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0 회)

제 6 장

2

 

기쁨과 불안에 설레이던 마을에 재앙이 닥쳐 사람들은 더욱 속이 뒤숭숭해져 모여앉으면 돌아가는 추측들과 제나름의 생각들을 말하였다.

광산에 일나갔던 지세규가 사흘째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다는것이였다.

그를 봤다는 사람도 없고 그의 행처를 아는 사람도 없었다. 락반사고와 폭발사고를 비롯한 온갖 벼락화에 신경이 날카로와진 광산사람들은 왁작 끓어번지며 의논한 끝에 지세규가 어느 갱에 들어갔다가 무시로 떨어지는 돌에 치워 잘못되였을것이라고 생각하여 모든 갱들의 마구리까지 샅샅이 뒤지였으나 어디에도 그의 시체는 없었다. 하루가 지나서야 왜놈광구장이 신사동쪽 채벌장에 동발목 실으러 간 자동차가 며칠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아 가서 알아보고 오라고 지세규를 거기에 보냈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그때 마침 신사동쪽으로 급히 떠나는 자동차가 있어 지세규가 집에 들리지 못하고 떠났다는것이였다. 사무소 전화로 신사동에 알아보니 동발목은 아직 준비가 되지 못해 보내지 못하고 지세규는 거기 도착해서 하루밤 묵고 광산으로 돌아갔다는것이였다.

그렇다면 지세규는 신사동과 운곡사이에서 실종된것이 틀림없었다. 황득범이와 리정수를 비롯한 광산청년들이 떨쳐나서 그 구간의 수림속을 다 뒤지였으나 그의 종적을 찾을길 없었다. 광업회사 사무소가 이 불상사를 심의하고 위자료를 내주리라는 말도 나돌았다. 청천벽력같은 이 재난은 고산녀를 쓰러뜨리고 세옥의 얼을 앗아갔다. 낮이나 밤이나 사람들이 찾아들어 고산녀를 위로하고 세옥이를 달래였다. 한번은 황득범이와 리정수를 비롯한 몇명의 지하조직원들이 모여와 지세규의 실종경위를 다시 따져보다가 그가 떠나기에 앞서 매우 불안한 얼굴로 황득범에게 신중하게 의논할 문제가 생겼으니 자기가 돌아온 다음 한번 마주앉자고 했다는 말이 나왔다. 그러자 모두 그 신중하게 의논할 문제란 무엇이며 이 사실로 보아 그가 무엇인가 불길한것을 느끼고있은것이 아닌가 하고 추리들을 했다. 이때 눈이 퉁퉁 부어오른 세옥이 끼여들었다. 처녀는 그날 자기 집에서 있은 미심쩍은 일을 말하고 오빠가 갑자기 리하섭을 의심하여 몹시 마음을 썼노라고 했다. 순간에 광부청년들의 얼굴이 해쓱하게 질리고 방안공기가 선뜩 얼어들었다. 리하섭이 밀정이라면 그놈이 사살한것이 아닌가? 청년들의 머리에 같은 생각이 번개쳤다.

이튿날 아침 리정수가 품속에 비수를 품고 광산사무소를 찾아들어가 리하섭을 찾으니 백암쪽으로 출장갔는데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고 잘라말하였다. 청년들은 그놈이 지세규를 사살하고 몸을 피했다고 단정하고 가깝고 먼곳의 골짜기들과 산발들을 뒤지며 동료의 시체를 찾았다. 세옥이도 오빠동무들을 따라 산발을 헤매였고 고산녀도 이웃 림산마을들에 가 수소문도 해보고 산기슭들의 어스름한 나무덤불속을 뒤져도 보았다.

무심히 흐르는 물속을 들여다도 보며 개울가를 오르내리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끝내 몸져눕게 되였으며 밤에 소리없이 울다가 아주 실성해버렸는지 중얼중얼 헛소리까지 하였는데 새벽녘에는 어디로인가 자취를 감춰버렸다. 재난뒤에 또 불길한 일이 뒤따라 광산마을이 발칵 뒤집혔다. 청년들이 모두 떨쳐나서 세규의 어머니를 찾아 돌아다녔다.

