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5 회)

제 4 장

3

 

강명호는 량쪽겨드랑이에 십여권의 고서들을 끼고 대학도서관을 나섰다. 자칫하면 겨드랑이짬에서 책들이 빠져나올듯싶었다. 많은 책을 빌려갈 작정으로 도서관에 오면서도 보자기를 가져올 생각을 미처 못했었다. 그는 건망증이 심한 자신을 탓하며 위태롭게 걸음을 옮겼다. 매캐할사하면서도 상긋하기도 한 해묵은 고서들의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수백년전의 책들이였다. 아득한 세월의 흐름속에 종이가 고삭고 글자색이 바래면서 독특한 냄새를 풍겼다. 강명호는 그 냄새를 좋아했다. 그것이 머나먼 과거의 력사가 후세에 전하는 생활의 체취같이 느껴지는것이여서 저절로 마음이 숙연해졌다.

《선생님.》

귀익은 유정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김정일동지께서 웃으며 급히 따라오시였다.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다가 나오시는 걸음인듯싶었다.

《무슨 책을 이렇게 많이 빌려가십니까. 이리 주십시오.》

《아니, 괜찮소. 》

《제가 날라다드리겠습니다.》

《그럼 우리 나누어들기요.》

강명호는 한쪽옆구리에 끼였던 책들을 김정일동지에게 넘겨주었다.

(언제보나 정일동무는 교원들에 대한 공경심이 지극하거던.)

그는 가슴에 포근히 서려드는 친근감을 느끼며 다시 걸음을 옮기였다. 느긋한 심회에 잠긴 그는 유정한 눈길로 사위를 둘러보았다. 태양은 중천을 벗어나 약간 서켠으로 기울었으나 해빛은 한낮때보다도 더욱 따스했다. 대학청사의 함석지붕우에서 아지랑이가 가물가물 피여올랐다. 부리에 마른 이끼를 문 새들이 푸르게 열린 창공을 날았다. 새 생명을 키울 보금자리를 마련하려고 분주히 서두는것이다. 길녘에 드문드문 서있는 버드나무는 어느결엔가 가지마다 재빛털이 야드드한 버들강아지를 탐스럽게 피워놓았다. 무척 기분이 밝아진 강명호는 그이를 향해 머리를 돌리며 다소 흥분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말하였다.

《마침 잘 만났소. 삼국통일문제에 대한 정일동무의 학과토론문을 그동안 내 여러번 읽었소. 실로 경탄한바는 컸지만 의혹이 가는것도 없지 않아서 정일동무와 직접 토론을 해보고싶었소.》

《무척 바쁘실텐데 짬을 내여 읽어주셨다니 고맙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 존경어린 안색으로 말씀하시였다. 어느덧 사무실에 들어섰다. 강명호는 들고온 책들을 책상우에 놓고 김정일동지께서 안고오신 책들을 받아놓았다.

《수고했소. 혼자서 가져오자면 애먹을번 했소.》

《선생님, 앞으로는 필요한 책이 있으면 학생들을 시켜서 빌려오도록 하십시오. 년로하신분이 그런 일에 걸음을 하시는것도 안되였지만 선생님의 시간이야 얼마나 귀중한것입니까.》

강명호의 주름진 얼굴에 엷은 미소가 잔잔히 피여올랐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책상우에 널린 책들을 한곳에 모아 쌓으며 제목들을 살펴보시였다. 최치원의 《계원필경》과 서거정의 《동국통감》, 권근의 《동국사략》과 리승휴의 《제왕운기》, 류득공의 《발해고》와 신채호의 《조선사연구초》, 왕흠약의 《책부원귀》와 장구령의 《곡강집》, 《일본서기》와 《속일본기》 등 동방삼국의 주요 고문헌들이였다. 그의 사무실책장속에도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구당서》와 《신당서》를 비롯한 적지 않은 고문헌들이 들어있으나 방금 빌려온 책들은 대학도서관에도 몇부씩밖에 없는것들이였다.

