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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서《불멸의 력사》 1 장편소설
김 정
( 제 11 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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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이다! 거짓말이다! 김선생님께서 그렇게 일찍 돌아가실수 없다!》 이 말은 비단 무송의 소남문거리나 샘골에서만 울린것이 아니였다. 저 멀리 남리와 칠골, 내동과 중강진, 상해와 길림… 부고가 가닿는 모든곳에서 한결같이 울리였다. 믿을래야 믿어지지 않는 이 가슴터지게 슬픈 현실을 사람들은 누구나 선뜻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살인적인 형무소의 폭압도 끝내 파괴하지 못한 김형직선생님의 강철같은 육체와 불굴의 의지를 잘 알고있는 조선국민회원들과 제자들, 친척, 친우들은 그이의 서거에 대한 소식자체를 굳이 부정하려고 하였다. 그들은 모두 건장한 김형직선생님만을 알고있었으며 생활에서 피곤이라는 말자체를 모르고 살아가시던 선생님의 불사신같은 형상만을 믿으려 할뿐이였다. 그러나 전보문의 랭철한 문구는 그들모두에게 불행이란 언제나 인간의 욕망이나 념원 같은것에 복종된적이 없다는것을 상기시켜주었다. 《장손아, 내 아들아! 네가 가다니 이게 무슨 청천벽력이냐! 어쩌면 내가 가기도전에 그 몹쓸길로 그렇게도 서둘러 간단말이냐!》 김보현선생님께서는 너무도 애석하고 절통하여 눈물도 못흘리고 북녘을 향해 가슴을 두드리며 호곡하시였다. 그 언제건 독립된 내 나라, 내 동포를 안고 사랑하는 아들이 돌아오리라던 그 사립문가에서 선생님의 육신은 영원히 굳어지시는듯싶었다. (너를 기다리는 이 문으로 너는 돌아오지 않고 어쩌면 그런 몹쓸 소식이 날아든단말이냐!) 리보익녀사께서는 강냉이밭에서 이 소식을 받으시였다. 꼬깃꼬깃 구겨진 전보문을 쥐고 밭머리에 나타난 딸이 달려오자바람으로 녀사의 치마폭에 매여달리며 《오빠!》를 불러 통곡하였다. 녀사께서는 그 소리를 듣자 하늘이 무너지는것 같아서 밭고랑에 풀썩 주저앉으시였다. 김을 찍으시던 호미가 녀사의 손에서 떨어지였다. (장손아, 한평생 궂은눈, 궂은비만 맞으며 찬밥에 찬 잠자리만 알고 찬서리와 찬이슬을 밟으며 내내 이 에미의 속을 쓰리게 하더니 너는 갔구나. 그렇게 빨리 가는줄 알았더라면 내 불원천리 무송에 가서 너에게 따뜻한 밥이라도 한끼 지어주고 손이라도 잡아보는걸 그랬구나. 세상천하를 다 잃으면 내 가슴이 이렇게도 찢기겠느냐? 죽었다가도 두번다시 살아나는 법은 없다더냐? 장손아, 내 아들아!) 녀사께서 흘리시는 걸디건 눈물에 황토먼지가 뒤덮인 남리의 언덕이 젖어들고있을 때 내동부락의 녀인- 어제날의 명신학교 학생은 갓난애를 달래려고 한 치마폭 가득 딴 앵두를 땅에 와르르 쏟아버리며 봉화산을 우러러 선생님의 성함을 목메이게 불렀다. 《선생님, 독립되는 날 다시 내동에 오시겠다더니 갑자기 웬일입니까!》 녀인은 강냉이밭고랑에 호미를 내동댕이치고 어제날의 명신학교앞에 와서 실성한 사람처럼 멍하니 서있다가 학교앞뜰의 박우물언저리에 쭈그리고 앉아 물속에 하염없이 눈물을 쏟뜨리더니 소리는 못치고 눈물만 좔좔 흘리면서 정처없이 또 어데론가 허둥지둥 걸어가는것이였다. 