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청춘의 길

(한 남조선대학생의 고백)

                                                                                     김 병 훈

(제 4 회)

4

 

이튿날 아침 일어나서 마당에 나가 세면까지 하고나니 피로도 가시고 게다가 새날에 시작될 희망찬 첫 사업때문에 우리의 신심은 상쾌하였소.

우리는 밝은 날에 읍거리전모를 한번 보고싶어서 길에 나섰소. 바람은 어제보다 숙어졌으나 꽤 맵짜운 아침이였소. 그러나 시골의 맑은 아침대기는 우리의 페부속으로 상긋하게 스며들었소. 읍거리는 첩첩 다가온 산발을 배경으로 산기슭에 이삼백호 모여앉았고 읍마을앞으로는 넓은 벌이 펼쳐져있었으며 벌판 저 멀리 낮은 산발들이 누워있었소. 읍마을 중심을 꿰고 신작로가 지나갔고 길 량켠으로 거리 비슷한것이 형성되였는데 몇채의 함석과 기와지붕의 집들이 이마에 크고작은 간판들을 붙이고있었소. 마을 뒤산기슭쪽으로 좀 높은 언덕진 곳에 어제 찾아갔던 면사무소가 있고 그 오른편으로 좀 떨어져서 일정때 지은듯 한 목조건물의 긴 학교교사가 보이였소. 그리고 면사무소 왼편으로 역시 좀 언덕진 곳에는 몇그루의 앙상한 나무가지속에 잘 지은 집 두채가 나란히 서있었소. 한채는 날아갈듯 한 기와집이고 또 한채는 빨간 뾰족지붕이 솟아오른 양옥이였소. 거기서 좀더 왼편쪽으로 함석지붕을 이고 높은 담벽에 촘촘히 철창을 낸 커다란 창고가 솟아있었소.

영근이는 언덕우의 화려한 두채의 집을 바라보다가 《진석이, 저 집을 우리 병원으로 잡았으면 좋겠군!》하면서 선망의 빛을 감추지 못하는것이였소.

나는 그가 민망스러워서 그냥 고개만 끄덕이며 빙긋이 웃을따름이였소.

《서울의 우리 집 같은거 열채를 판대도 안되겠지.》하고 그도 이내 현실에 돌아와 서글프게 웃는것이였소. 그러나 조반을 먹고난 우리는 용기백배하여 계획대로 그날 첫 일과인 국민학교로 찾아갔소.

면장의 말그대로 학교에 미리 다 기별이 있은 모양으로 교장과 수석교원이 반가이 맞아주면서 이어 조회종을 울리였소. 교정에는 아이들이 우르르 모여들었소. 한 이삼백명가량 되여보이였소. 우리를 교단뒤에 세워두고 교장이 먼저 교단에 올라가서 목대를 돋구어 우리를 소개하였소. 이어 영근이가 교단에 올라갔소. 학생들은 낯선 우리에게 호기심이 당기는지 교단우에 선 영근이와 밑에 서있는 나를 번갈아 보면서 웅성웅성거리였소.

그러자 내옆에 서있던 교원이 한발 성큼 나서면서 《조용들 해라!》하고 꽥 소리를 질렀소. 아이들은 물을 끼얹은듯이 조용해졌소. 연단에 선 영근이가 거북한지 둬번 마른기침을 깇더니 말을 시작하였소.

《여러 학생들, 일찌기 옛 성현이 말하기를 건전한 육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 하였소. …》

나는 이 말을 듣자 저도 모르게 쓴웃음을 금할수 없었소. 이것은 우리가 중학교에 처음 입학한 날 서당훈장같이 생긴 담임선생의 첫 훈시이기도 했거니와 영근이가 이번 계몽행각을 준비하면서 노상 연설준비한다는게 그 말부터 시작하더니 정말 그대로 되였기때문이요.

《건전한 육체가 없이는 건전한 정신이 없다는것은 동시에 건전한 국민과 건전하고 부강한 나라가 있을수 없다는것을 말합니다.》

저 친구 잘은 번져나가는걸… 하고 속으로 생각하면서 나는 섰던 자리를 떠나 학생들쪽으로 뒤짐을 진채 슬금슬금 발길을 옮기였소.

