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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서《불멸의 력사》 1 장편소설
김 정
( 제 1 회 )
전 편
1
날이 어두워지자 압록강변에서는 바람이 일기 시작하였다. 한동안 눈속에 묻혀 포근히 잠들었던 대지는 또다시 급작스레 달려든 북방의 강추위에 시달리며 우-우- 비명을 질렀다. 자연의 모든 소음은 그 소리에 파묻혀버리였다. 음산한 2월의 바람은 쌀쌀한 눈가루들만 맴도는 메마르고 거칠은 황야에서 이 밤따라 세차게도 모지름을 썼다. 좁다란 계곡의 들길을 휩쓰는 겨울의 광란치고는 너무나도 무정하고 그악스러웠다. 줄기와 가지만 남은 강기슭의 성글은 채양버들숲은 그 미친듯한 광란속에서 속절없이 휘청거리였다. 하늘땅은 물론 지어는 강반의 이 무시무시한 밤까지를 통채로 얼구어버릴것 같은 대륙의 사나운 설한풍이였다. 그래도 말파리는 그냥 눈길속을 줄기차게 달리고있었다. 길손들의 등뒤에 구슬픈 호궁소리를 실어보내던 팔도구시가도 이제는 산언덕에 막히여 더는 보이지 않는다. 저고리중등을 동인 노끈밑에 채찍을 비스듬히 꽂은 마부는 토시속에 두손을 지르고 앉아 묵묵히 담배만 빨아댔다. 푸릿한 어둠이 음침하게 들어앉은 미간과 시울속에 깊숙이 숨어 하염없이 앞을 내다보는 가늘죽한 눈이 불빛속에 이따금씩 드러나군하였다. 《자네 춥지 않나?》 마부가 묻는 말이였다. 말파리의 흔들림에 몸을 맡기고 어둠속을 응시하시던 김성주동지께서는 등받이에서 몸을 떼고 마부를 돌아보시였다. 《춥지 않습니다. 아저씨.》 《추워도 참게. 초년고생은 금을 주고도 못산다구 했는데…》 마부는 길바닥에 꽁초를 홱 내던지고나서 덤덤히 앞을 내다보았다. 김성주동지께서는 또다시 말파리가녁에 몸을 기울이고 앉아 어둠속 어딘가를 묵묵히 바라보시였다. 팔도구를 떠나신 그 순간부터 벌써 그렇게 십리길을 달려오신 그이시였다. 지금 이 순간은 그저 홀로 생각에 잠기고싶으시였다. 그런데 웬일인지 생각마저 제대로 이으실수 없었다. 김성주동지께서는 울적하고 허전한 심경에 빠져 들추는 말파리의 흔들림에 몸을 맡기시였다. 생각하실수록 억울하고 기막힌 리별이였다. 그것은 2년만에 이루어진, 고대하고 고대하셨던 상봉의 기쁨을 속절없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으로 바꾸어버린 엄혹한 리별이였다. 압록강을 건너 낯익은 강안거리를 걸어가실 때까지만 하여도 그이의 가슴은 다가올 상봉에 대한 그리움으로 차올랐다. 그이께서는 한달음에 집으로 달려가시였다. 오래간만에 들어보시는 어머님의 음성은 다정도 하였다. 《왔구나!》 어머님께서는 이 한마디를 조용히 뇌이고나서 묵묵히 아들의 어깨를 쓸기만 하시였다. 상봉의 환희로 소용돌이치는 뜨거운 내심의 흥분이 전류처럼 그 손길을 타고 아들의 가슴에 흘러들었다. 감격의 몇초가 지나자 어머님께서는 말씀을 덧붙이시였다. 《먼길에 고생이 많았겠다. 네가 사내니까 이 먼데를 찾아왔지. 거 남자가 다르긴 다르구나.》 《어머니! 아버지는 어떻게 되셨습니까?》 《아버지는 무사하시단다!》 김성주동지께서는 많은것을 알고싶었으나 어머님의 준엄한 눈빛을 보자 그이상 더 묻지 않고 안도의 숨을 깊이 몰아쉬시였다. 그이의 눈굽에는 눈물이 핑 고이였다. 어머님께서는 만경대고향집과 칠골외가소식까지 듣고는 총총히 부엌으로 내려가시였다. 쌀 반종지박을 더 떠서 날래게 안친 다음 찬물에 담가두었던 양푼의 두부를 용가마에 저며넣으시였다. 뚜껑을 닫지 않은 주철가마가 천정밑에 뽀얀 김을 뿜어올리였다. 김성주동지께서는 천리길에서 쌓인 로독을 풀 사이도 없이 그 김속에서 어린 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시였다. 그이의 마음속에는 이 한밤을 지새며 퍼내고 퍼내여도 다 못퍼낼 무수한 사연이 간직되여있었다. 