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회)

제 1 장

5

 

《너의 할아버진 오늘따라 왜 이렇게 늦어지는지 모르겠구나.》

부엌에서 동자질을 하는 강명호의 마누라 김씨가 손녀에게 건늬는 말이였다. 선희는 오늘 조선력사시험장에서 있었던 사연을 모르고있었다. 구답시험은 한명씩 수험표를 뽑아들고 시험장으로 들어가는데 선희는 선참으로 치르고 인차 집으로 돌아왔던것이다.

지짐을 부치던 선희가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아직 여섯시도 안되였어요.》

《그래? 그럼 좀 더 기다려야 오시겠구나.》

김씨는 혼자말로 중얼거리며 고기와 닭알볶음이 담긴 접시들을 조리대우에 가지런히 올려놓았다. 오늘이 령감의 생일이였다. 강좌의 교원들도 찾아들것을 예견하여 음식을 넉넉히 마련하였다.

그는 창밖에 눈길을 돌리였다. 쏟아지는 눈송이들이 불빛 넘치는 창가에서 꽃잎처럼 반짝이며 흩날리고있었다. 눈을 맞으며 밤길을 걸어올 령감이 걱정되였다. 그래서 일감을 다시 잡지 못하고 우두커니 서있었다.

어느결에 선희가 그 눈치를 알고 할머니곁에 다가섰다.

《또 할아버지 걱정… 강좌의 젊은 선생님들과 함께 오실텐데… 정말 할머니는 보통이 아니야.》

《원, 계집애두. 못하는 소리가 없구나.》

《지금도 그러시니 젊었을 때에야 더 말할게 없었겠지요. 그렇지요, 할머니?》

《듣기 싫다.》

짐짓 엄한 표정을 짓고 손녀를 가볍게 꾸짖은 김씨는 슬며시 돌아서며 이남박을 들었다. 이쪽의 마음을 빤히 엿보고 상글거리며 놀아나는 손녀의 시까스름이 좀 거북하기도 했지만 훈훈한 감정을 불러오기도 하는것이여서 기분이 즐거웠다. 젊었을 땐 더 말할수 없었을게라고… 하기야 그랬었지.

입가에 저절로 느슨한 미소가 피여올랐다.

문득 강명호와 처음으로 인연을 맺던 청춘시절이 생각히웠다. 몽매한 봉건유습이 그대로 남아있던 시절이여서 김씨는 남편의 얼굴도 보지 못하고 초례청에 올랐다. 그때 김씨는 열일곱살이였고 강명호는 열네살이였다. 신부는 이성을 느낄 나이였으나 신랑은 아직 미숙한 소년이였다. 결혼한지 한해가 넘도록 김씨는 밤마다 남편이 차던진 이불깃을 여며주며 한숨을 짓군 하였다. 한번도 정분을 나누지 못한채 남편은 그후 서울에 있는 배재학당으로 떠나가고 머리를 얹었달뿐 김씨는 처녀로 남아있었다. 그는 늙은 시부모님들을 모시고 농사일을 하였다.

남편은 배재학당을 졸업하고 그길로 일본에 류학을 갔다. 김씨는 학식이 높아지는 남편을 두고 기뻐하기보다 심한 불안을 느끼였다. 남들의 말이 글공부를 한 청년치고 철없던 때에 맞은 본처를 버리지 않는 사람이 없다고들 했다. 류학을 갔다가 신녀성을 차고 와서 본처를 쫓아내는 사람들을 김씨는 제 눈으로도 봤다. 그는 생리별의 비참한 운명을 자기도 피할수 없으리라고 생각하며 남모르게 속을 썩이였다. 대학공부까지 하여 문명개화를 한 남편과 비기면 까막눈에 촌티가 흐르는 자기는 봉황과 닭처럼 어방없이 짝이 기운다고 스스로 인정했다. 이제 남편이 나타나면 자기는 어차피 친정으로 쫓겨가게 되리라고 각오하였다.

드디여 대학을 마친 남편이 돌아왔다. 모내기를 하고있던 김씨는 급히 달려온 동네아이한테서 동구길에 나타난 강명호를 보았다는 말을 들었다.

