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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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국제비행장을 리륙한 려객기는 푸른 상공에 한줄기의 비행운을 그리며 정기항로를 따라 날고있었다. 기창에서 내려다보이는 해빛드리운 대지는 한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왔다.

눈덮인 산줄기들과 해빛을 받아 반짝이는 댕기처럼 굽이굽이 뻗어간 강하천들, 바둑무늬처럼 새겨진 넓은 들과 푸른 바다… 그 땅이 한규일이 태를 묻은 조국이였다. 그 조국이 한 시절에는 뼈마디 무른 소년의 어깨에 바이올린통을 지워 이국의 황량한 들가로 떠밀었고 인생고역의 눈물만 자아냈다. 땅은 있으되 자그마한 몸을 받아키울 힘이 없었던 나라였다.

눈물의 노래를 부르며 정처없이 방황하던 그 나날이 오늘에는 후손들에게 들려주는 옛이야기로 되였다. 규일은 자기가 칠십나이 넘도록 음악예술에 종사할수 있고 또 오늘처럼 나라의 명예를 걸고 국제음악토론회에까지 참가하게 된것이 어떤 천부의 재간때문이 아니라는것을 너무도 잘 알고있었다. 한 인간의 심령에 깃든 악음을 귀중히 여겨주고 내세워준 위대한 품이 있어 오늘의 한규일이 있었다.

긴장한 자금문제와 함께 해외에서 활동하는 우리 문예인들을 표적으로 더욱 로골화되는 적들의 회유기만책동으로 실무대표단만 가기로 되였던 토론회에 윤이상음악단도 대동하고있었다.

김정일동지께서 적들의 책동이 아무리 우심하고 조건이 어렵다 해도 제국주의의 봉쇄와 압박을 박차고 인간적인것의 승리를 위해 돌진하는 조선의 기상을 장엄한 음악포성으로 세계만방에 시위해야 한다고 가르치시였던것이다. 진정 위대한 그이를 모시여 조선의 예술은 자기의 위용을 떨칠수 있다고 규일은 생각했다.

윤이상음악단과 함께 베를린에 도착한 대표단일행은 현대음악의 대가로 알려진 이미 작고한 윤이상선생의 조국에서 온것으로 하여 베를린예술계의 환영을 받았다.

이튿날부터 베를린예술대학에서는 베를린예술아까데미야가 주최하는 학술연구토론회가 진행되였다. 윤이상의 독특한 작곡기법과 동양식 현대음악양식의 론쟁에 중점을 두면서도 눈앞에 박두한 21세기의 음악을 론의하는 마당이였다.

윤이상에 대한 서유럽음악계의 관심은 호의적이였다. 현대급진파로 불리우는 유럽의 이름난 음악가들은 물론이고 로씨야의 전통음악가로 알려진 쇼스따꼬비츠나 스뜨라빈스끼의 숭배자들도 윤이상의 음악사적공적을 인정하며 민족의 넋이 살아있는 동양식 현대음악양식을 개척한 그에게 존경을 표시했다.

경상남도 충무의 비천한 선비가정에서 출생한 윤이상은 그 시절의 음악가들과 마찬가지로 눈물겨운 고학살이로 음악을 배웠고 일제를 반대하는 학생운동에 참가한것으로 일제경찰에 투옥되기도 했었다.

해방을 맞은 조국땅에서 나라와 민족을 위한 음악활동을 힘있게 벌리자던 그의 꿈은 미제의 남조선강점으로 찬서리를 맞았다. 끝내는 그자신이 저주로운 식민지땅에 침을 뱉으며 탈출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윤이상은 코대가 높은 서유럽음악계에 도전하기로 결심하고 빠리와 베를린, 윈을 경유하면서 당대의 이름있다는 작곡가, 연주가들과 친교를 맺었고 현대음악의 작곡법과 리론, 대위법을 직심스레 배웠다.

그후 타른슈타트의 현대음악강습회에 《7개 악기를 위한 음악》을 내놓아 파문을 일으켰고 유럽현대음악계에 혜성처럼 나타나 동양인음악가로서 두각을 나타냈다. 그 과정에 명예철학박사의 학위를 수여받았고 일약 함부르그와 베를린예술아까데미야 회원으로까지 추천되였다.

