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회)

제2편 백합꽃은 태양의 빛을 받다

《문예봉은 애국자입니다》

  

《나의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는 예봉이,

나는 지금 죽은 소월이가 생전에 그토록 목이 타게 부르고싶어도 소리내여 불러보지 못하였던 그 이름-사랑하는 조국을 이 머나먼 이국의 산우에 서서 목이 터지게 부르고있소.

 

선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여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사랑하는 그 이름이여

 

지평선너머에 펼쳐져있는 조국의 하늘아래에 그리운 당신과 아이들이 있을것이라는 생각에 가슴이 쩌릿해졌소.

 

시름이 겹도록 부르노라

사랑하는 그 이름이여

부르는 소리는 비껴가건만

하늘과 땅사이가 너무나 넓구나

 

가슴치는 이 시구절을 마음속으로 읊조리며 조국의 이름을 마음껏 불러보느라니 그리울 때 한달음에 달려갈수 없는 나의 이 처지, 그 자유를 주지 않는 나의 이 육체가 야속하기만 하오.

아이들의 편지를 받아들고 나는 뜨거운것을 삼키며 소리없는 눈물을 흘리였소.

나의 사랑하는 아이들!

그러나 나에게는 나의 아들딸들아! 하고 불러볼 권리가 없는것만 같아서 가슴이 아팠소.

내가 그들에게 해준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물음에 대답할수 없는 나를 강하게 느끼기때문이요.

몰라보게 성장한 아이들의 모습을 편지의 글줄마다에서 속속 느끼면서 이 아버지는 노상 병에 시달리느라고 그들을 돌보지 못했지만 우리 수령님과 당에서 이들을 훌륭하게 키워주시였구나 하고 생각하니 커다란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것만 같은 충격을 받았소.

행복스럽고 놀랍고, 그러면서도 황송하고 고마운 이 마음을 예봉이만은 진정 리해할수 있을가?

나는 그들의 모습에서 오늘의 벅찬 조국의 현실과 더 부강할 래일의 모습을 보았소.

또한 수령님과 어머니조국에 대한 우리 가족의 충정을 보았소.

그럴수록 조국에 조그마한 보탬도 주지 못하고 줄곧 병석에만 매여있는 내가 얼마나 저주스러운지 모르겠소. 마음껏 창작의 나래를 펴야겠는데 내 육체는 왜 이리도 사정없이 나를 배반하는지…

안타까웁고 통분하여 잠 못드는 밤이면 예봉이 당신과 마음속말을 주고받으며 한밤을 지샌다오.

당신이 사업에서 성과를 올리는 길이 곧 나의 몫까지 다하여 수령님과 조국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니 그 어떤 단역이라도 소홀히 여기지 말고 두드러지게 성과를 거두길 바라오.

조국과 멀리 떨어진 이국땅의 병원침대에 누워있어도 당신과 아이들이 분투하고있는 조국에 대한 사랑과 긍지로 결코 외롭거나 고독하지 않은 나요. 조국에 대한 그리움, 당신과 아이들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나도 힘자라는껏 분투하려고 하오. 글을 쓰겠소. 이 한몸 깡그리 태운대도 조국에 대한 글을 쓰겠소.…

외국의 한 병원에서 보낸 남편의 편지를 몇번이나 읽고 또 읽어보는 예봉은 조국을 그리는 남편의 그 절절함이 심장에 미쳐와 코마루가 시큰해졌다.

얼마나 아이들이 보고싶고 조국이 그리울것인가.

생각해보면 남편은 암혹의 낭떠러지에서 천신만고하여 광명한 하늘에로 나래쳐올랐으나 그만 날개가 부러져 더 날지 못하는 수리개의 운명과 같다고 해야 할것이다.

끝없는 희망과 포부를 안고 수령님의 품에 안기자마자 해방전부터 그의 몸을 좀먹어들어가던 병마가 삽시에 그를 쓰러뜨렸던것이다.

부글부글 끓어번지는 창작적열정을 마음껏 쏟아붓지도 못한채 병석에 매인 남편을 생각하면 정말 애석한 마음 금할수 없었다.

행복과 희열만이 넘치는 예봉의 생활에서 그늘이 있다면 바로 남편의 이 병때문이라 할수 있었다.

왕성한 창작적성과로 조국에 기여하지 못하고 노상 병원과 료양소의 침대에서 날을 보내야 하는 남편의 일이 안타깝기만 하였다.

남편이 몸을 툭툭 털고 일어나 영화나 극작품들을 꽝꽝 써내여 수령님께서 아시고 조국이 사랑하는 작가로 이름을 떨친다면 얼마나 좋을가!

