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서《불멸의 력사》 1

        장편소설

 

 

                                     김   정

 

( 제 16 회 )

 

8

 

관전중대의 독립군용사들이 나타난것은 다음날 정오였다.

그 순간부터 화성의숙은 잔치집처럼 법석 끓었다.

최동오는 일년에 몇번씩 명절때에만 입군하는 모시두루마기를 입고 코수염까지 곱게 다스려 얼굴을 반반하게 만든 다음 학교안팎을 돌아다니며 행사준비에 대한 최종적인 검열을 진행하였다.

숙장의 깐깐한 눈에도 준비는 나무랄데가 없어보이였다. 정문의 아치형 솔문을 살펴본 그는 솔문과 교사지붕사이에 여러 갈래로 늘여놓은 오색테프의 질서정연한 줄밑을 지나 기숙사식당으로 들어갔다.

식당에서는 손님들을 영접하기 위한 특식을 준비하느라고 야단들이다. 여느날같으면 기숙생들로 무어진 식사당번들이 부뚜막앞에서 오락가락할텐데 오늘은 숙장의 부인, 학감부인들이 식모아주머니와 함께 그들을 밀어제끼고 식당을 타고앉았다. 아낙네 셋이 한데 모여 볶아대며 돌아가니 주철가마가 깨질 지경으로 소란스럽다. 손님몫은 물론 교직원들의 몫까지 마련하는 식사준비라 일감은 엄청나게 많다.

일거리를 빼앗긴 당번들은 아궁앞에서 부엌데기노릇을 하였다.

《찬거리가 이것밖에 없소?》

최동오는 널도마앞에서 생선토막을 치고있는 안해에게 조용히 물었다. 숙장의 눈에는 오지버주기며 싸리광주리에 무둑무둑 담겨있는 반참감들이 너무 빈약해보이였던것이다.

《이거면 되지 않을가요?》

숙장부인은 아낙네들의 잡일에까지 간참하는 남편의 행동이 좀스럽게 느껴졌던지 못마땅해하는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최동오는 눈알을 재빨리 굴려 그릇들에 담겨있는 찬거리 전부를 헤아려본 다음 설레설레 머리를 흔들었다.

《된다는게 뭐요. 오며가며 들리는 허드레손님들이 아니란말이요. 다른건 모르겠는데 소고기가 없는게 탈이구만.》

《소고기대신 돼지고기가 있지 않아요.》

《돼지고기가 소고기를 대신할수 있겠소? 허지만 없다면야 할수 없지. 그대신 호떡과 농마국수는 꼭 마련해놓아야 하는데…》

숙장은 부엌앞에서 히히닥거리는 식사당번들을 식당안으로 불러들이였다. 그는 당번조장인 리무성에게 길림관채 (길림성안에서만 쓰는 돈) 몇장을 쥐여주었다.

《지금 곧 시내에 가서 호떡 이백개하구 랭면 스무그릇을 사가지고 오시오.》

리무성은 그 엄청난 수자에 그만 입을 딱 벌리였다.

《야, 이거 관전친구들이 대단한 대접을 받는다.》

그러자 누구인가 비양거리는 투로 한마디 했다.

《개원에서 벌어온 모연금은 그 친구들의 입에 다 들어가겠군.》

최동오는 등뒤에서 이런 대화가 오가는것도 모르고 흐뭇한 기분으로 식당을 나섰다.

그때 안해가 따라와서 살그머니 그의 팔소매를 잡아당기였다.

《여보, 성주를 못보셨어요?》

《운동장에 있겠지, 왜 그러오?》

숙장은 얼굴에 그냥 우선우선한 표정을 짓고있었다.

《일전에 성주보고 빨래감이 있으면 가져오라고 했는데 종무소식이길래…》

《아마 미안해서 들고 못오겠지. 차라리 당신이 제창 기숙사에 가서 빨래감을 찾아보는게 낫지 않을가?》

《사모님소리가 듣기 거북해서 학생들앞에 나타나는건 질색이라니까요.》

안해는 웃음이 피여오르는 입언저리를 손으로 가리며 새색시처럼 태를 냈다.

《그럼 내 성주를 만나면 이르지.》

최동오는 팔을 휘저어 안해를 식당안으로 조급히 되돌려보낸 다음  박인석이 진두지휘를 하고있는 무기고로 향하였다.

무기고의 정리작업은 흠잡을데가 없었다. 깨끗이 황토칠을 한 벽이며 산뜻하게 도배를 한 천정이며 송진냄새가 풍기는 총가와 목표판들, 조준틀들은 주인의 알뜰한 일솜씨를 말해주고도 남음이 있었다. 교관이 두달동안 아글타글한 보람이 컸다.

박인석은 지금 그 무기고안에서 김리갑이와 함께 삽으로 바닥을 다스리고있었다. 얼핏 보면 우들투둘한 자리가 없는것 같은데 깔끄럼한 교관은 손더듬으로 고르롭지 못한곳을 곧잘 찾아내군 하였다.

(무서운 사람이로군!)

