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서《불멸의 력사》 1

        장편소설

 

 

                                     김   정

 

( 제 10 회 )

 

19

 

민족단체련합촉진회가 결성된 때로부터 열달이라는 세월이 흘러갔다. 무송땅에는 또다시 대륙의 무더운 여름이 찾아왔다. 1926년의 다난한 여름이였다. 어둑침침한 비운의 구름장이 머리우에 낮추 떠돌고있었지만 생활의 물레바퀴는 예전대로 태연스레 돌아가고있었다. 이 여름에도 김성주동지께서는 한해전에 편입하신 무송제1소학교에 열심히 다니시였다. 칠골에서도 그렇고 팔도구에서도 그랬지만 여기 새고장에서도 그이께서는 매 학기마다 모범적인 개근생으로 평가받으시였다.

그런데 오늘 김성주동지께서는 처음으로 학교에 가고싶은 욕망을 잃으시였다. 공부도 웃음도 놀음도 다 싫으시였다. 무서운 허탈상태가 온 심신에 엄습하였다. 단 한가지 남은 욕망이란 온종일 집에 남아 아버님곁에 있고싶은 충동뿐이였다. 이 충동때문에 그이께서는 제정된 등교시간이 다될 때까지도 방안에서 서성거리시였다.

그러나 강직하신 아버님께서는 자신때문에 아들이 학교에 가지 않는것을 허락하시지 않았다.

김성주동지께서는 눈물을 머금고 밖에 나서시였다.

새 계절에 자리를 내여준 봄이 뒤를 돌아보며 시샘을 느낄 정도로 아름다운 초여름의 아침이였다.

하지만 김성주동지께서는 그 아름다움을 느끼시지 못하였다. 하늘은 끝없이 푸르러도 그이의 마음은 흐리여있었고 새들은 정열에 넘쳐 노래를 불러도 그이의 가슴속에서는 비애의 눈물을 가셔줄 노래가 흐르지 않았다.

보름전까지만 해도 아버님께서는 병석에서 백산학교 학생들을 위한 강의안을 쓰시였었다.

그것은 새 계절을 향해 줄달음치던 5월하순의 어느 화창한 날이였다. 봄의 향연은 벌써 몇달째 병마에 시달리는 《무림의원》댁에까지는 닿지 못하였다. 다만 김성주동지께서 공들여 꺾어다 꽂으신 몇가지의 들꽃이 김형직선생님의 머리맡에서 삶을 찬미하는 향기를 내풍기고있을뿐이였다. 꽃잎들이 선생님의 이마에 거의 닿을듯이 꽃병은 가까이도 놓여있었다.

그 꽃병옆에서 《10월혁명과 조선》이라는 제목의 강의안이 완성되여가고있었다.

김형직선생님께서 부르시면 김성주동지께서 받아쓰시였다.

《…만국의 무산자들은 누구나 다 로씨야의 10월혁명을 지지하고있다. 그것은 이 혁명이 배고픈 사람들에게 빵을 주고 집없는 사람들에게 집을 주고 밭갈이하는 농민들에게 땅을 주는 혁명이기때문이며 로동자, 농민들을 짐승처럼 부려먹던 자본가, 지주놈들을 없애버린 혁명이기때문이다. 한마디로 말하여 사람이 사람답게 살도록 만들어준 혁명이기때문이다. 로씨야에서는 오직 일하는 사람들만이 빵을 먹을 권리를 가지고있다.…》

김형직선생님께서는 여기까지 부르시고나서 잠시 땀을 씻으시였다.

아버님의 소모된 정력과 건강이 그 땀방울에 맺혀 기수없이 떨어질 때 살을 저미는것 같은 아픔이 김성주동지의 가슴에 실려들었다.

그이께서는 먹즙에 펜대를 댄채 애원에 찬 눈길로 아버님을 바라보시였다.

《아버지, 그만… 쉬십시오. 숨결이 좋지 않습니다.》

《괜찮다. 그래도 어제보다는 한결 숨쉬기가 헐하다.》

《아버지, 오늘 하루만이라도 쉬였다가 씁시다.》

《내 걱정은 말고 어서 쓰거라.》

김형직선생님께서는 초들초들 말라터진 입술을 힘겹게 추기시였다.

《…로씨야에서 레닌에 의하여 10월혁명이라는 천지개벽을 낳은 공산주의 새 사조는 우리 나라에도 급속히 전파되고있다. 밭가는 농민이 땅의 주인이 되고 마치를 든 로동자가 공장의 주인이 되며 근로하는 민중이 사회의 주인이 되는 그러한 사회를 싫다고 할 사람은 지주, 자본가들밖에 없다. 우리도 로씨야무산혁명의 경험과 교훈을 살려 일제를 하루속히 타도하고 근로하는 인민이 잘사는 새 나라를 세워야 한다.…》

선생님께서는 아드님의 얼굴에서 피여오르는 홍조를 주의깊이 읽으시였다.

《문맥이 잘 통하지 않느냐?》

《아니, 잘 통합니다.》

《그럼 왜 웃으냐?》

《오동진선생님께서 하시던 말씀이 문득 생각나서 웃었습니다.》

《응, 한양성에서 떵- 하고 치면 온 삼천리가 다 듣는다는 그 종이야기말이냐?》

《예, 그 이야기가 자꾸 생각납니다.》

김형직선생님께서는 이불한끝을 아래로 얼마쯤 밀어내리고 상반신을 벽에 기대시였다.

《얼마나 속이 타면 오선생이 그런 생각을 다 하였겠느냐. 그것은 진리를 갈망하는 이 시대의 몸부림이라는걸 알아야 한다. 인민에게 다 통하는 사상이 바로 진리가 아니겠느냐. 레닌의 진리는 로씨야무산자들의 구미에 맞았기때문에 10월의 포성을 낳았다. 그렇다면 삼천리를 들어일굴수 있는 진리란 어떤것이겠느냐?》

《조선사람의 구미에 맞는 진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 조선사람의 구미에 맞는 진리가 바로 그런 진리이다. 레닌은 맑스의 사상을 발전시켜가지고 로씨야의 구미에 맞는 진리를 만들어냈다. 우리는 조선의 구미에 맞는 공산주의진리를 만들어내야 한다!》

아버님께서는 그날 일생을 두고 잊을수 없는 말씀을 많이 하시였는데 그 말씀의 한마디한마디에 첨가된 억양과 아버님의 얼굴에 떠오르던 표정의 미세한 변화와 눈섭의 움직임들은 지금도 김성주동지의 기억속에 생생하게 살아있었다.

