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서 《불멸의 향도》 

       장 편 소 설 

 

                                       정 기 종

( 제 4 회 )

첫 머리이야기

1994년 12월 31일

우리 인민이 어버이수령님을 잃고 땅을 치며 통곡하던 피눈물의 해 1994년의 마지막날도 어느덧 저물어가고있었다.

찬 날씨였다. 대기는 살얼음처럼 다치면 부서져나갈듯 팽팽하게 서리찼고 하늘에 널린 구름쪼각들은 푸르뎅뎅했다. 겨울철에 서리찬 광채가 스러져가면서 한적한 들판도 음울한 재빛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윙윙거리는 바람만이 나무가지들에 매달린 잎사귀를 사정없이 뜯어 길가에 쥐여뿌리군 했다.

승용차의 시창에도 황이 든 잎사귀들이 더 많이, 더 자주 얼씬거렸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그 시창을 통해 어느 한곳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고계시였다. 저 멀리 휘우듬한 등성이너머에 우뚝 솟아있는 하나의 굴뚝이 그이의 마음을 아프게 한것이다.

이 길을 지나실 때마다 쌉쌀하고 약간 매운듯 한 연기냄새에 익숙되시였는데 지금은 그 굴뚝에 연기가 없다. 피빛의 석양이 그 굴뚝우에 떠있는 구름쪼각을 시진하게 물들이고있을뿐…

이제 저 굴뚝처럼 연기를 뿜지 못하는 공장들이 하나둘 늘어갈것이다. 그이께서는 쓰린 아픔에 손끝까지 저려나는듯 하시였다. 쏘련과 동유럽의 사회주의가 붕괴되던 때로부터 나라의 경제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던것이 어버이수령님을 잃은 민족의 대국상을 당한후 더더욱 심각한 지경에 이른것이다.

제국주의자들의 날로 극악해지는 경제봉쇄, 군사적위협과 파국적인 자연재해의 시작… 얼마나 많은 비가 이 땅에 퍼부어졌던가?… 그이께서는 부지불식간에 대국상을 당하던 그때 폭우속을 헤치며 차를 달리시던 밤길을 상기하시였다. 어쩔수 없이 떠올린 가슴아픈 회억…

차창에 휘뿌려지던 대줄기같은 비발, 시꺼먼 하늘에서 꽈르릉! 하고 노성을 터치는것 같던 뢰우, 번개불이 밤을 찢고 대기를 불사르며 연송 푸들거렸다.

그속으로 차를 달리며 그이께서는 마음속으로 부르짖고계시였다.

우리 수령님께서 위급하시다니 과연 그럴수도 있는가. 아니, 아니다. 절대로 그럴수 없다. 이제 내가 나타나면 수령님께서 곧 눈을 뜨실것이다. 눈을 뜨시고는 저으기 놀라신듯 《어떻게 이 깊은 밤중에 달려왔소?》 하고 물으실것이다. 그것은 틀림없다, 틀림없다!…

그날 승용차의 속도계바늘은 마지막수자들에서 파들거리며 떨고있었지만 그이께서는 차가 너무도 굼뜨게 움직이는듯 하시였다. 전조등의 불빛마저 퍼붓는 비발속을 겨우 뚫고나가는듯… 조바심치는 마음속에 재가 앉는것을 느끼시였다. 저 번개불을 잡아달릴수는 없을가. 꼬불꼬불 령길을 만든 저 산발을 통채로 들어 바다에 집어던질수는 없단말인가?… 그렇게 괴로운 분과 초들이 흘러갔다.

이윽고 차가 아츠러운 소리로 땅을 허비며 멎어섰다. 경황없이 달려나온 일군들이 비에 화락하니 젖은 몸을 비틀며 어푸러졌다.

