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 회)

제 2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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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청사의 로대끝에 새해를 경축하는 대형벽보판이 세워져있었다.

푸른 소나무우듬지우로 붉은 태양이 솟아오르는 화폭밑에 《1961년 새해를 열렬히 축하합니다》 라는 글발이 씌여져있었다.

정문을 지나 교정에 들어서신 김정일동지께서는 걸음을 멈추고 유정한 눈길로 경축벽보를 바라보시였다. 가장 살틀하고 친근한 사람으로부터 설인사를 받은것처럼 감개가 무량하시였다. 대학에 입학하여 처음으로 맞으신 설이였다. 돌이켜보면 얼마나 보람찬 학창의 나날이 흘렀던가. …

9월 초하루. 입학의 그날에 격동되였던 심정은 영원히 잊을수 없으시였다. 등교준비를 갖추고 교복차림을 하시였을 때 가장 뜻깊은 생활의 전환점에 서신듯 한 엄숙한 감정에 사로잡히시였다. 새로운 전공학문들을 탐구하게 된다는 생각과 함께 크나큰 희망과 포부로 가슴 불탔던것이다. 간밤에 알뜰히 교복을 다려준 녀동생은 대학생교복차림을 한 오빠의 모습을 황홀히 바라보며 금시 손벽이라도 칠듯이 기뻐하고있었다. 녀동생은 끝없이 축복의 말을 이어가지만 자신의 내부적감정에 압도되신 김정일동지께서는 사랑하는 녀동생에게 눈웃음만 보낼뿐 말씀이 없으시였다.

전화종이 울리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들었던 책가방을 도로 놓고 송수화기를 드시였다.

동해안지구를 현지지도하시는 어버이수령님께서 걸어오신 전화였다. 수령님께서는 대학의 입학을 뜨겁게 축하해주시면서 혁명선렬들과 우리 인민의 기대에 어긋남이 없이 열심히 배워 훌륭한 인재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씀하시였다. 수백리밖에서 전류를 타고 흘러오는 어버이수령님의 다정하신 음성이 귀에 흘러들자 후더운 감격이 전신에 퍼졌다.

《명심하겠습니다. 저는 대학시절을 수령님의 혁명사상을 더 깊이 체득하여 조선혁명을 떠메고나갈 준비를 갖추는 보람찬 시기로 만들려고 합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축복과 기대를 보내시는 어버이수령님의 영상을 그려보며 엄숙히 다짐하시였다.

《나는 그 결심이 꼭 실현되리라고 믿는다. 시간이 없어서 이만 전화를 끊겠다.》

이미 통화는 끝났으나 김정일동지께서는 송수화기를 잡으신채 한동안 그 자리에 서계시였다. 자신의 가슴속에서 용솟음치는 포부와 결의를 위대한 수령님앞에 너무도 적게밖에 말씀드리지 못했다는 아쉬운 감정에 사로잡혀있었던것이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이날 아침 일찌기 등교길에 오르시였다. 다른 학생들이 아직 대학에 나오기 전이였다.

교정에 들어서신 그이께서는 퍼져오는 아침해살에 웅건한 자태를 드러내는 대학청사를 다감한 눈길로 바라보시였다. 해방직후 그 어렵던 시절에 우리 나라의 첫 종합대학을 세우기 위해 만난을 헤쳐오신 위대한 수령님의 로고가 한순간에 떠오르시였다. 동시에 대학청사가 건설되던 무렵에 어머님의 손을 잡고 수령님의 뒤를 따라 건설장에 나오셨던 유년시절의 추억이 생생히 되살아났다. 세월은 아득히 흘렀으나 그날 아드님의 먼 장래를 김일성종합대학에 두시며 이르시던 어머님의 부드러운 음성이 귀에 쟁쟁하셨다.

