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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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야흐로 공장의 모든 사람들이 기다리는 첨단설비의 시운전을 진행하는 날이 다가왔다. 시운전에서 성공하게 되리라는것을 이들모두는 의심치 않았다. 그만큼 들인 대가가 컸고 바친 땀이 진했다.

기동예술선동대는 시운전의 성공을 축하하기 위한 공연준비로 온밤을 새웠다. 공장당위원회 부비서까지 동원되여 씨름질하다나니 새벽녘에 이르러서야 겨우 완성할수 있었다.

그러나 아침을 맞아 현장에서 들려온 소식은 모두가 안타까이 기다리던 성공의 희소식이 아니라 실패라는 떡심이 풀리는 무거운 소식이였다.

차선옥은 미세한 오차도 허용하지 말아야 하는 첨단설비의 제작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느끼는 동시에 어쩔수 없는 좌절감을 안게 되였다.

황황히 조립전투장으로 달려갔다. 현장에는 무겁고 침체한 공기가 떠돌고있었다. 밤낮없이 조립전투에 매진하던 기사들과 기능공들이 숨을 죽인 기대옆에 맥없이 주저앉아 담배만 뻐금뻐금 빨고있었다. 성미가 다혈질인 지배인도 눈물이 그렁한채 한숨만 길게 토했다. 기계를 맨주먹으로 때리며 우는 로동자도 있었다.

북창에 가있는 아버지가 소식을 들으면 얼마나 속이 아프랴 하는 생각에 선옥은 마음이 서글퍼졌다. 공장을 떠난지 한달이 되여오지만 마음만은 현장에 남겨두어 가끔 전화를 걸어오며 작업반원들에게 잔소리를 하던 아버지였다.

곧 사고심의가 진행된다는 소리가 쉬쉬하며 돌았다. 그 소문이 사람들의 의기를 더욱 저상시켜 침체한 분위기는 쉬이 가셔지지 않았다.

지배인이 시운전에 참가한 기사들과 기능공들에게 어서 집에 가서 아침식사를 하고 나오라고 일렀으나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다. 손때묻은 창조물을, 넋을 기울여 만든 동자를 외로이 남겨두고싶지 않은 마음들이여서 그냥 버티고있었던것이다.

선옥은 집에 얼마 남지 않은 강냉이라도 닦아 한밤을 꼬박 새운 기사들과 로동자들을 지원하는것이 옳겠다고 생각했다.

무거운 걸음으로 현장을 나섰다.

집대문을 열고 들어서니 털부숭이개가 어머니의 색날은 편리화를 가지고 장난질을 하고있었다.

부엌문이 열리며 세면수건을 머리에 동인 한분녀가 쿨럭쿨럭 기침하며 나섰다. 어머니의 꾸지람을 들을줄 알았던지 털부숭이는 얼른 울타리쪽으로 도망쳤다. 부엌에서 강냉이닦는 냄새가 물씬 풍겼다.

신발을 찾아신은 어머니가 선옥의 얼굴을 자세히 살폈다.

《현장에서 오는 길이냐?》

선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성공했냐?》

어머니의 성급한 물음에 선옥은 눈을 지그시 감았다. 고개를 가로저었다.

한분녀가 그게 무슨 소리냐고 다우쳐물었다.

《실패했나봐요.》

선옥의 맥없는 말에 분녀는 토방에 풀싹 물앉았다.

《저런, 모두들 끔찍이 기다렸는데… 호, 네 아버지가 들었으면 까무라치겠구나. 쯔쯧…》

성공을 바라는 어머니의 자심한 마음이 헤아려져 선옥은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선옥은 강냉이를 다 닦았는가고 물었다.

《그까짓 강냉이나 닦아선 어찌겠다는거냐? 그 잘난 량반들에게 대접해? 그만두겠다. 일이 꼬이기란… 어서 한술 대강 뜨렴.》

하면서도 한분녀는 가마에서 한창 닦아지는 강냉이알들을 무관심할수 없는지 그쪽에 눈길을 보냈다.

《허긴 배를 곯구서야 힘이 나겠니? 많진 않아두 이것으루 끼를 때게 하구 또 잘해주십사 빌어야지.》

무르팍을 짚으며 일어서던 한분녀가 무슨 생각이 난듯 선옥을 불렀다. 편안치 않은 눈길이 선옥의 굳어진 왼팔에 닿있다. 왜서인지 이내 뒤말을 잇지 못하고 갑잘랐다. 선옥의 동실한 어깨를 껄껄한 손으로 쓸어만졌다.

