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6 회)

제 7 장

한 하늘을 이고살수 없다

5

 

쯔시마에서 지낸 망궐례와 기풍제가 은을 내서인지 장마가 한창인 중복절기라 노상 태풍과 파도로 변덕을 부리던 바다가 오늘은 이상하게도 잠잠해서 공순히 앞길을 틔워주었다.

마침 남동풍까지 살랑살랑 불어쳐 크고작은 목선들은 말그대로 순풍에 돛을 달고 잔파도가 일렁이는 검푸른 바다를 기세좋게 미끄러져나갔다.

맨앞에서는 도선주와 쯔시마의 봉행과 재판이 탄 판옥선이 항로를 잡아나갔고 그 착 뒤에서는 조선사신이 탄 울긋불긋 치장된 다락배가 따르고 또 그뒤로는 귀환자들과 화물을 실은 수송선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줄줄이 달리였다.

유정은 나고야에서 쯔시마로 건너올 때처럼 이번에도 무예에 능하고 완력이 있는 홍창해, 오팔이, 히까리, 마광우, 계명이 이들을 만일의 사태에 대처하기 위해 매 배마다에 한사람씩 갈라태웠다.

유정은 비록 시나지로태장로 덕에 나고야항에서 절간과 함께 산벼랑을 폭파하여 포구를 벗어나는 배들을 침몰시키려던 가또놈네의 흉계를 천만다행히도 깨버리긴 했으나 세상 야한 그놈들이 더 반발적으로 나올것 같아 마음이 더 불안해져 방비책을 강구하는데 신경을 썼다.

작년 이맘때에 쯔시마에서부터 자진하여 사신행차와 동행하며 내내 몸을 아끼지 않고 유정이네를 성심성의로 호행해온 조선이주민의 후손인 백손이도 이번통에 고국으로 옮겨가겠다기에 그한테도 화물선 한척을 분담시켜 맡아보게 했다.

그러할 때 계명이가 행차의 총수인 유정의 말을 듣지 않아 소동을 일으켰다.

계명이 스님의 신변을 지키겠다면서 부득부득 사신배에 그와 함께 탔던것이다.

배들이 도요사끼(풍기)를 거쳐 한동안 달리자 사수우라(좌수포)의 형체가 아슴푸레하게 나타났다. 이제 그 사수우라를 지나면 난바다가 나진다. 일명 현해탄이라고 불러오는 그 령역만 무사히 지나면 일본령해가 끝나고 부산진을 불과 백리안팎에 둔 조선령해가 시작된다. 유정이와 계명은 선수쪽의 다락란간에 나란히 기대여서서 해풍에 장삼자락을 나붓기며 끝간데없이 펼쳐진 망망대해를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그 대해너머에 꿈결에도 그리던 조국땅이 있기에 심정은 더없이 흥뜨기만 한다. 희푸른 물갈기를 날리며 격랑을 일으키는 파도에 시름가신 마음을 싣노라니 절로 담기와 용력이 솟음치며 대공으로 한바탕 날아올라 목놓아 소리치며 크게 몸놀림을 하고싶은 충동이 일어났다.

유정이곁에서 이리저리 시선을 휘두르며 바다풍경에 취해있던 계명이가 별안간 애들처럼 손벽까지 치면서 좋아했다.

《스님, 이제 한나절쯤 가면 우리 나라 남해에 들어서겠군요.》

《옳으니라. 저 섬과 현해탄만 지나며는 우리 나라의 경내이니까.》

 유정이도 감흥에 잠기며 바다와 하늘끝이 맞닿은 곳에서 희미하게 형체를 드러낸 산발너머에로 시선을 보내다가 눈시울을 슴벅이였다.

우리 나라! 속으로 목메여 불러보느라니 가슴이 저절로 뭉클 젖어올랐다. 아마도 풍랑사나운 난바다를 건너 만리타국에 가서 살차고 야한 원쑤놈들과 한해어간이나 목숨을 내대고 격렬한 싸움과 외교전을 벌리던 나날에 믿음과 의지의 지탱점으로 삼아온 우상이고 혈육과도 같은 못 잊을 사람들이 사는 곳이여서 그 애틋함과 그리움이 더 절절한가싶었다.

《스님, 우리 나라가 가까워지니 정말 좋소이다. 절로 안심도 되고 기분도 상쾌해지거던요.》

제김에 들떠가지고 희희락락하는 계명이쪽으로 천천히 시선을 돌린 유정은 그의 끌끌하게 번진 모습을 대견스럽게 어루더듬었다.

