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서 《불멸의 향도》 

       장 편 소 설 

 

                                       정 기 종

( 제 2 회 )

첫 머리이야기

1993년 3월 19일

그날도 김정일동지께서는 최고사령부작전대곁을 떠나지 못하고 계시였다.

새벽 4시, 그이께서는 이제 몇시간후 사회주의조국의 품에 안길 리인모를 위한 연도환영, 치료대책, 보도문제로부터 그에게 선물할 고급승용차, 의복류문제들까지 일일이 료해하시였다. 전화를 받은것은 당중앙위원회 비서 권형일이였다.

《좋습니다.》 그이께서 말씀하시였다. 《오늘 그가 판문점분리선을 넘어 우리측 통일각에 들어서면 당과 국가의 지도간부들이 위대한 수령님과 나의 명의로 축하와 문안인사를 꼭 전하게 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영접행사를 전국가적인 행사로 크게 성대하게 진행합시다.… 아니, 일없습니다. 준전시상태이지만 민족의 영웅을 맞이하는것처럼 전국이 끓게 합시다. 특히 평양시에서는 모두가 연도행사에 떨쳐나서게 하는것이 좋습니다.》

부지중 그이께서는 목이 잠기는것을 느끼시였다. 가장 야만적인 취급을 당하면서도 수십년간 지조를 굽히지 않은 전사, 그를 위해 더 해줄수 있는것은 없을가?…

《사실》 하고 그이께서는 계속하시였다. 《우린 모두가 그에게 절을 해야 합니다. 그는 우리들에게 조선로동당원은 어떻게 신념과 의리를 지켜야 하는가를 자기의 피어린 한생으로 보여주었습니다. 그를 위해서라면 그 무엇도 아까울것이 없습니다. 그러니 그의 건강문제에 특별한 관심을 돌려야 하겠습니다. 알려진데 의하면 그의 건강상태는 극도로 악화되여있습니다. 그러한 그가 부인을 43년만에 처음 만나기때문에 갑자기 충격을 받고 졸도할수 있다는것도 고려해야 합니다. 먼저 의사들이 그에게 부인과 딸을 만나게 된다는것을 이야기해주고 주사를 놓아준 다음 만날수 있는 마음의 준비를 미리 가지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평양까지 들어올 때는 의료진이 함께 차에 타도록 하고 하늘에는 직승기를 띄워 따르게 하시오. 절대 소홀히 하는 점이 없도록 온갖 대책을 다 강구해야 합니다.》

전쟁을 앞둔 최고사령부작전실에서 한 로인의 건강문제가 장시간 론의된다는것을 그 누가 상상이나 할수 있으랴. 그러나 김정일동지께서는 군사분계선 대밑에서 적들이 벌리는 《강행도하훈련》조차 감감히 잊고계신듯 했다.

이윽고 날이 밝았다.

맑게 개인 봄날의 하늘, 성깃성깃한 백양나무숲 저 멀리로 불타는 해가 솟아올랐다. 거리를 질주하는 궤도전차의 앞머리는 이슬에 젖어 번들거리고 아빠트의 유리창들은 시뻘건 화광에 물들었다. 네거리마다에 《환영 리인모》, 《신념과 의지의 화신 리인모》, 《위대한 수령님의 품으로 돌아오는 리인모동지를 열렬히 환영한다》라고 쓴 대형구호판들이 세워졌다.

그러나 이제 곧 분계선너머 남녘의 상공에서는 700여대의 군용기들이 날아올라 하늘을 썰며 공화국북반부에 대한 대지전공습훈련을 벌리게 될것이다.

한쪽에서는 앙칼진 폭음에 창유리들이 떨고 한편에서는 환영의 꽃풍선들이 날아오르고…

그 시각 워싱톤은 깊은 한밤중이였다. 후에 알려진바이지만 그때 미국방성 작전보고실에서는 미국대통령이 지켜보는가운데 우리와의 전쟁을 가상한 콤퓨터모의전쟁이 벌어지고있었다.

어떻게 하나 전쟁의 명분과 그 결과를 알고싶어 콤퓨터에 묻게 된것이였다.

그런데 콤퓨터가 내린 답은 참담한것이였다. 전쟁개시 2주일만에 북조선군이 전 전선에서 종심까지 진격하며 단숨에 40여만의 미군측병력이 괴멸되고 800억딸라의 물적손실을 빚어낸다는 엄청난것이였다.

하지만 적들은 그 무엇인가를 기다렸다. 전쟁의 도화선은 여전히 끄물끄물 타들어가고있었다. 과연 이제 조선에서는 무슨 일이 어떻게 벌어질것인가?

온 세계가 손에 땀을 쥐고 극동의 열점인 조선에 눈길을 모으고있을 때 평양의 거리들에서는 환영의 꽃물결이 흐르고있었다. 개성으로부터 평양까지 수백리 연도에 펼쳐진 대환영의 물결… 전국의 모든 기관, 가정들에서는 텔레비죤을 마주하고 모여앉았다.

