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9 회)

제 15 장

3

 

어제 밤에는 리윤재가 근 일년 반만에 가족, 친척들을 만나 붕 뜬 기분이여서 감옥에서 얻은 병도 씻은듯이 가셔진것 같았는데 하루밤을 감방의 널마루우가 아니라 내 집 자기 방의 따뜻한 온돌우에서 푹신한 이부자리에 누워 지냈는데도 온몸이 안 아픈데가 없이 쑤시고 아팠다. 특히 고질로 되여가는듯 한 허리아픔이 심했다. 감옥살이의 괴로움이 한꺼번에 되살아나는듯 했다.

그의 생활에서 감옥살이는 언제나 심각한 흔적을 남기군 했다. 3. 1인민봉기때 감옥살이의 후과로 얻은 토혈병은 일생의 지병으로 되였다. 그런데 이번 감옥살이에서는 허리병까지 얻었다.

감옥살이는 그의 육체만이 아니라 그의 생활전반을 여지없이 파괴해놓았다.

생활에서 토막을 내여놓는 감옥살이에 의한 공백을 메꿀 길이 없었다. 파괴된 생활을 추세울 겨를도 없이 번번이 당하게 되는 예비검속으로 그의 생활은 끊임없이 란도질을 당했다. 이쯤되니 재산도 없는 그에게서 가난은 거의 숙명적인것이였다.

이제 어떻게 살아갈것인가? 지리멸렬상태에 빠진 가정을 어떻게 수습할것인가? 이런 생각에 그는 누워있어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부엌에서 동자질하는 그릇소리가 들리고 건너방에서 재털이에 대통을 두드리는 소리와 소곤거리는 말소리가 들려왔다. 언제 한번 관심을 돌려본 일도 없는 이 생활의 잡음이 그에게 잃어버렸던 생활을 다시 되찾았음을 일깨워주는것 같았다.

그는 이불을 차고 벌떡 일어났다. 허리가 또 지끈했다. 두손으로 무릎을 짚고 겨우 허리를 편 그는 이부자리를 개여놓고 동저고리바람으로 마당으로 나갔다. 한기에 몸이 오싹했다. 악취가 밴 감방에서 그렇게도 그리워하던 이 시원한 공기를 그는 게걸스럽게 들이켰다. 그는 한손으로 허리를 짚고 엉거주춤해서 마당을 걸어다니다가 화단으로 다가갔다. 키높이 자란 무궁화가 그의 시선을 끌었던것이다. 여름가을없이 줄곧 꽃을 피웠을 무궁화가 한때에는 볼만 했겠는데 찬서리를 맞고 후줄근해진 그 몰골은 보기에도 처량했다. 잎은 거무틱틱하게 시들어서 축 늘어지고 꽃은 몇송이가 가지에 겨우 달려 잔명을 유지할뿐 모조리 떨어져서 땅우에 하얗게 깔렸다. 그는 웅크리고 앉아서 아직도 성한 꽃송이 하나를 쥐고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하얀 꽃잎이 은근한 보라색으로 바뀌여 꽃술을 둘러싸고있는 모습은 꼭 수심을 감춘 깊숙한 눈같다. 그것이 눈물을 머금은듯 축축히 젖어있다.

그가 이 꽃을 사랑하며 이 처량한 꽃을 보고 가슴아파하는것은 이 꽃이 나라와 운명을 같이한 꽃이기때문이다. 끓는 쟁개비처럼 바글거리며 변덕많은 왜놈의 기질을 표현하듯 순간에 피였다가 순간에 져버리는 사꾸라(벗꽃)와는 달리 온 여름, 가을 한결같이 피는 연보라빛의 의젓한 무궁화는 대도대범한 군자의 기품을 보여주는것 같다.

그는 무궁화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둘째딸의 이름을 무궁화라고 지었다. 그런데 그가 보통학교에 입학할 때 그 이름이 왜놈교원들속에서 말썽이 되고 딸이 너무도 울고불고 해서 그는 하는수없이 무궁화의 동의어인 근화로 이름을 고쳐주었는데 그후에는 말썽이 없었다. 무식한 귀신은 진언도 모른다고 그는 웃었지만 무궁화라는 이름에조차 신경을 곤두세우는 섬오랑캐의 근성을 미워하는 나머지 이 꽃에 대한 애착이 더욱 깊어졌다.

