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회)

제 1 장

4

 

조선사시험은 이날 오후에 끝났다. 그런데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강명호가 경제학부 지도원에게 넘겨준 시험성적표에는 김정일동지의 성적이 기록되여있지 않았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송금석은 눈이 휘둥그래졌다. 대학적으로 전례없는 일이였다. 학생들의 시험을 친 교원들이 어떤 착오로 성적을 부정확하게 평가하는 경우는 있지만 점수를 매기지 못하는 경우란 있어본 일이 없었다. 지체없이 사연을 알아보아야 할것 같았다. 오늘로 학기말시험이 끝나기때문에 학부내 학생들의 성적을 종합하여 부학부장이 대학교무부에 보고하여야 하였다.

송금석은 전화로 력사학부를 찾았다. 그런데 강명호는 경제학부에서 돌아오는 걸음으로 고고학연구소에 갔다는것이였다. 그는 전화통을 놓고 담배를 붙여물었다. 불쾌하기 그지없었다. 강명호의 고집스러운 모습이 눈앞에서 얼른거렸다. 괴벽한 늙은이가 무슨 일을 저질렀는가? 채점붓을 주저하게 하는 무슨 사변적인 일이라도 생겼단 말인가? 도저히 있을수도 없고 대학적으로 있어보지도 못한 일을 저지른 그가 원망스러웠다. 송금석은 전부터 강명호의 결백하고 완고한 교육자적성품을 좋게만 보아오지 않았다. 거기에는 무엇인가 옛날도사들의 생활의식과도 같은 진부한것이 깔려있다고 생각했다. 복잡하고 다양한 현대인의 생활에는 정도를 벗어난 고정한 성품이 어울리지 않는것이다.

송금석은 학부가 다르지만 강명호를 무심히 대하지 않았다. 그것은 강명호가 걸음걸음 우즈베끼스딴에 있는 자기의 아버지를 련상시켜주는 인물이기때문이였다. 두 로인은 용모나 직업에서가 아니라 완고하게 고집하는 민족의식과 진부한 사고방식에서 비슷한 점이 많았다. 대학적인 과학토론회가 열리면 강명호박사도 대체로 빠지는 일이 없이 출연하군 했는데 들어보면 그의 론문은 늘 민족문화말살정책에 항거하여 민족사를 부여안고 몸부림치던 그 시절에 민족성을 긍지높이 고수하려던 비장한 감정이 그대로 남아있는듯싶었다.

송금석은 그러한 강명호를 볼 때마다 아버지를 생각하군 하였다. 아버지는 다른 나라에서 살면서도 민족의 넋과 긍지를 지키려고 실로 눈물겨운 노력을 경주해오고있다. 재쏘동포들의 태반이 로씨야식으로 이름을 고쳤지만 아버지는 송구범이라는 본래의 이름을 써오고있었다.

《왜놈들이 창씨개명을 시키려고 날뛸 때에도 목숨을 내대고 제 이름을 지켜온 우리 겨레이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에 와서 타민족으로 이름을 고치다니 어디 될법이나 한 일이냐. 우리는 비록 몸은 멀리 조국을 떠나 이역의 하늘밑에 있어도 배달겨레의 후손임을 자자손손 잊지 말아야 하느니라!》

그는 동포들을 찾아다니며 이렇게 부르짖었다.

하지만 그의 호소와 절규는 그닥 효과를 나타내지 못했다. 그러자 분을 삭일수가 없어 가슴을 치며 통탄하였다.

《내 일찌기 나라에 대한 충의지심이 없지 않아 화승대를 메고 전장에 나섰던 몸인데 오늘에 이르러 동포들의 함자도 지켜내지 못하니 무슨 낯으로 후일 조국땅을 다시 밟을수 있겠느냐!》

그 부르짖음과 함께 눈굽에서 눈물이 괴여올랐다. 일찌기 초학훈장을 지내던 아버지는 청춘시절에 안해와 함께 홍범도의 의병부대에서 싸웠다. 후날 만주에서 독립군으로 개편된 반일부대에서 계속 혈투의 로정을 걷던 부모들은 저 유명한 청산리전투가 있은 후에 일제의 탄압을 피해 원동으로 망명했다. 로씨야에서 공민전쟁이 한창 치렬하던 때에는 원동빨찌산에 편입되여 다시 일제와 싸웠다.