그는 저고리고름에 꼬깃꼬깃 포개여넣었던 돈 몇잎을 무송으로 떠나가는 조객-봉화리대표에게 주었다. 남만행 렬차와 마차들에는 무송으로 가는 조객들이 꼬리를 물고 올랐다. 차마편이 없는 고장에서는 도보로 길을 떠났다. 장례날까지 가닿지 못하면 장례가 끝난 다음 분묘앞에 엎드려서라도 고인과 영결을 하려고 사람들은 무송으로, 무송으로 걸음을 재촉하였다. 려관마다 조객들로 차고넘쳐 외처에서 온 대부분의 상객들은 대남문거리와 동문거리, 북문거리는 물론 가까운 왕바포와 양지촌마을의 려염집들에까지 분숙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지팽이에 의지하여 겨우 바깥출입을 하던 박도삼은 마을농민들에게 부축되여 해질녘에 소남문거리에 들어섰다. 새로운 조객들이 나타날 때마다 《무림의원》댁에서는 곡성이 울리였다. 무송현장까지도 중국의 례법대로 금박향지 묶음을 가지고 나타나 김형직선생님의 령전에 향을 피우고 소리없이 눈물을 흘리며 례를 올리였다. 호상을 서는 장의위원들은 다들 목이 쉬여버리였다. 치욕의 《한일합병》이 있은 이후로 우리 민족은 이렇게 울어본적이 한번도 없었다. 백산학교 학생들은 사흘동안 수업을 전페하고 장례식날 선생님의 령전에 올릴 화환을 만들었다. 1926년 6월 10일. 이날 아침부터 소남문거리는 립추의 여지가 없이 조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평소에 김형직선생님의 지도를 받았거나 치료를 받은 사람들, 그이의 높은 덕행과 성품을 늘 칭송하고 따르던 군중들의 물결이 장사진을 이루어 《무림의원》댁 마당에서부터 양지촌언덕에까지 새하얗게 늘어섰다. 낮 12시. 독립운동자들로 구성된 상여군들이 김형직선생님의 령구를 막 발인하려는 순간 통화지방에 출장을 갔던 김시우가 길림과 화전을 거쳐 무송 소남문거리에 나타났다. 쨍쨍한 해낮에 어디서 물벼락을 맞았는지 바지가랭이가 흠뻑 젖어든 그는 북문에서부터 장달음으로 뛰여온 그 가쁜 숨고비를 가라앉힐 사이도 없이 그 누군가가 가져다주는 상복과 감투로 의관을 차린 다음 선생님의 령구를 부둥켜안고 갈범의 울음소리와 같은 곡성을 터뜨리였다. 《김선생님, 선생님의 슬하에 시우가 부복하여 웁니다. 미물같은 이 제자가 이제야 선생님을 찾아왔습니다. 선생님께 약 한술도 못떠드리고, 병고로 누워계시는 선생님의 손목에 진맥 한번도 못해보고… 오륙과 사지가 성하다고 세상천하 가고픈데를 다 돌아다니다가 이제야 왔습니다.…》 호상을 서는 사람들은 비통한 그의 부르짖음소리에 다들 숨이 막힐듯한 격정을 느끼며 가까스로 울음을 삼키고있었다. 김시우는 가슴속 맨 밑창에서 우러져나오는 울음덩치를 한차례 토하고나서 숨구멍이 꺽 막히게 한동안 어깨만 소리없이 떨다가 다시 설음을 토하였다. 《두달전만 해도 내 손을 부여잡고 웃는 얼굴로 귀중한 가르침을 주시더니 이 시우도 모르게 저세상으로 가시다니 웬일입니까? 선생님, 이것이 꿈이라면 일어나셔서 왜 이렇게 늦게야 나타났는가고 내 뺨이라도 쳐주십시오. 사람같지 않은것들이 지사냄새를 피우며 제노라는 이 세상천지에서 이제는 누구를 믿고 가슴을 펴고다니며 무엇을 믿고 창기를 벼려야 합니까?…》 김시우는 주먹으로 가슴팍을 탕탕 두드리였다. 제주를 붓고 향나무가치에 성냥을 그어대던 오동진이 설음이 콱 북받쳐서 김시우의 곁에 풀썩 엎드렸다. 《눈앞이 캄캄하오. 독립운동의 지도자를 잃었으니 우리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오? 김선생, 대답을 하시오. 우리를 뒤에 두고 왜 벌써 떠나셨소? 우리는 장차 어떻게 해야 하오?》 