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 회)

제 1 장

5

 

려단지휘부를 다녀오는 은하는 날개라도 돋친듯 한 심정이였다.

은하는 려단에서 구조물담당설계기사를 만나 고미탄다리설계기초자료를 받았고 연구과제수행을 위한 앞으로의 실험문제에 대해서도 같이 토론하였다. 그리고 정우철도 만났다. 정우철은 무척 기쁘게 은하를 맞아주었고 은하가 제기하는 문제들을 심중히 들어주었다.

은하가 기중기문제를 꺼냈을 때 정우철은 슬쩍 롱으로 돌리려 했으나 은하의 응석섞인 억지에 어쩌지 못하고 반승낙을 하고야말았다.

어제 점심식사후 은하는 정우철과 함께 역에 도착한 기중기도 돌아보았으며 자기가 이제 며칠내로 고미탄지구에 가겠으니 그때 가서 보고 필요하다고 인정되면 요구하는 날자에 어김없이 꼭 기중기를 날라다주겠다는 다짐도 받았다.

《오늘 저녁에 철도성예술단 순회공연이 있다. 여기 왔던김에 며칠 더 있다 나랑 갈 때 같이 가자꾸나.》

오늘 아침 은하가 고미탄지구로 가겠다고 했을 때 정우철은 헤여지기 서분해하며 이렇게 만류했었다.

그래도 은하가 기어이 돌아가야 한다고 우기자 정우철은 《넌 그러니 결국 이 아저씨한테 기중기를 뺐으러 왔댔구나.》하고 정묻은 나무람까지 했었다.

은하는 자기가 려단지휘부에 남아있어야 정우철에게 페만 끼칠것 같았고 또 기중기가 해결되였다는 기쁜 소식을 광훈이며 대식에게 한시바삐 전해주고싶었다.

광훈네가 기둥타입을 인차 시작하면 은하는 당분간 고미탄지구에 가있을 계획이였다.

어느 다리건설장에서나 지금은 대체로 기초작업을 하고있었다. 그럴바 하고는 고미탄지구에 남아있는것이 앞으로의 실험을 위해서도 유리할것이였다.

은하는 고미탄지구로 가려고 뻐스에 올랐다.

뻐스는 숨가쁘게 령마루를 톺아오르기 시작했다.

령길은 험하고 좁았다. 마주오는 자동차와 길을 어기기 위해 한참씩 뒤걸음치기도 하고 이리저리 에돌며 겨우 령마루에 올라선 뻐스는 얼마를 못 가서 멈춰섰다.

《대발파입니다. 멀리 가지 마시고 차주변에서 쉬기 바랍니다.》

단발머리차장의 말에 손님들이 차에서 내리기 시작했다.

은하는 바람도 쏘일겸 대발파를 구경하러 뻐스에서 내렸다.

길에는 이미 오래전에 차단된 자동차들이 꼬리물고 한줄로 길게 늘어섰고 작업하다 발파를 피해 달려온 사람들과 길을 가다 차단된 사람들이 길가며 주변산발에 무슨 흥미진진한 체육경기를 앞둔 경기장의 구경군들처럼 웅기중기 떼지어 서있었다.

좀 있더니 한방의 총소리마냥 꽝 하고 발파신호가 울렸다.

대발파를 위하여 심지에 불을 단다는 신호다.

은하는 길가의 둔덕우로 올라섰다.

웃고 떠들던 사람들은 입을 다물고 발파구역쪽으로 긴장한 눈길을 돌리였다.

발파신호가 울리자 발파구역상공에는 난데없이 까마귀떼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까마귀떼는 까맣게 하늘을 덮어버리며 대발파를 피해 먼산으로 날아간다. 반복되는 발파에 날짐승들도 이제는 길이 든 모양이다.

대피선에 채 못 이른 《자주》호가 바쁜듯 부르릉거리고 발파의 정확성을 검열하기 위해 현장에 남았던 기술자와 지휘관들이 달려간다.