《그런데 건전한 육체라는것은 다만 호의호식하고 놀고먹는데서만 오는것은 아닙니다. 옛날 어느 부자집에 아들이 있었는데 고이 놀리면서 닭이며 소를 들이먹였지만 빼빼 여위기만 하였소. 그런데 머슴은 누룽지나 붙으면 긁어먹이면서 하루종일 뼈빠지게 마소같이 부리지만 몸이 튼튼해지기만 했거던. 그래서 부자집어머니가 의사한테 가서 물어보니까 의사가 하는 말이 가마밑에 깔아앉은 누룽지에는 음식의 온갖 영양분이 다 몽쳐있는것이고 가마우에 뜬 밥은 부피만 많지 영양이 없는거라고 엉터리대답을 했소. 부랴부랴 돌아온 미욱한 녀자는 머슴에게는 아들대신에 여위여 죽어라 죽어라 하고 흰쌀밥에 고기국만 먹이고 제 아들에게는 누룽지만 긁어먹이였더니 머슴은 더욱 몸이 나고 아들은 새들새들 시들어 죽어버렸답니다.》

아이들속에서 하하하 하고 웃음이 터졌소.

《그러니까 건강이란 적당한 섭생과 단련, 말하자면 위생보건지식을 잘 알고 그에 비추어서 생활을 잘 꾸리고 단련해나가야 얻어지는것입니다.》

열이 오른 영근이는 이어서 소년시절의 발육을 잘 보장하기 위하여 어떤 음식을 먹어야 하며 편식을 하지 말아야 하며 춘하추동에 어떤 위생을 지키며 하루의 일과는 어떻게 짜며 특히 공기와 태양의 혜택을 잘 리용해야 한다는 등 학교위생의 일반을 쭉 내리엮는것이였소.

나도 그의 구변좋은 말에 끌리여 멍하니 쳐다보다가 다시 발길을 돌리여 학생들속으로 걸어들어갔소. 나는 문득 발을 멈추었소. 맞은편에 서있는 소년의 발에서 눈길을 뗄수가 없었소. 아래도리가 너덜거리는 무명잠뱅이는 무릎아래를 한뽐도 못 가리운채 드리워있고 그 아래도리는 그냥 발갛게 벗었는데 맨발에 짚신을 신었소. 발목, 발등 할것없이 온통 터서 피가 내배이였소. 얼굴이 파랗게 추위에 질린 소년은 오돌오돌 떨면서 선생들의 눈치를 힐금힐금 살펴가며 살짝살짝 발을 엇바꿔 디디고있었소.

나는 그제야 주위에 서있는 학생들을 쭉 살펴보았소. 태반의 학생들이 그와 대동소이로 발을 벗거나 뭐이라고 형체를 가려볼수 없는 그런 누더기를 발에 감고 짚신을 신었소. 나는 멍하니 학생들의 누렇게 뜬 영양실조에 걸린 얼굴이며 피터진 발이며 정기를 잃은 멍청한 눈을 바라보다가 그만 고개를 돌리고 아이들속에서 나와 먼산만 바라보았소.

그러나 영근이는 아랑곳없이 신이 나서 연설을 하고있었소.

《그리고 야맹증 같은것은 쉽게 고칠수 있습니다. 어머니 장바구니에서 멸치를 한줌만 얻어가지고 주머니에 넣어둔 다음에 이따금 생각나면 한개씩 꺼내먹으면 이내 고칠수 있습니다. 그리고 봄, 가을에는 반드시 기생충을 구제해야 하는데…》

(저 친구 학생들이 오돌오돌 떠는 꼴이 안 보이나?)

영근이는 한 20분나마 연설을 하고서야 벌겋게 흥분한 얼굴에 보람과 긍지의 빛을 가득 담고 교단에서 내려섰소. 나를 보자 그는 (어때?…)하는 눈치로 빙긋이 웃는것이였소. 나는 첫 사업에 보람을 느끼고있는 그의 흥분을 깨치고싶지 않아 마주 끄덕여주었소. 돌아오는 일요일에 우리는 전교 학생들의 집단검진을 하기로 약속을 하고 학교를 떠났소.

