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편소설

빛을 따라

                                              정 창 윤

제 1 장

어 둠

 

 

…청빈한 기계연구사 박순현은 자기 서재나 설계실밖으로 나오는 경우가 적었습니다. 매우 반가운 사람이 아니고는 그를 찾아와서 여유있게 이야기를 나누기란 어려웠습니다. 설계주문때문에 오거나 다른 볼일이 있어 온 사람들을 대하는데서 이 박사는 철저하게 실무적이였습니다.

후리후리한 키에 어울리는 길쭉한 얼굴에 구레나룻이 검실검실한 박사는 좀처럼 소리내여 웃는 일이란 없고 미소로 사람들을 대하는 경우도 드물었습니다. 언제나 정중한 표정을 짓고 상대방이 하는 말을 귀담아듣군 했습니다. 녀동생 윤희나 아래사람인 나를 대하는 경우조차도 그러했습니다.

내가 그와 함께 일하게 될무렵부터 박사는 한 제탕회사의 설비개조를 위한 설계를 하고있었습니다. 그 제탕회사는 오래된 공장으로서 생산설비가 원시적이였습니다. 기업주는 그 설비들을 현대화할수 있도록 개조설계를 청탁했던것입니다.

설계주문측의 독촉이 매우 심해서 우리는 밤늦게까지 일하지 않으면 안되였습니다. 어떤 날 밤은 꼬박 밝히지 않으면 안되였습니다. 윤희도 우리를 도와 사도판에서 물러나지 못했습니다. 어느날 밤엔 윤희가 일을 하다가 사도필을 잡은채 잠들어버렸습니다. 아마 우리 세사람중에 누구보다도 많이 일해야 하는것이 윤희였던것 같습니다. 연구소살림과 가정살림을 도맡아보고도 설계성원으로서 또 일해야 했으니깐요.

그날 밤 박선생은 그림처럼 조용히 앉아서 잠든 녀동생을 보자 하던 일에서 손을 떼고 방바닥쪽으로 시선을 옮겨갔습니다. 나는 그 순간 박선생의 얼굴에 나타났던 어두운 빛을 볼수 있었습니다.

극도의 피곤을 이겨내지 못해서 앉은채 잠든 녀동생을 보는 박선생의 심정은 몹시 좋지 않았던것 같습니다. 보통때는 하루에 담배를 여섯대이상 피우지 않는분이였지만 그때엔 련이어 두대를 피웠습니다.

마루바닥에 시선을 떨군채 두대의 담배를 피우고난 선생은 소리 안 나게 의자를 밀고 일어나더니 사도판이 놓인 구석쪽으로 갔습니다.

《얘야, 윤희야.》

선생은 녀동생의 어깨에 손을 가볍게 올려놓더니 나직이 불렀습니다. 쪽잠에 들었던 윤희는 오빠의 목소리에 눈을 떴습니다.

《얘야, 윤희야, 인젠 들어들 가자.》

《괜찮아요. 오빠, 그만…》

윤희는 오빠의 얼굴에 나타난 그늘을 보자 애써 미소를 지으려 했습니다.

《네가 이 오빠를 돕느라고 애쓰는걸 볼 때면 괴롭구나.》

《뭣때문에 오빠는 그런 말씀을 하세요.》

《너는 오빠를 위해 너무 많은것을 희생하고있다. 래일부터는 이런 불편, 저런 불편 내 혼자 감당해낼테니 학교강의에 빠지지 않도록 해라.》

《오빠, 정말 그런 말씀을 하지 말아요.》

윤희는 고개를 돌리였습니다.

《그래도 나는 너에게 죄를 짓는것 같구나.》

선생은 윤희의 잔등을 쓸어주는것이였습니다.

나는 그들남매를 보지 못한듯이 등을 돌려대고 앉아서 등갓밑으로 새여나오는 탁상불빛에 부분구조도 하나를 비쳐보고있었습니다. 그때의 내 생각인들 어찌 복잡하지 않았겠습니까? 박사남매사이에 오고가는 말을 듣던 나는 문득 고향에 두고 온 녀동생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국민학교를 졸업하자부터 탄갱마다를 찾아다니며 버럭더미를 뒤지는 열다섯살 소녀의 가냘픈 모습이 나로 하여금 손맥을 잃게 하였습니다. 오빠가 서울로 공부하러 간다는 소리를 듣고 기뻐하던 소녀, 그러나 먼길을 떠나보내는 아들에게 로자조차 푼푼하게 주지 못하는 어머니가 한숨을 지을 때 인형처럼 곁에 앉아 함께 울던 소녀, 그 소녀는 정거장으로 나왔다가 오빠가 개찰구를 빠질 때 돌돌 만 지전을 내밀었습니다.

