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 회)

제 1 장

돈앞에 세워보라

7

대하의 격류속에서

 

(5)

 

그날밤 앙드레는 생각에 잠겼다.

뒤늦게야 주체사상에 접한 그는 사회활동의 폭을 보다 넓혀오지 못하고 시대에 보다 민감하지 못한 자기자신을 새삼스레 깨달으며 자책속에 잠 못 이루었다.

왜서인지 이밤따라 그의 귀가에는 아버지의 마지막당부, 눈을 감으며 아버지가 남긴 유언이 더욱 절절히 울려오는것이였다.

《내 아들아! 우리 나란 살기좋은 땅이다. 하지만 불행한 땅이다. 네 조상들은 이 땅을 지키지 못하고 백인들의 노예로 멀리멀리 팔리워갔다.부디 불행한 이 땅을 구원하고 지켜갈 길을 찾아라.》

앙드레는 아버지의 마지막당부를 마음속의 가장 깊은 곳에 소중히 간직하고있었다. 아버지는 이 말과 함께 앙드레의 마음속에 영원히 살고있었다.

이 땅을 지켜갈 길!

아버지가 바라던 길!

루뭄바가 원하던 길!

그 길이 바로 주체의 길이 아니겠는가.

주체사상에는 루뭄바의 념원, 인류의 념원도 다 있다. 의심할바없이 세계가 다 들어차있다!

주체사상을 받아들인다면 틀림없이 자기자신의 완벽성과 민족성을 더 잘 갖추게 될것이라고 생각되였다. 주체사상은 나라의 민족성을 더 잘 부각시킬것이며 또한 아프리카민족들의 자주적이며 항구적인 발전을 추동하게 될것이다. 바로 그 철리를 주체사상이 우리에게 강조해주는것이 아닌가.

민족이 나아갈 길을 줄곧 모색해오던 앙드레는 드디여 태양의 광채앞에서 자기를 새롭게 발견한듯 한 심정이였다.

《주체사상의 시각에서 본 사람과 과학, 사회에 관한 자이르전국토론회》의 의제로 진행된 그날의 토론회는 민주꽁고에서 제1차로 진행된 주체사상전국토론회였다.

당시 그 토론회는 커다란 감화력으로 전국에 파급되였으며 그때부터 민주꽁고에서 전국토론회는 거의 해마다 진행되였다.

앙드레는 회의장을 비롯하여 할수 있는 모든 조건을 전적으로 보장해주었고 오떼떼, 로까디를 비롯한 신봉자들과의 긴밀한 련계속에 책들을 구입하여 읽으면서 보다 활력에 넘쳐 새로운 사조의 연구보급의 길에 나섰다.

주체사상을 창시하고 빛내여주신 절세위인들에 대한 그의 흠모심은 이렇게 싹텄으며 날이 갈수록 더해갔다. 그는 전세계가 특히 쁠럭불가담나라인민들이 조선의 위대한 절세위인들께 최대의 감사를 드려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앙드레는 주체사상의 원리들을 해면이 물을 빨아들이듯이 받아들이였으며 인간은 이 세상에서 가장 힘있는 사회적존재임을 확신하였다.

그렇다, 운명의 주인은 나다! 우리들이다!

주체사상은 인간해방의 불멸의 노래다!

앙드레는 주체사상의 견지에서 자기 조국의 현실을 새롭게 해부해보기 시작하였으며 또한 주체사상과 자기 조국의 민족적영웅인 파트리스 에모리 루뭄바의 사상과의 공통점을 찾아보려고 노력하였다.

며칠간을 연구하고 분석한 결과 그는 주체사상이 내세우는 원칙들이 민주꽁고인민들이 투쟁의 지침으로 삼아야 할 고귀한 진리로 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때문에 그는 주체사상에 대한 연구는 민주꽁고인민의 공민적의무로 간주되여야 하며 남녀로소전체에 대한 교양으로 되여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오떼떼동지!

주체! 참으로 이 사상은 온갖 외래통치로부터, 부르죠아적, 봉건적인 온갖 지배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며 사람들에게 훌륭한 집을 주고 그들에게 질병, 기아, 몽매에서 벗어나게 하는 길과 방도를 제시하여주는 위대한 학설입니다.》

《그 궁극적목적은 인간의 해방과 행복이니까!》

앙드레와 오떼떼는 이렇게 환희와 격동에 넘쳐 말하였다.

앙드레의 탐구는 계속되였다.