그이께서는 그 사연들을 갈피갈피 들추며 온밤 그리운 가족들과 함께 쌓이고쌓인 회포를 나누고싶으시였다. 그러나 어머님께서는 두부찌개 한그릇을 끓여주고는 그이더러 인차 림강으로 떠나라고 이르시였다. 《성주야, 천리를 걸어온 너에게 이런 말을 하기는 괴롭다만… 너는 이 밤으로 동생들을 데리고 집을 떠나야겠다.》 김성주동지께서는 소스라치게 놀라시였다. 《어머니, 왜 그러십니까?》 《며칠전부터 밀정들이 집주위에서 우글거리고있다. 아버지를 놓친 놈들이 그 분풀이로 이제 무슨 짓을 할는지 모른다.》 《어머니, 오늘밤 한밤만이라도 어머니곁에 있고싶습니다.》 《낸들 왜 네 속마음을 모르겠니. 어머니도 이 밤길에 너를 내놓고싶지 않다. 그렇지만 다른 수가 없구나. 밖에 말파리가 와서 기다린다. 어서 떠나거라.》 김성주동지께서는 아무말씀없이 말코지에서 두루마기와 목도리를 벗겨내리시였다. 천리길을 걸어온 그 차림새 그대로 말파리에 오르시였다. 왜경들에게 체포되였다가 탈출하시였다는 아버님의 건강에 대해서도 미처 알아볼 경황이 없으시였다. 어머님께서는 아버지가 무사하시다는 말씀외에 다른 소식은 더 이야기하시지 않았다. 무사하시다는 그 간단한 말씀이 어쩐지 김성주동지를 더욱 불안케 하였다. 그이께서는 지금도 평양감옥 면회구앞에서 쇠살창사이로 보던 아버님의 얼굴을 똑똑히 기억하고계시였다. (혹시 그때처럼 상하시지나 않았는지? 이 강추위에 탈출을 하느라고 얼마나 고생하셨을가!) 김성주동지께서는 말파리를 타고 달리면서도 줄곧 아버님생각을 하시였다. 때로는 아버님의 모습우에 어머님의 모습이 겹쳐지기도 하였다. 얼마나 그리고그리던 어머님이시였던가. 김성주동지께서는 찬바람속에 오래도록 내놓인 왼쪽볼을 손바닥으로 고이며 팔도구쪽 하늘을 바라보시였다. 림강이 가까와질수록 마음은 오히려 더욱더 팔도구의 어머님께로만 달리는것이였다. (셋이 함께 있는 우리가 이렇게 쓸쓸한데 텅 빈 집에 홀로 남은 어머니는 또 얼마나 괴롭고 허전하실가?) 그이께서는 침침한 고적속에 외로이 남으신 어머님께 따뜻한 위로의 말씀 한마디도 제대로 올리지 못하고 총총히 떠나온것이 못견디게 후회되시였다. 이 밤이 열백번 계속된다 하여도 기어이 다시 돌아가 안기고싶은 어머님의 품이였다. 왜경들에게 체포되시였던 아버님께서 탈출에 성공하여 북쪽으로 무사히 떠나가셨다는 기쁨의 소식만 아니라면 컴컴한 무인지경을 헤쳐가는 이 밤길은 몇백배나 더 암담했을지 모른다. 옷깃에 덮이였던 눈송이가 소리없이 등골로 굴러내리였다. 그이께서는 비로소 엄습하는 추위를 의식하며 뒤에 앉은 동생들을 돌아보시였다. 하얀 눈뭉치를 뒤집어쓴 이불둥우리속에서 목도리를 두른 두 아우가 까딱 움직이지 않고 앞을 내다본다. 벙어리장갑을 낀 철주의 바른손은 이불가장자리를 야무지게 감아쥐고있다. 막내동생은 고뿔을 만났는지 연송 코그루를 박고있었다. 초조와 불안때문에 파리하고 해쓱해진 동생들의 얼굴표정은 어둠속에서도 환히 드러나보이였다. 야밤의 급작스런 이동은 쾌활하고 활달한 두 동생의 모습을 몰라보게 만들어버리였다. 따뜻한 온돌방과 어머니의 정든 품을 뒤에 두고 으시시한 이 밤길을 따라가는 어린 아우들에 대한 련민의 정이 밀물처럼 김성주동지의 가슴에 스며들었다. 강보에 싸여 자장가를 듣던 갓난아기시절부터 동생들은 벌써 이런 낮, 이런 밤을 몇번이나 맞고 보냈는지 모른다. 덜커덩거리는 이사달구지와 어머니의 잔등우에서 동생들의 유년시절은 꿈결처럼 흘러갔다. 새고장, 새집에 정을 붙이고 그 지붕밑에서 싹튼 우정이 한창 무르익을라치면 살뜰한 소꿉동무들에게 미처 작별을 고할 사이도 없이 또 다른 미지의 땅으로 쓸쓸히 발걸음을 옮기던 동생들이였다. 《나라를 잃으니 너희들이 이렇게 민들레씨처럼 타향을 떠다니게 되였구나!》 마부의 입에서 한숨처럼 뿜어져나오는 개탄의 목소리였다. 김성주동지께서는 가슴이 저려드는 비분을 간신히 묵새기며 마음을 다잡으시였다. 그이께서는 오른손에 낀 장갑을 벗어들고 이불깃에 쌓인 눈을 털며 아우들에게 물으시였다. 