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 회)

제 2 장

1

 

잎떨어진 나무가지가 마가을바람에 뒤채이는 숲속으로 두 사나이가 한가롭게 산책하고있었다.

희슥희슥한 회색말을 탄 사내는 반백의 장년이였고 기름이 반지르르한 밤색말을 탄 사내는 한창나이의 젊은이였다. 어찌보면 그들은 부자지간이라기보다 사제지간 같아보였다. 젊은이의 얼굴은 시종 공경의 빛이 어려있었고 차겁고 예리한 눈초리를 가진 장년의 얄팍한 입가에도 느슨한 미소가 어려있었다.

반백의 장년은 일본 륙군첩보부의 명망인물인 요시다 잇세이였고 젊은이는 방금 감격적인 상봉을 한 그의 아들 리선일이였다.

장백현 13도구 순사 리선일은 이달초에 관동군 특수부에 3일내로 당도하라는 지령을 받았다. 전혀 예상치 않았던 호출이여서 그는 당혹감을 느끼지 않을수 없었다. 그도 그럴것이 심심산골 자그마한 경찰서의 말직 조선인순사인 그로서는 관동군사령부의 호출이란 꿈도 꿀수 없는 사변이였다. 개더러 룡상에 앉으라는것만치나 격에 맞지 않는 일이고 보면 분명 좋은 징조일수 없었다.

리선일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고 눈앞이 캄캄해졌다. 분명 도천리 엄옥순의 량민보증서문제가 또 큰 사달을 일으킨게 분명하였다.

그는 량민보증서를 인정해나선것으로 해서 이 몇해사이에 이루 말할수 없는 몸고생, 마음고생을 겪어야 했다. 헌병대호출은 물론이고 소름끼치는 일본특무기구인 특고(특별고등경찰과)의 지하감방에까지 끌려가 끔찍한 욕을 당해야 하였다. 엄옥순이, 그렇게도 순박하고 마음씨 고운 촌녀자가 유격대정치공작원일줄이야…

라진에서 양주업을 하는 부호인 외할아버지가 돈도 먹이고 세도줄을 어떻게 탔는지 그는 요행 지옥의 문턱에까지 갔다가 간신히 인간세상으로 돌아왔다. 외가에서 몸조리를 하며 황차 헤쳐가야 할 인생길을 그려보는 그의 마음은 울적하기만 하였다.

그는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르는 사생아였다. 어머니는 그를 낳자마자 바다에 빠져죽었다 한다. 그는 동네녀인들의 동냥젖을 먹고 살아나 외가에서 자랐다. 외할아버지와 친분관계를 가지고있는 일본사람의 덕으로 어려서부터 일본에 가서 교육을 받고 순사로까지 되였으나 일생을 70객이 된 외할아버지덕으로 살수는 없을것이였다.

어쨌든 외할아버지 남치환은 날고뛰는 수완가임에 틀림이 없었다. 외가에서 한 1년 빈둥거리던 그는 다시 복직되여 장백현 13도구로 돌아왔다. 그런데 오자마자 이번에는 어마어마한 관동군사령부의 호출이였다. 궁바가지로 세상에 떨어져내린 그에게 좋은 일이 굴러들리는 만무하였다. 더 엄청난 징벌을 하사하려 잠시 밝은 세상을 보게 한것인지도 몰랐다.

초절임한 풋절이처럼 후줄근해서 괴뢰 《만주국》수도에 도착하니 사복입은 두사람이 그를 마중하여 역사앞에 있는 야마도호텔로 안내하였다. 고급방에 들게 하고 잘 먹여주었으나 리선일은 극도의 공포감에 몸이 졸아드는듯 하였다. 신경이 끊어질듯말듯 팽팽히 헹기웠을 때 반백의 장년이 호텔방에 나타났다. 사복입은자가 귀띔하는 말이 륙군첩보부의 요직인물이라 하였다. 그는 자기의 공포가 공연한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마침내 올것이 온것이다. 량민보증서가 이렇게 제국의 관심사일줄이야 누가 알았으랴.