발파심지에 불을 달고 뛰여오던 발파공의 모습이 대피호로 사라진 얼마후였다. 건넌산 앞코숭이에 난데없는 흙기둥이 생겨났다. 흙기둥은 점점 굵어지며 커지더니 하나의 산봉우리처럼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순간 온 천지를 들었다놓는 요란한 폭음이 일어났다.

꽝, 꽈르릉…

지동치듯 온 산발이 부르르 몸을 떤다.

솟아오르던 흙봉우리가 툭 빠개지며 발파가스가 피여난다. 새뽀얀 발파가스는 온 하늘을 덮을듯 구름장처럼 커지면서 바람에 실려 어디론가 날리기 시작했다. 돌과 흙덩이, 나무쪼박과 뿌리들이 하늘 까마득히 솟아올랐다가 된우박처럼 쏟아져내린다.

새무리가 필사의 힘을 다해 달아나고 놀란 까마귀떼는 소란스레 까욱거리며 또다시 떼지어 날기 시작했다.

안개처럼 뽀얗게 서렸던 발파가스가 걷히였을 때 건넌산 앞코숭이가 드러났다. 산발은 뭉텅 허리가 끊기고 너럭바위가 자리잡았던 곳엔 깊은 웅뎅이가 휑하니 입을 벌렸다.

해제신호가 울리자 사람들은 돌격하는 병사들마냥 와 함성을 지르며 삽과 곡괭이, 목도채를 멘채 발파현장을 향해 밀려갔다.

전진하는 보병부대를 따라 전투장에 진입하는 땅크마냥 《자주》호며 불도젤, 굴착기, 트라크라인 등 기계화부대들이 파도처럼 밀려가는 사람들과 함께 움직이기 시작했다.

뻐스는 어느덧 발동을 걸고 갈길을 재촉하며 부르릉거렸다.

 

뻐스에서 내린 손님들은 뿔뿔이 흩어져갔다.

고미탄다리건설장으로 가자면 뻐스종점에서도 시오리나 산길을 걸어야 했다.

산등성이에서 분명 강줄기를 보고 그리로 향해 갔으나 고미탄다리건설장은 나타나지 않았다. 풀이 우거진 좁다란 오솔길이 뻗어간 골짜기안쪽으로는 참나무와 소나무가 빼곡이 서있고 길 왼쪽릉선으로는 한창 신록이 짙어가는 황철나무며 물푸레나무가 희뜩희뜩한 줄기를 내보이며 숲을 이루었다.

가도가도 산이 계속 앞을 막아서고 울창한 수림만 펼쳐지는 바람에 은하는 더럭 겁이 났다.

자기가 길을 헛갈렸다는것을 깨달은 순간 은하는 공연히 지름길을 택했다는 후회가 막심했다.

은하는 걸음을 멈춘채 사위를 두리번거리였다.

이때였다. 은하가 이미 지나온 오솔길주변의 숲에서 사람그림자가 얼른하더니 인기척이 들려왔다.

산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이는 은하앞에 나타난 사람은 뜻밖에도 불꽃이였다.

《은하언니!》

불꽃은 먼저 은하를 알아보고 소리치며 달려왔다.

《아니, 너로구나!》

은하는 자기의 반가움을 어떻게 표현했으면 좋을지 알수 없었다.

《벌써 와요?》

불꽃은 불꽃대로 반가움을 금치 못해했다.

《지금 려단에서 오는 길이야.》

《그런데 어떻게 여기로 오나요?》

《질러온다는게 그만…》

《오, 고미탄전망대 뒤쪽골안에서 길을 삭갈렸군요. 왼쪽 갈림길로 들어서야 숙소로 빨리 가는건데…》

불꽃은 이 지방에서 태여나서 자라난 사람처럼 이곳 지형을 자기 손금보듯 알고있었다.

