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회)

제 1 장

3

 

김정일동지께서는 정치경제학교과서를 즉석에서 읽어보고싶으셨지만 그럴수가 없으시였다. 래일 조선사시험이 있으니 당장은 그 과목 공부가 급하시였다. 물론 배운 내용을 고스란히 되받아 외워서 좋은 성적이나 얻자면 그리 어려울것이 없으시였다. 교재의 일부 내용에 의혹을 품고 탐구를 거듭해오셨지만 아직 해결을 보지 못한 문제가 남아있었던것이다. 우리 나라의 구석기시대 존재문제가 바로 그러했다. 시험이 지난 기간에 배우고 탐구한 모든것의 총화로 되여야 한다고 생각하신 그이께서는 스스로 연구과제로 내세웠던 그 문제에서도 끝을 보고 시험장에 들어가고싶으시였다. 그래서 남은 하루동안이라도 문헌연구를 더해보시려고 대학도서관으로 향하시였다. 도서관으로 가는 길은 대학청사의 옆을 에돌아 정원수사이로 곧게 뻗었다. 거의 매일이다싶이 다니여서 인제는 눈을 감고도 걸으실수 있는 무척 낯익은 길이였다. 구석기문제의 탐구만을 위해서도 이미 이 길을 얼마나 걸으셨는지 모른다. 돌이켜보면 그 걸음은 지난 가을 조선사 첫 강의가 있은 때부터 시작되였다고 할수 있다.

학생들은 커다란 기대와 관심을 가지고 가슴을 설레이며 강명호박사의 첫 강의를 맞이하였다.

강명호는 학술적공적이 널리 알려진 학자였다. 해방전에도 민족사에 대한 여러권의 저술을 남겼을뿐아니라 해방후에는 우리 나라 력사를 집대성한 큰 저작을 내놓았고 세 나라의 성립경위를 새롭게 고증한 연구론문을 비롯하여 가치있는 수많은 론문들을 썼다. 그는 신문이나 대중잡지들에도 우리 나라 력사에 대한 통속적인 글들을 끊임없이 쓰고있었다. 학생들이 초중이나 고중시절에 배운 조선력사교과서의 필자도 강명호였다. 책을 통해서만 이름을 알고있던 권위있는 로교수의 강의를 받게 되였으니 흥분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가 교단에 오를 때 학생들은 박수를 터치고싶은 심정들이였다.

강명호는 교탁의 모서리를 눌러잡고 침착한 시선으로 학생들을 한명씩 둘러보았다. 학생들은 그의 시선이 자기에게 조금이라도 더 머물러있기를 바라며 한껏 존경어린 눈매로 마주보았다. 한순간의 일별로 학생들과 낯을 익힌 강명호는 약간 갈린듯 하면서도 듣기 좋은 어조로 첫 강의를 시작했다.

《동무들은 전공이 정치경제학이지만 우리의 민족사를 잘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동무들이 다름아닌 바로 우리 나라의 정치와 경제를 떠메고나갈 역군으로 준비되여야 하기때문입니다. 우리 인민은 대륙의 큰나라들과 왜구의 끊임없는 침략속에서도 영웅적인 항전으로 자기 조국을 지켜오면서 뛰여난 창조력과 지혜를 발휘하여 자기 고유의 정신문화와 물질문화를 창조하여왔습니다. 이것을 알게 될 때 동무들은 긍지높은 선조들의 후예임을 자각하게 될것이며 앞으로 우리 나라의 정치경제적발전을 어떻게 도모해야 할것인가를 깨닫게 될것입니다. 그러면 오늘의 강의를 시작하겠습니다.》

강명호는 간단히 서론을 마치고나서 학생들을 다시한번 쭉 훑어보았다. 시간상관계로 다 표현하지 못한 조선사학습의 의의를 그 눈빛에 담아 학생들의 가슴에 스며들게 하려는듯싶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커다란 공감을 느끼며 교수를 경건히 바라보시였다. 그의 사소한 동작이나 표정의 변화도 놓치지 않으시였다.

강명호는 칠판에 돌아서서 분필의 허리를 잡고 강의제목을 썼다.

《제1장. 원시사회

제1절. 석기시대와 씨족공동체》

학생들이 학습장에 옮겨쓰기를 기다리던 강명호는 로숙하고 세련된 손짓을 섞어가며 열정적으로 설명을 하였다.

《아득한 태고적에 류인원으로부터 인간으로 진화된 인류가 처음으로 사용한 로동도구는 구석기입니다. 인류가 구석기를 사용한 력사적기간은 수십만년을 헤아립니다.

