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7 회)

56

(유진수의 수기)

 

한창 추위를 하는 때이다보니 산악지대의 날씨란 맵짜기 그지없다. 혹독한 겨울은 골짜기마다 장설을 쌓아놓은채 쉬이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앙칼진 눈보라소리로 위엄을 시위한다.

그러나 분명 봄이 느껴지는 계절이다. 얼음장밑에서 도란도란 소리내며 흐르는 개울물이 봄의 속삭임이고 얼어붙은 대지를 어루만지는 태양의 빛이 봄의 미소라면 반토굴식병영의 앞처마에 매달린 고드름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은 물러가는 겨울의 눈물이다.

부대지휘부에 도착보고를 한 나는 발전소건설장에 나가기 전에 아들 먼저 며느리를 만날 생각이였다. 하지만 두려웠다. 그러나 애들앞에 자기를 솔직히 드러내는것이 옳고 그래야만 떳떳할수 있기에 힘든 결심을 했다.

며느리는 선전대에 없었다. 군인가족예술소조경연에 참가할 대상자선발을 위해 관하구분대로 내려갔다고 했다. 그것도 아들이 있는 대대라고 한다. 망설이다가 내처 걸음하기로 했다.

아닌밤중에 대대지휘부에 불쑥 나타난 나를 보고 어마지두 놀라던 며느리의 모습을 영원히 잊지 못할것이다. 할아버지때문에 내려온줄 알았던지 며느리는 얼굴을 들지 못했다. 애의 눈가에 맺히는 눈물방울을 보느라니 가슴이 터지는듯 했다.

《할아버진 실수를 했지만 난 과오를 범했구나.》

며느리의 눈이 커졌다. 무엇인가를 부인하려는듯 설레설레 고개를 저으며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자신이 범한 씻을수 없는 과오에 대해 그리고 최고사령관동지의 사랑으로 다시 재생의 길을 걷게 된데 대해 숨김없이 터놓았다. 발전소건설장에서 군인들과 함께 진실하고 성실한 땀을 흘리며 그 땀으로 흐려진 정신을 씻겠다고 했다. 해서야 속이 후련해졌다.

한동안 벙벙해서 나의 말을 듣던 며느리는 고개를 떨구었다. 그러나 용케 자기를 이겨내며 나의 두손을 꼭 잡았다.

《아버님, 전 예술선전대를 떠나지 않기로 결심했답니다.》

애들이 안고있는 정신세계는 나보다 훨씬 높았다. 나에게는 그것이 다행한 일로 여겨졌다. 며느리가 사랑스러웠다. 군인가족예술소조경연준비때문에 밤잠마저 잊고 뛰여다니다나니 좀 축가긴 했어도 그보다 고운 모습은 없을것이다.…

《옳다. 나도 잘못 생각했댔다. 장군님의 뜻을 따른다고 하면서도 자기의 리속을 먼저 따진 놈이였지. 이 기회에 깨끗한 자신을 되찾으련다.》

예술의 대중화방침이 꽃펴나 나라의 이르는 곳마다에서 노래소리가 힘있게 울려퍼지고있는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어느 초소에 서있건 당의 숨결을 안고사는것이 중요한것이다.

《승철인 아직 이 아버지의 일을 모르겠구나.》

《예, 하지만 꼭 자기를 이겨낼겁니다. 제가 할아버지때문에 고민할 때에도 도리여 저를 질책했답니다. 우리가 일을 더 잘하는것이 할아버지에게 힘이 된다고…》

《고맙다.》

나는 며느리와 헤여져 발전소건설장으로 나갔다.

현장지휘부의 조치로 기술중대에 림시 소속되였다. 아들대대가 맡고있는 물길굴에 들어가겠다고 어거지를 썼지만 지휘관들이 도리여 아들에게 방해가 되고 또 자기들도 승인할수 없다면서 기술중대에 배속시켰던것이다.

성차지 않았다. 그래서 짬만 있으면 질통을 졌다. 군인들에게 지은 죄를 사죄하는 심정으로 달리고 또 달렸다.

함께 일하는 군인들이 짬짬이 나를 위해주느라 왼심을 쓰는것이 도리여 부끄럽게 여겨졌다. 간간이 뇌리속에 슴배여드는것이 나의 존재감에 대한 생각이다. 당의 신임과 믿음을 떼여놓으면 유진수라는 인간이 무슨 존재가치를 가질수 있었겠는가를 돌이켜보게 된다.

단순히 곡목편성에 대한 문제가 아니였다. 장군님의 믿음과 사랑을 어떤 특정한 권한으로 여기는 사이에 저도 모르게 비인간이 되여버린것이다. 그래서 군인들의 수고에 감화되지 못한 실무화된 곡목편성을 주장한것이고 보다는 서윤호와 같은 사람들을 피와 정을 나누는 동지가 아닌 합창단의 통계수자로 여긴것이다.

