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1 회)

제 4 장

6

 

이전같으면 이런 휴식때 누구보다도 이채를 띠였을 오활이였다.

요즘 오활은 모든 일에서 흥이 나지 않았다.

대식과 다투고 대대를 떠나던 그날 범산고개 중턱에서 자기때문에 울고있는 불꽃을 보았을 때 오활은 두발이 땅에 얼어붙고말았었다.

인정에 져서 불꽃에게 붙들리긴 하였어도 아직 그의 마음은 안착되지 못했다.

모든 사람들이 자기를 락후분자로 보고 그 무슨 개조대상처럼 취급한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오활은 그날 자기가 불꽃을 뿌리치고 떠나지 못한것이 못내 후회됐다.

지금까지 오활은 웃음과 익살로 항상 동무들의 인기속에 살아왔었다. 게다가 오활은 멋들어지게 손풍금도 탈줄 알았다. 그는 그 무엇이든지 자기가 바라고 원하는것이면 쉽사리 이루어지는데 습관이 되다싶이 했다. 새 철길건설장을 탄원하던 때 오활은 건설장에만 가면 그대로가 웃음과 노래이고 영웅적랑만이 넘칠줄 알았으며 단번에 영웅도 될듯 한 심정이였다.

랑만적으로 그려오던 돌격대생활은 너무도 평범했고 크나큰 위훈은 둘째쳐두고 자기는 지금 락후분자라는 소리까지 듣게 됐다.

오활은 이제라도 대대를 떠나고싶은 생각밖에 없었다.

답답하고 우울하던 오활의 생활에 위안거리가 생겨났다.

속이 클클하여 죽을 지경이던 오활은 누이잔치때 집에 갔다 오던 날 샀던 맥주가 생각났다.

오활은 복동의 생일을 축하해주려고 역전상점에서 사가지고 왔다. 집에 다녀오느라 여러날 일에서 빠진걸 생각하면 동무들한테 미안했다.

중대에서 되게 비판을 받고나서 오활의 생각은 달라졌다.

(나를 반동 몰아대듯 하는 사람들한테 맥주를 줘?)

오활은 1중대사람들에게 맥주를 먹이고싶지 않았다. 오활은 누이잔치에 갔다가 대대로 돌아오면서 가져온 맥주를 고미탄전망대밑의 너럭바위틈에 숨겨두었다. 복동의 생일날에 내놓으려는 생각에서였다. 오활은 동무들의 비판을 받고 중대를 떠나던 때 그 맥주를 잊고말았다.

지금도 그 맥주는 너럭바위틈에 그냥 숨겨져있을것이다. 오활은 요글요글해오는 속을 눅잦히려고 취침시간이 되기 바쁘게 맥주통을 감추어둔 고미탄전망대밑의 너럭바위를 찾아갔다.

맥주를 따라마실 그릇이 있어야 했다. 식기를 들고다닐수는 없었다.

오활은 생각하고생각하다 점적관을 가지고 가기로 했다.

오활은 몇달전에 식중독을 만나 철길건설자병원에 며칠 입원한적 있었다. 그때 점적받던 점적관이 있었다.

오활은 건사해두면 쓸데가 있으리라는 생각에서보다 돌격대에 나와 식중독에 걸려도 보고 입원까지 했던것을 추억하고싶었다. 오활은 지금까지 병원에 한번도 입원해본적이 없었다.

오활은 절벽밑의 너럭바위틈에서 맥주통을 찾아 아구리마개를 열고 점적관을 꽂았다. 점적관 한끝을 입에 물고 쭉 빠니 향긋한 맥주가 입에 가득찼다.

갈증마저 느끼던 때여서 오활은 몇모금 꿀꺽꿀꺽 마시였다.

《야, 좋구나.》

오활의 입에서는 저도 모르게 이런 탄성이 터져나왔다.

맥주통에 콩과 사탕가루를 넣어선지 맛이 별로 변한것 같지 않았다.

먹을 때에는 몰랐으나 자리에서 일어서니 다리가 다 휘친했다.

오활은 강변까지 걸어나가 세면을 하고 한참이나 앉아있었다. 담배까지 몇대 피우고나서 오활은 숙소로 돌아왔다. 누구와 마주친 사람도 없었고 혹시 누가 보았다하더라도 변소에 다녀오는줄 알것이다.

첫날은 아무일없이 례사롭게 흘러갔다.

다음날도 오활은 취침시간에 맥주통을 숨겨둔 너럭바위를 찾아갔다.

그날도 일은 순조롭게 되였다.