그러자 량세봉이 림강의 로경두와 함께 령구를 그러안고 목놓아울었다. 김시우는 다시금 령구앞에 엎드려 눈물섞인 사설을 터쳐놓았다. 아까와는 달리 목청을 돋구지 않고 조용조용 가까스로 뽑아내는 설토였다. 그래서 그의 목소리는 한층더 비장한감을 띠고 울리였다. 《정말 절통합니다. 의지가지할곳 없는 불쌍한 내 겨레, 내 동포를 허허벌판에 남겨두고 선생님께서는 어데로 가십니까? 가랑잎처럼 처량한 이 몸과 마음을 인제는 어디다 의탁하면 좋단말입니까. 선생님!… 김선생님!》 김시우는 말을 그치자 눈물을 뿌리며 대성통곡하였다. 령전앞의 울음소리는 곧 뜨락으로 퍼져나가 소남문거리로부터 양지촌기슭으로 산천을 흠칠흠칠 떨게 만드는 처량한 곡성을 실어날랐다. 《총관님, 그만하구 일어나십시오. 령구를 발인할 시간이 됐습니다.》 령구앞에 쓰러진채 움직일줄 모르는 김시우를 호상원들이 흔들었다. 김시우는 두손으로 구들바닥을 짚고 령구와 방을 격리시킨 휘장우에 걸려있는 김형직선생님의 사진을 넋없이 우러러보다가 고집스럽게 머리를 흔들었다. 《못일어나겠소! 못일어나겠소! 나는 못일어나겠소! 이제 어데 가서 선생님을 또 뵈옵는단말이요. 안되오. 못일어나겠소…》 구들바닥에 죽은듯이 엎드려 하염없이 눈물을 뿌리는 그를 오동진과 장철하가 달려들어 들어일구었다. 그러자 그는 맏상제이신 김성주동지를 찾았다. 《존귀하신 아버님을 잃고 슬픔이 얼마나 망극하겠소.》 어리신 상제께 드리는 조문치고는 너무나도 엄숙하고 례절스러웠다. 김성주동지께서는 자신을 다 성장한 어른처럼 대하는 총관의 그 범상치 않는 조문을 받으며 아버님께서 계시지 않는 슬프고 허전한 현실을 더 눈물겹게 느끼시였다. 그이께서는 눈물이 비오듯 쏟아져내리는 얼굴을 들어 김시우의 벌거우리해진 눈시울을 괴로웁게 마주보시였다. 《선생님,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곡성이 한차례씩 댁을 흔들어놓을 때마다 김성주동지께서는 그저 눈물만 그침없이 흘리시였다. 목이 꽉 메이고 가슴이 바작바작 타드시였다. 그래서 속은 따가운 불뭉치라도 품고있는것처럼 내내 화끈거리였다. 시간이 얼마쯤 흘렀을 때 리무성이 불쑥 령구앞에 뛰여들었다. 김시우보다 한발 늦어 화전을 떠난 그는 소남문거리에 도착하자바람으로 강반석어머님께 최창걸이 보내는 부의를 전해드리고 약방에서 한바탕 울음을 터뜨리다가 안방에 나타난것이다. 두손으로 바닥을 허비며 《선생님!》을 부르는 그의 통곡소리는 약방에 누워있는 박도삼의 가슴을 발기발기 찢어놓았다. 방금전에 령구앞에서 곡을 하다가 쓰러진 그를 호상원들이 맞들어 약방에다 눕혔던것이다. 모두가 통곡하고 모두가 흐느끼였다. 그런데 가장 큰 희생을 당한 강반석어머님께서만은 우시지 않았다. 하지만 어머님의 고요하고 그윽한 눈동자에는 깊이를 알수 없는 슬픔이 심연처럼 괴여있었다. 어머님께서는 령구를 따라나서시는 아드님의 손을 말없이 꼭 잡아주시였다. 김성주동지께서는 너무나도 꿋꿋하신 어머님의 표정을 놀라웁게 살피시였다. 강반석어머님께서는 김성주동지를 향해 어서 떠나가라고 손짓하시였다. 사랑하는 아들들앞에 눈물을 보이고싶어하시지 않는 어머님의 강직한 그 마음을 김성주동지께서는 알고도 남음이 계시였다. 어머님의 그 마음을 읽고계시기에 그이의 가슴은 더 찢겨지는것 같으시였다. 장례행렬이 드디여 《무림의원》댁을 떠났다. 행렬의 맨 앞장에서는 《고 김형직선생의 령구》라고 쓴 기발이 나가고있었다. 그뒤로는 화환을 든 예순명의 대오가 잇따르고 네명의 새납수와 한명의 북잡이가 비장한 장송곡을 연주하면서 느릿느릿 걸어갔다. 