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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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동지께서는 동해안에 위치하고있는 인민군부대들에 대한 현지시찰을 마치시고 점심시간이 퍽 지나서야 야전숙소에로 돌아오시였다. 인민군지휘성원들과 함께 간단히 식사를 하신 다음 주둔지역의 공장, 기업소들을 더 돌아보고 귀로에 오르실 계획이였다.

그런데 문성태에게서 걸려온 전화가 일정을 변경시키게 했다.

그는 음악가동맹 부위원장을 만난 결과를 보고드리면서 일군들의 편협한 사고때문에 일이 빚어진데 대해 사죄했다.

《됐소. 만나서 들어봅시다. 내 곧 떠나겠으니 로상에서 만나기요.》

그이께서는 현지시찰을 수행하던 인민군지휘성원들에게 먼저 점심식사를 하라고 이르시고 차에 오르시였다.

승용차는 평양을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차가 최속으로 달리였지만 그이께서는 오히려 너무 더디게 움직이는것 같아 조바심을 느끼시였다. 믿을수 없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문제여서 은근히 왼심을 쓰시였는데 마침내 소식이 온것이다. 문성태의 목소리가 귀전을 떠나지 않았다.

전후 종파사대주의자들의 해독행위로 수령님의 품속에서 자라난 숱한 문학예술인들이 못쓰게 된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아픈 마음을 달래기 힘드신 김정일동지이시였다.

정신문화의 한 형태인 문학예술은 한 나라의 문명을 표현하며 더우기는 인민의 정신도덕적인 힘으로 된다. 고대와 중세, 현대를 막론하고 찬란한 문화를 창조하며 지혜와 슬기를 자랑해온 인민은 그 어떤 압제에도 굴함없었고 그러한 인민을 가진 나라는 온갖 력사의 돌풍속에서도 자기의 존엄을 과시하였다.

인간의 자주성과 창조성, 의식성의 산물이면서도 그들의 자주적인 사상의식과 창조적능력의 높이를 표현하는 문화에서 문학예술이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은 비할바없이 크다. 문학예술은 바로 그 담당자인 인민을 위해 복무해오면서 온갖 형태의 반동적인 권력에 반항해왔고 슬기로운 인민과 함께 존재해왔다. 일제가 이 나라를 강탈한 첫시기부터 조선민족의 고유한 문화를 말살하고 특히는 문학예술을 거부하기 위해 온갖 술책을 다해온것도 결국은 민족의 혼을 없애기 위한 악랄한 책동의 일환이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품에서 이 나라의 문화는 자기의 력사를 찾았고 문학예술은 혁명의 위력한 사상정신적무기가 되여 인간의 자주적이며 창조적인 투쟁에 영예롭게 이바지할수 있게 되였다.

그래서 수령님께서는 문학예술인들과의 사업을 소홀히 하지 않으시였고 편협한 사람들이 친일이요, 모호한 계급성이요 하면서 그들을 따돌릴 때에도 한품에 안아 애지중지 키우시였다.

인간의 오물과도 같은 종파분자들의 눈에는 당과 수령만을 따르는 그들이 곱게 보일리 만무하였고 때문에 온갖 직권으로 그들을 회유하며 돌이킬수 없는 과오까지 범하게 했다. 한때 동방의 무용가로 이름떨치던 최승희도 그런 박해와 질시에 몰려 곡절을 겪었다.

최승희는 어머님께서 중히 여기시며 무용을 해도 조선의 넋이 깃든 무용을 해야 한다고 걸음걸음 이끌어주신 무용가였다.

그가 해방산기슭의 저택을 찾아와 어머님을 뵈옵던 일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시였다. 어머님의 상처입은 손을 꼭 감싸쥐며 녀사께서 백두의 설한풍속에서 손발을 얼구며 혁명을 하실 때 자기는 왜놈들앞에서 춤이나 추었다고, 자기를 꾸짖어달라고 용서를 빌었다.

그러나 어머님께서는 탓하지 않으시고 조선의 무용을 지켜낸것을 장하게 내세우시였고 무용으로 김일성장군님을 받들어 새 조국건설에 이바지하라고 당부하시였다.

최승희는 어머님을 뵙던 일이 잊혀지지 않아 예술축전차로 외국에 갔던 기회에 털토시를 가지고왔었다. 빙천설지의 만주땅을 헤치며 모진 고생을 다하신 어머님께 자그마한 성의라도 드리고싶은 마음이, 불민한 과거를 탓하지 않으시고 자기를 수령님 가까이에 무랍없이 내세워주신 어머님께 이 나라의 녀성으로서 그리고 예술인으로서 다소나마 보답하고싶은 참신한 마음이 마련한 기념품이였다.

