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6 회)

제 5 장

4

 

일은 욕망과 뜻대로 되지 못했다.

광훈은 건설장들에서 흔히 일하는 방법대로 안테나식기중기꼭대기에 쇠바줄을 걸어 권양기로 일떠세우려 했으나 직경이 둬뽐정도밖에 안되는 철관으로 만들어진 기중기몸체는 당기는 힘을 이겨내지 못했다. 기중기몸체가 휘여들자 기중기를 일떠세우는 현장에 새까맣게 모여들었던 사람들은 맥놓고 모두 흩어져버렸다.

기대가 컸고 수고가 많았던만큼 인테나식기중기를 세우는 일에서 첫 실패가 사람들의 마음속에 던지는 파문은 컸다.

오활과 광훈은 용접봉때문에 밤새 고생하다 새날이 푸름푸름 밝아서야 돌아왔고 대식은 용접봉을 받는 즉시 기중기본체용접을 시작했었다.

텅 빈 작업현장엔 지금 광훈과 대식이 두사람만 남아있었다.

《후-》

곤두세운 무릎에 두팔을 맥없이 올려놓고 땅에 펑덩하니 앉아있는 대식의 입에서는 땅이 꺼질듯 한 한숨소리가 흘러나왔다.

땅우에 나딩구는 기중기를 바라보며 뒤짐진채 서있던 광훈은 대식의 한숨소리가 듣기 딱해 슬며시 외면하며 돌아서고말았다.

이제 하루이틀사이에 기중기를 세우지 못하면 다리기둥건설에 막대한 지장을 받는다.

광훈은 오늘 은하한테서 완성된 승리다리설계에 대한 합리화안을 넘겨받았다.

은하네 연구소집단과 현장기술자들의 집체적지혜로 완성된 승리다리설계는 나무랄데 없었다.

이 합리화안대로만 하면 장마전으로 얼마든지 다리기둥건설을 끝낼 자신이 있었다.

새 콩크리트혼합기며 미끄럼식쟈끼가 도착한지는 오래였고 휘틀제작도 거의 끝나간다.

기중기만 내여놓고는 다리기둥타입을 시작할수 있는 모든 준비가 끝났다고 할수 있었다.

광훈은 대식을 피하듯 건설장을 떠나고말았다. 어디든 조용한 곳에 혼자 가서 혼란되고 모순된 자기의 생각과 감정을 정리해보고싶었다.

광훈은 텅 빈 대대부로 돌아와서도 괴로운 심정을 좀해 진정하지 못했다.

(앓아누운 오활이 이 소식을 안다면 얼마나 가슴아파할것인가. )

범고개에서 내려와 자리에 누운 이후 오활은 아직 일어나지 못했다.

광훈은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오늘과 같은 괴로움을 끼칠줄 몰랐다. 광훈은 지금까지 남모르게 애써온것이 실패했다는 그것보다도 하루빨리 기둥타입을 시작하려는 대식과 오활 그리고 많은 돌격대원들에게 실망과 괴로움을 주게 된것이 더 가슴아팠다.

지휘관이라면 데리고있는 모든 사람들의 크고작은 근심과 걱정을 덜어주어야 할것이였다. 기쁨과 용기를 주지 못할망정 자기는 지금 사람들에게 근심과 실망의 그림자를 던져주고있었다.

구들장을 놓고 갓 장판한 방바닥에는 기름기가 돌았고 새집들이를 하면서 책장이며 서류함에 라크칠을 새로 해 방안은 이전 대대부보다 퍽 환하고 아늑했다.

복동이 어항을 얻어다놓고 고미탄에서 버들치까지 몇마리 잡아와 창턱에 놓인 어항에서는 고기들이 제법 꼬리를 친다.

광훈은 두팔을 깍지낀채 대대부 한가운데 놓인 탁자앞에 우두커니 앉아 어항속의 물고기만 생각없이 바라보았다.

숙소주변 소나무꼭대기에 매달아놓은 확성기에서는 명랑한 노래가 계속 나왔다.

갑자기 노래소리가 뚝 그치며 현장방송원의 열정적인 목소리가 울리였다.

《여기는 제1려단지휘부 유선방송실입니다. 방금 들어온 소식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제2려단 소식입니다.

제2려단 철산지구에서는 삼십만산대발파에 성공하였습니다.

설계에는 수백메터 차굴을 뚫기로 되였으나 우리 청년돌격대원들은 보수주의와 기술신비주의, 소극성과 침체를 반대하며 대담하게 사고하고 대담하게 행동함으로써 해주-하성철길건설에서 세인을 놀래웠던 대발파의 세배가 넘는 흙을 단번에 하늘로 날려보냈습니다.

