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7 회)

36

 

유진수는 조혁이가 부서를 통해 예술위원회에 제출한 작품을 대하는 순간 성공이라는 짜릿한 쾌감을 느꼈다. 조혁이가 창작한 《최전연의 달밤》이라는 서정가요였다.

노래는 낮이나 밤이나 멀고 험한 전선시찰의 길에 계시며 조국의 안녕을 지켜주시는 최고사령관동지에 대한 이 나라 천만군민의 간절한 그리움을 풍부한 형상으로 펼쳐보였다. 야전승용차의 불빛이 전선길에 드리운 달빛에 비껴 우리의 마음에 흘러든다는 시어도 좋았고 달빛에 어린 그리움의 세계도 진실했다. 전투적이며 장중한 류형의 노래만을 중시하던 조혁이로서는 이례적이였다.

조혁의 성과를 두고 예술위원들은 물론 다른 창작가들도 아낌없는 축하의 인사를 보냈다.

창작집단에 새로운 경쟁열풍이 일어났다. 가수들과 연주가들도 세계적인 군가집단의 당당한 성원이 되자는 높은 목표를 내걸고 기량훈련에 열중했다.

그런데 돌연 비상사고가 생겼다. 경제부문일군들을 위한 공연이 예견치 않게 진행되였는데 아침에 출근한 서윤호가 행처없이 사라졌던것이다. 성악과에서 야단법석하며 찾았으나 공연이 끝나도록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다른 성악배우가 그를 대신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유진수는 성악과장을 다불리며 규률이 없는데 대해 추궁했다. 자의대로 화선을 떠난 군인의 행위가 어떤것인가에 대해 인식시키며 단단히 문제를 세워야 한다고 못박았다.

서윤호는 저녁무렵이 되여서야 나타났다. 공연이 진행되였다는 소리에 얼굴이 단박 새까매졌다. 자기의 자유주의적인 행동이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가를 너무도 잘 아는 서윤호는 성악과장의 추궁을 고스란히 받아들였고 그 길로 당위원회를 찾아갔다. 차마 입밖에 낼수 없는 가정사때문에 잠간 시간을 낸다는것이 늦어졌다고 토설하며 그 어떤 용서도 바라지 않겠다고 기가 질린 어조로 반성했다.

다음날 단장사무실에서는 서윤호의 문제를 론의하는 집행위원들의 모임이 진행되였다.

서윤호의 정신상태나 생활문제, 장기질병으로 보아 그에게 더는 아량을 보여서는 안된다고 단정한 유진수는 모임에서 자기의 견해를 명백히 밝혔다. 신성한 집단의 명예에 오점을 찍은것도 그렇지만 당의 령도적권위를 훼손시킨 행위는 무엇으로써도 보상할수 없다고 그루를 박았다.

분위기는 무거웠다. 유진수의 견해에 대해 누구도 그르다고 생각지 않았다. 그렇다고 서둘러 응하거나 반대하지도 않았다.

리병삼정치부장이 무겁게 한숨을 내그었다.

《한 인간의 운명문제인데… 한번 더 심사숙고해보는게 어떻소?》

징치부장의 말에 고개를 짓숙이고있던 집행위원들이 언뜻 눈길을 들어 유진수를 바라보았다.

《전 원칙과 인정을 갈라보아야 한다고 봅니다.》

유진수는 될수록이면 침착하려고 애썼다.

《…전에도 당조직앞에서 반성했지만 저는 서동무의 집에 갔다가 만나지 못한데 대해 잘못을 느낍니다. 그러나 오랜 시간을 복도에서 기다리다가 비칠거리며 올라오는 그 동무를 보았을 때의 저의 심정에 대해선 리해하리라 봅니다. 그것이 바로 서윤호동무의 다른 얼굴이였고 그래서 어제와 같은 사고가 생긴것입니다. 한마디로 혁명화가 되지 못하였으며 자기를 반성하려는 의지가 없습니다.》

리병삼은 사업수첩을 다독이며 생각에 잠겼다. 이윽해서야 몸을 일으켰다.

