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회)

제 1 장

2

 

최정택은 김정일동지와 함께 날라온 교과서들을 책상 한귀에 차곡차곡 쌓아놓았다. 파란 뚜껑의 책들에서 상긋한 인쇄잉크냄새가 기분좋게 풍겼다.

그는 그중 한권을 집어들고 어머니가 갓 태여난 아기를 지켜보듯 애정이 어린 눈길로 점도록 들여다보았다. 보면 볼수록 자기가 쓴 교과서가 심장의 한 부분처럼 소중히 여겨졌고 생명을 가진 존재처럼 정이 켕기였다. 부족점이 없지 않겠지만 어쨌든 자기의 넋을 아낌없이 태우며 창조한 정신적소산인것이다.

방열기에 증기가 잘 오지 않아서 방안은 서늘했다. 그대신 창문으로 고요히 흘러드는 해발이 잔등과 어깨에 와닿았다. 검은색양복은 해빛에 실려온 열기를 고스란히 받아서 피부에 전달해주었다. 그 따스한 촉감을 흐뭇한 마음으로 즐기며 그는 생각했다. 이제 이 교과서가 학생들속에서 어떤 반향을 일으킬가? 정치경제학은 전공학과만이 아니라 대학의 모든 학과들에서 배운다. 그런것만큼 다른 그 어느 교과서보다도 반향의 폭이 클것이다.

어느덧 교수의 머리속에는 교과서를 집필하여 심의에 붙이던 나날이 떠올랐다.

추억은 1955년 12월, 당 선전선동일군들앞에서 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연설을 학습하던 때로 거슬러올라갔다.

수령님께서는 력사적인 연설에서 지금 일부 사람들이 무작정 남의것만 좋게 여기는 현상들이 적지 않다고 하시면서 사상사업에서 주체를 세우기 위한 강령적인 과업을 제시하시였다.

로작을 깊이 학습한 최정택은 새로운 눈으로 해방후 우리 나라에서 벌어진 사회경제적변혁과정을 투시해보았다. 실로 거기에는 남의것과 확연히 구별되는 우리의 우월하고 긍지로운 성과들이 보석처럼 깔려있었다. 지금껏 그것을 보지 못하고 다른 나라 교과서에 매달려 강의를 하여온것이 그지없이 부끄러웠다. 그는 과거의 자기와 결별할 시각이 다가왔음을 깨달았다. 그것을 미룬다면 학생들을 우리 혁명에 쓸모있는 인재로 키워야 할 교원, 학자로서 자기의 존재가 무의미해질것이였다. 며칠동안의 생각끝에 사회주의정치경제학교재를 새롭게 쓰려는 용기를 가지였다. 그리하여 국가계획위원회를 비롯한 경제기관들과 공장, 기업소, 농촌들을 찾아다니며 필요한 기초자료들을 수집하는 한편 여러 분야의 출판물들을 뒤지며 문헌조사를 하였다.

자료수집이 끝나자 집필에 착수하였다. 하지만 붓은 생각했던바와는 달리 잘 달리지 않았다. 처음 해보는 일인데다 심중한 문제들이 많아서 성공에 대한 확신도 가질수 없었다. 적극 지지해나서는 사람들도 적었다. 바로 이러한 때에 김정일동지께서 대학에 입학하시였다. 학급담임인 최정택의 고충을 헤아리신 그이께서는 학생들이 하루빨리 새 교과서가 나오기를 기다린다고 하시면서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와 참고문헌들을 가져다주시였다. 그이의 지지와 고무속에서 최정택의 머뭇거리던 붓은 거침없이 내달렸다. 몇달만에 2천여매의 원고를 거뜬히 마무리했다. 추고를 거쳐 원고는 곧 심의에 제출되였다. 심의원들의 륜독이 끝나자 합평회가 열리였다. 우리 나라 학자에 의하여 처음으로 씌여진 사회주의정치경제학교과서여서 대학적인 관심이 쏠렸다. 부총장도 참가하였다. 만일 외국출장중이 아니였다면 오빈우총장도 참가했을것이였다.