강명호는 전보도 치지 않고 불쑥 귀향을 했다. 그는 일가친척들과 동료들의 요란스러운 축하를 받는것이 싫어서 그러하였지만 김씨는 달리 생각했다. 자기와 같은 시골뜨기안해가 읍거리의 정거장에 나와 어물거리는 꼴을 남에게 보이고싶지 않아서 아무런 선통도 보내지 않았다고 짐작하였다. 함께 모를 내던 동네사람들은 어서 서방님마중을 가라고 그의 등을 밀었다. 김씨는 얼굴이 화끈거리는 가운데서도 다가올 불행을 예감하며 가슴을 조이였다. 그는 흙묻은 손과 다리를 논물에 얼추 씻고 보뚝을 꿰질러 동구길로 나갔다. 처음은 힘겹게 옮겨지던 걸음이 점차 빨라졌다. 그리도 오래동안 불안과 더불어 품고있는 남편에 대한 그리움이 걸음을 다그치게 하였다. 기장밭옆을 지나 굽인돌이를 돌아서니 검은색양복에 사각모를 쓴 남편이 지척에서 마주 걸어오고있었다. 김씨는 걷잡을수 없이 가슴이 활랑거리고 사지가 굳어지는듯싶어서 머리를 떨구고 멈춰섰다. 그리고는 허둥거리는 눈길로 흙물이 군데군데 묻은 자기의 옷주제를 더듬어보았다. 남편의 차림과 대조적으로 이를데없이 초라했다. 그는 배배 탈린 베적삼앞섶을 쓸어내리며 서글피 한숨을 지었다.

남편이 가까이 다가섰다. 김씨는 머리를 들수가 없었다. 한달음에 달려왔건만 마주서고보니 왜서인지 얼굴을 싸쥐고 달아나고싶은 심정이였다.

《그동안 부모님들을 모시고 농사를 짓느라고 수고가 많았겠소.》

남편은 전에 없던 버릇으로 말을 더듬었다. 김씨는 마치 꿈결에서 그 목소리를 들은듯 하여서 얼없이 머리를 들었다. 비로소 남편의 얼굴을 똑똑히 바라보았다. 그의 반가운 표정을 읽고서야 방금 들은 목소리가 꿈이 아니였음을 깨달았다.

사실 김씨는 시집을 온 뒤 고생을 했었다. 시집은 제 밥술이나 먹을 정도로 땅마지기를 가지고있었지만 부모들은 일할 나이가 넘어서 거의 혼자손으로 농사를 짓다싶이 하였다. 더우기 강명호의 학비때문에 집살림은 언제나 쪼들렸다. 하지만 가난한 농가에서 자라난 김씨는 살림을 깐지게 꾸려나갔다. 그 수고와 고달픔을 알아주는 남편을 보자 정신이 혼란될 정도로 감격이 북받쳤다. 그는 어찌했으면 좋을지 몰라 두손을 가슴앞에 모두어잡고 숨만 가쁘게 몰아쉬였다. 머리속이 웅웅 울리는듯 한 가운데서도 뚜렷해지는 의식은 공연히 남편을 의심해왔다는 생각이였다. 갑자기 다리맥이 탁 풀리면서 몸이 금방 무너질듯싶었다. 남편의 넓은 가슴에 자기의 전존재를 떠맡기며 안기고싶었으나 남들이 보는듯싶어 억지로 참았다.

《여보, 당신 손에 왜 피가 흐르오?》

남편이 사뭇 놀라며 물었다. 김씨는 자기의 손을 얼른 내려다보았다. 오른손잔등에 빨갛게 피가 번지였다.

《찰거머리한테 물렸어요.》 기여드는듯 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남편은 들고있던 트렁크를 땅에 놓더니 팔을 뻗쳐 그 손을 덥석 잡았다. 그리고는 깨끗한 종이를 호주머니에서 꺼내 손등의 피자국을 알뜰히 씻어주었다. 남편의 부드러운 손에서 따뜻한 체온이 감촉되였다. 그러자 심장의 박동이 빨라지며 온몸이 달아올랐다. 그는 몸을 가누기가 어려워 남편에게 맡겼던 손을 거두며 곁에 있는 트렁크를 얼른 머리에 이였다. 두사람은 나란히 집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똬리도 없이 이여서 머리가 아프지 않겠소?》

남편의 은근한 속삭임이 귀전을 지나 가슴속에 스며들었다. 김씨는 그러한 념려가 오히려 원망스러운듯 물기가 그렁한 눈을 들어 남편을 할깃 치떠보았다.

《정말 공연한 걱정을…》

남편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자기를 탓하는 소리였다. 정말이지 공연히 남편을 의심하며 제풀에 속을 태웠다.

