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0 회)

제 6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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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희푸름히 밝아올무렵이였다.

비물이 츠렁츠렁 고인 포전마다 붉은 기발들을 꽂아놓은 박수남은 수로뚝우에 올라선 방송선전차에서 마이크를 틀어잡았다

《큰물피해를 가시기 위한 전투에 떨쳐나선 명암리 농장원여러분! 쌀은 곧 사회주의라시며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우리 농촌들을 현지지도하시던 어버이수령님의위대한 헌신의 모습을 마음속깊이 간직하고 살아온 우리들이 아닙니까.

농업전선은 사회주의수호전의 제1선입니다.

오늘도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인민들의 먹는 문제를 푸시기 위하여 끝없는 현지지도의 길을 이어가고계십니다.

우리들의 정신력을 총폭발시킬 때는 왔습니다.

물길굴을 관통하기 전에는 조국의 푸른 하늘을 보지 말자고 웨치던 군인건설자들의 위훈이 오늘도 우리들을 부르고있습니다. 모두가 한사람같이 달라붙어 침수된 포전들의 물빼기전투를 와닥닥 끝냅시다!》

여기저기서 농장원들이 낫가락들을 높이 추켜들며 《끝냅시다!》하고 그의 호소에 열렬히 호응해나설 때 옥정국은 무릎까지 빠지는 논에 남먼저 들어섰다.

문득 수로뚝아래논에 서있는 정성희박사와 효정의 모습이 눈에 띄였다.

몸이 불편한 효정이 도대체 어떻게 여기에 나타났단 말인가?

순간 옥정국은 눈굽이 쩌릿해오는것을 느꼈다.

고맙다, 효정아.

최아바이네 둘째아들부부며 관리위원회성원들과 리당일군들 그리고 농장원들과 부대로력들이 와와 들끓어번지며 침수된 포전들을 꽉 채우고있었다.

무릎까지 올라오는 감탕속에서 벼단들을 끌어내는 그들의 모습은 흡사 적의 고지에로 육박해나가는 화선용사들의 모습을 방불케 했다.

옥정국은 인민군대지휘관처럼 앞장에서 전반적인 피해막이전투를 주도세밀하게 지휘하고있었다.

그러다 비물이 흘러내리는 얼굴을 손바닥으로 닦아내느라고 안경을 벗어든채 포전머리에 서있는 김선영에게 빨리 3작업반과 7작업반 탈곡장들에 가서 동가리를 치는 일을 봐주라고 큰소리로 지시했다.

불편한 몸으로 논판에 들어선 딸의 거동만 걱정이 가득한 눈길로 살피고있던 김선영은 그제서야 제 할바를 깨달은듯 서두르는 동작으로 자리를 떴다.

《관리위원장동지, 여긴 물이 너무 깊어서 벼단을 나르기 힘든데 어떡하랍니까?》

건너편 논배미에서 벼단을 나르던 채향이가 다기찬 목소리로 물었다.

채향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던 옥정국은 수로뚝밑에서 고인물빼기를 하는 방철갑이 눈에 띄우자 소리쳤다.

《저기 보수반장을 찾아가서 그 논배미에 고인 물부터 빼달라고 하시오.》

《알았습니다.》

채향은 물새처럼 비바람속에 날으듯 방철갑에게로 달려갔다.

잠시후 논물빼기를 하는 방철갑이네쪽에서 걸걸한 웃음소리가 터져올랐다.

(좋은 때거던.)

옥정국은 그들의 사랑이 자기가 바라는대로 참되고 아름답게 깊어가는것을 보며 흡족한 마음을 금할수 없었다.

낫을 든채 울렁거리는 마음을 달래며 뚝밑 수로에서 도랑을 째나가는 가래군들을 찾아간 채향은 가래장부인 방철갑이와 얼마간 떨어진 곳에 이르자 부러 딱딱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보수반장동무, 관리위원장동지의 지시를 전달하러 왔습니다.》

《어서 말하오.》

방철갑은 굵은 땀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얼굴에 피여나는 기쁨을 숨기지 못하며 채향을 정찬 눈길로 바라보았다.

《저 논배미에 고인 물부터 빼랍니다.》

채향은 자기가 벼단나르기를 하다 온 논배미쪽으로 손을 가리켰다.

《알겠소.》

방철갑은 시원스럽게 대답하더니 즉시에 청년들과 자리를 옮기려는 자세를 취했다.

채향은 돌아섰다.

《가만, 어딜 가오?》

방철갑이 눈섭을 찌프리며 물었다.

