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9 회)

제 3 장

2

 

은하는 더없이 미안하고 죄스러운 심정으로 고미탄지구를 떠났다.

광훈을 대하기 부끄럽고 창피해 도망치다싶이 건설장을 떠나 연구소로 돌아왔건만 마음은 여전히 무거웠다.

자기가 연구소를 떠나있은 길지 않은 그 기간에 연구소안의 분위기는 무척 변했다. 발랄한 생기가 강좌와 연구실들마다에 차고넘치는것 같았고 사람들은 마음이 퍽 젊어진듯싶었다.

만나는 사람마다 은하를 마치 전투장에서 위훈을 세우고 돌아온 영웅처럼 기쁘고 반갑게 맞아주었다.

《은하선생, 그간 수고많았겠습니다. 현실연구성과가 크겠지요? 그곳 건설장형편을 좀 말해주십시오. 저도 이번에 새 철길건설장으로 가게 되였습니다.》

린접연구실에 있는 정동무는 은하를 무척 기다렸다는듯 만나자바람에 은하를 자기네 연구실로 초청하는것이였다.

철길건설이 본격화됨에 따라 새 청년철길건설장에 연구사들을 기술지도력량으로 파견할데 대한 문제가 국가적관심사로 제기되게 됐고 연구소에서는 새 철길건설을 과학기술적으로 적극 안받침할데 대한 실질적인 조치들이 취해지고있었다.

그러던 어느날이였다.

연구소에서는 새 철길건설을 과학기술적으로 적극 안받침하기 위한 연구사들의 궐기모임이 있었다.

모임에 참가했다가 집으로 돌아오니 불꽃한테서 보내온 편지가 기다리고있었다.

은하는 편지봉투를 뜯었다. 편지에는 너무도 뜻밖의 소식이 적혀있었다.

은하동무! 왜 그렇게 빨리 떠났나요?

하루만 더 있다 갔어도 우리와 함께 이 기쁨을 나누는건데…

은하동무가 떠나간 다음날 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우리들의 건설장에 몸소 전화를 걸어주시였어요. 우리들이 모두 깊이 잠들었던 그밤에 어버이수령님께서 걸어주신 전화를 광훈대대장이 직접 받았어요. (정말, 언니는 모르시겠군요. 우리 독립중대는 대대로 새로 편성됐어요. 광훈중대장이 대대장으로 됐고 박대식부중대장이 대대참모장 겸 우리 1중대장으로 임명됐어요. 나는 지금 1중대소속이예요.) 우리는 다음날 아침 이 소식을 듣고 너무 기뻐 울었어요. 우리는 어버이수령님께서 걸어주신 전화를 받은 광훈대대장이 너무 부러워 부끄러움도 잊고 광훈대대장의 손을 자꾸만 쓸어만졌어요. 그리고 저마다 전화통을 만져보고 또 만져보았답니다.

그리고 한가지 소식을 더 전하겠어요. 동무가 떠나간 그날 밤 우리 대대에서는 큰 소동이 일어났댔어요. 그날 점검을 해보니 오활동무가 없었어요. 처음에는 무슨 사고가 났는가 해 모두 속이 새까매졌댔어요.

나흘만에야 우리는 려단지휘부승용차운전사동무를 통해 오활동무가 집으로 도망쳤다는걸 알았어요.

저도 한때는 리기주의를 부렸지만 저는 지금 오활동무가 미워요.

집단의 요구와 조직의 지시를 접수하지 않고 리발을 안하겠다면서 동무까지 속태우던 자신을 생각하면 정말 부끄러워요.

어제 건설장에서는 우리 건설려단산하 리발사들의 리발경기가 있었는데 전 이 경기에서 1등을 했어요.

저를 축하하는 속보가 나붙고 동무들이 달려와 꽃다발을 안겨줄 때 전 정말 량심의 가책을 금할수가 없었어요.

크지 않은 일로만 생각해오던 머리깎는 일이 동무들에게 이렇게 크나큰 기쁨을 주고 집단의 명예와 결부되게 될줄은 몰랐어요. 동무들이 무엇때문에 그렇게도 기뻐하며 나를 축하해줄가 하는 생각에 저는 밤새 잠들지 못했어요.