최동오는 일에 열중한 나머지 사람이 온것도 모르는 교관의 모습을 흐뭇이 바라보았다. 숙장은 박인석이야말로 나무랄데 없는 사람이며 의숙을 지탱해나가는 대들보라고 믿어마지않았다. 무기고건설만 놓고보아도 그렇게 말할수가 있었다. 처음에 교관이 무기고를 짓겠다고 나설 때 그는 그 발기를 일욕심이 많은 사람의 객기라고 여기며 미타하게 대하였다. 돈도, 자재도 없는데 빈주먹으로 어떻게 그런 집을 짓겠느냐 하는 속타산에서였다. 그런데 결과는 숙장의 이런 로파심을 뒤집어놓았다. 이때부터 최동오는 교관을 더욱 신임하게 되였다. 그는 자기 수하에 박인석이와 같은 충실한 일군이 있는것을 못내 대견스럽게 생각하였다. 물론 교관이 주장하는 《학생무장대》에 대한 구상은 아직 숙제로 남겨두고있었다. 숙장은 학원의 평온을 파괴할수 있는 직접적인 군사활동에 대해서는 그닥 달가와하지 않았던것이다.

《그만하면 훌륭하오!》

최동오는 무기고안을 향해 이 의숙안에서 함부로 람용하지 않는 값비싼 치하를 한마디 들이던지고나서 벙글거리며 교문을 나섰다. 려관에서 기다리고있는 관전중대의 일행을 데려오려는것이였다.

일행은 모두 둘이였다. 한사람은 국내전투에 갔다왔다는 무훈의 주인공 채호국이였고 트렁크를 든 다른 한사람은 그의 습격조에 망라되였던 같은 중대의 대원이였다.

그들이 숙장의 안내를 받으며 정문에 나타났을 때 의숙에서는 모든 정리작업이 일단락을 지었다.

식당에서 아낙네들의 식사준비를 독촉하던 학감이 허둥지둥 달려나와 손님들을 맞아들이고 교원실쪽에 뛰여가 모엿종을 울리였다.

학생들은 순식간에 대렬을 정돈하였다.

그사이 채호국일행은 교실과 무기고를 돌아보고 식당으로 향하였다. 그들은 거기서 그리 오래 지체하지 않았다.

짬시간의 무료를 덜기 위해 행진련습을 하던 학생들은 일행이 식사를 마치고 나오자 다시 교단앞에 정렬하였다.

기름기 도는 음식을 배불리 먹고 푸짐한 접대에 기분이 거나해진 귀빈들은 교단옆에 꾸려놓은 좌석을 향해 느릿느릿 걸어갔다.

그들을 안내하던 최동오숙장이 학생대오 맨앞에 서있는 김리갑이와 눈길을 나누며 고개를 끄덕여 무언의 신호를 보냈다.

김리갑은 당당하고 힘찬 걸음걸이로 귀빈들앞에 다가가 거수경례를 붙이고 채호국에게 생화묶음을 안기였다.

운동장에서는 요란한 박수갈채가 터져올랐다. 식당문밖에 주렁주렁 나와있던 교직원가족들도 환호를 올리며 떠들썩 손벽을 쳤다.

채호국은 가슴에 안은 꽃다발을 어떻게 처리할지 몰라 주위를 살피였는데 온갖 례의범절의 옥편구실을 하는 박인석이 얼른 그 꽃다발을 교단에 가져다놓음으로써 궁지를 모면케 해주었다.

뒤이어 김리갑의 《차렷!》 구령이 울리고 사열행진이 시작되였다.

척- 척, 척- 척.

수십개의 도리깨로 땅을 후려치는것 같은 담차고 박력있는 발구름소리가 지축을 흔들었다.

채호국은 그 발자국소리에 맞추어 률동적으로 어깨를 흠칠흠칠 떨었다.

《학생들이 절도가 있고 패기가 왕성합니다. 우리 군인들은 여기 비하면 마구다지인셈이지요.》

숙장의 오른쪽옆에서 채호국이 가식없는 칭찬을 하였다.

최동오는 그 말에 겸손을 떨었다. 그 누구보다도 기뻐하고 만족해하여야 할 박인석은 그 칭찬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람처럼 표표한 얼굴로 대렬을 주시한다. 그는 지금 귀빈들의 입에서 교련이야기만 나오고 무기고와 관련된 말은 일언반구도 언급되지 않는데 대해서 은근히 불안을 느끼고있었다.

때마침 채호국이 무기고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숙장선생, 총은 비록 한자루도 없지만 무기고를 잘 지어놓았습디다. 오늘 본 모든것들가운데서 제일 훌륭한것이 무기고입니다. 소문도 없이 정말 큰일을 해놓았습니다.》

《그건 다 저 박인석선생이 해놓은 일이지요. 칭찬은 아마도 박선생이 받아야 할것 같습니다.》

최동오숙장은 칭찬을 들은것이 바로 자기자신이기라도 한것처럼 흡족해마지않으며 미소를 머금고 교관을 돌아보았다.