정일동무의 론문을 바로 리해하자면 문헌들을 다시 검토해야 할것같아서 빌려왔소.》

강명호는 김정일동지의 손을 잡아 쏘파쪽으로 이끌며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저도 그렇게 짐작했습니다. 저도 이 책들중의 몇권은 학과토론을 준비하면서 읽어보았습니다.》

《그랬을테지.》

강명호는 책상서랍에서 그이의 학과토론문을 찾아들고 가벼이 고개를 끄덕이였다. 그는 돋보기를 끼고 벌써 몇번이나 읽은 론문을 긴장이 어린 눈길로 들여다보았다. 론문의 표지에는 소제목들의 여백에 다른 학생들의 토론을 들으면서 견해를 달리하시는 문제들을 요약한 기록이 있었다. 《김유신의 평가문제》, 《통일에 대한 신라의 견해는 호전성에 기초하고있지 않는가?》 , 《전쟁과 평화에 대한 관점》

강명호는 다음장들을 번지며 얼핏얼핏 더듬어보았다. 이윽고 그는 머리를 들며 돋보기를 벗었다.

정일동문 대동강이북의 고구려 옛 땅에 발해국이 존재한것만큼 신라가 삼국통일을 하였다는것은 력사적사실과 맞지 않는다고 주장하였소. 그런데 발해를 고구려의 계승국으로 보느냐 아니면 말갈족의 나라로 보느냐 하는데 문제가 있소. 지금 력사학계에서는 이 문제를 두고 해결을 보지 못하고있는 실정이지. 발해가 고구려의 옛 땅에 세워진 나라라는것은 누구도 부인할수 없는 사실이지만 그것이 고구려인에 의하여 세워진 나라인지 말갈인에 의하여 세워진 나라인지는 도무지 갈피를 잡을수가 없소. 고문헌들에는 여러갈래로 기록들이 엇갈려있거던. 일부 학자들은 발해를 고구려계승국이라고 하면서도 신라와 같은 동족의 국가라고는 주장하지 못하고있소. 내가 우선 정일동무와 토론하고싶었던것은 발해와 관련한 이 문제요.》

얼마 남지 않은 백발을 정성스레 빗어넘긴 강명호는 전에없이 정중한 자세로 앉아서 김정일동지를 바라보았다. 론의되는 문제가 심각한것이여서 목소리조차 순조롭게 흐르지 못했다. 발해는 《해동성국》으로 200여년간이나 만방에 이름을 떨치며 동방의 강국으로 존재하여왔으나 거란족에 의하여 멸망하면서 자체기원의 력사적자료들을 후세에 남기지 못했다. 거란족은 발해가 창조한 찬란한 문화를 여지없이 파괴하고 고귀한 정신적유산이 담긴 책들을 모조리 불살라버렸다. 그랬기때문에 발해에 대한 연구는 정확한 사료적고증에 근거하기가 어려웠다. 《구당서》와 《신당서》를 비롯한 당나라시기의 력사서적들에 의하면 흔히 발해를 《고려별종》이라고도 했고 《속말갈》이라고 단정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발해의 창건자들인 대조영과 걸싸비우가 멸망하기 전 고구려의 귀족들이기는 하지만 속말갈인이였다고 하였다. 우리 나라의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도 발해의 력사를 언급한것이 없었다.

그런데 김정일동지께서는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한 우리 선조들의 국가였다는 확고한 전제밑에 삼국통일문제를 재고찰하시였던것이다. 그러니만큼 강명호는 커다란 의혹에 잠기지 않을수 없었다.

그이께서는 대답을 기다리는 강명호를 마주보며 조용히 말씀하시였다.

《저는 몇권의 책을 보았을뿐 사료에 대한 깊은 연구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본 사료들을 미루어보아서 그리고 무엇보다 력사발전의 합법칙성으로 보아서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한 우리 민족의 나라였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그이의 온화하던 존안이 어느새 흥분으로 빛나시였다. 오늘까지 외곡된 인식으로 민족사의 령역밖으로 밀려났던 발해의 력사를 기어이 되찾아야 한다는 숭엄한 감정, 론문을 집필하실 때 느끼시던 그 감정이 되살아나시였던것이다. 대국주의사가들과 사대주의사가들이 남긴 기록을 믿고있었던탓으로 발해가 타민족의 국가인것처럼 오인되여온 사실을 발견하시였을 때 사대주의로 점철된 민족사의 수치를 두고 몸부림치고싶은 심정이시였다. 사대주의로 하여 슬프게도 우리의 력사는 심한 훼손과 손실을 당했다. 그러한 실례의 대표적인것이 발해문제이다. 사대주의는 스스로 자기 민족의 엄연한 력사조차 남에게 넘겨주는 수치스러운 후과를 빚어냈다. 우리는 주체의 기치밑에 오늘과 래일의 우리 혁명을 전진시킬뿐아니라 과거에 이지러지기도 하고 잃어지기도 하였던 민족의 모든것을 되찾고 바로 정립하여야 한다! 이러한 결심에 추동되여 그 학과토론문을 쓰셨던것이다.