그러나 나라가 망하고 무궁화도 버림을 받아 이제는 보기 드문 꽃이 되였는데 어떤 뜻있는 사람이 이 뜨락에 심어 알뜰히 가꾸어놓은것이다. 그는 땅바닥에 흩어진 무궁화꽃송이를 하나하나 주어서 소복이 모아놓았다.

《동병상련(어려운 처지를 서로 동정하여 돕는다는 뜻)이구려. 서리맞은 사람이 서리맞은 꽃을 어여삐 여기니, 허허허.》

언제 나왔는지 김한규가 목에 세면수건을 걸치고 빙그레 웃으며 리윤재의 등뒤에 서있다. 리윤재도 따라 웃으며 허리를 폈다.

《화무십일홍(열흘 피는 꽃이 없다.)이란 말도 있지 않소. 그 점에서 인생도 꽃과 다를바없지. 그러니 한풀 꺾인 인생의 가을에는 땅과 사귀고 자연과 벗삼는 이상 없는거요.》하고 김한규가 말을 이었다.

《당장이라도 그럴수만 있다면 작히나 좋겠소.》

《당장 없다면 일간 몸보신을 위해서라도 한번 방이골에 들리러 오구려. 내 밭에서 손수 농사지은 차좁쌀로 조차떡을 치고 나무에 달린채 서리맞은 꿀같은 배맛도 보고 늪에서 천렵을 하는것도 별재미지. 이게 다 몸에 약이 되느니 개든 닭이든 무엇이든 잡아 대접하겠소. 메말라가는 서울에서는 푸짐한 이런 농촌맛은 못 볼거요.》

《내 조차떡맛을 보려 일간 방이골에 가보겠소.》

리윤재는 이 호협한 사나이와 벗을 삼고 농촌에서 여생을 보내고싶은 생각이 간절했으나 아직은 머리를 저었다.

아침을 치르고 김한규내외가 떠나가자 온 집이 텅 빈것 같았다.

하는 일없이 자리에 누워있으니 곧 무료해지고 무위에 시달리던 감옥생활이 되풀이되는것 같다. 신문이라도 있으면 소일삼아 읽어보겠는데 그것조차 끊어버린지 오랜것 같다. 그는 눈으로 서가를 더듬다가 박연암의 《열하일기》를 꺼내들었다. 이것은 그가 가장 사랑하는 책의 하나다.

연암 박지원은 일생동안 뛰여난 글을 방대하게 썼건만 생존시에는 문집 한권 발간하지 못했다. 사대주의로 썩어빠진 유학자들을 신랄히 규탄한 그의 글들은 조정의 봉건사대부들에 의하여 배격을 받고 금지서적으로 되여있었기때문이다. 그의 손자 박규수가 우의정이라는 정승벼슬을 하면서도 조부의 문집을 감히 발간하지 못했고 유고는 자손의 서고속에 묻혀있었다. 그러던것이 박연암의 사망후 약 백년후인 1900년에 한학자 김택영에 의하여 《연암선집》이 간행되여 그의 저작이 일부나마 비로소 해빛을 보게 되였다. 그후 1911년에 광문회에서 《열하일기》를 단행본으로 출판했는데 이것이 바로 리윤재가 가지고있는 책이다.

《열하일기》는 정조 4년(1780년)에 박연암이 청국에 사신의 수원으로서 베이징으로, 건륭의 피서가 있는 열하로 4개월간에 만리에 가까운 려행을 하고 보고 느낀것을 일기, 기행문형식으로 쓴 26권에 달하는 대작이다. 그러니 집대성한 백과전서적인 저술이다.

리윤재가 《열하일기》를 특히 좋아한것은 당시의 량반통치자들과 고루한 유학자들의 비굴한 사대주의에 대한 박연암의 신랄한 폭로비판과 《남이 열가지를 배우면 우리는 백가지를 배워 먼저 우리 나라 인민들에게 리익을 주어야 한다.》고 그 책에서 실사구시의 정신을 강렬하게 느꼈기때문이다.