돌이켜보면 그래도 그날은 행복한 날이였다. 그날까지만 해도 아버님께서는 자신의 사색을 강의안으로 남길만한 정신적인 여유와 기력을 보존하고계시였다.

그러나 보름이 지난 오늘 그것은 도저히 회복할수 없는 과거로 되여버리였다. 요 며칠사이 아버님의 병환이 몹시 악화되였던것이다.

1920년대의 초엽을 피로 물들인 반일항전의 교훈우에 새 사조를 태우고 민족해방투쟁의 방향타를 민족주의운동으로부터 공산주의운동에로 확고히 전환시키기 위해 그 어느때보다도 더 많은 길을 걷고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더 많은 말씀을 하셔야 할 이해 봄에 선생님께서는 가슴아프게도 침상에 누워계시는 몸이 되였다.

무정한 봄이였다. 봄은 자기의 풍만한 즙액으로 만물을 소생시키고 살찌우기 시작했건만 그렇게도 완강한 의지와 정력을 뿜어주던 선생님의 건강만은 도로 회복시켜드리지 못하였다.

온 무송이 숨을 죽이고 《무림의원》댁을 주시하였다. 무송뿐이 아니였다. 길림과 상해, 안도와 화전 그리고 소남문거리로부터 수백수천리 떨어진 조국의 방방곡곡에서 선생님의 건강을 우려하는 수많은 마음들이 지성어린 인사와 약재와 위문편지들을 보내여왔다. 《무림의원》댁으로는 사람들이 그칠새없이 찾아왔다. 방문객들은 컴컴한 얼굴빛으로 낯익은 문고리를 조심스레 잡아당기였다. 문병이 끝나면 모자를 푹 내려쓰고 소리없이 댁을 떠나가군 하였다. 민심도 모르고 천심도 모르는 무정한 병마를 저주하며 사람들은 줄달음쳐가는 봄과 이 초여름을 뒤숭숭한 마음으로 지켜보고있었다.

길다란 채수염을 가슴노리에까지 드리운 사춘태교장이 그이의 앞에 소리없이 나타났다.

《아버님 병환이 좀 어떠냐?》

《…》

김성주동지께서는 대답없이 입술을 강무시였다.

《글공부도 사람이 산 다음에 하는것이다. 어서 돌아가 아버님의 병구완을 하도록 하여라.》

교장의 말은 학교로 가야 한다고 타이르시던 아버님의 말씀만큼 충격이 컸다.

《교장선생님, 고맙습니다!》

김성주동지께서는 학교를 떠나 한달음에 집근처까지 오시였다.

먼발치에서 걸음을 멈추고 낯익은 창문에 눈을 주시였다. 어제까지만 해도 그 창문가에서는 순탄하지는 못하나 정열에 끓는 아버님의 말소리가 새여나왔었다.

어느날 밤이 깊었을 때 아버님께서는 병시중을 들고계시는 그이를 옆으로 부르시였다.

《성주야, 너 화전에 가있는 친구들한테 이따금씩 편지를 보내느냐?》

화제는 전혀 예상치 않았던 곬으로 흘러갔다.

김성주동지께서는 그런 질문을 받자 어쩐지 아버님의 마음속에 약간의 여유가 생긴것 같은 착각을 하시였다. 그리고 그런 착각으로 하여 자신의 팽팽하던 마음도 좀 부드러워지는것을 느끼시였다.

《아버지, 편지는 종종 합니다. 닷새전에도 창걸이와 무성이한테 이고장 소식을 알려주었습니다.》

《음, 잘했다. 창걸이나 무성이는 다 흔치 않은 청년들이더라. 멀리 떨어져있을 때일수록 동무들을 더 사랑하고 중하게 여길줄 알아야 한다. 혁명을 하는데서 제일 중요한것은 좋은 동지를 얻는것이다. 동지만 있으면 세상에 못해낼것이 없다. 일단 동지를 얻으면 생사를 같이해야 한다. 동지를 위해 죽을수 있는 사람만이 진정한 동지를 얻을수 있다.》

김성주동지의 가슴속에서는 뜨거운 격정이 사품쳐올랐다.

아버님의 말씀은 결코 마음의 여유가 생긴데서 온 평온한 가르치심이 아니였다. 아버님께서는 자신의 미래가 초불처럼 가물거리는 이 막다른 순간에조차 불같은 한생과 바꾸시는 귀중한 교훈의 말씀을 아들에게 해주시는것이였다.

생의 총화우에서 무게있게 울리는 그 말씀들은 김성주동지의 뇌리에 인상깊이 아로새겨졌다. 이제 다시 아버님의 곁에 고개를 숙이고 앉아 한마디한마디 피로써 심어주시는듯한 그 말씀들에 귀를 기울일수 있는 행복한 순간이 찾아온다면 얼마나 좋으랴!

밤새 아버님의 병세가 급격히 악화되였다. 오랜 시간 아버님께서는 혼수상태에 빠지시였다. 모진 고비가 아찔한 령마루처럼 아버님의 앞을 막아섰다.

자그마한 약보퉁이를 꿍져쥐고 뜨락에 들어서시는 형권삼촌의 축 처진 어깨가 바라보이였다. 삼촌께서는 문고리를 잡은채 뜨락에 앉아있는 막내동생을 내려다보신다.

나무꼬챙이를 들고 땅바닥에 무슨 금을 긋고있는 막내동생의 모습에는 무서리가 내리였다. 몇달째 장난과 담을 쌓고있는 막내동생이다. 이마적에는 웃음이라는것과도 결별하였다. 보름달처럼 환하던 그 얼굴이 어쩌면 저다지도 컴컴해질수 있단말인가.

