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1 회)

제 7 장

4

 

아침에 받은 우영찬의 전화로 하여 리기호는 한껏 기분이 처져있었다. 방에 앉아있자니 속이 답답해나서 견딜수가 없었다.

그래 실내화채로 교사밖을 돌아가기 시작했다. 교사좌측에 잇달린 온실에도 들어가보고 뒤마당의 공동수도장의 꼭지들을 괜스레 하나둘 틀어보기도 하였으며 언제한번 들려본적 없는 목수칸에도 기웃거려보았다. 대패질에 여념이 없는 늙은 목수를 보는 순간 유치원노래경연때 손녀애의 등수를 놓고 벌어졌던 일이 떠올라 절로 이마살이 찌프려졌다.

현관앞으로 돌아나오니 운동장으로 내려가는 계단량옆의 장미덩굴이 유별나게 눈길을 잡아끌었다. 가지마다 타는듯 한 붉은꽃송이들을 피워물고 매혹적인 향기로 사람들의 눈길을 끌던 덩굴장미가 어느덧 색바랜 종이꽃모양으로 되여가고있었다. 그나마도 한산한 가을바람에 많은것을 털리우고 남은것은 몇송이 안되였다.

처량함을 자아내는 장미덩굴은 그의 눈앞에 우영찬의 모습으로 안겨들었다. 우영찬이 신통히 이 덩굴신세가 되지 않았는가싶었다.

우영찬은 시답지 않아 하는 투로 전화를 걸어왔었다.

《편지거래를 위해 지목했던 학생들은 지금 어떻게 하고있소?》

《네, 한창 준비시키고있습니다.》

리기호는 초급2학년의 김인숙학생이 갑자기 돌변하여 편지쓰는 일을 꺼려한 사실에 대해 말하려다가 그만두고 이런 대답부터 해두었다.

《참사동지의 의도대로 꼭 성사시키겠습니다.》

《흥, 그만두오.》

《네?》

《이젠 필요없게 됐소.》

그리고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리기호는 영문을 알수 없게 하는 우영찬의 태도에 잠시 뻥해졌다가 종합을 맡아보는 지도원한테 은밀히 전화로 알아보았다.

사연인즉 이번에 다시 수정보충한 교과서개정이 당의 의도에 맞게 새롭게 진행되지 못하고 원래의 교과서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못한것으로 해서 되게 문제가 섰다는것이다. 엎친데덮친 격으로 대학생들의 《편지거래》가 좋지 못한 경향을 띠고 진행된 책임까지 지게 되였다.

지도원의 말이 이번 일이 비판을 받는것으로 끝날것 같지 않다고 했다.

리기호는 의기소침해지지 않을수 없었다. 그야말로 믿던 나무가 뿌리채 기우뚱거리고있는 참이 아닌가. 나무가 넘어지면 거기에 감겨 자라던 덩굴도 함께 깔리기마련이다.

아니, 나를 위해서도 넘어가는 거목을 그저 보고만 있을수 없다. 곤경에 빠진 그를 도와야 한다. 한데 무슨 힘으로 도울수 있단 말인가. 리기호가 안절부절하며 고심에 빠져있는것은 그때문이였다.

운동장이 좁다하게 돌아가던 애들이 그를 보자 앞다투어 꾸벅꾸벅 인사들을 해댔다.

순간 리기호는 자기가 1중학교 교장이라는데 생각이 미쳤다. 내각과 성의 알쭌한 학부형들을 가지고있는 자기의 유력한 직무를 자각한 그는 처져내렸던 어깨를 살구며 입술을 비주름히 내밀었다. 누군가를 잡아야 한다. 넘어가는 나무에 버팀목이 되여줄 그런 학부형을…

머리속에 자기의 이름처럼 기억해둔 학교 학부형명단이 펼쳐졌다. 한명한명 점을 찍어가며 타진해보기 시작했다.

(어떨가?…) 혹은 (아니!) 하며 한창 속저울을 떠보다가 마침내 적임자를 찾아냈다. 교육성 부상을 하는 학부형이였다.