《…당비서동지가 그 사람한테 편지를 보냈더라.》

그 사람이라니?… 가슴이 호드득 뛰였다.

《헌데 이년아, 왜 나한텐 그 사람의 상관이 왔다간 사실을 숨겼냐? 이 에미가 그렇게두 미덥지 않아서 속에 묻어두었니?》

선옥은 차마 어머니를 마주보지 못하고 슬그머니 눈길을 떨구었다. 어머니가 알면 도리여 가슴아파할것 같아 혼자서 묵새기였는데 그것이 또 어머니의 노여움을 사게 된것이다.

《그래가지구두 무슨 에미라구 불러? 아무리 독한 마음을 먹었기로서니 먼데서 온 사람에게 식사 한끼두 대접시키지 않다니… 인정사정없는 집이라구 얼마나 욕했겠니.》

선옥은 한마디도 대꾸할수 없었다. 갑자기 설음이 북받치며 속이 알알해났다. 아니, 선옥이도 생각 못한것이 아니였다. 그러나 좀더 이야기를 나누면 간신히 다져온 결심이 흔들릴가봐 무정하게 등을 돌렸던것이다.

《아래목에 그 잘난 사람이 보낸 편지가 있다. 네가 어떻게 결심할는지 모르겠지만 너무 모질게 자기를 괴롭히지 말어라. 끊을래면 단단히 강심을 먹구 미련을 주지 말던지… 원, 왜들 자꾸 애의 마음만 든장질하는지. 이크, 강냉이가 다 타겠다.》

부엌에 내려간 어머니는 짜증을 내며 가마안의 강냉이를 와락와락 젓더니 소랭이에 담았다.

선옥은 아래목에 개봉한채로 놓여있는 편지에 겁먹은 눈길을 던지며 조심스레 집어들었다. 무엇이라 썼을가?… 속지를 꺼내들던 손을 움츠리며 주위를 황급히 둘러보았다. 무겁게 한숨을 지었다.

낯익은 글자들이 어서 봐달라고 새물새물 웃는듯 했다. 눈을 꼭 감았다가 다시 떴다.

《…왜 나에겐 화평악기공장에 가다가 겪은 사실을 숨겼소? 그리고 왜 그런 못난 결심을 했소? 난 당비서동지의 편지를 받고서야 모든 내용을 알게 되였소.

아니, 이 조혁인 절대로 동무를 놓아주지 않을테요. 내가 창조의 나래를 펼칠수 있었다면 그리고 좋은 노래를 만들수 있었다면 바로 선옥의 사랑이 있었기때문이요. 동무가 바라던 시대의 찬가를 지어 바로 동무가 부르게 하고싶은 욕망이 가슴을 태웠던거요.

나는 지금 기타선률을 듣고있소. 눈덮인 절덕등판에서 동무가 울리던 기타의 매혹적인 선률에 귀를 기울이며 이 편지를 쓰고있소. 나약한 생각은 던져버리고 희망의 눈으로 앞날을 내다보오. 동무는 외롭지 않을뿐더러 이 조혁의 찬양을 받아야 할 몸이요. 동무가 원하든 원치 않든 이 조혁은 선옥의 사람이요. 이 몸은 이미 선옥의 한손이 되여 기타선률을 울리고있소.…》

선옥은 자기가 울고있다는것을 느꼈다. 편지를 가슴에 붙안으며 어깨를 들먹였다. 문득 그의 품에 안겨 세상 끝까지 가고싶었다는 부인할수 없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달으며 눈물지었다.

그래서 사랑일가? 단연코 그이한테 짐이 되지 말자고 굳게 마음다진것이 꿈속에서 벌어진 일이였던가?… 과연 어디까지 진실일가?…

《선옥이, 노래는 우리의 힘이고 기쁨이며 행복이요. 군가의 선률이 미치는 곳에 우리의 사랑이 있소. 자기의 불행을 속되게 하지 마오. 선옥이가 불행이라고 생각하는것이 나에겐 가장 큰 미덕이며 행복이요. 기다리오.》

했으나 선옥은 도리머리를 했다. 그에게 짐이 되는줄 알면서도 사랑을 원한다면 그게 무슨 참사랑이랴.…

하지만 행복했다. 조혁이 만든 노래를 부르는것으로 만족하며 영원한 추억속에 묻어두자던 사랑이 봄물을 맞아 다시 움트고있는것이다. 인생은 교향곡이였다.