그렇다! 많은 사조들이 인류력사를 다채롭게 하였다. 하지만 오늘날 자기의 과학성과 정당성, 생활력으로 하여 우리 시대를 가장 이채롭게 장식하여주는 사상은 자주의 리념으로 알려진 주체사상이다.

매개 나라와 인민은 자기의 력사와 문화, 전통을 가지고있으며 자기의 구체적인 실정이 있다. 때문에 주체사상에 대한 옳은 리해를 가지고 자기 나라의 구체적실정에 맞게 창조적으로 받아들이며 그것을 자기 활동에 구현해나가야 하는것이다.

주체사상은 진정한 독립과 자주권실현을 열망하는 세계의 모든 나라 인민들에게 들어맞는 보편적원칙들을 다 포괄하고있었다.

역시 옳은 사상은 진보적인류의 가슴을 흔들며 그들을 새 사회건설의 참된 길로 이끌어가는 가장 위대한 힘이였다.

주체사상연구토론회들이 진행될 때마다 수많은 사회계인사들과 대학교원들, 학생들이 드넓은 토론회장을 꽉 채우군 하였다. 그들이 요구하는 참고서적들은 언제나 모자랐다.

주체사상이 근로대중의 관심사로, 주체사상연구보급의 도수가 더 높아가고있다는것은 날이 갈수록 더욱 확연히 나타났다.

주체사상을 구현하는 길에 자주성을 위한 민족의 활로가 있다는것을 확신한 루뭄바주의애국자들은 킨샤사주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대사관과 부단한 접촉을 가지고 연구를 심화시켜나갔다.

앙드레는 자기가 총소장으로 있는 《협동조합경영고등연구소》와 전국위원장으로 있는 《독립로조총련합》의 성원들에게도 주체사상을 보급하기 시작하였다. 《독립로조총련합》의 산하기구들만 보아도 6개의 로조와 18개의 비정부기구들, 10개의 교회 등이 있었다.

모부투정권은 점점 기울어져가고있었다.

1996년 10월 드디여 내전은 폭발하였다.

《꽁고-자이르해방을 위한 민주력량동맹》이 조직되여 강권정치를 반대하여 일으킨 봉기는 전국으로 확산되여갔다.

이런 정세하에서 앙드레는 1997년 4월 동료들과 함께 오랜 기간 구상하고 준비해온 전국적인 범조직체를 결성하는데 이르렀다. 그 조직의 이름은 민주꽁고로동계시민협회(략칭 쓰씨모트라. SCIMOTRA)였다.

결성식은 킨샤사 왈로니-브류쎌센터에서 진행되였다. 2층으로 되여있는 이 건물은 앙드레와 동료들이 마련한것이였다. 이 청사에 모인 모든 사람들은 명절분위기로 들끓었다. 그럴만도 하였다. 그도 그럴것이 이 조직에는 로조련합체들, 비정부기구들, 교회, 학부형회, 농민회 등 각계각층의 군중이 다 망라되여있었기때문이였다.

이 조직은 나라의 각 지방 소재지들에 자기의 사무소를 가지고있었다. 회원은 전국에 6만여명이였으며 수백명이 자원봉사를 하고있었다.

그들모두는 리념의 기치높이 대오에 뭉쳤다.

조직의 기본목적은 민주꽁고의 근로대중으로 하여금 온갖 형태의 착취를 반대하고 로동문화와 협상문화를 촉진시키는데서 특히는 민족의 자주성실현에서 자기들이 수행해야 할 전위대의 역할에 대하여 자각하도록 하는것이였다.

제국주의체제하에서 식민지후과로 많은 사람들은 근로정신이 희박하였다. 제국주의자들은 식민지, 반식민지인민들이 계몽각성되는것을 원치 않았고 자체로 일하며 살아나갈것을 바라지 않았으며 그들이 자기들의 《원조》에 매여달릴것을 강요하여왔었다.

때문에 민주꽁고의 적지 않은 사람들은 열심히 배우고 일하며 투쟁하여 공정한 생활비를 쟁취할 생각보다는 소규모적인 장사나 유흥업, 투기로 돈을 벌려고 하였다.

현실은 사람들의 사고와 실천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것을 요구하였다.

이러한 정치정세에 대처하기 위하여 동료들과 함께 민주꽁고로동계시민협회를 조직한 앙드레였다.

이 조직의 법적대표자는 앙드레였다. 클로비쓰가 앙드레를 적극 도와 활약하였다.

