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6 회)

제 4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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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림속을 헤치던 대오가 멈춰섰다.

업고있던 중상자를 땅에 내려놓은 표무강은 급히 그를 잡아흔들었다.

《일남이!… 일남이!…》

두눈을 감고 축 늘어진 홍일남은 의식을 차리지 못하였다.

시시각각 생명이 꺼져가는 전사를 안타깝게 내려다보던 표무강은 자기의 우유부단한 행동을 두고 가슴저리게 후회하였다.

에익, 그때 돌려보냈으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텐데.

…전사들의 드높은 열의속에 진행된 군무자총회가 끝나자 련대지휘부는 대대력량가량의 습격대를 조직하였다.

누구라고 할것없이 모두 탄원하였으나 100여리밖에 있는 적들을 들이쳐야 하는 힘겨운 전투인것만큼 당연히 건장하고 걸음빠른 전사들이 선발되였다.

습격대편성이 끝나고 모의훈련에 들어갔을 때 홍일남이 불쑥 나타났다.

《무슨 일이요?》

《련대장동지, 절 습격대에 받아주십시오.》

표무강은 단마디로 잘라버렸다.

《안돼.》

《련대장동지, 제발 받아주십…》

《빨리!… 더 빨리!》

저쯤에서 굼뜨게 내달리는 전사를 향해 소리친 표무강은 홍일남이 또 뭐라고 하자 증을 냈다.

《무슨 말이 많아?》

그가 그쯤 나오면 비위좋기로 소문난 씨름군 조금철도 비실비실 물러나는 판이다.

아무리 뻗치고 서있어도 곁눈질 한번 하지 않는 련대장을 보자 홍일남은 실망하였다. 그렇지만 그는 련대장의 깊은 마음을 알지 못하였다.

거의 빈사상태에 빠져 련대를 찾아온 홍일남은 련대장의 《특별명령》으로 련대군의소에서 보양을 받고있었다. 그런데 아직 몸도 추서지 못한 그가 습격대에 받아달라고 하니 그 마음은 대견하지만 그럴수록 더욱 아끼고싶었던것이다.

《련대장동지, 돌아가겠습니다.》

홍일남은 거수경례를 하고 돌아섰으나 그의 얼굴에는 알릴듯말듯한 웃음발이 스쳐지나갔다.

저녁무렵, 습격대가 출발하자 홍일남은 살금살금 뒤를 따랐다.

얼마 못 갔는데 앞쪽에서 《섯, 누구얏?》 하는 웨침소리가 터졌다.

아차, 걸렸구나!

속이 한줌만해서 서있는데 경계근무병이 점점 다가오더니 귀익은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이거 일남동무 아니야?》

죽을수가 생기면 살수도 생긴다더니 경계근무병은 자기와 함께 《국군》에서 의거해온 친구였다.

막혔던 숨이 나가는데 친구가 이상한 기미를 차렸는지 따져물었다.

《어디 가는 길이야?》

《난 지금… 특별임무수행중이야.》

혀가 돌아가는대로 내뱉고보니 그럴듯하였다.

《특별임무?… 그게 뭔데?》

그건 알아서 뭘 하겠는가고 책망하듯 홍일남은 엄한 표정을 지었다.

《그건 극비야!》

《극비》라고 을러멨지만 친구는 여전히 미심쩍어하는 태도였다.

안되겠다 하고 생각한 홍일남은 어성을 높였다.

《여, 동무도 군인선서를 했지?》

아닌밤중에 홍두깨같은 군인선서소리가 나오자 친구는 얼떨떨해졌다.

《군, 군인선서?… 동, 동무랑 같이하지 않았나.》

《그래서 하는 소리야. 그래, 군인선서를 한 인민군대가 군사비밀을 로출시킬수 있는가?》

그 의기양양한 태도를 보고서야 누가 감히 거짓말이라고 의심할수 있으랴.

한풀 죽은 친구는 손에 들고있던 총을 어깨에 걸쳤다.

《통과하게.》

《수고하라구.》

고마운 친구에게 손을 흔들어보인 홍일남은 땀이 내돋은 목덜미를 훔칠 사이도 없이 두주먹을 부르쥐고 내달렸다.

건강치 못한 몸으로 그 먼길을 축낸다는것이 헐치 않았으나 죽기내기로 달리고 달렸다.

그가 련대장앞에 나타난것은 습격대가 어느 한 산릉선을 톺아오르고있을 때였다.

습격대를 돌아보다가 낯익은 얼굴을 알아본 표무강은 버럭 소리쳤다.