남편이 쓴 작품에 출연한 자기의 모습을 수령님께 보여드리고싶은것이 그가 가슴속에 소중히 품고다니는 소원이였다.

허나 아직은 소원일뿐이였다.

남편은 여전히 병상에 매인 몸이다. …

편지를 다 읽은 예봉은 조용히 료양소호실의 창문을 열어젖히였다.

청신한 가을빛이 한가득 안겨온다.

푸르게 트인 맑은 하늘, 붉게붉게 물들어 설레이는 단풍나무들…

아, 아득한 저 하늘가너머 먼곳에 그이가 있겠지…

병석에서도 붓을 놓지 않고 수령님의 은혜에 적으나마 보답하려고 애쓰는 남편의 심정이 더욱 절절하게 마음을 울린다.

한없는 그리움이 가슴을 쥐여흔든다.

생각해보면 결혼한이래 그들은 서로 떨어져 살아온 나날들이 더 많았다.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던 방랑극단의 무대와 아버지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친 비극적결혼, 빚독촉에 머리가 세던 세방살이와 무시로 달려드는 남편의 병… 이 모든 생활고들은 어차피 그들을 가슴아픈 리별의 마당으로 떠밀군 하였다.

허나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그들은 결코 멀리 떨어져있는것이 아니였다.

조국을 위하여 높뛰는 그들의 심장은 언제나 하나의 숨결로 고동치고있었으니 어찌 그들이 떨어져있다고 할수 있으랴!

때는 1958년 10월이였다.

 

*           *

 

남편의 편지를 받은 후 예봉은 더이상 료양소에 머물러있을수 없다는 절박감을 느끼였다.

천고마비라고 일컫는 좋은 단풍계절에 몸을 보양하여야 한다면서 촬영소일군들이 등을 떠밀다싶이하는 바람에 이곳 료양소에 온 예봉이였다.

산좋고 물이 맑은 이곳에서 매일과 같이 즐거운 오락과 산보, 온천치료와 가벼운 등산으로 날을 보내다나니 저절로 몸이 거뜬해지고 힘이 용솟음치는것을 느끼게 되나 마음만은 초조해졌다.

한시바삐 촬영소로 돌아가고싶었다.

그러던 어느날 당중앙위원회 일군이 뜻밖에도 그를 찾아왔다.

그 일군은 예봉의 건강에 각별히 마음을 쓰는것이였다.

큰 병도 없으면서 료양소생활을 하는것이 마음에 걸려있던 예봉은 당중앙위원회 일군이 자기의 건강에 대하여 세세히 문의하자 더욱 송구스러웠다.

《저는 별로 앓는데도 없습니다. 단풍드는 이 가을철이 몸을 돌보는데 꼭 알맞는 계절이라며 료양권을 억지로 쥐여주기에 할수없이 이렇게 놀고있는중입니다. 정말 당의 은정이 너무 커서 고마운 마음뿐입니다.》

당중앙위원회 일군의 얼굴에 뜻있는 미소가 어렸다.

《문예봉동무가 건강하다니 반갑습니다.

사실 당에서는 문예봉동무에게 중요한 임무를 하나 맡기자고 합니다. 그래서 본인의 의향도 들어볼겸해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진중한 그의 말에 예봉은 자세를 가다듬었다. 그 어떤 큰일이 자기를 기다리고있음을 직감하였다.

《저도 당원인데 당에서 하라는 일을 마다하겠습니까?》

예봉의 입에서는 스스럼없이 이런 말이 흘러나왔다.

평시에 품고있던 진정의 분출이라 할수 있었다. 당에서 하라는대로만 살아가려는 그의 굳어진 신념과 생활관의 소박한 표현일뿐이였다.

당중앙위원회 일군은 고개를 끄덕이며 깊은 공감을 표시하였다.

이윽고 그는 신중한 말을 꺼내였다.

《사실 당에서 문동무에게 맡기자고 하는 일이 그리 간단한것이 아닙니다. 문동무도 지난 8월에 발표된 내각결정 제96호를 잘 알고있겠지요?》

《네, 정말 감격하였댔습니다.》

얼마전에 발표된 내각결정에 접하여 기쁨과 감격에 울고웃던 그때의 격정이 되살아나 예봉의 가슴은 설레였다.

뜨거운 동포애가 흐르는 내각결정은 채택되자마자 남북조선 온나라에 폭풍같은 환호를 불러일으키였다.

남조선에 혈육이 있는 사람들은 너무도 감격하여 울음들을 터치였다.

그때 예봉도 눈물속에 동생 화봉이를 그려보았다.

