겁게 실리는것을 느끼며 침상가에 죽은듯이 앉아있었다. 녀인의 구슬픈 호곡에 몸도, 넋도 죄다 갈기갈기 찢기는것 같이 고통스러운 순간, 그대로 조금만 더 지체하면 리효자신도 슬픔을 감당하지 못하고 기절하여 그 자리에 쓰러질것만 같았다. 《어머니, 울음을 그치십시오.》 이런 목소리가 리효의 귀전에 울려왔다. 김성주동지께서 숨을 꺽꺽거리며 치마폭에 얼굴을 비비는 녀인의 어깨를 조용히 잡아흔들고계시였다. 녀인은 울음을 그치고 머리를 쳐들었다. 피가 지고 눈물이 어린 뿌연 눈으로 김성주동지를 멀거니 쳐다보았다. 넋은 죄다 털리우고 허울만 남은듯한 사람의 표정이였다. 그렇게 몇초동안 까딱않고 그이를 쳐다보던 녀인은 부르튼 입술을 짓물며 힘없이 말했다. 《임자, 물 좀 떠다주겠나.》 조학봉이 일어서서 얼른 사발에 물을 떠왔다. 녀인은 그 물을 한모금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마시였다. 몇사발을 마시면 그 마음속 울분의 불덩어리를 죄다 꺼지울수 있으랴. 《너무도 억울하고 막막해서 그러네. 그 애가 제아버지 피값이라도 했다면 내 마음이 이다지도 원통하진 않을거네. 그렇지만 인젠 울지 않겠네. 울지 않겠네.》 녀인은 같은 말을 거듭 뇌이며 눈굽을 찍었다. 《어머니, 슬프더라도 참으십시오. 우리가 이제 기영이의 피값을 받아내겠습니다. 백배 천배로 받아내겠습니다.》 《고맙네. 고마워.》 김성주동지께서는 조학봉이와 함께 흐느끼는 녀인을 량옆에서 부축하여 아래방에 모시였다. 사방이 갑자기 쥐죽은듯이 고요해졌다. 폭우를 치르고난 들판의 땅김과도 같이 초가의 구석구석에서는 소리없는 비애가 서려오르고있었다. 그러나 리효의 귀가에는 녀인의 통곡소리가 그냥 들리는듯하였다. 《어허이구 기영아, 너 하나를 믿구 만가지 세상고초를 다 이겨냈는데… 이제는 내 누구를 믿고 이 험악한 세상을 살아간단말이냐!》 그는 아래방에서 녀인이 마치 이렇게 부르짖고있는것만 같은 환각에 사로잡혀 숨을 죽이고 앉아있었다. 그러다가 신음소리를 내지르며 문턱앞으로 다가갔다. 속이 하도 답답해나서 침상가에 그대로 앉아있을수 없었던것이다. 토방우에 가지런히 놓인 녀인의 짚신짝이 리효의 눈을 아프게 찔렀다. 바닥이 얇아지고 총이 끊어져 너덜거리는 짚신이였다. 버성긴 신총사이에는 먼지와 마른 감탕가루들이 뿌옇게 올라있었다. 새 짚신이 닳아서 그런 파고품으로 될 때까지 불원천리 화전땅에 찾아온 녀인에게 설음을 달래일 말조차 한마디 할수 없는 리효의 심정은 그저 안타깝기만 하였다. 그는 끊어진 신총을 매만지며 가슴을 두드렸다. 《아, 값없이 소모된 피가… 청춘이 아깝다. 언제까지나 이렇게 승산없는 싸움을 해야 할가? 아! 성주, 좀 대답하라구, 우리가 갈길은 과연 어디인가?》 뜨락을 거니시던 김성주동지께서는 토방앞에서 발길을 멈추고 리효를 돌아보시였다. 그이께서는 무슨 말씀을 하실듯하실듯하다가 고개를 돌리고 숨을 깊이 몰아쉬며 먼 하늘가로 눈길을 보내시였다. 그이의 안광에는 무겁고 침통한 고뇌의 흔적이 어리였다. 그이자신께서도 가슴속에 치미는 울분과 안타까움을 달래일길이 없는듯 뜨락을 자꾸만 에도시였다. 《새길, 새길을 개척해야지.》 김성주동지께서는 잠시후 나직이 혼자소리처림 뇌이시였다. 음성은 높지 않았지만 그이의 목소리에서는 신념이 울리고있었다. 《죽어서도 내 나라를 위해 한줌의 거름으로 될수 있는 보람있는 길을 걷고싶소. 그런 길만 있다면 나는 피를 아끼지 않겠소.》 리효는 문득 자기자신이 어떤 유혹도 참아내야 한다는 강한 내부적충동에 휩싸이였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학우들에게 침상밑에 감춰두고있는 비밀을 고백하지 않고있다는 의식이 그를 괴롭히였다. 《지금까지… 나는… 성주에게 숨겨왔소. 원래는 우정국에서 성주한테 이 이야기를 했어야 했소. 그러나 내 오늘은 동무들앞에 그걸 숨기지 않겠소. 자 보오!》 그는 포단밑에 손을 넣어 아버지의 편지를 꺼냈다. 김성주동지께서는 학우들과 함께 그 편지를 읽으시였다. 《그래, 어떻게 하기로 했소?》 그이께서 편지를 접으며 리효에게 물으시였다. 《그동안 나의 얼은 혼돈속에서 갈팡질팡하고있었소. 그러나 나는 결심하였소. 동무들의 곁에서 새길을 걷고싶소. 영원히… 동무들의 곁을 떠나서는 살수가 없소.》 《고맙소. 리효, 영원히 한길을 걷자구!》 김성주동지께서는 리효의 손을 힘있게 틀어잡으시였다. 그날밤 송화강가에서는 김성주동지의 지도밑에 공산주의를 신봉하는 화성의숙학생들의 모임이 있었다. 이 모임에서는 최창걸이며 리무성이며 리효며 박두학이며 리제우며 조학봉이며 계영춘이며를 비롯한 청년학생들로서 새 사조를 연구보급하며 조선혁명의 진로를 탐색할것을 목적으로 하는 비밀독서회가 조직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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