정일아, 어서 커서 이 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아버님의 뜻을 받들어야 한다.》

그때로부터 인민학교와 초중, 고중을 거치는 나날에 김정일동지께서는 앞으로 이어질 학창시절의 종착점을 김일성종합대학에 두시였다. 오랜 세월을 두고 품으신 그 희망이 오늘 드디여 실현되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운동장을 꿰질러 천천히 걸으시였다. 록음속에 묻힌 대학청사는 한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운데 눈부시게 해빛이 부서지는 강의실의 창문들은 학생들을 탐구의 세계에로 부르고있었다. 대학청사를 향해 높이 뻗어오른 층계앞에 이르시니 그 층계에 새겨진 또 하나의 새로운 사연이 가슴뭉클한 감개를 불러왔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화강석을 정히 다듬어 쌓아올린 층계를 지켜보시였다. 정말이지 무심히 내짚으실수 없는 층계였다.

어머님께서 돌아가신지 얼마후였다. 슬픔을 이길수 없었던 항일의 녀투사들은 모란봉에 안치된 어머님의 묘소를 자주 찾아갔다. 그때마다 그들은 너무도 소박한 어머님의 묘소가 가슴에 걸려 해질녘까지 돌아서지 못하였다.

어느날 녀투사들은 잔디만 입힌 묘소주변에 화강석을 깔기로 의논들을 하고 가지고있던 돈들을 모았다. 정성껏 다듬은 돌들을 마련한 그들은 수령님께 자기들의 소원을 말씀드리였다. 수령님께서는 전에없이 갈리신 음성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하신 뒤 녀투사들의 손을 하나하나 잡아 자리에 앉혀주시였다. 모두들 백두산시절처럼 수령님을 둘러싸고 모여앉았다.

녀투사들은 누구나 항일전의 그날에 수령님을 이렇게 모시고 둘러앉아 그이의 말씀을 듣던 때를 련상했다. 그날의 녀투사들이 다시 모였건만 어머님만은 이 자리에 못 오시였다. 누군가가 불쑥 수령님의 손을 부여잡고 울음을 터뜨리였다. 올 때에는 울지 말자고 약속을 했으나 끝내 슬픔을 이겨내지 못하였다.

수령님께서는 그들의 눈물을 말리지 않으시였다.

장례때에도 실컷 울지 못한 그들이였다. 산에서 전우들이 희생되였을 때에도 눈물을 삼키며 조총을 쏜 그들이였다. 복수를 다지며 그들이 쏘아올린 조총이 몇백발인지 몇천발인지 모른다. 승리한 날, 조국을 찾은 날에야 실컷 울겠다고 한 그들이였다. 그러던 그들이 해방된 조국땅에 와서 이렇게 큰 슬픔을 겪게 될줄이야 어떻게 알았으랴.

이윽고 녀투사들이 눈물을 거두었다. 수령님께서는 그때를 기다리신듯 조용히 말씀하시였다.

《동무들의 마음은 고맙습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화강석석재가 귀한 때에 그것을 굳이 정숙동무의 묘소주변에 깔 필요는 없을것 같습니다.》

녀투사들은 놀란 눈길로 수령님을 우러렀다.

《동무들이야 정숙동무를 누구보다 잘 알지 않았습니까. 그는 평소에도 늘 소박한것을 좋아하였습니다. 기왕 그런 귀중한 석재가 준비되였다면 종합대학에 보내줍시다.》

녀투사들은 너나없이 펄쩍 뛰였다.

장군님, 저희들의 소원을 풀어주십시오. 우린 가슴이 아파 견딜수가 없습니다.》

녀대원들은 수령님께 매달리며 사정을 하였다.

수령님께서는 리해를 바라는 간절한 시선으로 그들을 일별하시며 나직이 말씀을 이으시였다.

《동무들이 정 우기니 내가 한가지 사실을 말해야 할것 같습니다. 지난해 어느날 나는 정숙동무와 같이 대학기숙사에 나갔댔습니다. 그때 정숙동무는 맨흙으로 다진 층계를 딛고 오르면서 몹시 서운해했습니다. 기숙사를 지을 때 석재가 모자라서 층계는 돌포장을 하지 못했습니다. 정숙동무는 웅장하게 건설된 기숙사에 흙계단이 어울리지 않을뿐더러 비가 오는 날이면 대학생들이 신발에 흙을 묻혀가지고 호실에 들어갈수 있다면서 꼭 돌포장을 해주어야 하겠다고 여러번 말했습니다. 정숙동무의 생전의 뜻을 풀어줍시다. 그러면 우리곁을 떠난 정숙동무도 동무들이 좋은 일을 하였다고 무척 기뻐할겁니다. 동무들이 대학생들을 위하여 돌층계를 쌓아주면 정숙동무는 역시 옛 전우들이 누구보다 자기의 마음을 잘 알아준다고 할것입니다. 나도 그렇게 해주면 기쁘겠습니다. 조선혁명의 역군들을 키워내는 대학인데 잘 꾸려줍시다. 우리 정숙동무의 소원대로 해줍시다.》