중키에 단단한 체구를 가진 반백의 장년은 피기 없는 얄팍한 입술을 실오리처럼 사려물고 선일을 집요하게 뜯어보더니 뜻밖에도 부드럽기까지 한 어조로 물었다.

《날 모르겠느냐?》

선일은 얼떠름해서 황황히 머리를 저었다.

《모를수도 있지. 세월이 퍼그나 흘렀으니까.》

장년은 푹신한 쏘파에 깊숙이 묻었던 몸을 솟구어 그에게로 바투 기울이더니 비밀이라도 말하듯 귀속말을 하였다.

《내가 자네 아버지일세.》

마른 하늘에서 벼락이 친다해도 이보다 더 놀라울수 있으랴. 하지만 의미에 비해서는 너무나 실무적인 어조였고 유리알처럼 랭담한 눈빛이였다.

《제가 어떻게 당신의?…》

선일은 아연해서 항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운명의 장난이란 이다지도 변화무쌍한것인가. 아버지를 모르는 사생아의 설음이 얼음버캐처럼 가슴에 들어찼는데 갑자기 아버지란 사람이 하늘에서 운석이 떨어지듯 뚝 떨어져내리다니. 그것도 제국륙군첩보부의 요직인물이다.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행운이라 할지, 액운이라 할지 운명의 희롱은 모질기도 하였다.

《내 이름은 요시다 잇세이다. 너는 이제부터 리선일이 아니라 요시다 센니찌라는걸 명심해라.》

어쨌든 리선일은 그 아버지란 사람과 함께 명월구로 내려왔다.

며칠을 함께 지내면서 선일은 아버지의 명망과 막강한 권세에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일본륙군의 꽃이라고 하는 관동군 어르신네들도 그앞에서는 허리를 90도로 꺾고 굽석거렸고 노조에 《토벌》사령관마저 설설기는판이였다. 리선일이란 사생아가 어떻게 특고감옥에서 살아나올수 있었는가를 비로소 알것 같았다.

친아버지라면 어째서 이제야 그앞에 나타나는가? 어째서 어머니를 유린하고 내던져 죽게 만들었는가? 의문과 울분은 새록새록 더해지기만 하였다.

그들은 제나름의 생각에 잠겨 묵묵하였다.

《센니찌, 지금 몇살이지?》

평보로 뚜벅거리는 회색말의 고삐를 지그시 잡아당기며 장년이 묻는 말이였다. 날고싶어 진정할줄 모르는 밤색말의 고삐를 나꾸채며 선일은 신경질적으로 되물었다.

《제 아들의 나이조차 모르는 아버지가 이 세상에 몇이나 될가요?》

《질문에 질문으로 대답하는건 신사답지 못해. 피가 끓는 청춘시절엔 간혹 실수도 있는거야. 너 피를 끓여본적이 있느냐?》

《난 뭐 사내가 아닌가요? 》

《오― 넌 꼭 젊은 시절의 내 모습이로구나. 그 회의적인 표정만 아니라면.》

젊은이의 입가엔 랭소의 깊은 주름살이 패인다. 그러거나말거나 장년은 제 기분에 떠있다.

《요시다가문의 대를 이을 아들이 있다는건 하나의 사변이다. 정말 기쁘기 그지없구나. 하늘이 나에게 이렇게 장성한 아들을 선물했으니 조상들도 지하에서 기뻐할게다.》

《어머니에게 감사를 드려야지요.》

《어머니? 어머닌 잊어버려.》

《잊어버린다구요, 그림자없는 사나이가 있다는 말은 들었어도 어머니가 없는 인간이 있다는 말은 처음입니다. 그럼 이 아들은 암승냥이새끼인가요?》

아버지는 쓴웃음을 띠고 차겁게 쏘아보는 아들을 마뜩잖게 흘겨보며 실오리같은 입술을 별로 움직이는양도 없이 뻔뻔스레 내뱉았다.