《선생님도 잘 아시다싶이 말갈족들은 고구려의 령역에서 살았던 소수민족에 불과했습니다. 그들중에는 이민족에 대한 배타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았던 고구려의 너그러운 정책에 의하여 높은 관직을 가졌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걸싸비우는 그런 사람들중의 한사람입니다. 발해의 건국에서 걸싸비우보다 더 큰 역할을 하였던 초대왕 대조영에 대해서는 그 민족별출신을 두고 당나라시기의 문헌들에 서로 상반되는 기록들이 있었습니다. 말갈족출신이라고도 하였고 고구려사람이라고도 하였습니다. 우리 나라의 한 실학자는 자기의 저서에서 대조영이 고구려족출신의 장군이였다고 명백히 지적하고있습니다. 저는 다른 이웃나라들의 문헌들보다 우리 나라의 애국적인 사학자가 후세에 남겨준 기록을 더 중시했습니다. 대조영이 어느 민족출신인가는 전해지는 기록마다 다르므로 앞으로 더 연구를 해서 정확한 고증을 하여야 할것입니다.

제가 발해를 고구려의 계승국으로 보는것은 나라를 세운 사람이 고구려사람이였다는 확신만을 념두에 둔것이 아닙니다. 보다 중요하게는 발해의 건국과정에 고구려인민들이 결정적역할을 하였다는 사실에 류의하였습니다. 력사의 창조자는 예이제없이 인민대중이 아닙니까. 멸망한 후에도 고구려령역에는 타민족사람보다 몇배나 더 많은 고구려사람들이 살고있었으리라는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라당련합세력에 의하여 나라가 멸망되게 되자 반당구국항전에 용감히 떨쳐나섰던 주되는 력량은 애국적인 고구려유민들이였습니다. 여기에 고구려에서 살던 말갈족들도 합세하였습니다. 자기의 독자적인 민족국가를 가져본적이 없었던 말갈족들에게는 동방강국이였던 고구려가 긍지높은 자기의 조국이였습니다. 그랬기때문에 그들은 잃어진 조국을 되찾기 위하여 고구려유민들을 따라서 과감히 당나라침략자들과 싸웠습니다. 그러니만큼 발해는 고구려를 계승하여 출현한 나라로밖에 달리 될수 없었을것입니다.

그런데 어째서 당나라의 력사책들에 〈발해말갈〉이나 〈속말갈〉이라고 씌여지게 되였는가 하는 의문이 생길수 있습니다. 저도 이번에 학과토론을 준비하면서 그런 의문을 가져보았습니다. 그것은 발해를 고구려의 계승국으로 인정하는것이 당나라지배층들에게 달갑지 않기때문이였을것입니다. 강대한 고구려의 존재에서 당나라는 늘 위협과 불안을 느껴왔습니다. 그들의 심리를 지배하던 고구려에 대한 공포와 적대감은 발해에 대한 태도에 그대로 이어졌습니다. 그래서 발해를 미개한 말갈족의 나라라는 외곡된 기록을 남겼을것입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저의 론리적추리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아무튼 우리는 대국주의사가들과 사대주의사가들이 써놓은 사료들을 비판적으로 보고 민족사를 바로잡아야 할것입니다.》

심중히 듣고있던 강명호는 끓어오르는 흥분을 누를길이 없는듯 두눈을 감았다. 력사의 짙은 안개속에 묻혔던 발해가 불쑥 광휘로운 빛발을 받으며 선명한 모습을 드러냈다. 혈통을 잃었던 발해가 민족사의 넓은 품안으로 안겨드는 순간을 보는듯싶었다. 그러나 그것은 한순간이였다.

그는 환각을 털어버리며 머리를 기웃했다. 발해가 고구려의 계승국이라는 사실이 더없이 경사로운 일이기는 했으나 그렇게 믿기에는 많은 의혹이 아직 남아있었다.