음악을 실무화한 랭혈인간, 이것이 바로 내가 찾은 교훈이다. 뜨거운 심장으로 당의 사상과 의도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현실을 감수하지 못했기에 나는 한점의 녹이 되고말았다.

그토록 음악을 사랑하시는 장군님앞에 더는 나설수 없는 몸이라고 생각하며 뼈아픈 자책의 눈물을 흘리고있을 때 그이께서는 이 차거운 심장속에 뜨거운 피를 부어주시기 위해 극장에까지 찾아오시였다.

당의 숨결로 사는 정의인, 열의인이 되여야 한다시며 주저앉지 말라고 당부하시였다. 나는 전상근단장을 부둥켜안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 믿음에 보답해야 한다. 새 인간으로 태여나 그이의 품에 떳떳이 안겨야 한다. 설사 장군님 가까이에 다시 서지 못한다 해도 장군님께서 바라시는 참인간이 되기 위해 뼈를 깎아야 한다.…

나는 아들에게 나의 이 심정을 이야기했다. 승철은 이 못난 애비와 함께 당을 받드는 길에서 쓰러진다 해도 영광으로 여기겠다고 다짐했다. 부끄러웠지만 한켠으로는 신심이 생겼다.

어제 김옥철중사가 찾아왔다. 내자신이 대중과 등을 돌리고 인재를 찾아 사회예술단체들을 력방할 때 장군님께서 현지지도의 길에서 찾아주신 귀중한 새싹이다.

평양음악무용대학에 가게 되였다면서 떠나기에 앞서 조언을 한마디 듣고싶다고 했다. 그런 재목이 못된다고 거절했으나 그는 막무가내로 떼질했다.

《그럼 한마디만 들어두오. 음악을 하려면 먼저 인간이 되여야 하오. 나는 음악은 알았지만 마음속에 인간적인 선률이 흐르지 못했기때문에 길을 헛들었소. 꼭 참인간이 되기 위해 노력하오. 그래야만 훌륭한 음악가가 될수 있소.》

옥철중사는 제자로서 그 말을 새기겠다고 했다. 제자? 아니, 내가 바로 그들 군인들의 제자이다. 그들의 가슴속에 끓는 피로 몸을 덥히고 그들이 부르는 노래에서 당에 대한 충정을 배워야 하는 제자이다.…

내가 공사장에 왔다는 소문을 듣고 공사에 동원된 구분대의 군관들은 물론이고 린접구분대의 중대정치지도원들까지 달려와서 저저마다 자기들의 예술소조공연을 봐달라고 한다. 그래서 낮에는 질통을 지고 밤에는 그들을 도와준다.

병사들속에는 재간둥이들이 많았다. 음감이 비상한 연주가가 있는가 하면 소리통이 좋은 독창가수도 있다. 또 특출한 창작적재능을 가진 군인도 있다. 숱한 인재밑천을 놓고서도 다른 곳에 헛눈을 팔았던 내가 어리석기 그지없다.

오늘 우리 기술중대에 휘틀조립용통나무를 운반할 임무가 떨어졌다. 눈덮인 산판에 들이밀 운수기재가 없다나니 인력으로 날라야 했다.

중대에서는 중대예술소조활동에 대한 지도를 구실로 이 《아바이전사》만은 명단에서 빼놓았다. 물론 나를 걱정해서 취한 조치였으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 중대장을 한절반 《위협》해서야 겨우 승인을 받았다. 큰 표창이나 받은것처럼 어깨가 으쓱해졌다.

림지에 도착하니 점심시간이 되였다. 줴기밥 한덩이로 점심식사를 마친 우리는 곧 행군을 시작했다. 나에게도 다른 군인들과 마찬가지로 굵직한 통나무 한대가 차례졌다. 바줄로 몸을 휘감고 끌기 시작했다.

무릎을 치는 눈길에서 신발은 이미 물주머니가 되였고 솜옷마저 땀에 화락하니 젖어들어 도리여 짐스러워졌다. 목에서 겨불내가 일었다. 물통은 이미 바닥이 나서 눈 한옹큼으로 갈증을 덜어야 했다.

음악편답의 길에서 성공 못할가봐 걱정하던 어머니의 모습이며 군복입은 나를 바래주던 소시적동무들의 모습이 눈앞에 떠오른다. 병사시절 나에게 생활을 가르치고 음악의 신비를 깨닫게 해준 전우들과 음악무용대학의 옛 스승들도 생각난다. 그들모두는 유진수가 훌륭한 음악가가 되기를 바라고 축복했다.

나의 생애에 안겨졌던 그 모든 행복과 영광이 응당한것이였는가? 당에서 그 싹을 중히 여기지 않았더라면 피다가 졌을 꽃이였다.