령구는 바로 그 악대의 뒤에서 나갔다. 오동진을 위시한 여덟명의 독립운동자들이 상여를 멨다. 령구의 뒤에서는 상제들이 따라갔는데 김성주동지께서는 맨 오른쪽에 서시였다. 이 근감한 장례행렬이 소남문거리로 흐르기 시작하자 거리에서는 돌연 천지를 진감하는 곡성이 터져올랐다. 김성주동지께서는 얼핏 뒤를 돌아다보시였다. 순간 그이의 눈길은 뜨락 한복판에 서계시는 어머님의 시선과 마주치셨다. 강반석어머님께서는 초연한 얼굴빛으로 아드님을 향해 알릴락말락하게 고개를 끄덕여보이시였다. 그러고는 독립운동자들에게 에워싸여 댁으로 천천히 걸어들어가시는것이였다. 어머님께서 계시지 않는 장례행렬은 한산도 하였다. 무송의 산하에 차고도 넘치는 슬픔과 비장한 애도의 정을 한가슴으로 고즈넉이 받아안기에는 김성주동지의 나이가 너무도 어리였다. 자신의 한몸에 실리는 그 과중한 비감으로 하여 그이께서는 몸을 지탱하시기조차 어려웠다. 장례행렬은 어느덧 동문앞에 다달았다. 동문에서 안도로 가는 길을 한참 따라가다가 행렬선두가 양지촌으로 가는 어김길에 들어설락말락할무렵 군중의 인총을 헤집으며 몸집이 거쿨진 사나이 하나가 갑작스레 나타났다. 지난해 3월 림강에서부터 무송까지 김성주동지일가를 말파리에 태워 모셔오던 장철하중대의 독립군대원 공영이였다. 방금 상해에서 무기공작을 마치고 돌아오는 그길로 그는 《무림의원》댁에도 거치지 않고 곧장 양지촌으로 찾아오는길이였다. 행렬선봉에 허둥지둥 다달은 그는 두팔을 벌리고 대뜸 령구를 막아섰다. 《못가십니다! 못가십니다! 우리를 둬두고 어디로 가십니까?》 그의 그 통절한 웨침소리는 군중의 비통한 마음을 더 걷잡을수 없게 흔들어놓았다. 량세봉이 상여채를 붙잡고 한참동안 소리를 내여 흐느껴울었다. 《평양에서 그 험한 감옥생활도 용케 이겨내시고, 포평에서 왜경들의 손에 붙잡혔다가 탈출하시던 지난해 겨울에도 그토록 어려운 경난을 끝끝내 이겨내시더니 어찌된 일입니까? 남의 병은 그렇게도 잘 고쳐주시던분이 당신의 병에는 왜 그리도 무심하셨습니까?… 김선생, 용서하십시오. 우리가 선생을 잘 모시지 못했습니다. 선생건강을 너무 돌보아드리지 못했습니다. 오선생, 김총관, 장중대장, 그렇지 않소?》 량세봉의 고동색얼굴은 눈물로 뒤범벅이 되였다. 《그렇소. 우리가 잘 모시지 못했소.》 오동진이 상여를 멘채 울음을 울듯 부르짖었다. 곡성은 행길 량옆에 늘어선 군중의 물결을 타고 다시 양지촌쪽으로 퍼져갔다. 《선생님!》 《아버지!…》 《형님!…》 크고작은 여러가지 목소리들이 하나의 비통한 화음을 이루며 무변광대한 6월의 하늘끝으로 날아갔다. 그 소리에 대기도 슬픔을 못이겨 떠는것 같았다. 참으로 훌륭하신 아버지, 위대하신 아버지를 잃었다는 상실감이 쿵- 하고 김성주동지의 가슴을 울리였다. 상복을 입은 조객들, 보통 나들이옷을 입은 남정들과 아낙네들, 상투를 튼 로인들과 맨발을 벗은 아이들… 령구를 따라가며 다문 한발자욱이라도 더 김형직선생님을 바래드리려고 애쓰는 그들모두의 운명은 선생님의 성함과 빠짐없이 잇닿아있다. 이 세상의 그 어느 렬사도 겪어보지 못한 피어린 로고를 아버님께서는 인민과 바꾸시였다. 그 인민을 계몽시키고, 투쟁속에서 닥달하여 고스란히 아들에게 넘겨주시였다. 그것은 이 세상의 어느 누구도 지니지 못한 김성주동지의 최상의 힘이였고 재부였다. 그것을 마련하려고 아버님께서는 한뉘 가시덤불길을 헤쳐오시였다. 그리고 그 길에서 애석하게도 눈을 감으시였다. 이제 아버님께서는 두번다시 그 인민의 곁으로 돌아오시지 못한다. 추격의 밤 조낟가리속에 아버님을 숨겨드리고 불에 그슬린 감자와 따뜻한 숭늉을 권하던 사람들, 손가락끝이 곪고 이발이 아파나도 제일 먼저 아버님부터 찾아 달려오던 사람들! 