저는 지금까지 리발이라고 하면 편의봉사부문의 하찮은 일로만 생각해왔어요.

이번에 우리 철길건설장에서는 다리기초굴착경기와 료리경기, 리발경기를 다같이 조직했고 꼭같이 중시했어요. 철길건설의 속도전에서 리발도 없어서는 안될 부분이라는것을 알려주듯 말이예요.

철길건설에서 속도전에 참가한 우리 청년돌격대원들은 마땅히 새로운 청년돌격대생활을 창조해야 한다고 보아요. 바로 이렇게 하는것이 새 철길건설장을 혁명화의 학교로 되게 하는것이라고 믿어요.

은하동무!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 그것이 집단과 조직을 위한것일 때 그 일은 영예롭고 값있는것이 아닐가요?

저는 나자신의 공명과 명예를 바라 집단생활에 불편을 주면서까지 리발을 안하겠다고 뻗대던 자신을 심심히 뉘우치게 돼요. 그리고 동무들의 믿음과 기대를 저버리고 우리 대렬을 떠나간 오활동무를 증오해요.

은하는 불꽃이 초점 또렷한 눈길로 빤히 마주보며 《은하동문 오활동무의 도망에 관계하지 않았지요?》 하고 묻는것만 같아 편지를 끝까지 읽을수가 없었다.

은하는 건설장을 떠나오던 날 려단지휘부에서 오활을 만났었고 그가 집에 간다는것을 알고는 자기와 같이 려단승용차를 타고 가자고 하였었다.

그리하여 은하는 그날 오활과 함께 려단승용차를 타고 떠났다.

(…오활동무가 아무런 승인도 받지 않고 떠났댔단 말인가?!)

은하는 오활의 자유주의적인 행동이 자기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으며 자기한테는 책임이 없다는것을 확인하듯 저 혼자 이 질문을 몇번이나 뇌이게 되는것이였다.

자기가 어버이수령님께서 멀고먼 철길건설지구에 몸소 전화를 걸어주시던 그날 오활과 함께 차를 타고 건설장을 떠나왔으며 그의 편의를 돌봐주었다는 사실만은 어쩔수 없었다.

결국 자기의 필요없는 친절은 오활의 자유주의를 보장해주는 결과를 가져왔으며 많은 청년돌격대원들에게 걱정을 더하게 만든것이였다.

은하는 더는 자신을 진정할길 없어 바람이나 쏘이려고 집을 나섰다.

은하네 집에서 대동강유보도는 가까왔다. 시원한 강바람을 쏘이면 괴로운 심정이 풀릴지도 모른다.

방향없이 유보도를 거닐던 은하는 한 기슭에 이르러 멈추어섰다,

철썩-

고요를 깨뜨리며 강물이 기슭을 친다.

옥류교며 대동교(당시), 강 좌우 유보도에서 빛나는 수백수천의 전등불들은 강물우에 길다란 불꼬리를 늘이였다. 물우에 길게 누운 불꼬리들은 마치 살아있는 물체처럼 잠시도 쉬지 않고 꿈틀거린다.

뚜-

붉고 푸른 불빛으로 화려하게 장식한 유람선이 저 멀리 강우에 나타나 길게 배고동을 울렸다.

배가 일으킨 파문이 처절썩 기슭을 때리고 유보도를 따라 몸매다부진 한사람이 밤고기사냥을 나오는 길인지 낚시대를 둘러메고 유유히 걸어갔다.

예닐곱살난 귀여운 어린애의 손목을 잡고 젊은 부부가 강흐름을 따라 유보도를 천천히 걸어온다.

주위에는 평화로운 휴식과 안정이 차고넘치건만 은하는 조금도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은하는 철길건설장을 떠나오던 날 광훈이가 하던 말들이 느닷없이 되살아왔다. 그는 자기가 힘써준 기중기를 받지 않은것을 오히려 미안해했었고 다리건설에서 걸린 과학기술적문제들에 대해 방조해달라고 진심으로 말했었다. 오늘 랭정히 돌이켜볼 때 림진강건설지구에 써야 할 기중기를 광훈네 고미탄지구로 먼저 돌리려고 한것은 잘된 일이라 할수 없었으며 더구나 이것은 연구사인 자기가 관계할 일이 아니였다. 기중기문제를 두고서는 응당 자기가 광훈한테 사과하고 용서를 받아야 했다.