채호국은 사뭇 감동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리였다.

《박선생이 정말 알뜰한 궁리를 했습니다. 그런데 무기는 어떻게 구하겠습니까?》

박인석은 벌씬 웃으며 의미있게 채호국을 바라보았다.

《글쎄요. 앞으로 총가를 채우게 되겠지요.》

대렬이 운동장을 세번 돌고나서야 손님들은 좌석에 자리들을 잡았다.

채호국의 무훈담에 앞서 최동오숙장이 먼저 귀빈들을 차례로 소개하고 간단한 연설을 하였다.

《학생제군, 우리는 오늘 우리 의숙의 교직원학생들이 일구월심으로 기다려온 관전중대의 용사들을 맞이하게 되였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자기의 한목숨을 아끼지 않는 용사들이 사랑하는 조국땅에 가서 어떤 무훈을 세웠는가를 알게 될것이며 용사들을 통하여 억만년 불굴무변한 우리 민족의 장한 기개를 간직하게 될것입니다. 그럼 다같이 열렬한 박수로써 용사들의 무훈담을 환영합시다!》

숙장의 달작지근하면서도 감명깊은 말은 장내에 이를데 없이 경건한 분위기를 마련해놓았다.

채호국이 박수소리에 떠밀리듯 원탁앞으로 민첩하게 걸어나갔다. 키가 크고 어깨가 쩍 버그러진 무관형의 미남자였다. 그는 턱을 가슴앞으로 끌어당기고 고개를 기웃하는 버릇이 있었는데 이런 습관때문에 늘 무엇인가를 진중하게 사색하고 또 자신의 그 사색을 늘 못마땅하게 여기는듯한 인상을 주었다.

《여러분, 방금 소개된 채호국이올시다.》

채호국은 자기의 큰 체구에 어울리게 팔을 넓게 벌려 연탁 량모서리를 짚으며 소탈하게 서두를 떼였다. 짧다란 그 서두말이 대번에 그에 대한 호감을 불러일으키게 하였다.

《여러분들이 잘 알고있는 관전중대에서 정사로 복무하고있습니다. 뭐 크게 해놓은것도 없고… 우리 공로라는거야 그저 그러루한… 저 이를테면 누구나 다 부르는 <농부가> 비슷한거지요. 그렇지만 밑져야 본전인데 한번 좀 고명한 화성의숙의 연탁을 빌어봅시다.…》

인상도 호락호락하지 않은데다가 그 말투 역시 이만저만 괴벽스러운것이 아니였다. 소탈하고 텁텁한, 어찌 들으면 약간 상스러운 느낌까지 들게 하는 그 말의 리면에서는 청중들의 감정을 떡반죽처럼 마음대로 이기고 주무르는 연사의 능란한 솜씨까지 엿볼수가 있었다.

대렬속에서는 가벼운 술렁거림소리가 일어났다.

채호국은 재빨리 청중들의 표정을 일별하고나서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6월초순경이였지요. 우리 삼인조는 천수덕주재소를 습격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오래전부터 중대에서는 이 주재소를 답새기려고 별러왔댔지요.

그래 천수덕으로 갔지요. 몇달째 쌈을 못해서 속이 근질근질거리던 때라 신바람이 났습니다. 미리 준비해가지고 갔던 연장들로 나무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강대나무들을 토막내여 큼직한 장작단들을 만들었습니다. 주재소에 찾아가서 <나무장사>를 시작할 차비였으니까요…》

채호국은 이 대목에 와서 일단 말을 끊고 수건으로 얼굴의 땀을 문질렀다. 구변은 그리 능하지 못한데 이따금씩 익살을 한두마디씩 섞어가는게 들을 맛이 있었다. 그게 오히려 뿌다귀가 없이 매끈매끈하기만 한 화성의숙 교원들의 세련된 교수용어보다는 더 듣기가 좋았다.

연사가 잠간 숨을 돌리는 사이 식당안에서 식사당번들이 쓸어나와 청중들속에 섞이였다.

《주재소담장밖에 척 가니 빈대처럼 생긴 직일순사가 현관문앞에 나타나 들어오라고 까딱까딱 손을 흔드는게 아니겠습니까. 그야말로 아닌밤중에 차시루떡이였지요. 담장안으로 들어갔습니다. 현관문으로 들여다보니 공교롭게도 주재소안이 텅 비여있었습니다.

<나리님, 서장님이 나무를 사시려 한다기에…>

내가 말했습니다. 물론 인사는 깍듯이 했습니다.

<오, 나무! 종거시… 종거시!…>

그 빈대같이 생긴놈이 경망을 떨었습니다.

흥정이 벌어졌습지요.

그놈이 한푼이라도 덜 내려고 아득바득 값을 깎아내리였습니다.

나는 선심을 쓰는척하면서 그자가 주겠다는 액수대로 돈을 받겠다고 하였습니다.