녀투사들은 마침내 수긍하였다. 그리하여 어머님의 묘소에 깔려고 했던 화강석이 대학기숙사로 옮겨졌다. …

김정일동지께서는 시선을 높이 들고 대학청사를 우러르시였다. 이 순간에는 어머님의 묘소에 깔려야 했던 화강석이 대학의 청사층계에 깔린듯이 생각되시였다. 청사앞에 어머님의 숭엄한 자태가 우렷이 떠오르는것 같기도 하시였다. 어머님께서는 분명 오늘도 불멸의 모습으로 살아계시며 매일 아침 등교길에 오르는 대학생들의 앞날을 축복해주신다는 생각이 밀물처럼 가슴을 채웠다.

(어머님의 그 축복속에 저도 오늘 영광의 교정에 들어섰습니다. 어서 커서 이 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수령님의 뜻을 받들어가라고 이르시던 어머님의 말씀의 참뜻이 이 순간에야 비로소 다 리해되는듯싶습니다. 저의 가슴속에는 수령님의 높으신 뜻을 대를 이어 빛내여갈 굳은 결의가 차넘치고있습니다.)

그 결의를 자욱마다에 새기며 층계를 오르신 김정일동지께서는 대학청사를 배경으로 사위를 둘러보시였다. 구내의 정원수들은 숨을 죽이고 력사의 선언을 기다리듯 숙연히 서있었다. 그이께서는 한껏 대기를 들이마시며 허리에 손을 짚고 푸르게 열린 공간을 응시하시였다. 멀리 북쪽으로는 백두산이, 남쪽으로는 한나산이 한눈에 보이는듯싶으시였다. 곡절많은 세월의 풍상을 헤치고 오늘에 이른 삼천리강토가 고스란히 그이의 품에 안겨들었다.

불쑥 그이께서는 기슭을 치는 파도소리와 이삭이 패는 대지의 거창한 숨소리를 들으시였다.

해빛이 가득찬 수림속을 누비는 장쾌한 바람소리와 산과 들에 피여난 꽃잎들의 속삭임소리도 들으시였고 계곡을 헤치며 떼목이 내리는 소리도 들으시였다. 뒤이어 천리마의 기세로 내닫는 조국의 전면모가 눈앞에 펼쳐지는듯 하시였다. 눈부시게 주황색빛을 뿌리며 쏟아지는 쇠물폭포, 기세좋게 달리는 전기기관차, 하늘을 치받으며 솟아오르는 고층건물들, 날바다를 정복하며 아득히 뻗어가는 간석지제방들이 눈앞에 그려지시였다. 이 영광의 교정에서 과학을 탐구하고 또 탐구하여 천리마의 기세로 기적과 위훈으로 세월을 주름잡는 내 조국을 책임지고 더욱 강성부흥하는 미래에로 가리라!

대학기간에 조선로동당원의 영예도 지니고 우리 당을 영원히 위대한 수령님의 당으로 강화발전시켜나아가리라!

그이께서는 시선을 남쪽으로 돌리시였다. 그러자 방금전과는 달리 참기 어려우신 아픔이 가슴속에 실려들었다. 조국의 남녘땅은 지금까지도 미제의 발굽밑에서 치욕을 면치 못하고 신음하고있다. 지난 4월에 남조선의 청년학생들과 인민들은 전인민적봉기로 리승만괴뢰정권을 무너뜨리였다. 그러나 민주와 통일을 갈망하여 피흘려 쟁취한 그들의 열매는 미제의 사촉을 받는 박정희군사파쑈도당에게 빼앗겼다.

