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5 회)

제 2 장

7

 

밤이 왔다.

저녁식사를 끝낸 처녀들은 천막 뒤마당 통나무의자에 줄느런히 나와 앉았다.

잠시 차례지는 이런 시간이면 처녀들은 이곳에 나와 휴식하기를 즐긴다. 오늘같이 달밝은 밤이면 더욱 그렇다. 더구나 래일은 쉬는 날이다. 서늘한 천막밖에 나와 온 골안을 울리는 강물소리를 들으며 명상에 잠기기는 정말 좋았다.

하늘에서 반짝이는 별들과 등근달을 볼 때면 젊으나젊은 가슴들은 웬일인지 한껏 부풀어오르는것이였고 아름다운 꿈이 나래펴는것이였다.

동산마루에 두둥실 떠오른 달은 밤하늘에 우죽비죽한 모습을 드러낸 서쪽산릉선을 향해 순간도 쉬임없이 희끄무레한 구름물결을 헤염쳐간다.

동쪽산마루에서 서쪽산마루까지는 천천히 걸어도 한두시간이면 가닿을만큼 빤한 거리로밖에 보이지 않건만 달은 온밤 가고 또 간다. 하늘에선 구름물결을 헤치기가 그렇게도 힘든것인지…

누군가가 먼저 젊은 기관사의 노래를 뗐다. 그러자 모두 조용히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노을비낀 철길우에 젊은 기관사

    기적소리 울리며 기차를 몰았네

 

밤하늘에서는 노을이 보이지 않았고 여기에선 아직 기적소리를 들을수 없건만 처녀들은 노래속의 화폭을 금시 눈앞에 보는가싶었다.

새 철길건설에 참가하고보니 젊은 기관사의 노래는 별로 돌격대원들의 생활감정에 맞았다. 그래 처녀들은 자주 이 노래를 불렀다.

이전 같으면 그 누구보다도 신이 나서 노래를 불렀을 불꽃이였으나 이밤엔 동무들과 떨어져 앉아 남들이 부르는 노래소리에 귀를 기울이고있을뿐이다.

조용한 저녁이 되고보니 불꽃은 낮동안에 있었던 근심이 다시 되살아왔다.

《좋소, 강요하진 않겠소. 잘 생각해보고 다시 만납시다.》

담화를 끝내며 광훈이 하던 마지막말이 지금도 귀전을 떠나지 않는다.

이제 언제 또 만나자고 할지 모른다.

불꽃은 광훈과의 담화를 생각할수록 안타깝기만 했다.

노래소리는 그칠줄 몰랐다.

처녀들은 신나서 계속 노래를 불렀다.

처녀들의 천막에서 노래가 울리자 이번엔 남자들도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누구보다도 삐여지는 목청으로 왝왝거리는 사람은 오활이다.

처녀들은 지지 않으려고 더욱 목청을 높였다. 그러자 남자들 천막에서도 노래소리는 커졌다. 부르고 화답하며 서로 경쟁이라도 하는것처럼 노래소리는 좀해 그칠줄 몰랐다.

갑자기 오활이 손풍금을 울리기 시작했다.

목소리만으로는 처녀들을 당해내기 힘들다는걸 깨달은 모양이다.

이밤의 흥취를 돋구며 손풍금은 신이 나게 울렸다. 제나름으로 제각기 불러대던 노래소리는 점차 하나로 합쳐지기 시작했고 그러다 나중엔 사람들마저 한데 모이기 시작했다.

처녀들은 손풍금이 울리는 곳으로 우르르 밀려갔다.

천막주변엔 불꽃만 남았다. 그는 웬일인지 산란해지는 마음을 진정하기 힘들었다.

불꽃은 천막부근 잔디밭에 오도카니 앉아 두팔을 깍지끼고 둥근달만 바라봤다.

이때 누군가가 소리없이 다가오더니 등뒤로 불꽃의 두어깨를 살그머니 껴안았다. 불꽃은 자기 어깨를 껴안은 사람이 수덕이란걸 돌아다보지 않아도 알았다.

남자같이 힘이 센 태선은 뼈가 으스러지게 꽉 껴안지 이렇게 살며시 어루만질줄 모른다. 그리고 수덕처럼 사뿐사뿐 걷지도 않는다.

《불꽃동무!》

수덕은 불꽃의 어깨를 살며시 껴안은채 조용히 불렀다.

불꽃은 수덕의 애무에 자기 몸을 내맡긴채 아무 말을 안했다.

수덕은 노래소리에 귀를 기울이더니 노래가 그치고 잠잠해지자 불꽃옆에 자리잡고 앉았다.

《불꽃동무, 내 부탁 하나 들어줄래?》

마음어진 수덕은 자기 부탁이 거절당할가봐 주저하듯 나직이 물었다. 수덕이 이렇게 말을 걸며 부탁할 때도 있구나 생각하니 불꽃은 무슨 부탁이건 들어주고싶었다. 웬만해 말 안하는 그가 이럴 때에는 몇번 생각하고 따져본 후 그럴것이였다.