놈팽이는 돈을 꺼내려고 주머니에 손을 넣었습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십시오. 이이상 좋은 기회가 어디 있겠습니까. 덮어놓고 총을 꺼내들었지요. 그놈을 주재소기둥에 비끄러매놓았습니다. 왜 쏴갈기지 않았는가구요. 나머지 순사놈들의 행처를 알기 위해서였지요. 그렇지 않으면야… 직일순사는 자기네 패당들이 주재소에서부터 십리쯤 떨어진 쌍매봉마을에 순시를 나갔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쌍매봉은 오십여호의 농가들이 띠염띠염 널려있는 전형적인 산간부락이였다. 사람들이 아직 일터에서 돌아오지 않아 마을은 고요하였다.

채호국은 동네초입에서 강냉이밭김을 매고있는 어떤 늙은이에게 물었다.

《할아버님, 여기에 천수덕주재소 순사들이 오지 않았습니까?》

《왜 그러시우?》

《면에서 급한 련락을 가지고 왔습니다.》

《모르우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못봤수다.》

늙은이는 고개도 쳐들지 않고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한참후에 채호국이네는 샘터로 가는 아낙네 하나를 만났다.

《아주머니, 여기에 천수덕주재소 순사들이 오지 않았습니까?》

《왜 그러시나요?》

《면에서 급한 련락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런 순사들을 보지 못했는데요.》

녀인은 쌀쌀하게 대꾸하고나서 가던 길로 종종걸음을 쳤다.

세번째로 만난 사람은 소몰이군총각이였다.

이번에도 채호국은 같은 질문을 던지였다. 아까보다 오히려 면에서 왔다는것을 강조하였다.

《순사들이 어디로 다니는거야 면에서 더 잘 알지 우리가 아나요.》

총각 역시 매정스럽게 쏘아주고나서 회파람을 불며 지나가버리였다.

《때려죽일것들, 남의 입을 쳐다보지 말고 우리 눈으로 찾아보세나.》

모욕감을 느낀 채호국은 입에 담지 못할 상욕을 퍼부으며 널려있는 농가들을 향해 삿대질을 해댔다.

《넨장, 독립이 되면 이 동네것들을 몽땅 서울에 끌어다가 볼기 쉰개씩 때려줍세.》

그러자 다른 동료대원이 분개해서 말했다.

《서울은 무슨 서울, 전라도 담양으로 귀양이나 보내야지.》

그들은 의논끝에 연기가 제일 많이 나는 집부터 선참 찾아가보기로 하였다. 순시가 있는 날이면 의례히 무슨 대접을 받고야 돌아가는 왜놈경찰들의 습성을 타산해서였다.

《그래, 그런 집을 찾아냈지요…》

채호국의 무훈담은 계속되였다.

《과연 그 집 방문앞에는 순사놈들의 신발짝들이 주런이 놓여있었습니다. 아주 초라한 집이였는데 거름냄새조차 싫어하는 그 신사들이 어떻게 이런 집으로 굴러들어갔는지 참 모를 일이였습니다. 그 동네에는 그 집보다 더 크고 번듯한 집이 수두룩했으니까요.

(주인이 아마 친일파인게로군.)

내 추측이였습니다.

습격은 정말 벼락같이 진행되였습니다. 세놈의 경찰을 모조리 염라국으로 보냈습니다. 놈들이 추렴을 벌리던 그 집은 철수하면서 불살라버리였습니다. 이것이 천수덕에서 가져온 전리품들입니다.》

채호국은 트렁크뚜껑을 열어제끼고 원탁우에 전리품들을 하나하나 꺼내놓았다. 권총, 경찰모, 경찰견장, 회중전지, 곤봉, 가족사진, 포승끈, 피묻은 경찰신분증…

그 전리품들은 삼인조의 전투후행동이 대단히 여유작작하게 진행되였음을 의미하였다.

대렬속에서는 가벼운 찬탄의 파도가 일어났다.

《저- 한가지 물어봐도 좋습니까?》

대렬 맨앞에서 김리갑이 일어섰다.

《물어보십시오.》

채호국은 진지한 표정으로 질문을 기다리였다.

《그 빈대같이 생겼다는 순사놈은 어떻게 처리하였습니까?》

《쏴갈겼습니다.》

이번에는 최창걸이 질문을 제기하였다.

《채호국씨가 전투에서 얻은 교훈은 무엇입니까?》

채호국은 그 물음에도 거침없이 대답하였다.

《교훈이랄거야 없지만… 하여간 가장 중요한것은 왜놈을 자꾸 답새겨야 독립의 길이 열린다는것입니다. 하루에 주재소 하나씩만 쳐두 한달이면 서른개소가 아닙니까. 낮에도 치고 밤에도 치고 셋이서도 치고 열이서도 치고 이렇게 쉬지 않고 치면 왜놈들이 꼭 망한다는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우리한테는 공리공담보다도 실천적인 행동이 필요합니다!》

김리갑이 흥분하여 주먹을 내흔들었다.

《옳습니다. 군이 아주 옳은 말을 했습니다. 왜놈들을 자꾸 못살게 굴어서 그놈들이 우리 나라 땅에서 마음놓고 활개를 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아니, 스스로 물러가게 해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박인석선생이 주장하고있는 학생무장대에 대한 계획을 지지합니다.》

채호국은 군사교관쪽을 피끗 돌아보며 격려하듯이 고개를 꺼떡해보이였다.