어머니의 종적 역시 찾을길 없었다.

그때 고산녀는 60리길을 정신없이 걸어 신사동 채벌장으로 찾아가 아들이 왔다간것이 사실이란것을 확인하고 돌아섰다. 가슴에서 불이 황황 일어 제정신이 아닌 그는 돌아오다가 길가의 마른 풀덤불이 량쪽으로 쓰러져 곬이 진것을 띄여보고 무작정 숲속으로 들어가 발길이 가는대로 아들을 찾아헤매였다. 애어린 나무가지들이 볼을 스치고 가시풀이 발목을 허비였다. 활등처럼 휘여져내린 고목의 가지들에 치렁치렁 드리운 송라가 머리를 스치고 눅눅한 거미줄이 얼굴에 덮씌웠다. 무엇엔가 걸채여 앞으로 꼬꾸라지기도 하고 두텁게 깔린 락엽속에 발이 푹 빠져 주저앉기도 하였다.

그러나 아랑곳없이 아들을 찾자는 불같은 마음에 이끌려 쓰러졌다가 일어나고 일어나 걷다가는 다시 엎어지면서도 단념할줄 모르고 걷고걸었다. 어머니는 체소하고 쇠약해져 어지간한 바람에도 날아갈것 같은 몸이지만 자식을 찾는 그 기력은 자식에 대한 사랑만큼 무궁한것이였다. 어머니는 이 숲속에서 아들을 꼭 찾을것만 같았다. 그래서 자기가 천리수해속으로 점점 깊이 들어간다는것도 느끼지 못하고 끝없이끝없이 걸어나가며 숲속을 뒤지였다. 가다가 다른데로 가서 찾을가 하여 멎어서면 열댓걸음앞 락엽무지속에 아들이 묻혀있는듯 하고 그냥 곧추 찾아나갈가 하면 가까운 옆 칡넝쿨속에 아들이 쓰러져있는듯 했다. 그래서 멎어섰다가는 넋없이 달려나가고 꺾어돌았다가는 다시 앞으로 혹은 옆으로 걸어나가군 하여 어디가 어딘지 동서남북도 가리지 못하게 되였다. 정신도 점점 얼떠름해졌다. 원시림의 온갖 신비가 불쌍한 어머니를 우롱하였다. 맞닿은 나무가지들이 쓸리는 소리는 아들이 기여오는 소리같고 수풀이나 락엽의 버스럭소리는 숨져가는 아들이 몸을 뒤채기는 소리같았다. 사람의 비명소리같은 메새의 청승맞은 울음소리, 언뜻거리는 나무줄기들, 가까운 수풀에서 씨근거리는 산짐승의 숨소리, 덧없이 설레이는 나무가지들의 그림자, 무덤처럼 두두룩한 락엽무지, 바위에 떨어져 어른거리는 해빛… 그 모든것이 어머니를 유혹하여 절통한 가슴에 불을 달고 정신없이 뛰여다니게 하였다. 때로는 속은것이 분하여 락엽을 안아 활활 뿌려던지기도 하고 희끗희끗한 나무줄기에 침을 뱉기도 하였다. 그리고는 그옆에 펑덩 주저앉아 슬피 울었다. 그러다가 울음이 잦아들즈음에는 갖가지 후회가 밀려들어 가슴을 찢었다.

갓난애기적 세규가 젖만 빤다고 때린 일, 공부 못시킨 일, 아버지가 돌아간 다음 농사일만 시키고 나들이옷 한벌 해입히지 못한 일, 둘째가 집을 떠난 다음에는 그 둘째만 생각하고 맏이는 늘 생각밖에 둔 일, 운곡에 와서 세규를 착실하게 도와주지 못한 일… 그런 후회 역시 자식에 대한 사랑만큼 끝없는것이였다.

(내가 죄를 지었구나… 세규야, 어디 있냐? 네가 잘못된건 다 내탓이다. 리하섭이놈만 집에 안 끌어들였어두 이런 일이야 생겼겠니.)

어머니는 넋없이 두리번거리다가 목청껏 아들을 불렀다.