오전 11시.

드디여 리인모는 판문점중앙분리선을 넘어섰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한번도 자리에 앉지 않고 줄곧 텔레비죤화면앞에 서계시였다. 제대로 몸을 운신할수 없어 삼륜차에 실려오는 리인모, 온통 눈물에 젖은 얼굴로 초상화를 우러르며 알아듣기 어려운 감사의 인사를 올리는 모습, 그이께서는 마음속으로 뜨겁게 불굴의 전사를 안아주시였다.

《환영합니다, 리인모동지. 아니, 고맙다는 인사는 내가 먼저 해야 합니다. 오늘 동지는 혼자서 돌아왔지만 싸우는 수백수천만 우리 인민에게 뜨거운 피를 더해주었습니다.》

가슴이 쩌르르 울리는것을 느끼시였다. 피페해진 로병, 비전향장기수로인의 눈물젖은 모습을 뜨거운 감동없이는 마주 볼수 없는 심정이시였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어느덧 통일각에 잠시 머물러있던 리인모를 태운 구급소생차가 수도 평양을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헤아릴수 없이 많은 자동차행렬이 그뒤를 따르고 하늘에서는 직승기가 날았다.

그 시각 수도의 거리들에는 30여만의 시민들이 환영연도에 나와있었다.

명절옷차림을 한 처녀들과 가정부인들, 로인들과 학생소년들, 로농적위대복장을 한 청장년들, 붉은청년근위대원들, 그들은 이미 차지하고있던 진지들에서 총을 꽃다발로 바꾸어쥐고 한달음에 달려왔을것이다.

김정일동지께서는 1시간나마 한자리에 그냥 서계시였다. 구급소생차의 맑은 창가에서 환영 나온 수도시민들을 눈물속에 내다보는 리인모의 모습이 화면에 비쳐질 때마다 눈굽이 저려나는것을 어쩔수 없으시였다.

꽃다발을 흔들며 환호성을 터치는 사람들, 모두가 울고웃으며 만세를 웨치는데 어떤 곳에서는 사람들이 차도에까지 밀려나오기도 했다. 그들중에서 유표하게 눈물범벅이 되여 허우적거리는 한 녀인의 모습이 남달리 화면에 길게 비쳐졌다.

순간 그이께서는 한발 앞으로 나서며 눈여겨보시였다. 무던히도 낯익어보이는 그 녀인의 얼굴, 그러나 어느새 카메라는 다른 군중들에게로 옮겨져있었다. 어데서 보았던가. 분명 어데선가 본 일이 있었는데?… 급히 기억을 더듬었으나 생각나시지 않았다.

텔레비죤방송원의 격정에 넘친 목소리가 군중의 환호성속에서 점점 커져갔다.

《보십시오, 시청자여러분! 폭풍같은 환호성이 터져오르고 꽃바다, 꽃물결이 세차게 파도치는 이 거리를 보십시오!…》 어느덧 방송원의 목소리도 젖어들고있었다. 《지금 이 시각에도 저 남녘땅에서는 미제침략자들이 핵전쟁의 총포성을 미친듯 울리고있지만 여기 혁명의 수도 평양의 거리들에서는 리인모동지를 맞이하는 감격의 환호성이 하늘땅을 진감하고있습니다. 정녕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 크나큰 심려와 로고를 다 바쳐 끝내 조국의 품으로 데려오신 민족의 장한 아들 리인모동지를 맞이하는 이 감격의 환호성이야말로 전쟁의 총포성을 짓누르는 승리의 축포성이 아니겠습니까!…》

구급소생차를 따라가며 새로운 화면들이 잇달았지만 김정일동지께서는 목메여 울며 두팔을 뻗쳐 무어라고 웨쳐대던 한 녀인의 모습을 머리에서 지워버릴수 없으시였다. 잡힐듯말듯 하면서도 끝내 떠올릴수 없는 녀인, 웬일인지 남다른 사연이라도 있을듯 생각되시였다.

그때 위대한 수령님께서 전화를 걸어오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마음속 흥분을 누르며 송수화기를 드시였다.

《수령님, 김정일이 전화받습니다.》

《여전하구만. 작전대앞을 떠나지 못하리라고 내 짐작했댔소.》 수령님의 음성은 웬일인지 갈리신듯 하였다. 《아, 오늘은 전쟁이야길 그만둡시다. 놈들이야 불장난을 하건말건. 내 지금 리인모동물 보면서 눈물이 나는걸 참을수 없어 전화를 걸었소. 이제 준전시상태가 끝나면 최고사령관과 같이 리인모를 찾아가 문안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어떻소. 지금은 안되겠지만.》

《예, 수령님! 저도 그럴 생각이였습니다. 꼭 수령님을 모시고 문안을 가야겠다고 말입니다. 그때 수령님께서 그에게 새 당원증도 수여하고 훈장도 달아주시면 그의 한생에 대한 당의 평가로 될수 있으리라고 생각해보았습니다.》

수령님께서는 기뻐하시였다.