창동에 있을 때 돈 800원을 내여 집을 사주던 동생! 그 돈을 끝내 갚지 못하고 북으로 들어온 자기였다. 그것이 지금껏 가슴에 맺혀 내려가지 않았는데 인제 그 지원물자들이 화봉에게도 가닿으면 화봉은 북에 있는 이 언니가 보내는 지성으로 뜨겁게 받아안을것이 아닌가!

생각만 해도 가슴이 울렁거리는 일이였다.

어찌 화봉이뿐이랴! 해방전에 무대와 은막에서 함께 희노애락을 나누던 배우들은 또 얼마인가!

해방전부터 《비극의 녀왕》으로 불리우던 유명한 녀배우 전옥은 거듭되는 생활고를 더는 이기지 못하여 자살을 기도하였고 이름난 무용가 홍청자, 가수 리화자는 끝내 죽음의 길을 택하였다지 않는가. 지금도 예봉이가 잘 아는 많은 녀배우들이 매춘부로 전락되여 몸과 웃음을 팔아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니 우리 공화국의 지원물자야말로 그들을 구원하는 생명수가 아니고 무엇인가. 이런 생각으로 예봉은 내각결정이 하루빨리 실현되기만을 고대하고있었다.

그런데 당중앙위원회 일군이 바로 그 내각결정에 대하여 말하고있지 않는가.

그 어떤 예감에 예봄의 마음은 긴장되였다.

《내각결정에 따라 남조선에 원호물자를 전달하는 각계층의 대표들이 가게 되는데 문화예술인대표로는 문예봉동무를 보내려고 합니다. 동무의 의향은 어떻습니까?》

심장이 금시 튀여나올것만 같은 흥분이 예봉의 온몸을 사로잡았다.

내가 공화국의 대표로 서울에 가게 되다니?…

그의 얼굴은 붉게 상기되였다.

《가겠습니다. 지금껏 수령님과 당의 은정속에 살아오면서 큰 기여를 하지 못해 안타까왔는데 그런 큰일을 저에게 맡겨주시니 정말 고맙습니다. 제가 가겠습니다.》

《너무 쉽게 결심하지 마십시오. 생명의 위험을 각오해야 하는 일입니다.》

일군의 얼굴은 자못 신중하였다.

《당에서 바라는 일인데 뭐 주저할것이 있습니까. 당의 신임에 꼭 보답하겠습니다. 그런 큰일에 내 한몸 바칠수 있다면 오히려 영광입니다.》

말없이 예봉을 바라보는 일군의 얼굴에도 깊은 감동의 물결이 일렁이였다. 그는 예봉의 두손을 뜨겁게 잡아주며 말하였다.

《예봉동무의 마음을 잘 알겠습니다. 동무의 결심을 그대로 당에 보고하겠습니다.》

그때부터 예봉의 생활에는 또 하나의 새로운 의미가 비끼게 되였다. 조국의 대표로 남녘형제들앞에 나서야 한다는 무거운 사명감이 그의 모든 생활을 지배하였던것이다.

서울해방직후 무대에서 서울시민들과 뜨겁게 상봉하였던 그날의 감격이 되살아났다.

그런데 또다시 공화국의 지원물자를 안고 서울로 가게 된것이다!

그는 그날을 손꼽아 고대하였다. 설사 죽음이 뒤따르는 길이라 해도 그는 웃으며 갈것이였다.

조국통일의 대문을 여는 성스러운 투쟁에 적은 힘이나마 보탬하는것이 남편의 몫까지 다하여 수령님의 사랑과 은정에 보답하는 길임을 그는 온몸으로 자각하고있었다.

그러나 괴뢰당국의 완강한 반대와 방해책동으로 하여 조국통일사에 특기할 사변으로 기록되였을 이 동포애적사랑은 실현되지 못하였다.

괴뢰들이 반민족적인 저들의 정체를 스스로 드러내고 민족사에 한을 남긴 또하나의 비극이였다.

하여 예봉은 서울로 가지 못하게 되였다.

 

*            *

 

이런 일이 있은지 얼마후 예봉은 항일혁명투사 박영순동지의 부인으로부터 실로 감격스러운 소식을 전해듣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혁명박물관에 나오신 날이였다. 박물관에 전시된 자료들과 문헌들, 사진들을 돌아보시던 수령님께서 문득 어느한 전시물을 보시다가 문예봉에 대하여 말씀하신것이였다.