또 자기는 광훈이 지금까지 애써 연구해오던 안테나식기중기를 알아보지도 않고 무시해버리지 않았는가.

생각할수록 은하는 부끄러웠고 정우철이며 광훈을 앞으로 다시는 떳떳이 대할수 있을것 같지 않았다.

철썩- 철썩-

려객선이 지나가면서 일으킨 파문이 연송 기슭을 때린다.

은하는 강기슭을 따라 천천히 유보도를 걷기 시작했다.

축축한 강바람이 소리없이 얼굴을 어루만진다. 그는 목적없이 걷고 또 걸었다.

유보도에는 저녁산보를 나온 사람들의 수가 점점 늘어갔다.

은하는 많은 사람들이 휴식을 즐기는 이 시각에도 새 철길건설장에서는 청년돌격대원들이 일하고있으리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들과 자기는 어딘가 구별된다는 사실이 마음을 아프게 하는것이였다.

은하는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철길건설을 연구한다는 내가 해놓은 일이 무엇이란 말인가?

나는 현실연구기간 무엇때문에 성과를 거둘수 없었고 청년돌격대원들에게 아무런 방조도 줄수 없었던가?)

물론 이번 현실연구기간은 얼마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나날들과 나날들이 모두 합쳐진게 사람들의 일생일것이다.

자기 생의 순간순간을 아무것도 해놓은 일없이 보낸다면 그런 사람은 결국 자기의 일생을 무의미하게 보낼것이였다.

어버이수령님의 품속에서 태여나 당의 손길아래 자라는 청년들은 마땅히 자기 생의 매 순간을 참되게 살아야 할것이 아닌가?

자기가 이번 현실연구기간을 아무런 소득없이 보낸것은 그 기일이 짧았기때문만은 절대로 아니였다. 현실이 제기하는 절박한 문제들을 과학기술적으로 풀려는 생각보다 론문의 과학기술적가치와 그것이 가져다줄 명예를 먼저 생각했던 나머지 자기는 과학연구사업에서도 성과를 거둘수 없었고 철길건설에 아무런 보탬도 줄수 없었다.

이제라도 대담하게 연구방향을 돌려야 했다. 물론 자기가 지금까지 붙안고 씨름해온 연구과제도 반드시 해명해야 할 중요한 리론문제인것만은 사실이였다. 하지만 실천이 제기하는 문제들을 외면하지 말아야 했다.

사실 은하는 지금까지 남자들보다 현장침투가 힘든 조건에서 건설공법상의 문제들을 가지고서는 론문을 완성하기 힘들리라는 생각이 적지 않게 지배했었고 미끄럼식방법에 의한 다리건설에 흥미를 느끼면서도 이 분야를 자기가 연구하려는 용단은 내리지 못했었다.

(산악철길건설현실이 중요하게 제기하는 다리건설의 속도문제를 대담하게 연구하자! 설사 학위론문을 완성할수 없게 된다 해도 나라의 산악철길건설에 적으나 보탬을 주게 된다면 이것이 과학자의 본분을 지키는것이 아니겠는가?)

은하는 이 순간 얼마전부터 모대기면서 용단을 내리지 못하던 생각이 하나의 기정사실처럼 명확해지면서 결심이 굳어지는것이였다.

은하는 오박사를 찾아가고싶었다.

이제 멀지 않아 연구소에서는 새 철길건설장들에서 제기되는 과학기술상의 문제들을 현장에서 풀어주기 위하여 여러명의 연구사들을 현지에 파견한다.

은하는 이 집단에 자기도 망라되고싶었다.

그는 지금까지 오던 길을 되돌아섰다.

오박사가 아직 퇴근하지 않았으리라는 생각에 은하는 그 자리에서 연구소로 향했다.

 

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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