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청춘의 길

(한 남조선대학생의 고백)

                                                                                     김 병 훈

(제 2 회)

2

 

우리가 다시 렬차를 갈아탔을 때는 차창으로 아침노을이 불그레 흘러들고있었소. 긴 화물렬차끝에 객차는 두차량밖에 안 달았건만 손님은 별로 많지 않았소.

렬차가 떠날무렵에 웬 허우대가 큰 제대병인듯 한 사나이가 차칸에 들어오더니 우리옆에 와 서서 앉잔 말도 없이 서성거리였소. 물이 날은 사병용여름군복을 입었는데 등이 구부정한 서른 남짓한 사나이였소.

영근이가 이내 자리를 조이고 앉기를 권하자 장정은 황공한듯이 허리를 굽석하고 걸상 한끝에 조심스럽게 궁둥이를 붙였소. 그의 짐이라고는 무릎우에 올려놓은 쌀 서너되박이나 될가 한 부피의 카키색천으로 만든 멜가방 하나였소.

렬차가 떠났소. 우리는 결핵치료에 적용하려고 하는 약물치료와 섭생을 배합한 새로운 료법에 대하여 열렬하게 론쟁하고있었소. 그런데 그 제대병은 자리에 앉아서도 줄곧 안절부절 못해하면서 마치 무엇엔가 쫓기고 위협당하는 사람같이 불안과 초조감에 싸여 창밖을 내다보고있었소.

영근이와의 론쟁을 일단락 짓고 담배를 피워물었는데 제대병은 문득 《저… 선생님, 이 차가 성안역에 몇시쯤이면 닿겠는지요?》하고 마치 무슨 죄나 사과하는 사람같이 더듬거렸소.

《지금 여덟시 반이니까 제대루면 열둬시쯤에 가닿겠죠.》하고 영근이가 아버지의 유물이라고 자랑하는 구식회중시계를 꺼내보면서 대답하였소.

《열둬시라구요, 고맙십니다. …》

《그래, 성안까지 가시는가요?》

내가 이렇게 묻자 제대병은 대답대신에 그 쫓기는듯 한 눈을 들어 당황히 나를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이였소.

《동행이시군요. 우리도 거기까지 갑니다. 그래 군대에서 제대되여 돌아가시는 길인가요?》

《그렇십니다.》

《이제 집에 돌아가면 퍽 반가와들 하시겠습니다. 처자분들이 다 계시겠지요?》

그러자 사나이의 무뚝뚝하던 얼굴에 갑자기 빙긋이 미소가 어리였소.

《그렇십니다. 그런데 한달전부터 통 기별이 없어서…》

그제야 나는 제대병의 쫓기우는듯 한 표정은 다만 군대생활에서 벌어오는 선물일뿐만은 아니라는것을 알수 있었소.

《별일없을겝니다. 한달동안에 무슨…》

나는 그를 위로하고싶어서 이렇게 말하였소.

《그럴가유? 하지만…》

사나이는 미간을 찌프리며 한숨을 내쉬였소.

《세상이 하두 어수선하니 어디…》

《일없어요. 아무러면 …그보다두 어디 군대생활이야기나 좀 들려주시우.》

나는 그의 불안한 생각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려고 다른데로 말머리를 돌렸소.

《군대생활이요?…》

제대병은 나를 쳐다보며 어줍게 웃었소.

《글쎄, 저 같은게 졸병으로 들어가 졸병으로 나오는 날까지 기합받은 이야기나 하라문 몰라두 뭐 더 할게 있나요.》

《원, 무지막지한 놈들 같으니라구. 5. 16이후에는 장병일치가 어쩌구 저쩌구 한다더니 것두 몽땅 거짓말인 모양이군요.》

영근이가 느닷없이 이렇게 흥분하자 제대병은 어설프게 웃으면서 《그 뿐이겠나요. 장교량반들 말마따나 점점 그 기술이 발전하고있습지요. 그 사람들이야 그거 새 기합술을 발명해내가지구선 서로 자랑들 할내기니까요. 마구 때리구 치구 하는것은 벌써 우둔한 기합술이라우. 요즈음 우리 부대에서만 해두 30분간 엎드려 뻗치기, 밥그릇 핥기, 심지어 변기통 핥기같은 새 기합들이 나왔답니다.》라고 하였소.

《짐승들이군. 그래 당신도 그런 봉변을 많이 겪었는가요?》

나도 자못 흥분하였소.

《당하다뿐이겠나요. 참, 생각하문…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시다.》

사나이는 우리가 권하는 담배를 황공히 받아 붙여물고 달게 빨아넘기더니 말을 이었소.

