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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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월  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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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날바다우에서 어느덧 보름째가 되던 날 망망하기만 하던 푸른 대양의 한끝에 드디여 흰색점이 나타났다.

《태자님, 저기 보이는 흰 점이 사라센의 동남단이옵나이다.》

이렇게 말하는 무함마드로인의 눈에 눈물이 함뿍 어려있었다. 더없이 귀중한 이국의 사절들을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시킨 안도감에 휩싸였던것이다. 로인은 손으로 눈귀를 닦으며 사인을 바라보았다.

《사인아, 너도 옛날 나를 따라 이 항구에 와본 일이 있지 않느냐?》

《예, 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옵니다. 저 땅에 내려 흐르는 물을 마시고 배앓이를 만났던 일이며 아버님께서 아무 물이나 마시면 안된다고 타이르시던 말씀이 어제런듯 떠오르옵니다.》

사인은 고국이 못내 그리웠다. 특히 땅에 흐르는 물이면 어느것을 마셔도 시원하고 달고 맛있는 고국의 물이… 그리운 고국을 뒤에 두고 수만리 바다길에 나선 때로부터 벌써 몇달… 두고온 고국, 다시 돌아갈 땅이건만 누구나 그리움에 젖어드는데 저곳에서 내버려진 다섯명의 소녀들의 심정이야 오죽하랴.

배전에 나와 저들의 고향땅을 바라보고 서있는 아라비아의 나어린 소녀들도 눈물에 잠겨있었다.

세 소녀의 손목을 잡고있는 왕후의 가슴에도 뜨거운 눈물이 동이로 가득차오르고있었다.

손목을 잡고있는 아라비아의 딸들이 이제는 드디여 품에 안길 어머니를 그리며 눈물을 터치고있는데 저편에 버려진 고려의 딸들은 어떠한 희망도 없는 절망속에서 눈물조차 말라버렸을것이였다.

어머니를 그리는 다섯 딸들이 던져진 저 땅!

어머니가 도착은 하였다만 너희들이 간 곳을 아직은 알수 없어 어머니도 너희들도 달려갈수 없으니 가슴은 뜨거워도 얼굴빛은 차거웁고 내리는 눈물도 얼음물이로구나. 애들아, 너희들은 어디에 있느냐?…

배는 드디여 항구에 들어섰다.

무함마드로인이 먼저 내려 낯설은 선단을 향해 달려온 관리들에게 무어라고 설명을 하였다. 그들은 아득히 먼 동방의 해뜨는 나라에서 온 선단이라는 말을 듣고 신비의 세상 사람들을 만난듯 처음엔 놀라하더니 인차 기쁨을 표시하였다.

로인이 관리들에게 사례의 표시로 금화를 한잎씩 주었으나 그들은 받지 않았다. 재차 권해서야 동방의 고려금화라니 기념품으로 건사하겠다고 하였다.

그들은 로인과 얼굴을 마주대고 코를 서로 비비며 인사를 나누었다.

잠시후 몇마리로 구성된 락타무리가 나타나자 관리들은 곧 그것을 타고 떠나갔다. 그들이 손까지 흔들며 간 다음 얼마 지나지 않아 언덕우에 더 큰 락타무리가 나타났다.

락타의 걸음걸이가 하도 빨라서였는지 그 대렬은 곧 부두에 이르렀다.

락타에서 내린 군사들은 배앞에 주런이 렬을 맞추어섰는데 무함마드로인이 대장인듯싶은 장교를 앞세우고 배우에로 올랐다.

박장룡과 신사인이 일어서며 례를 표시하였다.

장교 역시 두발꿈치를 모으며 뭐라고 목청을 높였는데 인사말인것 같았다. 후에 들은데 의하면 동방의 고려손님들을 추장의 이름으로 환영한다고 했다는것이였다.

대장이 정중한 자세를 취하며 뭐라고 말한 후 한걸음 물러섰다. 사인이 추장께서 왕후와 태자님을 환영하는 연회를 차리고 초대한다고 했다는것을 말해주었다.