반세기도 안되는 사이에 임진왜란, 병자호란과 같은 외적에 의한 큰 란리를 두번이나 치러 황페화된 경제를 회복할 사이도 없어 국력은 피페해지고 민생은 도탄에 빠졌을 때 이에는 아랑곳없이 무능부패한 량반통치자들과 주자학을 떠받드는 유학자들은 례론(효종과 효종왕비가 죽었을 때 조대비가 어떤 복을 입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발단으로 일어난 싸움)으로 당쟁을 벌리고 사칠론쟁(인간의 심리현상인 4단과 7정에서 리가 주인가, 기가 주인가 하는 비현실적인 론쟁)으로 공리공담만 일삼았다.

이런 현실에서 실사구시의 안목으로 력사를 바로 보고 고증하며 그에 비추어 자신을 반성하며 선진문명을 받아들이자는 학풍이 일어났으니 이것이 곧 실학사상이였다. 실학은 이미 인식적인 의의도, 현실적인 가치도 없는 공리공담, 언어유희로 전락된 주자학을 사회발전을 저애하는 질곡으로 비판하고 정치, 경제, 문화 모든 분야에 걸쳐 나라의 현실을 구체적으로 연구하고 그 모순을 해결하여 인생을 도탄에서 구원하고 나라의 부강발전을 도모하려 했던것이다.

리윤재가 알고있는 한 실학의 학풍을 국어학에 구현한 대표적인 인물은 려암 신경준(1712―1781)이였다. 그가 저술한 《훈민정음운해》는 훈민정음이 창제된 이후 16세기-17세기의 공백기를 거쳐 300여년만에 처음으로 나온 학술적인 저작이다. 한문이 판을 치는 조선봉건사회에서 훈민정음의 문자와 어음의 원리를 려암이 학문으로서 연구했다는 그자체가 벌써 실사구시적인 자기반성이고 자아발견이였던것이다.

신경준에 이어 류희는 국어학에서 실학의 학풍을 확립하는데서 큰 자국을 남기였다. 그는 저서 《언문지》에서 실학의 방법론에 립각하여 훈민정음에 대한 문자학적, 어음론적연구를 거쳐 그것을 리론적으로 정리하였다.

조선문자사상에서 음운학의 권위자로서는 훈민정음창제자들인 세종, 정린지, 최항, 성삼문 등을 들수 있고 그 이후에 나타난 특기할 인물로서는 신경준과 류희를 꼽지 않을수 없다.

그러나 리윤재에게는 필자의 수사본으로나 전하는 신경준의 《훈민정음운해》도, 류희의 《언문지》도 없고 남의 소장본을 빌어서 베껴놓았을뿐이다. 이런 귀중한 고전들이 한번도 간행되지 못하고 필자의 수사본으로 희귀하게 남아있다는것은 빈약한 조선학계의 수치가 아닐수 없다고 그는 늘 생각했다.

또 간행되였다 해도 한문으로 씌여졌으니 한문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그런데 한문처럼 배우는데 품이 드는 글자는 세상에 없을것이다. 백마디를 알자면 백 글자를 익혀야 하니 그 많은 말을 다 배우자면 일생을 걸려야 할것이다. 그러니 일반민중이 어느 하가에 한문을 공부하고 그 어려운 고전을 읽을수 있을것인가.

게다가 고전은 거듭되는 란리통에 계속 류실되거나 도적맞고있다.

임진왜란때 불타버린 고전은 얼마이며 오늘날도 왜놈에게 도적맞는 고전은 얼마인가! 책이름만 전해지고 그 현물이 없는것은 다 이때문이다.

나라가 있다면 국력으로 귀중한 고전의 보존대책을 세우고 출판사업도 할수 있겠지만 지금은 고전이 개인의 서고에서 사장되거나 한지에 놓여있다. 1910년에 여러 사람들이 모여 광문회를 뭇고 고전출판을 시도한 일이 있었으나 역시 돈이 없어 얼마 안 가 흐지부지되고말았다.