그러나 고국을 조국이라 이름하지 못하는 설음이 한뉘 그의 뒤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인생에 대한 허무감을 느끼게 했고 하여 윤이상은 민족최대의 숙원인 조국통일을 인생주제로 내세우게 되였다.

남조선괴뢰당국에는 이것이 달갑지 않은 골치거리였다. 《유신》독재로 세계정치사에 지울수 없는 얼룩을 남긴 박정희는 조국통일에 대한 음악가의 소원을 《리적》행위로 몰아붙이며 천만부당하게도 사형을 선고했고 그것으로 윤이상은 하많은 곡절을 겪어야 했다.

그의 애국애족의 음악활동을 높이 평가하고 민족의 자랑으로 내세워주신분은 어버이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이시였다.

평양에 윤이상음악연구소가 창립되고 1992년 12월 수도의 중심거리에 세계의 그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을 음악당이 세워진것을 두고 동포음악가들은 민족적긍지를 가졌고 외국의 음악예술인들은 부러움을 금치 못했다.

윤이상의 생존시에 한규일은 종종 그와 마주앉아 수난민족의 설음을 짓씹던 옛시절이며 그 시대의 음악가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군 했다. 그 과정에 그들의 친교는 더욱 두터워졌다.

그가 세상을 떠난지도 이제는 두해가 넘는다. 하지만 한규일은 윤이상음악당에 들어설 때마다 로년기에 이르렀을망정 왕년의 창작적열정으로 심신을 태우는 그를 보는듯 했고 민족의 얼이 배인 음악을 들으면서 그의 체취를 느끼군 했다. 이국땅에 와서도 규일은 오랜 벗의 숨소리를 듣는듯 하여 마음이 즐거웠다.

한규일은 일행을 찾아오는 서유럽의 음악가들을 기꺼이 맞아주며 평양에서 진행하고있는 윤이상음악에 대한 연구활동과 정기음악회의 면모에 대해 알려주었고 미국의 대조선고립압살책동에도 굴하지 않고 인민군공훈합창단의 군가에 맞추어 혁명의 노래를 부르며 전진하는 조선의 현실에 대하여 설명해주었다.

서방의 음악가들은 미국과 서방의 가혹한 제재로 하여 아비규환의 수라장으로 화했다는(서방의 표현을 빌면) 평양에서 워싱톤을 목표로 우렁찬 군가포탄을 날려보내는것이 놀랍다고 하면서 지어 의혹까지 표시했다. 생존권이 위협당하는 사람들에겐 음악에 관심할 여유가 있을수 없다는것이였다. 음악에 정치가 개입되면 순수 음악으로서의 가치를 잃는것이 아닌가고 암시적인 물음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었다.

규일은 서방의 페쇄적이고 편견적인 선전이 수많은 사람들의 눈을 멀게 하고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인식하며 당에서 왜 윤이상음악단을 꼭 동행하도록 조치를 취했는가를 다시금 페부로 절감할수 있었다.

조선의 윤이상음악단 연주회가 진행된다는 소식이 석간신문에 실리자 숱한 음악애호가들이 앞을 다투어 공연관람을 신청했다.

음악회를 관람한 시민들은 열광적인 환호를 올렸다. 신의 나라에서 온 신의 음악을 들었다고 저마다 엄지손가락을 쳐들었다.

이튿날 공연이 끝났을 때 극장주인이 웬 허우대가 큰 사람을 뒤에 달고 대표단 부단장인 한규일을 찾아왔다.

《로씨야음악가인데 당신들을 꼭 만나고싶다기에 데려왔습니다. 지금은 베를린필하모니에서 연주활동을 벌리고있지요.》

극장주인은 소개비를 푼푼히 받았는지 몹시 친절했다.

예순고개를 갓 넘겼을 등이 구부정한 로씨아인이 반가운 웃음을 지으며 규일에게 손을 내밀었다. 규일은 그가 퍽 낯익어보였다.

《한선생, 우린 평양에서 상봉한적이 있지요? 여전하시군요.》

그제야 생각났다. 1980년대말 이전 쏘련의 붉은군대협주단의 한성원으로 우리 나라를 방문하였던 지휘자 겸 작곡가인 쎄르게이 쎄르게예위치 쥬보브낀이였다. 규일은 그와 인사를 나누며 동행한 대표단성원들에게 소개했다.