누구인가 박수를 쳤다. 그러자 모든 학생들이 일어서서 채호국을 향해 열렬한 박수갈채를 보냈다. 그들은 흥분을 참지 못하여 그에게 꽃보라를 뿌리고 주먹을 흔들면서 《독립가》를 불렀다.

교원들이 앞을 다투어 달려와 채호국에게 악수를 청하였다.

무훈담은 《일로매진 승승장구하는 독립전선에서 화성의숙의 사자들이 주역을 담당하게 될 휘황한 장래를 기다리노라.》는 채호국의 말로써 끝을 맺었다.

무훈담이 끝나자 김리갑이 얼른 자리에서 일어섰다.

《모두 내 말을 들으라구, 채호국선생을 목마태워드리는것이 어떻소?》

그는 동료들을 돌아보며 즐겁게 소리쳤다.

《좋소!》

모두가 우렁차게 호응하였다.

대여섯명의 학생들이 앞으로 달려나가 책상을 밀어제끼고 채호국이를 벼락같이 들어일구었다.

채호국은 김리갑이한테 손목을 잡히여 목마를 탔다. 그의 어깨우에 삼색꽃보라가 수없이 뿌려졌다. 그는 한참만에야 학생들의 손에서 풀려나와 일행과 함께 교원실로 향할수 있었다.

학생들이 운동장 여기저기에 뿔뿔히 헤쳐져서 무훈담에서 받은 소감들을 나누기 시작했다.

말소리가 제일 떠들썩한곳은 김리갑이와 조기영, 리효들이 있는데였다. 그들은 한입처럼 채호국을 영웅으로 평가하였다.

《나는 채호국씨의 전과가 독립군의 최근 전과가운데서 제일 큰것이라고 생각하오.》

저고리앞자락을 활짝 열어제낀 김리갑이 툭 불거져나온 가슴팍을 슬슬 어루만지며 장담하였다.

조기영의 목소리는 그보다도 더 높다.

《모두가 저렇게만 싸운다면 왜놈의 총독정치를 삼년안으로 끝장낼수 있소!》

리효는 무엇인가 더 힘있고 알찬 표현을 고르면서 참을성있게 침묵을 지키다가 맨 나중에야 입을 열었다.

《나에게 만일 훈장이 있다면 제일 큰 훈장을 달아주고싶소.》

그들의 곁으로 박인석이 다가왔다. 그는 물었다.

《그래 소감들이 어떻소?》

《선생님, 우리도 한바탕 그렇게 해보고싶습니다.》

김리갑의 대답이였다.

《그래 국내에 나가면 저 관전중대사람들처럼 꽤 해낼수 있을가?》

《우린 그보다 판을 더 크게 벌릴수 있습니다. 교관선생님, 그 학생무장대라는건 언제 조직하게 됩니까?》

《조금만 참소, 이제 무기만 마련되면…》

박인석은 더 말을 잇지 않고 김리갑의 어깨를 의미있게 탁 쳤다. 그리고는 채호국일행이 머무르고 있는 교원실로 바삐 들어가버리였다.

 

9

 

어느새 동녘이 푸름푸름 밝아오고있었다. 새날은 차디찬 새벽빛으로 땅우의 모든 꿈을 조심조심 흔들어깨웠다. 방금 잠에서 깨여난 참새들이 화성의숙 처마끝에서 깃을 털고 부리를 비다듬으며 무엇인가 열심히 종알거리였다.

여느 새벽보다 퍽 일찍 기숙사를 나서신 김성주동지께서는 운동장을 몇바퀴 에돌다가 북대가쪽을 향하여 걸어가시였다. 간밤 잠을 설친탓인지 머리가 몹시 무거우셨다. 십분 남짓이 찬공기를 쐬였는데도 정신이 흐릿하시였다. 요 며칠째 심한 불면증이 그이를 괴롭히였다. 게다가 꿈까지 많아졌다. 꿈도 이만저만 어수선한 꿈이 아니다. 최창걸은 《그처럼 불면증에 시달리게 된것은 신경이 예민해진탓》이라고 하였고 리무성은 《책을 너무 무리하게 읽어서 그렇게 된것 같다》고 하였다. 모두들 몸을 돌보면서 공부하라고 당부하였다.

김성주동지자신께서도 그런 조언을 고맙게 받아들이시였다. 그러나 하루 상학만 끝나면 그이께서는 또다시 무섭게 책을 파고들었고 새벽이면 남보다 일찍 잠을 깨여 산책의 길에 어김없이 오르시군하였다. 독서와 산책은 하루생활에서 떼놓을수 없는 중요한 일과였다.

그이께서는 이 시간에 자신께서 걸어가게 될 앞길에 대해서 모색하시군하였다.