김성주동지의 눈에는 우물가에 계시는 어머님의 모습도 비쳐들었다. 드레박을 넣은것이 언제인지 어머님께서는 그 드레박을 꺼내실념도 없이 점도록 우물속만 들여다보시였다. 우물밑에 떨어지는 방울방울의 비애가 그이의 눈앞에 금시 보이는듯하였다.

천근의 무게를 가진 눈물방울이 일으키는 우물속 파문우에는 아버님과 더불어 천만가지 풍상고초를 다 겪어오신 어머님의 한생이 비껴 출렁거릴것이다. 이제 어머님께서는 물이 아니라 자신께서 그 물우에 뿌리신 비애를 퍼이고 우물가를 떠나실것이다.

아낙네들의 기척을 등뒤에 느낀 어머님께서는 옷고름으로 급히 눈구석을 찍고는 드레박을 끌어올리시였다.

참새들이 지붕꼭대기에서 귀청이 따갑게 재잘거리고있었다.

물동이를 내려놓은 어머님께서 《후여!》, 《후여!》 소리도 못지르고 강다짐으로 그 새들을 쫓고계시였다.

문병을 왔다가 돌아가는 남태겸이 어머님을 도와 자그마한 사금파리같은것을 지붕꼭대기에 올려던지였다. 그러자 새들은 좀전보다 더 떠들썩 고아대며 어디론가 날아가버리였다.

남태겸은 뜨락에 들어서시는 김성주동지를 보자 그이의 두손을 꽉 움켜잡았다.

《성주, 오늘은 어데든지 가지 말고 아버지곁에…》

그는 더 말을 잇지 못하고 엄지손가락으로 눈굽을 이리저리 씻다가 대남문쪽으로 휘청휘청 걸어갔다.

마당가에 걸어놓은 빨래줄 그림자가 아버님께서 계시는 방 창문을 반나마 그늘속에 덮어버리였다.

김성주동지께서는 빨래줄우의 옷가지들을 마당한끝으로 멀찌감치 밀어버린 다음 퇴지우에 방쪽으로 향하게 놓은 아버님의 신발코숭이를 거리쪽으로 돌려놓으시였다. 몇달전까지만 해도 광활한 만주산야와 조국의 방방곡곡을 주름잡듯 밟고다니시던 신발이였다. 바닥이 해지면 고무로 덧창을 해붙이면서까지 겨레에게로 향한 그 의로운 걸음을 잠시도 중단하지 않고 이어가시던 신발!

그 신발을 신고 아버님께서는 왜놈을 치던 화승대로 산짐승잡이에 여생을 맡기고 사노라는 산전막의 포수한테도 찾아가시였고 페쇄된 교리의 울타리속에서 《하느님》을 우러러 래세의 복락을 애걸하는 목사한테도 찾아가시였으며 삼대를 두고 반일을 해도 《왜멸복국》의 뜻을 이루지 못했다는 독립군의 두령한테도 찾아가시였다. 연포리의 뾰족봉과 가둑령의 김씨로인네 조낟가리를 거쳐 압록강과 만강의 그 아슬아슬한 고비를 헤치며 혹한에 발을 얼구던 그 나날에도 아버님께서는 자신께 천분처럼 차례진 이 신을 신고 사선을 넘나드시였다. 한생을 혁명에 바쳐오신 대가로 아버님께서는 불치의 병을 얻고 병석에 매인 몸이 되시였지만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근로하는 인민을 자신의 품속에 안으시였다. 혁명의 토양우에 인민을 키우고 가꾸며 이 세기의 20년대를 줄기차게 주름잡아나가시던 아버님의 발걸음이 더는 움직이지 못하고 여기 소남문거리에서 영영 멈춰섰다.

이제는 한자리에 놓인채 도무지 움직여질줄 모르는 신발이였기에 그것은 더욱 가슴미여지는 아픔을 자아냈다. 그래서 김성주동지께서는 아버님의 활동이 왕성하시던 이전시절의 모양 그대로 신발을 돌려놓으신것이다.

《너는 왜 상기도 학교에 가지 않느냐?》

등뒤에서 어머님의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엄한 음성이였다.

김성주동지께서는 아무 대답도 없이 조용히 어머님한테로 몸을 돌리시였다.

물동이를 인 어머님께서 아들의 기색을 지켜보고계시였다. 동이에서 흘러내린 물방울이 잔주름이 잡힌 어머님의 이마밑으로 떨어졌다.

《남자가 그렇게 마음이 약해서는 못쓴다. 아버지걱정은 말고 어서 학교에 가거라.》

어머님의 음성은 여전히 엄한 그대로였다. 슬픔에 눌려 약해지려는 아들의 마음을 힘있게 부축해주시는 어머님, 깊고깊은 그 가슴속에 한동이의 물보다 더 많은 피눈물을 담고계실 어머님이시였다.

김성주동지께서는 말없이 뜨락을 떠나시였다.

 

×

 

가파로운 준령을 한치한치 톺아오르는것 같은 숨가쁜 반나절이 정적속에 흘러갔다.

김형직선생님께서는 오직 앞날에 대해서만 생각하시였다. 선생님께서는 마치 그렇게 하는것으로써 병마로 하여 더는 걸어갈수 없게 된 생의 마지막공백을 죄다 메꾸시려는것 같았다. 서른두해동안 쌓이고쌓인 모든 념원과 기대들이 하나의 꽃동산으로 변화되여 그이의 상상속에 솟아올랐다. 그것은 지주도 없고 자본가도 없고 왜놈도 없는 자유의 조선이였다. 그것은 너무나도 먼 미래였다.

선생님께서는 좀더 가까운 미래를 상상해보시고싶었다. 그것은 자신께서 계시지 않을 미래였다.