그때로부터 40여년의 오랜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남편한테서 무식하다고 구박이나 멸시를 받아본적은 한번도 없었다. 그래서 김씨는 남편을 위해 있는 정성을 다 고이려고 애써왔다. 하지만 조국이 해방되기전까지 그는 남편이 력사학을 전공하는것만은 원망하였다. 그러한 원망을 처음 가지게 된것은 젊은 시절에 남편이 우리 나라 력사에 대한 무슨 글을 쓴 《죄》로 왜놈경찰에 잡혀갔을 때였다. 까막눈인 김씨는 글의 내용이 어떤것인지 알수 없었다. 옥살이를 하는 남편을 두고 속을 바질바질 태우던 그는 조선력사라는 학문이 화난을 가져왔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감옥에 면회를 와서는 철창사이로 내여민 남편의 손을 잡고 세상에 숱한 학문이 있다는데 왜 하필이면 력사학을 공부했느냐고 애타게 칭원하며 쿨쩍거렸다.

옥에서 풀려나온 남편은 몸도 추세우지 않고 어느 고망년에 있었다는 고구려라는 나라의 옛 흔적을 찾는다고 만주로 떠나갔다. 김씨는 남편의 발목을 부여잡고 제발 떠나지 말라고 애원하였으나 소용이 없었다. 한해동안이나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속을 태우던 생각을 하면 지금도 저절로 설음이 북받친다. 흘러간 청춘시절과 중년시절에 겪은 안해로서의 설음과 불행은 다 어느것이나 남편의 력사학과 관련되여있었다.

물론 해방후에는 사정이 달랐다. 남편은 박사라는 높은 학위를 가지고 대학교단에 서게 되고 그에 따라 상상도 못했던 행복스러운 생활을 누리게 되였다. 그러나 다른 학문을 전공하는 교수들에 비해볼 때에 남편은 마음고생이 많은편이였다. 몇해전에도 남편은 학술상 견해가 잘못되였다고 대학적인 모임에서 비판을 받았었다. 김씨의 체험으로는 력사라는 학문처럼 말썽이 많고 빛이 안 나는 학문은 없을것 같았다. 하지만 이젠 령감근심을 할 날도 얼마 남지 않은듯싶었다. 령감은 어느덧 기력이 쇠잔해져 력사에 대한 열정도 어지간히 식어가는게 자기한테도 헨둥히 알렸다. 늙으면 어쩌는 수가 없는것 같았다.

《할머니, 무슨 생각을 하고있어요, 밥이 타는데.》

선희가 깨우치는 소리에 김씨는 펄쩍 정신이 들었다. 아닌게 아니라 밥탄내가 확 풍기였다. 그는 황급히 솥을 들어내고 뚜껑을 열어보았다. 변두리가 좀 눌었을뿐이지 별로 타지는 않았다. 자기의 속생각을 엿보지나 않았나 하여 선희의 눈치를 살펴보니 그 애는 다행 지짐을 부치는데만 정신을 팔고있었다. 희고 매츨한 손으로 노랗게 익어가는 지짐을 재미나게 뒤번져놓는 손녀에게 김씨는 넌지시 말하였다.

《얘야, 내 한가지 부탁이 있는데 들어줄테냐?》

그 어조가 여느때없이 은근하여서 선희는 고개를 들어 느슨한 웃음이 피여나는 할머니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무슨 부탁인데요?》

《오늘 저녁에 강좌선생들이 와서 거나해지면 말이다, 할아버지 70돐때처럼 나더러 노래를 부르라고 할수 있다. 그날에 땀을 뽑던 생각을 하면 지금도 등골이 화끈해진다. 젊은 선생들이 나한테 성화를 먹이면 내대신 네가 좀 노래를 불러주려무나.》

《할머니두 참, 노래를 못 부르겠으면 춤이라도 추세요.》

선희는 새물새물 웃었다. 할머니가 말로는 등골이 화끈해진다지만 실은 그 성화를 즐거운 마음으로 되새기고있다는것을 알기때문이다.

출입문소리가 나더니 강명호가 전실에 들어섰다.

김씨는 반겨 마중나가서 령감의 가방을 받으며 외투에 묻은 눈을 털어주었다.

《강좌선생들은 왜 안 오시우?》

출입문을 다시 열고 복도쪽을 기웃해본 김씨가 묻는 말이였다. 강명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김씨가 다시한번 같은 물음을 반복했다. 그제서야 강명호는 김씨를 어정쩡한 눈길로 바라보며 반문하였다.