밤에 남몰래 맥주마시는 회수가 한차례 두차례 늘어갈수록 그러다 이제 들장나지 않겠는가 하는 위구심은 사라지고말았다.

재미난 골에 범이 나고 꼬리가 길면 밟히기마련이다.

숙소천막까지 무사히 접근했으나 중대장 대식과 정면으로 맞다들었다.

대식이 밤에 자지 않고 어디로 싸다니냐고 추궁하는 말에 오활은 천연스럽게 변소에 가는것도 중대장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가고 오히려 제편에서 면박을 주었다.

오활은 허세를 부리였으나 뒤가 켕기였다.

(될대로 되라. 내가 남의걸 도적질해먹었느냐?)

오활은 께름직한 생각을 몰아내려고 입속으로 중얼거렸다.

다음날 오활은 잠에서 깨여났을 때 오강뚜껑으로 물을 퍼마신것 같은 기분에서 벗어날수 없었다.

생각할수록 복동에게 미안했다.

생일을 차려준다 큰소리를 쳐놓고 맥주를 가져다 혼자 마셨으니 사람의 도리가 아니였다.

복동이 혼자만이라도 데리고가서 함께 마실걸 그랬다는 후회도 생겼다.

이제 그러다 누가 맥주통을 찾아내면 더 큰 망신을 당하게 될것이였다.

오활은 낮에 일을 하면서도 너럭바위가 있는 벼랑쪽을 자주 살피였다.

오활은 저녁식사를 끝내기 바쁘게 저녁점검에도 빠진채 벼랑쪽으로 갔다.

맥주통은 바위틈에 숨겨놓은대로 있었다.

안도의 숨이 나왔다.

오활은 걸걸한 목을 추기려고 맥주통마개를 열고 점적관을 꽂았다.

맥주맛이 이상했다.

콩을 넣고 사탕가루까지 부었으나 더운 여름날씨에 맥주가 안 변할수 없었다.

오활은 입에 물었던 맥주를 뱉아버리고말았다.

조심스럽게 빨아 다시 한모금 입에 물었으나 먹을수가 없었다.

(에이, 다 버렸구나.)

맥주는 통에 아직 적지 않게 남아있었다.

오활은 아까운 맥주를 다 버리게 되였다는 생각보다도 자기가 무슨 잘못을 저지르고 벌을 받는 심정이였다.

오활은 통에 남은 맥주를 여기저기에 모두 쏟아버리고 통을 바위틈에 그냥 숨겨놓은채 숙소로 돌아왔다.

그러다 숙소가까이에 이르러 대대장 광훈과 맞다들릴줄이야…

오활은 가슴이 철렁했다.

광훈대대장은 대식중대장을 통하여 이미 모든 이야기를 들었을것이다. 맥주 한모금 마시지 못하고 고슴도치 오이도적으로 몰리듯 밤에 남몰래 맥주먹으러 다니다 붙들린것처럼 되고말았다.

광훈은 대식중대장처럼 떡떡거리지 않았다.

다음날 오활은 온종일 가슴을 조이였으나 별일이 생기지 않았다.

돌틈에도 용수는 있다. 무슨 일이나 꼬이기만 하라는 법은 없는가싶었다.

광훈대대장이나 대식중대장이 언제 자기를 찾으려나 하여 가슴을 조이였으나 누구도 부르는 사람이 없었다.

대대장 광훈이 미끄럼식쟈끼해결차로 평양에 출장을 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오활은 이상하게도 이제는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막혔던 숨이 후 하고 터지는 기분이였다.

무거운 짐을 지고 힘겹게 걸어가다 내려놓은것 같기도 했다.

오활은 중압감에서 벗어났지만 괴로운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사서 힘겹게 날라까지 왔건만 왜 다 버리지 않으면 안되였는가.)

어처구니없는가 하면 서글프기도 했다.

광훈대대장이 미끄럼식쟈끼해결차로 평양에 가고 하루이틀 시간이 지나면서 오활의 마음은 다시 안정되였으나 일은 그렇게만 되지 못했다.

오활은 취침시간에 고미탄전망대밑으로 갔다.

바위틈에서 맥주통을 꺼내던 오활은 놀랐다. 빈통인줄 알았는데 묵직했다.

(내가 전번에 다 쏟아버리지 못한 모양이구나.)

오활은 마개를 열고 점적관을 꽂았다. 조심스럽게 한모금 빨아보니 전번에 못 먹겠다고 쏟아버린 맥주가 아니였다.

오활은 맥주통에 차있는것이 쑥물이라는것을 한참만에야 알았다.

누군가가 맥주통에 쑥물을 채워넣은것이 분명했다.