따라서 구석기시대의 존재여부문제는 소여 민족의 력사에서 인류려명기의 그 장구한 기간이 있었는가 없었는가, 나아가서는 민족이 어데서 기원하여 력사의 첫페지를 펼치였는가 하는것을 확증하는 문제에 귀결됩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우리 나라 경내에서는 구석기시대유적이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사정을 악용하여 한때 일제의 어용사가들은 우리의 선조들이 남방에서 기원하여 바다길을 따라 조선반도에 정착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조선사람과 일본사람이 〈동조동근〉임을 력사적연원의 견지에서 증명해보려는 시도로부터 출발한 날조행위였습니다.

해방후에 새로 발굴되고 연구된 고고학적자료들은 우리의 조상들이 북아시아대륙에서 기원하였다는것을 말해주고있습니다. 여러 지방에서 신석기들이 새로 발굴되였습니다. 우리 나라에서 나타난 신석기들, 그중에서도 빗살무늬와 번개무늬가 새겨진 토기들은 에니쎄이강변에서 발견된 토기의 무늬와 류사합니다. 북아시아지역에서는 구석기도 발견되였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북아시아지역에서 기원한 원시종족군단의 한 갈래가 신석기시대의 중반기에 이르러 해뜨는 동쪽과 따스한 남쪽을 향하여 옮겨오다가 산좋고 물맑은 조선반도에서 운명의 닻을 내리고 우리 나라 력사의 첫페지를 펼치게 되였다는것을 말해주고있습니다. 그들의 첫 씨족제도는 모계씨족제도였습니다. 압록강중류와 료동상하류에 있던 우리의 태고적 선조들이 최초의 조상을 숭배하여 새긴 목상이 녀자였다는 기록과 사로종족을 구성하고있던 6개 씨족중에서 가장 오래된 씨족을 어머니씨족이라고 불렀다는 기록은 신석기시대 모계씨족제도의 시기부터 우리의 력사가 시작되였음을 말하여주는 또 하나의 증거로 됩니다.》

강의를 주의깊게 들으시며 필요한 내용들을 학습장에 기록해나가시던 김정일동지께서는 펜을 멈추시였다. 과연 우리의 선조들이 북방에서 기원한 원시종족의 한갈래였다는것이 사실일가? 우리 나라에 구석기시대가 존재하지 않았다는것이 정말 사실일가? 날카로운 의혹이 머리속을 스치였다. 그것은 구석기시대의 존재여부문제가 담고있는 내부적인 의미를 한순간에 통찰하신데로부터 오는 충격적인 의문이였다. 구석기시대가 없었다는것은 우리 나라 력사에서 응당 있어야 할 첫시기가 공백임을 의미한다. 그리고 우리 선조들이 북방에서 옮겨왔다면 이 땅에 창조된 첫 문화가 그들이 떠나온 북방의 문화에 토대하였다는것을 말한다. 이러한 학설을 낳게 한 론거는 우리 나라에서 구석기시대유적이 발굴되지 않았다는데 있었다.

강의의 서론이 안겨준 감동과 방금 들으신 설명이 야기하는 충격은 너무도 대조적이였다. 복잡한 상념속에서 점차 머리속에 뚜렷해지는것은 우리 나라에 구석기시대의 유적이 나타날수도 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였다. 아직 찾지 못했다고 하여 없다고 단정할수는 없을것이다. 훨씬 추운 씨비리지방에서 구석기시대의 인간이 살았다는데 기후가 온난하고 산천이 수려한 우리 나라에서 그 시대의 인간이 살지 않았을리 없지 않는가?

김정일동지께서는 학습장의 여백에 《구석기시대 존재여부문제를 연구해보자!》라는 글발을 힘주어 쓰시였다. 학습장의 모서리쪽으로 여백을 삼분의 일쯤 남겨두고 강의내용을 정리하시군 하는것은 그이의 남다른 습관이였다. 그 여백에는 강의내용에서 의문나는 점이나 자신의 견해를 즉시에 기록하군 하시였다.