다음은 황해북도 휴가지원자들의 소식입니다. 황해제철소의 사로청원 삼십여명이 휴가를 바쳐 집단적으로 이천-세포의 새 청년철길건설장을 지원왔습니다.

황철의 휴가지원자들은 철길건설장에 도착하는 즉시로 림진강계선 옹벽쌓기작업을 지원하여나섰습니다.

사회주의경제건설의 1211고지를 지켜선 용사들답게 그들은 오늘 오전 열두시현재 하루작업량을 빛나게 넘쳐 수행하였습니다.

강철직장의 원명철, 해탄로의 유상보, 소결직장의 로승옥동무들이 작업에서 남다른 모범을 보이였습니다.

다음은 림진강다리건설대대에서 들어온 소식입니다.》

지금까지 별다른 생각없이 방송소리를 듣고있던 광훈은 저도 모르게 두귀를 강구었다.

《앞서거니뒤서거니 하면서 고미탄다리건설대대와 치렬한 경쟁을 벌려오던 끝에 림진강다리건설대대에서 드디여 오늘부터 미끄럼식타입을 시작하였습니다.》

광훈은 갑자기 가슴이 철렁했다.

대식이 불안과 위구를 느껴오던 일은 끝내 닥치고야말았다.

미끄럼식방법을 발기하고 휘틀을 창안한 대식의 심정은 지금 어떠할것인가. 다리기둥건설에서의 미끄럼식방법도입에 대해서는 대식이 려단적으로 조직된 보여주기에서 강의를 했고 림진강다리건설대대에서는 대식의 창안을 받아들이였다. 결국 선배를 후배가 따라앞선셈이다.

광훈은 자리에서 일어나 방안을 거닐기 시작했다. 몇걸음 걸으니 침대가 앞을 막아섰다. 되돌아서니 이번엔 회칠한 흰 벽이 앞을 막아섰다. 광훈은 벽에 걸린 시계추마냥 방안을 대각선방향으로 계속 왔다갔다했다.

모든 일이 너무도 뜻하지 않게만 벌어지고보니 광훈은 당황하지 않을수 없었다.

림진강다리건설엔 트라크라인이 두대나 들어갔다. 이제 며칠내로 탑식기중기도 또 가져갈것이다.

(전화를 걸가?)

광훈은 불쑥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이제라도 려단에 전화를 걸면 림진강지구에 돌리기로 했던 탑식기중기를 가져올수 있지 않겠는가? 그제 려단에는 건설공사에 쓸 직승기가 도착했다. 급한 사정을 보고하면 정우철려단장은 직승기를 동원시켜줄것이다.

기중기를 가져온다고 해서 흠이 될것은 없었다.

광훈은 쓸데없는 체면과 자존심, 자기가 창안하고 만든것에 대한 눈먼 애착때문에 다리건설에 지장을 주는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괴로왔다.

자기가 심혈을 기울인것일수록 사람들은 자기의 창조물에 대하여 애착을 가지기마련이다. 수고와 노력이 아무리 크다 해도 그것이 틀렸다고 인정된다면, 그보다 더 좋고 우월한것이 있다면 주저없이 버려야 할것이다.

이것이 탐구와 창조의 륜리이고 우리 시대 청춘들이 창조와 혁신에서 지켜야 할 립장이였다.

이때 문이 열리며 대대부로 은하가 들어섰다.

그는 지금 안테나식기중기를 세우다 실패한 현장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였다.

광훈의 얼굴에는 안테나식기중기의 실패가 가져다준 그늘이 너무도 침울하게 비껴있었다.

어떻게 말을 꺼냈으면 좋을지 몰라 망설이며 그를 바라보던 은하는 방 한가운데 조용히 선채 나직이 물었다.

《시련없이 새것이 태여날줄 알았나요?》

광훈은 슬며시 은하의 눈치를 살피였다.

《그래서 그러는게 아닙니다.》

《그러면 왜 그렇게 기가 죽었어요? 안테나자체가 잘못된것두 아닌데… 기중기가 넘어지니 사람도 넘어진건 아니겠지요?》

《은하동무, 그러면 동무는 안테나식기중기가 될수 있다고 믿습니까?》

광훈은 은하를 향해 돌아서며 똑바로 그의 두눈을 쳐다보았다.

그의 눈에서는 지금 누구한테선가 자기 생각과 립장이 옳다는것을 확인받고싶어한다는것이 알리였다.

