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2 회)

제 3 장

5

 

(넓은 건설장에 여기 아니면 있을데가 없다더냐?)

오활은 한고향 친구들이 있는 다른 건설대대로 가리라고 마음먹었다.

어린시절부터 함께 자란 친구들이며 잘 아는 동무들은 철길건설장에 얼마든지 있었다.

어디로 가든지 여기만 못하지는 않을것이다.

오활은 부랴부랴 자기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이때 불꽃이 천막안으로 들어섰다.

광훈이 담화를 끝내고 돌아간 후 식사를 하러 왔던 불꽃은 남자들 천막을 지나다 떠드는 소리에 걸음을 멈추었다.

천막밖에서 대식과 오활이 언쟁하는것을 듣던 불꽃은 대식이 사나운 표정으로 천막에서 나온 후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몰라 그 자리에 그냥 우두커니 서있었다.

불꽃은 우선 수덕에게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녀자들 천막쪽으로 급히 뛰여갔다.

마침 복동이 숙소쪽으로 걸어왔다.

《복동동무, 수덕동무 못 봤어?》

《조금전에 나보다 먼저 이쪽으로 왔는데… 왜 그래요?》

복동은 덤벼치는 불꽃을 보고 눈이 둥그래졌다.

《저… 천막에 가봐.…》

불꽃은 이렇게 말하고나서 수덕에게 알리려 녀자들 천막으로 달려갔다.

불꽃이 수덕을 데리고 남자들 천막에 달려왔을 때 오활은 없었다.

천막안에는 복동이만 잔뜩 볼이 부어 앉아있었다.

《오활동무 어디 갔어?》

두 처녀는 천막안으로 들어서며 물었다. 복동은 수덕과 불꽃을 힐끔 바라보고나서 슬며시 외면한다.

《어디 갔어?》

불꽃이 다시 대답을 독촉했다.

《떠났어요.》

복동은 복동대로 성이 났다.

《어디로?》

이번엔 수덕이가 물었다.

《알게 뭐예요? 말 안하는걸…》

《그래 떠나는걸 보구두 내버려뒀어?》

불꽃이 성을 냈다.

《어디 재간있으면 붙들어봐요. 얼마 못 갔을테니…》

떠나는 오활을 붙들다가 그가 뿌리치는 바람에 어디 한대 줘맞기라도 한 모양이다. 복동은 두손만 주무르며 뿌루퉁해 외면하고말았다.

수덕은 자기의 실수를 가슴아피 느꼈다. 어제 회의가 끝난 후 수덕은 오활을 만나려다가 밤이 깊어 그만두었었다. 그래 오늘 만나려고 일이 끝나기 바쁘게 작업장에서 들어오는 길이였다. 잘못은 잘못이고 우선 벌어진 일부터 수습해야 했다.

《복동동무, 이렇게 앉아만 있으면 어떻게 하겠나요? 동무는 빨리 작업장으로 나가 중대장동무한테 알려요. 볼꽃동무는 오활동무를 띠라가요. 내 인차 뒤따라갈테니…》

수덕의 목소리는 결단성있고 날카로왔다. 유순하기만 하던 지난날의 그가 아니였다.

말보다 실천을 앞세우고 어렵고 힘든 일에 앞장설줄 아는 정치부중대장이였으며 너그럽고 아량있으면서도 맺고끊는데가 있어 사업에서 모가 나는 중대사로청위원장이기도 했다.

복동은 자리에서 일어나 작업장으로 달려나갔고 수덕은 광훈한테 알리려고 대대부로 뛰여갔다.

불꽃은 천막을 나서며 사방을 살펴보았다.

불사조청년돌격대가 자리잡은 골안에서 다른데로 빠지는 길이란 셋 뿐이였다.

하나는 강흐름을 거슬러오르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숙소 뒤산을 넘는 길이다. 자동차길은 빙빙 돌아야 하는것만큼 큰 길로 갔을리는 없었다.