그날부터 김정일동지께서는 강의시간에 떠오른 생각을 버릴수가 없어서 구석기시대와 관련된 책들을 탐독하기 시작하시였다. 우선 우리 나라 고고학이 달성한 석기시대의 연구성과들을 총괄해보시였다. 《초도원시유적발굴 보고》와 《온천군 궁산유적발굴 보고》를 비롯한 원시유적발굴보고서들을 빠짐없이 읽으시였다. 그런데 발굴된 원시유적의 대부분은 신석기시대 중반기와 청동기시대의것이여서 구석기시대문제를 해명하는데는 그 어떤 단서도 잡을수 없으시였다. 하지만 실망하지 않으시였다. 그후에는 다른 나라들에서 발굴된 구석기시대유적에 대한 문헌들을 연구하시면서 구석기시대의 인간들이 살수 있었던 자연조건을 말해주는 고생물학적자료들에 류의하시였다. 인간생활은 예이제없이 자연과 깊이 련관되여있는것이다.

특히 태고적 인간들은 자연을 정복하는 힘이 약하였기때문에 자연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다. 그이께서는 구석기시대유적이 출토된 곳에서는 례외없이 털코끼리와 털서우 같은 동물뼈화석들이 나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시였다. 구석기시대 인간들은 아직 농사를 지을줄 몰라서 나무열매나 사냥한 짐승이 식료품의 전부였는데 나무열매는 계절에 따라 동나는 기간이 길었다. 계절의 구애가 없이 취할수 있는 식료품은 돌이나 몽둥이로 때려잡은 털코끼리나 털서우와 같은 짐승들이였다. 그러한 짐승들의 서식은 구석기시대 인간들의 중요한 생존조건이였다. 그런데 우리 나라에서는 이미 두만강연안에서 털코끼리뼈가 발견된 사실이 있었다. 이것은 많은것을 시사해주고있었다. 오늘까지 이러한 탐구과정을 거쳐오셨지만 그것만으로는 아직 확고한 결론에 이르기가 어려웠다. 보다 확실한 과학적근거를 찾을 때에만 우리 나라에도 구석기시대유적이 있을수 있다고 주장할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 나라의 고생물학자료들을 좀 더 연구해보실 생각으로 지금 또다시 도서관을 찾으신것이다. 마침 열람실의 대출대에는 진작부터 구석기시대의 연구에 필요한 자료들을 알선해주군 하던 왕수해가 있었다. 그는 총장의 안해였다. 워낙은 중국녀자인데 그 차림새와 거동은 조선녀자와 다름이 없었다. 50대에 이르렀으나 유족한 생활에 몸을 잘 가꾼 그는 중년부인처럼 젊어보이였다. 그는 친절하고 너그러울뿐더러 독자의 편의를 성의껏 보장해주기때문에 학생들속에서 평판이 좋았다.

《선생님, 일전에 찾아주신 이 자료들을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쏘련과학원 고고학통보서를 가방에서 꺼내여 그에게 돌려주시였다.

《뭐 좀 참고할것이 있었어요?》

왕수해는 통보서를 받아놓으며 친절히 물었다.

《매우 귀중한 사실을 알게 되였습니다. 연해주지방의 오씨노브까라는 곳에서 구석기가 발견되였더군요. 지도를 보니까 오씨노브까는 두만강연안에서 멀지 않은 고장입니다. 구석기시대에는 사람들의 류동에 그 어떤 인공적인 제한이 없었지요. 그러고보면 오씨노브까와 가까운 함경북도 해안가일대에서 구석기시대유적이 발굴될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이 통보서가 그렇게 크게 참고가 되였다니 반갑군요.》

왕수해는 미소를 지었다. 어느덧 늙기 시작한 그의 눈귀에 잔주름이 패이였다.

《선생님, 이번엔 인류가 기원하던 시기 우리 나라 동식물상을 알수 있는 그런 책이 있으면 빌려주십시오.》

《그런 책을 본것 같지 않아요. 아무튼 좀 찾아보자요.》

왕수해는 그이의 존안에 비낀 간절한 심정을 읽고 서가뒤로 사라지더니 시간이 퍼그나 지나서야 책 한권을 들고 나타났다.

《혹시 이 책이 참고가 되지 않겠는지 모르겠군요.》

《무슨 책입니까?》

《〈고생물지사학〉이예요.》

《아, 어디 좀 봅시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책명을 들으시니 고생물계가 지구의 발달사와 함께 어떻게 진화되여왔는가가 서술되였으리라는것이 짐작되시였다. 책을 받아서 서둘러 차례를 번져보시였다. 인류가 기원하던 신생대 4기의 생물계가 제3편에 서술되여있었다.

《고맙습니다. 이 책이면 필요한 내용을 알수 있을것 같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환성이라도 터치고싶으리만큼 기쁘시였다.

대출대장을 번지던 왕수해는 새삼스레 놀랐다.