《장군님! 어버이수령님께서 그만…》

더 이상 잇지 못하는 그 말을 대신하여 꽈르릉! 하는 천둥이 터졌다. 하늘이 무너져내렸다. 밤도 어둠도 미친듯 한 폭우도 죄다 그 무서운 폭음속에 파묻히고말았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한순간 흠칫하였으나 곧 걸음을 옮기시였다. 그 어떤 말도 죄다 부정하시였다. 급히 걸으며 속으로 부르짖고계시였다. 난 믿지 않아. 지금 수령님께서는 나를 기다리고계실뿐이야, 절대로 믿지 않아!…

섬광이 또 번쩍이였다. 그러자 건물의 유리창을 때리던 비방울들이 무수한 반디불처럼 린광을 휘뿌렸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잠이 드신듯 누워계시는 수령님께로 다가가시였다. 터질듯 한 격정을 누르고 조용히 불러보시였다.

《수령님!》

대답이 없으시였다.

또다시 섬광, 창유리들이 퍼렇게 번쩍이였다.

《수령님!》

더 크게 불러보시였다. 그보다 엄청나게 큰 천둥소리. 그이께서는 어느새 수령님침상을 꽉 그러쥐며 목메여 웨치시였다.

《수령님, 제가 왔습니다. 수령님!ㅡ》

하지만 여전히 수령님께서는 아무 기척도 없으시였다. 눈을 감은채 근엄한 안색으로 누워계실뿐, 순간 김정일동지께서는 무서운 아픔에 신음하시였다. 누군가 자신을 붙들며 《장군님!ㅡ》 하고 목메여 울부짖었을 때에야 비로소 수령님께서 영면하셨다는것을 깨닫고 모진 허탈감에 심신이 무너져내리는것을 느끼시였다.…

영원히 잊을수 없는 그날의 회억… 그때부터 수령님을 영생의 모습으로 길이 모시며 피눈물속에 잠긴 온 나라 인민을 안고 170여일의 낮과 밤을 이어오시였다. 잠도 휴식도 다 잊으시였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비가 이 땅에 쏟아져내렸던가. 이 나라 인민이 흘린 피눈물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허나 지금은 겨울이다. 찬바람이 몰아치는 겨울, 여느때보다 일찍 강이 얼어붙고 나무숲이 헐벗고 메마른 등성이에서는 눈더미들만 희끗거렸다.

엄혹한 겨울이 왔다. 이제 닥쳐올 고난과 시련은 또 얼마나 가혹할것인가.

저 연기없는 공장굴뚝이 그것을 말해주고있다. 제국주의자들의 극악한 고립압살책동, 그에 뒤따를 식량난, 연료난, 동력난… 하지만 이겨내야 한다. 슬픔을 이겨내고 역경을 헤쳐가며 우리 수령님께서 찾아주시고 빛내주신 조국을, 사회주의를 지켜내야 한다. 그리고 수령님께서 마지막친필을 남기신 조국통일문건에 뜨겁게 슴배여있는 필승의 념원도 풀어드려야 한다.

하여 그이께서는 지금 차를 달리고계신다. 이제 겪게 될 고난의 행군에 앞서 가슴속에 꽉 차있는 온갖 아픔과 눈물과 비장한 각오를 다 터뜨릴 생각이시다.

차가 멎었다.

어느새 목적한 사격장에 이르렀다.

직일관과 몇사람이 황황히 달려나오고있다. 그이께서 아무런 예고도 없이 오셨으므로 누구실가, 웬일일가 하고 얼떠름해하는 표정이였다.

그이께서 차문을 열고 내리시자 먼저 직일관이 잽싸게 거수경례를 붙이며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 하고 다급히 웨치고는 무엇인가 목에 걸린듯 꿀꺽하였다.

그이께서 손을 들어 답례하시며 걸음을 옮기시였다.

뒤늦게 뛰여나온 키 큰 상좌가 거수경례를 올리며 규정의 보고를 하려했으나 어느새 그이께서 손을 들어 막으시였다. 여전히 빠른 걸음을 옮기시며 뒤따르는 그에게 말씀하시였다.

《기관총과 자동보총을 만장탄해 가져오시오.》

상좌가 쩡쩡한 목소리로 웨치듯 했다.

《알았습니다.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

그이께서는 야외사격장으로 곧추 향하시였다.