이 과정에 착수하시게 된것이 결국 공산주의선진사상을 연구하기 위한 독서였다. 공산주의선진사상을 섭취함이 없이는 아버님께서 물려주신 리념을 결코 실현할수 없다고 그이께서는 확신하시였다.

그이의 감상록에는 어느덧 《공산당선언》과 《국가와 혁명》을 읽고 분석한 예리한 문장들이 씌여지기 시작했다. 때로는 조선혁명의 진로를 두고 전개한 탐색의 자취도 적히였다. 그이께서는 자신뿐아니라 최창걸이며 리무성이며 리제우며 계영춘이와 박두학이들에게도 그 책을 돌려보이시였다. 읽은 책에 대한 토론과 론쟁이 활발히 벌어졌다. 동료들은 리해가 잘 가지 않거나 까다로운 문제가 생기면 의례히 김성주동지를 찾아와 그 해명을 요구하였다. 간밤에도 최창걸은 힘든 질문을 제기하였다. 《조선에 프로레타리아의 대군이 없는 조건에서 무산혁명이 승리할수 있는가?》, 《산업혁명, 부르죠아혁명을 거치지 않고서는 공산주의사회로 갈수 없는가?》, 《계급해방, 민족해방을 위한 혁명에서 조선의 프로레타리아트는 어떤 계층과 련합해야 하는가?》

김성주동지께서는 온밤 그 해답을 찾느라고 심사숙고하시였다.

오늘은 이 문제들을 가지고 한바탕 론쟁을 벌릴 결심이였다.

시가쪽으로 한참 걸어가시던 김성주동지께서는 걸음을 늦추며 신발을 굽어보시였다. 어쩐지 자신의 신같지 않고 남의 신처럼 발에 주는 감촉이 이상했다. 이 신발은 바닥무늬가 별로 닳지 않은 새 운동화였다. 리효의 신같았다. 그이의 신은 이 신보다 퍼그나 오래전에 사신것이였다.

(허참, 내가 이런 실수를 하다니.)

그이께서는 의숙으로 바삐 되돌아가시였다.

호실에 들어가시니 리효의 자리는 비여있었다. 어느틈에 벌써 새벽산보를 나간 모양이였다.

김성주동지께서는 다시금 산책의 길을 이어가시였다.

주인이 없는 버림받은 풀밭이 마소와 돼지들의 입에 뜯기운 초라한 모습을 안개속에 감추고 새벽어스름속에 길게 누워있다. 북대가 교외의 들판이다. 거칠고 들피진 목초지는 미구에 닥쳐올 해돋이를 맞으며 아침단장을 하느라고 여념이 없다. 밤이슬에 함초롬히 젖은 나팔꽃 한떨기가 들판 한가운데 소담스레 피여있다. 노을이 진 동녘을 향해 방긋이 입을 벌리기 시작한 남색의 청초한 그 꽃은 그이의 눈을 유난히도 끌었다.

김성주동지께서는 생신한 기분으로 그 꽃 떨기를 향해 다가가시였다. 그러시다가 우뚝 걸음을 멈추시였다. 여러문발자국쯤 떨어진 물도랑기슭에 꽃을 등지고 앉아있는 어떤 사람의 희끄무레한 형체를 발견하시였던것이다.

그 사람은 이 들판에 우연히 떨어진 조각상마냥 까딱 움직이지 않고있었는데 동녘이 아니라 음침한 어둠이 자리잡고있는 서쪽을 향해 앉아있어서인지 별스럽게도 서글픈 인상을 주었다. 꺼부정한 뒤모습과 어깨속에 파묻은 머리만 보고서도 그가 명상에 잠기였거나 무슨 고민에 잠겨있는 사람이라는것이 인차 알리였다.

김성주동지께서는 그 사람의 사색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얼른 발길을 다른데로 돌리시였다.

그때 도랑기슭의 사람이 인기척을 느끼고 등뒤로 고개를 돌리였다. 뜻밖에도 그는 최창걸이였다.

《아니, 성주가 아니요?》

그는 약간 감기들린듯한 목소리로 무뚝뚝하게 물었다.

《오, 창걸이였구만.》

김성주동지께서는 그가 오늘따라 송화강변을 택하지 않고 이런 목초지로 산보를 나온데 대하여 희한하게 생각하면서 도랑가로 천천히 걸어가시였다. 최창걸의 옆에 어깨가 닿을듯이 바투 자리를 잡은 다음 말씀을 이으시였다.

《어찌나 자세가 엄엄한지 감히 접근할 용기가 나지 않더군. 아침부터 무슨 생각을 했소?》

《음… 그저 좀…》

최창걸은 짤막하게 호응하였지만 인차 얼굴을 돌리고 발밑에서 졸졸거리는 도랑물을 물끄러미 굽어보는것이였다.

밤그림자가 채 가시지 않은 푸릿푸릿한 하늘이 그 도랑물우에서 소리없이 춤추고있었다. 이름모를 날벌레들이 수면우에 뛰여들 때마다 그 하늘은 쪼각쪼각 찢어지고 이지러졌다.

그런 순간마다 최창걸은 얼굴을 찌프리였다.