《그런데 정일학생, 설령 다른 나라 사가들이 남긴 기록은 곧이곧대로 믿기가 어렵다 하더라도 우리 선조들이 남긴 기록이야 믿어야 하지 않겠소?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도 발해에 대해 기록이 없으니 하는 말이요.》

《우리의 과거 력사기록들은 적지 않게 사대주의영향으로 사실을 외곡하였습니다. 선생님도 아시다싶이 이웃나라의 고문헌에 기자라는 외국사람이 고조선에 나와 왕노릇을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고 하여 〈기자동래설〉을 부각해서 전해온 사실이 그렇지 않습니까. 〈고려사〉에 그렇게 서술해놓았을뿐아니라 고려의 사대부들은 이웃의 큰 나라에 아부하면서 모란봉에 기자묘까지 요란스레 만들어놓았습니다. 그래서 후세의 사람들은 기자묘에 그 유해가 들어있는줄로 알고 〈기자동래설〉을 진실로 믿어왔습니다. 해방후에 수령님께서는 〈기자동래설〉을 도저히 믿을수 없다고 하시면서 기자묘를 파보라고 하시였습니다. 정작 파보니까 〈왕릉〉속에서 깨여진 기와장 몇쪼각이 나왔을뿐입니다.》

《그랬었지. 참 어처구니없는 일이였소!》

강명호는 무릎을 치며 탄식을 하고나서 말을 이었다.

《헌데 〈삼국사기〉를 쓴 김부식으로 말하면 모화사대사상에 젖은 고루한 학자로만 단정할수 없는 인물이였소. 그는 〈삼국사기〉를 지은 동기를 밝히면서 당시의 사대부들이 중국의 력사는 알지만 우리 나라 력사에는 어둡기때문에 이를 개탄하여 지은것이라고 하였소. 이를 보면 그에게는 민족의식이 있었단 말이요. 그런 그가 〈삼국사기〉에서 발해를 전혀 언급하지 않았으니 이를 어찌 리해하면 좋을가?》

김정일동지께서는 온화한 어조로 다시 말씀을 시작하시였다.

《김부식은 〈삼국사기〉를 편찬함으로써 민족앞에 매우 의의있는 일을 하여놓았습니다.

그러나 〈삼국사기〉에는 스쳐볼수 없는 몇가지 문제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세 나라가운데서 신라를 맨앞에 내세워 고구려, 백제에 비하여 가장 빨리 발전한것처럼 서술한것과 중국의 력사책들을 모방한것입니다. 후세의 연구에 의하면 고구려건국이 가장 빨랐고 그다음은 백제였고 신라는 가장 늦게 건국되였다는것이 증명되지 않았습니까. 저는 세 나라의 건국발전순위를 그렇게 고증하신 선생님의 론문을 읽은적이 있습니다.

또한 김부식은 고려가 신라의 전통을 이어서 건국된것처럼 외곡하여 서술하였습니다. 실상 세 나라시기의 우리 나라 력사는 신라가 아니라 고구려를 중심으로 발전하여왔습니다.》

강명호는 길게 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일학생의 말을 듣고보니 실로 생각되는바가 많소. 김부식이나 일연은 고려시기의 학자들이지만 그들은 다 신라귀족의 후예들이였거던. 그러다보니 력사앞에서 공정한 눈을 잃고 신라를 턱없이 내세우는 편견에 빠져버렸나보오.》

《그들은 주관적으로는 민족의식을 귀중히 여기려고 했지만 사대주의가 우심했던 당시의 시대적풍조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랬기때문에 력사적사실과 맞지 않게 서술한것이 적지 않습니다. 그들이 생존했던 시기에는 우리 나라의 력사책들도 많았겠는데 발해의 사료들을 외면한것도 그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정일학생의 론거가 옳다고 보아지오.》

강명호는 내심 경탄을 금치 못하며 수긍하였다. 우리 력사의 과거에 잃어지기도 하고 외곡되기도 하였던 모든것을 도로 찾고 바로 정립하여 긍지높이 만방에 선양하시려는 김정일동지의 애국애족의 심정이 세차게 가슴을 흔들었다.