벌써 땅거미가 깃들고있었다. 멀리 둔덕쪽에 두억시니처럼 웅크리고있는 목표판들이 겨우 분간되시였다. 그래도 괜찮다. 무자비하게 쓸어버려야 할 목표는 얼마든지 있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조성, 조문은 맞추어져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먼저 자동보총을 틀어잡으시였다. 안전쇠를 열고 방아쇠에 손을 거신다. 희읍스름한 하늘에서 파랗게 눈뜨기 시작한 별들이 반들거리는 총신우에 빛을 던졌다. 그이께서는 별로 겨눈것 같지도 않게 급사격을 퍼부으시였다.

울부짖는 자동보총, 세찬 불줄기가 거침없이 목표판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세찬 반충도 어느덧 고르로운 률동으로 변하였다. 따다다다!- 련발사격은 계속된다. 둔덕밑의 목표판이 나가넘어진다. 또 다음목표… 도탄되는 탄알들이 불꼬리를 길게 끌며 아우성친다. 목표판뒤의 나무숲이 사정없이 분질러진다.

드디여 총성이 멎었다. 어느새 한탄창을 다 쏴갈기시였다. 다섯개의 목표판은 형체도 없이 부서져버렸다.

이번엔 기관총을 바꾸어드신다. 묵직하다. 그 엄엄한 중량감, 랭철한 철의 촉감이 마음에 드신다.

《목표 출현!》

그이께서 나직이 구령을 치시자 시꺼먼 둔덕밑에서 이동목표들이 얼씬거리기 시작했다.

《련발로ㅡ 쐇!》

마음속으로 구령을 치신다.

또다시 울리는 련발사격의 총성, 기관총의 집중사격은 격렬하고 위엄찬것이였다. 무시무시하게 울부짖는다.

둔덕쪽에서는 모든것이 죄다 들부셔지는듯 했다. 얼어들던 땅이 파헤쳐지고 나무숲이 신음했다. 너울거리는 불길, 박살나는 목표들, 그래도 그이께서는 사격을 멈추지 않으신다. 무시무시한 총성속에서 마음속 격정을 한껏 터치신다.

 

수령님, 이 소리를 들으십니까. 제가 제일 사랑하는 총대가 불을 토하고있습니다.

수령님, 수령님께서 키워오신 총대가 있고 억척같은 인민이 있는 한 우리는 꼭 이길것입니다!…

 

세찬 불줄기, 화약가스가 타래쳤다. 몰사격의 총성처럼 멋들어진 음악이 또 있을가?… 완강한 투지와 인내와 헌신을 선언하는 총성… 그이께서는 한시도 사격을 멈추지 않으신다.

 

세계여, 들으라. 나에게서 그 어떤 변화도 바라지 말라!…

원쑤들에게 경고한다. 우리는 전쟁을 할줄 알며 또 준비되여있다. 우리를 건드리는자 죽음을 면치 못한다!…

인민이여 믿으라, 내가 이 총대를 틀어쥐고있는 한 우리는 기어이 사회주의조국을 지킬것이다. 그리고 부강조국을 일떠세울것이다! 우리 수령님의 필생의 념원인 조국통일성업도 이룩될것이다. 조국통일위업에 한생을 다 바친 비전향장기수들도 이 소리를 들으시라. 그리고 끝까지 싸우시라!…

 

그이께서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웨치고계시였다. 김진서, 김병택, 한제완을 비롯한 불굴의 통일애국투사들, 비전향장기수들을 한사람한사람 불러보시기도 하였다. 이렇게 그이께서는 철창속에서 신음하는 그들에게, 이제 엄혹한 시련을 헤쳐가야 할 온 나라 인민에게 그리고 오만한 원쑤들에게, 온 세상에 자신의 드팀없는 결심을 선언하고계시였다. 이제 얼마후이면 새해가 시작된다. 물러가는 해를 전송하며 밝아오는 해를 맞받아 터치는 격렬한 총성, 바로 그것이 선군령도의 새장을 펼치는 장엄한 서곡이라는것을 아직은 그 누구도 알지 못했고 또 알수도 없었다.

울부짖던 기관총이 뚝 그쳤다.

귀를 먹먹하게 하는 정적, 그러나 싸늘한 대기를 썰던 엄엄한 총소리의 여운은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았다. 그 총성의 메아리를 여겨들으시는듯 김정일동지께서는 기관총을 꽉 틀어쥐신채 이윽토록 움직이지 않으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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