줄무늬간 구식외투를 걸친 쥬보브낀은 나이에 비해 퍽 겉늙어보였다. 본시 쾌활한 슬라브족의 기질을 타고나서 술도 어지간히 마시고 롱담도 곧잘하는 사람으로 알고있었는데 몇년안팎에 생활세파에 부대낀 늙은이처럼 보이는것이 동정을 자아냈다. 축 늘어진 눈거죽밑에 구슬픈 음영이 떠돌았다.

이전 쏘련의 유명한 작곡가 쇼스따꼬비츠의 제자인 그는 그네쉰음악대학시절부터 군가연주에 전념하면서 수십년간을 이름있는 군대예술단체들에서 음악활동을 해온 이전 쏘련음악계에서도 자기주장이 강한 음악가였다.

외동딸에게 음악적재능을 넘겨주는것이 인생의 락이라고 했다. 그래서 규일을 처음 만났을 때 레나슈까라는 미려한 용모를 가진 눈이 새파란 딸의 사진까지 보여주면서 어린 나이에 헨리국제피아노콩클이라든가 로마국제콩클에 입선한 사실을 거들어 한바탕 자랑했었다. 그러나 베를린에서 만난 그의 모습은 그때와 달리 너무도 초라했다.

규일은 쥬보브낀과 함께 음악강당곁에 자리잡은 자그마한 매점으로 향했다. 음악애호가들의 주머니를 털어내는 간이매점답게 탁이며 의자, 무리등의 모든 장식이 음악기호로 이루어져있었다. 곁에서는 괴상한 몸차림을 한 남녀청춘들이 란잡하게 끼고돌며 광적인 입맞춤을 퍼붓고있었다.

한규일과 쥬보브낀은 커피잔을 앞에 놓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베를린장벽이 무너진 뒤로 세계정치정세는 크게 흔들렸지요. 쏘련이라는 거대한 사회주의제도가 붕락되는 소리에 온 행성이 소란해졌습니다. 우리 로씨야에선 자본주의오물이 범람하면서 세계관이며 가치관이 다 달라졌습니다. 서방이 준다던 자유와 문명은 혹심한 인플레와 빈부격차를 초래했고 인간들을 히스테리환자로 만들었지요.

귀여운 딸에게 미래를 의탁했던 이 쥬보브낀도 집에서 쫓겨나 거리를 방황하다가 다행히 옛 지기들의 도움으로 베를린필하모니에 들어올수 있었답니다.

아시겠지만 순수 음악을 위한 교향악단으로서 뉴욕필하모니나 빠리음악대학 관현악단, 쾰른 귀르체니히 관현악단과 함께 오랜 력사를 자랑하는 세계적인 악단입니다.》

그의 어조에는 무엇인가 자기를 시위하려는 억지스런 색채가 비껴있었다.

《레나슈까는 어떻게 되였는가요?》

쥬보브낀은 습관적으로 두팔을 쩍 벌려보이며 슬픈 기색을 지었다.

《돈의 노예가 되였지요. 코카인에 정신이 팔린 놈과 싸고돌더니 인차 리혼하고 집은 저당잡히고… 허, 지금은 나이트클럽에서 류행가를 부르고있습니다. 워드까에 취하다못해 코카인에 육체까지 말아먹었습니다. 정신병자들의 무리속에서 온전한 사람으로 산다는것자체가 모순이지요.》

쥬보브낀이 흐릿한 눈을 치뜨며 한규일의 얼굴을 뜯어보았다. 서글프게 웃었다.

《선생은 아마 저에게 한때 용력이 넘쳐나던 붉은군대협주단에 대해서 묻고싶을겁니다.》

아닌게아니라 유진수와 이야기를 나누며 그에 대한 소식을 몇마디 얻어들었던 규일이로서는 퍽 알고싶은 문제였다. 고개를 끄덕이는것으로 수긍했다.

《힘들게 운영되지요. 국방성에 돈이 없다나니 숱한 실업자들이 나처럼 팔려가고있습니다. 난파선에 오른 사람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그런데 듣자니 당신들의 군대협주단은 전성기를 맞이하더군요.》

한규일은 또다시 고개를 끄덕이는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라지오에서 당신들의 인민군공훈합창단노래를 들었습니다. 조만간에 조선은 그 합창단노래로 행성을 점령할것 같습니다. 그러나… 됐습니다.》

쥬보브낀은 맥없이 한손을 내저으며 커피잔을 입술에 댔다.