(이 애도 어언간에 스물여덟살의 장부가 됐구나! 세월은 류수라더니 실루 빠르기도 하군. 임진왜란을 당해 전장에 나올 때만도 열여섯살이여서 애리한 봄싱아대같던 애가 어느새 벌써 한창시절의 청년이 됐거던. 이제 뭍에 올라 장계나 올리곤 계명이도 파승을 시켜 가정을 꾸려줘야겠다. 천하에 일점혈육도 없이 불쌍하게 살아온 애인데 한뉘 가정생활도 못해보고 심산중의 절간에서 외톨로 늙어죽게 만들수야 없지 않는가.)

앞서나가는 사신배에서 유정이와 계명이사이에 그러한 대화와 감정이 애뿌듯이 오가며 이어질 때 그 착 뒤를 따르는 귀환자들이 탄 배에서도 홍창해와 윤옥비가 가지런히 어깨를 기대고 서서 오손도손 애정을 주고받고있었다.

그 배를 맡아 호행하던 홍창해가 갑판의 짐짝들과 선창안의 귀환자들을 별다른 일이 없는가 해 한바퀴 돌아보고 바람 선선한 선수에 나와 한숨 돌리는데 윤옥비가 그에게 간식을 주려고 다가오다가 갑자기 배를 그러안으며 주저앉았다.

창해는 황급히 달려가 열물을 토하며 신고를 하는 옥비를 부축해 일으켰다.

《왜 이러오?》

《배멀미를 하는것 같나이다.》

《아마 배를 처음 타서 그럴거요. 나를 붙잡고 한참만 서있소. 그러면 멀미가 잦아질거요.》

그 소리에 옥비가 눈을 곱게 빨았다.

《남들이 다 보는데 창피하게…》

《쑥스러워하는걸 보니 아직 열물을 더 쏟쳐야 할것 같군.》

《어마, 내가 신고하는게 그리도 고소해요? 무슨 사내가 이리도 무정하담.》

《하하, 아무리 무정해도 인제사 제 랑군인데 어쩐담.》

한참 남없는데서 흉없는 갈갬질을 하던 그들은 선체에 붙어서서 출렁이는 바다물을 굽어보며 정담을 나누었다.

전쟁때 울돌마을의 초가에서 꿈같이 만나 자의대로 비밀리에 혼인을 맺고 헤여져서부터 근간에 이르도록 가지가지의 만단사연을 울고웃으며 돌이켜보다가는 그지간 가슴속에 쌓였던 애절스러운 갈망을 드디여 성취하고 조국으로 돌아가는 만족감으로 하여 생글생글 미소를 짓던 옥비가 창해의 듬직한 어깨에 얼굴을 살며시 실으며 속살거렸다.

《이렇게 같이 배를 타고 드넓은 바다를 헤쳐가니 옛날 쑥골에서 귀양살이를 하던 때가 생각나오이다. 그때 우린 매생이를 몰고 바다구경을 하며 정말 재미있게 놀았지요. 당신이 가져다준 좁쌀떡이랑 갈매기알이랑 맛있게 받아먹던 일이 상기도 잊혀지지 않나이다.》

《그 기장떡은 내가 옥비를 때린데 대한 사죄떡이였지.》

《사죄떡이라니요? 원, 천만의 말씀. 그건 우정떡이였지요 뭐, 호호, 못 잊을 시절의 우정. 이제 고향에 돌아가면 그때처럼 배를 태워주겠나이까? 왜놈들이 없는 우리 나라 울돌포구의 경치좋은 바다에서 해당화로 곱게 장식한 꽃배를 타고 실컷 노질도 하고 진주알도 건지고 조개구이도 하고싶나이다. 참, 그때 내가 자장가를 불렀댔지요. 울엄마가 배워준 자장가를.》

이러다가 애틋한 감상에 잠기는 옥비의 버들잎같은 입새에선 노래가락이 나직이 흘러나왔다.

 

    새는 새는 고운 새는

    둥지안에 들어 자고

    아가아가 고운 아가

    엄마품에 안겨 자고

    각시각시 예쁜 각시

    신랑품에 안겨 자네

 

《안겨 자네…》

그 마지막음절의 메아리가 물결출렁이는 바다우로 잔잔스럽게 퍼져나갈 때 숫접게 웃던 옥비가 창해의 넓은 가슴팍에 나붓이 안기였다.