(나는 부모님의 슬하에서 서른두해를 살았지만 성주는 열다섯살에 아버지를 잃는다. 사나이 열다섯이면 적은 나이가 아니다. 그렇지만 많은 나이도 아니다. 자기 한몸, 자기 집 하나만을 돌보는데 전념한다면 물론 그 나이에 제살림을 꾸리고 편안히 살수도 있을것이다. 그러나 나라가 도탄에 빠지고 백성이 피를 흘리고있는데 조선의 사나이로 태여나 어찌 일신의 안락만 추구하는 용렬한 인간으로 살겠는가!)

김형직선생님께서는 아들들이 못견디게 보고싶으시였다.

언제 한번 마음놓고 따뜻이 애무해주신적이 있는것 같지 않은 아들들이시였다. 상봉과 리별의 그칠줄 모르는 순환속에서 아버지에 대한 남다른 그리움을 안고 자라온 아들들이였다.

돌이켜보면 그래도 태묻은 고향 만경대시절이 제일 인상이 깊으시였다. 그때는 철모르는 증손이의 머리맡에서 자장가도 불러주었고 풀메뚜기도 만들어주었다. 증손이가 좀더 컸을 때는 만경봉에 데리고가 랭수마찰도 시키고 리순신이며 을지문덕이며 강감찬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평양감옥 철창앞에서 이루어진 맏아드님과의 상봉은 더더구나 잊으실수 없었다. 쇠살창으로 막혀진 감옥의 그 음침한 면회구앞에서 아들에게 주려던 아버지의 애무는 실현되지 않았다. 그러나 부자간의 육신을 갈라놓은 그 엄엄한 철의 장벽은 오히려 아버지에 대한 아들의 그리움을 더 불태워주었을뿐이다. 그날 어린 아들의 눈동자에 처음으로 비끼던 이 세계의 불합리에 대한 증오를 읽으며 선생님께서는 얼마나 대견해하시였던가.…

그 다음은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객지생활이 아들들에게 주실수 있었던 시간의 많은 분량을 앗아갔다.

무송에서 두번째로 맞은 1926년의 이 봄처럼 선생님께서 오래도록 댁에 머물러계신적은 없었다. 그러나 아드님들에게 많은 사랑을 주실수 있은 그 반년은 뜨거운 자애로 불타고있는 선생님의 육체를 악독한 병마로 덮쳤다.

못다 주신 사랑을 영원의 빚으로 남기고 가게 될 이 시각 선생님께서는 단 한번만이라도 더 오래 자신의 몸가까이에 아드님들을 데려다 앉히고싶은 누를수 없는 욕망을 느끼시였다.

선생님의 부르튼 입술사이로는 어느덧 노래가 저절로 흘러나왔다.

 

조선의 아가야

우리 아가야

 

먼 지평선끝에서 아물거리는 아지랑이와도 같은 추억이 그 노래에 실려 아득한 옛시절로 훨훨 날아갔다.

강보에 싸인 아들을 굽어보며 손수 지은 《자장가》를 불러주던 고향집정경이 눈앞에 선하다.

봄 내내 꽃향기속에 파묻혀있던 1912년의 고향집.

그해따라 집앞에는 복숭아꽃이 물커지게도 피였었다.

낮이면 만경봉의 꾀꼬리들이 그 꽃속에 날아와 노래를 불렀다. 그 소리는 늘 어린 아들을 유혹하였다. 아들은 새소리가 들려오는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요람밖으로 팔을 내뻗치였다. 꾀꼬리의 은방울소리로 꽉 찬 이 세계를 한시바삐 만져보고싶은 욕망이 아들의 눈망울에 그득차있었다.

아버지는 아들의 그 모습이 하도 사랑스러워 요람가를 떠나지 못했다. 아들의 작고 하얀 손등에 입술을 댈 때면 오만가지 시름이 다 잊어지고 마음속이 깨끗이 정화되였다.

몇달며칠씩 쌓인 피곤을 아버지는 그렇게 풀었다.

아들의 그 녹신녹신한 손을 입술에 댈 때마다 아버지는 이 나라 수많은 아이들의 미래앞에서 자신이 지닌 성스러운 의무를 느끼였으며 그들의 미래를 위한 위업에 한생을 다 바칠것을 다짐하였다.

그런데 오늘은 그 위업을 열다섯살 어린 아들의 두어깨에 떠맡기고 가지 않으면 안된다.

김형직선생님께서는 눈정기를 모으고 사색을 집중하시였다.

다시 만경대고향집이 떠올랐다.

문을 열면 훈훈한 마파람을 타고 솜털같은 버들꽃들이 날아와 증손이의 볼을 간지럽혔다. 그러면 증손이는 포동포동한 손을 가까스로 뻗치여 장난꾸러기같은 그 버들꽃을 줌안에 잡아쥐려고 애썼다. 신기한 그 꽃솜을 손에 움켜쥐고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그리고는 그것이 보잘것없는 검부레기이라기도 한듯 너그럽게 놓아주었다.

선생님의 추억은 어째서인지 이 회상앞에서 오래동안 맴돌이쳤다.

무엇때문에 이 추억이 다른 모든 회상들을 밀어버리며 그렇게도 감회깊은 《자장가》의 가락을 울려주었는지 그것은 선생님자신으로서도 잘 알수 없으시였다. 사랑하는 그 아들을 한가슴에 부둥켜안으려는듯 선생님께서는 두팔을 이불우에 올리고 벽에 등을 기대시였다.

(성주야, 네가 보고싶구나. 어디 가서 상기 안오느냐? 이제는 어데든지 가지 말고 내곁에 있어다구!)

선생님의 말라터진 입에서는 또다시 노래소리가 흘러나왔다.

 

조선의 아가야

우리 아가야

 

그것은 노래라기보다도 거의 입속말에 가까운것이였다. 심장의 피를 깡그리 연소시켜 한마디한마디의 가락으로 만드는것 같은 그런 노래였다.

아득한 옛시절의 추억을 몰아오는 그 선률이 귀전에 닿는 순간 강반석어머님께서는 그만 더 참지 못하고 두손으로 얼굴을 감싸쥐시였다. 노래는 그렇게도 어머님의 가슴을 아프게 후벼내렸던것이다.