은하는 광훈을 위로하려고 꺼낸 말이 자신을 이렇게 궁지에 몰아넣을줄은 몰랐다. 광훈의 말에 긍정을 표시한다는것은 한때 안테나식기중기를 하찮게 대했던 지난날 자신의 잘못을 그앞에 정식 사과하는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은하는 낯빛 하나 변치 않고 광훈을 똑바로 바라보며 주저없이 대답했다.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설계도면을 다시 보니 도면자체에는 력학상모순이 없어요. 문제는 세우는 방법에 있는거예요.》

《은하동무! 고맙소, 정말… 난 새 궁리가 하나 떠올랐지만…》

광훈은 은하앞으로 한걸음 다가서며 말끝을 여물구지 못했다. 그러더니 얼굴을 붉히며 슬며시 외면하는것이였다.

너무도 순박하고 어진 광훈이의 모습앞에서 은하자신도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알수 없었다.

 

안테나식기중기를 다시 세우는 날이였다.

승리다리가 놓이는 골안 개울가엔 사람들이 한벌 깔리다싶이했다.

고미탄건설지구 돌격대원들은 직일병 몇명을 내여놓고 모두 작업장에 떨쳐나섰다.

밤도와 은하와 토론을 거듭하던 끝에 광훈은 안테나식기중기를 세울수 있는 새 방법을 찾아냈고 오늘은 그 방법대로 작업을 하는것이다.

전번에는 기중기를 통짜로 세우려 했다면 이번에는 두토막으로 끊어 따로따로 세운다.

많은 사람들의 호기심과 어긋나게 안테나식기중기아래부분은 너무나 쉽게 단숨에 일떠났다. 기중기밑토막대가리에 쇠바를 걸고 발을 고정시킨 후 권양기로 당기니 기중기밑토막은 차렷하듯 벌떡 일어섰다.

버레줄을 쥐고있던 사람들이 줄을 당기면서 경사를 조절해준 후 버레줄을 땅에 고착시키자 기중기밑토막은 뿌리박은 나무처럼 든든해졌다.

문제는 그우에 또 그만 한 높이의 기중기웃토막을 올려세우는데 있었다.

광훈은 안전바를 허리에 매고 신호기를 돌돌 말아 꽁무니에 찬채 이미 세워놓은 기중기밑토막꼭대기로 올라갔다.

광훈은 오늘 기중기를 세우는 작업에서 총지휘를 자신이 직접 담당해나섰다.

높다란 기중기의 밑부분토막우에서 일체 작업을 지휘해야 하는것만큼 일은 위험했다.

위험한 일이기에 다른 사람한테 맡길수 없었다.

광훈은 모든 작업지휘를 자신이 맡는 한편 보조신호를 대식에게 맡기기로 하였다.

오늘 작업에서 이들 두사람이 지니고있는 책임은 무거웠다.

작업의 성공여부는 일체 신호를 책임진 광훈의 의사를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대식에게 달려있었다.

광훈이 올라서서 작업을 지휘하는 기중기아래토막은 높다란 전보대를 련상시켰다. 겨우 발이나 디딜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놓고 그우에 올라서서 광훈은 앞가슴과 허리에 안전바를 맨채 작업을 지휘했다.

광훈은 땅우에서 자기를 올려다보고있는 대식에게 머리를 끄덕했다.

그러자 대식이 붉은 신호기를 들어올렸고 권양기공은 스위치를 넣었다.

강기슭에 설치한 권양기는 쇠바줄을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광훈이 다시 머리를 끄덕하는 순간 대식은 손에 들었던 신호기를 내리웠고 권양기공은 그와 동시에 스위치를 뗐다.

우로 올려야 할 기중기웃토막 맨 밑바닥에 쇠바줄을 매고 그 쇠바줄을 이미 세워놓은 기중기아래토막꼭대기에 달아놓은 활차에 걸었다.

쇠바를 권양기로 당기면 기중기옷토막은 우로 올라가고 사람들은 기중기웃토막 꼭대기에 처맨 버레줄을 당기면서 수직이동방향을 조절해준다.

기중기웃토막에 처맨 버레줄을 사방에서 당기니 그 모양은 천을 벗겨버린 거대한 우산살같기도 했고 네 팀의 바줄당기기선수들이 바줄을 기둥꼭대기같은데 올려매달고 서로 힘내기를 하는것과 같은 바줄당기기경기를 련상시키기도 했다.

작업은 퍽 오랜 시간 계속됐다.

갑자기 바람이 일기 시작하자 은하의 불안은 점점 커갔다.

변덕스러운 산골기후였다. 바람새가 점점 사나와졌다.

