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2 회)

제 6 장

5

 

언제면 송금석선생님의 아버지손에 흙주머니가 가닿을수 있을가? 혹시 로인의 사후에 가닿지나 않겠는지… 지금 송금석선생님은 떠나간 조국을 두고 무엇을 생각하고계실가? 그는 다른 곳 아닌 룡남산의 흙을 파서 흙주머니를 마련했댔다고 한다. 그러고보면 대학이 그리워질 때마다 자기도 그 흙을 보려고 했던것 같다. 이러나저러나 우리 대학은 그의 마음속에서 지울수 없이 소중히 자리잡고있을것이다. 과연 그가 다시 대학으로 돌아오지 않을가?…

김정일동지께서는 텅 빈 교실에 홀로 앉아 생각을 거듭하시였다. 그런데 앞문이 벌컥 열리더니 선희가 들어섰다.

정일동무가 여기 있는걸 난 도서관에 간줄 알고 온 열람실을 다 찾았어요.》

그는 무슨 즐거운 일이라도 있는듯이 단아한 얼굴에 함뿍 명랑한 웃음을 담고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소?》

《할아버지가 정일동무를 찾아요.》

《무슨 일로?》

《저도 몰라요.》

선희는 시치미를 떼며 눈을 깜박이더니 불쑥 한마디 덧붙였다.

《난 오늘처럼 우리 할아버지가 흥분한걸 처음 봤어요.》

김정일동지께서는 자리에서 일어서시였다.

《강선생님이 왜 그렇게 흥분하시였소?》

《글쎄 가봐야 알게 아니예요. 빨리 가보라요.》

선희는 달뜬 기분으로 들레며 독촉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아무래도 그가 사연을 말할 잡도리가 아니여서 더 캐여묻지 않고 강명호의 사무실로 급히 가시였다. 강명호의 넓은 책상우에는 편지들이 수북이 쌓여있었다. 얼핏 보아도 100여통이 넘을것 같았다. 편지무더기옆에는 력사박물관의 진렬대를 련상하리만큼 여러점의 석기들과 짐승의 뼈들이 놓여있었다.

《내 정일동무에게 이걸 좀 구경시키자고 찾았소.》

그렇게 말하며 마주보는 강명호는 듣던바대로 몹시 흥분한 기색이였다. 얼굴은 상혈되여있었고 흡족한 미소를 담고있는 눈빛은 정채롭게 빛났다. 대머리의 정맥도 눈에 뜨이게 두드러졌다. 전신의 피가 뜨겁게 끓고있는게 분명하였다.

《이게 어떻게 된겁니까?》

책상우에 놓인것들을 놀라운 눈길로 더듬으시며 김정일동지께서 물으시였다.

《구석기에 대한 론문이 잡지에 나간 후 지난 몇달동안에 전국각지에서 이렇게 많은 편지가 왔소. 력사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은 말할것도 없고 로동자, 농민들과 학생들까지 편지를 썼소. 구석기와 관련하여 알고싶은것을 물어오기도 했고 이러저러한 조건을 보아 자기네 고장에 구석기가 있음직하다고 알려오기도 했소. 지어는 병사들까지 편지를 보내여왔소. 저기 신석기 두점은 병사들이 전호를 파다가 발견한것인데 그들은 그것이 구석기인줄 알고 나한테 소포로 보내여왔소.》

《그렇습니까!》

부지중 탄성을 터치시는 그이의 존안은 경탄과 감동으로 빛나시였다.

이렇게도 많은 편지가 오다니…

아마도 우리 인민처럼 자기의 민족사를 사랑하는 인민은 없을것이다. 여러 지방에서 각이한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과 병사들로부터 보내온 이 편지와 유물들이 그것을 하나의 생동한 직관으로 말해주고있다. 생각할수록 경건한 감정에 가슴은 세차게 격동되는것이여서 편지나 유물을 선뜻 집어들기가 서슴어지시였다. 우리 인민이 지닌 그 숭고한 조국애와 민족애앞에 깊이 머리를 숙이는 심정으로 한동안 지켜보기만 하시였다. 잠시후에야 그이께서는 병사들이 보내여왔다는 신석기 한점을 집어드시였다. 력사박물관에서 보신바있는 마제석기의 일종인 밀개였다. 이미 우리 나라의 여러 지방에서 발견된것이여서 새롭게 학술적의의를 띠지는 못할것이다. 하지만 총창을 비껴들고 초소에 서있는 병사들까지 구석기출토에 관심을 가지고있다는 사실자체가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김정일동지께서는 화강석을 대충 갈아만든 밀개를 진귀한 보물처럼 소중히 쓸어보시였다.