그는 여느날보다 기분이 저으기 침울해보이였다. 무슨 까닭인지 알수 없으시였다.

(이 친구 오늘은 왜 이렇게 시뿌둥할가?)

김성주동지께서는 량쪽 관자노리에 주먹을 대고 도랑물을 굽어보시였다. 두투무레한 입술을 꾹 다물고있다가도 상대가 집요하게 침묵을 지키고있으면 그제사 제쪽에서 도리여 미안스러워 말을 꺼내군하는 최창걸의 성미를 잘 알고계시였던것이다.

과연 그는 이번에도 그랬다.

《성주는 채호국의 무훈담을 어떻게 생각하오?》

하고 최창걸은 여전히 수면에서 눈을 떼지 않고 밑도끝도없이 묻는것이였다.

《무훈담? 왜? 창걸이도 한번 영웅이 돼보고싶소?》

《아니… 그런건 아니요. 만약 누가 성주에게 국내원정에 나갈걸 요청한다면?…》

《나에게… 이거 대단히 심각한 질문이구만.…》

김성주동지께서는 한바탕 소리내여 웃으면서 정색해진 최창걸이를 바라보시였다.

《그런데 오늘아침 왜 그런 말을 꺼내는거요?》

《그럴 일이 있소.》

최창걸이도 그제사 표정이 우선우선해지더니 말을 계속하였다.

《리갑이가 그런 말을 꺼내더란말이요. 나하구 무성이한테…》

《국내원정말인가?》

《그렇소.》

《그래서 뭐라고 하였소?》

《무성이가 되물었지. 성주도 가는가구? 리갑이가 고개를 젓자 그럼 자기도 가지 않겠노라구 하더군. 그러니까 리갑이가 좀 비꼬는투로 묻지 않겠소. 무성인 그럼 남의 정신으로 사는가고? 그러자… 무성이의 대답이 참 걸작이였소. 내가 왜 남의 정신으로 살겠는가, 자기 정신으로 살지. 그렇지만 성주정신이 늘 부럽더라. 그래서 그러는거다… 이렇게말이요…》

《허참, 그 친구가 대답을 썩 잘하지 못한것 같구만. 그렇게 말해주었으면야 리갑이의 기분이 좋을리가 없지.》

김성주동지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면서도 어째서인지 가슴이 뭉클해지시였다. 무송에 있을 때처럼 여기 화전에 와서도 어제날의 모습그대로 자신께 마음을 고스란히 의탁하고 지내는 리무성의 그 변함없는 우정때문인지도 몰랐다.

최창걸은 흙덩이를 들고 주무르다가 으스러지게 바수어 도랑물에 떨어뜨리였다. 두손을 마주쳐 먼지를 탁탁 털었다.

《무송이가 만냥짜리 대답을 했지. 물론 리갑이의 자존심은 건드렸지만. 그러나… 사람이 살면서… 아니, 천리를 걸어갈지 만리를 걸어갈지 모르는 우리 청년들이 모든것을 깡그리 떠맡길수 있는 그런 기준, 그런 존재를 갖게 된다는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만물에는 아무튼 기준이 있어야 하고 선봉이 있어야 하고 중심이 있어야 하는거야.》

《허허, 무슨 새로운 철학이나 발견한것 같군. 그래 창걸인 뭐라고 대답했소?》

《가지 않겠다구 했소.》

김성주동지께서는 한쪽 팔굽으로 땅을 지지하고 도랑기슭에 모로 비스듬히 누우시였다.

《지내보니 리갑이도 좋은 동무더구만. 좀 들떠있는게 탈이지. 그러나 옳은 로선도 전략도 없는 독립군체계안에서의 그런 무모한 싸움이 얼마나 많은 희생을 가져왔던가 하는것을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할것이요. 지금 나는 그런 싸움보다도 다른데 더 신경을 쓰고있소.》

《무슨 생각이요?》

최창걸은 점도록 지켜보던 하늘에서 시선을 떼고 김성주동지를 향해 고개를 돌리였다.

《나는 무엇인가 새것을 만들어내고싶소. 나라의 독립을 위해 십년이고 이십년이고 함께 걸어갈수 있는 동무들로 무슨 조직을 뭇고싶단말이요. 혼자서야 혁명을 못하지 않소. 아무런 때도 묻지 않은 순결하고 충실한 청년들로 이 시대와 력사를 개조할 새로운 전위대오를 뭇고싶소. 혁명을 하자면 아무래도 그런 전위대오가 있어야 할것 같소. 그런 조직만 있다면 나는 온 삼천리를 뒤집어엎겠소. 어떻소, 그렇지 않소?》

《정말 그런 전위대오가 있다면 얼마나 좋겠소!》

《파쟁도 없고 동족상쟁도 없고 정치테로도 없는 그런 조직을 말이요. 그러자면 우선 이 전위대오에 들어설수 있도록 계급적각오가 높고 견실한 청년들을 새 사상으로 무장시키고 교양하는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오. 독서를 해도 산발적으로 하지 말고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조직적으로 하자는거요. 말하자면 비밀독서회라고 할가…》

