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회)

제2편 백합꽃은 태양의 빛을 받다

젊음의 노래

 

오다까 요시꼬는 생각깊은 눈으로 문예봉을 바라보고있었다.

조국의 시련을 함께 겪으며 조국을 위하여 헌신한 그의 생이 감동적이였고 그만큼 부러움을 금할수 없었다.

요시꼬가 보건대 조국의 운명속에 자기의 운명도 있다는것이 문예봉의 인생관이였다.

조국의 기쁨이자 그의 기쁨이였고 조국의 슬픔이자 그의 슬픔이였던것이다.

이것은 문예봉에게 자연스러운 생의 리치이고 인생길인것 같았다.

요시꼬자기와는 너무도 대조되는 인생길이라 할수 있었다.

요시꼬의 후반생에서 조국이라는 좌표는 없었다.

오직 가혹한 생존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고독한 독전만이 있었을뿐이였다.

실력과 노력의 세계라고 하는 무대에서 기어코 성공하려고 대양을 건너 미국에까지 넘나들며 독창무대에서 연극무대에로 그리고 또다시 영화에로 전전하면서 무진 애를 다 썼으나 결국은 쓰디쓴 실패의 고배를 마시지 않으면 안되였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것이 소위 성공의 철학이라지만 그 《성공》을 위한 지속적인 압박감과 벼랑끝을 걸어가는것과 같은 긴장감을 그는 도저히 이겨낼수가 없었다.

돌이켜보면 항시적인 고독이 자기 생의 길동무였다. 그는 언제나 외로왔고 고독하였다.

그러나 문예봉은 다르다.

그는 언제나 자기혼자가 아니라 조국이라는 거대한 세계와 함께 있었다.

그의 노력을 온 나라가 뒤받침해주었고 그가 성공하면 온 나라가 기뻐하며 사랑스러운 조국의 딸로 높이 떠받들고 추켜올려주는것이다.

참으로 그가 부럽다. 그런 긍지로운 생을 누려가기에 로년에도 문예봉은 저렇듯 젊음에 넘쳐있는것인가.

요시꼬는 아직도 아름다움과 젊음이 사그라지지 않은 문예봉의 수려한 모습을 찬탄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참으로 기적이 아닐수 없었다.

아무리 보아도 그는 고령의 로인이 아니라 아직도 청춘기의 아름다움을 고이 간직한 미모의 녀인이였던것이다.

《문선생은 아직도 젊습니다. 성공의 희열로 생을 장식하다나니 늙음도 찾아들수가 없었는가봅니다.》

요시꼬의 말에 우리 셋은 다같이 웃었다.

내가 보기에도 문예봉은 너무도 젊어보였다. 최근에는 어머니역으로 많이 분장하지만 화면에서보다 실물은 비할바없이 젊어보이는것이였다.

《제가 듣기에는 수령님께서 예봉선생님더러 처녀역만 계속 하라고 말씀하셨다고 하던데요.》

그의 젊음에 대한 말이 나오자 언제인가 들었던 말이 떠오르며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였다.

《옳아요. 수령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셨댔습니다. 사람의 늙음이란것도 마음에서부터 오는것이 아닐가요? 그런 의미에서 나의 마음은 항상 청춘이라고 할수 있었어요. 내가 아직도 젊었다면 나의 이 젊음은 우리 수령님께서 주셨다고 해야 옳을것입니다.》

우리의 이야기는 뜻밖에도 문예봉의 젊음에 대한 화제로 번져진듯 하였으나 그것 역시 그의 한생을 수놓아가고있는,  수령님의 사랑과 잇닿아있는 복된 순간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1954년은 예봉에게 있어서 특별한 흥분의 해였다. 전쟁의 총포성이 멎은지 1년도 안되는 짧은 기간에 전후의 첫 예술영화로 제작된 《빨찌산처녀》의 주인공 영숙이 역을 훌륭히 성공시켰던것이다.