《암승냥이든 암사자든, 중국녀자든 조선녀자든 말레이시아녀자든 상관없어. 일본은 동아의 맹주로 될테니까. 그들은 다 일본남아의 노예일뿐이다.》

장년은 옆구리에 찬 칼집에서 닛뽄도(일본도)를 뽑아들었다. 서리찬 빛이 번뜩이더니 굵다란 전나무가지가 뭉청 잘리워 밤색말우에 떨어졌다. 젊은이는 반발하듯 그것을 힘껏 걷어차내치고 온몸을 떨었다.

《넌 햄리트형이구나. 지나치게 감상적인것은 좋지 않아. 넌 어쨌든 대일본제국의 남아이다. 고명한 요시다가문의 후손이란 말이다.

알아둬라. 요시다가문은 도요도미 히데요시때부터 조선평정의 전장에서 피를 흘려왔다. 너의 할아버지는 다까모리와 더불어 〈정한론〉제창자들중의 한사람이다. 조선을 삼키고 그를 발판으로 만주를 삼키고 중국대륙을 타고앉아 대동아의 맹주가 되려는것은 조상들의 오랜 숙원이요, 나자신의 일생일대의 념원이기도 하다. 이제 그 꿈을 실현할 때는 왔다.

문제는 일본의 숨구멍에서 커가는 암같은 존재인 김일성빨찌산을 이 가을과 겨울에 무조건 없애버리고 만주를 평정하는것이다. 이 운명적인 전장에서 가문의 대를 이어줄 아들을 만난건 하늘이 내린 은총이 아닐수 없다. 너는 나가시마특수공작선무반에서 중핵적위치에 서야 한다. 사사로운 감정은 삭여버리고 대업을 생각해야 한다.》

아버지는 허리띠에서 칼집을 떼여내여 두손으로 아들에게 내밀었다.

《이 칼을 받아라. 닛뽄도는 야마도남아의 넋이고 재산이다. 요시다가문이 대를 물려오는 칼이다.》

아들은 칼을 못 본체 하더니 무엇인가 삭일수 없는것을 꿀꺽 삼키며 밤색말의 옆구리를 걷어찼다. 말은 기다렸다는듯 속보로 내달렸다.

잇세이는 끓어오르는 분기를 누를수 없는지 칼집으로 말덜미를 후려쳤다. 소스라쳐 놀란 회색말은 앞발을 쳐들고 껑충 뛰여오르며 애처롭게 울더니 밤색말을 뒤쫓아 냅다 달리기 시작하였다.

1940년 마가을이였다.

 

×

 

길회선철도연선에 있는 명월구에는 《우리 장모네 토장국집》이란 이채로운 간판을 내건 음식점이 있었다. 음식점이자 려인숙이였다.

김일성동지께서 이 고장의 한 농막에서 당 및 공청간부회의를 여시고 반일무장투쟁로선을 제시하신 명월구회의가 진행될 때는 아직 옹석라자라 불리우던 자그마한 촌락이였다. 안도쪽으로 빠지는 도로분기점에 위치한 옹석라자는 그후 철도경기에 편승하여 어느새 촌동리의 때를 벗고 로월산, 명월산의 이름을 따서 명월구란 정거장이름까지 내걸었다.

륙군대학졸업후 첩보는 도이췰란드를, 해군은 영국을 따라 배운다는 그 시절의 관례에 따라 도이췰란드류학을 마친 잇세이는 일본만철 말직사무원의 초라한 몰골로 첩보생활을 시작하였다. 첩보활동지점을 선택하느라고 만철을 따라 광막한 만주대륙을 횡단하고 두만강을 건너 라진까지 편답하였던 그는 그 어떤 륙감때문이였는지 도로분기점에 위치한 옹석라자라는 촌스런 동리에 마음이 끌려 정거장앞에 자그마한 음식점을 꾸려놓았다.

국밥집이던 음식점은 철도경기에 편승하여 차츰 번창해갔다. 시세에 따라 간판도 바뀌여졌는데 국밥집이 명월구온반집으로, 다시 《우리 장모네 토장국집》으로 바뀌우고 사위대접에 후덕스런 장모님같은 녀인이 주모로 들어앉았다.