내각의 지시를 받는 교육성이라 하지만 부상이라는 중임에 있어서는 내각의 참사보다 더한 자리라고 할수 있다.

더우기 학부형총회때 부인이 교장방에 찾아와 자기 아들을 잘 돌봐줄것을 부탁하면서 학교에서 제기되는것이 있으면 세대주가 힘을 써줄수 있다고 암시를 보인적도 있다.

리기호는 급히 자기 방으로 돌아와 우영찬을 전화로 찾았다.

《실력중시를 위해 애쓰는 참사동지의 깊은 의도를 리해하지 못하고 이런저런 딱지를 붙이는것 같은데 날 죽여라 하고 가만 있으면 안됩니다. 이제라도 문제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봅니다.》

《그건 무슨 소리요?》

《제 이번 일에 대해서 좀 들었습니다.》

《음… 그래서…》

《저도 안타까이 궁리를 좀 짜봤는데 교육성 부상을 하는 우리 학부형을 발동시키면 해결할수 있을것 같습니다.》

《교육성 부상? 흠…》

비웃음소리가 수화기구멍으로 뿜어나왔다.

자기가 지도하던 단위라고 우습게 여긴다는건가?

리기호는 바짝 기를 올렸다.

《성의 힘을 무시해선 안됩니다. 교육성이 막아나서게 되면 과오를 무마시킬수도 있다고 봅니다.》

《흠…》

우영찬은 코바람을 길게 내불뿐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이어 흥심없는 투로 잇댔다.

《마음은 고맙소만… 그런 일로 교장이 교권을 잃으면 안되지.》

《참사동지를 위한 일인데 언제 교권타령을 할새가 있습니까?》

《알겠소. 그건 그거구… 우리 명기 기분이 학교에선 어떻소?》

《그것도 마음놓으십시오. 키워준 은혜를 모른다 하면 그건 사람의 도리가 아니지요.》

리기호는 이 기회에 자기의 심정을 곁드는것을 놓치지 않았다.

《어쨌든 교장선생을 믿소. 키운 정이 있어 그런지 나한텐 예나와 조금도 다를바없는 애요. 엇나가지 않게 키잡일 잘해주오.》

전화가 끝나자 리기호는 자기딴의 생각을 했다. 우영찬이 명기문제로 화제를 돌리며 딴전을 피우긴 했어도 속으로는 나의 말에 기대를 걸것이 틀림없다. 그런즉 어떡하나 부상의 도움을 청해야 한다. 제 자식을 맡은 이 교장의 요구를 무작정 모른다 하지 않을것이다. 학교에 자식을 맡긴 부모라면 누구나 공통분모처럼 가지고있기마련인 《무조건적인 관심과 열성》이 그한테만 례외로 될수는 없다. 그는 그날로 학생을 앞세우고 그 집에 들어섰다.

다음날 리기호는 하루수업이 끝나자 교무주임을 시켜 명기를 방으로 불러들였다.

《체통이 큰게 꼴기가 없이 왜 그 모양이냐? 그러니 아버지가 걱정이 많아 자꾸 전화를 걸어오지?》

시쁘둥해 서있는 명기에게 허물없이 나무람을 했다.

《그래선 못쓴다. 아버지가 너로 해서 더 마음을 쓰게 해선 안돼. 학교에 나와서도 동무들과 예전처럼 섭쓸리면서 지내야 하구. 그렇지 않으면 남들이 이상한 눈으로 볼수 있어. 알겠니?》

《네.》

《그건 그렇고, 내 전번에 말한대로 한시철선생에 대해서 좀 알아봤나?》

명기는 마지못해 입을 놀렸다.

《혁명가요를 발굴해가지고 오셨답니다.》

《혁명가요를?… 와서 누구를 만났게?》

《그건 잘…》

《흠, 그가 우등불모임에도 참가했었다지. 어쨌든 학생들을 가까이하려고 애쓰는게 틀림없어. 그러니 앞으로 무슨 말이 더 돌아가는가 계속 관심해야겠다. 학교사업이나 이 교장을 놓고 말질들이 있으면 제때에 알려도 주구.》

명기가 못 마땅한듯 눈을 떠부럭거렸다.