수령님께서는 사람은 어려운 때 그 진속을 알게 된다고 하시면서 이번에 원호물자를 가지고 남조선으로 나가라고 하니까 로동상이라는 사람은 무서워서 못 가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문예봉은 당이 하라는대로 하겠다고 하면서 서슴없이 그 일을 맡아나섰다, 누가 진짜애국자인가를 알수 있지 않는가, 그러시면서 문예봉은 애국자이라는 과분한 치하의 교시를 하시였다는것이였다.

이 사실을 전하면서 박영순동지의 부인은 《수령님께서는 문동무를 이토록 신임하고계셔요. 그러니 앞으로 일을 더 잘하여 이 신임에 보답하세요. 수령님께서 예봉동무를 그리도 귀애하시니 우리도 동무를 더 사랑하게 되는가봐요.》라고 말하며 그의 손을 꼭 쥐여주었다.

애국자! 얼마나 고귀한 칭호인가.

사랑하는 조국을 위하여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면서도 미소를 짓던 항일혁명투사들과 한치의 조국땅을 위하여 하나밖에 없는 청춘을 아낌없이 바친 전쟁시기 영웅들이 바로 진정한 애국자들이 아니였던가.

그런데 수령님께서는 그런 영웅들과 나란히 나의 이름을 동렬에 놓고 애국자라고 불러주시였으니 이 과분한 믿음과 기대를 그 어디에 비길수 있단 말인가!

예봉은 너무도 황송스러웠다. 그리고 너무도 고마왔다.

그는 수령님의 치하의 말씀을 조국통일을 위한 길에 진정을 바치는 참된 애국자가 되라는 고무의 말씀으로 받아들이였다.

수령님께서 바라시는 참된 애국자가 되는 길이 바로 조국통일위업에 한몸 내대는데 있다는것을 그는 절감하고있었다.

 

*           *

 

문예봉은 결코 빈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였다.

그후 그가 걸어온 행적을 더듬어보면 조국통일을 위한 일에 힘껏 헌신하였다는것을 잘 알수 있다.

문예봉에게 있어서 조국통일은 그 어떤 정치적리념문제라기보다 절박한 생활적문제였다. 가깝게는 친동생 화봉이와 수난에 찬 그 시절 눈물의 무대를 함께 밟던 옛 벗들을 구원하는 길이 바로 조국통일이였던것이다.

주체73(1984)년 1월 어느날 《로동신문》을 펼쳐들었던 예봉은 《무대를 잃은 <아리랑>의 녀주인공》이라는 제목을 보자 후두두 뛰는 가슴을 지그시 누르지 않으면 안되였다.

《아리랑》의 녀주인공이라면 신일선이 아닌가!

과연 그러했다.

왕년의 신일선이라고는 도무지 믿기 어려운 병약한 로파의 사진과 함께 기사에는 을지로에서 가게방을 운영하던 그가 현재는 병석에 누워 해외에서 이붓자식이 부쳐주는 돈으로 생명을 겨우 유지해나간다는 기막힌 사실이 씌여져있었다.

그의 처지를 두고 남조선의 한 신문도 이렇게 통탄하였다.

《그는 돈이 없어 치료는 고사하고 단간짜리 세방에서 몸져누워있는데 진통제를 쓰는외에는 치료를 받을수 없을만큼 생활고가 그를 위협하고있다.》

너무도 놀라왔다.

조선의 영화재사로 높이 떠받들리우던 라운규와 함께 민족영화의 대표작인 《아리랑》에 출연하여 영화계의 혜성으로 만사람의 각광을 받던 신일선, 미모의 녀배우로 영화계에서 명성을 떨치던 그가 생활의 막바지에서 죽을 날만 기다린다니…

참으로 기가 막힌 일이였다.

문예봉 자기와 쌍벽을 이루던 신일선의 가슴아픈 운명을 두고 밤새도록 잠들지 못하였다. 결국 두사람이 딛고 서있는 토양이 달랐던 탓이였다.

그날밤 그는 신일선에게 가닿지 못할줄을 뻔히 알면서도 마음속충동을 이기지 못하여 붓을 들었다.

그후 그의 편지는 여러 출판물들에 공개되여 남조선인민들도 다 읽게 되였다.

그는 편지의 한구절에서 이렇게 썼다.

《…내 손자들은 남조선의 이름있던 녀배우들의 이러저러한 사연을 들을 때마다 <거기서는 재능있는 사람들도 생계걱정을 해야 하나요?>라고 묻군 한답니다.

나는 <할머니도 남조선에 그냥 있었더라면 저런 비참한 지경을 면하기 어려웠을것이다. 일선이도 북에 같이 왔었더라면 우리처럼 행운과 영예를 지녔을게다.>라고 아이들에게 말한다오. …》

이후부터 문예봉은 8. 15범민족대회를 비롯한 통일회합과 행사들에 더욱 적극적으로 참가하여 조국통일을 위한 활동을 벌리였다.