살길을 찾아 만주로 끝없이 흘러드는 괴나리보짐의 조선인이주민들이 여기 명월구에서 차갈이를 하러 내리면 음식점이자 려관인 《우리 장모네 토장국집》을 찾기마련이였다. 여기서 막걸리를 걸치고 고향의 향취가 풍기는 뜨끈한 토장국밥을 훌훌 불며 먹고나면 잔등 시리고 가슴에서 얼음이 버걱거리는 망국노의 설음이 저도 모르게 녹아지는듯싶어 낯선 사람들끼리도 마음을 터놓게 되고 숨은 뜻도 서슴지 않고 내비치게 되였다.

여름에는 옥색모시치마저고리를 산뜻하게 차려입고 겨울에는 명주옷에 호박단마고자를 걸친 옛스런 차림새로 떠나온 조국과 고향의 모든것을 가슴저리게 회억케 하는 정찬 웃음의 《장모님》이 잇세이가 박아넣은 첩자라는것을 아는 사람은 누구도 없었다.

여기서 김일성장군의 무장투쟁로선이 제시되였다는것을 썩 후에 알았을 때 그는 자기의 선견지명에 피가 머리끝으로 치솟아올랐다. 명월구를 중심으로 한 안도와 연길, 왕청일대가 조선인민혁명군의 활동지대로 되리란건 불을 보듯 뻔하였다. 모든것이 그가 예견한대로 되여갔다. 아무튼 잇세이라는 사내는 첩보에 천부적재능을 가진 일본의 1등남아가 틀림없다고 그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었다.

잇세이란 일본에서 첫째가는 남아가 되라는 뜻에서 부친이 달아준 이름이다. 일본첩보의 스승으로 도요도미 히데요시를 꼽는다면 그의 아버지 요시다 다로는 도요도미의 수제자격이였다. 도요도미가 죽은 후 그의 수하에 있던 도꾸가와가 에도(후에 도꾜)에 막부를 세우고 전 일본을 통치할 때 요시다 다로는 에도의 핫죠보리에서 밀정을 길러내고 제후들의 동향을 내탐하여 도꾸가와막부를 뒤집어엎은 명치유신에 한몫을 하였다.

요시다가문의 피에는 첩보에 능한 천부의 재능이 섞여있는지도 몰랐다.

《정한론》제창자인 사이고 다까모리의 본거지였던 규슈 가고시마에서 출생하여 자란 소년 잇세이가 귀에 못이 박히게 들은것이 야마도의 숙원인 《정한》이요 넋으로 흘러든것이 민족배타주의와 일본인의 우월감이였다. 그 우월감은 사방이 바다로 막힌 섬세상에서 유아독존격으로 살아온 야마도족의 고유한 민족성에 있었으며 배타주의에 바탕을 두고있었다. 민족배타주의는 에도막부말기에 《국학》이 대두하면서 일본인들의 확고한 사상감정이 되였다. 《국학》론자들은 제 나라 고전의 우수성을 주장하던 나머지 《조선지배설》을 정설로 주장하며 조선침략사상을 고취하였다. 이 《국학》이 근세의 사무라이 후예들에게까지 큰 영향을 미쳤으니 그것을 탐독하며 자란 잇세이도 민족배타주의를 골수에 새길수밖에 없었다.

그는 조선은 물론 타민족정복의 무기는 힘이라고 생각했고 그 힘중에서도 첩보전은 보이지 않는 강력한 타격력이라 자부하고있었다.

요시다 잇세이가 도꾜로부터 만주로 날아온것은 두달전이였다.

그는 노조에《토벌사령부》가 벌려놓고 어쩔바를 모르는 《동남부치안숙정특별공작》을 마무리지으라는 대본영의 특령을 받고온 사절이였다.