땅거미가 깃들었다. 어둠을 기다린듯 성깔진 바람소리가 귀뿌리를 스쳤다. 별안간 터진 눈보라의 회오리에 고개를 들수 없었다. 앞서간 군인들의 발자국을 따라 기계적으로 걸음을 옮겼다.

바람결에 누구인가를 부르는 웨침소리가 간간이 미쳐왔다. 전지빛이 앞에서 번쩍거렸다. 웬 사람들인지 정갱이까지 빠지는 눈을 걷어차며 허겁지겁 이쪽으로 달려왔다.

《아버지-》

아들이였다. 모자를 벗어 이마전의 땀을 훔치며 뒤쪽을 돌아보았다. 또 다른 군관이 외투자락을 바람에 날리며 서있었다.

나는 숨이 꺽 막혔다. 두툼한 입술에 웃음을 담은 조혁이 경례를 보내고있었다.

어깨에 걸메고있던 바줄을 집어던지며 그를 와락 껴안았다. 무슨 말이든 해야겠으나 쇠통 입을 열수가 없어 부둥켜안고 빙빙 돌기만 했다. 한참만에야 나는 통나무에 걸터앉으며 모두 잘있는가고 물었다. 그리운 모습들이 눈앞에 삼삼히 떠오르며 눈물이 났다.

《부단장동지, 지금 실장동지가… 기다리고있습니다.》

실장이?…

《어디서… 어디서 기다린다는 소리요?》

《공사장에서 지휘관들과 이야기를 나누고있습니다.》

갈피를 잡을수 없었다. 어떻게 예까지 왔는지 리해되지 않았다.

《오늘이 부단장동지의 생일이 아닙니까. 그래서 실장동지와 함께 제가 왔습니다. 다른 동무들은 인차 자강도에 가서 공연을 해야겠기에 편지를 한배낭 보냈습니다.》

오늘이 생일이였던가?… 이 잘난 놈의 생일을 잊지 않고 실장이 예까지 찾아온것이 놀라왔다.

《부단장동지, 최고사령관동지께서 부단장동지가 외지에서 생일을 쇠겠는데 우리더러 꼭 가보라고 말씀하시였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나는 귀를 의심했다. 장군님께서 이 유진수를 잊지 않으시고 생일마저 걱정해주시였다는것이 꿈만 같아 조혁의 손을 부둥켜잡았다. 몸이 떨렸다.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리며 입술을 적셨다.

《승철아, 내가 꿈을 꾸는게 아니겠지?》

《꿈이면 이보다 더 좋은 꿈이 또 있겠습니까?》

아들의 목소리도 울음에 젖어있었다.

《아버지, 소식이 또 있습니다. 선률이 할아버지가 이번에 장군님을 만나뵈웠답니다.…》

들으니 놀라운 소식뿐이다. 아들이 조혁이더러 빨리 이야기하라고 이르자 조혁은 그 감격스런 광경을 손짓몸짓을 섞어가며 성급히 설명했다. 나는 북받치는 흥분을 억누르지 못하고 《그래서, 그래서…》하고 연방 재촉했다.

《…최고사령관동지께서는 민족수난기의 음악이 우리 민족의 음악유산이라고 말씀하시면서 한규일선생에게 그 시기의 음악들을 다 정리해서 후세에 꼭 전해야 한다는 믿음을 주시였답니다.》

깊은 밤 수화기를 동해 간간이 새여나오는 며느리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락엽처럼 묻히게 될 민족수난기의 음악을 두고 통렬한 아픔을 느꼈던것이 멀지 않은 일이였다.

《조혁이, 우린 정말 행복한 음악가들이요. 무엇이라 이 심정을 표현했으면 좋을지 모르겠소. 어서 가기요.》

우리는 다시 통나무를 끌기 시작했다.

무엇인가를 되찾은 왕년의 랑만과 격정이 숨을 가쁘게 했다. 저도 모르게 젊은이들처럼 입나팔을 하고 《어허허-》하고 웨쳤다. 조혁이도, 아들도 목소리를 합쳐 힘껏 소리쳤다.

《어허허-》

그런데 저 앞쪽에서 다른 울림이 들려왔다.

《부단장동지-》

그것은 분명 설명순실장의 목소리였다. 심장이 후두둑 뛰였다.

《실장동지-》

나는 등줄기로 치달아오르는 반가움에 떠밀려 바줄을 내던지고 달렸다. 설명순실장이 정갱이까지 빠지는 눈길을 헤치며 허위허위 달려오고있었다.

우리는 한걸음을 사이에 두고 마주섰다.

《기다리다 못해서 올라왔습니다.》

《실장동지.…》

우리는 서로 손을 꽉 붙잡았다. 와락 껴안았다. 뜨거운 정이 사품치며 속내에 흘러들었다.

뒤따라온 선률이도 우리의 감동적인 상봉에 눈물을 흘리고있었다.

아들도, 조혁이도 눈물이 글썽한채 우리를 지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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