《춥지들 않니?》 《아니…》 철주의 외마디 대답이였다. 아니라고 고개를 흔들면서도 그는 이발을 마주치며 턱을 덜덜 떨었다. 《아버진 지금 춥겠지?》 철주의 입에서 느닷없이 튀여나오는 물음이였다. 《…》 김성주동지께서는 아무 말씀도 하시지 않았다. 《왜놈들이 털모자를 빼앗지 않았을가?》 《글쎄…》 《장갑두 없겠네.》 철주는 한숨을 푹 내쉬였다. 그의 몸집은 아까보다 퍽 작아진것처럼 보이였다. 막내동생은 형들의 대화에 참견하지 않고 줄곧 우거진 수림쪽에 눈을 팔고있었다. 아마 추운 생각보다도 무서운 생각이 더 치미는 모양이였다. 김성주동지께서는 조국에서부터 안고온 보자기속에서 과자를 꺼내여 막내동생의 손에 쥐여주시였다. 막내동생은 도리를 흔들며 무릎우에 그 과자를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자기쪽에 등을 대고 앉으신 맏형의 팔소매를 앞으로 잡아끌며 울먹울먹한 목소리로 묻는것이였다. 《형, 엄만 언제 오나?》 《보름 지나면 오지.》 《보름?… 보름?…》 막내동생은 같은 말을 련이어 되뇌였다. 《보름》이라는 시간적개념이 도무지 가늠이 가지 않는 모양이였다. 《응, 열다섯날 지나면 온단다.》 김성주동지께서는 동생의 마음속에 떠도는 불안을 눅잦혀주기라도 하듯 손으로 그의 언볼을 감싸주시였다. 《정말?》 《정말이구말구.》 어머님께서는 신파에 건너가신 형권삼촌이 돌아오면 뒤처리를 하고는 곧 뒤쫓아오겠다고 약속하시였다. 그때면 온 식구가 다같이 무송쪽에 계시는 아버님의 곁으로 갈수 있게 될것이였다. 이불가장자리를 감아쥐였던 철주의 손이 스르르 풀리였다. 그는 다시 이불을 끌어당기느라고 안깐힘을 썼다. 그러나 좀전처럼 또 손이 풀리여서 공연히 발을 들추덕거리였다. 김성주동지께서는 얼른 생각에서 깨여나 철주의 손을 앞으로 끌어당기시였다. 찬바람속에 한시간 남짓이 내놓인 그 자그마한 손은 얼음장같이 차거웠다. 그이께서는 웬일인지 이름할수 없는 비분이 가슴을 허비는것을 느끼며 철주의 그 손에 입김을 후후 부시였다. 동생의 다른 한손은 자신의 손으로 감싸쥐고 두루마기주머니속에 끌어다넣으시였다. 그다음 만경대에서부터 쓰고온 토끼털로 만든 귀덮개를 벗어 동생의 량손에 끼워주시였다. 《형, 나는 일없어.》 철주는 울먹거리며 그 귀덮개를 사양하였다. 김성주동지께서는 조용히 그의 손을 밀막으시였다. 미친듯한 회오리바람이 돌연 우- 소리를 지르며 행길에 들이닥치였다. 순간 말파리는 앞을 가려볼수 없는 눈보라에 파묻혀버리였다. 놀랜 말은 질주를 멈춘 다음 앞다리를 쳐들고 갈기를 흔들면서 허공을 향해 온 들이 떠나가게 호용소리를 뿜어내치였다. 김성주동지께서는 행길에 뿌리워나갈듯이 말파리 한옆으로 쏠리는 두 동생을 량팔로 꼭 끌어안고 그들의 언볼에 자신의 볼을 비비시였다. 《얘들아, 추워도 참자!》 눈가루들이 을씨년스럽게 맴돌아치는 회오리속을 지나자 수림속을 달리던 말파리는 다시 들길에 나섰다. 주위에는 깊이를 알수 없는 심연같은 어둠과 밤의 무시무시한 소음뿐이였다. 그래도 마부의 담배대에서 타오르는 한점의 빨간 불꽃이 얼마간 고적감을 덜어주었다. 박정한 현실은 사랑하는 조국을 하직하며 그 거룩한 이름앞에 광복의 맹세를 남기고 어머님을 만나신 그이의 짤막한 상봉의 기쁨을 거칠은 이 황야의 눈보라속에 사정없이 내던지였다. (무엇때문에 우리는 이런 리별을 당해야 하는가?) 김성주동지께서는 비통한 심정으로 자문하시였다. 그러자 가슴속 깊은곳 어디에선가 격한 웨침소리같은것이 울려나왔다. (나라를 빼앗긴탓이다! 조국이 살아있으면 이런 굴욕도 없을것이다!) 심장을 아프게 잡아비트는것 같은 이 내심의 목소리에 쓸쓸히 한숨을 내그으며 그이께서는 눈길을 높이 들어 강건너 조국땅을 바라보시였다. 눈발속에 희끗거리는 검충충한 메부리들이 느릿느릿 말파리앞으로 다가왔다. 오구비령이였다. 그 련봉 저쪽에는 아버님의 탈출이 이루어졌다는 연포리주막집이 있다. 