하지만 최승희가 축전에서 돌아왔을 때는 어머님께서 세상을 떠나신 뒤였다. 소원을 풀길 없었던 그는 어머님의 인자하신 음성이 그리워, 그 따뜻한 미소와 손길이 그리워 정신없이 울었다. 머리를 풀어헤친채 어머님묘소에 엎드려 통곡하던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런 최승희도 종파들의 롱락물이 되여 마음고생을 크게 겪었다. 종파들은 이름있는 무용가를 너절한 음모에 끌어들이려고 획책했고 수령님만을 믿고 따르는 마음을 어지럽히려고 추악하게 책동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조선무용의 현대화에 자기의 뚜렷한 흔적을 남기고 다른 나라에까지 우리의 무용을 보급하고 자랑한 최승희를 꼭 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하시였다. 수령님께서 키워주시고 어머님께서 내세워주신 무용가를 결코 반당반혁명종파분자들의 희생물로 남겨둘수 없으시였다.

승용차는 어느새 중부지대의 산악을 가로지른 평양-원산관광도로에 들어섰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긴 굴간을 앞에 두고 전화로 문성태부부장을 찾으시였다. 무지개동굴을 가까이하고있다는 그의 보고에 차를 세우고 기다리라고 지시하시였다.

동굴을 통과하시니 문성태가 곧은 자세로 길가에 서있었다.

《식사도 못했겠구만. 어떻게 된 일인지 사연부터 들읍시다.》

장군님, 저희들이 일을 쓰게 못했습니다.》

그이께서는 본론을 재촉하시였다.

《일이 벌어진 날이 음악가동맹 부위원장동무의 생일날이였습니다. 많은 음악동료들이 그를 축하해주려고 집에 왔다고 합니다.

대부분이 나이많은 지기들이여서 그 동문 추억삼아 왜놈들의 학대를 받으며 음악을 연주하던 일이며 그 시기 음악가들의 운명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그들에게 자기가 집필하고있는 원고를 보여주었습니다. 저도 보았습니다. 민족수난기 음악가들의 창작생활과 우리의 민족음악을 말살하려는 일제의 야만적인 책동을 해부하고 그 시기 노래들의 창작경위며 내용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분석하였습니다. 좀 과하게 내세운감은 있으나 민족의 재보를 귀중히 여기는 마음이 글줄마다에 배여있었습니다.

뒤끝에 일제시기의 류행가를 불렀는데 노래음조가 어둡고 선률이 우리 식이 아니다나니 그 시기의 노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오늘의 시대정신을 외면한 도피현상이라고 비판한것입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얼음버캐가 버석버석한 아스팔트길의 가녁을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기시였다. 개울녘에서 조무래기들이 팽이치기에 여념이 없었다. 재간을 부리느라 솜옷을 벗어제끼고 잽싸게 썰매타는 소년도 있었다.

《이젠 됐소. 한시름 덜게 되였구만. 허, 녀석들 춥지 않은게지? 하긴 장독과 아이들은 겨울에도 얼지 않는다고 했지.》

그이께서는 문성태에게 즐거운 시선을 보내시였다.

《결국은 사람들속에서 류행가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계몽기가요에 대한 리해가 바로 서있지 않은 까닭에 생긴 문제요.

종파사대주의자들이 민족음악유산을 허무주의적으로 대한 후과가 이렇게 뿌리깊이 남아있소. 한규일선생이 자기가 안고있는 민족음악유산에 대한 견해가 부정당하여 허무감을 느끼지 않았는지 모르겠소.》

문성태는 고개를 수굿하며 좀 그런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해방전에 모진 고생을 다하며 나라잃은 슬픔을 겪어본 음악가인데 자기가 모욕받은것보다는 귀중한 음악유산이 해를 받은게 더 가슴아팠을게요. 언젠가도 한 일군이 <락화류수>를 불러서 문제시되였길래 지적해준적이 있었소. 영화에서 부정인물이 부른 노래라고 해서 비판하게 되면 나중엔 <아리랑>이나 <봉선화>도 못 부르게 된다는 결론이 나오게 되오. 이건 민족수난기가요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기때문이요.》

김정일동지께서는 이럴 때에 유진수라면 어떤 견해를 세웠겠는지 궁금하시였다. 하긴 《반동》으로 론의될만큼 심각한 문제이고보니 아무리 일가견이 있다 해도 선뜻 대답하기 어려웠을것이다.

《부위원장동무가 인민군대의 유진수동무에게도 자기가 집필하는 저서에 대해 이야기한것 같습니다.》

마치 자신의 심정을 읽은것처럼 문성태가 아뢰는 말씀이였다. 그이께서는 한규일이 바로 유진수의 사돈이라는데 생각이 미치시며 뒤말을 기다리시였다.