《그게 아마 재작년에 있은 일인데, 하두 허기증이 나서 마사당번을 서다가 대두박을 한쪼각 쥐고 먹지 않았겠십니까. 공교롭게 소대장에게 들켰습죠. 소대를 모두 집합시키구선 나를 앞에 내세우더니 소대장이란 작자가 이렇게 소리치더군요. <들어라, 최만성이가 방금 말이 먹는 대두박을 훔쳐먹었다. 그러니 이 자식은 말과 같으냐 안 같으냐? 엉! 대답들 해라.> 그러나 모두 조용들 했지요. 누구나 다 훔쳐먹는걸요. <대답들 안해?!>하더니 손에 들었던 가죽채찍을 휘두르기 시작했습죠. 그러니까 모두 하는수없이 대답했지요. <그럼 됐다.> 하고는 눈에 불을 번쩍거리며 저에게 다가온 소대장은 <자식아, 넌 이제부턴 짐승과 같단 말이야. 그러니 사람처럼 서있을수가 있어?! 엎디엿!>하고 소래길 지르더군요. 나를 엎디게 하고는 말처럼 뒤다리질을 해라, 꼬리를 흔들어라, 굽을 안고 뛰라, 별의별짓을 다 시키는데 안하면 채찍으로 마구 후려갈깁니다. 나중에는 말울음소리를 내라는겁니다. 그 소리만은 목이 꺽 메여 안 나오더군요. 어떻게 사람의 입에서 짐승의 소리가… 그래서 저는 일어나서 안하겠다고 버티였지요. 사정없이 조겨대더군요. 분김에 주먹을 한개 안겨주었더니 그만 그 덕분에 처벌부대에 가서 3년간이나 고역을 치르다가 이젠 온몸에 골병이 들어 부려먹을수 없게 되니까 이렇게 훌쩍 풀어줍디다그려. …》

그때 나는 사나이의 검누렇게 뜬 얼굴에서 격분이라기보다는 이 세상살이에 모든 흥미를 잃은 초탈하고 무관심한 일종의 무표정을 바라보고 가슴속에 괴여오르는 그에 대한 동정의 감정을 금할수가 없었소.

《그녀석을 바로 네발걸음을 시켜야 했을걸!》

《무지막지한 놈 같으니…》

우리는 저마끔 한마디씩 비분강개한 기분으로 말하였소.

《글쎄, 누가 짐승인지… 저에게는 이 세상이 모두 짐승판같이 생각됩니다. 어디메 이 땅덩어리우에 정말 사람이 사는 세상이 있기나 하는지…》

제대병은 씹어뱉듯이 중얼거리면서 긴 한숨을 쉬였소. 그의 말이 왜 그런지 가슴속깊이 스며드는것이였소.

이때 렬차는 어느 한 정거장에 들어서서 멎었소. 밖에서 왁자자하는 사람들의 오르내리는 소란이 잠시 있고 다시 렬차는 떠났소.

맞은편의 출입문으로 웬 《국방군》 장교 한사람이 들어섰소. 한 서른줄에나 났음직한 대위인데 름름한 체구에 군복도 좋은 라사직으로 쩍 벌어진 어깨며 가슴팍과 늘씬한 몸매에 잘 맞게 해입었소. 살집이 좋은 너부죽한 얼굴은 불깃불깃 혈색도 좋았소. 자기의 건강과 기분을 자랑이나 하는듯이 외투는 벗어서 팔에 걸고 유유히 걸어들어오는것이였소.

보기에 인상 나쁜데 없는 쾌남형이였으나 나는 금방 제대병에게서 들은 이야기가 있는지라 언짢은 눈찌로 그를 흘겨보았소. 대위는 이 세상엔 즐거운 일밖에 없어서 못 견디겠다는듯 한 그 쾌활한 표정을 좌우로 돌리며 자리를 찾아 우리들곁에까지 다가왔소. 그러자 문득 최만성이라는 그 제대병이 용수철에 튕긴듯이 벌떡 일어섰소.

《아, 도… 도련님이 어떻게? … 그간 안녕하셔요?…》

제대병은 허리를 꺾고 절을 하였소. 장교는 흠칫 멈추어서더니 사나이가 허리를 펴고 고개를 들 때까지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았소.

《아, 너 만성이로구나. 그래, 제대되였는가?》

어째선가 장교의 유쾌해보이던 두눈에 언듯 흐린 그림자가 지나가는듯 싶었으나 그는 이내 쾌남아다운 표정을 회복하고 이렇게 큰소리로 말하였소.