노조에가 20만의 대병력을 들이민 《동남부치안숙정특별공작》은 시작하자마자 실패의 쓴맛을 보았다. 김일성사령관은 대 《토벌》의 공세에 대부대선회작전이라는 전략으로 맞받아쳐 첫단계에서 짓뭉개버리였다.

대본영의 요직인물들은 입을 모아 고아댔다.

―대동아공영권의 꿈을 실현할 때는 왔다. 남진이든 북진이든 떫은 감주의든 익은 감주의든 암과 같은 존재인 조선인민혁명군을 소멸하지 않으면 일본은 대업을 이룰수 없다. 문제는 김일성사령부를 없애버리는것이다.

입으로야 천도복숭아인들 못 따오랴.

김일성사령관은 대본영의 꿍꿍이속을 빤히 들여다보는듯 이번에는 대《토벌》력량을 분산시키고 자기 력량을 보존하기 위해 소부대작전으로 넘어갔다. 다시말하여 불리한 도전을 피해 동북의 산야에 물방울처럼 잦아든것이다. 그 전략을 무찔러버릴 새 작전을 펴지 않으면 대동아맹주의 꿈은 오뉴월 개꿈으로 될것이였다. 그것은 변화무쌍한 첩보전으로만 가능할것이라고 타산했던지 대본영은 잇세이를 만주벌판으로 날려보냈었다.

《우리 장모네 토장국집》의 지하에는 왜식으로 조촐하게 꾸린 밀실이 있었다. 만주지역시찰을 오면 잇세이는 이 밀실에 거처하군 하였다. 수수한 다다미방에 묵직한 자개박이다담상이 놓였을뿐이였다. 이채로운것이 있다면 벽에 걸린 한폭의 수묵화였다. 화사하게 피였던 벗꽃이 일시에 떨어져내리는 비장한 풍경이였다.

다담상을 마주하고 사복차림의 다섯명의 사나이가 마주앉아있었다.

주객인 잇세이와 련합《토벌》사령부 노조에사령관, 소지구《토벌》대대장 고바야시대좌, 특별선무《공작반》 책임자 나가시마중좌 그리고 리선일 아니, 센니찌였다. 그는 격에 맞지 않는 이 좌석이 고달픈지 아니면 자기의 존재를 잊게 하려는듯 구석쪽에 몸을 한껏 옹송그리고있었다.

노조에도 어깨가 축 처져있었다. 군복대신 양복을 입혀놓으니 워낙 작은 체구가 조막만하게 졸아든것 같았다. 큰 전쟁이라도 치를수 있는 20만 대군을거느리고 정마를 백두로 내몰아 《비화》를 근절하겠다고 장담하고 나섰으나 김일성사령관의 령활한 유격전술에 코를 꿰여끌려다니다가 숱한 장병들을 저승길에 보내고 우에서 벼락처럼 떨어지는 추궁과 야유와 조소의 오물만을 뒤집어썼을뿐인 그였으니 사령관직은 떼우지 않았으나 도꾜에서 급히 날아온 잇세이가 진짜 사령관이라는것은 의심할바 없었다.

잇세이는 동만에 오자마자 련합토벌사령부를 조선인민혁명군의 전구인 백두산동북부와 잇닿은 연길로 옮겼으며 연길에 있던 동지구《토벌》대는 도문으로 옮기였다. 그리고 노조에가 자기 하급이기라도 한듯 간도일대와 남만쪽에 방대한 규모의 군용도로건설을 마무리지으라, 안도, 화룡, 연길일대는 물론 백두산동북부의 험지에까지 기동로를 닦으라, 동남부3성에 야간비행장건설을 동시에 내밀어라 호통질이였다. 령만 떨어지면 륙로, 항로로 조선과 동북땅 사방에서 숱한 병력이 쓸어들판이였다. 20만이 다 무어랴. 30만, 50만도 아깝지않게 밀어넣을것이다. 어떤 비싼 대가를 치르더라도 이 겨울엔 결판을 낼 잡도리다.

(어디 핫죠보리 솜씰 보이라지. 추궁과 조소의 오물을 들쓰긴 마찬가질걸.)