박장룡은 얼핏 태자의 의사를 알아보아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렀으나 이곳의 추장이란 곧 임금이니 응해야 하리라고 판단하였다. 이때 무함마드로인이 그의 귀에 대고 다섯 소녀중 셋이 왕궁에 있다고 소곤거렸다.

그는 한달어간에 우리 말을 어지간히 깨쳤던것이다.

박장룡은 정신을 번쩍 차리며 대장에게 우선 감사를 표시하고 초대에 응한다고 대답하였다.

장교가 이제 한시간후에 자기가 다시 와서 안내하겠다며 배를 내리려하자 박장룡이 신사인을 통하여 《흑상어》가 잡아갔던 아라비아의 세 소녀를 데려왔다고 알려주었다. 장교는 소스라쳐 놀라며 박장룡에게 달려들어 발뒤축을 들고 얼굴을 비비였다.

그의 눈에 눈물이 고인것으로 보아 이곳에서도 자식들을 잃은 부모뿐만아니라 온 추장국에 어두운 그늘이 끼여있었다는것을 알수 있었다.

눈굽을 찍으며 아이들을 데리고갔던 장교는 조금 지나서 왕륭이네 일행이 타고갈 락타들을 끌고 다시 나타났다.

고구려식가죽코신에 치마와 소매가 긴 저고리를 입고 연람색의 쓸치마를 쓴 왕후와 시녀가 탄 락타들을 중심으로 한 고려사람들의 행렬은 아라비아락타병들의 호위하에 길을 떠났다.

검은색이 많은 이 나라의 옷차림과는 달리 푸른 쓸치마를 쓴 고려녀인들의 아름다운 모습은 저 하늘이 사막우에 내려앉고 두송이의 청신한 꽃이 핀듯싶어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왕궁에서는 잘생긴 추장이 나와 친절히 맞이하였다. 그의 뒤에 서있는 부인은 눈만 내놓은 상태로 인사를 하였다.

추장은 태자와 남자들을 차례로 껴안고 볼을 비비였으며 왕후에게는 가벼이 머리를 숙이였다. 아마도 고려의 례의에 따른 인사 같았다.

왕후와 시녀도 쓸치마를 벗어들고 허리를 굽혀 반절을 하였다.

연회에 앞서 추장이 인사말을 하였다. 그 말속에는 해적들에게 잡혀갔던 아라비아의 소녀들을 구원해준 고려손님들의 은혜는 천사도 베풀수 없는것이라는 감동적인 구절도 있었다. 추장의 부인은 눈물까지 흘렸다.

연회상에는 먼저 수박과 레몬을 비롯한 시원한 과일들이 나와 더위에 시달렸던 일행의 정신과 육체를 안정에로 이끌었다. 다음에는 꿀과 밀가루를 반죽하여 구운 빵과 양고기를 넣고 찐 빵들이 나타났으며 세번째로는 푹 삶은 양고기와 고추, 겨자, 향료로 간을 맞춘 해바라기국이 나왔다.

음식을 나르는것은 모두 아이들이 하였는데 남자들에게는 사내애들이, 녀자들에게는 어린 소녀들이 음식들을 날라왔다.

남자애들은 모두 귀엽게 생겼으나 소녀들의 얼굴은 눈밖에 보이지 않았다.

이상한것은 검은색통옷인 토브를 입고 머리에는 터번을 쓴 소년들은 모두다 웃음을 짓고있었으나 소녀들의 얼굴에 겨우 보이는 눈들마다에는 눈물만이 가득 고인듯싶었다.

고려손님들은 이 나라 소녀들의 눈빛이 원래 슬픔에 젖은듯 한 모양이라고 리해하려 하였으나 자연히 쓸쓸해지는 마음을 어쩔수 없었다.

이어 차가 나왔는데 그것을 마시면서 주인들은 이야기속에 활기를 심으려고 애쓰는것이 알렸다.

추장의 말을 사인이 통역하였다.