《도련님, 어서 앉으셔요.》

제대병은 다시 허리를 굽히며 두손을 내밀고 장교에게 자리를 권하였소. 장교는 두말없이 유유히 자리에 앉았소. 그리고 그는 그 쾌활한 눈길을 돌려 영근이와 나 그리고 주위의 걸상을 쭉 살펴보는것이였소. 그런데 장교옆에 조심스럽게 서있는 제대병 만성이는 웬 일인지 안절부절 못하고 장교의 눈치만 살피였소. 그는 몇번이나 장교에게 무엇인가 말할듯 말듯 망설이다가 입안에 기여드는 목소리로 이렇게 물었소.

《도련님, 집으로 가시는 길이셔요?》

《응? 음- 그래.》

자기 생각에 잠겼던 대위는 고개를 돌리며 얼버무렸소.

《휴가받으셨나요?》

《휴가받았느냐구?… 그래, 그런셈이지. 좀 긴 휴가를 받았어. 이태째 집에 와있네.》

《아, 그러셔요.》

만성이는 다시한번 굽석하였소. 그리고도 그는 또 한참이나 망설이다가 이렇게 물었소.

《저, 도련님! 제 집 식구들이 다 잘 있는지요?》

만성이의 간절한 표정을 바라본 대위는 순간 좀 당황하는듯 하였으나 이내 빙긋이 웃으며 대답하였소.

《음, 자세히는 몰라두 잘들 있는것 같더군.》

《고마워요. 도련님덕분에…》

만성이의 눈굽에는 금시 기쁜 빛이 넘쳐흘렀고 심지어 눈물까지 맺히였소. 그는 좋아서 어쩔줄 몰라 장교와 우리에게 모두 절을 하고 주먹으로 눈굽을 훔치면서 뒤쪽의 다른 차칸으로 옮겨가는것이였소.

나는 가슴속이 이상야릇해지며 그 사나이에 대한 민망스러움과 동정의 정을 금할수가 없었고 집안이 모두 무고하다는 대위의 말에 덧없이 내 마음도 함께 편안해지는것이였소.

나는 묵묵히 창바깥만 바라보고 앉았고 영근이도 장교가 그렇게 달갑지는 않은지 창곁에 바싹 다가앉아서 먼 하늘만 바라보고있었소. 그러나 장교는 그런 눈치는 아랑곳없이 우리들의 복장을 아래우로 살피다가 문득 가슴팍에 단 빠찌에 눈이 멎자 빙긋이 웃었소.

《서울대학생들이시군. 자, 인사나 하구 말동무하면서 갑시다. 나 강태웅대위라 합니다.》

우리는 할수없이 내키지 않는 통성을 하였는데 대위는 꽤 붙임성이 좋은 사람이였소. 그는 자기도 서울에서 대학을 일년남짓 다니다가 전쟁때 군대에 들어갔는데 그때가 매우 그립다는것이였소.

《그래, 어떻게 이런 먼 시골에들 내려오우?》

대위는 주머니에서 담배곽을 꺼내서 절컥 열어젖히더니 고급담배의 향기를 풍기면서 우리들앞에 쑥 내밀었소. 영근이가 간단히 우리들의 려행목적을 말하니까 대위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듣다가 이렇게 말했소.

《훌륭한 일이요. 그게 바로 우리 군사혁명정신의 구현이란 말이요. 우리 군사혁명의 정신이 바로 4. 19의 계승인것만큼 이것은 임자들의 혁명이란 말이요. 그러니 학생들이 이렇게 제일선에 발벗고나서서 무지몽매한 국민들을 계몽하여 라태와 비문화를 근절하도록 노력해주어야 하겠소. 좋은 일이요. …》

나는 그의 입에서 4. 19정신의 계승을 운운하는 말이 나오는것이 못마땅하였소. 아전인수도 푼수가 있지. 저 대위가 정말로 박정희의 그 공약에 심취되여 말하는것인지는 몰라도…

(우리가 4. 19의 그날에 거리에 떨쳐나섰던것은 장면이나 박정희따위를 옥좌에 올려놓자고 한것은 물론 아니다. 우리는 그보다도 다른, 참으로 참다운 그 어떤 새 력사, 새 생활을 갈망하여 피도 흘리고 목숨도 바쳤건만… 저 큰상받은 신랑같이 벙글거리는 대위라는 작자는 도대체 이 땅에 무엇이 새로 생겼다고 떠들어대고있는가?…)

내가 이런 생각에 잠겨있는데 영근이는 장교를 경원하던 태도를 누그리고 그와 좀더 터놓고 이야기를 하고있었소. 영근이는 농민들속에 뿌리박은 만성질환의 페해와 그의 치료와 예방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장교는 열심히 듣고있는것 같았소.