산기슭을 따라 어제 약속한대로 렬차에서 만났던 만성이의 마을인 고양리로 향하였소. 한동안 우리는 말없이 걸었소.

《어때, 진석이. 내 말에 실수가 없었나?》

이윽하여 영근이는 덧없이 침울해진 내 눈치를 살피면서 이렇게 물었소.

《실수? 아, 아-니, 아주 잘했어. … 근데 좀 길어진것 같애.》

나는 나대로의 생각에 잠겼다가 이렇게 대답하였소.

《길다니? 40분밖에 안 걸렸는데, 학생들도 흥미있어하는것 같던데…》

《영근이, 자네 학생들의 몰골을 살펴보았나?》

내가 정색하며 불쑥 이렇게 묻자 영근이는 《아니! 참, 연단에 처음 올라서니까 사람들이 잘 보이지 않더군…》하면서 의아한듯이 나를 쳐다보았소.

《태반이 맨발에 짚신을 신었는데 터서 피가 내배였더군.》

《그래, 그럼 진작 말하지. 고약을 좀 발라주고 올걸.》

《고약?… 고약이나 가지구 되겠나. 아래도리는 벌거벗구있는데…》

《에 참, 그건 부모들의 책임이야. 아무러면 제 자식 발 하나 싸매줄 누더기라도 없겠나! 무교양, 암매… 정말 깨뜨려버려야겠네.》

《여보게, 아무튼 되돌아가서 고약을 좀 발라주구 오세.》

우리는 부랴부랴 되짚어가서 고약 한통을 통채로 수석교원앞에 내놓고 고양리로 돌아섰소.

고양리어구에서부터 우리는 순서를 가리지 않고 차례로 집집을 방문하기 시작하였소.

순녀.

그 과정에서 보고 들은 광경을 여기에 다 적는다면 아마도 나는 이 글을 끝맺지 못하고 미치고야말것이요.

굶주리고 병든 로인들, 아이들, 아낙네들과 장정들이 집집마다 누워있었소. 기진한 그들은 신음소리마저 지르지 못하였소. 우리는 그들의 가슴에 청진기를 대고 병든 고동소리를 엿듣고 여윈 손목을 잡고 고르롭지 못한 간신히 뛰는 맥박을 감촉하였으며 마른 나무가지같이 앙상한 몸통을 두드려 궁근 소리를 들었소. 열심히 병력서와 처방전을 쓰고는 약을 봉지에 싸주고 주사를 놓은 다음 위생보건에 대한 일장 해설을 하고 그리고는 또 다음 집으로 옮겨가군 하였소.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며 치하하는것이였소. 영근이는 자못 신이 나서 앞장서 걸어가는것이였소. 나는 어째선가 어제 저녁의 그 의욕과 신념이 어디라 없이 꺾이우는것을 느끼기는 하였소. 그러나 어쨌든 이 고통받는 겨레들에게 얼마만큼이라도 기쁨을 주었다고 생각하니 우리들이 택한 이 길이 고난에 찬 길이기는 하나 보람찬 일이라는 뿌듯한 긍지감이 가슴속에 차오르는것이였소.

이 땅에서 생을 받은 사람들의 고통! 그것은 우리 서울거리에서 나서자란 철부지들이라 할지라도 이미 제눈으로 목격하고 그리고 제몸으로도 체험해온 현실이지만 이 변방벽촌에 사는 농민들, 그것도 깊이 생활속에 뛰여들어 대하고보매 새삼스럽게 숨이 꺽꺽 막히여 견딜수가 없을 지경이였소.

아, 만일 헐벗고 굶주린 그들에게 쌀과 옷을 줄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가!

나는 때로 처방전에다가 무심결에 쌀, 고기… 하고 써넣었다가는 스스로 놀라며 얼굴이 확 달아올라서 슬그머니 그 처방전을 꾸겨 주머니에 쓸어넣군 하였소.