《아니, 왜 그렇게 보는거냐? 내가 무슨 나쁜짓을 시키는 사람같으냐?》

리기호 역시 기분이 잡쳐 목소리에 날을 세웠다.

《이건 다 학교일을 위해서다. 요새 와서 모든 일이 여의치 않아 맘고생이 많은 너의 아버지를 돕는 일이기도 하구. 그러니 딴애한테 시킬수 없지 않느냐. 내가 말하는 의도를 알만 하겠지?》

재삼 물어서야 명기는 《네.》 하고 마지못한 소리를 냈다.

명기를 내보낸 다음 리기호는 서류장옆에 세워놓았던 큰 그림을 들어서 맞은켠의 긴 걸상에 올려놓았다. 두터운 액틀을 메운 그림은 크기가 거의 사무책상만 한것이였다.

그는 제자리로 돌아와 그림을 감상했다. 《씨비리의 곰》이라는 표제부터가 이국정서가 짙은 풍경화인데 하얀 봇나무가 듬성듬성한 검푸른 침엽수림사이로 갈색엄지곰이 재롱을 피우는 새끼곰을 앞세우고나오는 장면을 화폭에 담고있었다.

바로 어제 만났던 학부형이 준것이였다.

《이 그림이 어떻소?》

부상은 흡족한 웃음을 띠고 벽에 걸려있는 풍경화를 가리켰다.

리기호는 연신 감탄했다.

《저로선 처음 보는 그림입니다. 씨비리의 대자연을 금시 눈앞에 보는것만 같습니다.》

《교장선생이 마음에 든다니 내 기분도 좋구만. 얼마전에 쏘련에 갔던 친구한테서 받은 기념품이요.》

《그렇습니까? 정말 멋있습니다. 집에다 걸어놓고 혼자 보기엔 아까울 정도입니다.》

그 말에 부상은 상반신을 제끼며 껄껄 웃었다.

《하하… 교장선생이 은근히 욕심을 내는걸 보지?》

《아, 그게 아닙니다. 제 풍경화의 가치를 말한다는것이 그만…》

《허, 미안해할건 없소. 그러지 않아도 내 학교생각을 하던 참이요.》

《네? 그건 무슨 말씀이신지…》

《교장선생 말마따나 집에 걸어놓고 혼자 보기에는 참 아까운 그림이지. 그래 내 자식을 위해서도 이 풍경화를 1중학교에 기증할 생각이였소.》

《이 귀한걸 우리 학교에 준단 말입니까?》

《귀한것이기에 학교에 걸라는거지. 내 이번에 지방학교들을 더러 돌아보았는데 괜찮은 외국풍경화를 구해다 걸어놓은 학교도 있더구만. 하지만 이 그림엔 갖다대지도 못할것들이야. 보오, 내용적으로도 아이들 동심에 잘 맞지 않소.》

리기호는 감지덕지해서 받아왔다. 볼수록 좋은 그림임에 틀림없었다. 그런데 오늘아침 다시 생각해보니 주저되는 점이 없지 않았다. 이미전에 걸어놓았던 외국풍경화들을 걷어내고 혁명력사직관물들과 선전화들, 각종 교양자료들로 벽을 채운 교내에 이걸 걸어놓게 되면 교원들과 학생들이 어떻게 나오겠는가 하는것이였다.

언젠가 아침모임에 나서서 실력을 높이자는 의미에서 한마디 한걸 가지고도 외국에 대한 환상을 불어넣는 발언으로 몰아가지 않았던가.

그렇다고 《씨비리의 곰》을 제 방에 걸어놓고 혼자 감상할수도 없었다. 부상도 그래서 학교에 기증한것이고 또 학교에 나오게 되면 반드시 자기가 애중하던 풍경화가 어디쯤 걸렸는가를 보려고 할것이다. 참으로 딱한 처지가 아닐수 없었다. 부상의 성의를 밀어버리자니 우영찬의 일이 목에 걸리고 받아들이자니 좋지 못한 반영이 제기될가 두려웠다.