인생의 황혼길을 걷는 로년이였지만 조국통일을 위하여 8월의 무더위와 폭양을 무릅쓰고 정열적으로 활동하는 문예봉의 모습은 북남조선 전체 인민들의 심장을 울리였으며 큰 고무를 안겨주었다.

지금도 조선예술영화촬영소에는 1990년대초 북남고위급회담에 참가하러 온 남조선 《총리》를 문예봉이 호되게 다불러댄 일화가 통쾌하게 전해지고있다.

당시 조선예술영화촬영소를 방문하였던 《총리》는 문예봉을 만나게 되였다.

유년시절에 깊은 인상으로 새겨졌던 추억깊은 영화의 주인공을 만난 《총리》는 무척 감개무량해하였다.

《선생님, 참 오래간만입니다.》

그는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였다. 그리고는 문예봉의 청초한 모습에 놀란 자기의 심정을 숨기지 않았다.

《선생님의 정정한 모습을 이렇게 뵈올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그는 나이에 비하여 너무도 젊어보이는 문예봉의 수려한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하였다.

《총리》의 인사를 점잖게 받는 문예봉의 자세는 소학생을 내려다보는 선생을 방불케 하였다.

《우리 수령님과 사회주의제도가 나에게 늙음을 모르는 영원한 청춘을 주었다오.》

그리고나서 예봉은 《총리》에게 직방 들이댔다.

《마침 잘 만났습니다. 당신들을 만나면 꼭 물어보자던건데 온 민족이 지금 통일열망으로 들끓고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당신들은 왜 한사코 통일을 방해해나서오?》

돌발적인 예봉의 예리한 물음에 급소를 찔리운 《총리》는 할말을 찾지 못해 당황해하다가 겨우 변명을 늘어놓았다.

《선생님은 오해하고계십니다. 우리도 통일을 하자고 평양과 서울을 오가지 않습니까?》

《서로 왔다갔다하기만 해서는 뭘하오. 실질적인 대책을 세우고 일을 해야지, 안그렇소? <총리>량반?》

《네, 저도 그렇게 하도록 힘써보겠습니다.》

《총리》는 난처한 자리를 피하려고 서둘렀다. 그러나 문예봉은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궁지에 몰린 《총리》를 구하려고 촬영가로 둔갑한 안기부(당시)요원이 달려왔다.

《<총리>각하, 일정이 급합니다.》

그는 《총리》를 문예봉에게서 떼내려 하였다.

예봉은 《촬영가》를 제지시켰다.

《참 례절도 없구만. 한창 이야기중인데 이런 인사불성이 어디 있소?》

조용하나 맵짠 기운이 어데라없이 흐르는 예봉의 말에 《촬영가》는 더 우기지 못하고 주춤거리였다.

문예봉은 그를 무시해버리고 《총리》와 다시 마주섰다.

《<총리>선생, 내 말이 어떻소. 틀리오?》

《아닙니다. 다 옳습니다. 저도 선생님 말씀대로 하도록 힘쓰겠습니다.》

《우리 수령님대에 통일이 꼭 이루어지도록 당신도 힘껏 일해주길 바라오.》

《예, 예,》

《총리》는 급히 주어섬기며 황황히 그자리를 피하고말았다. …

1980년대이후시기부터 문예봉의 생애는 조국통일을 위한 사회정치사업에 더 많이 바쳐진 생애라고 할수 있다.

수령님께서 불러주신 애국자라는 고귀한 칭호를 조국통일위업에 모든것을 바치는것으로 빛내려고 그는 생애의 마지막순간까지 노력하였다.

병석에서 그가 위대한 장군님께 올린 편지의 구절구절들에는 그의 깨끗한 애국의 세계가 그대로 비껴있다.

《…

어버이장군님,

지금 온 나라가 어려운 전투를 하며 강행군을 하고있는데 무슨 일인들 없겠습니까.

저의 건강에 대하여 더는 마음쓰지 말아주십시오. 저는 장군님께서 안겨주신 그 사랑의 불사약을 안고 강의한 의지로 병마와 싸워 건강을 회복하겠습니다. 그래서 오는 8월에 열리는 범민족대회에 꼭 참가하여 조국통일을 위하여 힘껏 싸우겠습니다.

해방후 50년남짓한 세월 남편과 자식들의 고향이 남녘땅인 저의 가장 큰 소원은 위대한 장군님을 모시고 통일의 광장에서 목청껏 만세를 부르는것입니다.

그날까지 저는 눈을 감지 않으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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