그러는 동안에 렬차는 또 다음 정거장에 들어섰소. 사람들이 오르고 내린 다음 긴 기적소리가 울리고 차는 다시 떠났소. 그런데 렬차는 역홈도 채 벗어나지 못했는데 돌연히 왈카당하는 요란한 진동과 함께 멎어버렸소. 나는 마주앉았던 영근이와 한덩어리가 되여 걸상등받이에 눈에 불꽃이 튀도록 머리를 찧었소. 대위도 걸상옆으로 허궁 나가 뒹구는 바람에 그 깨끗한 라사직옷에 흙먼지를 얼룩얼룩 묻힌채 일어서면서 《이게 뭐야!-》하고 소래기를 지르더니 밖으로 뛰쳐나갔소.

차창으로 머리를 내밀고 살펴보니 저앞의 기관차어름에 사람들이 모여서서 웅성거리고들 있었소. 우리도 차칸에서 나와 모여선 사람들의 곁으로 다가갔소. 사람들의 어깨너머로 머리를 들이미는 순간 나는 입속에서튀여나오는 《악!》하는 비명과 함께 그 자리에 굳어지고말았소. 사람이 치여죽은것이요. 랑자한 피, 고통에 이그러진 얼굴, 흡뜬 눈… 한 사오십대가량 되여보이는 녀인이였소.

누군가 옆에서 중얼거리는 소리가 어딘가 먼 땅밑에서 궁글어 들려오는듯 하였소.

《아들을 굶겨죽이구 실성한 사람같이 돌아가더니… 끝내 저렇게…》

《허유- 참, 남의 일 같지가 않시다.》

나는 한동안 의사라는것도 잊고 멍하니 서있다가 불현듯 생각이 돌아 시체에 다가들었소. 그러자 영근이도 다가왔소. 우리는 각기 한손씩 잡고 손목을 짚어보았으나 이내 손을 모아 가슴우에 얹어주고 일어섰소. 이때에 철도역부들인듯 한 사람들이 섬거적을 가져다가 옆에 놓았소. 우리는 그들을 도와서 조심스럽게 녀인을 맞들어 섬거적우에 올려놓으려는데 웬 늙수그레한 녀인이 다가오더니 어깨에 걸쳤던 허름한 뜨개목도리를 벗어서 섬거적우에 깔았소. 그러자 또 다른 녀인 하나가 시체우에다가 덧옷을 벗어서 덮어주며 흐느껴우는것이였소. 모여섰던 사람들은 움직일줄 모르고 정거장쪽으로 멀리 사라져가는 섬거적을 바래우고 서있는것이였소.

매일 매 시각 수십, 수백명씩이나 되는 사람들이 저런 운명의 막다른 골목에서 스스로 제 목숨을 끊는 이 땅에서 사는 사람으로서 언제 저런 운명이 자기앞에 다가올지 모를 그 공통된 심정이 모여선 사람들의 가슴을 틀어쥐였던것이요.

《여- 기관사, 이젠 떠나자구!-》

누군가 쟁쟁한 목소리로 이렇게 웨치는 바람에 사람들은 정신이 들었소. 대위가 기관사에게 손을 흔들며 소리치고있었소. 모두들 차에 올라타고 렬차는 다시 서글픈 기적을 울리며 떠났소.

나는 걸상에 기대여 차창밖에 흐르는 살풍경한 벌판과 산을 얼없이 내다보고있었소. 어언간 그 산과 벌판들은 뿌연 안개속에 잠기는듯 흐려지고 그 안개속에는 서울의 거리거리, 헤매이는 실업군과 거지떼, 판자집거리, 빈민굴, 영양실조에 걸린 사람들의 누렇게 뜬 얼굴… 그리고 금방 목격한 그 녀인의 얼굴이 그속에서 교차되고 그러다가는 문득 웬 일인지 그 얼굴들속에서 당신과 나의 얼굴도 엇섞여 떠오르는것을 보고는 소스라쳐 놀라군 하였소.

《학생들은 어떻게 생각하오? 이자 그 녀자의 자살사건에 대해서 말이요.》

문득 옆에서 대위가 이렇게 묻는 바람에 나는 눈앞의 환영을 지우며 고개를 돌리였소. 영근이와 나를 쳐다보는 대위의 눈에는 자못 호기심이 어리여있었소. 나는 장교의 그 질문과 그 표정에 갑자기 가슴이 울컥하였소.