어느 한 초가집에 들어가니 방안에는 예순살전후나 되여보이는 할아버지 한분이 누워서 가냘픈 신음소리를 내고계셨소. 할아버지는 배를 끌어안고 모로 꼬부리고 누운채 허리를 펴지 못하였소. 우리는 다급히 치료하기 시작하였소. 로인은 심한 위궤양으로 전신이 쇠약하였는데 게다가 음식물이 또 관격이 되여 매우 위태롭다는것을 알수 있었소. 우리는 구급조치로 모르핀 한대를 놔주었소.

한참후에야 로인은 숨을 후- 내쉬고 우리를 의아하게 살펴보는것이였소. 나는 약을 한봉지 지어서 머리맡에 놔주면서 우리들이 온 목적과 할아버지의 병상과 치료방도를 대주었소.

우리를 쳐다보는 로인의 퀭하게 꺼져들어간, 기력이 쇠잔한 두눈에 갑자기 생기가 빛나기 시작하였소. 문득 로인의 깊은 눈확에 무엇인가 반짝이더니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리였소. 로인은 두손을 간신히 모아 나의 손을 꼭 쥐고 어루만지며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더니 목메인 소리로 이렇게 말하는것이였소.

《뉘 집 자손들인지 기특들 하우. …이 땅우에 임자들 같은 사람두 살아있다니… 하기사 우리 백성들이야 없어서 헐벗고 굶주린게 죄지 속은 멀쩡하면서두…》

로인은 그러고도 한참동안 눈물을 흘리고나서야 말을 이었소.

《그러나 젊은네들, 이 늙은것일랑 상관말고 어서 이 약두 다 가지구 가서 다른 사람들이나 돌봐주게. 나같이 다 죽을 나이 된게야 목숨이 검질겨 붙어있는게 원쑤지 뭐가 아까울게 있다구 약을 먹구…》

《할아버지, 고정하십시오. 일어나실수 있습니다. 음식을 잘 가리셔야겠습니다. 매운것, 짠것은 아주 해롭고 굳고 찬 음식을 피하시고 될수록 문문하고 따끈하고 소화가 잘될 음식을 자시면서 저 약을 쓰시면 이내 나을수가 있습니다.》

영근이가 간곡히 타일렀소.

《고마우이, 젊은이. 고마워… 하지만 내가 무슨 수로 그런걸 가려먹겠나. 저기 저 웃끝을 보게.》

로인은 어스크레한 웃끝을 가리키였소. 눈여겨보니까 거기 광주리에 무엇인가 무드기 담겨져있었소. 일어나서 다가가 살펴보니 그것은 갓 벗겨낸 송기였소. 우리는 마른 장작개비같은 그것을 그저 묵묵히 바라볼뿐이였소.

《그게 바루 우리 량식이웨다. 매운것, 짠것은 가려먹을래도 없어서 못 먹거니와 만문한 음식을 어디 가서 가려먹겠나. 온 마을이 그걸 먹구 사는 판인데…》

《아니, 그래두 지금이야 금방 가을걷이를 했는데요.》

나는 항의라도 하는듯이 로인에게 다가앉으며 물었소. 로인은 민망스러운듯이 나를 바라보았소.

《가을을 했지, 한데 금년에는 무슨 놈의 조화속인지 지주량반이 종곡까지 몽땅 긁어갔다네. 례년 같으면 다문 몇알갱이라도 남겨주거나 아니면 다 가져갔다 하더라도 썩은 좁쌀이라도 장리로 몇섬 대주댔는데 금년에는 묵은빚을 일단 청산하고본다면서 싹 걷어가버렸지. 그래도 빚을 다 못 갚은 집에서는 종곡까지 걷어갔는데 종곡은 뭐 후에 어디서 개량종을 구해다준다나?! 그리구선 종무소식이니 벌써 가을한 이튿날부터 이 지경으로 풀뿌리, 나무껍질, 겨 같은것으로 연명하는 판일세. 사람의 창자가 돼지창자가 아닌 이상에야- 어휴, 어찌될라는 세상인지!…》

《아니! 어떤 놈이게요, 그놈의 지주는?》

나는 재차 다우쳐물었소.