《이건 뭐야?》

《…》

《당장 돌아가. 당장!》

성난 범같은 련대장의 호령에 홍일남은 어깨가 축 처져서 돌아섰다.

그랬던 그가 또다시 나타난것은 100리를 달려간 습격대가 ××역에서 가까운 골짜기에 전개하였을 때였다.

사전에 알려준 습격조들의 타격대상들을 재확인한 표무강은 긴장한 눈길로 야광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이제 10분 남았다. 그 다음은…

누군가 옆으로 발발 기여오더니 《련대장동지!》라고 찾았다.

그를 알아본 표무강은 두눈을 부릅떴다.

《엉, 여기까지 따라왔소?》

그는 련대장한테서 추궁을 받을가봐 겁이 난듯 고개를 떨구었으나 보총을 꽉 틀어잡은 두손은 흔들리지 않았다.

표무강은 그를 돌려보내기에는 이미 때가 늦었다는것을 알았다. 그리고 설사 돌아가라고 쫓아도 그가 응하지 않으리라는것도.

《좋소. 총화는 전투가 끝난 다음에 하기요.》

그 말에 벌쭉 웃고난 홍일남은 힘들게 받은 《합격증》을 떼울가봐 겁이 난듯 제꺽 그의 옆에 붙어섰다.

습격시간이 되자 표무강은 허리춤에서 신호권총을 뽑아들었다.

펑!-

붉은 신호탄이 검푸른 허공으로 날아오르자 습격대는 일제히 역구내로 돌격하였다.

어둠속으로 발열된 총탄들이 날아가고 사방에서 수류탄이 터졌다.

하늘땅을 들었다놓는 폭음이 울릴 때마다 적군용렬차들이 화염에 휩싸였다.

뒤늦게야 아군습격대가 자기들보다 렬세하다는것을 알아차린 적들은 반돌격으로 나왔다.

그속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기관차가 칙칙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찰나 홍일남이 앞으로 몸을 날렸다.

졸지에 일어난 일이여서 그옆에 있던 표무강도 미처 어쩔수 없었다.

《일남이!… 일남이!…》

홍일남은 증기를 내뿜는 기관차를 향해 뛰여갔다.

그를 발견한 적들이 집중사격을 가해왔다.

따쿵, 따다쿵!

뚜룩, 뚜루룩!

맹호처럼 돌진하던 홍일남이 흠칫 몸을 떨더니 그 자리에 쓰러졌다.

그동안에 기관차는 점차 속력을 높이기 시작하였다.

그때까지도 홍일남은 일어나지 못하였다.

표무강과 전사들이 손에 땀을 쥐고 지켜보는데 그가 불사신마냥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손에 들고있던 반땅크수류탄을 집어던졌다.

쾅, 꽈광!-

요란한 폭음이 터지고 기관차는 거대한 불덩어리가 되여버렸다.

《돌격앞으로!》

전사들은 일제히 달려나가며 적들을 덮쳤다.

철수신호를 알리는 신호탄을 쏜 표무강은 피투성이가 되여 쓰러진 홍일남을 둘쳐업고 귀로에 올랐다. …

《일남이, 눈을 뜨라. 뜨란 말이다!》

그 절절한 마음이 전달된듯 홍일남의 눈시울이 파르르 떨렸다.

가까스로 눈을 뜬 그는 련대장을 알아보자 웃음을 지으려고 하였다.

《응, 나야. 련대장이야!》

표무강은 전사의 얼굴을 부여잡고 부르짖었다.

그러나 채 피여나지 못한 미소는 여윈 두볼을 타고 미끄러져내리다가 꺼멓게 죽어버린 입술가에서 굳어져버렸다.

두눈만은 무엇인가 말하려고 모지름을 쓰고있었다.

《어서 말해. 응, 일남이!》

하고싶은 말을 쏟지 못한 안타까움으로 가늘게 떨고있던 눈동자는 서서히 빛을 잃고있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것을 깨달은 표무강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일남이, 죽으면 안돼. 안된단 말이야!》

표무강은 점점 식어가는 그의 얼굴이며 가슴을 마구 비비고 쓸어만졌다.

했으나 전사의 몸은 싸늘하게 식어가고있었다.

피가 타고 살이 떨어져나가는 절통한 이 순간!

표무강의 두볼로 대줄기같은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일남아, 네가 죽다니. 너때문에 속을 태운 이 련대장을 남겨두고 어떻게 갈수 있는가 말이다. 아, 전쟁이 승리하는 날 너를 앞세우고 너의 어머니를 찾아뵈우려고 했는데 먼저 가면 난 어떻게 하란 말이냐. 이 자식아, 이 나쁜 자식아!