자기가 바위틈에 숨겨놓고 맥주를 몰래 마신 사실은 들장이 나고말았다. 맥주통을 찾아낸 사람은 맥주가 아니라 술을 마셨다고 생각할것이다.

술이든 맥주든 집단생활을 하는 돌격대안에서 이것은 치사스러운 일이였다.

오활이 맥주를 가져다놓고 남몰래 혼자 마신 사실은 이미 대대안에 공개되였을것이다. 려단지휘부에까지 통보되였을수 있었다.

이미 보고될대로 다 보고되고 상급의 결론을 기다리고있을것이였다.

위축되고 마음이 옹송그려진 오활에게 은하의 출현은 다시한번 야릇한 충격을 주었다.

오활은 오늘 점심때 식당앞에서 대대에 내려온 은하를 만났다. 그를 만나고보니 오활은 어물쩍해 그를 따라가던 일이 되살아오면서 면구스러웠다.

그런데 은하는 이런 소식을 전했었다.

《정말, 순태동무를 만났어요. 안부를 전하더군요. 지금은 려단지휘부직속 운수중대에서 <자주>호를 몰아요. 운수중대에 가니까 <사나운 비발속에 <자주>호로 범고개를 개척한 리순태동무를 열렬히 축하한다.> 하고 큰 속보가 나붙었길래 누군가 했더니 글쎄 려단장동지승용차를 몰던 그 순태동무더군요. 운수중대로 간지 열흘밖에 안됐는데 그간 정말 큰일을 했어요. 남들이 갈수 없다는 범고개로 철근을 가득 싣고 넘었대요. 순태동무가 범고개를 개척하는 바람에 지금 려단지휘부에서는 범산차굴건설문제가 풀렸다고 얼마나 기뻐하는지 몰라요.》

오활은 자신을 진정하지 못했다. 순태가 려단지휘부에서 려단지휘부직속 운수중대로 간것은 오활의 문제와 결부되여있었다. 순태는 자기가 태워다준 오활이 《도주》했다는것을 알게 되였을 때 생활총화에서 심각한 자기비판을 했었다. 자기의 무원칙한 행동이 어린시절동무의 자유주의를 도와주었다는 비판끝에 순태는 자기를 려단지휘부직속 운수중대로 보내줄것을 제기했다. 이전부터 《자주》호를 한번 몰아보고싶은 마음이 없지 않은데다가 자기의 자유주의적행동때문에 정우철려단장한테까지 그늘을 던지고싶지 않았고 자기 결함을 로력적성과로 시정하고싶었기때문이였다.

자기의 순간적인 자유주의가 어린시절동무한테까지 괴로움을 끼쳤다는 생각에 오활은 자기자신이 미웠다.

오활은 온종일 자기모멸감에서 벗어날수 없었다. 구들장운반전투에 참가해서도 그의 심정은 여전했다.

구들장을 지고 고개마루에 올라서니 자동차를 가지고 마중나온 사람은 뜻밖에도 순태였다.

《아니, 순태! 어떻게 왔어?》

오활은 구들장을 벗어놓기 바쁘게 반갑게 소리쳤다.

《어떻게 오다니, 너를 마중왔지. …》

《거짓말 말어.》

《거짓말이 뭐야? 이쪽에 나무실러 왔다가 너희네가 구들장운반전투 한다는 말을 듣고 달려왔는데. …》

《그럼 과업두 안 받았는데 왔단 말이야?…》

《나 안 오면 네가 힘들어할것 같아서 왔지.… 동생이 고생하는걸 보구 형이 가만있을수 있어?》

《에끼…》

오활은 순태의 옆구리를 주먹으로 쥐여박았다. 오활은 순태와 자치동갑이였다. 그리고 생일도 같은 달이였다. 그래도 자기가 며칠 먼저 태여났다고 순태는 자기를 형처럼 행세했고 오활의 보호자연했다. 오래간만에 만났으나 오활은 순태와 이야기를 나눌새가 없었다.

모든 사람들이 저저마다 순태를 반갑게 만났고 이전부터 잘 아는 사이처럼 그를 대했다.

순태는 사람들한테 둘러싸여 인사도 미처 받기가 힘들 지경이였다.

무슨 크나큰 위훈을 이룩하고 돌아온 영웅처럼 대접받는 순태를 보자 오활은 그와 자신을 새삼스레 대비해보게 되는것이였다.

오활은 순태곁에서 슬그머니 물러섰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 떨어져 어둠속에 혼자 자리를 잡았다. 밤하늘을 바라보며 울적한 기분으로 앉아있는데 누군가가 옆으로 다가왔다.