결성식에서 앙드레는 절절히 호소하였다.

《…오늘 이러한 실태에서 우리의 앞길을 밝혀주는 사상은 위대한 주체사상입니다. 오늘 모든 수단을 다해 주체사상을 받아들이는것은 주체사상이 우리의 앞길을 환히 밝혀주는 등대이기때문입니다.…》

참가자들은 열렬한 박수로 호응하였다.

열기띤 그의 목소리는 청중의 심금을 울리였다.

《순박하고 근면한 인민들을 리용하여 자기들의 리기적인 욕심을 채우며 인민들을 빈궁과 허무감에 몰아넣는 온갖 착취자들을 청산하기 위해서는 꽁고의 근로대중이 계층별 또는 지역과 구역, 마을을 단위로 하여 뭉쳐 사회경제적목표들을 달성하여야 합니다.

어려울것이 없으며 자각성과 창조성, 조직성이 있으면 성공할수 있습니다.

우리는 선거자로서 선거에만 참가할것이 아니라 립후보자로 되여 선거에서 당선되여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자기 나라의 력사를 잘 알고 자기 존엄을 지키며 민족의 자유와 진보를 바라고 자기들을 추천한 인민들의 념원에 맞게 정치, 금융세력들에게 굽신거리지 않고 자기 나라의 힘을 믿는 애국적인 의원들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그러자면 자주성에 관한 사상, 자기 운명에 관한 사상의 신봉자들이 굳게 단결하고 지방의회 의원과 국회의원으로 되여야 합니다.》

청중은 숨소리마저 죽이고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열기띤 앙드레의 목소리는 계속 울렸다.

《주체사상신봉자들은 아프리카와 세계의 자원지대인 우리 나라가 끊임없는 략탈을 당하고있는 속에서 허송세월할것이 아니라 투쟁하여야 합니다. 그래야 자유롭고 자주적이며 평등한 인민의 국가를 건설하는 성스러운 사업에 이바지할수 있습니다.

민주꽁고로동계시민협회는 우리 나라와 아프리카에서 새 사회를 건설할 때까지 계속 전진할 결심을 가지고있습니다.…

노예무역시기부터 지금까지 빛을 잃었던 꽁고민주주의공화국의 모습은 사람들을 비관에 빠뜨릴수 없습니다.

현재 적지 않은 모순점들을 안고있지만 꽁고로동계는 주체사상을 인식하고 받아들여 그것을 우리 인민과 국가를 위한 구체적이고 리로운 활동으로 전환시킬 때 정신적불구, 사대주의, 착취의 올가미를 끊어버리고 반드시 커다란 성과를 가져올것입니다.》

앙드레의 진정에 넘친 그 웨침은 민주꽁고로동계시민협회 성원들에게 지울수 없는 인상을 남기였다. 그 성원들속에는 그 옛날 카타코의 길거리에서 만났던 아이들을 비롯하여 카타코고급중학교 졸업생들도 적지 않았다. 또한 킨샤사에 올라와 새롭게 창설하고 교편을 잡았던 사립고급중학교의 졸업생들도 많았다.

다 자라 어른이 된 그들은 로동계시민협회의 골간을 이루고 정의로운 자기의 선생을 변심없이 따르고있는것이였다.

전국적인 범조직체를 조직한 앙드레는 활동전략과 계획을 주체사상에 기초하여 세웠다.

그는 로동계시민협회안에 주체사상연구소(현재는 김일성-김정일주의연구소)를 내오고 이 연구소의 성원들을 발동하여 근로대중이 주체사상을 인식하고 그다음에는 구체적인 현실에 구현하도록 각이한 방향에서 여러가지 활동들을 벌려나갔다.

주체사상으로 의식화하는 사업은 근로대중속에서 커다란 관심과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로동계시민협회는 새로운 활력에 넘쳐 이 사업을 주관하였다. 넋을 기울여 그들이 바라는 갈망은 오직 하나 나라의 자주화였다.

자기 시대를 다 산 포악한 《범》은 그전처럼 날뛰지 못하였으며 날로 높아가는 근로대중의 반항에 위축을 느끼며 제 우리에서 제대로 나오지도 못하고있었다. 놈은 무덤속에 있는듯 조용했다.

너무 늦게야 력사의 조롱의 대상으로 되였다는것을 감촉한 모부투는 자기의 운명이 경각에 달하였음을 깨달았다. 더 이상 지체할수가 없었다. 이럴 때엔 그 어디론가 꼬리를 사리는것이 상책이였다.