《이건 버럭탄을 주어 판건데 갖고 가요.》

《고맙다, 순아.》

코허리가 찡해와서 그때의 나는 그대로 서있을수가 없을 지경이였습니다.

《성공해야 해요, 오빠.》

그랬던 순이였습니다. 그 순이는 지금쯤 오빠가 공부를 하고있는줄 알것이였습니다. 이처럼 오빠가 배움의 길을 잃고있다는것을 안다면 얼마나 큰 설음에 잠기겠습니까?

《김군, 우리도 오늘 밤은 이것으로 끝냅시다.》

나의 책상곁으로 온 선생은 벽에 매달린 구식괘종을 바라보았습니다. 잠시후엔 그 벽시계가 무덤과 같이 적막한 이 집을 울리며 세시를 알릴것이였습니다.

《저는 며칠밤도 밝힐수 있습니다.》

《김군에게 그런 강의성이 있다는것을 나는 알고있지요. 그 강의성이 김군을 언제인가는 큰 기계발명가로 만들어줄것입니다. 기계발명의 비결들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두뇌활동이란것외에 강의성이란 귀중한 방조자를 가져야 합니다. 우리 기계학도들에게 오늘의 처지는 비록 가혹하다 하더라도 미래는 좋은 세월을 마련해줄것입니다. 우리 서로 고통을 참아가면서 이 땅의 기계발전을 위해 꾸준히 일해갑시다. 배워갑시다. 과학도의 생활목적은 항상 깨끗하고 또 깨끗해야 합니다. 나는 오늘도 이 제탕회사의 설비개조를 위한 설계를 하면서 이 땅의 오늘과 래일을 생각해보았습니다. 박사인 나로서, 완전한 의미에서의 독창적이며 자기것을 발명설계할것을 지향하는 사람으로서, 또한 그것을 수행할 능력과 야심을 가진 사람으로서 뭣때문에 이런 보통기사들도 할수 있는 일에 정력을 쏟아야 하는가 하고 생각했지요. 그러나 군도 알고있지만 나에겐 그런 설계를 하는데 필요한 돈도 시간도 없습니다. 만일 내가 단 한달만 <내것의 창조>를 위한 설계에 시간을 바친다면 그 다음달은 굶어야 하고 그 다음달은 거지가 되여야 합니다. 설혹 굶거나 거지가 된다 하더라도 나의 발명품이 현물로 제작될 가능성만 있다면 나는 그 길을 택할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발동기나 스파나 하나 변변한것을 만들어낼 능력이 없는 이 땅에서 나의 발명설계가 어데 소용되겠습니까? 현실은 이처럼 우리 기계연구사들에겐 사막과 같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김군은 기계학도로서 배움을 게을리해서는 안될것입니다. 미래를 믿어야 합니다. 나 같은 반백의 학도가 미래를 보며 살아가는데 군처럼 홍안의 학도가 어찌 미래를 맞기 위한 준비를 게을리하겠습니까? 가령 군의 일생이 끝나는 시간이 될 때까지 그 미래, 그 원하는 래일을 맞이할수 없다 하더라도 우리는 일하고 또 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큰일, 작은 일, 비록 보잘것없는 일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이 땅에 진보를 가져다주고 우리들로 하여금 기계문명과 접근할수 있게 하는것이라면 마다하지 않고 일해야 합니다. 제탕회사에서 일하는 로동자들이 멀지 않아 이 개조설계의 덕을 입게 되리라는것을 생각해봅시다. 부분적이기는 하나 개조설계가 실현된 공장에서 일하는 로동자들은 전보다 힘을 덜 들이게 될것입니다. 이런데서도 위안을 얻고 맥을 놓지 맙시다. 일을 합시다. 배워갑시다.》

박선생은 열기를 띠고 방안을 오가면서 말을 했고 나와 윤희는 조용히 앉아서 들었습니다.

《김군이 만일…》하고 박선생은 한동안 말을 끊었다가 계속했습니다.