《혼자서 뭘해?》

옆에 와서 자리잡고 앉으며 묻는 사람은 대대장이였다.

《그저 이렇게 앉아서 쉬지요.》

《요즘 어디 아파? 정말 오활동무한테 속탈이 있지?》

지난봄에 식중독에 걸렸다 나은 이후 오활은 속이 좀 말쨌다. 그리고 얼마전 재밤중에 숙소천막앞에서 만났을 때 속이 말짼가고 묻길래 그렇다고 어물쩍 대답했다. 오활은 그렇다거나 아니라고 말할수가 없었다.

《속탈에는 쑥이 좋은데… 흔해서 천하게 여기는데 사실 쑥은 좋은 약재야. 배띠를 하면 웬만한 속병이 뚝 떨어져.》

오활은 광훈이 쑥에 대해 한참이나 말하는 바람에 신경이 긴장되였다.

벼랑턱의 너럭바위틈에 숨겨놓았던 맥주통에 넣은것이 쑥물이였다.

대대장 광훈은 모르는척 하고 아닌보살을 해도 너럭바위틈에 숨겨놓았던 맥주통에 대해 알고있음이 분명했다. 대대사람이 숨겨놓았던 맥주통을 발견하였으면 대대장한테 보고되였을것이다.

맥주통에 쑥물이 들어있는것과 위에는 쑥이 좋은 약재라고 하던 대대장의 말이 우연한 일치겠는가. 무엇이 날자 배떨어진다는 말도 있지 않는가.

오활은 될대로 되라 하는 자포자기의 상태에 빠져 머리를 푹 숙이였다.

광훈은 슬며시 이야기의 방향을 돌리였다.

《요즘 왜 그렇게 풀이 죽어 그래? 어디 가서 매맞고 온 사람처럼 말이야?》

《어디 뭐 기분날 일이 있나요?》

오활은 한숨섞인 소리로 대답했다.

《비판 좀 받았다구 그러는게 아니야?》

오활은 광훈이가 자기 속을 빤히 들여다보고 묻는것 같아 대답을 피해버리였다.

《난 오활동무가 대범한줄 알았는데.…》

광훈은 오활의 어깨를 툭 치며 껄껄 웃었다.

정통을 찔리운 오활은 슬며시 왼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오활이! 비판받으면 누구나 아픈 법이야. 하지만 새기구 고쳐야 해. 사실 터놓고말해 오활동무한테 뭐 특별히 큰 잘못이 있는건 아니지 않아. 오랜 기간 집을 떠나있었으니 누구나 한번 다녀오고싶은 생각은 있는게구 또 집에 큰일까지 있는데 가기 싫어하는 사람이야 없겠지. 나두 전번에 출장갔다 고향을 지나면서 동요했댔어.… 우리는 때때로 마음속에서 생겨나는 동요를 이겨내야 해.

승인없이 집에 갔다온것두 문제지만 내가 보건대 오활동무한테는 기분주의와 자유주의가 좀 있는것 같애. 고생을 모르고 행복하게만 살았고 벅찬 생활속에서 단련되지 못했기때문이야.

지금 우리는 너나없이 모두가 새 철길건설장을 혁명화의 학교로 되게 하자고 말하지 않아. 새 철길건설장을 혁명화의 학교로 만들자면 속도전의 마당으로 되게 해야 해. 그러자면 건설의 하루하루가 당에서 바라는대로 자기 일생에서 가장 보람찬 날과 날이 되게 해야 해. 하루나 이틀은 사람의 일생에서 긴 시간이 아니야. 하지만 이런 날과 날들이 모여 한생을 이루는게 아니겠나. 우리 청년돌격대생활의 하루하루가 동무들을 위하고 집단을 위해 바쳐지고 그것이 조국과 인민을 위한것으로 되게 할 때 우리의 젊음도 빛날것이 아닌가.

이미 오래전 일이지만 난 지금도 두고두고 후회되는 일이 있어.…》

광훈은 여기서 잠시 말을 끊었다.

광훈은 두팔로 두무릎을 감싸안더니 천천히 다음말을 이었다.

