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5 회)

제 4 장

3

 

눈앞에 펼쳐진 참담한 현실앞에서 최덕근은 그만 반정신이 나가버렸다.

사방에 나딩구는 군용렬차잔해들, 엿가락처럼 꼬인 레루들, 처참하게 찢어지고 꺼멓게 탄 시체들…

작전토의에 참가하고 돌아오니 래일 새벽 군용렬차를 리용하여 북쪽으로 기동하게 되여있던 사단의 1제대가 인민군습격에 전멸당한것이다.

기가 막혀 두눈을 부릅뜨고있는데 머리속에서 의문덩어리가 빙글빙글 돌아갔다.

아무리 야간습격이라고 해도 이런 정도의 타격력을 보유하자면 적어도 련대급이상의 무력이 아니고서는 어림도 없다. 혹시 표무강련대가 아닐가? 아니다. 지칠대로 지친 그들이 100여리밖에 있는 이곳까지 달려올순 없다. 내가 인민군련대장이라면 그런 무모한짓은 벌려놓지 않을것이다. 젠장, 그렇다면 이게 무슨 감투끈이란 말인가?

따르륵, 따르륵…

힐끔 뒤를 돌아본 최덕근은 이쪽으로 뛰여오는 인민군대를 발견하였다.

추격이다!

창황중에도 대전전투에서 행방불명이 되였다는 미24사 사단장 띤이 생각났다. 그렇게 놓고보면 히말라야산줄기처럼 높아보이던 미군장성이라는것도 별로 큰 존재가 아니다. 띤, 난 당신 신세는 되지 않겠소!

《부관!》

옆에서 우들우들 떨고있던 부관이 제꺽 다가섰다.

《날 따르라!》

호기있게 소리친 최덕근은 수치스럽기는 해도 그보다 더 큰 수치를 면하기 위하여 지금껏 한번도 상상해보지 못하였던 삼십륙계 줄행랑을 놓기 시작하였다.

한밤중이여서 어디에 나무가 있고 바위가 있는지 알수 없었다. 필사적으로 딩굴고 부딪치며 상처입은 메돼지처럼 곧추 내달렸다.

그바람에 사병들의 부러움과 시기를 자아내던 살집좋은 얼굴은 나무가지에 긁히워 만신창이 되였고 주름살 한점 없이 미끈하던 《국군》장성복은 볼품없이 되여버렸다.

《서라!》

《공산군》은 기를 쓰고 쫓아왔다.

땅, 따당!

뒤쪽에 대고 남은 총탄을 날려보낸 최덕근은 빈 권총을 집어던지고 또다시 죽어라 하고 내달렸다. 그리하여 적아간에 부피두터운 올림픽력사에도 기록되지 않은 특이한 《장애물극복경기》가 벌어졌다.

허둥지둥 뛰여가던 최덕근의 뚱뚱한 몸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앞을 가려보지 않고 달리다보니 경사급한 산비탈을 허궁 날아넘은것이다.

아차! 하는 생각이 뒤머리를 쳤지만 이미 육중한 몸은 관성의 법칙에 따라 빠른 속력으로 저공비행하고있었다. 만약 유명한 물리학자 아이저크 뉴톤이 살아있었다면 자기가 생존하던 때로부터 200여년이 지난 오늘 조선의 이름없는 산중에서 《뉴톤의 제1법칙》을 완벽하게 증명하는 《국군》장성을 보고 만족해하였을것이다.

기우뚱거리며 허공을 날아가던 최덕근은 급격히 락하하며 땅에 무릎을 세차게 쫏고는 맹렬한 속도로 굴러가다가 깊숙한 웅뎅이안에 푹 박혔다.

땅에 힘껏 쪼은 두다리가 아파서 끙끙거리고있는데 앞에서 부관이 급하게 소리쳤다.

《빨리… 빨리!》

언제나 례절바르던 부관도 어지간히 바빴던지 여느때 같으면 감히 엄두도 낼수 없는 반말을 거리낌없이 내뱉고있었다. 하기야 다 망한 판에 그까짓건 아무것도 아니다. 그저 포로만 되지 않는다면…

벌떡 일어난 최덕근은 육체의 고통에 비한 의지의 우월감을 새삼스레 느끼며 앞에서 날렵하게 내달리는 부관을 좇아 허겁지겁 달려갔다.