언제인가 아버님께서 주시는 통신쪽지를 품고 그이께서 지하공작원들을 만나러 가셨던 두지마을도 있다. 기억에도 새로운 월탄과 오가산령, 한줌의 숫눈으로 갈증에 타드는 목을 추기던 개고개의 아흔아홉굽이도 있었다. 걸어서 열흘이면 가닿을수 있는 천리 남쪽에는 토담속에 둘러싸인 자그마한 고향집이 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어느때나 반겨맞아주시는 할머님께서 계시고 할아버님께서 계시는 잊을수 없는 고향집이다. 세월의 비바람에 고삭은 이영은 몇차례 바뀌여도 련면히 이어오는 애국의 절개와 비단같은 인정만은 변함이 없는 자랑스러운 집이다. 그 초가지붕밑에는 너무도 일찍 두고오신 유년시절과 무지개를 잡으시려던 꿈이 파묻혀있다. 그 모든것은 두번다시 돌아올수 없는 과거로 되여버리였다. 사랑하는 조국은 추억속에만 남았다. (과연 이제는 모든것을 잃어버렸단말인가? 강건너 보이는 조선의 저 하늘, 저 산, 저 들이 이제는 영영 우리것이 아니란말인가? 어떻게 하면 저 모든것을 다시 그 누구도 감히 건드릴수 없는 우리의것으로 만들수 있을가?) 김성주동지께서는 눈물겹도록 무표정한 조국의 산야를 다시금 바라보며 속으로 뇌이시였다. 두고온 조국과 고향을 생각할수록 가슴이 답답하기만 하시였다. 집을 옮기고 고장을 자꾸 옮기여도 수난은 그림자처럼 따라다니였다. 왜놈들의 준동도 날을 따라 심해갔다. 그런데 조국의 새날을 위해 그 누구보다도 건강하고 많은 일을 해야 하실 아버님께서 심한 옥고를 치르고 어디론가 떠나가신것이다. 새로운 불안과 걱정이 김성주동지의 마음속에서 무겁게 자리를 잡았다. 평양감옥을 나서시던 아버님의 칠년전 모습이 또다시 그이의 추억을 흔들어깨웠다. (아버지는 몸이 어떠신지? 아버지가 건강하셔야 할텐데… 아, 언제면 만나뵙게 될가!…) 김성주동지께서는 먼곳에 계실 아버님의 모습을 그리며 줄곧 어둠속을 바라보시였다. 옆에는 얼어붙은 압록강이 고달픈 수난의 상징처럼 숨을 죽이고 누워있었다.
2
굽이를 하나 돌자 또 다른 굽이가 앞을 막아나섰다. 화광이 붉게 타는 하늘의 한모퉁이가 그 굽이너머로 바라보이였다. 어둑컴컴한 무인지경만을 줄창 달려온 말은 그 불빛을 보자 흥분을 걷잡지 못하고 속도를 높이였다. 짐승은 단숨에 굽인돌이까지 가닿았다. 길은 거기서부터 강을 옆에 끼고 휘우둠하게 앞으로 뻗어나갔다. 얼마쯤 달리자 강기슭후미에 모닥불이 나타났다. 불찌들이 탁탁 공중에 튀여올라 길에까지 날아왔다. 연기는 어둠속에 녹아들어 보이지 않고 붓초리처럼 생긴 우등불의 가냘픈 끄트머리만 검은 장막속에서 하늘거리였다. 그 모닥불두리에는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담벽을 치고 앉아있었다. 강쪽에 등을 돌려대고 앉은 모닥불건너편 사람들의 형체는 얼굴도, 손도, 옷도 온통 적동색으로 물들여져 마치 그들모두의 몸에 불길이 달리여 너울거리는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강을 마주하고 앉은 이편 사람들의 등에는 불빛이 닿지를 못하여 그들의 상반신전체가 시꺼먼 나무등걸들처럼 보였다. 이편 사람도 저편 사람도 다 산사람 같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들은 살아서 움직이고있었다. 옆에는 사람들을 태운 마차가 서있었다. 《담배를 한대 더 꼬슬려야겠군.》 마부는 말파리를 멈춰세우고 조끼주머니에서 쌈지를 꺼내들었다. 누기찬 부시밥으로 애를 태우며 불을 일구는것보다는 차라리 모닥불신세를 지는것이 더 편리하리라고 타산했던 모양이였다. 그는 김성주동지께 고삐를 맡긴 다음 막내동생을 닁큼 안아들고 모닥불쪽으로 걸어갔다. 불가의 사람들은 일제히 소로길쪽을 바라보았다. 《어서 와서 불이나 쪼이다 가시오!》 마차우에서 감기들린 석쉼한 목소리가 날아왔다. 《고맙소이다!》 역시 그만 못지않게 석쉼한 소리로 마부가 대답하였다. 그는 모닥불을 등지고 돌아서서 말파리를 향해 웨치였다. 