《뭔데?》

불꽃은 깍지꼈던 손을 풀어 두팔로 무릎을 감싸안으며 수덕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무엇인가 주저하며 어색해하는 표정이 달빛에 비쳐진 수덕의 얼굴에서 알렸다.

《꼭 들어주겠다면…》

《말하라는데 그러네.》

불꽃은 수덕의 말을 중간에서 잘랐다.

《저… 불꽃동문 재봉공이랬지?》

《그건 왜 갑자기 묻니?》

《불꽃동무 재간이 부러워그래.》

순박한 그의 말마디와 어조에서는 자기 속을 감추고 남을 떠보는듯한 기색을 조금도 느낄수 없었다. 불꽃은 영문을 알수 없고 경계심도 생기여 어정쩡하게 되물었다.

《응?》

《복동동무 머리깎아준걸 보니 정말 잘 깎았어.》

《정말 그게 부럽니?》

《나한테 그 기술 좀 배워줄래?》

《묻는 말에 어서 대답해.》

너무나 뜻밖인 수덕의 말에 불꽃은 대답을 독촉했다.

수덕이 같이 차근차근하고 조용한 성격에 리발사란 직업이 어쩌면 어울릴지도 모른다.

《부러워.》

《정말?》

《정말 아니구… 오늘 보니까 점심시간에 중대장동지가 부중대장동지의 머리를 깎아주더라. 그러다 려단장동지가 와서 얼마나 망신당했는지 몰라.》

수덕은 점심시간때 중대부에 갔다가 자기가 목격한 사실을 이야기했다.

《정말 얼굴 뜨겁더라. 남동무들이 머리 못 깎아 더부룩해서 다니는걸 보면…》

수덕은 진정으로 안타까와했다.

그는 거짓말을 할줄도 자기 감정을 과장해 말할줄도 모른다. 더구나 수덕은 불꽃이 리발문제때문에 광훈중대장한테 불리워갔댔다는걸 알지 못했다. 이것을 안다면 수덕이 지금처럼 자기앞에서 이런 말을 하지 못하리라는걸 불꽃은 알고있었다. 하지만 불꽃은 심사가 뒤틀리고말았다. 그래서 수덕의 진정에 롱으로 대하기 시작했다.

《리발을 하자면 우선 기계와 가위놀리는 법을 배워야 하는데 기계보다 가위놀리는걸 배우기가 힘들대. 가위 놀리는걸 배우자면 무슨 연습 같은걸 해보아야겠는데…》

《정말 배울수 있을가?》

《글쎄… 모르긴 해두 뭐 별거겠니?》

이렇게 말하면서도 불꽃은 자기가 수덕을 놀린다고는 생각하지 않았고 무심하게 던진 자기의 말이 어떤 후과를 빚어내게 될것인가에 대해서는 꿈에도 생각 못했다.

그 이튿날이였다. 이날 중대는 휴식을 했다.

앓던 리발사는 끝내 병원으로 후송되여 떠나갔다.

창백한 얼굴로 눈물이 글썽하여 떠나는 리발사를 바래우고 돌아오는 불꽃은 마음이 무거웠다.

함께 있던 동무 한사람이 앓아서 떠나갔다는 사실도 가슴아팠지만 이제는 할수없이 누구든지 새 리발사가 올 때까지 리발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절박한 사실이 또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불꽃은 점심을 먹고나서 뒤숭숭한 마음을 금할수 없어 강변으로 나갔다. 강물에 시원히 손발이라도 씻고싶었다.

강기슭을 따라 걸어가는데 수덕이 조용한 강변에 혼자 쭈그리고앉아있었다.

수덕은 무엇에 그리 열중하고있는지 불꽃이 다가가는것도 알지 못했다.

수덕이한테로 가까이 다가가던 불꽃은 자기 눈을 의심했다.

수덕이 마주앉은 돌우에는 털가죽 한장이 놓여있었다.

불꽃은 누르께한 그 가죽이 식당주변의 울타리에 걸려있던 산토끼가죽이라는걸 대번에 알아보았다.

얼마전에 벌목갔던 동무들이 산토끼 한마리를 잡아왔었다. 오활과 복동이 특식을 만든다면서 그 토끼를 들고 식당으로 드나들더니 며칠전부터 식당화구옆 장작더미에 그 가죽이 내걸리였고 다음엔 울타리로 옮겨졌다.

수덕은 한손에 가위를 들고 한손에는 빨간 빗을 든채 한참 토끼털을 깎아보고있었다.

불꽃은 어제밤에 자기가 롱처럼 한 말을 수덕이 고지식하게 그대로 하는것을 보았을 때 참지 못했다.

《뭘해?》

불꽃은 수덕에게 다가서며 성이 나 물었다.

수덕은 와뜰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더니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개지며 손에 들었던 가위와 빗을 얼른 등뒤로 감추는것이였다.

수덕은 불꽃을 알아보고 호- 하고 숨을 내쉬였다.

《휴식날 쉬지도 않구 몰래 나와 뭘하는거야?》

불꽃은 너무도 뻔한 일을 추궁하듯 물었다.

수덕은 잠시 어쩔줄을 몰라하더니 어색하게 웃으며 애원하듯 말했다.