제국주의원흉인 미제와 대치한 조선혁명을 책임지자면 과학만이 아니라 군사를 잘 알아야 한다. 순간 혁명가는 반드시 군사를 알아야 한다고 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을 새삼스레 가슴에 새기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찌기 총대로 우리 혁명을 개척하시였고 총대로 혁명의 전취물을 수호해오시였으며 총대로 혁명의 승리를 이룩해오시였다. 군력이야말로 모든 승리의 담보이다. 호시탐탐 침략의 기회를 노리는 미제와 직접 맞서서 사회주의를 건설하고있는 우리 나라에서 군력강화는 특별히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지난 8월 25일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근위 서울류경수제105땅크사단에 나가셨을 때 군사중시가 국사중의 국사라는 진리를 더욱 절감하시였으며 인민군대를 무적강군으로 키우시기 위해 모든것을 다하실 결심을 굳게 다지시였다. 이제 흘러갈 대학시절 4년간은 과학탐구뿐만아니라 군사를 성실히 배우는 나날로 이어질것이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우리 혁명이 지워주는 무거운 사명감을 절감하시였다. 그러자 억척같은 기운이 솟구치며 심장의 세찬 박동으로 온몸이 떨리시였다. 홀연 가슴속에 간직하셨던 크나큰 포부와 결의가 터져오르면서 시정으로 승화되여 뿜어져나왔다.

 

해솟는 룡남산마루에 서니

삼천리강산이 가슴에 안겨온다

이 땅에서 수령님 높은 뜻 배워

조선혁명 책임진 주인이 되리

아, 조선아 너를 빛내리

 

그날에 다진 맹세대로 김정일동지께서는 지금껏 있는 정력을 다하여 배움의 길을 다그쳐오시였다.

과학의 무한한 세계는 기다렸던듯 그이를 포옹하였다. 무수한 과학적진리들이 섬광처럼 번뜩이며 그이의 심혼속에 박혀들었다. 배움은 커다란 환희였다.

하지만 그이의 학창생활은 괴로운 때가 더 잦았다. 아직 대학교육이 교조주의와 사대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였기때문이였다. 번역한 교과서들이 학생들에게 안겨지고 교실마다에서 선행리론이 만능의 공식처럼 설명되였다.

사태를 수습하려고 결심하신 김정일동지께서는 먼저 력사학과 정치경제학을 주체의 빛발로 선명히 조명하여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식별해보이려고 생각하시였다. 그것은 이 두 교과목이 정치사상적성격을 예리하게 띠고있으며 대학의 많은 학부들에서 공통적으로 취급되고있기때문이였다.

력사학을 바로잡는 문제는 벌써 첫걸음을 내짚었다. 우리 나라에서 구석기시대에 대한 기성리론이 재검토되기 시작했다. 누구도 의심하지 않던 문제여서 우리 나라에도 구석기시대가 존재하였을것이라는 가설을 내놓았을 때 첫 반응은 놀라움이였으나 뒤이어 긍정적인 반향이 일어났다.

물론 아직 의혹을 가지거나 부정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력사학부의 적지 않은 교원들과 학생들, 고고학연구소의 연구사들은 기어이 구석기시대의 유적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의 심정을 통해서도 우리민족이 알따이계 북방종족의 한갈래라는 기성리론에 대해 얼마나 달갑지 않게 여겨왔는가를 알수 있으시였다.

정치경제학에서는 이미 주체를 세우기 위한 최정택교수의 노력으로 새 교과서가 출판되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그 교과서에 커다란 기대와 애착을 가지시였다.