안테나식기중기 웃토막이 점점 높이 올라가고 작업이 긴장되여갈수록 모든 사람들의 시선은 광훈에게 쏠리였다.

긴장된 분과 초가 흘렀다.

안테나식기중기 웃토막은 한치한치 우로 올라갔다.

광훈이 권양기스위치를 떼라는 뜻으로 흔들던 손을 멈추었다.

이때였다.

지끈하는 소리가 나더니 이미 세워놓은 기중기아래토막이며 그에 의거해 우로 올리던 기중기웃토막이 심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권양기공이 미처 스위치를 끄지 못한것이다.

그러자 대식이가 버럭 고함을 질렀다.

《물러나라!-》

그의 다급한 웨침소리에 안테나식기중기밑에 서있던 사람들은 확 풍기듯 달아났다.

《아-》

은하는 저도 모르게 외마디비명을 지르며 두손으로 눈을 가리웠다.

발을 디디고 서있던 기중기아래토막이 심히 진동하는 바람에 광훈은 중심을 못 잡아 기우뚱거리더니 밑둥찍힌 나무처럼 모자로 넘어지기 시작하는것이였다.

《앗-》

여기저기서 놀란 웨침소리가 동시에 터져나왔다.

은하는 하늘높이 올라가던 안테나식기중기 웃토막이 바로 자기 머리꼭대기를 지끈하고 내려치는듯 한 환각에 땅과 하늘마저 마구 흔들리는것 같았다. 은하는 두눈을 손으로 가리운채 숨을 딱 죽이고 온몸이 화석처럼 굳어져버렸다.

시간이 퍽 흘렀으나 은하는 눈을 뜰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한참만에야 은하는 가까스로 눈을 떴다. 돌처럼 이미 땅에 떨어진줄만 알았던 광훈이 안전바에 허공 매달려있었다.

땅에 서있는 모든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라 두손에 땀을 쥔채 광훈만 올려다보고있었다.

안전바에 매달려 흔들리던 광훈은 잠시후 몸을 바로하더니 다시 기중기아래토막꼭대기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얼마후 그는 전보대같은 기중기아래토막꼭대기에 올라섰다. 광훈은 활차에 달리워 찌글써하게 서있는 기중기웃토막을 한손으로 쥐고 몸자세를 바로하며 아무말없이 히쭉 웃었다.

모든 사람들에게 위험을 피해 물러나라고 소리를 지르고서도 광훈이 떨어지면 그를 받아안기라도 할듯이 못박혀 그 자리에 서있던 대식은 광훈이 히쭉 웃자 저도 모르게 마주 웃었다.

그러자 작업장에는 찬바람을 밀어내는 안정이 그 무슨 기류처럼 떠돌기 시작했다.

태연하면서도 확신에 찬 광훈의 소리없는 웃음은 급변하는 불의의 정황에 산산이 흩어지던 병사들을 한데 모으고 그들을 돌격에로 부르는 능숙한 지휘관의 힘찬 구령과도 같았다.

그 웃음은 신비스러울 정도로 억센 힘을 갖고 모든 사람들에게 용기를 북돋아주며 파문처럼 퍼지기 시작했다.

숨을 죽인채 긴장했던 사람들은 후- 하고 안도의 숨을 내쉬며 광훈을 향하여 빙그레 웃었다.

순간의 자기 실수로 돌이킬수 없는 후과를 빚어낸줄만 알고 등골에 식은땀을 흘리며 돌처럼 굳어졌던 권양기공도 마음을 다잡고 자신만만하게 권양기손잡이를 잡았다.

대식이 신호를 하자 바줄당기기경기에 나선 사람들처럼 버레줄을 쥐고 사방으로 늘어서있던 사람들속에서 《와-》하고 함성이 터지더니 늦춰졌던 버레줄이 끊어져나갈 정도로 팽팽 헤워진다.

균형을 잃었던 안테나식기중기 웃토막은 다시 꼿꼿하게 바로서고 권양기는 용을 쓰며 돌아가기 시작했다.

안테나식기중기꼭대기에 꽂힌 붉은기발은 바람을 안고 세차게 펄럭인다.

조용하던 작업장에 잠시후 만세의 환호성이 터져올랐다.

허리에 안전바를 건채 안테나식기중기 한가운데 서서 흡족한듯 웃고있는 광훈의 모습은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뚜렷이 드러났다.

그는 웃으며 옷소매로 땀을 훔쳤다.

넋없이 광훈의 모습을 바라보며 서있던 은하는 자기가 지금까지 광훈의 신변에 대해 뭇사람과 다르게 신경을 썼다는 생각에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붉히였다.

 

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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