《한규일선생, 이번에 당신들의 음악회를 보았습니다. 한마디로 감동되였습니다. 미국은 북조선이 조만간에 겁을 먹고 로씨야처럼 붉은 기발을 내리울것이라고 떠드는데 당신들의 노래소리는 더 높아지는군요. 그러나 음악적인 제스츄어라고 할는지, 어떤 이데올로기를 고취하는것에 대해선 불만입니다.》

그답지 않은 말에 규일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세월이 어떻게 변했든지간에 그는 이전 쏘련의 붉은군대협주단 작곡가였던것이다.

《자랑은 아니지만 사실 베를린필하모니와 같은 일류급의 악단에서 연주활동을 한다는건 대단한 일입니다. 일생의 호화생활을 기약하는 돈을 의미하지요. 알겠습니까? 자기를 지키고 가정을 내세우며 명성을 떨치게 하는 돈이 곧 인생의 목표가 아니겠습니까. 난 돈이 없어 예까지 굴러온 사람입니다. 돈이 없다면 음악가의 명성이 다 뭐겠습니까.》

규일은 사람이 그렇게도 변할수 있다는것이 놀라와 아무 응대도 못하고 그를 응시했다. 속에서 역스런 감정이 치받쳤다.

《지나쳤다면 용서하십시오. 하지만 북조선이 고난을 겪고있다는건 누구나 아는 사실입니다. 정부가 관심한다 해도 생존의 위협을 당하는 극한상황에서는 음악이 아니라 울부짖음이 나와야 합니다. 배고픈 사람에게야 먹을것을 주는게 마땅하지 않을가요? 군가를 사랑했던 로씨야의 음악가로서 고백하는 말입니다. 나를 보십시오, 나를…》

《그럼 당신은 오늘 우리의 음악회를 보면서 무엇을 생각했소? 동정을 바라는 약자의 울부짖음으로 보았소? 혹은 돈을 바라는 구걸자의 호소라고 생각했소?》

너무도 단도직입적이여서 쥬보브낀은 얼른 대답하지 못하고 어깨만 으쓱했다.

《글쎄… 처음엔 심상해서 보았습니다. 그러나 점점 심취되였지요. 나의 심내에서 숨죽이고있던 무엇인가 꿈틀거리면서 살아나는것 같았습니다. 아니, 내 말을 막지 마시오. 당신들이 연주한 관현악 <청산벌에 풍년이 왔네>는 세계적인 걸작입니다. 훌륭합니다.

난 윤이상음악단의 공연을 보면서 평양에서 떠드는 공훈합창단의 노래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워싱톤이 북조선이 매일마다 발사하는 서른발이상의 음악미싸일에 만신창이 되도록 얻어맞는다는 신문기사가 진실이라는것을 느꼈지요.》

한규일을 알아본 사람들이 엄지손가락을 내보이며 수표를 요구했다.

규일은 그들이 내미는 소책자나 오선지에 기꺼이 수표를 해주며 쥬보브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음악에 열광적인 베를린시민들이 당신들의 음악에 반한건 사실입니다. 당초에 여기 사람들은 명예를 귀하게 여겨서 극장을 함부로 내주질 않지요. 부럽습니다. 하지만 얼마나 오래 가겠는지…》

한규일은 그의 누르데데한 얼굴을 쏘아보았다. 가벼운 실소가 그의 회색에 가까운 눈동자에 비껴있었다.

《쥬보브낀선생은 음악관을 전과 달리하는가요? 례하면 음악을 인간의 관능에 복종되는것으로 인식하고있는지?…》

《글쎄요, 나도 모르겠습니다.》

규일은 인생의 좌절감에 부딪쳐 방향타를 잃은 그에게 무엇을 어떻게 설명할지 얼른 궁리가 트이지 않았다.

《쟈즈나 록크와 같은 리듬에 정신을 쏟아붓는 서방문화의 향유자가 되였다면 우린 크게 상대할 필요가 없다고 보오.》

《성급하군요. 그런건 나의 음악정신과는 무관합니다.》

쥬보브낀은 눈을 쪼프리며 애매몽롱한 웃음을 지었다. 한김 빠진 커피잔을 쳐들며 코를 벌름거렸다.