우리 나라의 현실을 일반화한 우리의 첫 사회주의정치경제학교과서이기에 글줄마다를 마음속에 품어안으시는 심정으로 탐독하시였다. 교과서에는 우리 당의 현명한 령도밑에 우리 인민이 새 사회건설에서 이룩한 성과와 경험들이 폭넓게 반영되여있었고 정치경제학의 제반원리와 개념들이 리론적으로 깊이있게 전개되여있었다. 그이께서는 기쁨을 금할수가 없으시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아쉬운 점도 없지 않으시였다. 전반적인 서술체계는 아직 번역교재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몇가지 문제들에서는 주체적립장에서 전개하지 못한 부족점도 느껴지시였다. 그런 대목에 부닥치면 위대한 수령님의 로작들에서 해당한 부분들을 찾아 그 진수를 새겨보고 그에 기초하여 자신의 견해를 세워보려고 모색하시였다. 때로는 기성리론을 다시 검토해보기도 하시였다.

기성리론에 비한 우리 당정책의 독창성을 론증하는 명백한 론리를 세우려고 깊은 사색에 잠겨 밤깊도록 정원을 거닐다가 나무에 부딪치신 일도 있었다. 최정택교수가 교과서를 더 훌륭히 완성하는데 자신의 지혜가 닿는껏 도와드리고싶은 마음에서 탐구의 노력을 아낌없이 기울이시였다. …

김정일동지께서는 깊은 회고에 잠겨 운동장을 꿰질러 교직원합숙쪽으로 걸음을 옮기시였다. 설날에도 외롭게 지낼 최정택선생에게 세배를 하려고 대학에 나오신 그이이시였다.

《저, 학생동무. …》

한동안 주저하다가 말을 뗀듯 한 녀자의 목소리가 등뒤에서 올렸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뒤를 돌아보시였다. 낯모를 젊은 녀자가 다가오고있었다. 진곤색솜저고리를 입고 흰 수건을 썼는데 그 수건밑으로 량태머리끝이 드러났다. 그 차림새가 퍽 소박해보이는 처녀였다.

《미안하지만 한가지 물어봅시다.》

여전히 미안해하는 어조였다.

《어서 말씀하십시오.》

《대학 교직원합숙이 어데 있습니까?》

묻는 품으로 보아 대학에 처음 오는 처녀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합숙건물쪽을 손길로 가리키려다가 그만두고 친절히 말씀하시였다.

《나도 교직원합숙으로 가는데 함께 갑시다.》

《고마워요.》

처녀는 머리를 숙여보이며 따라섰다.

《누구를 찾아갑니까?》

《최정택아바이를 찾아갑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그 역시 최정택선생을 찾아간다니 놀랍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시였다.

《나도 그 선생님을 찾아가는 길입니다.》

《그러세요? 대학에 처음 오다보니 최정택아바이를 어떻게 찾을가 하고 걱정을 했는데 마침 잘되였군요.》

처녀는 상긋이 웃으며 기뻐하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그가 최정택선생을 또다시 《아바이》라고 부르는데 주의가 가시였다. 40대의 최정택선생님을 아바이라고 부르는것이 별로 이상한것은 없었다. 하지만 대학의 이름있는 교수를 그렇게 부를 때에는 오랜 인연이 있는게 분명했다.

《최정택선생님과 어떻게 됩니까?》

《전쟁때 야전군의소에서 아바이를 간호한 일이 있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김정일동지께서는 가벼운 탄성을 터치며 처녀를 다시금 유심히 보시였다. 처녀로서는 나이가 지숙해보였지만 아직 30대는 되지 못한듯했다. 전쟁이 끝난지도 인제는 8년이 되여온다. 그러니 처녀는 10대의 소녀시절에 군대에 입대하여 전선에서 청춘시절의 첫 시기를 보냈을것이다. 애젊은 간호원이던 그는 환자들중에 가장 나이가 많았을 부상병 최정택을 《아바이》로 부르는것이 자연스러웠을것이다.

《동무가 찾아가면 선생님이 퍽 반가워하시겠습니다.》

《전쟁때 헤여진 후로는 영 소식을 몰랐댔어요. 그때 최정택아바인 상등병이였어요. 김일성종합대학 교수인줄은 누구도 몰랐댔어요.》

처녀는 자기들의 일이 한심하였다는듯 저 혼자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어떻게 최정택선생님이 우리 대학에 계신다는걸 알았습니까?》

《정치경제학과 1학년 1반에 다니는 한 남동무를 통해서…》

《그 남동무가 누굽니까?》

처녀는 대답을 피하며 수줍게 눈웃음을 지었다. 볼시로 그의 얼굴이 눈에 띄게 붉어졌다. 아마도 그 남동무가 이 처녀의 애인인것 같았다.