창해도 정다운 녀인의 잘쑥한 허리를 한팔로 꼭 그러안고서 그의 예쁜 얼굴에 후더운 입김을 쏟아부었다.

《우리가 배놀이를 끝내고 들어오면 큰엄마가 옷도 빨아 말리워주고 닭알도 삶아주군 했었지요. 큰엄마가 막 보고싶나이다.》

《우리 어머니도 옥비생각으로 해 잠을 못자군 했소. 이제 배가 부산포에 들어서면 곧장 우리 집으로 가 어머니부터 만나보기요. 정식 인사를 하고 이젠 시어머니로 섬겨야지. 여태 옥비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닌줄로 알고있는 어머닌 아마 옥비를 보면 까무라칠듯이 놀랄거요.》

《큰엄마라며 따르다가 갑자기 시어머니로 섬기자니 쑥스럽군요. 어머니를 만난 담엔 둘이 한성으로 올라가 울아버지를 찾아뵙자요. 문안인사도 하고 혼인승낙도 받고…》

《옥비네 부모들 말이지. …》

홍창해는 저으기 낯색이 흐려지며 한숨을 무겁게 내뿜다가 가까스로 말을 이었다.

《옥비의 양부모도 괜찮았지만 친부모들도 훌륭한분이였소.》

그 말에 옥비의 얼굴표정이 굳어졌다.

《양부모란 뭐고 친부모란 또 뭐나이까?》

《사실 옥빈…》

목이 꺽 메여 한참 갑자르던 홍창해는 아무래도 조국땅에 내려서기 전에 그지간 숨겨온 사실을 옥비에게 알려줘야겠기에 애써 격정을 누르고 윤병두종사관이 정유왜란때 추풍령방어전을 조직지휘하다가 중상을 당한 후 예교탈환전투를 치르고난 조선승병대지휘처에서 숨을 거두던 상황을 그대로 말해주었다.

이날껏 험난한 세파속에서도 마음속 기둥으로 품어오며 힘을 얻군 하던 아버지가 오래전 전쟁때에 벌써 잘못됐다는 소리에 옥비는 앞이 새까매져 비칠거렸다.

그러는것을 창해가 얼른 붙들어 바로세웠다.

홍창해는 옥비가 진정하기를 기다렸다가 윤병두종사관이 림종의 시각에 창해 자기한테 알려준 옥비의 친부모들에 대한 이야기와 마지막당부를 그대로 말해주었다.

옥비는 그 사실이 차마 믿어지지 않아 설레설레 도리를 젓다가 창해의 태도가 하도 처절스럽고 또 그가 사실을 재삼 강조해서야 할수없이 인정을 했다.

이제는 낯선 고장에서 한줌 흙으로 변했을 아버지를 소리쳐부르며 처음에는 슬퍼서 울고 또 정이 없는 계모의 손에서 잔치상을 받을 일이 막연하여 애달피 탄식을 하고 또 자기가 본래 경원 두만강가 봉수대 패장네 친딸이라는 사실앞에서 기가 막혀하던 옥비는 창해가 《우리 어머니와 내가 곁에 있지 않소. 우리가 양부모, 친부모의 정까지 다해 당신을 위해주겠소. 이제 부산포에 배가 들어서면 나랑 같이 예교에 있는 양아버지의 묘소랑 경원에 있다는 친아버지의 묘소랑 찾아가 인사를 드립시다.》 이런 말로 위안을 시켜서야 눈물을 거두고 진정을 했다.

그들이 타고가는 배와 화살 한바탕거리쯤 사이를 둔 옆배의 갑판에서는 오팔이가 괜히 어정거리며 창해네쪽을 홀린듯이 바라보고있었다.

그가 탄 배에는 백수십명의 귀환자들이 탔는데 오팔이가 그들의 신변보호와 생활편의보장을 맡고있었다.

그래서 한낮의 해볕에 시달리는 귀환자들에게 공급하려고 물동이를 안고 누렁이와 놀음을 치며 가다가 옆배의 창해네를 띄여보고 별안간에 부러움이 동하여 눈길을 떼지 못하는것이다.

오팔은 느닷없이 한창시절의 젊은 랑군이랑 피덩이같은 아들애랑 남겨두고 너무도 일찌기 저세상으로 간 야속스러운 안해가 생각나 마음이 쓸쓸해졌다.