《누군 누구겠소. 젊은 면장나으리 강태웅이지.》

《아, 아니! 그 사람이요?》

《그렇소. 작년 여름에 강주사라는 제 애비가 죽은 뒤에 그 사람이 집안일을 다 주관하게 됐다우. 그 독사같이 악착하던 제 애비가 죽은 뒤에 그래도 젊은 도련님이 개명도 하구 했으니 한결 나으려니 했는데… 이건 또 한술 더 뜨누만. 이대루 열흘만 더 가면 온 마을이 몽땅 씨도 없이 굶어죽수다요.》

《아, 아니! 그 사람이 그럴 사람이 아닌데요.》

영근이가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로인에게 다가앉았소.

《글쎄, 우리두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수다. 향토재건, 복지재건, 도의재건하고 마을마다 돌아다니며 입에 거품을 물고 재건토론을 하면서 모든 힘을 이 일에 바치겠노라 절절히 맹세도 하구. 그런데 그놈이 하는짓이란 복지사회는 고사하고 생지옥재건이지요. 하기야 그동안 왜정때 <징용법> 같은것도 하나 재건해서 장정들을 어딘가 다 끌어가고 소작인들을 동원시켜 제놈의 첩들일 집도 재건하구 돌아가면서 못된짓은 수태 재건해놓았수다.》

《아니, 그렇지만 장리두 안 주구 종곡마저 걷어가면 래년엔 제땅에서도 풀밖에 돋아날수 없다는것쯤이야 알것 아니겠습니까?》

나는 하두 납득이 안 가서 다시 물었소.

《글쎄, 그 말이웨다. 그놈이 농사를 몰라 미욱해서 그짓인지 또 무슨 도깨비배속같은 다른 꿍꿍이가 있는지, 아예 백성들의 씨를 말리우는 재건을 하려는건지… 아무튼 이대로는 더 못사오. 인젠 정말 결판을 낼 때가 왔소.》

나는 분노에 이글거리는 로인의 눈을 한참이나 멍하니 바라보았소.

영근이도 더 할 말을 찾지 못하고 떨리는 손으로 청진기며 체온계며를 주섬주섬 가방속에 꿍져넣고있었소. 나도 그런것들을 함께 걷으려고 했으나 손이 후들후들 떨려서 견딜수가 없었소. 벌써 절반이나 배가 훌쭉해진 약 보따리끝을 몇번이나 고쳐쥐고서야 매듭을 맬수가 있었소.

(로인의 머리맡에 놓은 한봉지의 약이 무슨 소용에 닿으랴. 방금 다시 송기밖에 목에 넘길것이 없는 위궤양환자인 그에게!…)

나는 뜨거워지는 낯을 가까스로 숙이고 로인의 집에서 나왔소.

나는 별로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영근이의 뒤를 따라 그 이웃집 문앞에 섰소. 금방 쓰러질듯 한 오막살이인데 해묵은 초가지붕은 추녀아래로 처져내려 땅에 닿을듯싶었소. 영근이가 문전에서 주인을 찾았으나 대답이 없었소. 앓아누운 집에서는 대체로 그런 본새였으므로 우리는 재차 주인을 부르며 문을 슬며시 열고 방안에 들어섰소. 어둑한 방안은 처음에는 잘 보이지 않았으나 이윽히 들여다보니 방복판에는 웬 사나이가 우리와 등을 돌려대고 구부정하니 방바닥을 들여다보고 앉아있었소. 사나이의 맞은편에는 가지런히 누워있는 두 아이의 머리가 보였소. 이윽히 서있던 나는 그만 흠칫 놀라지 않을수 없었소. 바로 만성이였던것이요.

《아니, 만성씨가 아니요?》

나는 소리쳤소. 그제야 만성이는 고개를 돌렸소. 웬 일인지 그의 얼굴은 하루사이에 더욱 컴컴해지고 눈확은 우묵히 꺼져들어갔소. 실성한 사람같이 멍청한 눈동자가 우리를 이윽히 쳐다보았소. 문득 우리를 알아본 그의 눈에 반기는듯이 생기가 돌더니 이내 뿌옇게 흐려지면서 두줄기의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리였소. 그는 헉! 하고 흐느끼면서 고개를 푹 꺾고 어깨를 세차게 들먹거리며 흐느껴울기 시작하였소.