노조에는 쓴웃음을 지으며 쓰라린 심화를 술로 다스리려는듯 마사무네술병에 손을 내밀었다. 잇세이는 그의 잔에 술을 부어주며 은근한 어조로 물었다.

《사령관각하는 고노에총리가 내놓은 대동아공영권의 구상과 방침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노조에는 들었던 잔을 놓고 방석우에 정좌하더니 엄숙하게 선언하였다.

《대동아공영권의 구상은 야마도민족의 오랜 숙원일뿐아니라 저 개인의 숙망이기도 합니다. 나는 대동아공영권을 일본을 중심으로 조선, 만주, 중국과 쏘련의 연해주지방과 동부씨비리뿐아니라 동아시아와 서태평양의 넓은 지역에 있는 모든 나라와 섬들을 모조리 걷어모아 우리 일본이 지배하는 동방식민지 대제국을 만든다는 의미로 리해하고있습니다.》

잇세이는 두손바닥을 딱 마주쳤다. 마음과 뜻이 맞는다는 의미였다.

하얀 사기잔이 공중으로 떠올라서 기분좋은 음향을 내며 맞부딪쳤다. 잔을 비우고난 잇세이는 비밀을 터놓는듯 목소리를 낮추었다.

《제국의 리상을 실현할 시각은 박두했습니다. 전유럽이 전쟁의 불길에 휩싸인 이때 대본영은 남방진출의 의지를 굳히고있습니다. 중일전쟁을 결속하지 못한채 동남아진출을 결심한 일본에 있어서 후방의 안전이 얼마나 사활적인 문제인가를 더 론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잇세이는 말을 끊고 노조에와 고바야시에게 묻는듯 시선을 박았다. 술기운과 그 어떤 열광에 벌겋게 달아오른 고바야시가 비린 목청을 돋구었다.

《후방의 안전은 념려마십시오. 이 겨울엔 공비무리가 더는 견디여내지 못합니다. 고기그물같이 조밀한 첩보의 그물망이 만주천지를 뒤덮었습니다. 조선인민혁명군의 전구인 백두산동북부엔 2중, 3중으로 그물을 쳤습니다. 산간오지에 있는 사냥군막, 버섯막, 아편막들에 밀정들을 박아넣었으며 조선과 만주각지에서 선발해온 순사, 경찰, 특무, 경방단패거리들로 선무반, 귀순공작대 등을 무어 부락에, 들판에, 산속에 들이밀었습니다. 하늘에선 삐라를 날리며 함화를 하고 집집에선 유격대에 나간 자식과 남편을 설복하라고 부모와 안해를 밀림으로 내몰았습니다.》

한참 엮어대던 고바야시는 잇세이가 제때에 부어주는 잔으로 목을 추기더니 은밀한 비밀을 알려주기라도 하는듯 목소리를 낮추고 눈을 끔벅거렸다.

《중요하게 틀어쥔건 식량이지요. 단 한톨의 낟알도 유격대에 흘러들어가지 못하게 차단막을 든든히 내렸습니다.

집단부락에서는 식량이 흘러나가지 못하게 주민식량에 대한 통제를 무섭게 합니다. 성문보초들이 밭으로 나가는 농민들의 밥그릇까지 검사합니다.

유격대가 성시를 쳐서 식량을 얻지 못하게 방비책도 강구했습니다. 집단부락에서는 군경들이 소모하는 식량, 피복, 탄약을 토성밖에 비밀창고를 짓고 따로 보관하도록 했고 그 위치를 취급자만이 알고 비밀리에 물자들을 졸금졸금 집단부락에 실어들이도록 했습니다. 탄광, 광산, 목재채벌장에서도 식량은 하루나 이틀 고작해서 나흘분을 가지고 있도록 엄격히 통제합니다.》

잇세이가 귀담아듣는데 신바람이 난 고바야시는 더욱 성수가 나서 엉치까지 들썩거리며 씨벌여댔다.