《질러온다는게 은하언닌 십리나마 돌았어요. 그러게 이런 산길에선 절대 모르는 길에 들어서지 말아야 해요.》

불꽃은 무더운 날씨에 십리나마 헛길을 걸은 은하의 고생을 동정하듯 말했다.

은하는 그의 말에 수긍하며 머리를 끄덕이였다.

《그런데 넌 어디 갔댔니?》

《벌목하러 이동작업나간 2소대동무들한테 련락다녀오는 길이예요.》

잠시후 두 처녀는 오솔길을 내리기 시작했다. 산등성이를 따라 얼마 내려오니 숲에 막히였던 시야가 트이면서 왼쪽 산발중턱에 사태난 곳처럼 풀 한대 보이지 않게 파헤쳐진 땅이 보이였다.

은하는 거기가 로반공사장이라는것을 깨닫고서야 철길이 뻗는 방향을 짐작할수 있었다.

이때에야 은하는 지금까지 자기가 고미탄천으로 안 강줄기가 고미탄천에 흘러드는 승리다리개울이라는것을 알았고 자기가 길을 헛갈리고 방향을 잃은것이 바로 이때문임을 깨달았다.

산등성이를 내려서니 좀 넓은 길이 나섰다. 길은 개울쪽으로 뻗었다.

하늘에선 뜨거운 불볕이 쏟아져내렸다.

고미탄다리설계기초자료가 든 밤색삼면쟈크가방 하나만을 들었건만 은하의 얼굴에서는 땀이 비오듯 했다.

은하는 개울가에 가서 땀을 들이려고 부지런히 걸음을 다그쳤다.

난데없이 빽- 하는 호각소리가 울리더니 한 청년이 나타나 앞을 막았다.

은하는 영문을 몰라 앞길을 막아선 사람을 한참이나 바라봤다.

그가 《차단병》이라고 쓴 붉은 완장을 왼팔에 끼고있는것을 보고서야 은하는 뻐스를 타고 오다가 본 대발파생각이 났다.

《발파예요?》

《예?… 예…》

은하의 물음에 차단병은 어색하게 대답했다. 앞가슴에 갖가지 휘장을 셋씩이나 달고 코밑에 아직 노란 솜털이 보시시한게 차단병은 무척 애어려보이였다.

《시간이 오래 걸려요?》

《다리쉼을 하면서 땀이나 좀 들이시오.》

차단병은 은하쪽을 한번 힐끗 바라보더니 위엄을 보이느라 자기 나이답지 않게 늙은이투로 말하고나서 소나무아래로 어정어정 걸어갔다.

은하는 가방을 내려놓고 차단병과 약간 떨어져 앉았다.

날은 무한정 더웠다. 은하는 수건으로 얼굴을 닦다간 부채질을 하고 부채질을 하다간 다시 땀을 닦군 했다.

《어디다 발파를 해요?》

은하는 가까운 개울가로 가서 얼굴이라도 좀 씻고싶은 생각에 이렇게 물었다. 자기가 발파를 하는가고 묻는 말에 차단병청년이 그렇다고 대답은 했지만 광훈네 작업장에서 무슨 발파를 할가 하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저… 개울에서요.》

은하의 눈길과 다주치자 청년은 황급히 고개를 돌리며 대번에 얼굴이 귀밑까지 빨개졌다. 녀자만 보면 공연히 얼굴을 붉히는 흰눈같은 순박성이 그의 얼굴에서 느껴졌다.

코밑의 노란 솜털에서보다도 앞가슴에 잔뜩 단 휘장에서 그의 나이가 먼저 알린다. 소년다운 취미에서 아직 못 벗어난걸 보니 아마도 중학교를 졸업하기 바쁘게 건설장으로 탄원해나온 모양이다.

《어디서 발파하길래 여기까지 나왔어?》

은하보다 조금 떨어져오던 불꽃이 옆에 자리잡고 앉으며 이렇게 물었다.