우리는 누워있는 애들에게 달려들어 손목을 잡아보고 누더기를 들추고 가슴에 귀를 댔소. 그러나 예닐곱살쯤 돼보이는 아이는 벌써 숨을 넘긴듯 가슴에는 아직 미온이 남아있었소. 강심제를 놓았으나 그 어린것의 꼭 감은 눈은 다시 떠지지를 않았소. 애들의 머리맡에는 만성이가 어저께 가방속에 꿍져오던 그 보리밥덩이와 우리가 싸준 빵덩이들이 뒹굴고있었소.

순녀.

나와 함께 울어주오. 무슨 말을 할수 있겠소. 말이라는건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는것인데 사람의 상상으로 생각할수 없는 이 가혹한 참상앞에서 무슨 말인들 할수 있겠소!

이윽해서야 만성이는 좀 진정하고나서 떠듬떠듬 사정이야기를 들려주는것이였소.

어제 저녁 우리와 헤여져서 허위단심 달음질쳐 아직 본 일없는 딸이름을 《금녀야!》하고 부르며 집마당으로 뛰여들었으나 꽉 닫힌 문안에서는 아무 대답도 없고 문창에는 불빛도 없이 컴컴하더라는거요. 방안에 들어서자 싸늘한 바람이 씽 도는데 어디선가 모기소리같이 가냘픈 목소리가 《엄마 왔나? 밥가지구… 난 배 안 고파. 성남이 줘.》라고 하더라는것이였소. 불을 켜고보니 두 아들이 누데기속에 가지런히 누웠는데 성남이의 몸은 벌써 싸늘하게 식었고 큰아이 성호만이 겨우 숨이 붙어서 눈뜰 맥도 없이 누워 할딱거리고있었다는것이요.

《얘, 성호야. 아버지다! 아버지, 아버지가 왔다. 응? 정신차려!》

그제야 성호는 눈을 슬며시 뜨더니 아버지의 낯선 얼굴을 이윽히 바라보더라오. 소년의 눈굽에 맑은것이 맺히더니 귀밑으로 주르르 흘러내리였소.

만성이가 부리나케 빵을 꺼내서 입에 물려주었더니 어린것은 가까스로 고개를 외로 돌리면서 《아버지, 난 배 안 고파, 성남이 줘요. 성남이 자꾸 배고프다 했는데…》라고 거듭 외우는것이였소.

《성호야, 성남인 벌써… 벌써…》

만성이는 성호에게 빵을 잘게 뜯어 입에 넣어주었소. 그러나 인제는 음식을 받아먹을만 한 기력조차 없어서 잘 넘기지 못하였소. 여러번 까무라치면서도 간신히 밤은 새웠는데 그만 방금 얼마전에 이렇게 숨을 거두었다는것이였소.

《동네사람들의 말이 열흘전에 금녀가 굶주리던 끝에 송기먹은것이 체하여 경풍을 일으키다가 죽어버렸다는군요. 그래서 제 에미는 인제 어디 가서 별짓을 다해서라도 먹을것을 구해오지 못한다면 역시 굶주려 쓰러져 시들시들하는 남은 두 아이도 마저 죽이겠다고 하면서 어디론가 떠나갔대요. 집을 떠나면서 애들을 붙안고 <이삼일만 기다려라. 엄마가 하얀 밥 많이 가지구 올께. 응? 성호야, 성남일 잘 돌봐줘라. 송기를 벗겨서 먹어라. 엄마가 돌아올 때까지만 살아서 기다려라. 응, 내 자식아!>라고 말하면서 하염없이 울다가 떠나갔는데 상기 안 돌아왔답니다. …》

만성이는 다시 실성한 사람같이 멍하니 담벽을 쳐다보고있었소.