그러하는데 등뒤에서 반롱조의 칼칼한 음성이 들려왔다.

《어이휴, 이 형님 눈이 휑해서 한봄철의 바람난 과부가 개창건너 홀아비네 집 굴뚝쳐다보듯 뭘 그렇게 정신없이 건너다보시오까?》

그 말소리의 임자가 누군가 하여 오팔이 피끗 뒤돌아보니 히까리가 벙글거리며 서있었다.

히까리는 오팔이가 맡은 배의 착 뒤배를 맡아 호행해오댔는데 별로 그 배에는 말상대를 할 정도로 아는 사람이 없는지라 갑갑증이 동해 그새 낯을 익힌 성미 호방스러운 오팔이와 말추렴이나 하려고 헤염쳐 건너온것이다.

오팔이도 히까리의 뛰여난 무예에 감탄한데다가 또한 그가 조선사신행차를 여사모사로 도와줬고 그의 가문이 왜땅에 끌려와 몇대를 거쳐 고역살이를 해온 《고마인》이란데 대해 동정을 품고있던차라 그를 유순하게 맞아주었다.

《음, 자넨가! 난 지금 옛적에 우리 승병대주력부대의 별군장을 한 저 홍대장이 애인을 만나는것을 보며 저들의 기연기봉사를 돌이켜보던중일세.》

《저 예쁜 가시내가 홍형님의 색시라는게 맞슈?》

《글쎄 뭐라고 해야 할지… 납채를 주고받으며 정식 성례를 치르지 않았으니 공인된 처는 아니요, 둘이 남몰래 살을 붙이고 머리채를 얹어줬으니 약혼정도는 초월한 육친의 사이요. 여하튼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백년해로할 부처인것만은 확실하지.》

오팔이가 홍창해네의 기이한 애정사를 얼추 얘기하고 혀를 차자 히까리도 측은한 동정을 표했다.

《홍형님의 인생고초도 막중하군요.》

《고생이 아무리 막중해도 사람만 살아있으면야 바람에 구름가시기지. 고초는 심했지만 별군장한테야 꽃같은 내인이 남아서질 않았나.》

오팔이가 이렇게 대척하다가 너무도 때이르게 예쁜 안해를 잃고 홀아비가 된 제 처지가 불우하여 한숨을 내쉬자 히까리도 자연히 낯색이 침침히 흐려졌다.

창해와 계명이한테서 오팔이의 기구한 혼인내막과 그의 처와 가시어머니가 수년전에 왜군에 의해 살해당한 사실을 전해들어 알고있는 히까리는 《오형님, 사람이 급할 땐 대끝에서도 석삼년을 산다지 않소이까. 음달에도 해가 들 날이 있다고 운이 트일 때를 바라서 힘을 내여 살아가옵시다.》 이런 말로 그를 위안하다가 나미쯔네 패당한테 원통하게 살해당한 제 애인인 오소노생각이 나 울적해졌다.

오히려 오팔이켠에서 대범히 웃어넘기면서 히까리의 잔등을 두드려주었다.

《이봐 동생, 사람은 뒤를 보며 울지 말고 앞을 보며 웃으랬다고 보다 흥할 래일에 대한 희망을 안고 웃으며 살아가자구. 우리한테야 조상의 나라가 있지 않나. 나라가! 그래, 그게 기본일세. 나라만 있으면 집도 생기고 녀편네도 생기고 복도 생기는 법이지.》

그들 둘은 서로 상대를 위안하고 위안받으면서 가슴속 상처의 아픔을 묵새겼다.

오팔이와 나란히 선체에 기대서서 이러저러한 한담을 나누던 히까리는 무심중에 배에 탄 승객들을 호기심에 차서 둘러보다가 흠칫 놀라며 굳어졌다.

도사공들속에 섞여 어정거리며 돌아치는 낯이 익은 사내를 띄여보았는데 그의 거동이 어딘가 모르게 다나까와 비슷했기때문이다. 먹베수건을 푹 눌러쓰고 턱수염이 더부룩이 돋았으나 단단하게 휘퍼진 어깨팍이며 굵직한 허리와 다리통이며 움직일 때마다 상체를 후뜰거리며 몸세를 쓰는것이 신통히도 평시의 다나까를 방불케 했다.

히까리는 아무래도 예감이 심상치 않아 자리를 차고 그쪽으로 뛰쳐갔다.