한문으로 된 고전번역을 시도하는 사람도 없다. 그것은 한두사람의 힘으로 해결될 문제도 아니고 수지도 맞지 않을 이런 일에 손을 댈 출판사도 있을리 없다.

우리 나라 고전출판과 번역에 오래전부터 마음을 써온 리윤재자신도 여기에 바칠 시간은 없었다.

이러한 생각을 두서없이 하며 문갑에 기대앉아있던 리윤재는 책장과 책장사이에 끼여있는 낯설은 조그만 나무통에 문득 눈이 갔다. 그것을 집어 들어보니 4×6판 책만 한 크기에 조그만 문짝도 두개 달려있고 제법 지붕까지 씌워있어 깜찍한 집의 모양이다.

《이게 뭐요?》하고 그가 막 문짝을 열려는데 반짇고리를 앞에 놓고 바느질을 하고있던 안해가 깜짝 놀라 그것을 빼앗듯이 받아서 《모르시는게 약이예요.》하고 벽장속에 던져넣었다.

리윤재는 짐작은 되였으나 불쾌한대로 더 따져물으려 하지 않았다. 잠시후에 안해가 도리여 미안한지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화내지 마세요. 저게 <가미다나>라던가 왜놈의 신주단지래요. 저걸 벽에 걸어놓고 아침저녁으로 절을 하래요.》

《그런걸 왜 집안에 끌어들였소?》

《그럼 어떻게 해요. <애국반>에서 막 내려먹이는데.》

《<애국반>이란 또 뭐요?》

《<국민정신총동원조선련맹>이라는게 생기자 동리마다 <애국반>이라는걸 꾸려놓고 사람들을 달달 볶지요. 저런 왜놈신주단지를 집집마다 걸게 하는가 하면 비행기를 헌납한다고 금, 은은 있는대로 긁어가고 이제는 탄알을 만드는데 쓴다고 놋그릇까지 훑어가고있어요. 저 화신상회앞에라도 한번 나가보세요. 새파란 색시들이 <애국부인회>라는 어깨띠를 띠고 왜년들과 함께 <샌닌바리>를 하고있지요. 지원병에 나간 남편에게 천사람의 바늘뜸을 받은 속옷을 입히면 총알에 맞지 않는다는 왜놈의 미신에 홀려 그러는거죠. <애국반>이라는게 그런 놀음까지 벌리지요. 지원병을 내보낸 집에는 <출정용사의 집>이란 패쪽을 붙여주고 사탕발림으로 우대도 해준대요. 왜놈의 앞잡이가 된 조선놈이 더 기승을 부려요.》

리윤재는 이 모든 미치광이놀음에 화가 동하여 자기도 모르게 버럭 소리를 지르고말았다.

《저걸 당장 아궁이에 쓸어넣소.》

《그건 왜요. 저것도 돈주고 산건데. 저 깜찍한 통에서 왜놈귀신을 몰아내고 치솔통으로 쓸 생각인데.》

안해의 말에 리윤재는 그만 껄껄 웃고말았다. 저렇게 소박한 안해와 같은 녀인도 왜놈들의 우민화정책에 저렇듯 반발하는데 왜놈이 조선사람을 《황민화》 즉 노예화하겠다는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망상인가 하는것을 그는 마음속깊이 느꼈다.

그는 왜놈이 정치에 리용하는 우상숭배, 허례허식을 증오하는 나머지 그 개인의 생활에서도 이런 현상을 매우 싫어하고 피했다. 그는 관혼상제에서 조선의 고유한 풍속은 존중하면서도 그에 따르는 허례허식은 반대했다. 맏딸 순경의 결혼식때 신랑은 사모관대를 하게 하고 신부는 칠보족두리에 원삼(녀자례복의 한가지)을 착용하게 했지만 의식은 간소화하여 사람들의 화제거리가 되였던것도 그때문이다. 그의 파격적인 옷차림도 가난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 허례허식을 반대하는 그의 소신때문이기도 했다. 그는 무명두루마기를 입고 다니기를 좋아했고 필요없이 긴 옷고름을 없애고 평안도의 덧저고리처럼 단추를 달아 입기도 했다. 이것이 다 그의 소박한 인간됨됨이의 반영이기도 했지만 모든 점에서 도금한 금속같은 왜놈의 거짓과 허장성세에 찬 정치에 대한 반발이기도 했다.