《세규야-》

《세규야-》

그 절통한 부르짖음은 거창하게 설레이는 천리수해우로 날아올라 피빛노을이 황황 타오르는 저 아득한 하늘가까지 메아리쳐가는듯 했다.

《세규야-》

절망과 자책감과 온갖 후회로 하여 점점 더 애절해지는 그 부르짖음소리는 메새들을 놀래워 하늘로 날려보내고 짐승들을 쫓아버리면서 어스름이 스며드는 우중충한 수림속에 끝없이 울려퍼졌다.

어머니는 어디서인가 화답소리가 들려오는것 같아 귀를 강구기도 하였다. 그러나 아스라하게 솟은 나무우듬지들을 스치는 바람소리만 들려올뿐이였다. 아들을 찾는 그의 목소리에서는 차차 비통한 음조가 가셔지고 다정하고 따뜻한 감정이 비끼였다.

《세규야-》

《세규야-》

아득한 옛적 어머니는 정지문을 열고 밖에서 조무래기들과 어울려 장난을 쓰기에 끼니까지 잊은 아들을 그런 목소리로 불러들였었다. 이웃집에 심부름을 보낼 때에도, 설날 외가집에 같이 가자고 찾을 때에도 그런 목소리로 불렀었다.

아들은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어머니의 목소리에 갑자기 노여움이 서리기 시작했다.

총총한 나무줄기들사이로 흘러내리던 시뻘건 노을빛이 어느덧 거멓게 스러져가고 저녁어스름이 자욱히 밀려들기 시작하였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두리번거리던 고산녀는 모든 색갈과 형태들을 지워버리며 소리없이 밀려드는 저 앞쪽어스름속에 아들이 서있는듯 하여 황황히 걸어나갔다. 괴괴한 어스름속에 아들이 서있다. 키며 얼굴생김새, 옷차림을 뜯어봐도 아들이 맞다. 그러나 아들은 어머니가 다가가면 그만큼 물러가고 어머니가 서면 멎어선다.

《이녀석아, 너 왜 에미를 피하느냐?》

《어머니, 집에 돌아가십시오.》

《같이 가자.》

《나는 못 갑니다.》

《왜?… 왜?…》

고산녀는 자식의 그 무정함에 놀라 가슴이 얼어들었다.

그는 애간장이 터져 울음소리를 터뜨리며 달려나가 아들을 부둥켜안았다.

차고 굳고 꺼슬꺼슬한 물체가 가슴에 선뜩 안겨들었다. 그것은 벼락을 맞아 허리부러진 강대그루였다.

고산녀는 쇠메로 머리를 얻어맞은듯 가느다란 신음소리를 내며 그밑에 맥없이 쓰러졌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꿈결에서처럼 버스럭소리가 가까이로 다가오고 인기척이 났다.

《녀자가 아니요?》

《나이든… 어머니입니다.》

《여기 근처에 인촌도 없겠는데… 허, 기막힌 일두… 어떻게 이런데서 홀로 숨졌을가?》

《무슨 연고가 있었겠지요.…》

《이거 어쩐다?》

《파묻어줄가요?》

《그러자구, 짐승들도 많이 싸다니겠는데…》

고산녀는 꿈을 털어버리려고 몸을 뒤채기였다.

《아니, 이거… 이거!…》

《살았소! 살았소!》

고산녀는 허망한 소리가 지꿎게 달라붙는 귀를 손으로 몇번 털고는 추위에 오싹 몸을 떨며 눈을 떴다. 굼실거리는 희부연 안개속에서 두 그림자가 어른거리며 다가와 그를 안아일으켰다.

《어머니, 어머니, 어디 사십니까?》

《저희들을 무서워하지 마십시오.》

고산녀는 그 두 그림자를 밀어버리고는 다시는 속지 않으려고 눈을 꾹 내리감고있다가 모지름을 써 일어났다.

사위는 희붐하고 괴괴한데 밀림속에는 젖빛안개가 굼실거리며 흐르고있었다.

나무들의 밑둥이 모두 그 안개바다에 잠겨있다. 이 어둠침침하고 무서운 숲속에서 자기를 속이지 않는것이란 없다는것을 잘 아는 고산녀는 다시 다가오는 두 그림자를 피하여 주춤주춤 뒤걸음질쳤다.