몸이 틀지고 호인형으로 얼굴이 너부죽한 부총장이 격식없이 합평회의 취지를 설명하고나서 기탄없이 의견들을 말하라고 하였다. 최정택은 마치 운명의 판결을 기다리는듯 한 심정으로 가슴을 조이며 의견들을 기다렸다. 선뜻 일어서는 사람이 없었다. 방안에는 잠시 침묵이 흘렀다. 처음으로 씌여진 우리의 첫 정치경제학교과서인것만큼 론의가 분분할것이 예견되여서 누구나 서뿔리 선코를 떼고 나서기를 주저하였다.

부총장이 또다시 어서 의견들을 말하라고 하였다. 그러자 계획경제학강좌장이 일어섰다. 그는 사치스럽게 뚜껑을 씌운 수첩을 펼치며 군기침을 한토막 앞세우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여러 선생들도 그러하겠지만 저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최정택선생의 원고를 읽었습니다. 우선 최선생이 방대한 현실자료들을 리용해서 우리 나라의 정치경제의 변혁과정을 폭넓게 서술한것은 그자체로서 자못 의의가 크다고 할수 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세계적인 인정을 받는 해당 학계의 권위자들만이 할수 있는 대학교재의 집필사업에 주저없이 뛰여든 그 용단도 흘륭하다고 할수 있습니다. 정말 수고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계획경제학강좌장은 갑자기 말을 끊고 펼쳐든 수첩을 훑어보았다. 하더니만 어조를 바꾸며 뒤를 이었다.

《그 학구적정열과 용기에도 불구하고 씌여진 원고에는 심각한 부족점들이 있다고 봅니다.

우선 이것은 근본문제이기도 합니다만 최정택선생은 교과서에서 우리 나라의 정치경제적변혁과 성과만을 례증하고 일반화하였습니다. 국내 일반독자들을 위한 통속서적이라면 별로 나무랄데가 없습니다. 그러나 대학의 사회주의정치경제학교과서는 그 체계와 원리가 맑스-레닌주의에 철저히 립각하여야 할뿐아니라 인용되고 분석되는 기초자료들도 여러 사회주의나라의 성과에서 일반성과 보편성을 띠는 그러한것으로 선택되여야 할것입니다. 과학이란 본래의 의미에서 일반적이고 합법칙적인것을 대상으로 하는것이지 례외적이고 우연적인 현상을 연구대상으로 하는것이 아닙니다. 중학교 학생들에게도 명백한 이러한 리치를 제가 이 자리에서 상기시키는것은 최정택선생의 원고에 그 근본리치가 구현되여있지 않기때문입니다. 주지하는바와 같이 우리 나라에서 사회주의혁명과 사회주의건설은 자본주의단계를 정상적으로 거치지 못한탓으로 후진성이 너무도 짙게 남아있는 특수한 력사적조건에서 진행되고있습니다. 그렇기때문에 그러한 력사적조건에서 이룩된 성과와 경험들은 그자체로서 아무리 눈부신것이라 하더라도 전형적인것으로 될수가 없으며 따라서 일반성, 합법칙성을 띨수 없는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동서방의 여러 사회주의나라들에서 거둔 혁명과 건설의 성과와 경험들을 다 연구한 기초우에서만 일반성을 띠는 사회주의정치경제학교과서를 쓸수 있겠습니까?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맑스는 〈자본론〉을 쓰기 위해 자본주의가 가장 발전되였던 영국의 사회경제관계를 해부했던것입니다. 만일 그가 모국에 대한 애착과 편견에 사로잡혀서 자본주의발전이 상대적으로 뒤떨어졌던 도이췰란드를 연구대상으로 하였다면 〈자본론〉에서 밝혀낸 그 위대한 결론들에 도달하지 못하였을것입니다.

사회주의경제학은 마땅히 가장 발전된 사회주의나라의 성과와 경험들을 연구분석함으로써만 합법칙성을 띠는 과학적리론으로 정립될수 있습니다. 만일 우리들이 과학적시야를 근시안적으로 우리 나라에만 국한시킨다면 애국자로 찬양될지는 모르겠으나 과학자로서는 성공하지 못할것입니다.》

계획경제학강좌장은 웅변조로 거침없이 력설했다. 잘 째인 론리에 손짓도 활달했고 표정도 다채로왔다. 그는 자기 주장에 대한 반응을 가늠해보려는듯 장내를 둘러보며 자리에 앉았다.