《김군이 만일 참다운 기계연구사, 발명가가 되기를 원한다면 생활에서 많은것을 바라지 마셔야 합니다. 나는 행복이란 사람마다 <자기에게 필요되는것의 충족>이란 뜻으로 리해하며 또 그렇게 믿고있습니다. 농민에겐 씨를 뿌리고 가꿀 땅이, 로동자들에겐 일할 자리가 차례진다면 그것이 곧 행복이 아니겠는가 생각합니다. 불행은 그 반대의 경우일것입니다. 우리 기계연구사들의 행복이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새 기계발명을 위해 바칠수 있는 시간과 그에 전념하는 기간 의식주의 위협에서 면제되는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창조자들에겐 또 하나의 커다란 행복이 있는데 그것은 자기 발명품의 실현과 그 실현된 제품의 사회적복무입니다. 자기 설계로 된 창조품이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고 일손을 덜어준다는것, 그로써 동포와 조국의 진보에 기여한다는, 누구에게나 함부로 차례질수 없는 행복이 우리들에게 있는것입니다. 김군이나 내가 바라는것이 바로 이것이 아닙니까. 사색할수 있고 일할수 있고 사람들에게 새 기계를 선물할수 있는 연구사, 그것이 가능한 사람은 부러워할만 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오빠.》

잠에서 말끔히 깨여나서 선생의 열기띤 설명을 잠자코 듣고있던 윤희가 참견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연구사는 없지 않아요? 앞으로도 없지 않을가요? 의식주의위협으로부터 면제될수 있는 연구사 그리고 전국민적관심속에서 자기 발명품의 사회적실현을 가능케 할 기계연구사, 그건 영원히 그리워하다가말 리상이 아닐가요?》
약간 도전적이기는 하나 솔직성이 그대로 느껴지는 윤희의 이 반문은 박선생을 잠시 생각하게 했습니다. 그사이 윤희는 두번째 공격을 가했습니다.

《오빠의 그 래일은 막연하지 않아요? 저는 오빠의 그 래일, 그 미래가 어떤 력사적행정을 거쳐서 도래하게 된다는 과학적확신을 갖고싶어요. 오빠는 항상 미래를 소중히 여기지만 그만의 리상으로 될 미래사회가 어떤 길을 거쳐 오게 된다는 과학적리념은 없어요. 어떤 의미에서는 오빠의 미래란 공상파들의 미래와 흡사한데가 있어요. 저는 아직 그 뜻을 전부 리해하지 못한채 읽었지만 어떤 사상가의 저서엔 <행복-이는 투쟁이다.>라고 적혀있었어요. 오빠의 그 미래도, 그 행복도 투쟁없이 스스로 올가요? 저는 그것이 알고싶어요.》

그리고 윤희는 나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동의를 구했습니다.

《김응빈씨는 그것이 알고싶지 않으세요? 물론 알고싶을테지요?》

《…》

그러나 나는 윤희의 질문과는 다른것을 생각하고있었습니다. 그것은 내가 박사와 함께 생활하기 시작한 초기엔 이럭저럭 모르고 지낼수 있었던것들이 시간의 흐름과 함께 명백한것으로 리해된데로부터 온것이였습니다.

그들남매가 만일 이때의 내 마음속을 들여다봤다면 우리의 관계는 불피코 더는 화목해질수 없었을것입니다. 어쩌면 그것으로 하여 우리는 헤여져야 했을는지도 모를 일이였습니다. 나는 박순현박사의 신사풍, 《량심》설에 불만을 품게 되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과학자의 인류진보기여》론에도 전적으로 동의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우선 제탕회사 설비개조에 대한 문제를 놓고도 그러했습니다. 박사는 이것이 수많은 실업대군을 거리로 내몰게 되리라는것은 생각지 않고있었습니다. 다만 그곳 로동자들이 개조된 설비의 덕으로 손쉽게 일할것이니 그것은 좋은 일이지 나쁜 일로 될수는 없다, 따라서 이 땅의 기계분야에 얼마간의 기여를 하는것으로 되지 않겠느냐 하는것이였습니다.

나는 흡혈귀들이 도사리고 앉은 이 땅의 공장들과 탄광들에 기계가 들어간다 하여 결코 로동자들이 편하게 살게 되리라고는 믿을수 없었습니다. 탄부의 아들이요, 자신이 탄광의 철공이였던 나로서는 이것을 너무도 잘 알고있었습니다. 내가 그렇게 생각했던것은 벌거숭이 어린시절뿐이였습니다. 내가 아는 한에서는 박사자신도 이것을 모르는바는 아닌듯 했습니다. 하지만 박사는 이것이 결코 과학자들의 죄로 될수는 없다고 보고있었습니다. 정식으로 자기의 이런 견해를 공개한바는 없었지만 박사의 말은 이러했습니다.