그이의 대출란에는 이미 빌려가셨던 책들이 수십권이나 등록되여있었다. 그이의 독서는 선행고전은 물론 사회과학과 문학예술, 자연과학의 여러 분야를 포괄하고있었다. 왕수해는 대출목록에서 눈길을 들며 경탄조로 물었다.

《그런데 이 많은 책들을 언제 다 보나요?》

《명색이 대학생인데 그만한 책도 읽지 않겠습니까.》

《책을 천권만 읽으면 머리에서 박 터지는 소리가 나고 그다음부터는 아무 책이나 대각선으로 훑어보아도 뜻이 새겨진다더니 아마 그런가보군요.》

《저는 아직 머리속에서 그런 소리가 울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매 문장을 새겨읽어야 뜻이 통합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유쾌한 기분으로 응대하시였다.

왕수해는 갑자기 그 무슨 즐거운 생각이라도 떠오르는듯 웃음이 어린 눈을 빛내이더니 이렇게 말했다.

《그런 소리는 본인자신은 듣지 못하고 곁에 있는 사람만이 들을수 있답니다. 나는 정일동무에게서 그런 소리가 울리는걸 들었어요.》

그이와 말을 건늬고싶어서 불쑥 둘러대는 롱담이였으나 실상 왕수해에게는 그런 생각을 련상시켜주는 기억이 돌이켜졌던것이다.

《정말 제 머리속에서 그런 소리가 울렸단 말입니까?》

그이께서는 어느새 롱담에 끌려들며 호기심어린 외양을 지어보이시였다.

《그래요.》

왕수해는 확신적으로 대답했다.

《언제 말입니까?》

정일동무가 도서관에서 밤을 새우던 며칠전에 들었어요.》

왕수해는 김정일동지에게서 경탄의 시선을 떼지 않으며 머리속에 떠오른 하나의 소중한 기억을 더듬었다. 며칠전 저녁 왕수해는 열시가 넘자 하루일의 거두매를 서둘러 끝냈다. 대출대에 찾아오는 학생도 없었고 열람실의 의자들도 거의나 비여가고있었다.

김정일동지께서 그때까지 창가옆의 책상에 마주앉아계시는것을 본 왕수해는 그리로 다가갔다. 조용한 기회를 빌어 그이와 이야기를 나누고싶었던것이다. 그런데 그이께서는 곁에 사람이 온줄도 모르고 독서에 집념하시였다. 주위세계를 완전히 망각하고 오직 책읽기에만 몰두하신것 같았다. 빠르게 글줄을 더듬는 안광에서는 사색의 불꽃이 타오르고 이따금 색연필로 밑줄을 그으시는 손은 사소한 점도 놓치지 않으려는 긴장감으로 가볍게 떨리시였다. 왕수해는 차마 말을 건늬지 못하고 곁에서 한동안 지켜보기만 하였다. 그러다가 하는수없이 대출대로 되돌아왔다. 자정이 넘자 다른 학생들도 모두 돌아가버리고 그이께서만이 홀로 열람실에 앉아계시였다. 불타오르는 탐구의 열정때문에 시간의 흐름도 의식하지 못하시였다. 이따금 혼자말로 뇌이시는 그이의 음성이 고즈넉한 열람실의 고요를 흔들며 대출대에까지 들려왔다.

《바로 이것이다!》

《절대로 그럴수 없다!》

무엇을 긍정하고 무엇을 부정하시는지는 알수 없었으나 단호한 주장의 여운속에서 엄숙한 감정에 휩싸인 왕수해는 그이의 두뇌에서 울리는 그 무슨 신비로운 소리를 들은것 같았다. 그런 일이 있어서 왕수해는 지금 그이에게서 박 터지는 소리가 울리는걸 들었다고 대답한것이였다. 책을 천권 읽으면 머리속에서 박 터지는 소리가 난다는 말은 어릴적에 들은것이다. 공부를 많이 하면 신비의 세계에 접근한다는 뜻일것이다. 왕수해는 김정일동지이시야말로 그런 경지에 도달했다고 믿고있었다.

《선생님, 그날 밤에는 참 미안하게 되였습니다. 제가 그만 시간가는줄 모르고 책을 읽다보니 새벽까지 선생님을 집에 돌아가지 못하게 했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웃음을 거두고 진지한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그대신 나는 오래동안 사서생활을 하면서도 보지 못했던 놀라운 사실을 목격했어요.》

왕수해는 명상에라도 잠긴듯 실눈을 지었다. 그는 김정일동지께 빌려드린 《고생물지사학》을 대출대장에 기록할 생각은 까맣게 잊은듯했다.

