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1 회)

제 6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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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가 시작되자 《갈매기다리》목갈림길의 다리아꽃들은 앞을 다투어 피여났다. 《갈매기다리》는 사나운 물결에 떠내려갔어도 꽃들은 나날이 무성해갔다. 비바람에도 꽃들은 쓰러지지 않았다. 노호한 물결이 물어뜯는 강기슭에서 꽃들은 오히려 웃었다.

비에 말끔히 씻기운 꽃송이들은 싱그러웠고 타는듯 유난히 붉기도 했다. 탐스럽게 다리아꽃이 피여난 《갈매기다리》목강기슭에서는 지금 대대지휘관협의회가 진행되고있었다.

광훈은 부실부실 내리는 비를 아랑곳하지 않고 비옷모자를 뒤로 젖혀놓은채 장화신은 두발목을 물에 잠그고 건너편기슭을 향해 서있었다. 그뒤로는 2중대장, 3중대장 그리고 정치부중대장을 겸임하는 중대부문사로청위원장들이 비옷을 뒤집어쓴채 줄느런히 섰다. 고무를 먹인 검은 방수포비옷을 걸친 다른 사람들과는 대조되게 록색의 비닐비옷을 입고 서있는 사람은 은하였다.

맞은편 강기슭에도 세사람이 서있었다. 이쪽기슭으로 올수 없는 대식과 수덕은 맞은편 강기슭에 서서 태선의 수기신호 도움으로 회의에 참가하고있었다. 말하자면 강기슭에서는 지금 수기신호통신회의가 진행중이였다.

강건너편의 태선은 붉은 머리수건과 흰수건 하나를 가지고 쉼없이 신호를 했고 이쪽기슭에 서있는 해양구락부출신의 신호수가 그 신호내용을 번역하듯 한자한자 번져놓았다.

《세-멘-트-창-고 위-험, 물-과 세-멘-트-창-고-지-면-과-의-차-이 한-메-터-정-도.》

강건너편 대식과 태선을 바라보며 신호수가 전하는 말을 듣고있던 광훈은 두눈을 감았다.

지금 강물은 매 시간당 십센치정도로 불어오르고있었다. 한메터면 열시간, 지금속도로 계속 물이 불어오르면 새벽 한시경에 물면과 세멘트창고지면은 같아질것이다.

지금 세멘트창고에는 많은 세멘트가 있다. 그것도 대부분이 포장하지 않은 세멘트다. 강건너편의 세멘트를 모두 잃어버리게 되면 앞으로 고미탄다리건설에 막대한 지장을 받게 될것이였다. 그 많은 세멘트를 다시 운반하자고만 해도 얼마나 많은 로력이 들것인가.

그뿐이 아니였다. 세멘트를 건지지 못하면 다리건설에 미끄럼식방법을 받아들이려고 애써온 모든 수고와 로력이 물거품처럼 사라지고만다.

강건너편에 있는 세멘트는 대식이 미끄럼식휘틀을 창안하여 기둥타입에 미끄럼식방법을 받아들이고 은하가 설계를 개조함으로써 절약해낸 세멘트량보다 많다. 그러니 강건너 세멘트를 모두 물에 띄우게 되면 다리건설에 미끄럼식방법을 도입한 아무런 의의도 없어지고말것이다. 세멘트를 지키는가 지키지 못하는가 하는것은 단순히 다리건설자재를 지키는가 못 지키는가 하는 문제가 아니였다.

광훈은 세멘트창고가 강기슭에 있어서 이전부터 미타하게 생각했었고 그것때문에 대대지휘관협의회에서 언젠가는 세멘트창고문제를 제기한적 있었으나 이런 일이 있으리라고는 애당초 생각하지 못했었다.

대식이며 일부 지휘관들이 세멘트창고를 지을 로력때문에 창고를 옮긴다 해도 기둥타입이나 끝내고보자고 말했던것도 이런 일이 생길줄 꿈에도 생각지 못했었기때문이였다. 그때 자기가 문제를 좀더 강경히 제기했더라면 강건너편에 지금 있는 세멘트를 절반이라도 건질수 있을것이였다.