헌데 그 턱수염쟁이 사나이는 한찰나에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한참 어정거리며 찾았으나 낯익은 모상의 사공은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한편 그때 히까리가 찾는 턱수염쟁이 도사공은 선창안의 구석진 곳에서 역시 먹베수건을 눈잔등까지 푹 눌러쓴 몇몇 사내와 마주앉아 쑥덕공론을 하고있었다.

히까리의 예감그대로 그 턱수염쟁이 도사공은 변장한 다나까였는데 그도 방금 자기에게로 다가오는 히까리를 알아보고 몸을 사렸었다.

다나까는 불안한 기색으로 제 코앞에 붙어앉은 부하들한테 씨벌여댔다.

《말똥내나는 고마인새끼가 뒤배에 탔더니 언제 이 배에 건너왔어? 조짐이 되우 불상스러우니 속히 거사를 다그쳐야겠다. 먼저 뒤배부터 폭파하여 수염쟁이도승의 호행원인 무술가들을 그쪽으로 유인해다놓고 동시에 일을 치르도록 하자.》

이러고난 다나까가 뭐라뭐라고 지령을 주자 약삭바르게 생긴자가 냉큼 일어나 뒤배쪽에 대고 거사시작을 알리는 신호를 하려고 수건을 벗어들고 갑판으로 올라갔다.

바로 그러할 때 웬 허우대 늘씬하게 생긴 젊은 사내가 선창입구에 나타나 수건을 휘두르려고 올라오던자를 한손으로 가볍게 되밀어내리우며 다나까한테로 다가왔다.

늘 흰 조선중치막차림을 하고 조선사신인 수염쟁이도승의 그림자마냥 붙어다니며 그들을 보호해주던 백손이라고 불리우던 그 끼끗하게 잘생긴 호행원이였다.

《고꾸또, 자중하라-》

조선사신의 호행원이 뜻밖에도 류창한 일본말로 저희 부하들조차도 모르는 옛적 골목패시절의 별명을 부르며 자기를 얄궂게 굽어보는 바람에 다나까는 되우 놀라서 엉거주춤이 일어나며 칼을 뽑아들었다.

그러다가 그 사신호행원이 품속에서 꺼내 내드는 신표를 보고 눈이 퀭해 굳어졌다.

둥그런 은판으로 만든 신표에는 막부의 인장이 주먹같이 찍혀져있었기때문이다.

《당… 당신은 누… 누구요?》

《난 <비룡>이다.》

막부 쇼궁에게 천하무적의 번번 나는 《비룡》이라는 별호를 가진 젊은 사무라이가 비밀호위원으로 있다는것을 귀동냥해 엇비슷이 알고있던 다나까인지라 모주먹은 돼지처럼 태도가 한결 온순해지며 칼을 거두었다.

《대체 어이된 연고로 <비룡>이 조선사신호행원노릇을…》

《죽고싶지 않거든 입부리를 조심해. 때가 되면 알게 될테니 더 묻지 말고 내 말을 명심해 듣기나 해. 너희들이 계획한 거사는 선박들이 사수우라를 지나 일본령해를 벗어날 때에 시작하라는 쇼궁의 군령이다.》

《그건 어째서 그… 그러는거요?》

《등신같은것들. 일본경내에서 사달이 나면 우리 일본이 그 책임을 지게 된단 말이다. 쇼궁전하께선 너희 <도자마>들이 그렇게 미련한 짓을 칠것 같아 나를 따라보낸거다. 공해에서 고마놈들을 요정내면 자연재해로 공인되여 본국엔 아무런 책임전과도 없고 아울러 조선과의 통상교류는 그대로 실행되니 일거량득의 거사가 된단 말이다.》

《과연 현명한 작전이옵니다. 쇼궁전하의 책략에 탄복하게 됩니다.》

다나까는 《비룡》에게서 자기네의 거사에 극력 협조하겠다는 언약을 받자 사기가 충천하여 부하들과 새로운 모의를 벌리였다.

그때 히까리는 시간이 흐를수록 자기가 좀전에 본 그 텁석부리가 왜서인지 꼭 다나까처럼 여겨졌고 만약 그렇다면 그자가 필경 웬 못된짓을 꾸미느라고 귀환자들의 배에 슴새여들었으리라는 불상스러운 느낌이 자꾸 짙어져 아무래도 행수인 송운대사를 만나 만일에 대처하도록 충간을 줘야겠다고 생각하고 그 생각을 초벌 오팔이와 의논을 하려고 그가 있는 곳으로 되돌아왔다.