김형직선생님께서는 노래를 그치고 눈굽의 물기를 씻으며 안해를 돌아보시였다.

《오늘은 어쩐지 그 노래를 자꾸 부르고싶소.》

선생님께서는 강반석어머님께서 따라드리는 놋보시기의 꿀물을 들고나서 조용히 물으시였다.

《여보, 성주는 아직 안왔소?》

《안왔어요.》

《점심시간이 다 됐는데 왜 아직 안올가?… 철주는 어디 갔소?》

《뒤뜰에서 지팽이를 깎고있어요. 아버지가 일어나면 짚고 다닐 지팽이라고 하면서…》

김형직선생님께서는 쓸쓸히 미소하고나서 눈을 감으시였다.

푹 꺼져들어간 눈확속에서 이름할수 없는 아픔이 알릴락말락 굼실거리였다.

(녀석두, 부질없는짓은…)

선생님께서는 막내아들을 부르시였다.

두눈이 불안으로 한껏 커진 막내아들이 주춤주춤 방안에 들어섰다.

아무 탈도 없는 바지괴춤과 허리띠를 공연히 만지작거리며 그는 아버님의 해쓱한 얼굴을 불안스레 바라보았다.

《어째서 요즘은 네 노래를 통 들을수 없니?》

《…》

《어서 한마디 불러라. 아버진 네 노래를 듣는게 제일 좋다.》

막내아들은 아버님의 부탁에 선선히 응하여 노래를 부르던 며칠전처럼 입술을 움씰거리였다. 그러나 입에서는 노래가 아니라 울움소리가 왈칵 터져나왔다. 그는 울음을 씹어삼키며 비칠비칠 문밖으로 걸어나갔다.

강반석어머님께서는 김형직선생님께서 보시지 않게 구석으로 돌아앉아 손등으로 눈굽을 몰래 찍으시였다.

여느때없이 소침해지고 겉늙은듯한 안해의 그 모습에 김형직선생님의 눈길은 오래 머물러있었다.

일생동안 진일, 마른일 가리지 않고 일편단심 혁명의 시중을 들어온 성실한 안해였다. 인간에 대한 변치 않는 성실성을 천품으로 타고난것으로 하여 이 세상의 그 누구보다도 많이 배를 곯고 적게 잠을 자고 고생을 많이 해오면서도 얼굴 한번 흐려본적이 없는 청렴하고 순박하고 강의한 안해였다.

새벽이면 시부모들 모르게 사립문밖에 나와 공작지에서 돌아오는 남편을 맞아들이던 안해의 그림자, 이슬에 젖은 신발을 말리느라고 늘 안해가 지켜앉았던 고향집의 부엌아궁, 고향에서 타향으로, 타향에서 다시 이국에로 끝없이 이어지는 고달픈 나날 안해의 등에서 떨어질줄 모르던 무거운 짐짝들이 눈앞에 선하다.

믿는것은 세상에 단 한사람- 일생을 떠맡긴 남편, 그 남편의 념원앞에 자신의 모든것을 고스란히 희생시키며 천만가지 고초도 달게 여겨온 안해.

믿을것이라고는 두주먹밖에 없는 간도의 허허벌판과 세월의 험악한 바람받이에 세 아들의 어머니인 안해를 홀로 남겨두고 가시는 김형직선생님의 가슴은 갈기갈기 찢어지는것 같으시였다.

선생님께서는 강반석어머님의 못박힌 손을 얼마동안 말없이 쓸어보시였다. 혁명의 시중을 들던 쌀함박과 빨래방치와 광솔나무끝에서 거칠어진 수없이 많은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손이였다.

강반석어머님께서는 선생님의 차거운 손에 그 손을 맡기신채 얼굴을 다소곳이 숙이고 앉아계시였다.

《…가난한 시집과 가난한 남편한테 와서 당신이 정말 고생을 많이 했소. 차라리 당신이 남편앞에서 응석을 부리고 투정질을 하는 안해였다면 나는 이렇게까지 가슴이 아프지 않겠소. 당신은 정말 타낼줄 몰랐지. 한마디의 의견이나 나무람도 없이 당신은 일생동안 내 시발을 해왔소. 당신과 같은 충실한 안해의 도움이 없었더면 나는 독립운동에 몸을 바치지 못했을거요. 그리고 이처럼 떳떳한 마음으로 일생을 돌이켜보지도 못할것이요…》

《그런 말씀을 하시면 난 도리여 가슴이 아파요. 내가 더 도와드렸더라면 당신의 병이 이렇게까지…》

백마디의 말보다도 더 절박한 침묵에 시간을 내맡기며 두분께서는 한동안 가빠지는 숨결들을 눅잦히시였다.

《나는 이 세상에 숱한 빚을 남기고 가오…》

잠시후 김형직선생님께서는 다시 말씀을 이으시였다.

《아버지로서 아이들을 돌봐주지 못한 빚, 남편으로서 안해를 잘 돌봐주지 못한 빚, 아들로서 부모에게 효도를 다하지 못한 빚, 의원으로서 환자들을 잘 치료해주지 못한 빚… 빚은 정말 많소. 그렇지만 그 모든 빚보다도 더 큰 빚은 조선에 태여난 혁명가로서 동포들에게 독립된 조선을 안겨주지 못하고 가는 빚이요. 이 빚을 갚으려고 나는 열다섯해동안 싸웠소. 그런데 분하게도 뜻을 이루지 못하고 가오. 내가 갚지 못한 빚은 이제 성주가 갚아야 하오. 성주는 꼭 그 빚을 갚을거요. 나라가 독립되면 당신이 성주를 앞세우고 만경대로 돌아가오. 그날 우리 가정이 행복하게 사는것을 볼수 있게 독립되면 내 무덤을 만경대에다 옮겨주오. 무슨 일이 있어도 성주를 중학까지 보내야 하오. 그리고 성주가 커서 투쟁의 길에 나설 때 이 총을 주도록 하오.》

선생님께서는 베개밑에서 붉은 천으로 감싼 권총 두자루를 꺼내시였다.