《지금으로부터 썩 오래전에 고구려의 상선단이 우리 항구에 들어왔었다고 하나이다. 우리 할아버님이 말씀하시기를 또 선대 할아버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라고 하신것으로 보아 아마도 수백년전에 있은 이야기 같소이다. 너무 아득한 시기의것이여서 재미없지 않겠는지요?》

사람들은 모두 재미있다며 어서 계속해달라고 재촉하였다.

《그들이 싣고온 고구려비단은 중국비단과 달라 아라비아사람들을 더욱 놀라게 하였고 약재들은 불사약으로 인정되여 금이나 은보다 비싼 값으로 팔렸다고 하오이다.

처음엔 사람의 형태를 그대로 닮은 부루시리라는 약재가 어떻게 쓰는것인지 알수가 없어 모여든 사람들이 구경만 하였는데 바그다드-싸마르칸트의 비단길을 다녀온 한 상인이 상상도 못할 액수의 금화를 내고 그것을 통채로 사려했다는것이지요. 그 바람에 그것이 불사약이라는것을 짐작한 부자와 상인들이 너도나도 값을 올려부르는 바람에 처음값의 열배나 올랐다지 않소이까.

그러나 고구려상인들은 처음값으로 골고루 팔아주었으며 부루시리를 알아본 그 상인에게만은 특별히 많이 팔아주었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오고있소이다.》

추장이 이야기를 끝내자 추장부인이 보자기를 풀고 자기의 모습을 드러내놓으며 뭐라고 속살거렸다. 추장은 다시 말을 이었다.

《우리 증고조 로할아버지는 고구려상인들을 통하여 수나라의 300만대군을 쳐이긴 고구려사람들의 영웅담을 듣고 몹시 감동되였었다고 하였나이다.

어린시절부터 그 영웅담에 반하였던 나는 추장으로 즉위하기 전에 고구려영웅들의 모습을 보고싶어 비단길을 따라 바그다드에서 싸마르칸트까지 가본 일이 있었소이다.

싸마르칸트의 아프라샤브왕궁에 옛 벽화가 있었는데 거기에는 두명의 고구려사신이 그려져있었소이다. 그들의 름름한 모습을 보면서 (고구려의 영웅들이 저렇게 생겼구나.)하고 머리에 새겨넣었더랬소이다.

그런데 오늘 내가 직접 고려의 귀빈들을 맞이하고보니 그림의 영웅들이 살아나와 우리 집에 온듯 한 감동을 금할수 없나이다.》

왕륭도 추장의 이야기에 감동을 표시하였다. 그는 고국으로부터 수만리 떨어져있는 이국의 왕궁에 고구려사신의 그림이 그려져있다는데서 선조들에 대한 존경심을 더욱 높일수 있었다.

《왕후마마께서 수만리 바다길을 헤쳐오신 그 용단은 고구려의 어머니들은 어떤 녀인들이며 그들이 키우는 후대들이 어떤 사람들인가를 보여주는 또 한폭의 명화로 이 궁전에 영원히 새겨질것이옵나이다.

왕후마마와 태자님 아니, 고려사람들의 그 진정을 내 이제 다 알았으니 무엇을 더 주저하리이까? 많은 금화를 주고 사긴 하였지만 고려의 소녀들을 다 돌려드리겠나이다.

여러분들이 걸은 수만여리의 로정에 제가 무엇으로 감동을 표시할수 있겠나이까? 우리 종족의 사활적운명을 맡기려 했던 소녀들은 고국으로 보내지만 왕후님과 태자분, 소녀들의 발자욱은 우리 수도의 항구에 그대로 남을것이며 우리의 가슴속에도 새겨질것이오이다.》

추장은 아쉬운듯 자기 부인의 얼굴을 바라보며 쓸쓸한 표정으로 한숨을 폭 내쉬였다. 주위를 둘러보던 부인이 주방문쪽에 오구구 모여 이쪽만을 바라보고있던 소녀들을 보았다.