집안의 자그마한 다반사도 선생님과 무릎을 마주하고 함께 의논하던 사람들. 그 인민을 두고가는 지도자와 지도자를 잃은 인민의 리별이여서 이 리별은 그렇듯 애끊는것인지도 모른다. 김성주동지께서는 눈을 감으시였다. 귀가 멍멍하게 울리는 곡성도 이제는 먼 하늘에서 울리는듯 그이의 감각에서 멀어져갔다. 귀전에서는 오직 웅웅- 하는 소리만 들릴뿐이였다. 막을길 없는 공허가 재가루처럼 싸늘하게 가슴속에 내려앉았다. 그이께서는 비칠거리며 기계적으로 힘들게 발을 옮겨놓으시였다. 형권삼촌께서 그이를 부축해드리며 무어라고 말씀하시였다. 그렇지만 김성주동지께서는 끝내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 말씀인지 알아듣지 못하시였다. 다만 삼촌의 그 음성때문에 허탈에서 깨여나 온갖 감각을 현실로 몰아오셨을뿐이였다. 그러자 무아몽중에는 느낄수 없었던 예리한 아픔이 심중에 가득 서리였다. 따뜻한 봄날 아버님의 손을 잡고 오르시던 먼 유년시절의 만경봉오솔길이 문득 눈앞에 육박해왔다. 오솔길에서는 훈훈한 땅김이 피여오르고 솔밭우를 날아예는 꾀꼬리들의 그림자가 언뜻거리고있었다. 아버님께서는 아들의 작은 발에 보조를 맞추어 일부러 걸음을 느리게 옮기면서 《셔먼호》를 불태우는데 앞장섰던 증조할아버님의 이야기를 들려주고계시였다. 그때 벌써 어리신 김성주동지의 기억속에는 을지문덕이나 강감찬, 리순신과 같은 이름난 영웅들의 표상이 크게 새겨져있었다. 그이의 마음속에 깊이 자리를 잡기 시작한 애국의 넋은 이처럼 아버님의 심장에 뿌리를 박고있었다. 평양감옥의 면회구앞에서도 아버님께서는 말없는 눈빛으로 아들의 가슴에 이 넋을 심어주시였다. 오를수록 더 울창한 오가산령을 넘으면서도 아들에게 이 조국애를 안겨주시였다. 아들이 가는 앞길에는 언제나 아버님의 사랑이 계시였고 이끄심이 계시였다. 그 사랑, 그 이끄심으로 하여 아들은 이 나라 민중을 알았고 민족을 알았으며 조국을 알게 되였다. 그런데… 소란스러운 시국의 한복판을 선풍처럼 헤치며 달려온 아버님의 줄기찬 발걸음이 그만 여기서 끊어진것이다. (아버지, 왜 온 세상이 이다지도 허전하고 조용한지 모르겠습니다. 아버지의 주위에서 소용돌이치던 생활은 다 어디로 흩어져갔을가요? 아버지의 사랑만을 줄곧 받으며 자라온 이 아들이 그 사랑이 다시 그리워날 때 슬퍼서 어찌할가요? 어쩌면 그렇게도 일찍 가십니까? 아버지…) 김성주동지께서는 이 세상에 계시지 않는 아버님과 줄창 끝없는 마음속 대화를 이어가시였다. 장례행렬은 어느덧 양지촌 산등성이에 다달았다. 상여가 지나갈 길에 누구인가 길다란 베필을 가져다 펴놓았다. 림강의 로경두였다. 대여섯필 되는 베천을 그렇게 펴놓고나서 그는 무릎을 꿇고 뒤따라오는 상여를 향해 말을 하였다. 《생전에 우리때문에 속도 많이 태우시고 걸음도 많이 걸으셨지요. 남들이 다 큰길로 걸어갈 때에두 선생께서만은 가시밭으로 다니시였는데 오늘만은 부디 이 길로 걸어가십시오!》 로경두는 살아있는 사람에게라도 하듯 그렇게 절절히 이 말을 뇌이였는데 그 거동과 어조가 하도 엄숙하고 진중하여서 사람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김성주동지께서는 정신을 수습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새삼스럽게 온 세계가 자신의 두 어깨에 실리는듯한 감각을 느끼시였다. 아버님께서 남기고 가신 모든것이 자신의 두 어깨우에 실리였음을 체감하시는것이였다. (저 언덕을 넘어서면 장차 무엇이 나를 기다리고있을가?) 