모든것이 다 파괴된 페허속에서 미국놈을 이겨낸 영웅적인민의 억센 기개인양 《빨찌산처녀》가 태여나자 온 나라 인민들의 환호는 그야말로 열광적이였다.

조국해방전쟁시기 적후에서 용감히 싸우다 영웅적으로 희생된 조옥희영웅을 원형으로 한 작품이여서 영화는 상영되자마자 사람들의 마음을 틀어쥐였다.

특히 섬세하고도 부드러운, 그러면서도 강의한 성격을 잘 살린 문예봉의 연기형상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였고 작품의 품위를 훨씬 높이였다. 사람들은 문예봉이라는 이름보다도 영숙이라고 사랑스레 불렀다. 전국각지에서 매일과 같이 문예봉에게로 편지들이 비발치듯 날아왔다. 처음에는 일일이 회답을 해주다가 너무도 밀려드는 편지사태앞에서 그만 손을 들고말았다.

그가 받은 편지들에는 이런 구절들도 있었다.

《백두의 밀림속에서 축하를 보냅니다. 영숙동무의 영웅적인 투쟁모습을 그려보며 우리는 오늘도 계획을 120% 완수하였습니다.…》(혜산림산사업소 로동자들로부터)

《전연초소의 전호가에 들국화가 붉게 피여 우리 전사들의 가슴마다에 행복의 미소를 보내고있습니다. 그 들국화를 볼 때마다 우리들은 선생님을 생각하며 선생님을 생각할 때면 들국화를 련상합니다. 선생님의 귀중한 서신과 글월을 육친의 정으로 읽고 또 읽었습니다.…

우리 구분대전우들은 조국을 위하여 생명을 바친 빨찌산의 딸-영숙이의 모범을 따라 영웅적으로 투쟁할 결의들을 다졌습니다.》 (전방초소의 군인들로부터)

《영숙동무, 왜 우리 공장에는 오지 않으세요. 우리들이 얼마나 영숙동무를 만나보고싶어하는지 아세요. 영숙동무를 꼭 기대앞에서 만나보게 되기를 희망합니다.》(청진방직공장 로동자들로부터)

《영숙동무, 우리의 농업협동조합생활이 얼마나 행복하고 아름다운지 보여드리고싶습니다. 수많은 영숙이들이 지켜낸 우리의 귀중한 조국땅이 아닙니까. 수령님의 가르치심을 받들고 협동화의 동음이 울려가는 내 고향땅의 벅찬 모습을 사랑하는 영숙동무가 와서 한번 보아주십시오.》…

문예봉을 배우로가 아니라 조국을 위하여 한목숨 바친 조국의 장한 딸-영숙이로 생각하며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진심이 그대로 비낀 글들이였다. 조옥희영웅을 잊지 않고 길이 추억하는 인민들의 애국적감정과 함께 처녀영웅의 모습을 생동하게 형상해낸 문예봉에 대한 신뢰와 사랑의 감정, 문예봉을 빨찌산처녀 영숙이처럼 보고있는 인민들의 소박한 마음이 절절하게 담겨져있었다. 인민들의 마음속에서 예봉이자신은 빨찌산처녀-영숙이로 살아있는것이였다.

참으로 자신을 가다듬지 않을수 없는 일이였다.

인민들이 자기를 영숙이로 보고있는 이상 자기도 영숙이처럼 살아야 하는것이였다.

빨찌산처녀 영숙이! 그는 얼마나 훌륭한 처녀였는가. 처녀의 몸으로 빨찌산에 입대한 그는 미국놈들을 족치는 싸움에 한몸을 내댄다. 마을에 내려가 놈들의 다리공사를 지연시키고 적들을 유인하여 요새를 점령할수 있게 한다. 또한 다리를 폭파시켜 수많은 애국자들을 감방에서 구원한다. 이 전투에서 체포되여 놈들의 온갖 고문을 받았으나 굴복하지 않고 떳떳이 맞서싸운다. 사형장에 끌려나와서도 그는 조금도 굴하지 않고 《김일성장군 만세!》, 《조선로동당 만세!》를 소리높이 웨치고 희생된다. 처녀의 이 영웅적기개앞에서 놈들은 그만 전률한다.