정치경제학과 1학년 1반 학생들은 태반이 제대군인들이였다.

아직 장가를 들지 않은 제대군인들중에서 누구인가가 이 처녀를 사랑할것이다. 그러고보면 초면의 이 처녀는 스승의 전우이고 학우의 애인이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그에게 자신을 소개하시였다.

《나도 정경과 1학년 1반에 다니는 학생입니다. 정말 반갑습니다.》

《그러세요?… 저도 반갑습니다.》

처녀의 눈동자가 밝게 빛났다. 그이의 소탈하신 인상에 대뜸 어줍던 마음이 풀려버렸던것이다.

《그럼 오명식동무를 잘 아시겠군요.》

《오명식동무요?! 잘 압니다. 우리 학급 학급장입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사뭇 놀라면서 입가에 따뜻한 미소를 그리시였다. 반갑기 그지없는 손님이였다. 오명식의 얼굴이 눈앞에서 얼른거리였다. 그는 정의감이 강하고 열정적인 청년이였다. 즉흥적인 주관을 앞세우는 때가 있기는 하지만 그의 우점에 비해볼 때 그것은 하찮은것이였다. 그는 전선에서 정찰병으로 싸웠다. 불의의 정황에 부닥치면 순간에 용단을 내려야 했던 정찰병시절의 습관이 남아있어서 주관이 강한지도 모른다. 명식은 사업의욕이 높고 공부도 잘하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그한테서 즐겨 전투담을 듣군 하시였다. 그에게는 아슬아슬한 혈투의 체험담이 많았다. 사람됨이 진실한 그의 이야기는 조금도 과장이나 분식이 없었다.

《명식동무는 참 좋은 동무입니다. 난 그 동무한테서 전쟁때 싸우던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혹시 전선에서 함께 싸운게 아닙니까?》

《한부대에 있었습니다.》

처녀는 나직이 속삭였으나 그 한마디 짧은 대답속에는 전화의 날에 조국을 지켜싸운 병사였다는 긍지감이 력력히 어려있었다.

《그러니까 최정택선생님이랑 모두 한부대에서 싸웠는가요?》

《명식동무와 나는 한사단에 있었지만 최정택아바이는 다른 사단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여 최정택선생님이 동무네 야전군의소에서 치료를 받았습니까?》

김정일동지께서는 무슨 사연이 있을상싶어 캐여물으시였다.

《전쟁때야 별일이 다 있었지요. 그 아바인 우연히 우리 군의소에 들어오게 되였는데 거기에는 그럴만한 까닭이 있었답니다.》

《그런가요? 어디 좀 들어봅시다.》

그이께서는 부쩍 호기심을 보이시였다.

처녀는 한순간 걸음을 멈추고 얼핏 온화한 눈길로 그이를 바라보았다. 초면인데도 이상스레 친절하게 느껴지면서 자초지종을 다 이야기하고싶었다.

《인제는 10년전 일이여서 꼭 옛말같이 생각됩니다.》

처녀의 목소리는 차분히 올리였다. 전화의 나날을 그려보며 아득히 공간을 겨눈 두눈에는 못 잊을 추억의 감회가 어리기 시작하였다. 자연히 발걸음도 떠졌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그와 걸음을 맞추면서 꼭지를 뗀 이야기가 어서 이어지기를 초조히 기다리시였다.