그날 오전에 리윤재를 제일먼저 문안하러 온것은 리극로였다.

그는 솥뚜껑만 한 손으로 리윤재의 파리한 손을 으스러지게 잡고 마구 흔들며 반가움을 말과 온몸으로 나타내는듯 했지만 리윤재는 왜 그런지 그의 커다란 눈에 피로가 어려있고 옷차림도 어딘지 궁상이 흐르는듯이 느껴졌다.

리극로는 김해댁에게 문안을 드리겠다고 건너방으로 건너가더니 무슨 우스운 이야기를 하는지 껄껄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렸는데 그 호탕한 웃음소리에서도 자신의 기분을 과장하는듯 한 부자연함이 느껴졌다.

이윽고 둘이 마주앉자 리윤재는 무엇보다 궁금한 사전편찬의 진척정형을 물어보았다. 그제서야 리극로는 정색을 하고 한참 침묵했다가 한숨을 쉬듯 말했다.

《간고합니다. 이제는 서산락일이라고나 할가. 후원회의 기금도 이미 떨어져 사람도 일도 거의 좌절상태에 있습니다.》

리윤재는 리극로의 심중을 빗보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빙그레 웃었다.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군요. 그런거야 애초에 각오했던 일이고 리박사의 의지로 뚫고나가지 못할 애로도 아니군요.》

그러나 리극로가 실지로 말하자는 난관은 이 정도의 문제가 아니고 조선어학회의 운명과 관련된것이였다.

흥업구락부사건으로 경찰에 잡혀갔던 리만규와 최현배가 얼마후에 불기소로 놓여나왔다. 그러자 최현배는 리극로에게 경찰에서 조선어학회를 독립운동단체라고 추궁하던것으로 보아 기필코 멀지 않아 총검거가 예견되는데 그때에는 사전원고가 압수되여 10년간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수 있으니 대책을 세우자고 했다. 그 대책인즉 사전에 수록할 어휘에서 지명, 인명을 다 빼버리고 일거리를 대폭 줄여 한시바삐 원고를 출판에 회부하자는것이였다.

리극로가 그의 말에 항변하면서 그 제의를 거부하자 최현배는 분노하여 간사직을 사퇴하고말았다는것이다. 리만규도 선거를 못해 3년이나 거퍼 하던 간사장을 사퇴했다.

《사전을 빨리 결속짓자는 최현배의 의견은 사전문제에 그치는게 아니라 결국 어학회의 활동을 끝장내자는것이지요.》하고 리극로가 말을 맺었다.

리윤재는 최현배까지 과연 이럴수 있을가 하고 괴롭게 생각했다. 조선어학회 초창기부터 리윤재는 최현배와 조선어연구, 고수라는 어려운 길을 함께 걸어왔다. 그 도중에는 격렬한 론쟁의 나날도 많았다. 아마 맞춤법통일안을 제정할 때도, 표준말을 사정할 때도 어학회에서 론쟁이 가장 격렬했던것은 리윤재와 최현배사이에서였을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학술상문제에서였으니 불가피한것이였다.

그런데 맞춤법통일안이 세상에 나가고 이것을 대중속에 널리 선전보급할 문제가 일정에 올라 리윤재가 조선어학회기관잡지로서 그동안 전문학자들의 론문이나 실어 대중에게는 그리 쓸모가 없던 《한글》잡지를 대중계몽잡지로 통속화할것을 제의했을 때 이것을 격렬히 반대한것이 최현배였다. 기관잡지를 통속화하여 그 권위와 리론수준을 떨구는것을 비속화라고 했다.