심의에서는 언제나 첫 토론의 영향력이 큰것이다. 확고한 견해를 가지기 어려워하던 사람들은 첫 토론자의 편으로 기울어지기 쉬운 법이다. 첫 토론자가 높은 학술적권위와 직위를 가지고있을 때에는 더욱 그렇다.

《저도 전자의 견해에 대체로 동감입니다.》하고 재정경제학강좌의 한 교원이 두번째로 토론했다. 그는 전자의 주장에 보충적인 설명을 하고나서 이렇게 끝을 맺았다.

《저 역시 최정택교수의 교과서는 앞에서 이야기한 근본적인 약점이 있기때문에 대학교과서로 리용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자체로서는 일정한 수준에 오른 원고인것만큼 기각하지는 말고 학생들의 참고서로 출판하는것이 좋겠습니다.》

최정택은 끓어오르는 반발심을 억제하려고 주먹을 꽉 그러쥐였다. 원고자체를 놓고 지적되는 부족점과 결함이라면 성근히 받아들일 용기가 있다. 그러나 우리 인민이 새 사회건설에서 이룩한 성과가 비전형적인것으로 묘사되는데는 치미는 분격을 참을수 없었다. 금시 가슴속에서 터져오르는 항변을 간신히 눌렀다. 원고심의를 받는 필자로서 남의 의견을 즉석에서 부정하는것은 례의에 어긋나는 일이였다.

그때 왼쪽에서 성급히 의자를 등뒤로 밀어놓는 소리가 났다. 머리를 돌려보니 정치경제학강좌장이 반백의 머리칼을 쓸어올리며 일어서고있었다. 그는 전자들에게 예리한 시선을 던지더니 힘주어 말하였다.

《우리 나라의 현실을 반영했기때문에 과학성이 결여된것처럼 주장하는 전자들의 의견에 저는 동의할수 없습니다. 지금 지구상에는 발전된 자본주의단계를 거쳐서 사회주의에로 이행하는 나라들보다 우리 나라와 같이 식민지로 있다가 민족해방혁명을 이룩하고 새 사회건설을 진행하는 나라들이 더 많습니다. 문제는 원고에 전개된 내용이 과학적타당성을 띠는가, 그렇지 못한가 하는것이지 우리 나라 현실을 반영하면 과학성을 띠지 못한다는 식의 주장은 어불성설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저는 씌여진 원고자체의 성과와 부족점을 정확히 분석함으로써 필자가 원고를 더 좋게 완성하도록 도움을 주는 방향에서 토론들이 전개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교과서를 리용할 대상이 우리 나라 학생들이라는 점을 우리모두가 새삼스럽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정치경제학강좌장이 토론을 마치자 맞은편에 앉은 재정경제학교원이 번쩍 턱을 들었다.

《자기 강좌에서 제출된 원고라고 하여 편견을 가져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심의에서는 원고의 우단점을 론하기에 앞서 그것이 대학교과서로 가치를 가지는가, 못 가지는가 하는것을 결정해야 할것입니다. 대학교과서는 통속적인 지식이 아니라 세계적인 높이의 전문과학지식을 담고있어야 한다는 전제밑에 문제를 론의해야 할것입니다.》

장내가 웅성거리였다. 대립되는 두 견해가 정면에서 충돌되자 다른 사람들도 바싹 마음이 긴장해졌다. 장내는 폭풍을 맞은 바다처럼 술렁대기 시작했다. 부총장이 손끝으로 앞탁을 두드렸다.