《아군부대들이 진지방어전에로 넘어가 적들의 〈하기공세〉를 짓부셔버리던 1951년 여름이였어요. 어느날 우리 군의소에 중상을 입은 상등병아바이가 담가에 실려들어왔어요. 적들의 기관총탄이 어깨를 뚫고나갔는데 피를 너무 많이 흘려 좀체로 의식을 회복시킬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그를 후송해온 동무들도 그 상등병아바이가 누군지 몰랐어요. 그날 우리 사단 방어구역의 한 고지에서 큰 전투가 있었어요. 며칠전부터 공격을 해온 적들이 력량을 총동원하여 달려들었거던요. 힘에 겨운 전투였어요. 그 고지를 지키던 아군중대는 탄약마저 다 떨어져서 총창을 비껴들고 최후의 백병전을 각오했지요. 적들은 그 기미를 알고 투항하라고 웨쳐대며 고지로 쓸어올라왔어요. 마지막순간이 다가오고있었어요. 바로 그때 웬 인민군병사가 적들의 전투서렬뒤에 나타났어요. 그는 벽력같은 고함을 지르며 만탄창한 자동총을 적들에게 휘둘러댔어요. 모두들 지원병이 온줄 알았어요. 적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혼비백산해 뒤걸음질치기 시작했어요. 그 절호의 기회에 아군병사들이 반돌격으로 넘어갔어요. 그렇게 되여 고지는 사수되였어요. 그런데 그 반돌격전에서 정체모를 상등병아바이가 중상을 입었던거예요.》

처녀는 어느결엔가 눈물이 글썽해졌다.

김정일동지께서도 가슴이 후더워올라 더 이야기를 재촉하지 못하시였다. 한순간이 흐른 뒤에 마음을 진정한 처녀가 스스로 뒤를 이었다.

《붉은 피에 화락하니 젖은 군복상의를 헤치니 안주머니에 최고사령관동지께 올리는 맹세문이 들어있었어요. 그 맹세문을 가지고 어데로 가던 길인지 또 어떻게 되여 생사를 결판하는 전투장에 뛰여들었는지 맹세문만 가지고서는 알수가 없었어요. 그 상등병이 최정택아바이였어요. 다음날 린접사단의 동무들이 찾아와서야 최정택아바이에 대해서 알게 되였어요. 아바인 훈장수여식에 참가하기 위하여 군단지휘부로 가던 길이였어요. 그 모임에서 아바이가 최고사령관동지께 올리는 맹세문을 읽게 되였어요. 그래서 밤을 밝히며 맹세문을 써서 가슴속깊이 보관했던거예요. 그런데 도중에서 우리 사단 병사들이 최후의 돌격전을 준비하는걸 보게 되였어요. 아바이한텐 그 싸움에 뛰여들 의무가 없었어요. 그러나 그는 훈장수여식이 아니라 목숨을 바쳐야 하는 전투장에 뛰여들었어요. 최정택아바인 이런 병사였어요. 담당간호원이였던 나는 그 아바이가 그저 평범한 병사인줄만 알았어요. 그런데 글쎄 김일성종합대학의 선생님일줄이야. … 이렇게 큰 대학의 선생님이 어깨우에 한줄을 달고 전선에서 싸울줄이야 어떻게 알았겠어요. 난 그때 비로소 병사의 량심이 어떤것인지를 알게 된것 같아요.》

처녀는 말을 마치고나서 북받치는 감정을 억제하려는듯 걸음을 멈추고 옆으로 고개를 돌리였다. 그리고는 솜저고리주머니속에서 손수건을 꺼내여 이슬이 맺힌 고운 눈을 꼭꼭 눌렀다.

《정말 감동적인 이야깁니다. 좋은 이야기를 들려주어서 고맙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걸음을 멈추시고 저으기 격동된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참으로 성실한 인간의 자기희생성에 대한 숭고한 이야기였다. 우리 시대 인간들이야말로 얼마나 아름다운 존재들인가. 자기 주위에 있는 평범한 인간들의 아름다움을 다 알았다고 감히 말할 사람이 있을가. 자신께서도 최정택선생님을 더없이 존경하면서도 그가 그렇게 훌륭한분인줄을 여적 모르고있지 않았던가. 때늦게 오늘에야 알게 된것이 어쩌면 제자로서 선생님앞에 부끄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무튼 그러한분을 담임교원으로 모시고있는것은 학생으로서 얼마나 자랑스럽고 행복한 일인가. 최정택교수의 부드럽고 온화한 얼굴모습이 떠오르시였다. 한시바삐 그를 찾아가 설인사를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새삼스레 가슴에 서리였다.

《어서 갑시다.》

그이께서 먼저 걸음을 떼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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