기분이 좋건 나쁘건간에 어떻게든 푸념을 해야 속이 편안해하던 어머니는 이미 공장으로 나간듯 했다. 편지를 포개여 품속에 넣은 선옥은 서둘러 대문을 열었다.

어디로 향한지도 의식 못하고 걸음만 재게 놀렸다. 삶에 대한 새삼스러운 충동과 환희가 가슴에 깃들며 마음을 들띄웠다.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이 생기에 넘친 자기의 모습을 놀랍게 바라본다는것도 의식 못했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보니 공장정문을 통과하고있었다.

뜻밖에도 현장에는 아버지가 와있었다. 소식을 듣고 북창에서 곧바로 달려왔는지 광대뼈가 두드러진 넙적한 얼굴에 땀이 번들거렸다.

당비서가 선옥을 띄여보고 천천히 다가왔다. 눈에 피발이 서고 주걱턱에 수염그루터기가 삐죽한 당비서를 대하는 순간 선옥은 눈뿌리가 확 달아오르고 마음이 따뜻해졌다.

《오래간만에 아버지를 보겠는데 만날 여유도 없구나. 방금전에 도착했다. 공장에서 시운전이 실패했다는 소식을 듣구 거기 군대동무들이 차를 보냈더구나. 북창일은 잘된다더라.》

당비서의 여유있는 목소리에 선옥은 만약 오늘이 성공한 날이였으면 얼마나 좋았으랴 생각했다.

《당비서동지, 고맙습니다.》

당비서는 선옥의 뒤대사를 리해한듯 허허 웃었다.

《첨단개발이 첫걸음인데 그만하면 괜찮다. 그런데 네 아버지도 그렇구 모두가 얼굴색들이 무겁구나.》

《…》

《사람들이 일시 난관에 맥을 놓고있는데 힘을 보탤게 없겠냐? 어머니가 강냉이를 닦아가지고 나오긴 했다만 지금 사람들에겐 그것도 중요하지만 머리속이 허우룩해지면 먹어도 힘이 나질 않지.》

당비서는 무엇인가를 바라고있었다.

《당비서동지, 알았습니다.》

선옥은 노래소리가 울리는 속에 영원히 하나된 모습으로 비껴있자던 조혁의 목소리를 듣는듯 했다. 현장방송실로 달려갔다.

《동지들, 저는 기동예술선동대의 차선옥입니다.》

말을 떼고보니 어떻게 이어야 할지 생각나지 않았다. 당비서의 목소리가 귀전에 되살아나며 번거롭던 속을 안정시켰다.

《…지금 일부 동지들은 시운전이 실패하여 맥을 놓고있는데 전 실패라고 보지 않습니다. 이 세상 누구도 헤쳐가지 못한 초행길을 걸으며 우리가 딛고올라설 또 하나의 봉우리를 점령했다고 생각합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하지 않습니까. 한번으로 그치지 않을 실패를 얼마나 더 겪어야 할지 우린 아직 모릅니다. 그러나 그 길을 걸어 우리는 기어이 성공의 탑을 쌓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선옥은 문득 자기에게 격려의 눈길을 보내는 조혁을 보았다.

《…우리가 걸어온 길은 결코 헛된 길이 아닙니다. 우리는 절대로 난관앞에서 물러서지 말아야 하며 또 그래서도 안됩니다.

지금 이 시각에도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우리 로동계급이 자력갱생의 힘으로 일떠서길 바라시며 멀고 험한 전선시찰의 길을 걷고계십니다. 그 누가 몰라줘도 희망안고 이 길을 가고가리라는 노래를 부르시며 저 높은 철령을 넘으시고 풍랑세찬 파도길을 헤쳐가십니다. 장군님의 념원을 꽃피워드리는 우리 로동계급의 마음속에서도 그 노래가 울리고있습니다.》

선옥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따뜻한 깃을 찾아 새들은 가도
        찬바람 부는 길을 처녀는 가네

       …

 

놀란 눈길로 선옥을 바라보던 방송원처녀도 선옥의 곁에 다가서며 목소리를 합쳤다.

선옥은 도면우에 엎드려 무겁게 한숨을 토하던 아버지와 현장기사들이 허리를 펴고 일어서는 환영을 보았다. 닦은 강냉이를 나누어주던 어머니가 눈이 휘둥그래져서 천정트라스에 매단 확성기를 쳐다보는 모습을 보았다.

모두가 선옥이와 목소리를 합쳐 노래를 부르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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