《동문 이걸 못 보오?》

그는 옆에서 가래줄을 당기던 청년을 가리켰다. 한눈을 찔끔 감는 반창의 얼굴을 건너다보던 청년이 팔목을 움켜쥐고 아부재기를 쳤다.

《아이구, 팔이야. 전번에 함마질을 하다가 다친 팔이 또 쑤시기 시작하누만.》

채향이 돌아다보니 뜻밖에도 그 청년은 예술소조책임자였다.

《채향동무, 이걸 좀 당겨주오. 난 아무래도…》

예술소조책임자청년은 그가 미처 어쩔 사이없이 가래줄을 넘겨주고 제방뚝을 향해 올려뛰였다.

《난 분조에 가야 해요!》

채향은 마지못해 받아든 가래줄을 금시 내팽개칠듯 한 자세로 새침하게 말했다.

《그 논배미야 바로 동무네 논배미가 아니요? 정 그렇다면 우리도 할수 없지.…》

채향은 하는수없이 가래줄을 당기지 않으면 안되였다.

방철갑이네가 파놓은 도랑으로 허리를 치던 논물이 서서히 빠지기 시작했다.

채향은 성수가 나서 벼단나르기를 하고있는 분조원들속으로 뛰여들었다.

입술을 옥물고 일에 열중하던 채향은 건너편 논배미에서 그들보다 훨씬 앞서나가고있는 옥정국을 넘겨다보며 입을 열었다.

《아이, 암만 애를 박박 써도 위원장동질 못 따라잡겠네.》

《우리 철진이 아버진 청년분조시절에 일군으로 소문이 났댔단다.

글쎄 어떤 날은 혼자서 벼를 700평까지 베서 온 농장을 놀래우군 하셨지.》

김금순이 땀을 씻으며 자랑스레 말했다.

《아무럼요! 언젠가 한 처녀가 가을걷이를 하다가 손목이 시큰해서 벼베기를 못한다고 울고있는데 그때 저 관리위원장이 그 처녀의 몫까지 베주었다오!》

입이 너무 헤픈것으로 하여 《말분조장》 이라는 별명이 붙은 동리아낙네가 기회를 놓칠세라 수다를 떨었다.

채향이 제꺽 그 말을 받았다.

《그래서 처년 그게 너무 고마와 자기가 입던 모내의를 풀어서 밤새워 장갑을 떠드렸고 그것이 인연이 되여 그때부터 위원장동지와 아주머니의 사심없는 진실한 사랑의 력사가 시작되였지요! 호호.》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김금순이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었다.

《원, 애두. 이젠 못하는 소리가 없구나, 호호…》

이렇게 터진 웃음소리가 전염되기라도 한듯 곳곳에서 웃음판이 터졌다. 그것은 온통 감탕에 게발린 다른 사람들의 얼굴을 보고 터뜨리는 웃음이였다.

여기저기서 호호… 하하… 하며 웃어대는 소리가 연해연방 들려오자 웬일일가 하여 잠시 허리를 펴고 뒤돌아보던 옥정국은 자신도 그만 허허… 하고 웃지 않을수 없었다.

서해쪽에서 어느새 먹장구름이 밀려와 덮였는지 또 한소나기 퍼붓기 시작했다. 하여 사람들의 얼굴은 순식간에 멀끔해졌다.

농장원들은 또다시 웃고떠들며 비가 오는 속에서도 벼단나르기전투를 계속해나갔다.

이렇게 그들은 첫 하루동안에 가장 혹심하게 피해를 입은 제방뚝밑의 포전들에서 벼단철수를 전부 끝내였다.

 

이날 저녁식사후 비가 줄금줄금 내리는 포전들을 돌아보던 옥정국은 3작업반 1분조논머리에서 전지불을 끄고 걸음을 멈추었다.

저만치 발목까지 빠지는 감탕속에 들어선 웬 두사람이 저마끔 제가 벼단을 나르겠으니 홰불을 들고있으라며 싱갱이질을 하고있었던것이다.

홰불에 비친 얼굴들을 보니 방철갑이와 채향이였다.

《이 새까만데서 어떻게 벼단을 나르겠다고 나왔어?》

《전 밤눈이 밝아요.》

《이 홰불을 들고 가만 서있기만 하라는데두. 난 낮에 고인물빼기만 하느라고 벼단을 못 날라봤단 말이요.》

《전 낮에 관리위원장동지의 지시를 전달하러 철갑동지한테 갔다오느라고 그 시간에 벼베기를 못한걸 보충하자고 나왔어요.》

《난 이밤을 놓치면 이번 전투기간에 벼단나르기를 못해보고만단 말이요. 래일 낮엔 또 고인물빼기를 해야 하니까.》

《그러니까 아깐 거짓말하셨군요.》

《응?!》

《아깐 뭐랬어요?》

《응, 향이 보고싶어서 나왔다고 했지. 그건 사실이야. 내가 요즘 향일 얼마나 보고싶어한다구. 지나가다 먼발치에서 향이만 보이면 목을 빼들고 보느라 이 목이 다 길어졌다니까.》