《물론 그 동무가 공연에서 빠진 문제를 두고 여러 각도에서 분석할수 있습니다. 그럼 서동무가 그렇게 되도록 이제껏 우리는 무엇을 했는가? 달리 말하면 그가 과오를 범하도록 못 본체 하고 은근히 떠밀었다는 소리나 같은데 당에서는 바로 그들의 운명을 책임지고 끝까지 이끌어주라고 우리의 어깨에 별을 달아주고 직무를 주었습니다. 서윤호동무와 다시 담화를 하고나서 이 문제를 토의했으면 합니다.》

전상근단장도 정치부장의 의견에 반대없다고 응수했다.

모임이 끝나 단장사무실을 나설 때 정치부장이 유진수를 불렀다.

《부단장동무, 다시한번 심사숙고하기요.》

《예, 하지만 전 원칙에서 탈선될가봐 걱정입니다.》

전상근단장은 못 들은척 하며 사업수첩에 무엇인가를 부지런히 쓰고있었다.

리병삼이 너그럽게 웃었다.

《신경이 좀 예민해진것 같은데… 부단장동무, 일하자는 욕심은 좋지만 너무 날을 세우다나니 옆사람들이 긴장해하고있소. 힘들수록 여유를 가지는게 필요하다고 보오. 서윤호동무를 다시한번 만나보오. 부탁이요.》

사무실로 돌아온 유진수는 자기의 행동을 돌이켜보았다.

정치부장의 말이 귀전에서 맴돌았다. 아닌게아니라 이즈음에 와서 자기자신이 달라지고있다는 사실에 류의하지 않을수 없었다. 높은 목표를 관철하자니 신경이 날카로와지고 많은 경우 자기 성미를 그대로 드러내보일 때가 드문했다. 일을 하자니 어쩔수 없다고 자기를 위안했다.

하지만 오늘 일은… 용납할것 같지 못했다. 만약 최고사령관동지를 모시고 진행한 공연이였다면 어쩔번 했는가.

그것이 곧 자신의 사업에서 나타난 공백이고 허점이라는것을 념두에 둘 때 유진수는 원칙을 양보할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날 서윤호를 만났어야 했는가? 그러나 거나해진 그와 무슨 말을 한단 말인가. 정면과 다른 그의 리면에 대해서?… 아니라는것을 알면서도 웃으며 이야기한다면 그야말로 위선이 아닌가.)

아무쪼록 유진수는 고막을 때리던 정치부장의 말을 부인하고싶었다.

문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대답하기도 전에 문이 열리며 설명순이 들어섰다.

《부단장동지, 서윤호동무를 내보내기로 했는가요?》

유진수는 기분이 언짢아졌다.

《예, 그렇게 상정됩니다.》

귀청 따갑게 울어대는 구내전화기에 시름겨운 시선을 주던 진수는 송수화기를 들었다놓았다.

설명순이 의자를 끄당겨앉으며 이마전에 흩어진 성긴 머리칼을 성급히 손으로 쓸어넘겼다.

《서윤호동무야 오래동안 합창대를 떠나지 않고 성실히 복무해온 가수가 아닙니까.》

웬만하면 설명순과의 관계에서 큰 마찰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진수는 그가 자기 일에 지나치게 간섭하는것이 안타까왔다.

문득 설명순이 생일상에 차렸던것이라면서 빵과 청량음료를 가져왔던 일이 생각났다. 시간을 내지 못하여 초청을 받고도 가지 못했지만 얼굴이 뜨거웠다. 생일을 축하해주지 못한데 대해 사과했다.

《바쁠 때가 좋지요. 난 부단장동지를 리해합니다.》

설명순은 그런 음악가였고 그래서 존경이 갔다. 그러나 사업권내에 뛰여드는것만은 반갑지 않았다.

《실장동지, 터놓고 말합시다. 난 서윤호동무에게 기회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량심적으로 무대에 설것도 권고했구요. 그러나 서윤호동문 그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유진수는 온화한 웃음을 얼굴에 그리며 손을 꼭 맞잡았다.