씨근덕거리며 령마루에 올라서자 머리우에서 우르릉, 우르릉- 발동기소리가 들려왔다. 좀전에 부관이 무선대화기를 붙들고 미군을 호출하더니 구원의 손길이 뻗쳐온 모양이다.

《각하, 미군… 미군직승기입니다!》

울음에 가까운 부관의 환성이 터지는 순간 눈물이 찔끔 나왔다.

그래도 미국사람들이 날 잊지 않았구나!

부관이 쏘아대는 신호탄을 발견한 직승기는 서둘러 공지에 내려앉았다.

천방지축 뛰여간 최덕근은 비둔한 몸집을 기체안으로 마구 쓸어넣었다.

뻘건 불줄기를 그리며 날아든 총탄들이 기체를 맵짜게 때렸다.

총탄에 맞을가봐 몸을 감추고 기체밖을 내다보니 꼬리를 바싹 물고 따라온 《공산군》이 보였다.

다급한 나머지 최덕근은 고래고래 소리쳤다.

《빨리, 빨리!》

직승기는 거대한 몸을 떨며 공중으로 둥둥 떠올랐다.

성이 독같이 오른 《공산군》은 냅다 사격하였다.

챙, 채쟁-

기체에 맞고 튀여난 총탄이 몸뚱이에 박히기라도 하듯 최덕근은 몸을 흠칫흠칫 떨었는데 그것을 보면 죽음앞에서는 영웅이 따로 없는 모양이다.

얼마후 신경을 자극하던 챙챙소리가 멎어버렸다.

후-

안도의 숨을 내뿜는데 부관이 어디서 났는지 납작한 술병을 건네주었다.

술병을 입에 기울이자 독특한 맛을 가진 위스키가 위속으로 흘러들었다. 도수높은 증류술이 연방 들어가자 서서히 퍼져오르는 취기와 더불어 불안감은 사라지고 감감 잊었던 배짱까지 되살아났다.

《부관, 대체 우리가 얼마쯤 뛰였는가?》

《아마 십리는 될겁니다.》

《뭐, 십리?》

그 먼길을, 그것도 야밤에 평지도 아니고 높고 험한 산길을 죽기내기로 달렸다는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나한테도 륙상선수의 소질이 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서글퍼졌다. 더욱 기분나쁜것은 비대해진 몸을 단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공산군》의 포로가 되지 않겠다고 허둥지둥 내뛰였다는 사실이였다. 아마 종군기자들이 그 광경을 촬영했더라면 후날 큰 웃음거리가 되였겠다고 생각하니 속이 울컥 치밀어올랐다. 젠장!

눈치가 멀쩡한 부관이 기창밖을 내다보는척 하고있는 틈에 최덕근은 구겨진 장성복을 바로잡았다. 그 순간부터 그는 가련한 도망병으로부터 수만명의 부하를 거느린 당당한 《국군》장성으로 되돌아온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괘씸하기 그지없었다.

《부관, 날 추격하던 공산군이 누구야?》

《표무강련대같습니다.》

《뭐, 표무강?》

정말 그가 밤사이에 100여리를 달려와 사단을 들이쳤단 말인가. 하긴 이 근방에 《공산군》이라면 표무강련대밖에 없다. 모를 일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지금은 천번중 한번밖에 찾아오지 않는 절호의 기회다. 그런데 어째서 사생결단하고 달려들었는가?

피뜩 례사롭지 않았던 륙사시절의 상봉이 생각났다.

그날 륙사선배와 후배는 애국의 길을 함께 걷자고 굳게 약속하였었다.

그러나 두사람의 운명은 서로 다르게 흘러왔다.

표무강은 공화국의 신임으로 인민군련대장이 되였지만 자기는 미국이 쥐여준 총을 잡고 반공에 매진하고있었다. 그런즉 그 약속은 젊은 시절 누구나 한번쯤은 품게 되는 랑만적인 꿈으로 흘러가버린것이다.

그때 그가 자신의 행동이 민족앞에 씻을수 없는 죄를 짓는 반역의 길이며 그로 하여 수십년이라는 긴 세월을 에돌아 공화국에 영주하는 날이 있으리라는것을 알았더라면 그처럼 기를 쓰고 친미의 진창속을 헤매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먼 후날의 일이고 미군직승기를 타고 날아가는 지금 그는 륙사선배를 증오하며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흠, 어제는 대대를 이끌고 북으로 넘어가더니 오늘은 악질빨갱이가 되였구나. 두고보자. 내 이제 누가 진정한 애국자인가를 알게 해줄테다!》

 

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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