《벌써 이십여년전 일이야. 나는 그때 집에 일이 생겨 친척네 집에 갔다 자동차를 얻어타고 집으로 돌아오고있었어. 얼마동안은 일없었는데 오래동안 차를 타니 멀미가 나더군. 나는 그때 멀미를 참을수가 없어 차에서 내리겠다고 했어. 그때 나를 데리고가던 인민군대 운전사는 인정에 못이겨 차를 세워주었지. 차에서 내려 찬바람을 쏘이니 후리후리하던게 속이 좀 내려가드라 이거야. 바쁜 길이라 운전사는 빨리 차를 타고 떠나자고 재촉했지. 난 차를 타면 또 멀미가 나리라는 생각에 조금만 더 쉬다가 가자고 했어. 그러다 거기서 그만 폭격을 만났지. 폭격속에서 나를 구원하다가 그 운전사는 부상을 입었어.… 그때는 철이 없어 몰랐지만 나는 세월이 흐를수록 두고두고 후회 돼.… 그때 운전사는 팔에 부상을 당했는데 치료를 받았지만 지금도 그 팔을 잘쓰지 못해. 한쪽팔쓰기를 거북스러워하는 그를 볼 때마다 내가 그때 멀미를 참았으면 그는 부상을 당하지 않았을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난 철부지시절의 그 하루가, 멀미를 이겨내지 못한 그 길지 않은 순간이 세월이 흐를수록 이렇게 후회될줄 정말 몰랐어. 그때를 생각할 때마다 난 생활의 매 하루가, 생의 매 순간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것을 새삼스럽게 생각하게 돼.》

광훈은 이야기를 끝내며 그때를 회상하듯 어딘가 저 멀리 밤하늘을 바라봤다.

하늘에선 별찌가 흘렀다.

광훈의 이야기를 통해 오활이 받는 감동은 컸고 자책도 많았다.

오활은 무엇인가 말하고싶었으나 이때 출발구령이 내렸다.

벌써 앞대렬은 떠나갔다.

자동차는 강기슭까지 구들장을 날라다놓고 고개로 다시 돌아올것이다.

자동차가 강을 피해 돌자면 백여리길을 가야 한다. 자동차로는 강기슭까지만 구들장을 나르기로 했다.

구들장을 차에 싣고 맨몸으로 걸으니 날것 같았다. 사람들은 빈 몸으로 홰불고개를 내리기 시작했다.

《그때 그 운전사동지가 지금 어디 있어요?》

오활과 광훈이 나란히 걸어가는데 누군가 다가오며 이렇게 물었다.

그는 은하였다. 은하는 광훈이가 오활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들었었다. 그의 이야기는 은하자신이 알고있는 이야기와 너무도 비슷했다.

정우철려단장도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한 소년을 구원하고 팔에 부상을 입었었고 그 부상때문에 지금도 왼쪽팔쓰기를 불편해했다. 이 류사성은 광훈이가 정우철에 의해 구원된 소년이 아닐가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예- 차차 알게 되겠지요.》

광훈은 어색하게 웃으며 어물어물 대답하더니 대렬앞으로 걸어갔다.

은하는 버쩍 더 의심이 들면서 자기가 상상속에 그려오던 그 소년이 틀림없이 광훈이라는 예감이 드는것이였다.

정우철려단장을 대할 때마다 아직 한번도 만나본적이 없으나 상상속에 그려보게 되고 그 과정에 마음속깊이 자리잡았던 소년.

은하는 공상많던 중학교시절 언젠가 자기 일기장에 그 소년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기도 했었고 언젠가는 꿈속에서 그 소년과 함께 새로 나온 교예를 구경하러 교예극장에 같이 가기도 했었다.

정우철려단장이 아버지의 전우였기에 은하는 정우철과 관계되는 모든것을 아버지와 관계되는 일처럼 생각하게 되는것이였고 아버지를 그리는 마음은 그 소년이 지금 어디에 있으며 정우철의 고생을 알기나 할가 하는 야속함과 함께 지금은 광훈의 나이쯤 되였을 그를 한번 만나보고싶은 생각으로 이어지였다.

잠시후 대렬은 고개를 내려섰다.

물소리가 점점 가까와지더니 고미탄천이 나타났다.

홰불대렬이 강기슭에 이르자 수백의 불꼬리가 강물우에 생겨나 꿈틀거리였다.

이제는 강건너편으로 구들장을 날라야 한다.

어둠속에서 고미탄천은 솨솨- 소리치며 거세게 흘러갔다.

산짐승들만 물을 마셨고 미역감던 강, 어둠속에서 꿈틀거리는 강을 향해 수백의 홰불이 돌진을 준비했다.

《절대 신발을 벗지 말것!》

《신발끈을 꼭 맬것!》

《세명이상 조를 구성할것!》

지휘관들의 엄격한 명령은 몇번이나 반복되였다.

어둠속에서 사품치는 강을 향해 제일먼저 뛰여든 사람은 광훈이였다.

대대기발앞에서 광훈은 길을 개척하기 시작했다.