《살수가 없어서 죽었겠지요.》

나는 이렇게 툭 내쏘았소.

그래도 대위는 내 말을 탓하지 않고 느긋이 웃으면서 이번에는 영근이에게 물었소.

《학생은?…》

영근이는 고개부터 가로흔들었소.

《나는 아직 뭐이라…》

대위는 껄껄 웃었소.

《그렇소? 아직 정말 순진들 하우. 그러나 나같이 산전수전 다 겪고 나면 저 자살이라는 철학이 어리석은짓이라는걸 알수가 있소.》

《어리석다구요?》

영근이의 작은 눈이 동그래졌소.

《그렇소, 어리석은 약자들의짓이요. 저 학생 말마따나 살수 없어 죽는건 사실인데 그렇다면 죽는거야 아무때고 죽어지는게 아니요. 그런데 무엇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겠는가?! 아무러면 사는것이 죽는것보다야 못하겠는가. 낫지 나아. 살면 그래도 무엇이든지 있고 죽으면 아무것도 없지 않는가 말이야. 그러게 자살하자는 결심은 항상 순간적인 심리적충격이요. 그렇기때문에 그 순간만 넘기면 소스라치게 후회하고 죽음에 공포를 느끼고 죽지 않게 되오. 거 한강다리 란간에 <잠간 기다려주시오.>라고 써붙인 표쪽을 붙여놓았는데 그건 자살자의 심리를 아주 잘 타산한 조치였소.》

대위는 자못 기염이 도도하였소.

《그럴가요? 순간적인 결심일가요?》

영근이는 장교의 말의 진부를 모르겠다는 얼굴표정이였소. 나는 마치 그 어떤 유쾌한 이야기나 하듯이 자살철학을 푸는 대위가 미운 생각이 들었으나 또 한편 약한자의 순간적인 결심이냐 아니냐 하는데는 나도 생각해보지 않을수가 없었소. 나자신의 체험에서도 몇번인가 죽어버릴가 하다가는 소스라치게 놀란적이 있었던것이요.

(그러나 저 작자는 얼마나 사람이 삶에 쫓겨 절박했으면 스스로 제 목숨을 끊기로 결심하게 되는지 아는것 같질 않군. 마치 무슨 산보나 가는 결심과 같은줄 아는 모양이지…)하는 생각이 들어 장교의 그 혈색 좋은 얼굴을 가증스러워 볼수가 없었소.

《항간에서는 우리 군사<정권>이 내놓은 자살상담소라는것을 비웃는 모양인데 나는 그자들을 오히려 비웃소. 아는척 하지만 사실은 아무것도 모르는 그자들을 말이요. 그저 <혁명정부>에서 하는 일이면 덮어놓고 시비하는 심리계통만 발전한 사람들 말이요. 이건 우리 <정부>의 뜨거운 인도주의적조치요. 라태하고 몽매하고 타락하여 나중에는 약자의 길을 택하는 국민들의 경거망동을 바로잡는 조치란 말이요.》

나는 구역질나는 대위의 《철학》을 들으면서 금방 터지려는 분노를 간신히 누르고 고개를 돌리여 창밖을 내다보았소. 그리고 어느덧 나는 대위의 목소리를 뜻없는 소음처럼 귀가에 흘려버리며 다시 자신의 생각속에 잠겨들었소.

저 작자는 그렇다치고 그럼 너는 도탄에 빠진 겨레들을 위하여 무엇을 할수 있느냐? 도대체 너의 그 알량한 청진기가 몇사람을 구원할수 있단말이냐? 이런 질문이 연방 가슴에 육박해들어왔고 그리고 스스로 자신의 무력함을 통절히 느끼고 가슴을 치고싶은 심정이였소. 그러나 나는 자포자기로 흩어지려는 마음을 다잡으면서 애써 이렇게 결심하였소.

그러나 어떻게 하랴. 내 힘껏, 정력껏 일해보리라. 필요하다면 내 생명까지라도 아끼지 않고 홍모처럼 버려서 겨레를 구원하리라! 그것이 다문 몇사람이더라도 내 힘에 닿는껏!…

처음에 우리 두사람이 이렇게 나서더라도 다음에는 또 그런 사람들이 차츰 이 땅에서 자라나 그 수가 천만으로 헤이게 된다면, 그렇게만 된다면 이 땅에 광명을 맞을 날이 오지 않으리라고 누가 단언할수 있겠는가. … 지금 생각하면 가소로운 생각이나 나는 가슴속깊이 이런 결심을 다지고있었소.

영근이는 대위와 무엇인가 계속 이야기를 나누고있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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