그의 두볼을 타고 떨어진 눈물이 대리석처럼 차거운 전사의 얼굴우에 뚝뚝 떨어졌다.

홍일남은 이렇게 갔다. 자기를 용서하고 받아준 고마운 전우들에게, 아들이 돌아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있을 사랑하는 어머니에게 한마디 말도 남기지 못한채 영영 돌아올수 없는 길을 떠나갔다. 하지만 그가 미처 하지 못한 이야기는 남쪽하늘가로 향한 맑고 깨끗한 두눈에 실려있었다.

《어머니, 이 아들은 어머니앞에 떳떳하게 살았습니다!》

온 련대가 사랑하는 전우의 죽음을 슬퍼하였다. 잃을번 하였던 전우들의 믿음을, 조국의 믿음을 목숨으로 되찾은 그여서 더욱 가슴이 아픈것이다.

슬픔에 잠긴 전사들의 머리우에 표무강의 비장한 목소리가 울렸다.

《동무들, 홍일남동무는 한 어머니만이 아니라 조국앞에 효도를 한 참된 아들이였습니다. 그는… 그는 비록 우리곁을 떠나갔지만 영원히 련대와 함께 있을것입니다. 눈물을 거둡시다. 그리고 일남동무가 마지막순간까지 그토록 가고싶어한 장군님의 품으로 그의 넋까지 안고 갑시다!》

《알았습니다!》

눈물에 젖은 수백의 목소리가 수림속을 뒤흔들었다. …

그날 오후, 로성익은 수림속을 거닐고있었다.

해빛을 받아 반짝이는 소나무잎사귀도, 하얀 눈을 뒤집어쓴 락엽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바위처럼 가슴을 묵직하게 짓누르는 괴로움만이 있을뿐이다.

사실 그는 전선사령부 대표의 자격으로 경고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최덕근사단을 들이치겠다고 나선 표무강의 무분별한 행동을 묵과할수 없었다. 그랬으나 군무자총회가 열리고 전사들이 저저마다 습격대에 탄원하자 그들을 만류할수 없다는것을 깨달았다. 그렇다고 련대가 파멸의 낭떠러지로 굴러가는것을 보면서 가만있을수 없었다. 그리하여 많은 측면에서 미숙한 표무강을 돕기로 결심하고 습격전투에 참가하였었다.

그렇지만 그것은 공연한 로파심이였다.

표무강은 맞다드는 정황에 맞게 전투를 능숙히 지휘하였고 전사들도 성난 사자처럼 용감하게 싸웠다. 결과 역에 대기하고있던 적들과 군용렬차는 녹아나고 북상하려던 최덕근사단의 기도는 파탄되고 말았다.

그 무서운 힘앞에서 로성익은 전률에 가까운 감정을 느꼈다. 그보다 더 큰 충격을 안겨준것은 자기가 배신자라고 락인찍고 총살까지 하려고 하였던 홍일남전사가 육탄이 되여 적기관차를 까부신 사실이였다.

처음부터 믿을수 없다고 색안경을 끼고 보았던 그가 자기의 눈앞에서 발휘한 용감성과 희생성은 그를 몹시 놀래웠고 한편 당황하게 만들었다.

그가 어떻게 되여 그런 영웅적인 최후를 마칠수 있었단 말인가?

자신을 세계대전참가자라고 자부하는 그에게 있어서 홍일남의 죽음은 풀기 어려운 숙제였다. 마치 그한테 영원히 갚을수 없는 빚을 진것 같은 기분이였다.

전사들의 차거운 눈빛도 그의 마음을 괴롭히는 또 하나의 비수였다.

행군중에 힐끔 쳐다보는 눈빛들에서, 마주 오다가 도깨비라도 만난듯 얼른 숲속으로 몸을 숨기는 전사들의 행동에서 풍기는것은 자기에 대한 불신이였다.

그 느낌은 로성익으로 하여금 잠시나마 자신을 돌이켜보게 하였다.

내가 언제부터 물우에 떠있는 기름과도 같은 존재가 되였는가.

산소와 수소로 이루어진 가장 안정한 화합물인 물과 비중이 낮은 기름은 화합될수 없는 물질이다. 아무리 휘저어도 두 물질은 절대로 결합되지 않는다. 정말 내가 련대라는 대하와 어울리지 못하고 그우에 둥둥 떠다니는 기름방울이라면…

그는 난생처음 외로움을 느꼈다. 그것은 상상해보던것과 전혀 다른 아픔이였다. 쓰리기도 하고 때로는 저리기도 하고.

 

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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