《식량통제를 이렇게 엄밀히 하면서도 우린 가을하지 않은 강냉이나 조밭들을 미끼로 남겨놓았습니다. 유격대가 먹이를 본 쥐처럼 달려들것이여서 주변에 토벌대까지 대기시켜놓았습니다.》

여직껏 술만 졸금졸금 마시던 나가시마가 자기의 령역을 침범하지 말라는듯 바짝 마른 손을 쳐들었다. 고바야시는 어쩔수없이 말을 멈추고 입술을 감빨았다. 다 잡은 고기를 빼앗긴다는 인상이였다.

《얼마전에 우린 김일성부대의 겨울나이식량공작을 통쾌하게 파탄시켰습니다. 김일성사령관의 각별한 신임을 받고있는 오백룡소부대가 여름부터 화룡, 연길 일대에서 겨울나이식량을 사들인다는 통보를 받은 우리 공작대는 즉시에 와해공작을 시작하였습니다. 공작반에선 아들을 유격대에 보낸 부모들과 남편을 보낸 녀자들을 모조리 끌어다놓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협박하고 구슬리였습니다.

〈만주천지에 일본군대가 그물처럼 덮였다. 유격대가 아무리 날구뛰여도 그 그물에서 빠져나가지 못한다. 순순히 투항하면 살수 있지만 계속 반항하면 처참한 죽음을 면치 못한다. 끝까지 엇서는자들은 가족까지 멸살시킬것이다.〉 하고 으름장을 놓았더니 대립자에 사는 두상이 제 아들을 귀순시켜 데리고오지 않았겠습니까. 뜻밖에 후방부관도 하고 련대장도 한 놈이였는데 그놈이 식량저장고의 위치를 부는 바람에 우린 횡재를 했지요. 겨울나이식량이 거덜났으니 유격대도 별수가 없게 됐지요. 이젠 끓는 가마안의 고기신셉니다.》

나가시마의 장광설이 끝나기가 바쁘게 잇세이는 약삭바른 부하를 기분좋게 해주는것을 잊지 않았다.

《장해, 나가시마. 무릇 전쟁은 힘의 대결일뿐아니라 지혜의 대결이기도 하지. 38년 〈동기토벌〉때 먹지도 자지도 못하게 하는 생존조건말살전술을 썼으나 그자들의 의지와 정신앞에선 파산을 면치 못했소. 유격대의 의지와 정신을 좀먹는 전술을 써야 해. 개미가 동뚝을 무너뜨린다질 않는가.》

나가시마는 손벽을 짜락 쳐대고 고바야시는 아첨기어린 실웃음을 날리며 얼른 그의 잔에 술을 부었다. 산전수전 다 겪은 노조에는 노는 꼴들이 역겨웠으나 애써 속을 누르고 진중한 어조로 한마디 건의하였다.

《이즈음 혁명군은 수림속에 떨어진 물방울처럼 잦아들었습니다. 우리한테 투항한 림수산을 내몰아 사령부가 있음직한 비밀밀영들을 다 뒤졌으나 허탕이였습니다. 혹시 우리의 드세찬 토벌공세에 몰려 원동으로 다 들어가버린게 아닐가요?》

저가락뒤등으로 다담상을 똑똑 두드리며 생각을 굴리던 잇세이는 머리를 끄덕거렸다.

《그럴수도 있지요.》

순간 노조에의 버쩍 마른 얼굴에 화기가 돌고 주름살마저 펴지는듯하였다.

《그렇다면 만주평정의 대업도 마무리되였다고 할수 있지 않습니까.》

잇세이는 저가락으로 다담상을 세괃게 내려쳤다.

《아니요. 물방울이 잦아들었다고 없어진것으로 생각하는건 어리석은자의 사고방식이요. 때가 되여 그 물방울은 샘줄기로 솟구쳐 개울이 되고 강을 이룰것이며 강물이 합쳐 대하를 이루는것이요. 잦아든 물방울을 찾아내여 하나하나 말려버려야 하오. 심리모략전으로 혁명군을 사분오렬시키고 혁명군사령부를 최종적으로 격파해야 하오.