김정일동지께서 손에 드신 책을 내보이며 어서 등록을 하라고 깨우치시려는데 그가 또다시 입을 열었다. 이 기회에 그는 그이와 되도록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싶었던것이다.

《내 언제부터 정일동무에게 한가지 묻자던것이 있는데 물어도 좋아요?》

《말씀하십시오.》

《어째서 전공도 아닌데 구석기시대에 대한 문제를 그토록 깊이 연구하시나요?》

《저도 우리 민족의 한 성원인데 민족의 시원문제에 어찌 무관심할수 있겠습니까?》

그이께서는 웃으며 범상히 대답하시였다. 다른 학생들이 몰려드는통에 왕수해는 말을 더 건늬지 못하고 도서대출장을 그이앞에 내밀었다.

《여기다 수표하세요. 그런데 〈고생물지사학〉책을 열람실에서 보시겠어요?》

《또다시 선생님을 제시간에 퇴근하지 못하게 하면 어찌겠습니까. 집에 가서 보겠습니다.》

댁으로 돌아오신 김정일동지께서는 밤늦게까지 《고생물지사학》에서 필요한 부분을 전부 통독하시였다. 그 책에 펼쳐지는 고생물세계는 환상적인 느낌도 주는것이여서 마치 동화책을 보는것처럼 흥미도 있으시였다. 기후도 생물계도 오늘과 달랐다. 그때 우리 나라 기후는 습윤한 아열대성기후였고 생물계는 오늘에 볼수 없는 종들이 서식하였다. 인류의 첫 신화가 창조되던 신생대 제4기의 자연은 그 양상 역시 동화적이였다. 책의 마지막페지를 덮으시고 고개를 드신 그이께서는 불쑥 눈앞으로 섬광과도 같은 빛이 비쳐드는것을 의식하시였다.

우리 나라에서 신생대 제4기에 서식하던 동식물의 종류가 구석기시대유적이 출토된 다른 나라의 동식물종류와 대체로 일치하였던것이다. 이것은 하나의 의의있는 발견이였다. 그러한 일치는 우리 나라에서도 구석기시대의 인류가 살았다는것을 증명하는 하나의 증거로 될것이였다. 같은 동물계, 같은 자연조건은 다른 나라에서와 같이 필연적으로 이 땅에도 인간의 생활을 가져왔을것이다. 이러한 판단에 이르신 그이께서는 울렁거리는 가슴을 안고 밖으로 나오시였다. 진정할길 없는 환희에 휩싸이시였던것이였다. 그것은 성공의 실마리를 명백히 보신 순간의 희열이였다.

정원에는 살을 에일듯 한 겨울밤의 찬 기운이 서리였다. 하지만 김정일동지께서는 달아오른 열기로 하여 전혀 추위를 느끼지 못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조용히 거닐며 정원수사이로 아득히 높은 밤하늘을 쳐다보시였다. 서켠으로 기운 은하수가 반짝이는 뭇별들을 수없이 거느리고 검푸른 하늘을 찬란히 장식하였다. 구석기시대의 밤하늘에도 은하수는 저렇듯 황홀히 빛나며 이 땅을 굽어보았을것이다.

당시의 인간들은 어느 동굴앞에서 모닥불을 피워놓고 한낮에 사냥한 털코끼리를 타제석기로 각을 떠서 구워먹으며 은하수를 우러러 최초의 신화를 꾸미였을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대를 이어 살며 우리 나라의 그 어덴가에 생활의 흔적을 남겨놓았을것이다. 그 흔적을 반드시 찾아야 한다! 이것은 단순히 하나의 학술적과제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장구한 력사의 흐름속에서 련련히 이어온 우리 민족의 시원을 바로 찾는 성스러운 사업이다. 교조와 사대의 탁류가 오랜 세월을 두고 우리의 력사에 미쳐왔던탓으로 민족의 긍지높고 영예로운 고귀한것들이 적지 않게 인몰되거나 외곡되여왔다. 조국이 해방되고 이 땅에 사회주의제도가 세워졌지만 과거의 력사가 남긴 그 후과는 아직 가셔지지 않고있다. 우리 인민의 정신생활령역에서 사대의식을 종국적으로 가셔내고 존엄높은 우리 민족의 넋을 바로 찾는것은 대를 이어 주체위업을 완성해야 할 우리 세대의 어깨우에 오늘의 력사가 부과한 숭고한 사명감의 하나이다. 그이께서는 격동된 심정에 사로잡혀 오래도록 정원을 거니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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