《예? 한 쉰명됩니다.》

《쉰명이라니? 발파수가?》

《예?… 예…》

차단병청년은 은하와 불꽃이 앉은쪽을 보지도 못하고 건넌산을 바라보며 어물어물 대답했다.

발파수가 많은걸 보니 소형발파인 모양이다. 한사람이 여섯방씩 불을 놓는대도 발파수가 쉰명이라니 삼백발이다. 소형발파라고 해도 삼백발이면 정말 볼만 한 구경거리였다.

뻐스를 타고 오면서 조금전에 본 대발파를 대구경포사격에 비긴다면 개울가에서 지금 준비한다는 집중소형발파는 저격무기의 몰방질에 비길수 있을것이다.

은하는 발파현장에서 이렇게 가까운데 있어서 일없을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발파가 진행된다는 개울은 숲이 가려 그렇지 거리가 쉰메터도 될가 말가했다.

《발파할 때 여긴 일없어?》

불꽃은 수건으로 연송 부채질을 하며 다시 물었다.

《앉아있으면 일없어요.》

차단병은 손에 든 호각을 매만지며 능청스러운 미소를 얼굴에 그렸다.

《여기까지 돌이 날아와?》

불꽃은 차단병을 자기 손아래동생 대하듯 했다.

《글쎄…》

《여기 앉아서도 발파를 구경할수 있겠지?》

《저… 안 보는게 좋겠는데…》

《안 보는게 좋다니?》

《글쎄… 저… 뭐라고 말했으면…》

《무슨 발파야?》

《저… 수중…》

《수중발파?》

청년은 웬일인지 다시 낯을 붉히며 대답대신 머리만 끄덕여보이였다.

수중발파를 보지 않는게 좋다는 차단병청년의 말뜻이 은하는 리해되지 않았다.

은하는 좀더 캐여묻고싶었으나 차단병청년이 말끝마다 얼굴을 붉히는걸 보기 딱해 입을 다물고말았다.

십오분나마 기다렸으나 발파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발파시간이 아직 멀었어?》

불꽃은 기다리는데 지쳐 차단병청년에게 또 물었다.

호각에 처맨 파란 끈만 꼬며 앉아있던 청년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시계를 보려고 팔소매를 밀어올렸다.

그의 손목에는 여러개의 시계가 채워져있었다. 아마 작업하는 동무들의 시계를 맡은 모양이다.

시계를 보며 차단병은 매우 어색하고 난처한 웃음을 지었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은하는 청년의 표정과 말에서 무엇인가 심상치 않음을 눈치챘다.

아무리 생각해보아야 이 고미탄다리건설장주변에 몇백발의 소형집중발파를 할만 한 곳이 없었다.

은하는 차단병청년이 무엇인가 지금 자기네를 속인다는것을 깨달았다.

두사람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때 개울가의 숲속에서 누군가가 이쪽으로 다가오는 인기척이 들리더니 한 청년이 나타났다.

그는 런닝그바람으로 작업복을 벗어 어깨에 걸쳤는데 그의 머리는 푹 젖어있었고 손에는 젖은 수건이 들려있었다.

《여, 복동이!》

복동이라 불리운 차단병청년이 무슨 구원이라도 받은 사람처럼 새로 나타난 청년쪽으로 다가갔다.

《다 끝났어?》

《응-》

《정말 땀뺐네. 자꾸 가겠다는데…》

《어딜?》

《어디긴 어디야…》

이때 왁작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마다 젖은 수건 하나씩을 손에 들거나 목에 건 청년돌격대원들이 개울가에서 나타났다.

개울에서 집체적으로 목욕을 끝내고오는 모양이다.

은하는 이때에야 차단병청년이 말하던 《수중발파》의 내막을 알고 저도 모르게 얼굴을 붉혔고 불꽃은 지금까지 자기를 속인 복동한테로 달려가 그의 잔등을 주먹으로 콩콩 쥐여박았다.