《난 별로 현학적인 이야기를 하고싶지 않습니다. 어쨌든 음악이란 인간의 생활에 유용하게 리용되면 그만이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또 순수 음악소리인가요? 그건 하나의 유희나 오락에 불과할뿐이며 인간의 건전한 사상미학적활동에 저해만 줄뿐이요. 인간의 참된 생활과 미래 그리고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데 이바지할 때만이 음악은 가치가 있는거요.

음악은 어떤 리론이 아니라 우리의 생활 그자체요. 나는 래일 이 문제를 가지고 연단을 빌릴가 하는데 당신도 바란다면 참가할수 있을거요.》

쥬보브낀은 연신 코를 흠씰거렸다.

《그러지요. 한가지 물어봅시다. 북조선에서는 군대를 전면에 내세우지요? 그래서 군가를 일러주는것이고. 이전 쏘련에서 군가를 일러주던것과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국민의식이 반영되였으니깐요. 다시 말하면 군대를 위해 만들어진 군가가 정치에 복종된다는 의미인데…

파괴하고 마스는 포탄이나 총같은것이 부드럽고 따뜻한 정서와 융합될수 있을가요? 군가에 담겨진 전국민적인 정서를 어떻게 리해할지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도전기가 느껴지는 말이였다. 규일은 그의 회색눈을 면바로 견주었다.

《놀랍구만. 그래도 한때는 사회주의쏘련의 군가를 사랑했겠지요? 쥬보브낀, 우리 군가에는 바로 우리의 아이들과 녀성들까지도 바라는 그런 념원과 리상이 그리고 행복에 대한 기원이 깃들어있소.》

《어쨌든 서방의 견지에서 보면 북조선은 불가사의한 나라입니다.》

쥬보브낀은 헛된 손동작으로 벗어진 이마를 문다지며 빈 웃음을 지었다. 커피를 한모금 들이키며 한규일을 일별했다.

《하지만 아직도 한켠에선 당신들과 같은 조선사람들이 품팔이연주를 하면서 사람들의 동정을 사고있지요.》

규일은 도발이 아닌가 생각했다. 쥬보브낀의 어조에는 자기의 리념을 너무도 쉬이 부정하는 색다른 음영이 비껴있었다. 그자신이 베를린필하모니에서 연주활동을 한다지만 누군가의 사촉을 받았는지 알수도 없거니와 그의 정체도 애매몽롱했다.

《사실 내가 규일선생을 찾아온것은 음악가로서의 호기심도 동했지만 한 조선처녀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서였습니다. 나와 함께 뉴욕필하모니에서 연주활동을 하던 처녀인데 악장과 싸움을 하고 악단을 뛰쳐나갔지요. 내가 평앙과 인연이 있는줄을 어떻게 알았는지 나를 찾아와 한규일선생을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하더군요.》

《나를요?…》

한규일은 미덥지 않은 소리로 외우며 그 녀자가 어떻게 자기를 아는가고 물었다.

《음악애호가들이 다 알고있는 당신의 경력인데 왜 그 처녀라고 모르겠습니까. 그런데 문제는 그 녀자가 당신을 만나고싶다면서도 먼저 찾아가지 않겠다는겁니다. 30살을 넘겼는데 아직 처녀의 몸으로 자기를 지켜내지요. 어쩌면 용타고 할지, 동정이 간다고 할지… 자존심이 여간 아닙니다.》

어떤 동포처녀이기에 자기와의 면담을 기대하는지 호기심이 동했다.

《조선처녀라니 한번 만나봅시다 》

《그럼 래일 만나는것으로 약속하겠습니다.》하면서도 쥬보브낀은 무엇이 미덥지 못한지 자꾸 어깨를 으쓱이며 코마루를 찡그렸다.

《음악정치라… 글쎄 당신들 나라에서 울리는 군가에 마음이 동하는건 사실이지만 우리 로씨야의 현실이 또다시 재현될가봐 겁이 납니다. 인간이란 희망이 허물어지면 인생자체가 허무해지지요. 당신은 내 말을 다는 리해 못할겁니다.》

그는 한손을 들어 인사를 보내고는 허청허청 걸음을 옮겼다. 술에 취한 자세였다.

 

다음날 한규일은 일정대로 베를린예술대학 음악강당에서 우리 당이 펼치고있는 음악정치에 대해 강의를 하고나서 쥬보브낀을 따라섰다.