그를 뒤따라 기발주변에 한덩어리로 뭉친 세사람이 서로 어깨겯고 강물에 들어섰다. 기수는 기발을 높이 들었고 두사람은 량옆에서 그를 부축했다.

강바닥은 미끄럽고 물살은 빨랐다. 얼음처럼 차거운 물은 허리밖에 오지 않았으나 등에 무거운 돌을 진채 급한 물살을 이겨내기란 쉽지 않았다.

기발을 든 선두대렬이 강을 개척하는 동안 다른 사람들은 잠시 기슭에서 대기했다. 모든 사람들은 기슭에 선채 길을 개척하는 대렬선두를 안타깝게 주시했다.

《동무들, 노래를 부릅시다.》

홰불을 추켜들며 복동이 자기 중대동무들을 향하여 구호를 웨치듯이 말하였다. 땀에 젖은 얼굴과 빛나는 두눈, 구들장을 등에 배낭처럼 지고 한손에 홰불을 추켜든채 복동은 입으로가 아니라 자기의 온몸으로 호소하는가싶었다.

밤대기를 찢으며 쨍쨍하게 울리는 그의 목소리는 장엄한 혁명가요의 선률로 번져지기 시작했다.

처음 한두입에서 울리기 시작한 노래소리는 모두의 입에서 터져나왔다.

강기슭에서는 요란한 강물소리를 짓누르며 혁명가요의 합창이 장엄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광훈을 선두로 대렬은 한걸음한걸음 강물을 헤쳐나갔다.

제일 물살 급한 강중심에 이르러 기발은 멈추어섰다. 사람들이 갈길을 가리켜주며 기발은 어두운 강물우에서 펄럭거리였다.

펄럭이는 기발주위에선 세개의 홰불이 불탔다. 홰불을 추켜든 그들의 등에는 구들을 놓는데 써야 할 돌이 배낭처럼 지워져있었다.

홰불을 추켜든채 어깨를 겨루고 물결사나운 강물에 들어서는 대원들을 바라보자 은하는 웬일인지 가슴이 뭉클해오면서 가슴속깊이에서 격정의 파도가 치밀어오르는것이였다.

추위와 더위, 비바람과 먼지, 눈과 비를 막기 위해 사람들은 예로부터 생활의 보금자리로 집을 지어왔었다.

이제 자기들이 지어야 할 집은 현대건축수준에 맞는 기념비적건물이 아니였고 수수한 보통살림집이였다.

하지만 돌격대원들 대부분이 자기들 일생에 제 손으로 처음 짓는 집이였고 지금까지 사람들이 살지 않던 여기 고미탄지구에 이 땅이 생겨나 처음으로 세우는 돌격대살림집이였다.

어디서나 늘 보아왔고 지금까지 이십여년이나 가족들과 함께 살아온 집, 집이라면 따뜻한 아래목을 먼저 생각하고 어린시절에는 그 아래목을 혼자 독차지하다싶이한채 살아왔지만 윤기흐르는 노란 장판지밑에는 구들장이 있으며 천연적으로 생겨난 그 구들장 하나하나가 사람들이 수없이 흘린 땀의 대가로 집안에 놓이게 됐다는데 대해서는 지금까지 한번도 생각해본적 없는 은하였다.

다 지어놓은 집에서 살아오는데 습관이 됐고 아담히 꾸려진 집에는 자기 침대나 책상을 비롯해 필요한 모든것들이 응당 주어져있어야 하는것처럼 생각해왔으나 이제는 제 손으로 나무를 찍어 기둥을 세우고 산자를 엮어 흙도 발라야 했으며 구들장도 제 손으로 하나하나 구해다 놓아야 했다.

한장의 구들장때문에 고개를 넘고 강을 건느며 청년돌격대원들과 함께 험한 길을 걷게 되고보니 은하는 지금까지 생각없이 무심하게 보아오던 집에 대해, 그 집에 깃들었을 사람들의 수고와 노력에 대해 새삼스럽게 돌이켜보고 음미해보게 되는것이였다.

홰불을 높이 추켜든채 물결사나운 강 한복판에 버티고 서서 대원들을 부르는 광훈을 보자 은하는 격해오르는 심정을 금할수 없었다.

광훈은 자기가 상상속에 그려오던 그 소년이 아닐수도 있었다. 그러나 광훈은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비발치는 적탄알을 자기들의 가슴으로 막아준 아버지, 어머니, 형님, 누나들의 등에 업혀 자라났으며 그들이 피흘려 조국을 지켜주었기에 오늘 자기에게 보람찬 청춘이 있다는것을 너무도 깊이 자각하고있는 사람임에 틀림이 없었다. 하기에 그는 조국의 동맥을 늘여가는 영예로운 사업에 자기의 청춘을 고스란히 바쳐가고있는것이 아닌가.