《유진수동무는 찬성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시기의 음악을 정리하는것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군인작곡가로서 허용하기 힘들다고 말해주었다는것입니다.》

그럴수 있었다. 모든것을 정바르게 평가하고 곧게만 보는데 습관된 군인다운 립장에서는 그렇게 하는것이 마땅했다. 하지만 그 역시 음악가이다보니 민족수난기의 음악이 력사의 이끼속에 그냥 묻혀있기를 바라지는 않았을것이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천천히 걸음을 옮기시였다.

《계몽기가요들에는 민족의 얼이 배여있소. 왜놈들에 대한 항거의식과 광복을 바라는 이 나라 인민의 마음이 반영되여있소. 그런데 지난 시기 일부 편협한 사람들은 그때의 노래를 일제식민지통치의 잔재라고 일면적으로만 평가했소. 그렇게 되면 민족유산을 잃는것은 물론이고 우리 나라 음악사에 공백이 생기게 되오. 우리의 민족음악유산은 우리가 지켜야 하오.》

그이께서는 승용차앞에서 멈춰서시며 한규일이 어떻게 지내던가고 물으시였다.

《건설장에 나가 지원자로 일하고있습니다.》

《량심있는 음악가요. 부부장동무, 저녁에 그 동무를 불러야겠소. 전화로 장소를 알려주겠소.》

그이께서는 서켠으로 기울어진 누릿한 해를 바라보시며 시간을 가늠하시다가 다시 문성태를 향해 돌아서시였다.

《이제 인공지구위성개발현장에 들려보자고 하는데 차라리 나와 함께 움직입시다. 하지만 한규일동무에게 잊지 말고 련락해야겠소. 내 차에 가서 줴기밥 한덩이로 점심식사나 하고 떠나기요.》

《그러니 식사도 못하시고…》

《부부장동무라고 식사를 했겠소? 함께 먹읍시다.》

늘 그러하듯이 그이의 식사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

 

김정일동지께서는 승용차가 연구소마당에 들어설 때부터 시창밖에 주의를 집중하시며 박송봉을 찾으시였다. 인공지구위성개발이 적극화되면서 박송봉에게 그 부문사업을 맡겨주시였는데 그래서 마음이 놓이기는 하지만 또 몸을 혹사시킬가봐 걱정하게 되시는 그이이시였다. 이마가 훤칠한 당비서만 정중한 자세로 서있을뿐 박송봉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며칠전에 연구소당비서로부터 그가 앓는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의사들을 보내주시였는데 혹시 병이 더 깊어지지 않았는지 걱정되시였다.

차에서 내리신 그이께서는 당비서의 인사를 받으시며 박송봉부부장이 왜 보이지 않는가고 급히 물으시였다.

《한시간전에 자강도로 떠났습니다.》

《자강도에?…》

《제기된 첨단제품생산때문에 아무래도 걸음해야겠다면서 바삐 떠났습니다.》

《몸상태는 어떻소?》

《집중적인 치료를 받고 많이 나았습니다. 워낙 체질이 약한데다가 몸을 돌보지 않고 일하다나니 피로가 겹쳤던것 같습니다.》

좀 낫다니 다행이였다.

박송봉은 어머님께서 잊지 못해하시던 연길에서 싸우다 희생된 투사의 아들이였다. 어머님께서는 해방후 중국동북에 나가있던 림춘추에게 박길의 아들을 꼭 찾아야 한다고 부탁하시였는데 그래서 만주의 어느 길거리에선가 하루하루 빌어먹으며 떠살이하던 박송봉이 투사들의 손에 이끌려 조국으로 나올수 있었다.

뼈만 남아 피골이 상접한데다 머리가 더부룩하고 누덕누덕 기운 베잠뱅이를 걸친 류랑고아의 모습을 보신 어머님께서는 눈물부터 지으시였다. 박길의 아들을 이제야 찾았다고 하시면서 품에 꼭 안아주시였다.

만경대혁명학원에 입학할 때에는 군복의 다림발도 세워주시고 옷매무시도 보아주시며 아버지의 뒤를 이어 꼭 나라의 대들보구실을 해야 한다고 당부하시였다.

박송봉은 어머님의 당부를 잊지 않고 혁명가유자녀답게 일했다. 지방에서 일하다가 당중앙위원회로 소환되던 날에는 안해와 함께 어머님의 묘소를 찾아 밤새껏 대돌을 닦았고 영원히 당을 따라갈 충정의 맹세를 다지며 묘소에서 밤을 새웠다.

동트는 새벽녘 안개발이 드리운 대지를 바라보며 그가 자식들앞에 했다는 소리는 자서전에도 기록되여있다.…

《그 사람은 내가 돌봐야 해. 그렇지 않으면 자기 몸을 전혀 돌보지 않거던.》

김정일동지께서 늘 외우시는 말씀이였다.