《성주, 너도 철주를 데리고 오너라. 몸이나 좀 녹이다가 가야지.》 김성주동지께서는 철주를 앞세우고 말파리를 내리시였다. 그이께서는 언볼을 비비며 모닥불가의 정경을 유심히 살펴보시였다. 불빛에 물든 붉은 눈송이들이 류랑민들의 머리우에 쉴새없이 쏟아져내리고있었다. 그이의 마음속에서 착잡하게 맴돌이치는 쓰라린 상념의 파편과도 같은 눈송이들이였다. 보짐을 걸멘 어깨와 언볼에 날아와 녹아버리는 그 쯥쯜한 눈송이들때문에 그이의 마음은 더 을씨년스러워졌다. 땅우에 모재비로 드러누워 불앞에 발을 쭉 내뻗치고있는 텁석부리사나이의 얼굴이 류달리도 그이의 시선을 끌었다. 그의 옆에는 쌀함박과 바가지짝을 올려놓은 시꺼먼 궤짝 하나가 놓여있다. 포대기에 두어살쯤 되는 애기를 업은 녀인이 그 궤짝우에 한팔을 올리고 물끄러미 모닥불을 들여다본다. 그 녀자는 칭얼거리는 아기때문에 애를 먹으면서도 짜증소리 한마디 하지 않고 띠개끝으로 연송 눈굽만 찍어낸다. 그러다가도 이따금씩 무릎우에 얼굴을 틀어박고 새우잠을 자는 어린 소녀애의 포대기를 여미여준다. 모닥불쪽으로 반쯤 쳐들린 소녀의 뺨에서는 눈이 녹아서 번들거리였다. 내려쌓이는 눈송이들에 덮인 그 애의 다박머리는 백발처럼 새하얗게 보이였다. 새우잠을 자는 아이보다 세살쯤 더 나이가 들어보이는 처녀애가 녀인의 곁에 앉아있다. 아기가 몸을 비틀며 포대기속에서 태를 칠 때마다 그 애는 어린것의 머리에서 모자가 떨어지지 않게 다심히 잔손질을 하는것이였다. 모닥불가의 사람들은 마부를 위해 자리를 좁혀주었다. 김성주동지께서는 마부의 등뒤로 철주만 밀어보내고 자신께서는 사람들의 담벽에 끼이시지 않았다. 기나긴 이 한밤을 모닥불곁에서 지샐지도 모르는 불쌍한 류랑민들을 방해하시고싶지 않아서였다. 불무지로부터 퍼그나 떨어진 어둠속에서 와삭와삭 생눈을 밟는 소리가 나더니 삭정이를 한아름 안은 호리호리한 몸매의 소년이 사람들의 담벽뒤로 불쑥 나타났다. 아무리 박하게 셈을 해도 열여섯이나 열일곱살은 잘됨직한 소년이였다. 소년이 빽빽이 바자를 치고 둘러앉은 사람들속에서 낯선 모습들을 흘끔흘끔 살펴보며 안고온 삭정이를 불무지우에 던져넣었다. 기운찬 팔동작을 따라 흔들리는 몸의 움직임에 맞추어 우로 접어올린 개털모자의 귀덮개가 우습강스럽게 건들거린다. 두드러진 광대뼈와 삐뚜름한 눈매, 약간 지나칠 정도로 헐끔한 목의 생김새와 거침없는 행동거지가 유난스럽다. 모닥불은 아까보다 더 기세차게 타올랐다. 주위가 대낮처럼 밝아지며 가까운 수림속에 있는 오리나무의 불그스름한 가지들까지 불빛속에 환히 드러났다. 소년은 한손을 옷섶밑에 질러넣고 부지깽이를 쥔 다른 손으로는 방금 던져넣은 삭정이들을 헤집으면서 나무가지의 진물이 끓는 모양을 물끄러미 바라보고있었다. 《앉으라구.》 그는 마부의 등뒤에 서계시는 김성주동지의 팔을 구면처럼 건드리며 자리를 권하였다. 그러나 자기자신은 앉지 않고 어둠에 휩싸인 황야를 둘러보며 또 어디론가 가려고 서두르는것이였다. 분명 땔감을 더 마련하고싶어서 안달아하는것 같았다. 《무성아, 이제는 그만 주어오려무나. 장밤을 그래 여기서 샐 차비냐?》 이불을 들쓰고 앉아있는 마차우의 사나이가 소년에게 타일렀다. 그러자 마부대의 청년도 그만하라고 권고하였다. 《삼촌두 참, 여기서 새지 않으면 어데 가서 샌단말이요?》 리무성은 마차쪽을 흘끔 돌아보았다. 《아서라, 몸이나 좀 녹으면 다시 길을 떠나야지. 이왕 내친 걸음인데 여기서 자꾸 우물쭈물해서야 되겠느냐.》 《외삼촌, 여기만 뜨면 다시는 조국땅을 볼수 없는데 이 밤만이라도 불곁에서 그냥 샜으면 좋겠소.》 《글쎄… 그렇긴 하다만…》 마차우의 사나이는 더 말을 못하고 한숨만 푹 내쉬였다. 리무성은 자기때문에 외삼촌이 자꾸 왼심을 쓰는것이 마음에 걸렸던지 다른데로 가지 않고 모닥불곁에 쭈그리고앉았다. 《에이, 끔찍해라. 이게 누구 발이요?》 