이것은 학술상문제 같으면서도 실은 국문운동과 대중에 대한 관점문제였다. 이때 리윤재는 최현배의 현실과 대중에 대한 고답적인 립장을 똑똑히 보았다. 그에게는 나의 리론, 나의 저술, 나의 서재라는 좁은 《나》의 울타리가 언제나 둘러쳐있었다.

이번에 조선어사전편찬을 간소화하여 시급히 결속하자는것은 사전의 운명을 념려하는 마음도 없지는 않겠지만 그보다 더 자신의 안전을 바라는 마음에서였을것이다. 그래서 그는 간사직을 내놓은것이다. 왜놈의 가혹한 탄압에 겁을 먹고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자기의 좁은 울타리속에 칩거하자는것이다.

리윤재는 오랜 세월 손잡고 어려운 길을 함께 헤쳐온 최현배를 비로소 노엽게 생각했다.

그러나 사람에 대한 평가를 함부로 서두르지 말자고 그는 생각하며 침묵을 지켰다.

정씨가 차를 들여왔다. 조그만 뚝배기에 담은 더운 홍차에서 몰몰 오르는 김으로 온 방에 향기로운 냄새가 확 풍겼다.

리극로는 조그만 뚝배기를 들고 코를 벌름거리며 탄성을 질렀다.

《아, 뚝배기에 홍차라. 이거 참, 아취가 있습니다. 이 훌륭한 집안의 가풍이 엿보입니다.》

리극로는 그 크고 어진 눈을 디룩거리며 정씨를 돌아보았다. 정씨가 웃음을 참느라고 입에 손을 가져갔다.

《리박사님, 웃기지 마세요. 집안이 하도 구차해서 차잔 하나 변변한게 없어 차를 뚝배기에 따를 형편입니다.》

《아닙니다. 우리의 뚝배기가 왜놈의 간사한 차잔보다 열곱은 낫습니다. 왜 그런고 하면 우선 우리 조선의 고유한 그릇이고 평민적이여서 좋고 둘째로, 보온력이 강해서 좋고 셋째로, 든든해서 잘 깨지지 않으니 좋고 마감으로, 깨져도 그리 아깝지 않으니 좋지요. 안 그렇습니까?》

리극로는 과연 입담이 좋은 사람이였다.

침울한 기분을 씻은듯이 가시고 이야기에 활기를 띤 리극로는 놋종발에 담은 사탕가루를 한숟가락 차에 넣고 한모금 훌쩍거리고는 또다시 입담을 늘어놓았다.

《모든게 가짜인 이 세상에서 이 홍차야말로 진짜군요. 왜놈이 이제는 우리의 주식인 밥조차 대용식으로 하라는겁니다. 흰쌀은 군용미니 군대에 보내고 조선사람은 만주좁쌀과 대두박이나 먹으라는겁니다. 휘발유는 군수물자니까 자동차는 목탄으로 대용하라, 고무는 통제품이니까 농촌에서는 짚신을 삼아 신으라, 이런 식으로 모든게 대용품일색입니다.》

리윤재는 묵묵히 듣고있고 리극로는 홍차를 한모금 마시고 말을 이었다.

《사람도 대용품처럼 변해갑니다. 지금 열을 올리고있는 <황민화>운동에 각계의 인물들을 총동원할 목적으로 총독부에서 <국민정신총동원조선련맹>이라는것을 만들어냈는데 그 발기단체가운데 박승빈의 계명구락부가 뻐젓이 들어가있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7월 7일 서울운동장에서 련맹본부와 각 지부의 결성식이 총독 미나미, 조선주둔군사령관 고이소, 경무총감 오노 등의 렬석하에 요란하게 벌어졌는데 그때 이 자리에서 윤치호가 <대일본제국 만세!> 삼창을 불러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리윤재는 놀라는것이 아니라 도리여 랭담하게 뱉듯이 말했다.

《박승빈이나 윤치호가 왜놈의 주구로 전락되는건 당연한 귀결이지요. 그네들이 맞춤법통일운동에 반기를 들고 나선것이 왜놈의 주구로서의 파괴행동이였다는것이 백일하에 드러났군요. 그러니 결국 우리는 국문운동에서 왜놈과 싸워 이긴셈이요. 안 그래요, 리박사?》

《그래서 그놈들이 이번에는 최현배님과 리만규님에게 든장질을 해본게 분명합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일생의 신조인 반일사상에서 물러설리야 없지요. 신변의 불안이 괴롭힐수는 있어도.》

수굿이 듣고있던 리극로가 화제를 돌렸다.