《조용들 하시오. 의견들이 있으면 일어나서 기탄없이 말하시오.》

반대의견을 가진 사람들의 기대어린 시선들이 경제학부 부학부장 송금석교수에게 쏠리였다. 학부장이 출장중이여서 그가 오늘은 학부를 대표한다고 할수 있었다. 해방전에 쏘련의 대학교단에 섰던 그에게는 그 나라에서 배우고 익힌 사상과 지식에 대한 남다른 확신이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지금 대학에서는 그가 번역한 다른 나라 대학교과서를 리용하고있었다. 이제 최정택의 새 교과서가 채택되면 그가 번역한 교과서는 밀려날판이다. 그는 대학적으로 학술적권위도 있었다. 머리가 뛰여난 그는 쏘련의 명망높은 대학에서 최우수생으로 졸업하였고 대학교단에 선지 몇년만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제 그가 어떤 견해를 펴는가에 따라 새 교과서 심의의 찬반이 결정될수 있다고 누구나 생각했다. 반대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그에게 기대를 가지는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였다. 계획경제학강좌장이 슬그머니 송금석의 옆구리를 건드렸다. 어서 일어서라는 뜻이였다.

마침내 송금석이 일어섰다. 모두의 긴장한 눈길들이 그에게 쏠리였다.

최정택은 살갗이 윤택하고 미간이 넓은 송금석의 얼굴이 벌써부터 상혈되는것을 보았다. 저으기 흥분하는것이 알렸다. 그 흥분의 의미가 무엇인지 짐작되자 마음이 긴장해졌다. 그의 입에서 자기의 원고를 전면부정하는 화려한 론리가 거침없이 쏟아져나오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흥분된 낯빛과는 달리 송금석의 입에서 침착하게 울려나오는 목소리는 예상밖이였다.

《저는 먼저 원고에 대한 견해를 터놓기에 앞서 오늘의 모임에 대한 개인적인 소감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최정택선생이 우리의 첫 사회주의정치경제학교과서를 집필한것은 매우 기쁜 일이고 뜻깊은 일입니다. 우리모두는 응당 필자의 의도와 수고에 대해 깊은 리해를 가져야 하며 씌여진 원고를 애착을 가지고 읽었어야 했습니다. 저는 해방후 쏘련의 대학교단을 떠나 새로 창립된 김일성종합대학으로 올적에 희망과 포부가 컸습니다. 그중의 하나는 제 머리로 쓴 교재를 우리 나라 대학생들에게 안겨주려는것이였습니다. 어느 나라 대학이나 학생들의 교재는 그 대학의 교수들이 쓴것입니다. 자기의 교재를 가지고있지 못한것은 해당 대학의 수치라고 해야 할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제 손으로 교과서 한권 써내지 못했습니다. 최정택선생이 새 교과서집필을 끝냈을 때 저를 대신하여 오랜 숙원을 풀어준것처럼 기뻤습니다. 그만큼 애착을 가지고 읽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토론들을 들어보니 적지 않은 교원들은 그러한 감정이 아니라 다른 감정을 가지고 읽었다는것이 알렸습니다. 물론 과학적진리를 감정을 앞세우며 재단해서는 절대로 안될것입니다. 그리고 원고심의에서는 기탄없이 자기의 견해를 말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맑스가 모국을 외면하고 영국에 가서 그 나라 현실을 분석하였기때문에 〈자본론〉에 밝혀진 과학적진리에 도달하였다거나 지어 애국심과 과학적탐구를 대치시키는것과 같은 론리에 저는 참을수 없는 의분을 느낍니다. 그러한 론리는 해외에서 활동을 하다가 애국의 마음을 품고 스스로 내 조국을 찾아온 학자들에게 모욕으로 될것입니다.》

송금석은 잠시 말을 끊고 곁에 앉은 계획경제학강좌장에게 격분의 시선을 던졌다. 처음 일어설 때의 흥분된 표정이 다시 떠올랐다. 그는 그 흥분을 삭이려는듯 날숨을 길게 내불고 뒤를 이었다.

《최정택선생의 원고에는 선진사회주의국가의 현실을 배제한 부족점이 없지 않습니다. 그리고 일부 개소의 론리적분석과 표현이 부정확한 점도 있습니다.

하지만 장절체계가 비교적 정확하고 전반적인 분석과 서술이 원만하기때문에 대학교과서로서 품격을 갖추었다고 봅니다.》

최정택은 선망의 눈길로 송금석을 바라보았다.