을씨년스런 날씨였다. 이국의 거리를 내닫는 황량한 가을바람이 쓸쓸한 이국의 정서를 자아내며 떠나온 조국에 대한 그리움을 더해주었다.

경찰들이 드문히 늘어선 거리로 한 로조단체의 시위대렬이 흘러가고있었다. 프랑카드를 들긴 했어도 맥없이 걸음을 놓는 모양이 고인을 배웅하는 장례행렬처럼 느껴졌다. 쥬보브낀이 로동조건과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뻐스운전사들이라고 설명했다.

일행을 태운 뻐스는 카를리브네흐거리를 지나 브란덴부르그통로에 들어섰다. 티에르가텐공원이라는 명판이 붙은 정류소에서 내렸다.

철울타리를 두른 공원의 보리수나무밑에 각이한 차림새의 몇몇 바이올린연주가들이 모여서서 브람스의 협주곡 《마쟈르무곡 5번》을 연주하고있었다. 차플린처럼 이상한 차림새를 한 중년사나이도 있고 머리를 길게 땋아내린 새파랗게 젊은 청년도 섞인 괴이한 연주단체였다.

소풍하러 나온 늙은이들이 관람자의 전부였다.

윤기나는 긴 머리칼을 잔등에 드리운 세련미를 갖춘 녀인이 협주곡연주를 지휘했다. 몸에 배인 음악률동으로 연주를 이끌었는데 선이 곧은 얼굴과 굴곡이 완만한 몸에 넘쳐나는 젊음은 아직 처녀의 몸이라는것을 암시했다. 했으나 그의 지휘와 연주에서는 어딘가 슬픔이 엿보였다.

얼마 안되는 지페장들이 나무밑의 둥근 쇠통에 덧쌓여져있었다. 얄궂은 회오리바람에 지페장들이 들썽거리더니 공중에 휘말려올랐다. 처녀의 눈길이 피끗 그쪽으로 향해졌으나 연주는 계속되였다.

연주지휘를 마친 처녀가 바이올린을 쥐더니 독주를 시작했다. 이딸리아의 니꼴로 빠가니니의 바이올린협주곡 1번이였다. 감정이 풍부한 선률이 활에 묻어나오며 빠르고 풍만한 정서로 자연을 그려보였다.

잽싸게 활을 쓰며 괘에 고인 턱을 약간 들었다. 낯선 관람자들을 보는 처녀연주가의 눈에서 이상한 광채가 번득였다. 그 순간에 규일은 처녀를 어디선가 본듯 한 느낌이 들었다. 가슴이 섬찍했다. 분명 낯익은 모습이였다. 왜서인지 피가 서서히 끓어올랐다.

(아니, 잘못 보았겠지. 그럴수 없어.)

규일은 혼자소리로 중얼거리며 쥬보브낀에게 처녀에 대해 물었다.

《한때 윤이상선생과 련계가 있은것으로 알고있습니다. 이름이 민아리랑이라고 어쩌면 나와 처지가 비슷하다고 할가요. 그래서 서로 흉금을 터놓군 합니다.》

《민아리랑?!…》

아리랑이라는 이름에 하많은 사연이 담겨져있는듯 했다.

그런 가위에 연주가 끝났다. 동포녀성에게 다가간 쥬보브낀이 눈인사를 보내며 동행한 일행을 소개했다. 그가 한규일이라는 이름을 불렀을 때 처녀의 얼굴이 해쓱해졌다.

《연주재간이 대단합니다.》

규일은 알수 없는 묘령의 처녀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것이 어딘가 석연치 않았다.

《어제 선생님들의 음악회를 보았어요. 감탄했습니다. 하지만 절 너무 동정하지 마세요. 자연속에서 연주하는 재미도 있답니다. 순수한 자연미는 바로 그속에서만 느낄수 있으니깐요. 사실 전 한선생님을 썩 이전부터 알고있답니다.》

목소리는 여무지였으나 서툰 조선말이고보니 어색하게 들렸다. 낯익어보이는 얼굴이 무엇인가를 암시했다. 한규일은 밤도깨비에게 홀린듯 한 기분이였다.

《조선사람으로서 호감이 가는구만. 나에게도 손녀가 있소. 성악을 전공하고있지. 이따금 바이올린도 연주하는데…》

처녀의 눈빛이 날카로와졌다. 랭랭한 웃음이 도두룩한 입술언저리에 찬서리처럼 매달렸다.