《피바다-》

서로 부축이며 어깨를 겯고 물결을 헤가르는 사람들을 향하여 태선과 수덕이 홰불을 추켜들고 물속에서 소리쳤다. 그러자 수백의 목소리가 하나처럼 화답했다.

《근위대-》

그 웨침소리는 어둠속에 잠긴 산발을 쩌렁쩌렁 울리며 메아리쳐갔다.

은하는 돌격대원들과 같은 심정이 되여 자기도 모르게 소리높이 구호를 웨쳤다.

《근위대-》

은하의 부름에 모두는 또다시 한사람같이 대답했다,

《결사대-》

《피바다》를 찾으면 《근위대》가 대답하고 《근위대》를 부르면 《결사대》가 화답한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였고 지휘관들이 의도적으로 조직해서도 아니였다.

자연발생적으로 터지기 시작한 이 구호에 사람들은 한결같이 발걸음을 맞추며 한걸음한걸음 강을 정복해나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목이 쉬도록 저저마다 구호를 불렀고 구호에 호응했다.

벌써 대렬선두는 건너편 강기슭에 이르렀다.

제일 물살빠른 강 한복판에 들어섰을 때 은하는 물결에 밀리우기 시작했다.

나어린 돌격대원처녀들을 돌보아야 한다는 생각에 자기 조에서 벗어나 어린 동무들을 손잡아주기도 하고 강복판에서 구호를 웨치며 사람들을 고무도 하던 은하는 저도 모르게 한걸음두걸음 뒤로 밀려났다.

한때는 수영선수로 전국대학생해양축전에도 참가한바 있는 은하였지만 강바닥이 하도 미끄러워 어쩌지 못했다.

고미탄다리와 승리다리설계를 개조하기 위하여 줄곧 밤을 패워 일해온데다 나어린 처녀들을 손잡아 이끌어주느라고 적지 않게 자기 힘을 소모해버린 은하였다.

물결사나운 강 한복판에 버티고 서서 사람들을 손잡아 이끌어주던 광훈은 누군가 한사람이 물결에 밀리워 떠내려가는것을 보았다. 그는 사람들로부터 한걸음두걸음 떨어지며 강아래쪽으로 밀리우고있었다.

그가 은하라는것을 알아보는 순간 광훈은 가슴이 철렁했다.

광훈은 은하가 고개를 오르던 때 몹시 힘들어하는것을 보고 등도 떠밀어주었었고 자기가 짚고오던 지팽이를 넘겨주었었다.

아직 로동에 단련되지 못한것만큼 이번 홰불행진이 그에게는 큰 육체적부담을 줄것이였다. 그래서 대렬에서 뒤떨어지는 사람이 없는가 살피며 은근히 은하에 대해 걱정해오던 광훈이였다.

광훈은 물결에 밀리우는 은하를 붙잡으려고 필사의 힘을 다해 강물을 헤쳐나갔다.

은하는 물결을 이겨내려 안깐힘을 썼으나 물결을 따라 한걸음두걸음 밀리우기만 하였다.

《돌을 던지시오.》

《벗어던지시오.》

광훈은 은하에게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은하는 자기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면서도 등에 진 구들장을 벗으려고 하지 않았다.

은하에게 다가가던 광훈은 발을 잘못 짚어 비칠했다. 그 바람에 물결에 떠밀리우며 광훈은 모재비로 넘어졌다.

푸-

광훈은 물속에서 솟아올라 입에 한입 물었던 강물을 내뱉았다. 광훈은 숨이 차 헐썩거리며 앞을 보려고 손으로 얼굴에 흐르는 물을 닦았다.

은하는 불과 둬메터앞에 있었다. 강을 건느기로 표시되여있던 통로는 이미 벗어났다.

물살은 점점 빨라졌고 강바닥물매도 웃쪽보다 더 급했다. 광훈은 이미 불이 죽어버린 자기의 홰불대를 획 집어던지고나서 은하를 놓치지 않으려고 헤염치듯 앞으로 몸을 내뻗치였다. 그는 은하의 팔죽지를 거머잡으며 물속에서 자기 몸을 일으켰다.

은하는 반사적으로 광훈의 팔을 붙잡았다.

《죽자구 그러오?》

위험한 고비를 넘어섰으나 광훈은 은하를 놓칠가봐 그를 다시 자기앞으로 꽉 끌어당기며 고함을 질렀다.