그는 앉자바람으로 모닥불가생이에 놓여있는 누구인가의 발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 발임자는 리무성이 나무하러 다니는 사이 아마 이 모닥불가에 새로 나타난 모양이였다. 양말 뒤꿈치에 감자알만한 구멍이 뚫린 그 발은 부증이라도 든것처럼 험하게 부풀어있었다. 구멍사이로 드러나보이는 발뒤꿈치는 얼다못해 자주빛을 띠기까지 하였다. 너무 기워서 본래의 색갈을 잘 알아볼수 없는 낡아빠진 면양말의 발등쪽은 소가죽처럼 꺼덕꺼덕 얼어붙었는데 모닥불쪽에 면한 바닥은 녹아서 김을 피워올리고있었다. 발뒤꿈치의 색보다 더 진한 자주빛을 띤 크고 뭉투룩한 발가락이 해진 양말 앞코숭이로 비쭉 내밀렸다. 그옆에 총이 여러가닥 끊어진 짚신 한짝이 놓여있다. 마부와 철주의 어깨사이에서 털목도리에 휘감긴 텁석부리얼굴이 미간을 찡그리며 천천히 일어섰다. 팔소매속에 두손을 지르고 먼산만 쳐다보던 그 사람은 리무성의 돌발적인 질문에 당황하여 엉겁결에 머리를 쳐들었으나 대답할 흥심조차 없는듯 사람들의 담벽뒤로 도로 고개를 떨구어버리였다. 《동상을 입어서 발이 그 지경 되였단다. 강남에서부터 여기까지 줄창 그런 짚세기를 신고왔으니 그럴수밖에… 열여섯에 난 딸이 인부모집을 다니는 거간군놈들의 홀치기에 걸려 행방불명이 되였는데 벌써 세해째나 그 딸을 찾아 헤맨다는구나. 에참!…》 마차우의 외삼촌 박도삼이 발임자를 대신해서 하는 말이다. 리무성은 그 말을 듣자 나무꼬챙이로 잉걸불을 모아서 텁석부리의 발가까이에 끌어다놓았다. 마부는 혀를 차며 텁석부리의 강마른 얼굴을 측은하게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박도삼이한테로 눈길을 돌리며 불쑥 물었다. 《그 집에서는 이 동삼에 무슨 일로 고향을 떠났나?》 《떠난게 아니라 집을 버리고 솔가도주하는길이웨다.》 박도삼의 한숨섞인 대답이였다. 《아니, 이 밤중에 솔가도주는 왜?》 《지주놈의 빚독촉에 견디다못해 밤중으로 부랴부랴 차비를 해가지고 아무도 모르게 강을 건넜습지요. 떠날적에는 지주놈의 단련에서 벗어난다는 한가지 생각밖에 없었는데 정작 강을 넘어서고보니 고향산천이 자꾸 발을 비끄러맵니다그려. 가난설음에 고국을 하직하는 나그네의 설음까지 겹쳐 분하고 슬픈 마음만 가슴을 에이는구만요.》 그는 한동안 기침을 깇느라고 말을 잇지 못하였다. 감기기침 같기도 하고 무슨 천식 같기도 한것이 오래도록 그의 페부에서 터져나왔다. 속에 골병을 품고있는 사람들에게서만 볼수 있는 검질긴 기침이였다. 김성주동지께서는 그가 발작을 일으킬 때마다 살이 내리는것 같은 동통을 느끼며 몸을 흠칠흠칠 떠시였다. 마부도 걱정스레 그를 지켜보았다. 《거 기침도 극성스럽기는 하다. 봐하니 임자 나이가 아직 마흔도 되지 않았을텐데 언제 그런 해소병을 얻었나?》 박도삼은 터져나오는 기침을 가까스로 가라앉히고나서 한바탕 큰 싸움이라도 치르고난 사람처럼 무섭게 씨근거리였다. 그리고는 대답하였다. 《지난봄에 류치장살이를 하면서 얻었습니다.》 《류치장살이라니? 아니, 자네같이 무던하게 생긴 사람이 류치장살이는 왜 했나?》 《왜놈의 법이 뭐 그런걸 가립니까. 그놈들이 만들어놓은 류치장은 죄인을 다루는데가 아니라 죄없는 사람들을 다스려 병신으로 만드는데입니다. 내 류치장살이를 한건 한달밖에 안되지만 그동안 별의별 고초를 다 당해보았습니다.》 《도대체 무슨 죄를 졌게?》 《죄는 무슨 죕니까. 독립군이 우리고장에 와서 주재소를 치고갔는데 나더러 그 사람들의 뒤바라지를 했다는겁니다. 하긴 밥을 한끼 해먹인게 뒤바라지라면 뒤바라지랄지… 그 벌로 숱한 매를 맞았습니다. 그통에 페인이 되였지요. 류치장문을 나설 때는 겨우 들것에 실려 집에 왔습니다. 엉망이 된 몸으로 자리에 누워있자니 지주놈한테 빚을 지게 됐지요.》 아까보다 더 깊은데서 쏟아져나오는 기침이 다시금 박도삼이를 괴롭히였다. 그는 한참동안 입을 싸쥐고 기침을 눅잦히다가 단념하듯이 팔을 홱 내젓고는 강건너 조국산천을 묵묵히 돌아보았다. 《날씨가 차서 기침이 더 도지는가봅니다. 