그 시절에 송금석의 어머니가 전사하였다. 아버지는 붉은군대 군복을 입고 공민전쟁의 철화속을 뚫고왔지만 의연히 의병시절이나 독립군시절의 민족주의리념에 사로잡혀있었다. 아버지의 고집으로 때늦게까지 송금석이라고 본래대로 불리우던 아들은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송이완이라고 로씨야식으로 이름을 고치지 않을수 없었다. 쏘련학교에서 공부를 하자니 불가피한 일이였다. 내막을 모르는 아버지는 학교에 입학하며 이름을 고친 아들을 두고 며칠동안 한탄을 하더니 조선족 꼴호즈에서 독자적으로 민족교육을 해보려고 시도하였다. 많은 동포들의 지지를 받았으나 끝내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거듭되는 실패에 숙명적인 좌절감을 느낀 아버지는 자기 운명을 저주하며 눈물을 머금군 하였다. 그러면서도 민족의 넋을 지키기 위해 자기로서 할수 있는 일을 찾느라 이악을 썼다. 그러나 의의있는 일감을 찾지 못하자 애국명장들과 애국지사들의 이야기를 동포들과 그 후대들에게 들려주는데서 위안을 얻었다. 겨울밤의 마실방에서 혹은 한여름 농사일의 쉴참에 정자나무그늘밑에서 이야기판을 펼 때 아버지의 얼굴에는 경건한 빛이 흘렀다. 그 모습은 대학연단에서 무한한 긍지에 휩싸여 우리 나라 력사를 가르치는 강명호박사의 열띤 모습과 비슷했었다. 송금석에게는 두 로인이 다같이 전세대의 퇴적물과 같은 존재로 여겨졌다. 그들의 가슴속에 자리잡은 애국애족의 감정이 아무리 열렬한것이라 하더라도 거기에는 자기 민족의 모든것을 부둥켜안고 몸부림치는 보수적이며 고루한것이 있었다.

송금석은 선진사상과 과학문화를 하루빨리 받아들여 우리 민족의 오랜 후진성을 쇄신하는데 진정한 애국애족의 길이 있다고 확신하고있었다. 늦어도 우리 나라가 지난 세기말에 발전한 서양문명을 받아들여 사회적변혁과 경제발전을 도모하였다면 우리 조국은 망국의 비운이나 분렬의 비극을 련속해오지 않았을것이다.

모르긴 해도 오늘 강명호박사는 시험장에서 낡은 력사관을 고집하다가 김정일동지로부터 론박을 받고 어리둥절하여 채점을 못하였을것이다. 이렇게 생각한 송금석은 김정일동지를 자기 사무실에서 만났다.

《오늘 강명호선생이 정일동무의 시험점수를 매기지 않았는데 왜 그렇게 되였는지 알고싶어서 찾았습니다.》

송금석은 그늘진 그이의 안색을 유심히 살피며 말했다. 이미 4개 과목의 시험이 있었는데 김정일동지께서는 모두 5점을 맞으시였다. 시험을 받고 나온 교원마다 제출된 문제들에 대한 그이의 깊은 리해와 독창적인 견해에 경탄을 금치 못하며 참으로 뛰여난 인재라고 한결같이 이야기하였다. 그런데 유독 조선사공부만 잘못할리 없었다. 다만 맑스-레닌주의 유물사관에서 벗어나 민족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방향에서 우리 나라 력사를 설명하는 강명호박사의 강의가 김정일동지에게는 마음에 들지 않았을것이며 그래서 강의내용대로 대답하시지 않았을것이라고 그는 생각하였다.