《그 동문 창조형상때문에 고민한것이 아니라 어떤 자체만족을 찾아 헤매였습니다. 이렇게 앞뒤가 다르다나니 이번과 같은 과오를 범하게 된겁니다. 옛 공적이 오늘날의 자기 존재를 담보하는 리유로는 될수 없습니다. 우린 군인들입니다.》

진수는 목소리가 높아진다는것을 느끼며 말을 뚝 끊었다.

설명순이 불안하게 엉치를 들썩거렸다.

《하지만 피치 못할 리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어조에서 불만이 느껴졌다.

《서동문 누구인가 소개해준 녀성을 만나러갔댔다는데 그 나이에 녀자를 본다는 소릴 하기 창피해서 아프다는 핑게를 댔더군요. 공연이 예견된줄 알았더라면 가지 않았을겁니다.》

유진수는 목이 말랐다. 보온병의 물을 고뿌에 따라 쭉 들이키고는 설명순에게 내밀었다. 설명순이 거절하자 그 물마저 다 마셔버렸다.

그렇다면 리해할수 있었다. 그러나 성격이 다른 공연이였다면 그때에도 용인할수 있을가?…아무런 책임감이 없이 사람들을 동정할수 있고 그에 대한 의견을 내비칠수 있는 설명순실장이 부러웠다. 그래서 자기와 다른것이다. 그래서!…

《만약 나도 실장동지의 위치에 있다면 값싼 동정으로 그를 위해줄수 있습니다. 아니, 그게 응당하지요. 그러나 저는 당앞에 공훈합창단의 예술사업을 책임지고있습니다. 변죽을 치면 복판이 운다는 성구를 그대로 외우는건 아니지만 다른 동무들에게도 경종을 울려야 한다고 봅니다.》

그것으로 대화는 끝났다.

설명순이 나간 뒤에도 유진수는 오래동안 한자세로 앉아있었다. 속이 개운치 않았다.

저녁총화를 짓고나서 유진수는 리병삼정치부장을 찾아갔다.

무슨 책인가 열심히 들여다보던 리병삼이 반기는 기색으로 그를 맞이했다. 그가 덮는 책을 얼핏 여겨보니 《음악예술론》이였다.

《회의때 목소리를 높여서 미안하오. 세포에서 비판받겠소.》

리병삼이 온후한 목소리로 말하며 사무탁의 다른 자리로 옮겨앉았다.

유진수는 아무래도 자기는 정치부장처럼 마음이 너그러워지긴 글렀다고 생각했다.

《정치부장동지, 방금전에 설명순실장이 찾아왔댔습니다. 서동무때문에 왔더군요. 서윤호동무가 새 로친을 만나러간줄을 그래서 알게 되였습니다.》

《우리가 좀더 관심해야 하는건데… 그래 부단장동무는 어떻게 생각하오?》

진수는 침묵을 지키며 코숨을 길게 내그었다.

의자소리를 내며 일어선 리병삼이 책상둘레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

유진수앞에서 멈춰섰다.

《부단장동무, 서동무의 제대문제를 잠시 뒤로 미루고 료양치료를 받게 해서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건전해질수 있게 도와주었으면 하는데 어떻소?》

유진수는 기계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정치부장을 찾아온 목적과는 달리 어차피 뒤로 물러설수밖에 없다는것을 느꼈다.

《서동무의 문제를 두고 좀 생각해보았습니다. 지금 우리 공훈합창단이 점점 높은 요구를 제기하다보니 힘들어하는것만은 사실입니다.》

문득 뇌리에 갈마드는 생각이 있었다.

《혹시 서동무를 인민군예술학원 성악교원으로 돌리면 어떻겠는가 하는겁니다. 본인을 위해서도 좋을것 같고 또…》

뒤말을 잇기가 힘들었다. 집단이 짐을 덜 지게 될것같다고 툭 빠개놓고 말하고싶지만 무엇때문인지 저어하게 되였다.

리병삼의 우묵한 눈이 생기를 띠였다.