도삼형님, 자꾸 고집을 쓰지 말고 불곁에 내려가앉으시라는데두요.》 마부대에 앉아있던 젊은 마차군이 기침때문에 안정을 하지 못하는 박도삼이를 측은하게 바라보다가 동정에 겨운 목소리로 권고하였다. 그러자 마부도, 텁석부리도 그의 안해도 이구동성으로 내려와서 불을 쬐라고 간절하게 청하였다. 박도삼은 지꿎게 사양하였다. 《아니, 여기가 더 좋습니다. 사실은 불보다도 담배생각이 더 납니다.》 그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마부가 쌈지에서 담배를 꺼냈다. 리무성은 외삼촌이 담배를 마는 사이 나무꼬챙이 두개를 저가락처럼 꺾어가지고 잉걸불토막을 집어드리였다. 미구에 박도삼의 입에서는 담배연기가 쏟아져나왔다. 《에이, 눈을 맞아도 제 나라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맞고싶구나!》 그는 이불을 추썩거려 가장자리에 덮인 눈을 털면서 혼자소리처럼 중얼거리였다. 《바람도 타향에서 맞는 바람이 더 차고 시리더구만요.》 젊은 마차군이 도삼이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텁석부리사나이의 발치에 잉걸불을 쉴새없이 몰아나르던 리무성이 문득 모닥불에 꼬챙이를 들이던지며 마차쪽을 돌아보았다. 《삼촌, 집에 떨궈두고온 터펑개는 어떻게 됐을가?》 《집에 그냥 갇혀있겠지. 문에 대못을 박아두고 왔으니까. 정말 그 미물도 불쌍한 생각이 든다. 세월을 잘못만나서 짐승들도 그 고생이 아니냐.》 《래일아침부터는 뜨물을 퍼주는 사람도 없겠는데… 먹새좋은 그 터펑개가 촐촐 배를 곯게 됐지.》 《우리가 야밤도주했다는걸 알기만 하면 이웃들이 돌봐주겠지.》 박도삼은 잠시 사이를 두었다가 마부쪽을 향해 말을 이었다. 《동네가 모르게 집을 떠나다보니 애써 기르던 짐승들도 미처 데리고 못왔구만요. 개가 따라나서면 인차 기척이 알리구 거치장스러울것 같아서 두고 왔더니 그것 역시 가슴을 허비는구려.》 《도삼형님, 그까짓걸 가지구 뭘 속을 썩이십니까. 온 가족이 무사히 그 마을을 빠져나온것만 해두 다행이라구 생각하는게 좋겠수다.》 젊은 마차군이 도삼이의 울적한 기분을 눙쳐주려는듯 대수롭지 않게 하는 말이다. 박도삼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그 말을 수긍하였다. 《하긴 그러이. 그래도 그 미물은 정든고장에 남았으니까. 무성아, 그렇지 않느냐. 나는 백운봉에 묻고온 네 어머니생각이 제일 가슴에 맺혀 내려가지 않는다. 떼장도 변변히 입히지 못한 그 쓸쓸한 무덤속에서 네 어머니가 이 겨울을 날 생각을 하면…》 그는 목이 메여 더 말을 잇대지 못하고 쿵- 하고 코그루를 박았다. 《외삼촌, 왜 하지 않겠다던 어머니 이야기는 또 하오? 나하구 무련이한테 약속까지 하지 않았소.》 리무성이 고개도 들지 않고 울먹거리는 소리로 뇌이였다. 박도삼은 한동안 아무 응대도 못하고 담배를 빨기만 하였다. 그러나 한참후에 그는 다시 그 어머니 이야기를 꺼내는것이였다. 《네 어머니 속앓이를 좀 고쳐보려구 터밭에다가 병치료에 좋다는 마늘을 심고 짚을 덮어두었는데 일전에 들춰보니 싹이 여간만 크지 않았더라. 새봄이 오면 그 마늘도 뽐이 넘게 자랄텐데 먹어줄 병자가 봄을 기다리지 못하고 먼저 가고말았으니…》 《외삼촌…》 애원하는 리무성의 목소리는 꺼져들다못해 알아들을수 없는 가는 중얼거림으로 변하였다. 그는 아까보다 더 깊숙이 고개를 떨어뜨리고 꼬챙이로 불무지를 헤치작거리였다. 박도삼은 덤덤히 연기만 뿜어대다가 입에 문 꽁초를 뱉어버리고나서 강건너 조선의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하긴 네 말이 옳다. 다 잊어버려야지. 잊구말구…》 그러나 두볼이 훌쭉하게 꺼져들어간 그의 입에서는 수난에 절은 한숨소리가 연거퍼 새나오더니 얼마후에는 그것이 구슬픈 노래소리로 바뀌여졌다.