우리 나라 농촌마을 그 어디서나 흔히 만날수 있는 수수한 농촌처녀이면서도 결코 평범치 않은 영웅적인 처녀가 바로 영숙이였다.

바로 그러한 처녀영웅의 정신세계에 내가 과연 도달할수 있을가?

예봉의 고민은 사실 깊었다.

그 영웅처녀의 고결한 정신세계에 도달하여야 한다는 자각과 아직은 그에 따라서지 못하는 자신의 정신세계와의 차이때문에 오는 마음속통증이였다.

배우들이 흔히 하지 않는 이런 진통을 안고 모대기는 여기에 벌써 예봉의 남다른 인간상이 있다고 해야 할것이다.

온 나라를 들썩하게 한 《빨찌산처녀》의 열풍속에서 1954년도 저물고 1955년 새해가 밝아왔다.

문예봉에게 또다시 영광의 시각이 도래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참석하신 신년연회에 초대되였던것이다.

신년연회에는 당과 국가의 책임일군들과 사회단체 및 근로단체일군들, 로력혁신자들, 각계층의 대표들이 수많이 와있었다.

복구건설의 노래 우렁차던 54년을 보내고 더욱 보람찬 투쟁의 새해를 맞이하는 뜻깊은 시각을 위대한 수령님과 함께 맞이한다는 너무도 과분한 행복에 문예봉의 가슴은 줄곧 울렁거리기만 하였다. 문화예술부문의 대표로 국가연회에 참가하게 된 자신이 그저 놀랍기만 하였다.

연회가 거의 끝날무렵 허정숙 문화선전상이 활기있는 걸음으로 예봉의 좌석으로 다가왔다. 그는 예봉의 귀에 대고 조용히 속삭이였다.

수령님께서 지금 예봉동무를 부르십니다. 어서 일어나요.》

《!…》

예봉은 튕겨나듯 자리에서 일어섰다. 급히 옷매무시를 다듬으며 그는 허정숙 문화선전상을 따라 어느 한 방으로 들어섰다.

그 방에서는 수령님께서 각국 대사들과 담화를 하고계시였다.

허정숙과 함께 방에 들어서는 예봉을 보시자 수령님께서는 반가운 미소를 지으시며 일어나시였다.

문예봉은 허리굽혀 설인사를 드리였다.

그의 눈가에는 어느덧 뜨거운것이 고이였다.

수령님을 뵈올 때마다 느끼는 뜨거운 정이 또다시 그의 가슴을 뭉클하니 적시였던것이다.

수령님께서는 그의 등을 가볍게 두드려주시며 새해에 좋은 영화를 더 많이 만들라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다가 문득 올해에 몇살이 되는가고 물으시는것이였다.

《38살입니다.》

예봉의 대답을 들으신 수령님께서는 이번에 《빨찌산처녀》를 보니 아직도 쌩쌩한 처녀같다고, 아주 역을 잘했다고 하시며 여러 나라 대사들에게 이 동무가 전후에 처음으로 나온 《빨찌산처녀》라는 영화에서 주인공역을 한 문예봉동무인데 38살의 중년부인이지만 처녀역을 아주 잘하였다고 예봉을 소개하시였다.

수령님께서 특별히 만나주시는 문예봉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고 시선을 모으던 각국 대사들은 수령님의 말씀에 일제히 박수갈채를 보내였다.

대사들의 박수에 예봉은 고개를 숙여 인사를 표하였다.

수령님께서는 시종일관 대견한 얼굴로 그의 모습을 지켜보시였다.

친딸을 내세우고싶어하시는 아버지의 심정그대로이신 수령님의 다심한 사랑을 가슴 찡하도록 느끼며 예봉은 목이 메였다.

그의 눈가에는 어느덧 고마움의 눈물이 또다시 방울방울 맺히였다.