확실히 그는 이런 장소에서 케를 보아가며 그 누구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적당히 토론을 하는 처세술을 몰랐다. 어느 경우든지 자신의 내심을 명백히 드러내는 학자였다. 최정택은 그가 자신이 번역한 교재가 밀려나기때문에 필경 반대할것이라고 생각했던것을 부끄럽게 여기였다. 하긴 로어실력이 뛰여난 그는 역자로서 이름이나 남기자면 한해에도 여러권의 책을 번역할수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사소한 명예심이나 리해관계때문에 공정성을 잃을 사람은 더욱 아니다.

송금석의 토론으로 장내의 분위기는 달라졌다.

부총장이 모임을 결속하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혈색이 좋고 둥실한 얼굴이 엄한 빛을 띠였다.

《주체적립장에서 대학의 교과목들을 건설해야 하는것은 당적인 요구인 동시에 더는 미룰수 없는 현실적과제입니다. 우리의 현실을 놓고볼 때 매우 뜻깊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밑에 사회주의위업수행에서 우리 인민이 이룩해놓은 투쟁과 창조의 경험은 보편적의의를 가질뿐더러 자랑스러운 본보기로 됩니다.

여러 선생들도 보았겠지만 며칠전 우리 신문들에는 2년반동안에 5개년계획의 공업총생산액과제를 넘쳐수행하였다는 중앙통계국의 보도가 실렸습니다. 세상사람들은 류례없는 사회주의건설속도를 창조하는 우리 나라를 일러서 〈천리마조선〉이라고 부르고있습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말할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나라 혁명이 아닌 바로 조선혁명에 쓸모있는 인재를 키워내야 합니다. 교육목적에 교육내용이 부합되여야 한다는것은 누구나 공인하는 교육의 기초원리가 아닙니까. 조선혁명에 쓸모있는 인재를 키우자면 다른 나라의 교과서가 아니라 우리의 현실을 반영한 우리의 교과서를 가지고 학생들을 교육해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최정택선생의 원고를 부분적인 가필과 수정을 전제로 하면서 대학교재로 출판에 회부하기로 합시다.》

그렇게 세상에 빛을 보게 된 책이였다. 최정택은 책표지를 다시금 살뜰히 쓰다듬었다. 심각한 론의를 거치며 태여난 책이여서 더 애틋하게 여겨지는지도 몰랐다. 아득히 멀리 흘러간 젊은 시절 첫 자식을 보았던 그날처럼 마냥 기쁨에 들뜨는 마음을 어쩔수가 없었다. 문득 김정일동지의 기쁨어린 존안이 눈앞에 떠올랐다. 래일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했지… 그는 저절로 얼굴에 미소가 피여오르는것을 어찌할수 없었다.

복도에서 발걸음소리가 나더니 력사학부의 강명호교수가 강좌실로 들어왔다. 70이 넘은 나이에 비해서는 퍽 정정한 로인이였다. 앞으로 약간 내밀린 이마에는 오랜 세월의 사색의 흔적인양 얼기설기 주름이 덮였지만 우묵한 눈확속에서 빛나는 눈동자엔 정기가 흘렀으며 볼편의 혈색도 좋았다. 최정택은 손에 들고있던 교과서를 책상우에 놓고 반기며 의자에서 일어섰다.

《학술토론회에 가셨다더니 언제 돌아오셨습니까?》

《지금 돌아오는 걸음일세. 방금 현관에서 부총장을 만났는데 선생의 책이 나왔다더군. 참 반가운 일일세.》

그러니 소식을 듣고 축하해주려고 일부러 찾아온것이 분명했다. 최정택은 두손을 맞잡고 어쩔줄을 몰라하였다. 전쟁전에 대학사택마을에서 이웃하고 살던 강명호와 최정택의 가정은 일가친척처럼 사이가 좋았다. 빛다른 음식이 생겨도 함께 나누었고 휴식일과 명절에도 서로 오가며 즐기였다.