김성주동지께서는 양지촌산등으로 끝없이 비껴간 6월의 하늘을 바라보며 량손을 옆으로 뻗치여 목놓아 우는 두 아우의 손을 꼭 잡아주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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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이 기울무렵 《무림의원》댁앞에는 소발구 한대가 와닿았다. 발구를 몰고온 사람은 예순에 가까운 로파였다. 행인들과 차마부들에게 방해되지 않게 발구를 행길 한옆에 치우쳐세운 로파는 《무림의원》이라고 쓴 간판을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여기에 김의원댁이 어디 있는가?》고 묻는것이였다. 지나가던 이웃의 로인이 《무림의원》집은 있으나 김의원은 며칠전에 별세하시였다고 뚱겨주었다. 《아이구, 이런 변고라구야!》 로파는 맥이 탁 꺾이여 길섶에 펄썩 주저앉았다. 늙은이의 충혈된 눈에는 절망이 얼찐거리였다. 소고삐를 쥔 로파의 손은 중풍이라도 만난듯이 후들렁후들렁 떨리였다. 남을송이네 집에 가셨던 김성주동지께서 집으로 돌아오신것은 바로 이무렵이였다. 맥을 놓고 행길옆에 퍼더버리고 앉아있는 로파의 행색이 김성주동지의 발길을 잡아끌었다. 그이께서는 로파의 앉은 키에 맞추어 허리를 굽히시였다. 《할머니, 어디서 오셨습니까?》 《저기 드릅골에서 오네. 의원을 찾는데 의원이 돌아가셨다는구만. 어이구, 기막혀서…》 로파는 뿌드득뿌드득하는 뼈마디소리를 내며 간신히 일어나 어정어정 발구앞으로 다가갔다. 《어쩌겠니, 의원이 없다는구나. 후유!…》 늙은이의 입에서 새여나오는 한숨이였다. 로파는 둥우리안을 향해 알아듣지 못할 말을 몇마디 중얼거리다가 발구를 등지고 돌아서서 팔소매로 눈굽을 꾹꾹 찍었다. 그리고는 바람 들어갈 틈새도 없이 꽁꽁 여며진 이불깃을 다심하게 잔손질하였다. 이 후끈거리는 염열에 이불깃을 여미는것으로 미루어 로파의 눈물을 짜내고있는 환자는 분명 열병에 걸렸거나 오한에 시달리고있음에 틀림없었다. 누르끼레한 이불깃옆에 밀랍같이 창백한 까까중이소년의 얼굴이 드러났다. 김성주동지께서는 전에 아버님께서 하시던것처럼 이불깃을 살그머니 들춰올리고 소년의 이마를 짚어보시였다. 손에 불덩이가 와닿는것 같으시였다. 팔도 역시 불덩어리같았다. 오랜 시간을 고열에 부대껴온 흔적이 말라터진 입술과 뼈만 남은 앙상한 볼과 채 감겨지지 못한 눈과 머리털 사이사이에서 구슬처럼 번쩍이는 땀방울들에 맺혀있었다. 이만저만한 중병이 아닌것 같았다. 《모처럼 찾아오셨는데 참 안됐습니다.》 김성주동지께서는 겸허하게 량해를 구하고나서 로파에게 물으시였다. 《손자입니까?》 《손잘세.》 《어떻게 앓다가 왔습니까?》 《열두 나구 기침두 나구 오한두 나구… 벌써 이틀째나 입에 낟알 한알 넣지 못했다우.》 환자는 로파의 그 말을 부언이라도 하듯이 캑-하고 기침을 내깇는다. 그다음은 한동안 줄기침이 소년을 괴롭히였다. 기침이 터져나올 때마다 무슨 타박을 받는것처럼 몸을 흠칠흠칠 떨던 로파는 사색이 되여 둥우리곁으로 다가갔다. 김성주동지께서는 불현듯 아버님이 그리워지시였다. 이런 때 만약 아버님께서 계신다면 얼마나 좋으랴. 급한 환자가 생기면 자신의 병도 돌보지 않고 헌헌히 맞아들이여 온갖 지성을 다 쏟아부으시던 아버님의 모습이 눈에 선하시였다. 