전에 오셨을 때에도 제기된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먼 지방에 출장을 가서 못 만나셨는데 이번에는 또 자강도에로 갔다고 한다. 그래서 박송봉이였다. 당에서 하늘의 별이 요구된다고 하면 자기 한몸이 별이 되여서라도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이였고 과업을 주시기 전에 먼저 떠맡아나서는 일군이 박송봉이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당비서의 안내를 받으며 운동장처럼 넓은 조립전투장으로 향하시였다.

은백색의 운반로케트가 그이께서 명령만 주시면 당장이라도 요란한 굉음을 지르며 땅을 박차고 솟구쳐오를듯 장한 자세로 누워있었다. 아직은 잠을 자는듯 했다.

동체에 손을 얹으시였다. 금속의 차겁고 짜릿한 촉감이 이상하게도 어떤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느껴지시였다. 가만히 두드리시였다. 떡떡 맞서는 소리가 울림이 좋은 팀파니의 리듬처럼 들렸다. 마치 그이의 손길이 닿기를 이제껏 기다린듯 동체가 꿈틀 용을 쓰는것 같았다.

《부부장동무, 제국주의반동들이 촘촘히 늘인 봉쇄의 그물을 뚫고 저 하늘로 솟구쳐오를 위성을 그려보니 이 가슴이 다 넓어지오. 오늘은 우리 인민이 허리띠를 조이지만 민족적자존심과 긍지를 만천하에 과시하며 세상만복을 누릴 날이 멀지 않소. 우리의 위성이 우주를 난다, 얼마나 가슴 후련한 일이요.》

문성태가 앞섶에 손을 맞잡으며 경건한 눈길로 그이를 우러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이 자랑찬 창조물을 어버이수령님께 보여드리지 못하는 아픔을 느끼시며 수령님께서 계시였다면 무척 기뻐하시였을것이라고 생각하시였다. 민족의 장래와 만대의 행복을 위해 한생을 다바쳐오신 어버이이시였다.

남에게 붙어서는 한시도 못산다, 제것이 있어야 하며 자기의 힘이 강해야 한다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강조하시며 우리의 위력한 공장터전들을 잡아주시였고 연구집단을 창설해주시였다. 수령님께서 맞으신 찬비는 바다가 되고 엄동의 눈은 강산을 이루리라.…

수령님의 그 념원을 안으시고 김정일동지께서는 준엄한 선택을 하시였다. 쉽지 않은 행군길을 달려오면서 겪으신 마음고생이 헤아릴수 없이 컸지만 누구에게도 터놓지 못하시였다. 노래를 부르며 괴로움을 달래시였고 힘든 고비를 넘기시였다.

《박송봉동무가 언제 돌아서겠다고 했소?》

《이틀이 걸릴것 같다고 했습니다. 승리기계동무들이 제품생산에서 실패했다는 소식을 듣고 무작정 떠났습니다.》

《나라의 만년기틀을 마련하는 사업인데 모든것을 최상의 수준에서 보장해야 하오. 우리 로동계급은 꼭 해낼거요. 부부장동무에게 련락해서 건강에 주의를 돌리라고 당부하오.》

동체곁에서 물러서며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오늘 저녁에 인민군공훈합창단 공연을 조직했소. 과학자, 기술자들을 모두 데리고와야겠소.》

길게 누운 은백색의 동체들을 다시 바라보시는 그이의 안광에 근엄한 빛이 어렸다.

《저 동체들은 어떤 물리적인 실체가 아니라 살과 피를 가진 생명체들이요. 이 나라 인민의 사상과 정신이 깃든 창조물이라고 할수 있지. 후손들은 잊지 않을거요.…》

습관적으로 가슴우에 두팔을 엇걸어끼며 천천히 걸음을 떼시였다.

《이제 헤쳐갈 길은 갑절 어렵소. 하지만 이 김정일은 조국과 인민을 위해 한몸을 초불처럼 태울것이요. 만약 이 몸이 불타서 조국이 강대해질수만 있디면 나는 서슴없이 그 길을 택할것이요.》

장군님!…》

문성태는 어떤 희생적인 대가를 치르어서라도 인민의 존엄을 우주에 새기시려는 김정일동지의 의지가 가슴에 사무쳐와 목메여 부르짖었다.

《…장군님, 우리 군대와 인민은 오로지 위대한 장군님만을 믿고 이 고난을 이겨내고있습니다. 조국의 운명이 장군님의 어깨우에 실려있습니다. 부디 몸을 돌보아주십시오.》

《고맙소. 하지만 이 김정일은 조국과 인민을 위해 있는거요. 가야할 길이 아무리 험난하다 해도 그런 군대와 인민이 있기에 난 마음이 든든하오.…》

그이의 존안에는 열정적인 빛이 넘쳐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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