세대가 다르고 전공학문이 달랐지만 강명호와 최정택은 서로 마음이 통해서 일단 마주앉으면 끝없이 담소를 나누었다. 때로는 학문의 령역을 떠나서 인간사말사를 헤치며 롱도 오고갔다. 두 가정의 남자들보다 녀자들사이는 더 가까왔다. 강명호의 마누라는 무척 인심이 후하고 마음이 무던한 로파였다. 량주가 직장에 출근을 하는 최정택의 가정을 세간낸 친자식처럼 돌보아주었다. 그래서 최정택의 부인은 그를 친정어머니처럼 따랐다. 전후에 최정택이 대학에 돌아와 홀로 합숙생활을 하게 되자 강명호부부의 동정과 관심은 더욱 각별하였다.

《최선생, 중년나이에 합숙생활을 하자면 구차스러운 일이 많지. 부인이 나타날 때까지 우리 집에 와서 함께 사세나. 늙은 내외가 손녀 하나를 데리고 살자니 적적하기 이를데 없네.》

강명호는 여러번 그렇게 권고하였다. 그는 전쟁때 아들과 며느리를 잃었다. 아들은 군관으로 전선에서 싸우다가 전사하였고 며느리는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시기 빨찌산투쟁을 하다가 희생되였다. 그 역시 상실의 쓰라린 고통을 안고있는것이여서 홀로 된 최정택의 처지를 남의 일같이 여기지 않았다. 최정택은 자기가 그 집에 덧얹혀살면 년로한 로파에게 부담이 될듯싶어서 사양했다. 강명호는 최정택의 사생활에 왼심을 쓰고있을뿐아니라 학문연구에서도 크게 성공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있었다.

강명호는 털모자를 벗고 대머리언저리에 몇오리 남아있는 성긴 백발을 쓸어보며 의자에 앉았다.

최정택은 그에게 주려고 간수했던 책을 책상뽑이에서 꺼냈다.

《제가 찾아가 드리려 했는데 선생님이 오셨군요. 변변치 못한 책이지만 선생님 서가에 꽂아주십시오.》

《수고가 많았겠네. 교과서를 한권 쓴다는게 어디 조련한 일인가.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이 책의 출판을 반대했다면서?》

강명호는 기쁨과 노여움이 한데 섞인 어조로 물었다.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나두 그 반대의견이란게 어떤건지 대충 들었네. 자랑스러운 우리민족사와 빛나는 오늘의 현실을 바로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근처에 있으니 참 안타까운 일이네.》

강명호는 한숨을 쉬였다.

《력사학계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까?》

《력사학에도 사정은 마찬가질세. 조선사를 전공하면서도 우리의 민족사를 보잘것 없는것으로 치부하며 외곡된 견해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네. 지금이야말로 긍지높은 우리의 민족사를 바로 정립해야 할 땐데 나는 기력이 진했네. 어느결에 이렇게 늙어버렸는지 모르겠네.》

강명호는 성긴 백발을 쓸어보며 한탄조로 중얼거렸다.

《참, 우리 학급 학생들이 래일 조선사시험을 치게 되여있는데 시험점수가 어떻겠는지 근심이 됩니다.》

최정택은 강명호가 또다시 한숨을 터뜨릴듯싶어 화제를 돌리였다.

《최선생이 맡은 경제학부 1학년 1반 학생들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전례를 미루어보면 경제학부 학생들이 흔히 조선사공부를 소홀히 해왔네. 전공학문과 력사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는 모양이거던.》

《학생나름이겠지요. 김정일동무는 조선사시험공부를 하다가 의문나는것이 생겼다면서 선생님을 찾아다니댔습니다.》

《언제?》

《선생님이 안계시니 방금 돌아갔습니다.》

《음, 유감스럽군. 무슨 문젤가?》

강명호는 자못 궁금한 기색이였다.

《무슨 문제를 선생님에게 물어보려 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정일동무는 다른 학과목공부도 그렇지만 조선사공부에도 비상한 탐구력을 경주하는것 같습니다.》

《그렇단 말이지.》

학부가 다른데다가 조선사강의를 얼마 하지 않았기때문에 강명호는 정치경제학과 1학년 1반 학생들에 대한 파악이 깊지 못했다. 그래서 새삼스레 감심을 하며 고개를 끄덕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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