놈은 급기야 제놈의 별장이 빠리의 호화거리에 뻐젓이 자리잡고있는 프랑스에 기대를 걸고 망명을 청하였다.

하지만 프랑스정부는 거절하였다. 한때는 모부투의 요청대로 군대까지 파견하여 국내의 항쟁세력을 진압해주던 프랑스였다. 그들은 인민의 버림을 받은 늙은 《범》을 받아들여 세계의 규탄을 받기보다는 차라리 거절하는편이 훨씬 편했던것이다.

상전으로 여기던 미국도 마찬가지였다. 《먹이》를 던져주며 길들이던 주구였지만 쓸모없이 되자 거들어줄리 만무하였다. 주구의 신세란 언제나 그런것이였다.

모부투는 바빠났다.

하늘의 영원한 성좌처럼 끝이 없을듯싶었던 자기의 무제한한 권력의 길이 이렇게 절벽에로 잇닿아있었단 말인가.

장군이라고 불리우던 때가 엊그제같은데 30여년이라는 세월이 이렇게도 허무하게 자기에게 온갖 비난을 들씌우며 흘러갔단 말인가.

자기는 30여년을 집권하고 루뭄바는 그 30분의 1도 안되는 잠시잠간을 집권했는데 사람들은 왜 아직도 그를 잊지 못해하며 나에게 저주를 퍼붓고있는것인가.

모부투는 미치광이마냥 발작을 일으키며 《범》모자를 벗어 방바닥에 내동댕이쳤다. 《범시대》가 끝난것이다.

개개의 사람은 죽어도 인민은 영원하다. 그 인민이 바로 인민의 지도자들의 사상을 이어가는것이며 그 인민이 바로 그렇게 력사를 밀고가는것이다. 때문에 인민을 위해 바친 애국자는 그 생이 아무리 짧아도 력사에 아름답게 새겨지는것이며 인민을 배반한 원쑤는 그 생이 아무리 길어도 오물속에 묻히게 되는 법이다.

마지막순간에도 악한은 무궁무진한 인민의 힘과 인민의 그 숭고한 세계를 리해할수 없었다. 다만 짐승이 아닌 이상 쓰디쓴 패배의 울분이나 터뜨릴런지.

그래도 그는 그 더러운 생을 연장하고싶었다.

우리에 갇힌 이리마냥 방안을 오락가락하던 모부투는 궁여지책으로 아프리카의 북서부 맨끝에 있는 한 작은 나라를 생각해냈다.

그 나라는 그리 알려지지 않은 마로끄라는 나라였다.

모부투는 렴치를 불구하고 그 나라에 들어갈것을 구걸하였다. 옛 상전들이 써먹을대로 써먹고 내버려둔채 본척도 하지 않는 산송장이 하도 가련하게 생각되여서인지 마로끄왕 하싼2세는 보좌관의 말을 듣고 내키지 않는 말투로 마음대로 하란다고 한마디 했을뿐이다.

이렇게 되여 모부투는 정권이 무너지기 며칠전에 바래워주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제 나라를 떠나 맞아주는 사람도 없는 이국에 밤고양이처럼 기여들어 그곳의 군부병원에 숨어있다가 얼마 못 가 그해에 더러운 명을 벌레처럼 마치였다.

예로부터 인류와 정의의 위업에 도전하며 전횡을 부리던 폭군들의 말로란 언제나 그러한것이다. 독재통치를 실시하다가 단두대에 오른 프랑스의 루이16세며 외진 섬에서 명을 마친 나뽈레옹, 총살된 후 소나무가지에 매달린 무쏠리니, 극동국제군사재판에서 교수형판결을 받은 도죠, 시체도 남기지 못한 히틀러 등…

력사는 반드시 진리를 립증한다.

일개인의 권세만 추구하고 력사의 흐름에 도전하면 멸망하지 않을자가 없다. 그것은 밤이 가면 새날이 오듯이 자연스러운 일이며 또 법칙이지만 그밤이 길면 인류는 참으로 값비싼 대가를 치르며 자유의 새날을 향해 한치한치 가게 되는것이다.

꽁고-자이르해방을 위한 민주력량동맹(후에 《꽁고해방을 위한 민주력량동맹》으로 개칭)을 위수로 한 항쟁세력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진격하여 나라를 장악하는 그날은 오고야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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