일천구백십구년 삼월 일일은 이내 몸이 압록강을 건넌 날일세 년년이 이날은 돌아오리니 내 목적을 이루고서야 돌아가리라
사나이의 웅심깊은 페부에서 흘러나오는 그 곡조는 김성주동지의 쓸쓸한 마음을 다시한번 뒤흔들어놓았다. 그이께서는 몇시간전에 포평나루터에서도 바로 이 노래를 들으시였다. 아니, 그이자신께서도 이 노래를 부르시며 나라를 찾기전에는 다시 돌아가지 않으리라는 광복의 굳은 맹세를 품고 사랑하는 조국을 하직하시였었다. 그이께서는 가슴을 천만갈래로 찢어내는것 같은 망국의 아픔을 온 넋으로 느끼시였다.
압록강의 푸른 물아 조국산천아 고향땅에 돌아갈 날 과연 언젤가 죽어도 잊지 못할 소원이 있어 내 나라를 찾고서야 돌아가리라
붉은 눈송이들이 끝없이 쏟아져내리는 머리우의 아득한 공간마저도 그 선률이 불러일으키는 잃어버린 조국에 대한 향수로 고스란히 젖어드는듯싶었다. 리무성의 눈에서는 눈물이 소리없이 흘러내리고있었다. 그는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두 어깨사이에 머리를 틀어박았으나 거침없이 솟구치는 비분의 감정을 감출수 없었다. 그의 외숙모도 띠개끝으로 눈지방을 누르고있었다. 어느새 모닥불이 사위여가기 시작했다. 시꺼먼 숯등걸만 남은 불무지에서는 나그네의 탄식과도 같은 실연기가 가까스로 피여오르고있었다. 불기운에 발가우리하니 익어들었던 사람들의 얼굴에는 거밋거밋한 음영이 자리를 틀기 시작했다. 《자, 이제는 떠나보지들 않겠습니까.》 마차군청년이 마부대에서 뛰여내리며 말했다. 사람들은 덤덤히 떠날 차비를 서둘렀다. 철주의 어깨를 짚고 가까스로 몸을 일으키는 텁석부리의 무릎에서 관절이 꺾이는 소리가 들리였다. 리무성의 외숙모는 무릎에 누워있는 아이를 깨우느라고 그의 어깨를 성급히 흔들어댔다. 잠을 설깬 처녀애는 일어나서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끄덕끄덕 고개방아를 찧었다. 하지만 앙칼진 눈보라가 휘익- 하고 사납게 덮쳐들자 그 아이는 눈을 번쩍 뜨고 몸을 옹송그리며 불안스럽게 사위를 두리번거리였다. 바람은 불기운이 채 가시지 않은 재티들을 휘말아올리여 사람들의 얼굴이며 등덜미에 들씌웠다. 일행은 어느덧 마차를 뒤좇아 소로길쪽으로 향하였다. 각박한 운명은 모닥불가에 마련되였던 한순간의 안식마저 그들에게서 사정없이 빼앗아낸것이다. 그리고 깊이를 알수 없는 어둠의 나락속으로, 처량한 류랑의 가시밭길로 그들을 매정스럽게 밀어던진것이다. 김성주동지께서는 리무성에게 궤짝을 지워주느라고 맨나중에야 모닥불가를 떠나시였다. 그이께서는 언손을 치마자락으로 싸감고 옆에서 서성거리는 그의 녀동생을 보시자 가슴속에 가득 서리는 뜨거운 련민의 정을 걷잡지 못하고 장갑을 벗어 어린 소녀에게 쥐여주시였다. 《우리 동생을 주면 너는 어떻게 하니?》 리무성이 걸음을 멈추고 목멘 소리로 물었다. 《나는 일없어. 림강까지 가면 되니까. 너희들이야 더 먼데로 가지 않니?》 《그래, 화전쪽으로 가는 저 을룡이하구 텁석부리손님을 내놓고는 모두 무송으로 가지. 샘골이라는데루… 거기에 우리 고향에서 간 농사군들이 수두룩하다는거야. 그 사람들이 외삼촌의 부탁으로 미리 집도 잡아놓고 지주네 땅을 부칠수 있게 농사마련도 해놓았다는구나.》 《그럼 잘 가거라!》 리무성은 눈송이가 떨어져 녹아드는 눈섭을 느리게 슴뻑거리며 김성주동지의 손을 잡아흔들었다. 장알이 박힌 손은 쇠집게처럼 꽛꽛했다. 《잘 가거라, 너도!…》 김성주동지께서도 가슴 뭉클하게 치밀어오르는 석별의 정을 이기지 못하여 그의 손을 놓지 못하시였다. 마차군청년은 허공중에 채찍을 휘둘렀다. 덜커덩- 하는 마차바퀴의 음향이 그 어떤 참혹한 수난의 서곡과도 같이 재빛눈송이들로 가득찬 어두운 공간속에 퍼져갔다. 사람들은 입김을 날리며 마차를 따라 한걸음두걸음 북으로 멀어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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