《그 편지들을 읽으면서 감격한바가 실로 크오.》

김정일동지께서는 감회에 젖은 강명호의 목소리가 울리여서야 시선을 드시였다.

정일동무도 시간이 있으면 편지들을 읽어보시오.》

《읽어보겠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기꺼이 대답하시였다. 강명호의 권고가 아니더라도 품을 놓고 그 편지들을 읽고싶으시였다.

《우선 이것부터 읽어보시오. 함경북도 선봉군에서 한 로인이 보내온것이요.》

강명호가 두툼한 편지 한통을 골라들고 내보이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책상우에 밀개를 놓고 편지를 받으시였다. 속지를 뽑아드시니 큼직큼직한 글씨로 쓴 글발이 펼쳐졌다.

그이께서는 빠른 시선으로 글줄을 더듬으시였다.

 

강명호선생귀하

 

초면에 편지를 쓰는만큼 자신부터 간단히 소개하는것이 인사일것 같습니다. 저로 말하면 일흔살에 이른 몸이라 터밭이나 가꾸면서 별로 하는 일없이 여생을 보내는 촌늙은이올시다. 헌데 소시적 한시절에 사립학교에서 후생들에게 우리 나라 력사를 가르친바가 있어서 몸은 비록 늙었지만 오늘까지도 사학에 관심이 없지를 않습니다. 왜놈들이 《동조동근》을 들고나올 때 유구찬란한 력사를 가진 우리 배달겨레가 어찌 섬오랑캐와 한족속일수 있느냐고 후생들앞에서 의분을 토했다가 류치장신세를 진바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따금 읍도서관이나 마을에 있는 중학교에 찾아가서 력사분야의 책들을 빌려다가 소일거리로 읽군 합니다. 그러던차에 잡지에서 선생의 론문을 읽게 되였습니다. 우리 나라에도 반드시 구석기시대가 있었을것이라는 주장에 접했을 때 이 늙은 가슴에도 세찬 흥분을 금치 못하였습니다. 수십만년의 세월을 거슬러 우리 민족사의 첫페지를 열어보는듯 한 심정이였습니다. 그러면 그렇겠지, 어찌 우리 겨레가 타곳에서 기원하여 흘러들어온 족속의 후예일수 있단 말이냐! 하고 무릎을 쳤습니다. 홀로 부둥켜안고있기에는 너무도 놀랍고 경사스러운 사실이여서 론문의 내용을 여러 사람에게 전하였습니다. 어떤 날에는 품을 놓고 들에 나가 정자그늘밑에서 휴식을 하는 농장원들에게 말해주기도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모두들 크게 감동하면서 인제부터는 밭을 갈거나 집터를 닦다가도 사람의 손질이 간 돌이 있으면 무심히 보지 말자고들 하였습니다. 비록 전야에서 흙을 다루며 곡식을 가꾸는 농장원들이지만 배달겨레의 아들딸임을 자각하는 이상 구석기출토에 무심치 않은것은 응당한 일이였습니다. 비록 사학에 판무식일지라도 겨레의 피를 받고 이 땅에 태여난 사람이라면 어찌 자기들의 첫 조상을 옳게 밝히는 성스러운 일을 외면할수 있겠습니까. 동네의 어른아이 할것없이 《구석기》라는 낱말을 외우면서 금시 찾아낼것처럼 법석입니다. 그러는 가운데 스쳐버릴수 없는 일이 생겼습니다. 농장에서 관개수로를 째느라고 동산기슭을 파헤치는데 땅속에 묻혔던 패총무지의 변두리가 드러났습니다. 그속에서 짐승의 뼈마디들과 다듬어진 차돌쪼각들이 나왔습니다. 짐승의 뼈마디들은 확실히 지금 사는 짐승의 뼈들과 그 생김새가 다른것 같은데 혹시 털코끼리라는 태고적 짐승의 뼈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굴포리에는 누구도 털코끼리뼈나 구석기의 생김새를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니 딱히 옳다고 말할것은 못되오나 아무튼 선생에게 도움이 될듯싶어서 이 편지와 함께 뼈마디들과 차돌쪼박들을 소포로 보냅니다. 설령 그럴사하게 여긴탓으로 빗보아서 개나 돼지 뼈마디들이고 흔히 발길에 걸채이는 조약돌에 불과하더라도 구석기가 하루빨리 발견되기를 바라마지 않는 우리 고장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려 기꺼이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겨레치고 누구나 그러하겠지만 저와 같이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은 구석기가 발견되였다는 경사스러운 소식이 있기를 일각이여삼추로 기다립니다. 다른 족속의 후예가 아니라 삼천리근역에서 기원하여 처음부터 독자적인 력사를 엮어온 조상의 후예임을 생전에 확신하게 된다면 생을 마치는 순간에도 자랑스러운 마음으로 눈을 감을듯싶습니다.