감사의 정에 울먹이는 예봉에게 수령님께서는 영화에서 영숙이 역을 아주 잘하였는데 이제 영숙이가 숱한 애국자들을 키울것이라고, 예봉동무가 이번에 많은 수고를 하였다고 하시면서 손수 축배잔을 들려주시였다.

축배잔을 받아안은 예봉은 너무도 황송하고 감격에 겨워 수령님께 다시금 감사의 인사를 올리였다.

문예봉은 너무도 미숙한 자기의 연기를 이토록 치하하시니 더욱 송구해지는 마음을 걷잡을수가 없었다.

그러는 예봉을 대견스레 바라보시던 수령님께서는 앞으로 영숙이와 같은 처녀역만 계속 하라구, 그래야 늙지 않고 처녀처럼 젊어있을게거던, 예봉동무가 늙어서야 안되지라고 하시며 호탕하게 웃으시였다.

예봉은 눈앞이 뽀얗게 흐려졌다.

(수령님, 고맙습니다. 제가 뭐라고 이토록 아껴주시는것입니까.)

수난의 그 시절 녀배우들의 재산은 미모와 젊음이였다. 젊음이 넘쳐나고 아름다움이 꽃피는 한창시절의 녀배우는 값이 나가는 상품이라 할수 있었다.

그러나 자연의 법칙은 어길수 없어 어느덧 청춘이 사라지고 아름다움이 시들기 시작하면 아무리 명성을 떨쳤던 왕년의 녀배우라도 사정없이 밀리는것이 은막과 무대의 랭혹한 륜리였다.

사람이란 늙기마련이니 그 늙음과 더불어 예술인으로서의 생명도 끝장이 나는것이 녀배우의 어쩔수 없는 숙명이였던것이다.

녀배우들이 락화되여 진흙탕속에 나딩굴고 구겨져도 누구 하나 동정하거나 애석해하는 일이 없었다.

한철 폈다 지는것이 녀배우들의 운명인데야…

그런데 지금 수령님께서는 예봉의 젊음을 그 누구보다도 귀히 여기시며 영원한 젊음의 꽃을 피우라고 축복해주시는것이다.

단순히 육체적으로 늙지 말라는 말씀이시였던가.

아니였다. 그것은 오늘도 래일도 언제나 처녀와 같은 싱싱한 마음으로 예술창조사업을 열정적으로 해나가라는 격려의 말씀이시였다.

영원한 젊음-그것은 청춘의 열정으로 높뛰는 심장에 있는것이다.

수령님께서는 바로 나에게서 이것을 바라시는것이다.

예봉의 심장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 심장, 그 열정으로 온넋을 불태운다면 수령님의 말씀대로 영원한 청춘의 모습으로 은막을 아름답게 장식할것이다.

 

*           *

 

그때로부터 몇년세월이 흐른 어느날 예봉은 또다시 국가신년연회장에서 수령님을 뵈옵게 되였다.

연회가 한창 무르녹을무렵 위대한 수령님께서 몸소 예봉이가 앉아있는 연회탁에 오시였다.

그이께서는 이전의 그날처럼 예봉에게 또다시 축배잔을 부어주시였다.

예봉이 올리는 새해인사를 받으신 수령님께서는 아직 젊었는데 왜 로파역을 하는가고, 로파역은 동무에게 맞지 않는다는 뜻밖의 말씀을 하시였다.

예봉은 너무도 당황하여 고개를 푹 숙이였다.

아마도 어느 한 예술영화에서 로인역을 한것을 보고 하시는 말씀이신듯 하였다.

그 영화에서 예봉은 팔순이 된 할머니로 분장하였던것이다.

처녀역만을 하라고 하시던 수령님앞에 정말 면목이 없었다.

잊지 못할 그날에 하셨던 말씀을 잊지 않으시고 수령님께서 자기의 역 하나하나를 그토록 세심히 살펴보고계시였다는 생각에 예봉은 몸둘바를 몰랐다.