《이 군관학교 지붕밑에서 공산주의를 신봉하는 비밀독서회라… 가능할가?》

《그것이 우리들의 드팀없는 신념이라면… 그 어데서도 가능할거요.》

최창걸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김성주동지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개원에서 돌아와 만나던 그때보다 눈에 뜨이게 상하시고 축가신 모습이였다. 밤이면 밤마다 송화강가를 거닐고 새벽이면 어김없이 화전의 들과 언덕으로 향하군하는 산책의 길이 자신의 건강과 관련된 단순한 새벽산보라면 어찌 성주의 얼굴이 저다지도 달라질수 있단말인가. 그이께서 이전보다 별로 근엄해지고 과묵해지신 그 까닭을 최창걸은 비로소 알수 있을것 같았다. 김형직선생님께서 지니고계시던 생전의 그 강의하고 헌신적인 모습을 그는 이 화전의 들판에서 다시 뵈옵는것만 같았다. 최창걸은 김성주동지의 신념에 찬 눈빛을 보자 자신의 가슴속에도 그 어떤 신념의 기둥이 일어서는것 같은 쾌감을 느끼며 흥분되여 말했다.

《성주, 나는 지지하오. 정말이지 이제는 새것이 그립소!》

《창걸이! 우리 서로 힘을 합쳐 새길을 개척해보자구!》

김성주동지께서는 최창걸의 팔을 끼시고 시가쪽으로 향하시였다.

어느새 우정국앞거리다.

해돋이가 시작되였다.

김성주동지께서 최창걸이와 함께 기숙사식당에 들어서신것은 마지막 몇몇이 식사를 방금 하고 나간 뒤였다.

주방에서 설겆이를 하던 박두학이 배식구로 목을 길게 빼들고 식당안을 휘휘 살피더니 부뚜막에 있던 밥사발 여섯개를 내보냈다.

《허, 이거 오늘아침은 대접이 꽤 푸짐하다. 맨나중에 오는 멋도 과히 나쁘지는 않구만.》

김성주동지께서는 박두학이 내보내는 찬그릇들을 넘겨받으며 롱을 하시였다. 그만 보면 왜 그런지 저절로 마음이 유쾌해지시는것이였다. 개원에서 돌아와 첫 축구시합에서 박두학이 개다리질을 하여 자기 편 꼴문에 공을 차넣는 놀라운 실수를 저지른 다음부터 그는 의숙에서 더 사랑스러운 존재로 되였다. 죽을 죄를 진 박두학이자신은 공격명수로서의 명예를 스스로 훼손시킨 그 사건때문에 그날 김성주동지께 미안하게 됐노라고 여러번 사죄하였지만 그 실수로 하여 자기가 그이의 호감을 더 사고있다는것은 몰랐다.

《에라, 내 그럼 오늘 한턱 썼다!》

박두학이도 가마굽을 철썩 두드리며 마주 롱을 하였다.

《저렇게 마음이 헤프니까 자기 꼴문에 공을 차넣지.》

《하하하…》

《하하하…》

그때 다른 식사당번이 고개를 내밀고 혼겁한 소리로 뚱겨주었다.

《친구들, 두학의 그 턱을 받아들이다간 큰변 나오. 아직 네명이나 식사를 안했소.》

김성주동지께서 식사를 거의 끝내실 때까지도 그 네명은 식당에 나타나지 않았다.

《허, 이거 오늘아침은 별스레 늑장을 부린다. 까놓고 말해서…》

박두학은 고개를 찌붓하고 주방을 나서서 어디론가 사라졌다. 잠시후 그는 긴장된 얼굴로 식당에 나타나 혼자소리로 중얼거리였다.

《이상한데, 기숙사에는 식사를 안한 친구들이 한명도 없다는데…》

김성주동지께서는 그 소리를 듣자 섬찍한 예감이 들어 숟가락을 놓고 최창걸에게 물으시였다.

《오늘아침 리갑이를 봤소?》

《못봤소.》

최창걸이도 같은 불안을 느꼈는지 미간을 모으고 고개를 저었다.

《두학이도 못봤소?》

《나도 못봤소. 그 친구 식당에 오면 한마디씩 꼭꼭 집적거리군했는데…》

김성주동지께서는 그 말까지 듣자 더 식사를 하지 않고 기숙사로 뛰여가시였다.

그러나 기숙사에도 교실에도 운동장에도 그는 없었다. 김리갑이뿐아니라 리효와 조기영 그리고 조학봉이도 보이지 않았다. 미명에 일찍 산보를 떠났기때문에 그들중 누구를 보고 누구를 못보았다는 기억은 전혀 없으시였다. 다만 아까 신발을 바꿔신으려고 호실에 다시 들어갔을 때 리효의 자리가 비여있은것이 우연한 일이 아니였구나 하는 느낌만이 가슴을 파고들뿐이였다.

최창걸은 초점없는 눈으로 허공을 쳐다보며 중얼거리였다.

《정말로 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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