손톱눈 곪기는줄은 알아도 염통 썩는것은 모른다는 격으로 눈앞의 기둥타입만 생각했던탓에 강건너편에는 세멘트창고를 지금 장소에 지을수밖에 없고 숙소쪽 기슭에 지으면 장마후 다시한번 소운반을 해야 한다고 외곬으로만 생각하였던탓에 오늘과 같은 일이 끝끝내 벌어지고야말았다.

지난날 광훈은 세멘트며 자재, 설비들을 잘 보관관리하자고 입버릇처럼 말해오면서도 그것이 이렇게 중요한 일이며 수많은 사람들의 수고와 로력 그리고 다리건설의 운명과도 결부된 그런 일로 제기될줄은 정말 몰랐었다.

후회는 때늦었다. 누구의 잘못때문인가를 따진대도 소용이 없었다.

어떻게 해야 큰물피해로부터 세멘트를 지킬수 있을것인가.

광훈은 감았던 두눈을 뜨고 해양구락부출신의 신호수가 서있는쪽을 향해 돌아섰다.

《신호수, 1중대장동무에게 강건너 작업형편을 물으시오.》

잠시후 대식이 태선을 통해 보고하는 내용이 다시 전해졌다.

《현-재 중-대-는 창-고-주변-에 뚝-을-쌓-고-있-음. 가-마-니-가 없-음.》

해양구락부출신의 수기신호수를 통하여 강건너편에서 보내오는 신호가 해득되기 바쁘게 재선이 광훈앞으로 다가섰다.

《대대장동지, 각 중대에서 사람들을 뽑아 결사대를 무어가지고 강을 건너갑시다. 현재 형편에선 세멘트창고주변에 뚝을 쌓는 방법밖에 없을것 같습니다.》

재선은 무슨 대렬보고라도 하듯 큰소리로 말했으나 얼굴이 가무잡잡하고 온몸이 차돌같이 단단하게 생긴 3중대장은 머리를 흔들었다.

《가마니를 보내는게 더 급하다고 생각합니다.》

광훈은 강을 등지고 돌아서서 더 의견이 있으면 제기하라는 뜻으로 사람들의 얼굴을 더듬었다.

《대대장동지, 수영선수들만 뽑아가지고 강을 건너갑시다. 떼를 무어 가마니를 나르면 됩니다. 요까짓 강쯤 문제가 아닙니다. 전 림당수 거친 물에 씻기우며 자랐습니다.》

비옷을 어깨에 걸친채 광훈이앞으로 한걸음 나서는 사람은 장산곶출신의 3중대 사로청위원장이였다. 다리기초림시물막이전투때마다 쉰키로가 넘는 흙가마니를 혼자서 씽씽 메여날라 온 려단에 힘장수로 소문난 그는 씨름선수같이 몸이 실했다. 물속에 들어만 서면 아흔키로나 되는 자체 중량에 연추처럼 가라앉고말것 같은 그였건만 이 순간은 조금도 우습지 않았다.

강건너편 대식이네와 련락을 보장하기 위해 지휘관들옆에 서있던 해양구락부출신의 꺽두룩한 수기신호수는 자기가 끼여들 자리가 아니라는것을 잊은채 한마디 했다.

《요만한 강쯤은 저두 자신있습니다.》

2중대 사로청위원장이 신호수에게 날카로운 눈길을 던졌다. 칼칼하게 생긴 자기네 중대사로청위원장의 찌르는듯 한 눈길에 신호수는 입을 다물고 뒤로 한걸음 물러섰다.