그러나 이제는 환자들의 상처를 부드럽게 쓸어보시던 아버님의 손길도 두번다시 기대할수 없고 신약이 모자라면 동약을 달여다먹이면서까지 무가로 질병을 뿌리빼주며 환자들을 격려해주고 그들의 건강을 소생시켜주시던 아버님의 은정도 두번다시 기대할수 없다. 김성주동지께서는 지금 자신께서 친히 청진기를 들고 소년의 병도 타진해보고 주사도 놓고싶으시였으나 그렇게 할수 없는 안타까움에 잠겨 발구앞에 망연히 서계시였다. 《할머니, 미안하지만 여기서 잠간만 기다려주십시오. 약장에 해열제라도 좀 없는지 찾아보고 나오겠습니다.》 그이께서는 마침내 약방으로 들어가시였다. 아버님의 손길이 미치지 못한 약장에는 약이라는것이 얼마 없었다. 제일 흔하게 써오던 해열제조차 구경할수 없었다. 형권삼촌께서 계시면 무슨 도움이 될 방도라도 의논할수 있으련만 일이 안될 때라 삼촌께서는 외출하고 계시지 않았다. 어머님께서도 빨래터에 가시였으니 다른 도리가 없었다. (아버지가 안계신다고 하여 《무림의원》을 믿고 삼십리를 찾아온 저 할머니를 속수무책으로 대해야 한단말인가?) 난생처음 이런 정황에 부닥쳐보시는 김성주동지께서는 아버님의 상실로부터 오는 또 한차례의 타격에 쓰린 가슴을 부여안고 처절한 기분으로 방안을 나서시였다. 《할머니, 정말 안되였습니다. 약장도 비였구만요.》 《학생, 말만 들어두 고맙수. 제 손자 병만 중하다고 상가집도 몰라본 이 노데기가 로망을 했지. 에이구, 그 용한 의원이 그렇게 갑자기 세상을 떠나시다니!》 로파의 말에는 마디마디마다 눈물이 배여있었다. 소발구는 천천히 《무림의원》댁앞을 떠났다. 한손에는 고삐를 쥐고 다른 한손에는 회초리를 든 로파의 꺼꺼부정한 모습이 그 어떤 비참한 수난의 상징처럼 소남문거리를 느릿느릿 지나간다. 발구채밑에서는 먼지가 뽀얗게 이는데 그 먼지속에서 캑캑거리는 기침소리가 그치지 않고 터져올랐다. (저 발구를 그대로 돌려보내야 하는가?) 김성주동지께서는 몸부림치고싶도록 격렬한 감정에 사로잡혀 멀어져가는 발구를 그냥 바라보시였다. 그이의 마음속에서는 단순한 동정이나 자비를 초월하는 신성한 인간애가 머리를 쳐들고 일어섰다. (아니다. 그대로 돌려보낼수는 없다!) 그이께서는 네거리를 돌아 대남문거리에 있는 적성광약국으로 뛰여가시였다. 아버님과 친숙하게 지내던 약국이였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약국출입문에는 쇠가 잠겨져있었다. 그러는 사이 소발구는 성문쪽으로 멀어져가고있었다. 느리게 발을 옮겨디디는 로파의 손에서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물푸레나무지팽이의 하얀 대가 유난히 시선을 끌었다. 김성주동지께서는 락심하여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오시였다. 위안이 될수 있는 따뜻한 말 한마디도 해주지 못한것이 못내 마음에 걸리시였다. 그이께서는 며칠전까지만 해도 병약한 사람들에게 힘을 주고 희망을 주고 기쁨을 주던 《무림의원》간판앞에서 오래도록 생각에 잠겨 서계시였다. 《왜 그렇게 서있느냐?》 빨래터에서 돌아오시던 강반석어머님께서 머리에 인 함지를 내려놓으며 아드님의 곁으로 다가오시였다. 《어머니, 이제는 저 간판을 떼야 할것 같습니다.》 김성주동지께서는 저으기 괴로우신 음성으로 어머님께 말씀드리시였다. 《방금전에도 드릅골에서 환자가 왔다갔습니다.》 《어떻게 앓는 병자이더냐?》 《고열때문에 끼니도 들지 못한다는 아이였습니다.》 강반석어머님께서는 더 캐여묻지 않으시였다. 아드님의 얼굴빛이 모든것을 죄다 설명해주고있었던것이다. 어머님자신께서도 요 며칠째 아드님께서 방금 겪은 경우들을 몇차례 체험하시였다. 