《강태웅 그 사람이 너무 심하지요. 차칸에서 도련님이라고 부르던 사람말입니다. 작년 가을에 곡식을 걷어들이자 마름녀석이 달구지를 가지고와서 묵은빚까지 쳐서 종곡마저 남기지 않고 싹 실어갔답니다. 그런데 며칠후에 와서 땅까지 뚝 떼고말았다는겁니다. 뭐 제일 좋은 땅을 주었는데 벌써 몇해째 제대루 소출을 못 내느냐고, 약차한 손해를 봤다고 하면서 울며 매달리는 제 녀편네를 동댕이치고 갔답니다그려. 제가 군대에 끌려가 7년이나 있는 동안에 처가 애들 셋이나 데리고 어떻게 장정들처럼야… 제놈이 나하구 감히 그럴 처지야… 그놈이 어릴적 학교다닐 때 마른날 궂은날 없이 저앞 강물을 내가 업고 건네여주고 건네여오군 했지. 어느 겨울엔가 한번은 썰매를 타다가 얼음구멍에 빠져죽게 된것을 내가 되려 죽을번 하면서 구해주었는데… 어유, 생각하면 어떻게 제가 그럴 법이!… 그러니 안해가 온 일년동안 별의별노릇을 다하여 세 어린것을 데리고…》

문득 그는 말을 끊었소. 그의 눈에는 눈물도 흐르지 않고 이상한 빛발이 번뜩거리고있었소. 우리도 그만 분격이 지나치니 목구멍만 꺽꺽 막히여 말을 못하고 그와 마주앉아있을뿐이였소.

《어디 그럴수 있단 말이요. 그럴 법이! 진석이, 가자구. 그 귀축같은 놈을 당장!…》

불현듯 영근이가 주먹을 쥐고 일어나서 웨치였소. 영근이의 파랗게 질린 얼굴의 작은 눈에서는 불꽃이 튀고있었소.

《그만두시우다. 애당초 우리 같은것들이, 이 세상에 살 팔자가 못되는것들이… 그저 이놈의 세상에다 불을 콱 지르구 나두 그속에서 타죽었으면 좋겠시다!》

순녀.

우리는 만성이를 도와서 두 아이의 주검을 묻어주었소. 그리고 나는 주머니속에 있는 돈 몇푼을 나누어주고 어떻게든 아주머니를 찾아보라, 살아야 한다, 일이 있으면 우리와 의논하자, 이런것을 신신당부하고 읍으로 통하는 길에 나섰소.

어둡고 스산한 밤이였소.

아- 어떻게 산단 말인가? 하늘을 쳐다보나 땅을 굽어보나 캄캄한 이 땅에서 어떻게 사람이 산단 말인가? 살기가 역겨웁구나. 이 세상에 목숨을 부지하고 그리고 더군다나 량심을 가지고 산다는것이!… 이렇게도 매정하고 가혹하게 모든 사람들에게서 생존의 최소지탱점까지도 깡그리 휩쓸어가는 세상!… 정말로 이 땅덩이우에는 참사람들이 사는 세상이란 없는것이며 앞으로도 없을것이나 아닌가?! 이따금 환상의 나라와 같은 이야기를 보내오는 저기 북쪽에라도 한번 가봤으면…

달기도 잘하고 식기도 잘하는 영근이지만 그도 아무말없이 앞을 바라보며 걷기만 하였소. 읍거리어귀에 들어섰을 때 나는 영근이에게 말했소.

《영근이, 가자구. 가서 그놈과 결판을 내자구!》

나는 면장과 담판하여 무엇을 결판낼지 미처 생각한것도 없었으나 어쨌든 그자와 만나지 않고는 배길수가 없었소. 영근이도 고개를 끄덕이였소.

려인숙앞을 지나쳐 가려는데 대문앞에 나와있던 주인녀자와 만났소. 그 녀자는 우리를 보자 해사하게 웃으며 다가왔소.

《아유, 어디들 갔다가 이제들 오셔? 시장들 하시겠네. 어서 들어들 가시지. 면장님이 잘 대접하라 하셨는데…》

《아주머니, 그 면장네 집이나 대주오.》

주인녀자는 성이 독같이 난 나의 얼굴을 의아한듯이 쳐다보았소.