《그러니 최고사령관은 그일까지 다 예견하고있었구만. 정말 좋은 생각이요. 그럼 좋은 날을 택하여 꼭 그렇게 합시다.》

수령님께서는 리인모의 병치료대책에 대하여 물으신 다음 전화를 끊으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여전히 그린듯 서계시였다. 수령님께서 《눈물을 참을수 없어》라고 하시던 음성이 여전히 귀전에 울려오는듯 싶으시였다. 연도행사장면을 보시다가 전화를 걸어오셨을 때엔 그만큼 충격이 크셨음을 의미하는것이다. 귀중한 전사를 끝내 데려오게 된 기쁨이 너무 커서였을가, 아니면 운신조차 못하는 백발의 전사를 보시고 아픔을 참기 어려우시여서?… 혹시 리인모는 왔지만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수많은 전사들이 마음에 걸리시여… 아, 가만! 그때문일것이다. 수십년세월 돌아오지 못하는 전사들때문에 남모르는 아픔을 안고계시는 어버이수령님, 때로는 밤 깊도록 정원을 거니시며 그리운 전사들에 대하여, 김삼룡, 성시백, 리현상, 김종태에 대하여 회억에 잠겨 말씀하시던 수령님이시였다.

순간 그이께서는 머리속에 얼핏 스쳐간 하나의 기억을 살리시였다. 리현상의 이름이 짚이자 떠오른 기억의 한 토막… 언제였던가. 지리산빨찌산대장이였던 리현상의 가족들을 만나주시려 리현상의 딸 리상옥의 집을 찾으셨던 그날, 그날 그 집에서 손님으로 와있던 한 녀인을 만나보신 일이 있었다. 방금 화면에서 스쳐보셨던 녀인, 이름을 김화순이라고 했던것 같다. 너무도 뜻밖에 그이를 만나 뵙게 되여 미처 인사말도 제대로 번지지 못하며 굳어졌던 녀인, 그 김화순의 아버지도 전쟁때 정치공작대로 나갔다가 미처 후퇴하지 못하고 지리산빨찌산에서 싸웠다고 한다. 지리산빨찌산정치위원이였던 리재명이 그 사실을 알려주었다는것이다. 그날 그이께서 물으시였다.

《아버지이름을 어떻게 부릅니까?》

《예, 김진서라고 합니다.》

《음- 김진서… 그래 아버지와는 몇살때 헤여졌습니까?》

《네살때였습니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

《음… 어느덧 40여년 세월이 흘러갔구만.》

인제는 그날의 일이 생생하시다. 아버지들이 지리산에서 싸웠다는것으로 하여 남다른 인연으로 가까와졌을 리상옥과 김화순, 그 김화순도 지난해 남조선잡지 《말》에 아버지 김진서의 소식이 났다는것을 알고있을것이다. 아버지가 여적 살아있으며 리인모와 같이 장장 34년간 옥중에서 굴함없이 싸운 비전향장기수라는것을 알고있기에 그처럼 환영연도에서 목메여 울며 부르짖었을것이다. 기쁨과 감격에 울고 크나큰 기대와 희망에 울고 사무치는 그리움에 아버지를 목메여 불렀으리라.

김정일동지께서는 여전히 화면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며 생각을 이어가시였다. 거의 두시간째 한자리에 그냥 서계시는것도 잊고 계시였다.

얼마나 많은 아픔을 우리 인민은 겪어왔던가. 민족분렬의 아픔은 또 얼마나 많은 눈물을 뿌리게 했던가. 그리고 그 모든 아픔을 한가슴에 안으신 우리 수령님의 아픔은 또 얼마나 크고 무거운것이랴. 저 김진서의 딸 김화순을 포함하여 둘로 갈라진 이 나라 전체 인민이 겪고있는 불행과 아픔을 다 안고계시는 어버이수령님. 하기에 수령님께서는 연도행사를 보시며 눈물을 참을수 없으신것이리라.…

어느덧 리인모를 태운 구급소생차는 조선적십자종합병원 분원으로 향하고있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구급소생차가 화면에서 멀리 사라져갈 때까지 지켜서서 불굴의 전사를 바래주시였다. 그를 바래주시며 마음속으로 수령님과 나누신 말씀을 거듭 되뇌이시였다. 이제 적들의 핵전쟁도발책동을 단호히 짓부셔버리고 어느 좋은 날을 택하여 리인모의 병문안을 가시려는 생각이시였다. 수령님께서 바로 그렇게 말씀하시였었다. 《좋은 날》을 택하여 가자고… 그러면 그 《좋은 날》은 어떤 날일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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