《아니, 벌써 오십니까?》

이때 광훈이 인사를 하며 다가왔다.

그의 머리는 물기가 아직 마르지 않았다.

《예, 지금 오는 길이예요.》

《갔던 일은 다 잘되였습니까?》

《예.》

갓 목욕을 하고난 광훈의 둥그런 얼굴에선 싱그러움이 넘쳐났고 터질듯 팽팽하게 헤워진 작업복을 통해 드러나는 다부진 몸매에선 젊은이다운 열정과 억센 힘이 그 무슨 열기처럼 확확 풍기였다.

《빨리 오길 잘했습니다.》

광훈은 은하를 앞에서 안내했다.

개울가에서 목욕을 끝낸 돌격대원들은 벌써 열댓메터앞에서 걸어갔다.

은하는 광훈을 따라 불꽃과 함께 개울가의 오솔길을 걸어갔다.

숙소에서 작업장으로 오가느라고 개울에 건네놓은 나무다리가 바라보이였다.

다리가 놓인 곳에서 쉰메터쯤 내려가면 개울은 그곳에서 고미탄천에 흘러든다. 나무다리목에 이르니 개울이 흐르는 골짜기와 고미탄천이 흐르는 골짜기가 합쳐지는 짬에 끼운 산발이 정면으로 빤히 건네다보인다.

산발은 갑자기 급한 벼랑을 이루며 끝났다. 이 벼랑턱을 베개처럼 베고 머리를 맞댄채 고미탄다리와 승리다리가 놓인다.

두 골짜기짬에 쐐기처럼 들어박힌 거무틱틱한 그 산벼랑에는 《불사조청년돌격대전투장》이라고 쓴 힘있는 글발이 흰 뼁끼로 새겨져있었다.

주위의 푸른 수림과 벼랑의 거무틱틱한 빛갈에 대조되여 글발은 뚜렷이 나타났다.

은하는 사람들이 발붙이기 힘든 험한 절벽에 어떻게 저렇게 글을 썼을가 하는 생각에 글발에서 눈을 돌리지 못했다.

불꽃은 자기네 중대동무들과 함께 숙소쪽으로 가고 은하는 광훈과 함께 개울건너 현장휴계실로 향했다.

현장휴계실은 다리기초작업장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고미탄천기슭에 자리잡고있었다.

비나 가리울수 있게 널판자로 지어놓은 작업장 림시휴계실은 텅 비여있었다.

휴계실에 들어서자 광훈은 소나무널판자로 만든 길다란 의자에 자리잡고 앉으며 은하에게도 자리를 권했다.

그러더니 광훈은 도면을 꺼내놓았다.

려단에 다녀오기 전날 중대부에서 얼핏 보았던 그 안테나식기중기도면이였다.

《수고하셨군요.》

은하는 도면을 더듬으며 광훈의 정력에 감탄하듯 말했다.

묘하게 착안한 기중기였다. 단순하지만 도면에서는 광훈한테서 기대하지 않았던 기술실무적인 능력의 원숙성과 모험에 가까운 대담한 시도가 첫눈에 느껴졌다.

은하는 그사이 변모되고 성장한 광훈을 보는 심정으로 도면에서 나타나는 탐구의 흔적을 더듬었다.

《다른 사람들과 토론해보셨어요?》

《범산 <두더지>한테두 방조를 받구 동무들과도 토론해봤는데…》

동무들끼리 주고받던 버릇때문에 불쑥 말해놓고보니 안됐는지 광훈은 설명을 덧붙였다.

《범산대대장동문 지금 차굴을 뚫느라 땅속에 살지만 한때는 매처럼 하늘을 날던 연공이지요.》

도면에서는 정말 연공다운 기지와 패기를 찾아볼수 있었다.

《계산상으로는 둬톤정도 들수 있을것 같은데…》

은하가 도면을 심중히 들여다보자 광훈은 검열해답서를 교원앞에 내여놓고 변론하는 학생처럼 말했다.