그러는 새에 배가 사수우라를 지나 현해탄을 가까이했다.

별안간에 히까리가 맡아오던 뒤배에서 불시에 아우성이 터져올랐다.

히까리가 이크, 사달이 났구나- 하며 혀를 깨무는데 오팔이가 휘닥딱 그에게로 마주 뛰쳐오며 《이봐, 나랑 날래 임자 맡은 배에 가보자구.》 하며 당장 바다물에 뛰여내릴 태세를 취한다.

그러는것을 히까리가 그의 허둥거리는 팔뚝을 잡아 휘돌려놓으며 이미 형세가 란잡해진것 같으니 날뛰지 말고 각자가 제 소임을 다하자는 말을 남기고 소동이 일어난 뒤배로 가려고 바다물에 뛰여들었다.

오팔이가 난처하여 어쩔바를 몰라하며 서성대는참인데 갑자기 그가 탄 배안에서도 아우성이 터져올랐다.

오팔이가 웬일인가 하여 비명소리가 울린쪽을 돌아다보니 작식할 그릇을 가지려고 선창안에 내려갔던 어떤 중년아낙네가 사색이 되여가지고 량팔을 허우적이며 되올라오고있었다.

《누가 폭약꾸레미에 불을 달아놓았어요.- 불이 막… 아유, 무서워라.》

그 소리에 가슴이 덜컥해진 오팔은 선창안으로 내려가 사연을 알아보려고 다급히 걸음을 옮겼다.

바로 그때였다.

쯔시마를 떠나 예까지 이르도록 공순히 앉아 먹베수건을 푹 눌러쓴 머리를 수굿한채 노질만 성근하게 해오던 왜인사공 서넛이 돌발적으로 벌떡 일어나더니 오팔을 와락 덮치였다.

처음엔 웬 영문인지를 몰라 얼뻥해서 그자들이 때리는대로 줘맞기만 하던 오팔은 인차 제정신을 차려가지고 덤벼드는 상대들을 맞받아 휘둘러쳤다. 천하에 제일 장사라 자부해온 오팔이였건만 무방비상태에서 불의에 변을 당한데다가 놈들이 본래 싸움판에서 드닥질을 당한 사무라이인지라 한참 맞고 때리고 하며 죽일내기를 해서야 한두놈 겨우 뼈다귀를 분질러 쓰러뜨렸다.

서로 주먹으로 줴박고 발로 걷어차고 붙잡아 밀치고 닥치고 하던중에 오팔이 피뜩 뇌리를 스치는것이 있어 저를 돕자고 달려오는 어떤 장정한테 왝- 소리쳤다.

《왜놈들이 우릴 몽땅 수장할 잡도릴 했소. 뭘해? 빨리 선창안에 있는 폭약꾸레미를 가져다 바다물에 던지오.》

그래서야 장정은 펄쩍 놀라더니 허둥지둥 선창안으로 내려갔다.

남은 두어놈과 오팔이사이에 주먹이 몇번 왔다갔다하는 사이에 정말로 그 장정이 심지에서 불찌가 칙칙 튕기는 폭약꾸레미를 안고 나타났다.

그러자 한놈의 《사공》이 갑판을 박차고 날아들며 단검으로 장정을 찔러눕혔다. 그러고는 불달린 심지가 늘어진 폭약꾸레미를 선창안으로 다시 던져넣는것이였다.

이때껏 두눈이 퀭해서 앞발을 앙뻗친채 스산한 싸움광경만 지켜보던 누렁이가 냅다 달려들어와 올려뛰며 장정을 찔러눕힌 그 《사공》의 멱살을 물어뜯었다.

《으악-》

《사공》은 목대를 그러안고 낑낑거리다가 털썩 주저앉았다.

나머지 한놈은 형세가 글렀다는것을 알고 매생이를 실은 선미쪽으로 뺑소니를 쳤다.

《요쌍, 생쥐같은 놈-》

오팔은 이발을 사려물고 기어코 따라가 떡메같은 주먹으로 달아빼던 놈의 대갈통을 박살내치웠다.

그러는데 어느새 선창안으로 내려갔댔는지 누렁이가 폭약꾸레미를 입에 물고 올라왔다.

오팔은 황급히 누렁이에게서 폭약꾸레미를 나꾸채여 휙- 바다물에 내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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