《전 선생님에게만 관심이 있답니다.》

도전적인 어조였다. 규일의 곁에 다가선 쥬보브낀이 처녀의 무례한 행동에 사뭇 당황해하며 어깨를 으쓱했다. 동행한 대표단음악가들도 놀란 기색이였다.

《모르겠소. 내가 어떻게 되여 처녀의 관심을 끌게 되였는지… 음악론을 벌리고싶다면 래일 강당에서 만납시다.》

《한가지만 명백히 하고싶은것이 있어요. 선생님은 해방전에 조선땅을 떠나 중국대륙에서 연주활동을 벌린적이 있지요?》

《!》

규일은 가슴이 쿵 내려앉는 소리를 들었다. 오연한 자세의 처녀를 유심히 살폈다. 누구인가를 련상케 하는 모습이 점점 더 세차게 체내의 피를 설레이게 했다.

《그런적이 없다면 구태여 만날 필요가 없어요.》

《있소.…》

《선생님은 정렬지라고 아시지요?》

규일은 비칠했다. 관자노리가 펄떡거렸다. 그렇다. 처녀의 모상이 그토록 낯익어보인것은 정렬지의 얼굴이 그 너머로 비껴왔기때문이였다.

다시 치녀의 얼굴을 여겨보았다. 갈데없는 렬지의 눈매였다. 넋으로 떠돌던 영령이 문득 눈앞에 나타나 자기를 놀리는것 같았다.

렬지와 헤여진지도 어언 50년세월이 넘는다. 세상에 살아있는 녀자라고 믿을수 없어 추억속에 묻어두고 명복을 빌군 하던 그의 이름을 낯선 이국땅에서 듣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다.

렬지에 대한 추억을 더듬을 때마다 눈보라치는 만주의 산간오지에 그를 버린듯 한 자책감을 뼈아프게 느껴야 했던 규일이였다. 자기의 사랑마저 지키지 못한 식민지청년의 울분을 묵새길수 없어 땅을 치며 눈물을 휘뿌렸었다.

재먼지가 일던 다 타버린 귀틀집, 속을 메스껍게 하던 피비린내, 눈을 뜨고 숨을 거둔 시체들, 부녀자들을 다 끌어갔다고 중얼거리던 한절반 정신잃은 늙은이… 처녀의 분신인양 재먼지속에서 찾은 현줄이 그때 산전막로인과 함께 얻어온 낡은 소리통에 업힌채 누군가의 손길이 닿기를 기다리며 지금껏 규일의 인생길을 따르고있다.

《그러니 그 사람이 살아있다는 소리요?》

《그분의 부탁을 받았답니다. 그래서 선생님을 만나고싶었어요.》

민아리랑이 몸을 옹송그렸다.

《처년 누구요? 혹시…》

《후에 말씀드리지요. 지금은 연주를 해야 합니다.》

처녀는 우두커니 서있는 연주가들쪽으로 몸을 돌리더니 신호를 주었다. 다시 기악곡이 울리기 시작했다.

규일은 안절부절하며 지휘봉을 젓는 처녀를 바라보았다.

정렬지… 어찌 그를 잊을수 있단 말인가. 죽었다고 단정했던 그가 살아있다는 이 놀라운 소식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음악연구소 부소장이 한규일의 얼굴색이 창백해지는것을 보고 빨리 돌아가자고 했다.

규일은 연주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드디여 연주를 끝냈을 때 규일은 자신심없는 걸음으로 처녀에게 다가갔다. 래일 꼭 강당에 오겠는가고 물었다.

《네, 그때 다시 만나요. 지금은 바빠요.》

처녀가 랭랭한 어조로 대꾸했다. 그것이 전부였다.

규일은 밤새껏 어떤 알수 없는 악몽에 시달리다가 아침에야 겨우 안정을 얻을수 있었다. 처녀의 얼굴모습이 꿈에서까지 나타나며 괴롭혔다. 황혼의 미소가 어린 공원의 락엽이 구울고 메마른 숲을 들때리는 바람소리도 귀가에 소연했다.

어딘가 도전적인데가 엿보이던 차거운 눈매, 정렬지와 어떤 관계에 있는 녀자일가? 왜 그토록 낯익어보이고 또 피를 덥히는것일가?…

 

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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