《나는 이런 일을 달가와하지부터 않소. 내가 할 일은 이런따위 생산설비를 개조하는게 아니요. 하지만 생활방편이 없으니 이런 일도 하는거요. 여기에 그 무슨 량심의 가책이라도 받아야 할것이 있는가요? 나에게 정치나 사상을 요구하지 마시오. 나는 과학만을 알지요.》

나는 박사의 너무도 천진한 이런 생각에 놀라군 했습니다. 하면서도 나는 이것을 밖으로 내비치지는 않았습니다. 덕분에 우리들사이에서는 분쟁이 일어나는 일이란 없었습니다. 오늘 밤 그들남매의 론쟁속에 끼여들기를 피하는것도 이때문이였습니다.
《믿어보자, 윤희야. 우리가 이 그믐밤같은 사회악속에 살면서 미래를 믿는 믿음까지 없다면 어떻게 지내겠느냐? 오늘은 탁류속에 휘감겨있지만 래일은 달리될것이다. 그렇다 하여 너나 내가 프랑카드를 들고 가두시위에 나설수는 없지 않느냐? 시인 최선생처럼 말이다. 그저 청백하게 살아가자. 근면하고 성실하게 살아가자.》

나는 박사의 청백성, 근면성, 성실성에 대해서 생각했습니다. 박사는 사실 감탄하리만큼 성실한분이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성실성으로 하여 더욱더 이 더럽기가 그지없는 세상에서 비극을 겪는것이였습니다.

사회악을 저주하면서도 프랑카드를 들고 항쟁의 시위대렬에 나설것을 생각해보는 일이란 한번도 없는 학자, 사회악이 심해지면 질수록 자기 집 울타리와 대문에 보다 더 든든한 빗장을 지를것만 생각하는 학자, 나는 끝내 그들남매의 론쟁속에 끼이지 않았습니다. 자칫하면 나의 가슴속에 맺힌채 눌리워있는 울분이 터질것이고 그렇게 되면 박사를 너무도 크게 놀래울것이였기때문입니다.

그런데 시인 최선생이란 누구를 말하는것일가? 나는 박사가 방금 말한 그 시인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싶었습니다. 그래서 윤희에게 물으려 했습니다만 시간이 지나치게 흘러서 이날은 이것으로 끝나고말았습니다.

박순현연구소엔 종종 실무적성격을 띠지 않고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대체로 박사가 반갑게 맞이해주는 손님들이였습니다. 중학동창이나 대학동창들이였으니깐요.

그들은 학계나 언론계가 아니면 교육계들에서 이름높은 사람들이였습니다. 그들이 오면 박사는 응접실만 아니라 서재나 실험실로도 허물없이 데리고들어갔고 정원의 작은 련못가에 의자를 내다놓고 앉아서 붕어들을 들여다보며 휴식하군 했습니다. 그때만은 박사도 소리내여 웃기도 하고 롱을 하기도 했습니다. 간혹은 그 어떤 문제를 놓고 열렬하게 론쟁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방문객들중 가장 강한 인상을 던지고 간 사람은 어느 여름날에 찾아왔던 머리칼짧은 사람이였습니다.

오래동안 해볕을 보지 못한듯 창백한 얼굴의 그는 주인도 찾음이 없이 대문을 밀어제끼고 마당에 들어섰습니다.

마당에 들어선 그는 구석구석을 빠른 시선으로 살피면서 감회 자못 무량한듯 한 표정을 짓다가 문밖으로 얼굴을 내민 윤희와 반갑게 인사를 주고받았습니다.

윤희는 달음쳐나가서 그를 맞이한 다음 작업중에 있을 때건만 박사의 서재로 안내하였습니다. 잠시후에 박사의 서재에서는 높은 웃음소리와 말소리들이 울려나왔습니다. 손님을 오빠의 서재에 남겨놓고 돌아나온 윤희는 그가 누구라는것을 알려주었습니다.