지금까지 아무 말이 없던 은하가 비옷고깔을 벗으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우선 이쪽기슭과 저쪽기슭을 련결하는 바를 건너매는게 좋을것 같아요. 그러면 떼를 무어 건너갈 때 안전할거예요. 그리구 승리다리 1호기둥쪽에 한끝을 매고 강건너 벼랑코숭이쪽에 한끝을 매서 대각선방향으로 기슭을 련결하면 떼로 강을 건너갈 때 내리쏠리는 물의 힘을 리용할수 있을것 같아요.》

은하는 마치 자기가 대대지휘관의 한사람이기라도 한것처럼 자기 생각을 말했다.

은하의 의견은 모든 사람들의 찬동을 받았다. 광훈 역시 은하의 의견에 공감이 갔다.

사람들이 강을 건너가자고 해도 가마니를 창고로 보내자고 해도 우선 바줄을 강에 건너매야 했다. 그러나 바줄을 가지고 강을 건는다는것은 쉬운 일이 아니였다. 맨몸으로도 강을 헤염쳐 건너가기도 위험한데 어떻게 바줄을 가지고 건너간단 말인가. 저쪽 벼랑코숭이와 이쪽 기슭을 련결하자면 그 바줄의 무게만도 몇십키로가 넘을것이다. 무거운 그 바줄을 가지고 어떻게 강을 건너가며 목숨내놓고 해야 할 이 위험한 일을 누구한테 시킨단 말인가?

순간 광훈의 머리에는 하나의 생각이 번개쳤다. 푹 꺼져들어간 눈확에서 그의 눈은 빛나기 시작했다. 광훈은 자기 생각을 입밖에 나타내지 않았다. 모든 사람들이 지금 자기의 결심채택여부를 알려고 한다는것을 깨닫고 광훈은 자기의 생각에서 깨여나며 몸자세를 바로했다. 번쩍이는 그의 눈빛에 사람들은 차렷해서며 긴장한 눈길을 그의 입에 못박았다.

《모두 나의 말을 들으시오.》

그리 크고 높지 않았으나 그의 목소리는 위엄있게 울렸다.

《지금 형편에서 세멘트창고는 열시간정도 견지할수 있소. 우리는 날이 어둡기 전에 가마니를 떼에 실어 건네야겠소.》

광훈은 잠시 말을 끊고 자기의 손목시계를 들여다봤다.

《지금현재 시간은 세시 이십삼분.》

그의 말에 중대장들은 전투명령을 접수하는 인민군대지휘관들처럼 자기 시계를 대대장의 시간에 맞추었다.

《3중대장.》

《옛.》

3중대장은 다부진 몸을 꼿꼿이 편채 지금까지 앞으로 약간 숙일사했던 머리를 번쩍 들었다.

《이제부터 가마니를 준비하시오. 지금 창고에는 가마니가 한 이백장정도밖에 없소. 이것만 가지고는 어림도 없소. 가마니를 모두 회수하시오. 그리고 동무가 직접 두개 소대를 데리고 범산대대로 가고 한개 소대는 범산차굴대대 주변협동농장으로 보내시오. 모두 날이 어둡기 전에 돌아와야 하겠소.》

《알았습니다.》

힘주어 대답하는 3중대장의 얼굴은 비장한 각오와 결의로 빛났다.

《2중대장.》

《옛.》

광훈의 호출에 재선은 앞으로 한걸음 나섰다.

《2중대장동무는 떼목과 쇠바줄을 준비하시오. 그리고 강을 횡단할수 있는 바줄을 준비하시오.》

《알았습니다.》

《그리고 한개 분대인원을 식당으로 보내시오. 지금 식당 부엌바닥에선 샘이 터졌소. 물을 퍼야 식사를 보장할수 있소. 부엌바닥에 웅뎅이를 파고 양수기를 설치하시오.》

《그렇게 하겠습니다.》

명령을 접수한 지휘관들이 흩어지려는데 광훈이 그들을 멈춰세웠다.

《잠간!》

사람들은 걸음을 멈추고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우리 대대에서 누가 낚시질을 즐기는지 모르겠소?》

너무도 뜻하지 않던 광훈의 말에 모두의 두눈은 둥그래졌다.