오활이 틀림없이 소로길을 택했으리라는 생각에 불꽃은 고개로 향하는 오솔길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한참 뛰여갔으나 오활은 보이지 않았다. 불꽃은 오불꼬불한 오솔길을 따라 달리고 또 달렸다.

《오활동무- 오활동무-》

불꽃은 자기가 방향을 잘못 잡았나 하는 생각에 걸음을 멈추고 소리쳐불렀다.

《오활동무- 오활동무-》

불꽃은 안타깝게 오활을 찾았으나 대답대신 산울림만 들려왔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생각에 불꽃은 앞으로 계속 달려갔다.

앞을 막아섰던 앙바라진 소나무를 돌아서니 고개마루쪽으로 걸어가는 사람이 보이였다. 오활이 분명했다.

트렁크와 배낭을 둘러메고 그사이에 많이도 갔다.

《오활동무-》

불꽃은 소리쳐불렀으나 오활은 돌아다보지도 않고 씨엉씨엉 걷기만했다.

불꽃은 고개중턱에서야 오활을 따라잡을수 있었다.

《오활동무, 어디로 가요?》

불꽃은 다짜고짜로 그의 배낭을 붙잡았다.

《놓소.》

오활은 돌아보지도 않고 뿌리쳤다.

배낭을 잡았다가 놓쳐버린 불꽃은 앞질러 뛰여가 오활의 앞을 막아섰다.

《어딜 간다구 그래요?》

《타락분자가 돼서 탈출하오.》

길이 막힌 오활은 할수없이 걸음을 멈추더니 어제 회의에서 불꽃이 비판한 말마디들로 대답했다.

《그래서 떠나는구만요? 말꼬리가지구 이게 뭐예요, 시시하게! 남자라는게.》

불꽃은 록록치 않았다.

《비키오.》

오활은 소리쳤다.

《못 비키겠어요.》

불꽃은 한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

《정말 안비키겠소?》

《정말 못 비키겠어요.》

불꽃의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오활은 한손으로 그의 어깨를 밀쳐버리며 앞으로 나갔다.

불꽃은 중심을 잃고 넘어질번 하다가 몸을 바로잡기 바쁘게 오활을 또 따랐다.

불꽃은 오활을 앞질러 다시 앞을 막아서며 싸움걸듯 대들었다.

《어딜 간다구 이 야단이예요?》

불꽃은 바늘로 콕 찌르고들듯 날카로운 눈길로 오활을 면바로 쏘아보며 소리쳤다.

《동무, 비키라는데 왜 안 비키는거요?》

《도망 못치게 하느라고 그러지요.》

《뭐 도망친다구?》

《그럼 이게 도망치는게 아니구 뭐예요?》

《너절하오. 내 시시해서 이런데 안있겠소. 사람알기를 우습게 알구, 있을 자리 없다는데 있어 뭘 하겠소? 내 여기, 여기 아니면 있을데가 없을것 같은가?》

오활은 불꽃에게 분풀이를 하려고 했다.

《그러니까 도망치는게 아니라 영웅이 되려고 새 전투장으로 찾아가는군요?》

불꽃은 앙버티고선채 눈섭하나 까딱하지 않으며 야유조로 되물었다.

《긴말할 시간이 없소. 어둡기 전에 갈길을 가야겠소.》

《갈길이 참 좋기두 하군요. 제가 옳다고 생각한다면 맞받아 투쟁할게지 이렇게 도망짐을 꾸려들어요?》

불꽃은 계속 약을 올렸다.

꺾일지언정 휘여들지 않으며 그른일 앞에서는 머리를 숙일줄 모르는 불꽃이다.

몸집도 조그마하고 움켜쥐면 한줌에 들것같은 불꽃이였으나 오활은 그가 자기보다 위력하다는것을 인정하지 않을수 없었다.

《못 비키겠어?》

오활은 강다짐으로 나왔다.