《시인 최선생이예요. 오빠와는 중학도 대학도 함께 다녔어요. 지난해 봄에 <리정권 최후의 날이 오리라>라는 시를 어떤 군중대회에서 자작 써서 랑송한걸로 하여 감옥에 갔댔어요.》

나는 시인 최선생이란 바로 저분이였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한번 보고싶었더랬으니깐요.

석양녘이였습니다. 서재에서 한동안 높은 음성으로 말을 주고받던 벗들은 뜨락으로 나와 거닐었습니다. 실험실에서 용수철시험 하나를 끝내고 그 결과를 기록하고있던 나는 그들 두사람이 주고받는 말을 죄다 들을수 있었습니다.

《감방에 있느라면…》

바늘로 찌를듯이 페부에 스며드는 날카로운 음성의 시인이였습니다.

《진종일 감방에 앉아있느라면 바깥세상에 있을 때는 별반 생각되지도 않던 일들이 속속들이 회상되고 못견디게 그리워진다네. 자네네 여기에 매달려있던 풍경말일세.》

시인은 뜨락의 한쪽곁에 이르러 처마밑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그 풍경까지도 다 회상되고 그리워지더군.》

《오래전 일이로군. 나 역시 그 풍경을 잊은지 오래되였는데 자네로 하여 다시금 회상되네그려. 언젠가 한번은… 그건 중학생때였을거네. 자네와 내가 그 풍경을 만져보고싶어 떼내였다가 아버지에게 단단히 혼난 일이 생각되네. 아버지는 그때 진정으로 성을 내셨지. 가보에 손을 댔다고 노여움은 더욱 크셨던것 같애. 그랬던 풍경을 지난가을에 없애버렸네. 선친들을 대할 면목이 없이 되였네. 몇가지 시험기재들을 사들이는데 풍경까지 내놓아야 될 형편이였으니깐.》

《너무 비감에 잠기지 말게. 의지할 집조차 없이 거리를 헤매면서도 굳세게 살아가는 이 땅의 민중들을 생각하게.》

시인 최선생은 정열적인 사람이였습니다.

《별반 비감에 잠기는것도 아닐세. 그저 후손된 도리에 조상들에게 죄를 지은것만 같아서…》

그리고는 두 벗이 한동안 침묵속에 서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최선생은 조용히 시 한련을 랑송했습니다.

        …여기는 이름높던 성터
        조상들의 발자욱이 찍힌 곳
        옛정이 그리워 찾아왔더니
        봄가을 푸르던 저 둔덕도 헐벗었구나
        고달픈 후손들이 발펴고 누울 잔디쪽 하나 없어라
        수난의 생령들이 탄식높은 불모의 땅이여
        격노하노라
        이 성터, 이 둔덕의 활기를 걷어간자
        그 누구이더냐?!…

 

시랑송이 끝나고도 한동안 침묵속에 그대로 서있던 두 벗은 련못가를 천천히 거닐었습니다. 박사도 시인도 오래간만에 만나고보니 감회는 깊은듯싶었습니다.

《그래 이제부턴 무엇을 하려나?》

박사의 물음이였습니다.

《<죄수>생활을 끝내였으니 말인가? 변함없이 시를 쓰려네. 예전처럼 이 더럽고 추악한 세상을 뒤집어버릴것을 호소하는 시를 써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면 어데든 찾아가서 랑송하려네. 그러지 않고는 내 심장의 피가 견디여내지 못할걸세.》

시인의 목소리는 열렬했습니다.

《그렇다면 자네도 대학생들처럼 가두시위에 나서겠단 말이지?》

《물론이지, 그것도 단순한 시위자의 한사람으로서가 아니라 그들을 투쟁에로 부르는 가수로서 참가하려네.》

《또다시 감옥이 자네를 얽어맬걸세.》

《자넨 감옥을 몹시 겁내나?》

《겁내네.》

《나는 어릴 때부터 자네의 내성적이고 소심한 성미를 질색했지. 그러면서도 자네의 정직성엔 반하군 했지. 그러나 지금에 와서까지 그 정직성 하나만으로 살아가려는데는 놀라지 않을수 없네. 자네는 그 정직성 하나만으로 우리의 도탄에 빠진 겨레와 분렬된 조국강토를 통일할수 있다고 생각하나? 그보다도 자네의 이 불운한 발명가의 생활처지를 개선할수 있다고 생각하나? 정직, 원하는 미래, 그런가? 너무도 시대정신과는 담을 쌓은 공식이야.》

《난 아직 그런 정도로까지는 내 인생관을 정식화하지 않았어. 다만 과학도의 본분에 충실하게 살아가려는 생각뿐이였지. 정직한 과학도에겐 성공이 온다, 이것을 믿을뿐이야. 나를 모욕하지는 말게.》

어느덧 두 벗들사이엔 양보 못할 견해의 차이로부터 오는 론쟁조의 신랄한 목소리들이 오고갔습니다.