《강좌선생들이 왜 온단 말이요?》

《아니, 오늘이 당신 생일이 아니요?》

《그렇던가?》

강명호는 비로소 상기한듯이 힘없이 뇌이더니 길게 한숨을 쉬며 서재로 들어갔다. 김씨는 령감의 신상에 그 무슨 심상치 않은 일이 생겼다는것을 깨달았다. 갑자기 산란해지는 마음을 다잡으며 서재로 따라 들어갔다.

《어디 편치 않수?》

《…》

《오늘이 생일이라는걸 몰랐수?》

《…》

응대없이 외투를 벗고 의자에 앉은 령감의 표정이 두번다시 말을 건늬기가 서슴어지리만큼 심각하여서 김씨는 망연히 서있다가 서재에서 나오고말았다.

부엌으로 돌아온 그는 어수선해진 마음을 다잡을수 없어서 손을 털고 우두커니 서버렸다. 하긴 음식을 다 차려놓았으니 더 할일도 없었다. 창밖에서는 여전히 한본새로 눈이 내렸다. 부엌에서 내비치는 전등빛을 향해 부나비처럼 날아드는 눈송이들이 창유리에 부딪쳐서 아래로 미끄러져내리며 알수 없는 사연을 속삭여주었다. 도대체 령감의 신상에 무슨 일이 벌어졌을가? 말썽많은 력사학때문에 또 무슨 사달이 생긴것이 아닌지… 이 저녁을 즐겁게 보내려던 꿈은 싹 사라져버리고 막연한 불안이 가슴을 채웠다.

문득 출입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창밖을 멀거니 바라보던 김씨는 까닭없이 놀라며 전실로 나갔다.

《누구세요?》

문이 열리며 최정택교수가 들어섰다. 눈을 맞으며 왔으련만 현관에 들어서며 말끔히 털어버린 모양으로 외투며 모자에는 눈송이 한점 남아있지 않았다.

《사모님, 그동안 편안하셨습니까?》

《잊지 않고 이렇게 찾아주어서 고맙쇠다.》

《사모님이 제 생일을 잊지 않고계시는데 제가 어찌 강선생의 생일을 잊겠습니까.》

최정택은 따뜻한 정이 흐르는 눈길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는 외투주머니에 넣고 온 술병을 꺼내여 김씨에게 주었다. 투명한 유리병속에 노란 인삼뿌리가 잠겨있었다.

《뭘 이런걸 다 들고오시유. 어서 방안으로 들어갑시다.》

김씨가 서재의 맞은편 방문을 열어주었다. 널다란 방안은 텅 비여있었다. 방안으로 들어선 최정택이 앉을념을 안하고 김씨에게 물었다.

《강선생님은 아직 안 오셨습니까?》

《오셨어요. 그런데 대학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영 상심한 기색이라우.》

김씨가 조심스레 말하는데 어느결에 강명호가 듣고 서재에서 나왔다. 들은바대로 그는 짙은 고뇌에 휩싸인 표정이였다. 최정택은 강명호의 흐려진 낯빛이 무엇때문인지 어렴풋이 짐작했다.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은 최정택은 조심히 물었다.

《듣자니 오늘 시험장에서 김정일동무의 점수를 채점하지 못하였다는데 어찌된 일이였습니까?》

강명호는 그닥 즐기지 않는 담배를 붙여물었다. 그는 깊숙이 빨아들였던 연기를 한숨과 함께 내불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는 오늘 김정일동무의 시험대답을 듣고나서 심한 자책에 잠겼네. 한생을 교단에서 보내는 몸이지만 그런 경우를 당해보기는 처음이였네. 최선생과는 허물없는 사이니 부끄러운 일이지만 사실대로 말하겠네.》

짙은 담배연기가 민틋하게 벗어진 그의 대머리우로 날리였다.

김정일동지께서 우리 나라에도 구석기시대가 있을것이라고 서두를 떼시였을 때에는 그것 참 놀라운 가설이라고 생각하며 커다란 흥미를 가지였다. 강명호는 민족사연구와 더불어 백발을 얹었지만 우리 나라 원시사회에 대해서는 여직 그렇게 깊이 연구해본 일이 없었다. 선사시대에 대한 연구는 고고학분야에 속한다고 생각하면서 력사학책들에 그 시대를 서술할 때에는 주로 고고학계의 견해를 따랐다. 그리하여 우리 선조들이 북방대륙에서 구석기시대를 거친 다음 남하하여왔다고 인정해왔다. 물론 우리 나라에 구석기시대가 없었다는 리론이 남달리 민족사를 사랑해온 그의 마음에 들리는 없었다. 그러나 지금껏 출토된 원시사회의 유적들이 그것을 말해주고있는데는 어찌할수 없었다. 그리고 북방종족의 이동설이 《동조동근》을 력설하기 위해 꾸며냈던 일제 어용사가들의 남방종족의 이동설을 뒤집는다는 의미에서는 의의가 있다고 생각해왔었다.