《호호… 자기만 그랬나 하는게지.》

《향이도 논에서 일하다가 먼발치에서 나를 보면 그러군 했어? 그런걸 난 또… 향이가 날 영영 잊어버렸는가 했지. 가만! 그 손 좀 보자구. 어이쿠, 그렇게 곱던 손이 이게 뭐요?》

《됐어요. 시간이 아까운데 전 벼단나르기를 해야겠어요.》

《그럼 이 불뭉치를 논두렁에 꽂아놓고 같이 나르기요.》

방철갑은 들고나온 홰불대를 논두렁에 꽂아놓더니 와스락와스락소리를 내며 벼단을 안기 시작했다.

《어마나, 한번에 그렇게 많이 날라요? 》

《그래서 향이를 돕자고 이 방철갑이 나왔단 말이요. 오늘 밤 내가 나르는건 모두 향이 몫이요.》

채향이가 무엇이라 쏘아주었는지 철갑의 요란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그때 채향의 놀란 웨침이 튀여나왔다.

《아니? 저 불?…》

무심히 눈길을 돌리던 옥정국은 뜻밖의 광경에 아연해지고말았다.

소재지마을과 주변마을들에서 전지를 켜든 농장원들이 불바다를 이루며 이곳으로 격랑쳐오고있었던것이다.

《아니,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옥정국은 그들의 흐름을 멈춰세우기라도 할듯 두팔을 벌리고 마주 걸어나갔다.

《하던 일을 채 못 끝내고 들어갔는데 잠이 와야지요. 그래서 이렇게 뛰쳐나왔수다.》

《나도 오늘 밤중으로 큰물피해를 입은 포전들의 벼단나르기를 끝내야겠다고 생각하며 나왔수다.》

《아무렴, 그래야 나라의 쌀독을 책임진 주인구실을 할게 아니요.》

포전들에서 올려나오는 이런 진심어린 말들을 귀기울여 듣고있던 옥정국은 뜨거운것을 삼켰다.

얼마나 티없이 깨끗하고 불같은 마음을 지닌 우리 농장원들인가.

그 어떤 횡포한 자연의 힘도 이들의 불같은 마음을 꺾을수가 없는것이다.

캄캄한 하늘에서 또다시 번개가 치고 우뢰가 울더니 소낙비가 쏟아져내렸다.

이때였다.

읍쪽에서 달려온 석대의 화물자동차들이 제방우 큰길에서 멈춰섰다.

전조등빛을 환하게 비쳐주는 가운데 사람들이 와르르 뚝밑포전으로 쏟아져내렸다.

귀에 익은 군당책임비서 조춘석의 목소리가 강뚝우에서 들려왔다.

《내 이럴줄 알았소. 여기 관리위원장과 리당비서가 어떤 사람들이라구. 우리가 다른 농장들에 나가보느라고 좀 늦어오긴 했지만 여기로 지원자들을 데리고 오길 잘했소. 자, 우리도 들어가서 벼단끌어내기를 합시다.

그러느라면 우리 애도 만나볼수 있을거요.》

《우리 애라니요?!》

놀라는듯 한 목소리임자는 군경영위원회 위원장이였다.

《우리 딸 말이요.》

《채향이 말입니까?! 아니, 그 애가 여기 와서 일합니까?》

《쉿, 그 애가 이 군당책임비서의 딸이란걸 숨기고 일한다는데 혹시 내가 앨 만나게 되면 위원장동문 여기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모른체 하오.》

《알겠습니다. 그 애가 여간 똑똑치 않다 했더니 정말 기특하구만요.》

옥정국은 강뚝으로 뛰여올라갔으나 그들이 어느 포전으로 내려갔는지 지원자들이 하도 많아 찾아낼수가 없었다.

그가 방송선전차에서 울려퍼지는 방송원의 격동적인 목소리에 잠시 귀를 기울이고있는데 안해가 달려오더니 숨이 턱에 닿은 목소리로 말했다.

《철진이 아버지, 야단났어요.》

《야단나다니, 그건 무슨 소리요?》

그가 다우쳐묻자 금순은 아래포전을 가리키며 지금 효정이가 감탕우에 쓰러진채 일어나지 못하고있다고 사색이 되여 말하는것이였다.

《뭐라구?! 효정이가?》

《예.…》

옥정국은 황황히 뚝아래로 달려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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