이때 예술부문의 한 일군이 수령님께 문예봉동무한테는 대학에 다니는 아들딸이 4명이나 있다고 말씀올리였다.

성인이 된 아들딸들이 있는 나이든 배우라는 말이였다.

수령님께서는 섭섭한 표정으로 머리를 저으시며 얼굴을 들지 못하고있는 예봉에게 지금이 한창인데 벌써부터 로인역을 하기 시작하면 진짜 늙어버리고만다고 타이르듯 말씀하시였다.

순간 예봉은 펀뜻하고 튕겨지는 세찬 불꽃을 의식하며 머리를 버쩍 들었다. 수령님의 의미심장한 말씀이 그의 온몸을 후려치였던것이다.

배우로서의 한창시절인 20대의 청춘기를 수난의 그 세월에 다 흘러보내고 30대고개에야 수령님의 품에 안긴 내가 아닌가.

진정한 예술활동은 수령님의 품에 안겨서야 비로소 시작한셈이니 나의 예술창조의 나이는 그때로부터 세야 하지 않을가.

그렇다! 바로 그것이다.

지금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예술창조의 청춘시절인것이다.

수령님께서 나의 청춘을 되찾아주셨다!

예봉의 심장은 격동의 불꽃으로 튀여오르고 얼굴은 흥분으로 하여 붉게 상기되였다.

그럴수록 예봉을 소중히 여겨주시고 앞날까지 축복하여주시는 수령님의 사랑앞에 울먹여지는 마음을 걷잡을수가 없었다.

얼마나 다심하고 뜨거우시면서도 위대한 사랑의 품에 내가 안겨있는것인가. 수령님께서는 이 문예봉이 언제나 젊어있기를 바라신다!

수령님께서 바라시는데 내가 어찌 늙을수 있으랴.

영원한 젊음으로 수령님께 기쁨만을 드리리라.

불타는 맹세로 가슴을 끓이며 예봉은 새해를 맞이하였고 예술창조의 개화기인 1960년대에 들어섰다.

문예봉에게 있어서 1950년대와 1960년대는 그야말로 예술창조의 나래를 활짝 펼친 개화기라고 할수 있었다.

전후 사회주의기초건설시기와 우리 조국력사에서 천리마시대라고 불리우는 격동적인 시기에 문예봉은 천리마를 타고 질풍같이 내달리는 조국과 숨결을 같이하며 자기의 재능을 깡그리 조국에 바치였다.

이 시기에 그는 《신혼부부》, 《춘향전》, 《금강산처녀》, 《붉은 꽃》, 《다시 찾은 이름》, 《성장의 길에서》 등 수많은 예술영화들에 출연하여 조선영화사의 한페지를 빛나게 수놓았다.

1960년대에 중학시절을 보낸 나의 기억에도 그 당시 영화화면에서 가장 많이 본 녀배우의 얼굴이 문예봉이였던것이다.

너무도 친숙한 그의 모습이 비낀 영화화면과 함께 우리 세대는 꿈많은 중학시절을 보내였고 랑만으로 부푸는 청춘의 대문을 열어제끼였던것이다.

사람들에게 있어서 영화가 평생 떨어질수 없는 생활의 길동무라고 한다면 문예봉은 바로 우리 동시대인들의 영원한 길동무라고 할수 있는것이다.

백화만발한 꽃밭에도 그것을 가꾼 원예사의 남모르는 수고가 있고 오곡백과 주렁진 풍요한 가을에도 그 가을을 안아온 농민들의 노력과 땀방울이 스며있듯이 활짝 피여난 문예봉의 예술적재능뒤에도 그것을 꽃피워준 위대한 어버이의 손길이 있었던것이다.

나는 1950년대와 1960년대에 문예봉이 맞이한 예술창조의 개화기가 바로 위대한 수령님께서 안겨주신 청춘의 심장에 있다는것을 확신하였다.

수령님께서 주신 그 청춘의 심장으로 문예봉은 은막에 영원한 젊음의 노래를 새겨갔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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