《낚시줄을 좀 얻어야겠는데…》

사람들은 의아한 빛을 숨기지 못해 서로 얼굴을 쳐다봤다. 낚시줄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에는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 정황이였다.

《저한테 있습니다.》

지휘관들의 사업토의에 쓸데없이 참견했다가 자기네 중대사로청위원장한테 눈총을 받고 저만큼 떨어져있던 해양구락부출신의 수기신호수가 한걸음 앞으로 나섰다.

광훈은 낚시질에 미친 사람이 고기낚을 준비를 하려는것처럼 반갑게 물었다.

《무슨 낚시요?》

《칠낙입니다.》

《줄이 얼마나 되오?》

《한 쉰메터 됩니다.》

《몇틀이나 있소?》

《네틀입니다.》

해양구락부출신의 수기신호수는 대대장이 무엇때문에 이것을 꼬치꼬치 묻는지 알수 없었으나 사실대로 솔직히 대답했다.

《야, 됐소.》

광훈은 기쁘게 소리쳤다. 그는 낚시질에 취미를 가진 사람이 오래동안 얻으려고 애쓰던 낚시줄을 구하기라도 한것처럼 기뻐하였다,

《좋소. 네틀 다 가져오시오. 좀 빌려쓰다 인차 돌려줄테니…》

해양구락부출신의 신호수는 낚시줄을 가지러 숙소쪽으로 달려갔다.

사람들은 광훈이 무엇때문에 낚시줄을 찾는지 알수가 없어 광훈과 그의 과업을 받고 뛰여가는 신호수를 갈마보며 움직이지 못했다.

《자, 빨리 명령을 집행하시오.》

광훈의 독촉에 지휘관들은 의심을 풀지 못한채 뿔뿔이 흩어져갔다.

잠시 망설이며 서있던 은하도 김재선을 따라 대대부쪽으로 향했다.

협의회가 진행되던 강기슭에는 련락병 두명과 광훈만 서있었다.

광훈은 강기슭에서 길가로 올라섰다. 길은 세갈래로 갈라졌다. 승리다리개울을 따라 상류쪽으로 난 길로 가면 대대숙소가 있다. 승리다리개울과 고미탄천이 합쳐진 곳에서 고미탄전망대앞으로 가는 자동차길을 따라가면 려단에 간다.

《갈매기다리》목에서 이전 천막숙소들이 있던쪽으로 난 소로길은 범산대대나 려단으로 갈 때 돌격대원들이 질러다니는 길이다.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망설이는 사람처럼 광훈은 갈림길어구에서 망설이였다. 비옷주머니에 두손을 깊숙이 찌른채 갈림길에 서있던 광훈은 잠시후 길가의 꽃밭으로 걸어갔다.

송이마다 구슬같은 비방울을 머금은 다리아꽃송이들은 별로 아름답다. 엄혹한 주위의 환경과 범람한 강물에 대조되여 그 아름다움은 더욱더 두드러지는가싶었다.

꽃밭에는 바쁜 시간에 누가 틈을 내여 그랬는지 하얀 왕자갈을 주어다 곱게 둘레를 쳤다. 빨갛게 피여난 꽃송이를 보자 광훈은 새삼스럽게 오활이 생각났다.

불꽃과 수덕이 이곳에 꽃을 심던 때 오활은 철길을 빨리 놓고 고미탄계곡으로 들어가야지 이곳에 당대 붙어살 생각이냐면서 그들을 욱박질렀었다.

하지만 가물에 땅이 갈라지던 어느날 광훈은 개울에 가서 물을 길어다가 꽃에 주는 오활을 보았었다.

오활이 생각나서 광훈은 저도 모르게 한송이의 빨간 다리아꽃을 꺾어들었다. 향기는 없으나 빛갈이 화려하고 싱그러움이 넘치는 꽃송이를 바라보며 광훈은 비내리는 강기슭 갈림길에 서서 낚시줄을 가지러 뛰여간 신호수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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