 

                                                                                                차기봉 올림

 

김정일동지께서는 편지를 든채 잠시 생각에 잠기시였다. 편지에 담겨진 로인의 감정이 세차게 가슴을 울려주었다. 설사 로인이 보내온것들이 아무런 학술적의의를 못 가진다 한들 어떠랴. 그는 그 이상의것을 보내여왔다. 편지지우에 열렬한 민족애를 후광처럼 발산하는 평범한 한 농촌로인의 모습이 그려지셨다. 그를 통하여 조상대대로 이어온 우리 인민의 숭고한 민족애를 받아안으신듯 한 심정이시였다. 그러한 민족애야말로 우리 민족의 위대성을 장식하는 모든 아름다움의 원천이 아니였을가.

《정말 많은것을 생각하게 하는 편집니다. 저는 우리 인민모두가 한사람같이 열렬한 애국자라는 생각이 듭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편지를 도로 책상우에 놓으시였다.

《그 로인은 편지에 곡진한 심정을 썼을뿐더러 학술적으로도 매우 귀중한것을 보내왔소.》

《그렇습니까?》

김정일동지께서는 무등 반가와하시였다. 강명호는 책상우에 있는 차돌을 집어들고 확대경으로 비쳐보이며 설명을 하였다.

《이 돌은 땅을 팔 때 깨여져서 본래의 모습이 똑똑치 않으나 날을 세워 갈아낸 흔적이 뚜렷하오. 신석기가 분명하오. 정일학생도 아다싶이 종전까지 우리 나라에서 출토된 신석기들은 신석기시대 중기의것이 아니면 말기의것이였소. 그러나 이것은 신석기시대의 초기의것이요. 벌써 이것은 신석기 중기부터야 조선반도에 사람이 살기 시작했다는 종전의 견해가 부당하다는것을 말해주고있소. 또 한가지 흥미있는것은 이 뼈마디들이요.》

강명호는 큼직한 뼈마디를 차돌대신 바꾸어들고 다시 말을 이었다.

《물론 털코끼리의 뼈는 아니요. 오래전에 도태되여 멸족한 큰쌍코뿔이라는 짐승의 뼈로 추측이 되는데 큰쌍코뿔이뼈 역시 털코끼리뼈처럼 구석기시대의 유적층에서 흔히 보게 되는거요. 그것이 초시기의 신석기와 어울려 나타난것은 그 패총무지아근에서 구석기시대로부터 신석기시대 초기에 이르는 장구한 력사적기간을 두고 인간이 살았다고 추정할수 있게 하오. 여러가지로 시사해주는바가 많은즉 나는 선봉군 굴포리라는 고장으로 당장 떠나갈 결심이요.》

《언제 가시겠습니까?》

《오늘 저녁 라진행렬차로 떠나겠소.》

《그런데 선생님 혼자 가셔셔야 발굴작업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내 이제 고고학연구소에 가서 초시기의 신석기와 큰쌍코뿔이뼈를 보이면서 선봉군 굴포리라는 곳으로 발굴대를 파견하라고 권고해보겠소. 나는 한발 먼저 가서 확인을 해보구…》

강명호는 젊음을 다시 찾은듯 활기에 넘쳐있었다. 해가 기울면서 열려진 창문으로 신선한 공기가 흘러들었다. 그런데도 강명호는 오래된 부들부채를 찾아 앞가슴에 대고 활활 부쳐댔다. 구석기를 찾을수 있다는 기쁨으로 늙은이의 몸이 뜨겁게 달아올랐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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