두 그림자는 주눅이 좋게 슬금슬금 다가오며 귀맛이 좋은 소리만 하였다.

《집이 어딥니까?》

《데려다주지요.》

《업어다드리겠습니다.》

고산녀는 왈칵 분통이 터져올라 사납게 부르짖었다.

《썩 비켜! 썩 물러가라!》

《어머니!》

《너들은 산귀신들이냐, 뭐냐? 사람을 그만큼 속이구 골려줬으면 됐지…》

고산녀는 홱 돌아서 황황히 안개속으로 걸어들어갔다. 그러다가 뒤쫓아오는 소리가 하도 절절하고 미심쩍어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았다.

낯선 군복에 총을 어깨에 건 두 장정이 굼실거리는 안개속에 아래도리를 잠그고 측은한 눈으로 이쪽을 보고있다.

《어머니, 무서워마십시오.》

《피하지 마십시오.》

《저희들은 조선인민혁명군입니다.》

《…뭐라구요?》

고산녀는 가슴이 화들화들 떨렸다.

《조선군대유격대유격대를 모릅니까? 왜놈들과 싸우는… 일성장군님이야 알겠지요? 그분이 령솔하는…》

《예?…》

고산녀는 넋빠진 눈으로 그들을 지켜보았다. 그들은 빙그레 웃고있는데 군모마다에 빨간 별이 붙어있다.

세규가 일일천추로 기다리던 유격대가 온것이다.

고산녀는 갑자기 설음이 터져올랐다. 울대며 아래턱, 입술이 마구 떨렸으나 눈물은 다 말라버렸는지 나오지 앉았다.

어머니는 허물어져내리듯 안개속에 쓰러져 두손으로 풀포기들을 쥐여뜯으며 헛소리처럼 뇌이였다.

《세규야, 왔다!… 왔다!… 그렇게 기다리다가… 며칠을… 며칠을… 못 참아 죽었구나!…》

얼마후 고산녀는 두 군대에게 안겨있었는데 그들은 물통의 물을 방울로 떨구어 다 타버린 입술을 적셔주며 자기네도 고향에 어머니를 두고있으니 자식처럼 여기고 어려워하지 말라고 하였다.

억대우같이 생기고 성미가 드세여보이는 군대는 이름이 강태수이고 그보다 젊고 푸수해보이는, 얼굴에 례절밝아보이는 사람은 이름이 리동걸이라고 하였다.

두 군대는 고산녀를 친어머니처럼 대하며 주머니에서 과자까지 꺼내 요기를 시켜주었다.

리동걸은 수건을 이슬에 적셔 얼굴을 닦아주고 강태수는 손칼을 재치있게 척척 놀려 새끼손가락만 한 나무꼬챙이로 비녀를 제꺽 만들더니 어디서인가 구리비녀가 빠져 엉망으로 헝클어져내린 머리칼을 슬슬 다듬고 둘둘 말아 쪽지더니 그 나무비녀를 꾹 찔러주었다.

고산녀는 눈물이 그렁하여 그들의 손이 하자는대로 머리를 내맡기고있다가 남의 로친네 머리칼까지 쪽져주는 이런 군대가 어디 있을가싶어 강태수와 리동걸의 손을 잡아쥐고 처음으로 말을 건네였다.

《고맙소.…》

이렇게 입이 떨어져 말들이 오가는 가운데 강태수가 밀림속에 들어오게 된 사연과 죽었다는 사람에 대하여 물었다.

고산녀가 사연을 다 털어놓자 두 군대는 똑같이 눈이 휘둥그래졌는데 리동걸이 먼저 무엇이라고 말하자는것을 강태수가 팔굽으로 쿡 찔러 눌러놓았다.

그들은 무엇때문인지 고산녀뒤로 저만치 물러나서 마주서더니 근심스러운 얼굴로 수군수군 의논하고 돌아왔다.

극도의 불행감에 두려운것이 없는 어머니는 그저 좀 의아해진 얼굴로 그들을 쳐다보았다.