《아버지의 뜻을 꼭 잇도록 성주를 키우겠습니다.》

강반석어머님께서는 남편의 간절한 기원이 담긴 두자루의 총을 가슴에 꼭 품어안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씀하시였다.

《그래야 하오. 성주는 그 총으로 꼭 왜놈들에게 벌을 내려야 하오. 당신은 그런 날을 보게 될것이요!》

김성주동지께서는 그때 부엌에 앉아계시였다. 그이께서는 방금전에 양지촌에서 벗겨오신 뽕나무껍질을 불에 태워 아버님의 치료에 쓸 재를 내고계시였다. 아버님의 병환을 돌려세우지 못하시는 절통한 마음을 달래일길이 없어 속절없이 내시는 재였다. 그이께서는 불길이 너울거리는 아궁안을 들여다보며 눈물을 흘리시였다.

평양감옥의 그 험한 옥중고초도 끝끝내 이겨내고 칼날같은 설한풍에 온몸을 얼구던 가둑령의 그 험한 산발이며, 마적들이 우글거리는 만강의 그 무시무시한 밤도 억척스레 이겨오신 아버님의 그 강철같은 몸이 어쩌면 여기서 더 일어서지 못하고 영영 주저앉는단말인가.

그처럼 큰 정력과 사랑을 안고 아버님께서 밟으시고, 바라보시고, 만나시던 그 땅, 그 하늘, 그 겨레를 아버님가까이에 모조리 옮겨다놓고싶으신 소망이 김성주동지의 가슴속에 불을 일구었다.

《성주야, 아버지가 부르신다!》

어머님의 꺼져드는듯한 목소리가 머리우에서 울리였다.

김성주동지께서는 두 아우와 함께 아버님의 방으로 들어가시였다.

《성주야, 문을 좀 열어다구.》

김형직선생님께서는 서녘으로 향한 뙤창을 손짓하시였다.

눈을 시게 하는 광선의 한 뭉테기가 아버님께서 덮고계시는 초록빛 이불의 한 귀퉁이를 강렬한 색조로 물들이고있었다.

김성주동지께서는 뙤창을 여시였다.

파란 하늘이 문밖에 들리고 지붕꼭대기에서 새들이 유난스레 우짖었다.

그이께서는 철주에게 새들을 쫓으라고 눈짓하시였다.

김형직선생님께서는 고개를 가로저으시였다.

《그만둬라. 나는 그 소리가 좋다. 만경대고향집에서도 이맘때면 늘 새들이 울었다. 성주도 생각나겠지?》

《예.》

《고향이 그립구나. 지금쯤은 밀보리가 한창 익어갈텐데… 거기 섰지 말고 이리로 가까이 오너라. 네모양이 요즈음 말이 아니다. 아버지가 앓는다고 너희들까지 끼니를 번져서야 되겠니?》

김성주동지께서는 그저 목이 꽉 잠기여 아무 말씀도 하시지 못하였다.

김형직선생님께서는 뙤창밖의 하늘에서 오래동안 눈길을 떼지 않고 명상에 잠기시였다.

《나는 저 푸른 하늘같이 맑고 깨끗하고 청청하고 무궁한 나라를 조선에 세우고싶었다. 그런 나라를 세우려고 너희들을 잘입히지도, 잘먹이지도 못하면서 오늘까지 싸워왔다.

그러나 독립의 그날은 아직도 멀고 시국은 날이 갈수록 어지러워만지고있다. 어제오늘 세통의 편지를 받았는데 그저 답답한 소식뿐이다. 모두 갈길을 대달라는것이다. 조선은 어떤 길로 가야 하는가고…》

선생님께서는 머리맡에 놓인 석장의 봉투를 아드님앞으로 밀어놓으시였다.

김성주동지께서는 그 봉투들을 받아드신채 아버님의 눈길이 미치는 석양의 하늘을 바라보시였다. 이제는 아버님의 손길이 더는 닿지 못하는 어지럽고 착잡하고 혼란된 시대의 숨막히는 중압이 그이의 한가슴에 무겁게 실리였다.

김형직선생님께서는 점점 호흡이 빨라지시였다.

《이것은 세사람의 물음만이 아닌 온 민족의 물음이고 시대의 물음이고 력사의 물음이다. 너는 반드시 아버지를 대신하여 이 물음에 대답을 주어야 한다. 새로운 넋을 찾고 새로운 해답을 만들어낼 때가 되였다. 너는 네 힘으로 기어이 그것을 찾아야 한다…》

선생님의 말씀은 잠시 중단되였다가 다시 이어졌다.

《나는 뜻을 이루지 못하고 간다. 그러나 너희들을 믿는다. 너희들은 언제든지 나라와 민족의 몸이라는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뼈가 부서지고 몸이 쪼개지는 한이 있더라도 나라를 반드시 찾아야 한다!》

뿌옇게 흐려드는 선생님의 눈망울에는 피바다에 잠긴 삼천리조국강산이 비쳐들었다.

걸음마다 악이 막아서고 순간마다 고통이 따라서는 살기차고 독살스러운 세파우에 나어린 아들들을 두고 가시는 김형직선생님의 온 심신은 한줌의 재가 되는듯 끝없이 타들었다.

(그 험한 세파를 저 애가 어떻게 이겨낼가?)

선생님께서는 이런 생각을 하며 사랑하는 아드님의 얼굴에 격려의 눈길을 보내시였다. 한 시대를 고스란히 떠맡기고 가는 선생님의 간절한 눈동자에는 아드님에게 넘겨주시는 옹근 세계가 다 담겨져있는듯싶었다.

《얘들아! 손들을 이리 다구!》

김형직선생님께서는 세 아드님을 차례로 둘러보며 아버지로서 자식들에게 요구할수 있는 마지막 청을 드시였다. 이불우에 가지런히 놓이는 아드님들의 낯익은 손들을 싸늘히 식어가는 자신의 피기없는 손으로 감싸쥐고 말없이 쓸어주시였다. 그러고는 조용히 눈을 감으시였다.