《그래 어떤 문제가 수험표에 나왔댔습니까?》

송금석은 자기의 추측이 틀림없다고 믿으면서도 짐짓 내심을 감추고 은근한 어조로 물었다.

《두 문제였는데 하나는 고구려의 평양천도에 대한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 나라의 구석기시대에 대한 문제였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나직이 대답하시였다.

《그런데?》

송금석은 호기심을 가지고 뒤를 재촉하였다. 경제학과 력사학은 인연이 깊어서 그도 우리 나라 력사에 대한 필요한 지식을 가지고있었다.

《두 문제 다 배운대로 대답을 하고나서 구석기시대에 대한 문제는 그간 제가 좀 연구해본바가 있는데 그것을 말씀드려도 좋겠는가고 선생님께 물었습니다. 강선생님은 어서 그렇게 하라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우리 나라에도 반드시 구석기시대가 존재하였을것이라는 가설을 말씀드렸습니다.》

송금석은 자기가 예상했던바와는 전혀 다른 방향에서 문제가 제기되였다는것을 깨달았다.

《음, 그렇게 됐군요. 헌데 우랄과 씨비리지방에서 살던 알따이계 북방종족의 한 갈래가 신석기시대 중반기에 남하하여 우리의 첫 조상으로 되였다는거야 력사학계에서 공인된바가 아니요. 그렇기때문에 나도 우리 나라에는 구석기시대가 존재하지 않았던것으로 알고있는데…》

《그러나 저는 앞으로 구석기시대유적이 발견되리라고 믿고있습니다. 우리 민족은 알따이계 북방종족의 후손이 아니라 이 땅에서 시원하여 인류려명기로부터 독자적인 발전의 길을 걸어왔다고 생각합니다. 아직은 부족하지만 그렇게 추리가 가게 하는 자료들이 있습니다.》

서서히 고개를 드시는 김정일동지의 존안에 결연한 빛이 떠올랐다.

송금석은 그이의 표정에서 기존의 인식을 부정하시는 확고한 의지를 읽으며 굳어져버렸다. 력사학계가 오랜 세월의 연구를 거쳐 공인해놓은 사실을 뒤집어엎는 그 용단이 놀라왔다.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막연한 불안을 느끼였다. 오늘 강명호박사가 채점을 하지 않은것도 전례없는 비상사건이라고 할수 있는데 우리 나라에 구석기시대가 있을수 있다는 김정일동지의 주장은 더욱 큰 물의를 일으킬수 있었다. 그는 엄청나게 번져질수 있는 사태를 수나롭게 수습해야 하겠다고 생각하며 조심히 입을 열었다.

《력사는 추상의 과학이 아닙니다. 맑스가 말하다싶이 경제학에서는 경제현상의 분석에 현미경도 시약도 필요없고 오직 추상력이 그것을 대신합니다. 그러나 력사학에서는 추상이나 환상이 금물입니다. 누구보다 진지한 학습태도와 옳은 방법론을 가지고 과학을 연구하는 정일동무가 시험장에서 그런 가상적인 주장을 하였다는것이 뜻밖입니다.》

《…》

응답이 없으신 김정일동지의 눈가에 그늘이 비끼였다. 누구도 자신의 견해에 공감하지 않고있다. 강명호선생은 채점조차 하지 않았고 송금석선생은 허황한 주장으로 리해하고있다. 송금석선생이 우리 민족의 시원문제를 소홀히 대하는게 리해되지 않으시였다. 송금석은 괴로워하시는 그이의 마음을 달리 리해하고 위로하듯 말을 이었다.