오활이 한걸음 앞으로 육박했으나 불꽃은 그 자리에서 물러서지 않고 서슴없이 내쏘았다.

《못 비키겠어요. 우리모두가 건설을 끝마치고 이곳을 떠나기 전에는 동무도 절대로 갈수 없어요. 비겁쟁이같은거… 모두 같이 왔다 혼자만 가겠다구. …동무가 가면 우리 중대 손풍금은 누가 울리란 말이예요?》

그의 말은 비수처럼 오활의 가슴을 찔렀다.

꼬집듯 아프게 누구보다도 신랄히 자기를 비판하던 불꽃이 못 간다고 필사적으로 막아나서는것을 보았을 때 오활은 웬일인지 가슴이 찌르르했다.

힘내기라도 하듯 두사람은 서로 체온이 느껴질 정도로 가깝게 마주섰다.

불꽃을 바라보는 오활의 눈길은 초점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그럴수록 불꽃의 눈빛은 사납게 번쩍이였다. 때릴듯 육박하는 오활을 막아 앙 버티고 선채 불꽃은 숨차서 할싹거리며 내왔다.

《열흘이나 도망쳤던것만도 엄중한데 또 도망치겠단 말이예요? 그래 남들이 땀흘리며 일할 때 제볼장만 보고 다닌게 잘했단 말이예요? 그래 이런 개인리기주의, 자유주의를 비판한 동무들이 나쁘단 말이예요?》

불꽃의 뜨거운 입김을 자기 얼굴에 느끼는 순간 오활은 딱 눈을 감은채 자기자신도 모르게 불꽃의 몸을 콱 떠밀었다.

불꽃은 몸의 균형을 잃고 넘어지는 순간 눈앞이 아뜩했다. 땅에 넘어졌으나 불꽃은 일어나지 못했다.

오활의 발자국소리는 점점 멀어져갔다. 불꽃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볼 기운조차 없었다. 축축한 땅기운이 얼굴에 느껴지자 불꽃은 웬일인지 설음이 북받쳐올랐다.

그는 그저 울고만싶었다. 그는 땅에 엎어진채 저도 모르게 흐느끼기 시작했다.

끝내 오활을 붙들지 못했다는 자신의 무능에 대한 한탄과 동무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떠나는 오활에 대한 얄미움과 고까움으로 불꽃은 너무 분해 혼자 울었다.

어디선가 가까운 곳에서 산까치가 울었다. 언제 들어도 명랑하게만 들리던 산까치울음소리가 오늘은 웬일인지 처량하기만 했다.

오활도 새울음소리를 들었다. 무턱대고 걸어가던 그는 걸음을 멈추었다. 벌떡 일어나 다시 앞을 막아설줄만 알았던 불꽃한테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오활은 이끌리듯 저도 모르게 뒤로 고개를 돌렸다.

불꽃은 땅에 넘어진채 울고있었다.

흐느끼는 불꽃을 보았을 때 오활은 두발이 땅에 얼어붙고말았다.

그가 고개를 들어 자기쪽을 보기만 했어도 오활은 그냥 앞으로 걸음을 내짚었을는지 모른다.

불꽃은 땅에 엎어진채 어깨만 들먹이고있었다.

참대처럼 곧고 결패센줄 알았던 불꽃한테서 처녀다운 부드러움과 연약함을 보았을 때 오활은 자기가 너무도 모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활은 등에 배낭을 지고 손에 트렁크를 든채 우두커니 서서 불꽃을 바라보다 슬며시 외면하고말았다.

솨-

갑자기 바람이 터졌다.

그러자 나무우듬지들이 바람에 설레이기 시작했다.

솨-

나무숲을 주름잡는 바람소리는 좀해 그칠줄 몰랐다. 저녁때가 멀지 않았는데 바람이 잦지 않는걸 보니 래일은 아마도 날이 흐리려나 부다.

어느덧 수림엔 소리없이 어둠이 깃들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도 오활은 고개를 숙인채 뿌리라도 박힌것처럼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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