그 예지의 빛발속에서 수수천년 력사의 기록들을 뒤덮었던 사대주의너울이 벗겨져나가는것을 눈앞에 보는듯 하였다. 동시에 자신의 력사관에 내재하던 본질적결함이 명백히 드러나는듯 한 느낌도 들었다. 구석기시대문제와 관련하여 무서운 량심의 가책을 느낄 때만 하여도 은연중 자기의 머리속에 남아있는 사대의식의 요소가 어데서 온것인지를 미처 몰랐었다. 자기딴에는 민족주체의식을 지향하여왔는데 어찌하여 력사인식에서 그와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왔는가? 이렇게 스스로 심각한 물음을 제기하고 몸부림도 쳐보았다. 하지만 지금에야 비로소 그 물음의 답을 찾았다. 그것은 민족고전에 대한 지나친 긍정과 애착때문에 일부 력사사료자체에 사대주의흔적이 어려있다는것을 가려보지 못한데 있었다. 그랬기때문에 저도 모르게 력사를 보는 눈이 흐려져있었다. 그릇된 인식의 사상적근원을 깊이 투시해본 그는 신음하듯 중얼거렸다.

《나는 결국 오랜 세월을 두고 사대주의를 물려온 우리 사학계가 산출한 정신적기형아라고 할수 있나보오.》

《지나친 말씀입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강명호의 침통한 얼굴을 따뜻한 눈길로 바라보며 말씀하시였다. 절절한 자기반성은 그의 량심의 깊이를 말해주고있었다. 사람들의 반성능력은 그가 지닌 량심에 비례하는 법이다.

《선생님과 같은 애국적인 학자들이 계셨기에 일제시기에도 우리의 민족고전들이 아주 인멸되지 않고 보존될수 있었습니다. 일부 민족고전에 사대주의적편견이 없지 않다 하더라도 그것은 우리 민족의 귀중한 유산입니다.》

강명호는 부드러운 그이의 어조에서 풍겨오는 진정어린 격려가 가슴에 스며드는것을 의식했다. 그는 지난날을 허무하게 여기며 자탄만 한것이 쑥스러워 붉어진 얼굴을 손으로 쓸어내리며 마침내 희미한 미소를 어설프게 그리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그의 기분을 더욱 밝게 하여주고싶으시여서 명랑한 어조로 말씀을 이으시였다.

《저는 력사문제를 가지고 선생님과 토론하기가 무척 조심스럽습니다.》

《어째서?》

《선생님이 지나치게 저의 소견을 심각히 받아들이시니까 송구스럽습니다.》

강명호는 드디여 눈가에 엉킨 깊은 주름을 폈다. 언제 어디서도 느껴보지 못한 류별히 애틋한 정에 휩싸여버렸다. 포근한 감정에 젖어들며 무겁던 마음이 어느새 싹 사라졌다.

정일학생의 견해가 새롭고 놀라운데다가 그 론리가 명백하고보니 심각해지지 않을수 없소. 정일학생과 이렇게 마주앉을 때면 새로운 깨달음으로 마음이 한량없이 즐겁기도 하오. 어제 저녁 우리 선희한테서 들었소. 정일학생도 아다싶이 우리 나라 민족형성문제를 두고 력사학계는 몇해를 넘기며 론의를 거듭해왔지.

정일학생이 학급동무들에게 민족형성문제를 명백히 해명해주었다는 말을 듣고 얼마나 흥분했는지 모르오. 참으로 정일학생이 력사학을 전공한다면 우리 학계의 발전을 위해서 얼마나 큰 행운일가 하는 생각을 지워버릴수가 없소.》

차분하면서도 활기띤 목소리였다. 방안에 떠돌던 심각한 분위기는 날려가버리고 오고가는 존경과 기대의 정이 따뜻이 서리며 즐거운 화기가 감돌았다.

《민족의 징표에 대해서 제가 그 무슨 새로운 해명을 한것이 아닙니다. 수령님께서 이미 명백히 밝히신것을 동무들에게 알려주었을뿐입니다.》

《그야 물론 그렇지. 내 어제 밤에 수령님의 로작들을 번지면서 민족의 징표에 대해 말씀하신 대목들을 찾아보았소.

우리 수령님께서 이미 정확히 규정하신 민족의 징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전의 명제를 따르면서 사학계가 헛되이 시간과 정력을 랑비한 일을 생각하면 기가 막힌 일이요.

정일동무는 수령님의 로작학습을 기본으로 하는 만페지책읽기운동을 발기하였다더군. 내 생각에는 그 운동을 학생들속에서만이 아니라 교원들속에서도 벌려야 한다고 보오. 나같은 사람의 경우를 놓고보더라도 수령님의 사상으로 무장하는것이 급선무라는것을 최근에 이르러 온넋으로 절감하는바이요.》

강명호는 담담한 어조로 내심을 고백했다. 그의 두눈이 전에없이 생기를 띠며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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