강명호는 김정일동지의 주장에 공감되고 그 주장의 근거들이 납득되자 매우 복잡한 심경에 빠져버렸다. 우리 나라에도 구석기시대가 있다면 그 얼마나 자랑스럽고 기쁜 일인가! 경사로운 사변을 눈앞에 보는듯 한 환희가 오랜 사학자의 가슴을 격동시켰다. 하지만 지금껏 자기를 포함한 사학자들이 편협하고 외곡된 인식에 포로되여있었다는것을 깨달으면서 엄숙한 반성이 뒤따랐다.

구석기시대가 없었다고 인정해온것은 민족사앞에 씻을수 없는 죄악을 저지른것으로 되였다. 이 땅에서 기원하여 력사의 첫시작부터 자기 고유의 문화를 창조한 우리 조상들을 심히 모욕한것으로 되니 말이다. 그도 그렇거니와 구석기시대의 력사는 적어도 수십만년을 헤아리는것만큼 그 시대를 부인하는것은 결국 우리가 알고있는 민족사보다 몇십배나 더 장구한 선사시대를 부인하는것으로 되는것이다.

강명호는 시험관으로서가 아니라 력사의 엄숙한 판가름앞에 선듯 한 심정이였다. 한없이 격동되기도 하고 당황하기도 하였던 그는 채점을 해야 한다는것도 망각하고 시험장에서 나온 후 그걸음으로 고고학연구소로 향했다.

고고학연구소는 대학에서 그닥 멀지 않은 모란봉기슭에 자리잡고있었다. 흥분한 강명호의 설명을 듣고난 연구사들은 우리 나라에도 십분 구석기시대의 유적이 있을수 있다고 공감해나섰다.

《…고고학연구소에서 론의를 거치는 과정에 김정일동무가 내놓은 가설이 과학적타당성을 가진다는것을 더욱 확신하였네. 그런 놀라운 발견, 그런 열렬하고 숭고한 애국의 높은 뜻에 비추어볼 때 나로서는 실로 뉘우쳐지는바가 많네.》

강명호의 목소리는 듣는 사람의 가슴이 저릴만큼 회한에 젖었다. 말을 맺었으나 자신의 내부를 응시하는듯 아래로 떨군 시선은 여전히 굳어진채 움직일줄 몰랐다.

최정택이 강명호를 온화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위로하듯 말하였다.

《선생님, 오늘일로 해서 너무 자신을 괴롭히지는 마십시오. 김정일동무의 가설이 충분한 현실적근거를 가진다면 외곡된 민족사의 첫머리를 바로잡게 될 경사를 예견할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사학자이신 선생님은 커다란 기쁨을 느껴야 할것입니다.》

강명호는 두눈을 쪼프리고 최정택을 한동안 마주보더니 자기로서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바를 비로소 깨달은듯 고개를 크게 끄덕이였다. 어둡던 얼굴이 밝아지기 시작하였다.

《과시 옳은 말일세! 선생의 말을 듣고보니 내가 자기 립장만을 생각하며 옹졸했던가보네. 정말 오늘은 기쁜 날일세. 교육자로서 학생의 뛰여난 예지를 보는것보다 더 기쁜 일이 어데 있겠나!》

강명호는 허연 머리를 쳐들고 처음으로 환하게 웃었다.

김씨가 저녁상을 들여왔다. 선희가 얼른 일어서서 상을 받았다. 상이 챙겨지자 최정택이 인삼술을 따라서 강명호에게 권하였다.

《선생님, 생일을 축하합니다.》

《사학에 뜻을 두고 한생을 살아오지만 여적 민족사의 첫머리도 바로잡지 못하고 살아온 나로서 실은 그런 축배를 받기가 부끄럽네.》

강명호는 오늘이 생일이라는것을 의식하자 지나온 한생이 돌이켜져서 또다시 자탄을 하였다. 그는 먼 후날에 가서야 이해의 생일이 력사학자로서 새로운 출발을 한 뜻깊은 날이였음을 깨달을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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