《그렇다면 묻고싶은데 자네는 오늘 과학자로서 그리고 기계연구사로서 성공했나? 내가 알기엔 자넨 누구보다도 정직하게 살아온 과학자야. 어릴 때부터 가정에서나 친구들사이에서나 선생들에게 거짓말 한번 해본 일이 없었지. 그리고 과학앞에서도 자넨 누구보다도 량심적이였어.

그건 우리모두가 전에도 오늘에도 부러워하는것이네. 그러함에도 자네의 불운한 처지는 여전하지 않는가? 만일 정직과 량심이 과학도에게 성공을 가져다주는 요인의 전부라면 자넨 어느 누구보다도 지금쯤은 성공했어야 할게 아닌가? 무엇때문에 설비개조따위의 보통 주문설계나 하면서 구차하게 살아가는건가? 이건 기만일세. 과학자에게 성공을 가져다줄수 있는 일면에 지나지 않아. 그 일면의 확대판뒤에는 보다 본질적인것이 가리워져있네. 진리의 목소리는 이렇게 말하고있네. <미래, 이는 투쟁하는자에게 속하는것이다.> 투쟁의 길에 나서야 하네. 투쟁! 무엇과 말인가? 자네의 정직성을 모독하는 현 통치배들, 우리는 그것들을 미제침략자, 반역자, 매국노들이라 부르네.》

《알겠네, 최군. 자넨 지금 나더러 래일부터 가두시위에 나선 대학생대렬에 들어서라고 선동하는건가?》

《그렇네. 박군, 나는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 그 대렬에 서서 나가고싶네. 이 땅이 통일이 되고 우리도 공화국북반부처럼 사람다운 생활을 누려야 하네.

조국통일의 길은 이 길뿐일세. 그때엔 자네들과 같은 과학자들에겐 참된 학문탐구의 길이 열릴게고 나 같은 시인들에게도 자유로운 창작의 길이 열릴걸세.》

이때 저녁상을 다 차려놓고 기다리던 윤희가 뜨락으로 나왔습니다.

《국이 식는걸요.》

그러자 론쟁에 취했던 두사람은 돌아섰습니다. 기분을 먼저 전환한것은 최선생이였습니다.

《윤희냐, 고맙다.》

그날 밤 늦게까지 박사와 시인은 서재에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가 돌아갈 때 박선생남매는 대문밖 멀리까지 나가서 바래우고 돌아왔습니다. 그들남매는 마당에 되돌아 들어서자 한동안 련못주위를 거닐며 밝은 달을 즐겼습니다.

《너는 최선생을 좋아하느냐? 세상떠난 아버지는 최선생이 올 때마다 뜻이 굳은 청년이라고 말씀하시군 하셨지.》

《저는 어릴적부터 최선생님을 좋아했어요. 정열적이고 전투적인것이 마음에 들군 했어요.》

《옳다. 정의감이 강한 사람이지. 최선생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를 두고 조포하다느니, 도전적이라느니, 거만하다느니 하고 말들 하지만 그건 악의에 찬 비방들에 지나지 않는다. 최선생에겐 벗들도 많고 적들도 많지. 재능 또한 우리들중 누구보다도 뛰여났더랬어.》

《오빠도 최선생님처럼 전투적이였으면 해요.》

《…》

《저는 종종 한 신문기자가 썼던 <박순현연구소 방문기>의 문장구절들을 회상하군 해요. 오빠를 잘 아시는 그 기자는 얼마나 진실하게 우리 집에 대해 썼어요.