강태수가 다심한 얼굴로 어머니의 손을 잡아쥐며 조용히 말했다.

《어머니, 저희들하구 같이 가야 하겠습니다!》

《가다니요?》

《저희들 부대가 여기서 얼마 멀지 않은 곳에 와있는데 같이 갑시다. 어머니를 좀 요기를 시키자고 그럽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또 쓰러집니다. 신색이 말이 아닙니다.》

살고싶은 생각이 조금도 없는 고산녀는 요기는 해서 무엇하랴싶었지만 그들의 극진한 성의를 물리칠수 없어 마지못해 응하였다.

강태수와 리동걸은 고산녀를 량쪽에서 끼고 천천히 걸어갔다.

그들은 걸어가며 여러가지 위로의 말도 하고 우스개소리도 했는데 강태수가 이 세상은 넓고넓어 세상만물은 천태만상이고 인간생활은 각양각색이며 인생의 곡절은 기구하기 그지없으니 어머니한테도 훤한 날이 있겠는지 알겠는가 하고 중이 념불외우듯 엮어내렸다. 고산녀는 너무 어이없고 또 서러운 생각도 들어 이제 좋은 사위나 맞으면 어떻겠는지 하고 뇌이였다. 그러자 강태수는 사위도 사위겠지만 아들들중에서 누가 살아있든지 둘 다 살아있으면 더 낫지 않겠는가고 하며 지세천이란 이름은 어디서 들은것 같다고 하였다.

고산녀는 한숨을 내쉬며 그 애는 죽은지 오래다고 하였다.

《어머니, 죽은걸 본 사람이 있습니까?》

《유격대로 가다가 놈들한테 잡혔다는데 살아있으면 아직까지 감감 무소식이겠소?》

《죽었다는것 하구 감감 무소식이란것 하구야 다르지요. 우리 조선사람은 하도 화를 많이 입어놔서 나쁜 짐작은 곧잘하는데 좋은 짐작은 못한단 말입니다.》

《거기서는 언제 우리 애 이름을 들었소, 어디서?…》

《글쎄요, 어제그제 들은것 같기도 하고… 이 머리가 막돌이나 같아서 잘 생각나지는 않지만… 좌우간 그렇지요. 어머니, 맏아들 경우도 그렇습니다. 그저 없어져 종적을 알수 없을뿐인데 어디 가서 살아있는지 어떻게 압니까?》

고산녀는 귀맛이 좋은 소리를 들어 속이 좀 열리는것 같았지만 한편으로는 이 사람이 불쌍한 로친네 불행을 입에 올려 말장난이나 하는게 아닌가싶어 고깝게도 여겨졌다. 그래서 입을 고집스럽게 다물었다가 리동걸이라는 젊은이를 흘깃 훔쳐보니 그 역시 싱글벙글거렸다.

고산녀는 갑자기 마음이 활랑거렸다. 순간에 열가지, 백가지 의문이 뇌리를 스쳤다. 이 사람들이 무엇인가 알고있는것이 아닌가. 이 로친네가 어찌는가 보자고 엉큼한 수작질을 할 사람들은 아닌것 같은데 어찌된 일인가? 무엇을 갑자기 알려주면 몸이 약한 내가 기절할가봐 굶어죽어가던 사람에게 미음을 조심스럽게 떠먹이는것처럼 야금야금 알려주자는것이 아닐가. 아까 그래서 둘이 따로 수군수군 의논한것이 아닌가.

고산녀는 떼보처럼 펄썩 주저앉아 새까맣게 질린 얼굴로 부르짖었다.

《아는게 있으문 한꺼번에… 속시원히 다 말해주오, 이러지 말구.… 내가 자식들때문에 얼마나 애간장을 태웠는지 아시우?》

그러자 강태수가 몸을 휙 돌려 고산녀에게 떡판같은 잔등을 들여대며 큰소리로 웨쳐댔다.

《젠장, 모르겠다. 자, 업히시오. 두 아들이 다 살았수다. 내 업구 가서 뵈드리지요!》

고산녀는 그 잔등을 떠밀지도 못하고 멍한 눈으로 곁에서 싱긋이 웃고있는 리동걸이만 지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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