도면을 더듬는 은하의 눈길은 퍽 지력이 있어보였다.

안테나식으로 동발이나 철판 한대를 꼿꼿이 세워가지고 서른메터나 되는 높이로 두톤이 넘는 짐을 들어올릴수 있다면 력학상으로도 흥미있는 문제였다.

하지만 탑식기중기같은 현대적인 기계가 있는 조건에서 구태여 이런것을 만들 필요는 없을것이였다.

은하는 도면에서 눈을 떼고 부드러운 시선으로 광훈을 바라보며 이제는 기중기때문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것을 알려주기로 마음먹었다.

이때 현장림시휴계실로 대식이 뛰여들어왔다.

은하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온 모양이다. 휴계실로 들어서는 그의 얼굴에서는 기중기가 어떻게 되였을가 하고 궁금해하는 기색이 너무도 뚜렷이 나타났다.

《기중기가 해결됐어요. 려단에서 보내주겠대요.》

은하의 말에 광훈은 도면우에 수그렸던 머리를 들었고 대식의 눈에는 한점의 바람에 빨갛게 숯불이 피여나듯 돌연 기쁨의 광채가 나타났다.

《려단장동지가 힘써주겠대요.》

《정말입니까?》

대식은 기중기문제가 그렇게도 쉽게 해결된것이 잘 믿어지지 않는 모양이였다.

《모레쯤 려단장동지가 이리로 나오시겠답니다. 며칠 있다 의약품이랑 싣고 중앙에서 직승기가 오는데 필요하다면 그때 기중기를 날라오도록 힘써주겠대요.》

《야, 고맙습니다.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대식은 자기의 기쁨을 숨기지 않았다.

《아니, 그럼 기중기때문에 려단에 갔댔습니까?》

광훈의 두눈에는 감탄이라기보다 놀라움과 무슨 의혹에 가까운 빛이 비꼈다.

《그것때문에만은 아니였어요.》

은하는 자기의 수고에 대한 치하나 보상을 바라지 않았고 그런것만큼 자랑을 삼가했다.

《은하선생, 정말 수고했습니다.》

대식은 은하에게 금시 절이라도 할듯 한 자세였다.

《뭐, 수고랄게 있어요?》

《아닙니다. 은하선생이 아니라면 이 문제를 누가 풀겠습니까? 우리 힘만으로는 어림도 없습니다. 은하선생은 우리 중대가 불사조의 영예를 다시 빛내일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대식의 과분한 치하에 은하는 오히려 옹색스러웠다.

《자꾸 그러지 말아요. 다리기둥이 빨리 일어서야 저도 연구과제를 수행할수 있어요. 제가 시험할 때 방조나 주기 바래요.》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 사업에 지장을 받는 한이 있어도 은하선생의 사업조건을 보장해드리겠습니다.》

《그러면 되나요?》

말은 이렇게 했으나 은하는 속으로 은근히 기뻤다.

대식한테서 광훈쪽으로 시선을 옮기던 은하는 놀랐다.

기뻐할 대신 광훈은 얼굴에 어색한 웃음만 그리고있었다.

은하와 눈길이 마주치자 광훈은 슬며시 외면하며 상우에 펴놓았던 도면을 말았다.

너무도 대조적인 두사람의 태도에 은하는 어안이 벙벙해졌고 어쨌으면 좋을지 알수 없었다.

은하는 광훈의 심정을 십분 리해했다.

지금까지 만들려고 애쓰던 안테나식기중기가 이제는 쓸모없이 되지 않았는가.

사람은 자기의 창조물이 무시당하거나 필요없이 되였을 때 괴로움을 느끼기마련이다.

은하는 자기가 기중기문제에 공연히 끼여들어 광훈한테 마음의 부담을 안겨주게 된것 같아 미안하기까지 했다.

 

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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