(무슨 방도가 없을가?…)

리기호는 안락의자를 빙빙 돌려가며 생각에 골몰했다.

문득 자기가 앉은 의자에 신경이 갔다. 편안하고 별로 힘들이지 않고도 제 맘나는대로 슬슬 돌아앉을수 있는 회전의자, 그래서 사람들이 더 애용하는 의자가 아닌가.

그렇다. 힘들게 생각할게 없다. 이 회전의자처럼 살면 그만이다.

풍경화를 걸지 못할것도 없고 그때문에 문제가 선다면 우에다 밀면 될것이였다. 리기호는 교무주임을 불러 함께 그림을 감상하고나서 그더러 교내의 맞춤한 자리에 걸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      ×

 

리기호의 우려는 공연한것이 아니였다. 다음날 그가 구역에 회의 갔다오는 사이에 교무주임이 풍경화를 2층복도 한가운데 내걸다가 여러 교원들에 의해 저지당하였던것이다.

들어보니 《배움의 천리길로정도》직관물을 복도 한끝으로 밀어내고 그자리에 걸려다가 그리 되였다고 했다. 다행히 수업시간중이여서 목격한 교원이 몇 안되였다.

리기호는 교무주임의 미욱한 처사에 너무 어이가 없어서 회전의자에서 찌그덕소리가 날 정도로 연신 고패를 쳐댔다. 가뜩이나 외국의 풍경화여서 버젓치 못한 판에 골라골라 그자리를 택하다니…

(흥, 미련한 송아지 백정을 모른다더니… 목이 밭아 생각도 밭은가.)

리기호는 아직도 속에 꺼림하니 체증처럼 남아있는 그것을 도제 삭일수가 없어 좀전에 기껏 행풀이를 해대고 내보냈던 교무주임을 다시 불러들였다.

《하필이면 그자리를 택할건 뭐요? 그게 보통직관물이요?》

《저도 그 생각을 안한건 아니지만 교장선생이 풍경화의 격에 맞게 맞춤한 자리에 걸라고 했기에…》

《여보여보, 날 걸진 마오. 그래, 우에서 내려보낸 풍경화라고 강조는 했겠지?》

《그렇게는 말했습니다. 사실이 그렇지 않습니까?》

《사실이구 여실이구 사람이 일하는데서 눈치도 볼줄 알아야지.》

리기호는 밭은 목을 쳐들고 굳어진 시선을 하고 선 교무주임을 쓴외보듯 하다가 억지로 기분을 누르며 말을 던졌다.

《어떻게 하자우? 그림을 그저 묵일순 없는거구.》

《교원들이 반대하는데 그만둡시다.》

《그러다 부상동지가 나와보면?…》

《할수 없지요.》

《아니아니, 그러면 안되지.

리기호는 머리를 저었다.

이윽고 비주름히 내밀린 그의 입가에 묘한 웃음기가 내배였다.

《그걸 미술소조실에 걸어놓자구. 미술소조생들이 참고하겠다고 해서 거기에 걸었다면 부상동지도 좋아할거요.》

《참, 그게 좋겠습니다. 미술소조애들이 세계미술에 대한 공부를 하는 의미에서도 정말 좋은 착상입니다. 다른 사람들도 할 말이 없어지구요.》

《무슨 할 말들이 있겠소? 학교에 흔치 않은 세계명화가 생겼는데 좋으면 좋지 뭐가 나쁜게 있다구…》

《에- 처음부터 그 생각을 했더라면 내 땀빼는 일을 당하지 않는건데…》

교무주임은 다행인듯 방금까지도 리기호가 속으로 타발하던 바툼한 목덜미를 기분좋게 문질러댔다.

리기호는 그대로 자기의 신통한 방안에 만족해서 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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