<이 조용한 연구소는 마치 세상과 접촉하기를 겁내는것 같다. 련일 서울의 광장들과 거리들에서는 혈전이 벌어지고 찢어진 프랑카드와 기폭들이 날리고있건만 박순현연구소만은 문을 굳게 닫고있다. 그의 서재, 그의 실험실을 돌아보느라면 서울속에도 이런 벽지가 있었느냐싶은감을 받는다.>

우리 집에 대해서 이보다 더 진실하게 쓸수는 없을거예요. 안 그래요? 오빠.》

《글쎄… 나는 너에게 최선생이 좋은분으로 생각되느냐고만 물었을뿐이다.》

나 역시 그들남매가 최선생에 대해서 하는 말들을 들으며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김군에겐 시인 최선생이 마음에 드는가요?》라고 말입니다. 사실 그 시인은 나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였습니다. 감옥을 겁내지 않는 사람, 훌륭한 미래는 투쟁만으로 얻어진다고 믿는 사람, 그가 나타나자 우리 연구소의 어둡던 구석구석은 일시에 활기를 띠는듯 했습니다.

박순현박사에게도 최선생과 같은 벗이 있다는것이 믿기 어려울 지경이였습니다. 시인이 나타나자 그 어떤 열풍이 밀려들어 연구소의 뜨락을 휩쓸며 여러해 쌓인채 묵어있던 락엽들을 대문밖으로 날려버리는듯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내 머리속에도 씽- 하고 정신이 확 들게 하는 새벽대기를 불어넣어주는듯 했습니다. 시인 최선생이 다녀간것은 나를 위해서 진정 고마운 일이였습니다. 그 리유의 또 다른 하나는 나에게 힘과 용기외에 그동안 식어지려 했고 포기할 상태에 처하나 다름없이 되였던 향학열의 불길을 일으켜준것이였습니다.

박순현박사와 지내게 된이래 기계발명가의 길로 매진하던 나의 열은 점차 식어져갔더랬습니다. 기계발명가의 암담한 래일을 오늘의 박사에게서 보는듯만싶어 그 절망감이 얼마간 나를 사로잡았던것입니다. 나 역시 기계발명가가 된다 하여도 이 땅에서는 기껏 저 박사처럼 될것이 아닌가? 자신의 과학적량심에 아무리 성실한다 하더라도 결국은 그것이 돈있는자들에게 복무하는것으로 될것이 아닌가? 량심과 성실과 지조와 현실간의 이런 모순이 집요하게 나를 괴롭혔습니다. 미래를… 미래를… 물론 그 미래에 대한 동경은 큰것이였습니다. 왜냐하면 그 미래엔 모든것이 달리될것이기때문입니다. 그러나 박순현박사처럼 막연하게 미래를, 꿈이 실현될 미래를 믿기엔 내 심정은 너무도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박순현박사의 그 공상적미래는 나에게 의심스러운것이였습니다.

시인 최선생은 박사의 그 량심, 그 지조의 무기력에 대하여, 그 막연한 미래에 대하여 가차없는 반격을 가했더랬습니다. 그의 바늘로 찌르는듯 한 날카롭고 타협모르는 전투적음성은 내 가슴과 두주먹안에서 끓고있는 피를 돌격전에로 부르는듯싶었습니다.

(투쟁하자, 이 더러운 놈들의 세상을 쳐부시자. 그러면 그 미래가 오는것이다. 아니, 쟁취되는것이다. 그때의 기계연구사들은 결코 오늘의 저 박사와 같은 처지에 있지 않을것이다.)

나는 그때부터 시인 최선생이 다시 나타나기를 몹시 기다렸습니다. 이번엔 내자신이 그에게 투쟁의 길을 안내해달라고 할것이며 스스로 풀 길이 없어 안타까운 사회 제 현상들에 대해서 물으려 했습니다. 만일 그가 다시 나타나지 않으면 내자신이 그를 찾아가리라 마음먹고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시인 최선생과 가까이 지내면서 내가 알고싶은 모든것을 리해하며 내가 하고싶은 모든 행동의 옳고그름 여부를 알려고 했습니다.

특히 위대한 수령이신 김일성장군님께서 령도하시는 이북땅에 대해서 알고저 했습니다. 거기서는 로동자, 농민들의 생활이 어떠한지, 배움의 길은 청년학도들에게 어떻게 열려져있는지 그리고 과학사업의 현재와 장래는 어떠한지 꼬치꼬치 물으려 했더랬습니다.

했지만 그 최선생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불행하게도 그 시인은 미제의 남조선강점과 리승만반역도당의 매국배족행위를 규탄하는 성토대회를 하는 군중들앞에서 《들부셔라, 쳐눕혀라》라는 폭풍같은 자작시를 랑송하다가 다시금 감옥으로 끌리워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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