《아니, 뭐요? 면장댁도 모르셔요?! 저기 저 남산우의 집이예요.》

《그 두채중에서 어느게요?》

영근이가 다우쳐물었소.

《호호호, 두 집 다 면장댁이지요.》

《두 집 다라구?!》

우리가 놀라자 녀자는 한번 더 간드러지게 웃었소.

《호호호, 왜 놀라세요?! 우리 면장님은 참 활량이구, 난봉이구, 게다가 통도 크구 참, 정말 자기 말마따나 현대적인 대장부라지요. 웃채의 고래등같이 보이는 기와집에는 방안에 살림살이도 모두 옛날식그대루 으리으리하게 차려놓았구 또 그옆에 하이칼라양옥에는 집안의 양탄자며 가장집물이 모두 일본과 미국에서 주문해온 알짜배기 양식가구라나요. 글쎄, 이것 봐요.》

나는 역겨워 견딜수 없었으나 부질없는 그 계집은 제멋에 겨워서 떠벌여대는것이였소.

《글쎄, 취미두 참 고상하셔. 기와집에는 개름한 얼굴에 머리를 쪽지고 꼬리치마와 저고리를 입은 몸매가 날아갈듯 한 진주기생을 첩으로 들여다가 가야금소리, 사랑가소리 그칠새없고 양옥에는 서울서 녀학생첩을 들여다가 피아노라 하는것을 뚱땅거리며 밤낮으로 꾀꼴새소리거든요.》

《정말이요?》

우리는 소리를 버럭 지르며 그 녀자에게 다가들었소.

《어마나, 이 학생들이 왜 이러셔요?》

그 녀자는 눈이 둥그래서 대문안으로 들어갔소.

우리는 그길로 무슨 일을 치를것 같이 면사무소로 달려갔으나 강태웅이는 무슨 개발조사단인가 한 손님들과 함께 시찰나갔다는것이였소.

행여나 해서 언덕우의 집을 찾아가서 솟을대문을 두드렸소. 대문 량편기둥말기에 새겨붙인 사자대가리가 우리를 잡아먹을듯이 아가리를 쩍 벌리고있었소. 그러나 그 자식은 집에도 없다는것이였소.

우리는 기진한 걸음으로 려인숙으로 돌아와 얼빠진 사람같이 방에 쓰러졌소. 심부름하는 아이가 밥상을 들여왔지만 차마 밥숟가락이 손에 들리지 않았소. 어떻게 이 땅에서 사람의 낯가죽이라도 쓰고사는 사람이라면 밥숟갈을 목구멍에 떠넣을수 있단 말인가! 차라리 그들과 함께 헐벗고 굶주리다가 같이 죽어버리고싶은 생각이 가슴에 사무쳐 올라왔소.

《진석이.》

영근이가 부르짖으며 일어나 앉았소. 그의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줄줄 흘러내리고있었소.

《진석이, 너무 가혹하네. 너무나…》

나도 마주 눈물을 흘리며 그의 뜨거운 손을 꼭 잡았소.

《현실은 너무나 가혹하게… 우리를 맞아주네. 이렇게 첫걸음도 채 떼기 전에 산산이 부셔버리다니!…》

나는 고개만 끄덕이였소. 우리는 더욱 눈물이 북받쳐 울었소.

《우… 우리는 어떻게 하나? 응? 어떻게 살면 된단 말인가?!》

순녀, 이것은 물론 우리가 새삼스럽게 아는 현실은 아니였소. 단지 우리는 이 참혹하고 타락한 생활속에서도 자기의 최소한의 량심이라도 살려서 사람답게 살아보려고, 다만 몇사람의 고통이라도 덜어보려고 리상이라는것을 세우고 아글타글 이끌고왔건만… 그리고 그 보잘것없는 리상이라도 현실속에 어떻게든 살려보려고 이렇게 길을 떠났건만 그 리상은 생활속깊이 옮겨오자마자 뿌리도 내려보지 못하고 동강이 나는것이 아니겠소.

우리는 손을 마주잡고 울부짖으면서 밤을 지새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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