《성악교원이라.… 좋을것 같구만. 공연활동때문에 늘 들볶이기보다는 나을것 같소. 그리구 본인이 일정한 무대경험도 있으니 학생들을 키우는데 도움이 될것 같구만. 부단장동무, 고맙소.》

그는 진심으로 반가와했다. 한 인간의 운명을 가벼이 대하지 않는 정치일군을 보게 되니 유진수는 마음이 든든해졌다.

《단장동지와도 그렇게 토론하기요. 본인의 생각이 어떻겠는지? 반대할것 같지는 않구만. 간부과에 상정시킵시다. 참, 나도 한가지 부탁이 있는데…》

리병삼은 여유있는 미소를 지으며 손마디를 딱딱 소리나게 꺾었다. 그 소리가 별스레 유진수의 고막을 때렸다.

《대연동무 말이요, 그 동무가 악기제작에서 손을 떼고보니 엉망이요. 일이 영 굼뜨게 진행되는데 대연동무를 대신하고있는 건물지도원이 대연동무와 며칠만 좀 토론하게 해달라고 성화를 먹이고있소. 화평에서도 대연동무만 대상하겠다는거요. 시간을 좀 줍시다.》

《정치부장동지, 저- 그것만은 좀 힘들것 같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공연활동이 긴장한것만큼… 잘 좀 봐주십시오.》

유진수는 몸을 궁싯거리며 가벼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군인들속에서 민족악기를 장려할데 대한 위대한 장군님의 말씀을 바로 자기가 해야 할 과제로 내세운 대연동무인데 우리가 그 마음을 알아줘야지 않겠소?》

《저도 모르는게 아닙니다. 그러나 지금은… 이제 새 력량이 들어오면 그때엔 양보하겠습니다. 아예 시간을 뚝 떼주겠습니다.》

《할수 없구만. 하지만 솔직한 말로 난 대연동무에게 반했소. 사심이 없고 정열적이고…》

유진수는 후- 하고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정말이지 김대연이만은 호락호락 놓아주고싶지 않았다. …

다음날 아침 서윤호가 그를 찾아왔다. 밤사이에 눈확이 움푹 꺼지고 두볼이 꺼칠해진 모습이 동정을 자아냈다.

《부단장동지, 어제저녁 정치부장동지에게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부실한 놈을 도와주어서 감사합니다.》

서윤호는 웬일인지 한참이나 갑잘랐다. 눈길이 부딪치자 슬그머니 떨구었다.

《하지만 그만두기로 했습니다.》

《예? 그만두다니, 무슨 소리입니까?…》

《많이 생각해보았습니다. 이제껏 전 집단의 짐이였습니다. 언제부터인지 그렇게 되였습니다. 그래서 솔직한 말로 몇번이나 나갈것을 결심했다가 예술에 대한 미련때문에 마음을 돌려세우군 했습니다.

구실 못하는 저를 위해서 지휘성원들까지 집에 찾아오는데 이놈은… 마음편히 딸생일이라고 식당에 갔댔지요. 그때부터 이래서는 안되겠다고 채심했지만 이번과 같은 심각한 문제와 또다시 부딪치게 됐습니다. 이젠 정신마저 로쇠된것 같습니다. 더이상 관용을 바랄수 없지요.

예술학원?… 좋습니다. 그러나 합창대를 떠나서 예술학원에 갈수는 없습니다. 차라리 스스로 포기하는게 더 마음 편합니다.》

유진수는 어떻게 응대할지 몰라 관골이 두드러지고 머리칼이 희여진 그의 모습을 멍히 바라보았다. 한참만에야 정치부장이 아는가고 물었다.

《예, 방금전에 만났댔습니다. 이미 딸과 토론했으니 더이상 마음을 쓰지 마십시오. 전 고맙게 생각합니다.》

서윤호는 조용히 사무실을 나갔다. 서윤호가 서있던 문쪽을 지겹도록 바라보던 유진수는 가슴을 에이는 아픔을 느꼈다. 머리가 무겁고 기분이 울적해졌다.

전화종이 울렸다. 전상근단장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

《부단장동무요? 내게로 와주오.… 급한 일이 생겼소.》

《서윤호동무때문입니까?》

유진수가 급히 물었지만 대답이 없었다. 수화기에서 련속적인 통화신호음만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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