찾아온 병자들을 그대로 되돌려보낼 때 어머님의 마음속에서는 피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리군하였다. 《떼야지, 어쩌겠니. 의원이 없는 집에 간판만 걸어둘수야 없지.》 어머님께서는 조용히 한숨을 내긋고나서 무거운 표정으로 빨래를 널기 시작하시였다. 김성주동지께서는 간판앞으로 다가가시였다. 수만가지 추억을 불러오는 간판이였다. 수많은 환자들이 구원의 표대처럼 이 간판을 바라고 끝없이 찾아왔다. 환자들뿐만이 아니였다. 멀리 국내와 남북만주에서 총이 떨어진 미투리를 끌며 지사들이 이 간판앞으로 모여들었고 가난한 이웃들이 이 집에 찾아와서는 혼담도 꺼내고 옛말도 하고 고생투성이 세상살이도 하소하였다. 김성주동지께서는 간판을 잡아벗기시였다. 그러자 짜릿한 비애가 빡- 하고 가슴을 긁어내리였다. 이제는 뭇나그네들이 이 집이 한때 《무림의원》이였다는것조차 모르게 될수도 있다. 며칠만 더 있으면 《무림의원》이 페업했다는것을 누구나 다 알게 될것이다. 악독한 병마에 육신의 건강이 천만갈래로 찢겨도 사람들은 더는 소남문거리로 찾아오지 않을것이다. 독립운동자들도 마찬가지이다. 생활의 구심점, 투쟁의 구심점, 신념의 구심점이 되여 애국지사들과 환자들과 이웃들로 그렇게 붐비고 번창하던 모습은 두번다시 이 집에서 찾아볼수 없을것이다. 자기자신과 자기가 사는 시대와 자기 고국을 위한 싸움에서 사람들은 중심을 잃어버리였다. 아버님께서는 수난많은 이 시대와 이 민중을 위해 많은것을 구상하고 많은것을 실현하시였으나 역시 많은것을 숙제로 남겨둔채 서거하시였다. 조선의 독립을 조선사람자신의 힘에 의거하여 수행해야 한다는 확고한 자주적립장은 아버님의 신념에서 태여난것이였다. 인민의 거룩한 피땀이 독립을 구걸하는 허무맹랑한 외교무대에서 제국주의강도배들의 창자를 적셔주는 술이나 기름진 안주로 변하고 외세의존의 독소가 곰팽이처럼 많은 사람들의 의식을 좀먹고있던 때 아버님께서는 이 립장을 기발로 추켜드시였다. 그 기발밑에 전 민족의 단합이라는 기발이 또한 솟아올랐다. 아버님의 품에서는 예수를 믿는 신자나 교도들이 《하느님》을 믿어도 조선의 하늘을 믿었다. 치과의나 장사군도 시대의 선각자가 되였다. 불모의 땅과도 같은 1920년대의 토양우에는 아버님께서 가꾸신 불씨들이 이처럼 수없이 심어졌다. 아버님께서는 미구에 시작될 공산주의혁명을 위해 그 불씨들을 그토록 애지중지 마련하신것이다. 참으로 아버님께서 이 시대우에 쌓아올리신 업적은 크고도 거창한것이였다. 하지만 조선독립이나 무산혁명이라는 그 웅장한 설계는 의연히 미완성으로 남아있다. 아버님께서는 《나는 너희들을 믿는다!》고 하시며 실현되지 못한 그 리념을 자제분들에게 넘겨주시였다. (그래, 그 모든것이 이제는 우리모두의 어깨우에 실려있단말인가.) 김성주동지께서는 생각하시였다. 무지에서 깨여나지 못한 인민에게 모국어자모를 배워주는 단순한 계몽사업으로부터 조선독립이라는 위업을 거쳐 공산주의건설에로 가는 길은 그 누구도 걸어보지 못한 피어린 로정이다. 하지만 김성주동지께서는 이 길을 걸으셔야만하였다. 이것은 시대가 부르는 길, 겨레가 원하는 길이였으며 부모님들의 최대의 소망이였고 그이자신께서 품고계시는 간절한 지향이기도 하였다. 아직은 모든것이 죄다 막막하기만하였다. 사방 어디를 둘러보아도 심연같은 어둠과 절벽만이 있을뿐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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