이 겨울에 김일성사령부를 요정내지 못한다면 이 대륙을 위해, 대동아의 꿈을 위해 선배들이 흘린 피와 로심초사가 물거품이 될것이니 필사의 각오로 나서야 할것이다.》

잇세이의 얄팍한 입가에 랭혹한 미소가 피여올랐다.

고바야시가 벌떡 일어섰다.

《제국의 오랜 꿈을 위해 장작단우에서 자고 쓸개를 씹을지언정 주저할소냐. 이 한목숨 사꾸라꽃처럼 진다 해도 영광일것입니다.》

잇세이는 대사집 송아지 백정 무서운줄 모른다고 제법 호기등등한 고바야시에게 랭소를 지어보이고는 나가시마에게 은근히 물었다.

《공비임신부녀자의 탈출사건은 어떻게 마무리됐는가?》

공연히 나뜰대다가 점수를 떼운 고바야시를 깨고소해하던 나가시마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아픈데를 정통으로 찔리운 격이였다.

《녀자공비와 함께 탈출한 위문단의 산과의사에게서는 아직 기별이 없습니다.》

《산과의사에게 어떤 과업을 주었는가.》

《유격대의 비밀밀영을 특히는 사령부가 있는 밀영을 알아내라는 과업을 주었습니다.》

《한데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다면 나가시마 당신이 보기 좋게 속히운게 아닌가?》

《설마… 세상만사가 단숨에 되는 법이 있습니까. 귀좁은 바늘에 실꿸 때는 서두르지 말라고 했습니다.》

《시라소니가 의형제 맺자하지 않던가? 나가시마, 산과의 류정연의 애비가 누군지 아는가? 연해주에서 독립군들을 긁어모아가지고 일본에 정식 선전포고를 하겠다던 류삼렬일세. 그 녀자는 제국의 편에 설 녀자가 아니야. 피는 어쩔수 없는거야.》

《그렇지만 유격대에 가담할 녀자도 아닙니다.》

《제국신민이 아니라면 언제건 그쪽으로 갈테지. 제3의 길이란 없으니까. 매장해버리라.》

나가시마는 그 의미를 얼른 리해하지 못해 작은 눈만 깝죽거렸다. 그는 과실을 만회할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며 잇세이의 턱밑에 바싹 다가붙었다.

《혁명군으로 안내할자가 또 하나 나타났습니다. 밀림속의 사냥군막, 숯구이막, 아편재배막들에 우리 밀정들이 들어박혔는데 버새벼랑에서 포대공사를 하던 위만군에 쫓기던자가 아편막에 걸려들었습니다.

그자의 주머니에서 쏘련제성냥곽이 나왔는데 국제당이 파견한 련락원들이 암호교환용으로 쓰는 성냥곽이 틀림없습니다.》

《그자를 어떻게 했는가.》

《잘 대접하고 쌀포대까지 지워서 돌려보냈습니다.》

나가시마의 눈가엔 간교한 웃음이 남실거렸다.

《잘했다. 별치 않은 미끼가 큰 고기를 낚을 때도 있는 법이야.》

잇세이는 령리한 학생을 대하는 교원처럼 나가시마의 잔등을 두드려주며 손수 그의 잔에 술을 부어주는것을 잊지 않았다.

《나가시마, 내 아들을 그 특수공작조에 망라시키라.

센니찌, 들었는가? 공비소탕의 영광스런 전장에서 요시다가문의 영예를 떨쳐야 한다.》

여직껏 무료하게 앉아있던 리선일은 엉거주춤 일어섰다. 공훈을 세울 쉽지 않은 기회가 왔다는 느낌은 들었으나 어째서인지 피는 끓지 않았다. 잇세이라는 유력한 인물이 자기의 아버지라는것이 도시 믿어지지 않았고 혈육의 정도 좀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공허한 가슴속엔 전보다 더 으쓸한 불신의 찬바람이 불어칠뿐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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