《환산선생은 앞으로 생활을 어떻게 하실 작정입니까?》

《사전일이나 해야지요.》

《그야 물론이지만 무얼 잡숫고 일하시겠습니까? 현재 어학회는 환산선생의 생활을 보장해드릴 힘이 없습니다. 무엇이든 겸직이라도 하셔야겠는데.》

《하지만 밑천이 혀와 붓뿐인 내게 교단이 있나요, 굶지 않고 글을 쓸수 있는 조건이 있나요. 하지만 너무 걱정마시오. 기왕에도 그렇게 살았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게 되겠지요.》

아무 타개책도 없는 이야기를 더할 필요도 없어 둘은 입을 다물어버렸다.

한참 덤덤히 앉아있던 리극로가 일어서서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고는 리윤재옆에 와서 바싹 다가앉았다. 남이 엿들어서는 안될 이야기를 할 잡도리 같았다.

이윽고 그가 소곤소곤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여름에 장춘에서 온 최형우를 만났습니다. 최형우를 아시겠지요? 장춘의 유지들을 발동하여 맞춤법통일안을 지지하는 성명을 내게 한 <동아일보> 장춘지국장말입니다.》

리윤재는 별로 비밀도 아닌 례사로운 이야기를 리극로가 왜 이렇게 긴장해서 하는가 하고 의아쩍게 생각하며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였다.

리극로가 더 목소리를 낮추어서 말을 이었다.

《그런데 그가 실은 일성장군님휘하의 혁명가더군요. 그때 그가 일성장군님께서 주신 과업을 받들고와서 그이의 말씀을 이렇게 전해주었습니다. 혁명도 민족을 위해 하는것이고 무장투쟁도 민족을 지키기 위해 하는것이다, 그러므로 전민항쟁을 민족의 얼을 지키기 위한 투쟁과 밀접히 결합시켜 준비해나가야 한다, 왜놈의 가혹한 탄압속에서도 민족의 얼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조선어학회 학자들을 조국광복회조직에 망라하고 그들의 조선어고수투쟁을 적극 도와주어야 한다, 이런 뜻으로 말씀했습니다. 그래서 어학회에도 조국광복회지하조직이 무어졌습니다. 아직은 조직의 성원이 정렬모님과 한징님과 나 셋뿐인데 환산선생이 출옥하자 조직에 받아들이기로 셋이서 손을 들어 결정했습니다. 다른 의견이 없으시겠지요.》하고 리극로가 빙그레 웃더니 단호한 어조로 말을 맺었다.

《이제는 어학회가 학술단체이면서도 조선독립을 최종목적으로 하여 싸운다는 정치적성격을 뚜렷이 하게 되였습니다. 나는 그런 방향으로 일을 벌려가려고 생각합니다.》

리윤재의 마음속에서는 소용돌이가 일기 시작했다.

그가 동우회사건으로 경찰에 잡혀가던 바로 그날 최기봉에게 일성장군님을 믿고 살아간다고 한 말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히 떠오른다. 그때 자기가 무엇을 생각하고 생애에 한번도 있어본 일이 없는 이런 말을 했던가? 조선독립운동의 간고한 력사를 두루 살펴보면서 나라와 민족을 구원할 길은 오늘날 일성장군님의 항일무장투쟁밖에는 없다고 생각했기때문이다. 쇠퇴해가는 우리 말과 글의 운명도, 가시밭길을 걸어가듯 하는 조선어학회의 전도도 일성장군님에 의하여 조국이 해방됨으로써만 타개될수 있다고 믿었기때문이다.

감옥살이를 하고 나온 지금도 그 믿음에서는 변함이 없다.

그는 자기앞에 새로운 길이 열리는것을 가슴뿌듯이 느끼는것이였다.

 

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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