《오늘 일로 해서 너무 상심하지는 마시오. 강명호선생은 고정한 로인이라 정일동무의 마음을 너그럽게 리해하지 못한것 같습니다.》

《저는 구석기시대문제뿐아니라 우리 나라 노예사회문제를 비롯해서 몇가지 달리 생각되는것이 있어서 시험을 치기 전에 강명호선생님에게 문의해보고싶었습니다. 그래서 어저께 선생님을 찾아 대학에 나왔댔습니다. 그런데 강선생님은 안계시더군요. 의혹이 가는 문제들을 강선생님과 미리 토론을 했으면 오늘과 같은 일이 없었을것입니다.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무거운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내 강명호선생에게 그런 사연을 말하겠습니다.》

《바쁘실텐데 제가 후에 강명호선생님을 직접 찾아뵙겠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서시였다.

송금석은 김정일동지께서 나가신 뒤에도 문가에 선채 움직일념을 못하였다. 방금 받은 충격이 가슴속에 엉킨채 사라지지 않았다. 리해할길 없는 미지의 세계에 접한 때처럼 머리가 뗑했다. 그는 무겁게 걸음을 옮겨 창가에 다가섰다. 창밖에는 꽃잎같은 눈송이들이 드넓은 공간을 메우며 하염없이 쏟아져내리고있었다.

대학청사에서 나와 댁으로 돌아가시는 김정일동지의 어깨와 모자우에 수북이 눈이 쌓이였다. 내리는 눈발이 존안에 부딪쳤다.

하지만 아무것도 의식하지 못하는듯 깊은 상념에 잠기신채 걸음을 옮기시였다.

《력사학에서는 추상이나 환상이 금물입니다.》

송금석선생의 말이 되새겨지셨다. 유감스러운 기색을 숨기지 않던 그의 얼굴도 떠오르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고개를 저으시였다. 그통에 모자채양에 두텁게 실렸던 눈이 발치에 떨어졌다. 력사학이라고 하여 가설이 필요없을가? 아니다. 모든 과학적발견과 발명은 흔히 가설로부터 시작되기가 일쑤이다.

문제는 제시된 가설이 론리적타당성을 가지는가 못 가지는가, 현실적기초를 두고있는가 그렇지 못한가에 달려있을뿐이다. 리상과 욕망을 떠난 탐구란 있을수 없다. 강명호선생님도 송금석선생처럼 력사학에서는 경계하여야 할 추상이나 환상을 빌어 가설을 세웠다고 인정하고 채점조차 안하신것일가? 그런것 같지는 않다. 강명호선생님은 커다란 흥미와 관심을 가지고 나의 설명을 들으시였다. 그런데 마지막에는 왜 그리도 흥분하셨을가? 정작 끝까지 듣고보니 자기가 배워준 내용을 부인해나선다는것을 깨닫고 노여움을 가지신것이 아닌지… 우리 나라에서 구석기시대의 유적이 발견된다면 선생님의 노여움도 가셔지겠지. 그러나 그날이 언제인지는 누구도 기약할수가 없는 일이다.

아득한 력사의 흐름속에서도 출토되지 않은 구석기시대의 유적이 가까운 앞날에 자기의 존재를 드러내리라고 예상하기는 어렵다.

구석기시대는 적어도 몇십만년전에 존재하였다. 그 기간에 무수한 지질학적변화가 있었다. 바다가 륙지로 되기도 하고 평지가 산으로 솟아오르기도 하면서 그 시기의 자취를 지충깊이에 묻어버렸다. 할수만 있다면 삼천리강산을 빈구석없이 모조리 뒤져보고싶으신 심정이였다. 아무튼 지금까지 연구해온것을 이제부터 다시 검토하고 새로운 고고학적자료와 문헌들을 더 찾아보자. 우리 나라에도 구석기시대가 존재하였다는 확신만은 버릴수가 없으시였다. 민족시원과 관련된 문제이기때문에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반드시 해명을 하여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 겨레모두가 긍지높은 선조의 후예임을 확신하도록 하여야 한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되새기시며 눈내리는 거리를 그냥 걸으시였다. 모자와 어깨우에는 어느새 또다시 눈이 두텁게 쌓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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