은하는 자기 온몸을 광훈의 한팔에 의지한채 아무런 반응도 대꾸도 하지 못했다.

광훈은 은하의 팔을 잡아끌고 돌아섰다.

이때였다.

《돌.》

뒤에서 광훈의 팔에 끌려오던 은하가 자지러지게 비명비슷한 소리를 질렀다.

다음순간 쩜벙 하는 소리가 나더니 광훈은 자기 등이 갑자기 홀가분해짐을 느꼈다.

광훈은 자기 구들장이 멜방에서 벗어나 물에 떨어졌다는것을 깨닫고 돌아섰지만 어둠속에서 구들장은 보이지 않았다.

은하를 부축해주려고 광훈을 뒤따라오던 불꽃과 태선이 그들한테 이르렀다.

《언니-》

《선생님, 조심하세요.》

온 정신이 은하한테 쏠려있는 불꽃과 태선은 그를 부축해주는데만 급급했다.

두 처녀는 량쪽에서 은하를 낀채 기슭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광훈은 불도 없이 세 처녀뒤에 남은채 넋잃은 사람처럼 강 한가운데 우두커니 서있었다. 세 처녀는 강기슭에 이르러서야 광훈이 보이지 않는다는것을 깨달았다.

이미 대렬은 강을 다 건너섰다.

《대대장동무!》

《대대장동지!》

불꽃과 태선은 어두운 강을 향해 광훈을 찾았다.

《광훈동무-》

은하도 광훈을 불렀다.

물소리만 높아갈뿐 광훈한테서는 대답이 없었다.

혹시 광훈이 강기슭에 나왔나해서 세 처녀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기슭쪽을 향해 광훈을 다시 찾기 시작했다.

《광훈동무!》

《대대장동지!》

물소리를 누르며 어둠속에서 산울림만 들려왔다.

《왜 그래요?》

복동이 손에 홰불을 든채 세 처녀에게로 뛰여왔다.

《대대장동무 못 봤어요?》

복동이 미처 대답할 사이도 없이 은하가 다시 물었다.

《못 봤는데요. 같이 나오지 않았어요?》

복동의 반문에 은하는 가슴이 철렁했다. 이때 대식과 재선이 다가왔다.

《왜 그러십니까?》

《선생님, 무슨 일이 생겼습니까?》

심상치 않은 일이 생겼다는 예감에 대식과 재선이 거의 동시에 물었다.

《대대장동지 못 봤어요?》

은하가 대답할 사이도 없이 불꽃이 대식과 재선에게 물었다.

이때 사람들이 은하가 있는 곳으로 밀려왔다. 광훈을 보았다는 사람은 없었다.

《구들장, 구들장을 떨궜는데…》

은하는 번개치는 불길한 예감에 밑도 끝도 없이 이렇게 말하고는 겁에 질려 다음말을 잇지 못했다.

광훈에게는 홰불이 없었다. 녀자들에게 넘겨주어 전지도 없었다. 불없이 강 한가운데 혼자 남아있는것이 분명했다.

《녀동무들은 강에 들어서지 마시오.》

대식은 엄격히 명령하고나서 몇사람의 남동무들을 데리고 다시 강물에 들어섰다.

《광훈동무-》

《대대장동지!》

몇십개의 홰불과 전지가 강물로 비쳐졌다. 수많은 사람들이 안타깝게 광훈을 찾았다.

이때 어두운 강 한가운데서 기슭을 향하여 기쁘게 웨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동무들, 찾았소!》

수십개의 전지불과 홰불이 소리나는쪽으로 비쳐졌다.

강 한가운데 장승처럼 버티고 서있는 한사람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는 이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것을 찾아낸 사람처럼 돌을 앞가슴에 들어올린채 기쁨에 겨워 소리치는것이였다.

《동무들, 구들장을 찾았소!》

구들장운반전투를 발기했고 수백명의 대렬을 이곳까지 이끌어온 지휘관이면서도 자기가 다른 대원들과 마찬가지로 구들장 하나를 끝끝내 잃지 않고 가져올수 있었다는 그것때문에 기뻐하는 너무도 천진스런 광훈의 모습을 보았을 때 은하는 가슴에 전류라도 통하는듯싶으면서 눈굽이 뜨거워왔다.

온몸이 홀딱 젖어가지고 머리칼과 옷에서 물을 쭐쭐 흘리며 광훈은 어깨에 구들장을 둘러메고 기슭으로 척척 걸어왔다.

은하는 강기슭에 뿌리박힌듯 서서 광훈을 바라보며 움직이지 못했다.

 

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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