《혼자 해보려니 잘 안돼. 그러지 말고 좀 배워줘.》

《도대체 뭘 배워달라는거야?》

수덕은 자기가 무엇때문에 불꽃을 그렇게도 노엽히게 되였는지 알수없어 순박하고 어진 커다란 두눈만 슴뻑이였다.

《누가 동무보구 이런걸 하랬어?》

《왜 그러니? 내가 뭐 잘못한게 있으면 말해주려무나. 그러지 말구.》

불꽃이 좀더 성을 내면 수덕은 울기라도 할것 같았다.

수덕이 반발해나왔으면 불꽃은 트집을 잡아서라도 싸우려 들었을지 모른다. 성을 낼수록 양순해지는 수덕앞에서 불꽃은 어쩌지 못했다.

한참이나 수덕을 쏘아보던 불꽃은 갑자기 뒤로 픽 돌아서더니 그길로 꼿꼿이 중대부로 향했다.

중대부에는 각 소대장들과 중대초급지휘성원들이 무슨 회의를 하려는지 모두 모여있었다.

불꽃은 사람들이 많거나 적은것을 상관하지 않았다. 불꽃은 푸르딩딩한 얼굴로 광훈중대장앞에 다가섰다.

《중대장동지, 새 리발사가 언제 옵니까?》

그의 목소리는 챙챙 울렸다.

《좀 앉소. 왜 그러오?》

광훈은 무엇인가 심상치 않은 일이 생겼음을 알고 불꽃에게 의자부터 권했다. 불꽃은 앉을념을 않고 다시 말했다.

《전 그걸 알고싶어 왔습니다.》

《글쎄 려단에 제기했으니 인차 올거요.》

《그때까지 제가 리발을 하겠어요.》

불꽃은 두눈을 내리깔았다.

《동무가? 정말이요? 고맙소, 불꽃동무!》

광훈은 의자에서 일어섰다.

그는 이 처녀의 마음이 어떻게 되여 이렇게 갑자기 움직이게 되였는지 알수 없었으나 그의 결심이 확고하다는것만은 느낄수 있었다.

광훈이 계속 의자를 권했으나 불꽃은 앉지 않았다.

《그런데 한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불꽃은 내리깔았던 두눈을 올리뜨며 광훈을 빤히 마주봤다.

광훈은 중대앞에 가로놓인 애로를 자진해 풀겠다고 나선 동무의 요구조건을 우선 해결해주어야지 누구의 요구를 들어주겠느냐는듯 한 눈길로 불꽃을 바라봤다.

《새 리발사동무가 올 때까지만 리발을 하겠다는겁니다.》

《조건이 그게 다요?》

《또 한가지 있습니다. 새 리발사동무를 빨리 오게 해주겠다는걸 약속해줘요.…》

《좋소, 그렇게 합시다.》

그러며 광훈은 약속의 표식으로 손을 내밀었다. 불꽃은 두눈을 내리깐채 광훈과 악수도 하지 않은채 그길로 돌아섰다.

불꽃은 중대부를 나서니 왕 울고라도 싶은 심정이였다. 내달리다싶이 사람들이 안 보이는 강기슭까지 온 그는 강흐름을 바라보며 넋없이 서있었다.

불꽃의 행동이 하도 심상치 않아 슬금슬금 그뒤를 따라 중대부앞까지 왔던 수덕은 멀찌감치서 그가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섰다가 불꽃이 다시 강변쪽으로 향하자 그를 뒤따랐다.

강기슭에 우뚝 선 불꽃은 강 저쪽만 바라보며 움직이지 않았다.

멀리서 불꽃을 바라보며 서있던 수덕은 조심조심 그한테로 다가갔다.

발자국소리에 불꽃은 고개를 돌렸다.

《불꽃, 왜 그렇게 성났어?》

수덕은 붙꽃옆에 다가서며 송구스럽게 물었다.

불꽃은 아무말없이 수덕을 바라봤다.

《내가 동무를 성나게 했다면 용서해. 난 내가 동무한테 무엇을 잘못했는지 정말 모르겠어.》

불꽃은 아니라고 고개를 가로흔들었다.

《그럼 왜 그러니?》

인정많은 수덕은 살틀하게 물었다.

언제나 남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처럼 생각하는 그였다.

수덕을 바라보는 불꽃의 두눈에는 갑자기 물안개가 핑 어리였다.

《언니-》 하고 부르고나서 불꽃은 수덕한테 와락 달려들어 그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자기보다 나이가 한살 우이지만 언제한번 수덕을 언니라고 불러본적 없는 불꽃이다.

《언니, 못된 나를 때려줘, 그리고 용서해.》

수덕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채 불꽃은 끝내 흐느끼기 시작했다.

불꽃이 다시 리발을 하기로 결심하던 날 중대에선 상서롭지 못한 일이 일어났다. 저녁때 점검해보니 오활이 없어졌다. 혹시 사고라도 나지 않았는가 해서 광훈은 속이 새까매졌다.

군채석장에 갔을지도 모른다는 대식의 말을 듣고 그곳에 전화를 걸어도 보고 그가 갔음직한 여러곳에 련락을 띄웠으나 그의 행방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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