《애들아, 이리 나오너라.》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접대를 하던 세 소녀가 쪼르르 달려와 추장부인앞에 섰다.

《자, 이제는 아라비아사막의 달밤에서 벗어나서 해뜨는 나라 고려의 아침을 맞이하거라. 애들아, 얼굴에 쓴 수건들을 벗거라.》

부인의 목소리에 추장도 머리를 끄덕이였다.

아이들은 떨리는 손으로 검은 보자기를 풀어 평상에 떨어뜨렸다.

순간 왕후는 자기의 심장이 멎는듯싶은 충격과 모진 동통에 눈을 감았다.

그러나 그의 눈에는 자기의 친딸 자하의 얼굴이 새겨지고 다른 두소녀의 모습도 함께 멎어섰다. 다시 눈을 뜨면 그 모습이 봄날의 안개처럼 사라질것 같았으나 아픈 심장을 진정이며 눈을 뜨지 않을수 없었다.

눈에 새겨진대로, 망막에 멎은대로의 모습은 그의 앞에 서있었으며 안개처럼 사라지지도 않았다.

그 애들의 핼쑥한 모습은 심장을, 가슴을 더 세차게 두드리며 한걸음두걸음 다가왔다.

이렇게 다가서던 세 아이가 한꺼번에 《와-》하고 울음을 터뜨리며 왕후의 품에 달려들었다.

《엄마-아-》

세 아이는 왕후의 품을 파고들며 세차게 울었다.

왕후는 아이들을 와락 그러안은채 눈을 감았다. 이를 사려문 그의 입에서 피가 흘렀다.

붉은 피가 슴새여나오는 왕후의 입에서 웅얼거리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자하야, 국화야, 구화야!》

그 말을 들은 박장룡과 신사인은 깜짝 놀랐다. 그 세 이름은 왕후의 세 딸의것이였으나 자하 하나만이 안겨있기때문이였다. 그래서 왕후의 흥분이 지나쳐 의식에 이상이 생기지 않았나 의심한것이였다.

그러나 왕륭만은 눈물을 참으며 머리를 끄덕였다.

어머니에게 있어서 세 소녀는 남의 딸이 아니라 하나와 같은 자기의 혈육이였고 고려의 딸들이였던것이다.

왕륭은 신사인에게 나머지 두 아이에 대해서도 물어보라고 하였다.

추장의 부인이 눈물을 훔치며 띠염띠염 말을 하였다.

《추장께서는 고구려라는 이름에만 관심이 있었나이다. 한 아이는 신라, 다른 아이는 백제출신이여서 관심이 없었는데 백리밖에 있는 마을의 다른 촌장이 사갔다고 하오이다.》

실눈을 가까스로 유지하고있는 왕후에게 왕륭이 조심히 말하였다.

《왕후마마, 제가 가서 아이들을 찾아오겠나이다. 근심 마시옵소서.》

《아무렴, 찾아야 하고말고… 그 애들을 데려가지 못한다면 내가 어찌 고려의 어머니라 하겠나?》

추장은 백여명의 병정과 락타를 보장해주겠다고 하면서도 좀 난감한 기색을 보이였다. 얼마전에 지나간 침략군무리가 퍼뜨리고 가버린 전염병이 그곳에 만연하여 머지않아 그곳의 생명은 모두 사라질것이라는 말이 돌아가기때문이였다.

추장은 비통해하면서도 약속대로 백여명의 락타병을 보장해주었다.

왕후가 가까스로 몸을 유지하고 서서 떠나가는 태자에게 말하였다.

《태자, 우리가 가지고온 약재로 그들을 치료할수 있지 않겠소? 약재들을 가지고 가오.》

왕륭은 깊은 생각에 잠겨 심중한 낯빛을 지었다.

《왕후마마, 저도 그 생각을 하였나이다. 어머님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하겠으니 마음놓고 계시옵소서.》

의술에도 밝은 왕륭은 락타병들의 어마어마한 호위하에 일행과 함께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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