《아버지!…》

김성주동지께서는 아버지의 그 손우에 얼굴을 묻으시며 세차게 어깨를 들먹이시였다. 아버님을 부르며 안타깝게 목놓아 우시는 그이의 어깨우에 피빛같이 강렬한 락조가 물들었다.

1926년 6월 5일의 석양은 이렇게 저물어갔다.

 

20

 

벌써 두번째 초를 갈아대였다. 누런 초밥이 목침우에 가득 녹아붙었다. 그런데도 심지밑에서는 눈물같은것이 자꾸 흘러내리였다.

추도문을 쓰는 오동진이도 그렇게 눈물을 흘리였다. 길림에서 부고를 받고 남먼저 달려와 장의위원회를 조직한 그는 이 밤 고인과 그렇게도 자주 마주앉아 조국광복의 방략을 모색하던 그 약방에 외로이 앉아 손수 추도문을 쓰기 시작한것이다.

《…오늘 우리는 우리모두가 그처럼 따르고 존경해마지않던 김형직선생과 영결하게 된다. 사시장철 변함없는 기상과 절개를 품고 칠성판에 오른 조국과 민중의 복락을 위하여 서른두해동안 꿋꿋이 걸어오신 선생의 심장이 여기 무송땅에서 애석하게도 고동을 멈추었다. 인정풍토가 생소한 만리이역에서 오직 살틀한 조국의 산하와 사람들을 그리시며 그렇게도 바라시던 조국광복의 새날을 보시지 못하고 우리의 곁을 떠나시였다.…》

오동진은 잠시 붓을 멈추었다. 가슴을 뭉클 치미는 생생한 추억이 눈물속에 어려왔다.

그것은 김형직선생님을 처음으로 만나뵙던 그해-1911년의 봄이였다. 당시 평양대성학교 학생이였던 오동진은 숭실학교에 다니시는 선생님의 초청을 받고 만경대댁을 방문하였다. 이른아침 그는 선생님과 함께 들을 산책하였다. 발밑에서는 밤사이 새바람에 떨어진 복숭아꽃이 기분좋게 밟히였다.

김형직선생님께서는 그 복숭아꽃을 한웅큼 집어들고 오동진을 돌아보시는것이였다.

《동진이, 이것보. 얼마나 향기롭고 아름다운 꽃이요. 왜놈들이 그 더러운 게다짝으로 내 나라 꽃을 짓밟는다고 생각하면 막 가슴이 저리고 치가 떨리오. 우리함께 조선의 꽃을 지켜내자구.》

오동진은 말없이 꽃항기가 배인 손으로 선생님의 손을 틀어잡았다. 그것은 잃어버린 내 나라를 찾는 길에서 영원히 고락을 같이 나누려는 굳은 동지적서약이였다. 이 서약은 그후 조선국민회를 결성하는 나날들에 보다 굳건한 결사의 맹세로 새겨졌고 그 강령을 실현하는 길에서 걸음걸음 아름다운 꽃으로 피여났다.

오동진은 조국이 그리워질 때마다 5월의 그 아침 김형직선생님의 손에서 향기를 풍기던 만경대의 복숭아꽃을 생각하였다. 선생님께서 계시지 않는 이 시각도 그 복숭아꽃을 제일 먼저 그려보았다. 그러자 비애는 더 강하게 그의 가슴을 잡아비틀었다.

언제나 크나큰 믿음을 주고 사랑을 주시던 선생님의 뜨거운 손길이 지금도 어깨를 쓰다듬고계시는듯 오동진은 몸을 움직이지 않고 추도문우에 머리를 숙이고 앉아있다.

그날 선생님과 함께 거닐던 만경대의 등성이들과 산굽이들이 눈에 선하다. 선생님의 봄볕같은 미소를 앞을 다투어 받아들이던 산등성이의 진달래와 나리꽃들, 방울을 굴리는듯 맑은 청으로 우짖으며 날아예던 대동강반의 물새들, 저녁어스름을 가득 메우며 새로운 계절의 노래를 부르던 개구리들의 유정한 울음소리가 또다시 가슴속에 피여오른다.

하지만 지금 선생님께서는 이 세상에 계시지 않는다. 이 밤이 다 가고 새날이 와도 이제는 여기 소남문거리에서 제일 먼저 잠을 깨여 하루일을 시작하시던 선생님의 활달하고 정열에 넘치신 모습을 다시는 보지 못할것이다.

(김선생, 독립이 되면 우리함께 만경대에도 가고 내 고향 의주에도 가자고 늘 말씀하시더니 이제는 그 소원도 이룰수 없게 되였으니… 선생과 함께 조선의 복숭아꽃 향기를 또다시 맡아보고싶은 그 심정은 지금도 변함없건만 선생께서 이렇게 졸지에 가시니 싱싱하던 그 꽃잎들조차 내 마음속에서 슬픔에 겨워 속절없이 이우는것 같구려.

김선생 없이야 어떻게 우리가 내 나라로 돌아갈수 있겠소. 선생께서 가시니 내 나라로 가는 길은 천리인가 만리인가 더 아득히 멀어만보이고… 얼마나 많은 고비들을 겪어야 우리는 독립된 내 나라 문턱에 들어설수 있겠는지? 광복의 길에 놓인 그 만학천봉들을 김선생 없이 우리 무슨 의기로 넘으란말이우?

눈앞이 캄캄하우. 하늘이 무너져내리는것 같소… 우리를 둬두고 왜 그리도 빨리 가셨소? 그리운 김선생!)

한줄금의 강한 비애가 추도문우에 락수처럼 떨어졌다.

오동진은 눈물을 씻고 새 종이장을 끌어당기였다.

《…그이는 우리모두의 스승이시였고 동지이시였으며 지도자이시였다. 캄캄한 밤 가시덤불길을 걸을 때에도 선생께서 계시여 우리의 발걸음은 외롭지 않았고 차거운 세상의 구박속에 생겨난 염증이 육신을 괴롭힐 때에도 선생의 따뜻한 치료의 손길이 있어 우리의 상처는 아프지 않았다. 세상리치를 다 알지 못하는 우리들이 편견의 담장속에서 서로 윽박지르고 매질을 할적에도 선생의 명철한 훈계와 이끄심이 계시여 우리는 화목을 이룩하였다.

이제는 우리를 불러 정답게 울리던 선생의 음성도 두번다시 들을수 없고 우리를 안아 따뜻이 쓸어주시던 선생의 부드러운 손도 두번다시 잡을수 없고 우리를 향해 해님같은 사랑을 뿜어주시던 선생의 눈길도 두번다시 받을수 없나니.

애석하구나.

스승을 잃고, 은인을 잃고, 동지를 잃고, 령수를 잃은 고아의 설음이 눈앞에 비가 되여 내리니 해님이 있어도 이 땅은 뜨습지를 않고 별님이 있어도 이 밤은 밝은듯하지 않아 아득한 구만리장천에 슬픔만 꽉 찬듯.

언제나 우리의 앞장에서 구질거리는 이슬비도 먼저 맞으시고 칼날같은 무서리도 먼저 밟으시며 로심초사하시던 선생의 길잡이를 해드리지 못하는 우리들의 마음 송구하기 그지없도다.

아, 사람이 나서 한번씩은 다 간다는 그 길로 그렇게도 빨리 가시고저 서른두살 짧으나짧은 한생 선생께서는 그렇게도 많은 걸음을 걸으셨는가!

만백성의 애끓는 기원에도 불구하고 선생께서는 영영 우리곁을 떠나셨구나.

절망으로 이지러진 겨레의 얼에 금강석처럼 빛나는 심혼을 박아주시고 슬픔어린 민족의 눈에 새벽빛같은 정기를 부어주시며 우리 겨레를 광복의 한길로 이끌어주시던 선생께서는 정녕 어데로 가셨는가?

한그릇의 깡조밥도 우리와 함께 드시고 한모금의 청산록수도 우리와 함께 나누시며 장장수만리를 우리의 진두에서 걸어오신 친근하신 선생의 혼령을 안타깝게 부르며 우리는 목놓아운다.

선생의 한생은 오직 송죽같이 강의한 의지와 열혈의 분투로써 일관되여있을뿐이다. 남보다 끼니를 더 자주 번지시고 남보다 더 찬바람을 많이 맞으시고 남보다 더 아픈 매를 맞으시며 분투하시면서도 자신을 생각하여보신적 없는 선생이시였다.

자신을 생각하시기전에 겨레를 먼저 생각하시고, 가정을 생각하시기에 앞서 조국을 먼저 생각하시며 일편단심 광복의 한길을 따라 줄기차게 걸어오신 선생의 거룩한 자욱우에 민족청사에 무궁찬연할 공훈이 수없이 아로새겨져있다. 선생께서 뿌려주신 예지의 빛발아래 이 나라 민중은 태고의 잠에서 깨여났고 투사로, 선각자로, 지사로 자라나 반일의 창기를 추켜들었다. 선생께서 심어주신 애국애족의 뜻은 잠을 깬 이 나라 민중의 가슴에 불을 지펴 삼천리방방곡곡을 왜적격멸의 화염으로 뒤덮이게 하였다.

이제는 그 누가 선생을 대신하여 우리의 진두에 서주겠는가? 그 누가 눈서리에 파묻혀서 천신만고 괴롬받다가 양춘을 다시 만나 소생하는 푸른 소나무의 노래를 불러주겠는가? 사랑하는 동지를 여의고 고아가 된 우리의 이 가슴 에이는 상실을 그 무엇으로써 메꾼단말인가?

아, 한생을 살아 영원을 남기고 가신 친근한 동지이시여!

우리의 경애하는 스승이시며 은인이신 김형직선생이시여…》

너무나도 많은 추억을 남기고 가신 김형직선생님이시였다.

추억의 무수한 갈피들을 헤치면 헤칠수록 추도문의 글줄들은 더 련련한 애조를 띠고 비장하게 울리였다.

조심스레 열리는 문소리가 들리였다.

기척을 누르며 노전을 밟는 소리가 오동진의 등뒤에서 멎었다.

오동진은 붓을 멈추었다. 그러나 글을 쓰던 그 자세를 조금도 허물지 않고 그냥 책상앞에 마주앉아있었다. 어쩐지 몸만 약간 움직여도 가슴속에 소용돌이치고있는 비감이 와- 통곡소리가 되여 터져나올것 같아서였다.

《선생님, 그만하고 이제는 주무십시오.》

오동진은 김성주동지의 갈린 목소리를 듣자 고개를 돌리였다.

초불그림자가 어룽거리는 김성주동지의 모습은 몹시도 묵중하고 침통해보이였다. 그이께서는 하루밤사이에 어른이 다 되신것같았다.

《성주!…》

따뜻하고 부드러운 위로의 말이 입속을 맴돌았으나 오동진은 할수가 없었다.

(내 가슴이 이렇게 천만갈래로 찢어질진대 아버님을 잃은 성주의 마음은 얼마나 쓰리고 아플것인가. 하늘이 무너지는것 같은 참혹하고 절통한 슬픔을 묵새기느라고 저 어린 가슴에 이제껏 얼마나 많은 눈물을 삼키였겠는가!)

《어쩌면 그렇게도 빨리 가신단말이냐!》

오동진은 김성주동지의 두팔을 쥐여흔들며 비통하게 부르짖었다.

김성주동지께서는 그의 어깨우에 얼굴을 묻고 눈물섞인 목갈린 소리로 웨치시였다.

《정말 믿어지지 않습니다. 모든게 거짓말같습니다.》

가혹한 운명에 대한 처절한 그 항변의 웨침소리는 뜨락을 거닐던 장철하의 입에 그대로 옮아갔다.

《거짓말이다! 거짓말이다! 선생님께서는 가시지 않았다!》

그는 갈퀴같이 억세고 악마디진 사나이 손으로 비오듯 쏟아져내리는 눈물을 천천히 닦아내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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